• 최종편집 2024-04-2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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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경단녀 신화 이혜영 예비후보,국민의힘 부산 북강서갑 '정치신인' 급부상
    이혜영 국민의힘 부산 북강서갑 예비후보가 "삼선을 노리는 고인물 전재수는 정치신인이 잡아야 한다"라며 총선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이혜영 후보는 이번 출마로 정치권에 첫 발을 딛는 정치신인이다. 주부 10년차인 38세에 로스쿨에 도전해 변호사가 된 케이스로, 경력단절 여성으로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일 뉴스워크 등 한국미디어연합 협동조합과의 공동인터뷰를 통해 출사표를 던진 이혜영 후보는 "8년 동안 전재수 의원이 지역에서 많은 소통을 해오신 것으로 알지만 정작 주민들은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북구 지역 주부인 이 후보는 "지역에서 살아보니 자녀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을 정도로 주변이 많이 노후화 되고 교육환경이 열악하다"라며 "자식을 키우는 엄마, 주부의 마음으로 도시 정비를 해야 지역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북구-강서구 지역의 젖줄인 낙동강을 '관광지'로 탈바꿈시켜 활기찬 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후보는 "광안리와 해운대가 MZ세대의 핫스팟이지만, 낙동강에서도 유람선을 이용한 관광과 드론쇼를 펼치면 동부산 못지 않게 밝은 도시로 변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고연령층이 많은 도시인만큼 돌봄서비스의 획기적인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비쿼터스 케어시스템'을 지역에 도입해 고연령층의 건강관리와 고독사 방지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결혼후 전업주부 생활을 하며 10년간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았던 이혜영 후보는 38세에 로스쿨에 도전, 늦깎이 변호사가 된 이야기로 주목을 받았다. 최근엔 사단법인 공직공익비리신고 전국시민운동연합(공신연)이 주최하는 '대한민국 청렴대상'에서 사회봉사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경력단절 여성의 새로운 도전에 힘을 주고 싶다는 이혜영 예비후보는 "전업주부로 10년 동안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만 하다가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하니 주변에서 다들 말렸다. 늦은 나이에 하는 도전이라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3년동안 장학금을 받았다. 젊은 친구들이 교과서 세 번 보고 시험 치면 나는 열 번을 봤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고 밀어붙이면 주변에서 밀어주게 돼있다. 도전이 두려운 분들이 저를 보고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예비후보는 "진심과 열정, 최선을 담아 헌신하는 마음으로 북강서갑 국회의원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라며 "구석구석 발로 뛰겠으니 가슴에 담긴 말을 저에게 전해주시면 제가 열심히 받아서 실현해 내겠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 주요뉴스
    2024-02-05
  • [인터뷰] 하윤수 교육감, 사교육비를 줄일 ‘부산학력향상지원시스템(BASS, Busan Academic Support System)’ 운영중
    뉴스워크를 비롯한 한국미디어연합 협동조합은 지난 12일 하윤수 교육감과 신년 공동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하윤수 교육감은 부산시교육청의 주목할 만한 성과에 대해 피력했다. 대표적인 것이 ‘부산학력개발원’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학력 신장이다. 하 교육감에 따르면 공교육 바로세우기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학력 신장 전담 기관인 ‘부산학력개발원’은 2022년 11월 문을 열었다. 하 교육감은 ‘학생 맞춤형 학습지원을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이 최우선’이란 판단하에 학력 신장 정책을 펼쳐 왔다. 시 교육청은 깜깜이 교육을 해소하고, 사교육비를 줄일 ‘부산학력향상지원시스템(BASS, Busan Academic Support System)’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생 수준 진단과 분석, 맞춤형 학습 추천 등을 제공한다. 교사의 일타강사화도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교육청은 부산의 동서지역 간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활성화할 전국 최초 ‘공교육 인터넷 강의’도 운영하고 있다. 강사진은 부산지역 우수한 현직 교사들로 꾸렸다. 하 교육감이 가장 자랑할 만한 사업은 역시 ‘아침체인지(體仁智)’ 사업이다. 잠자는 학교를 깨워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고, 현재는 선도학교 450교, 연구학교 2교를 운영 중이다. 이와 함께 아침체인지의 발전적 형태인 ‘가족공감체인지’ 시범학교도 33교를 운영하고 있다. 부산 전체 학교의 71%가 참여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하 교육감은 “이 사업들은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며 “다른 시도교육청의 벤치마킹이 잇따르고 있고, 특히 아침체인지는 올해 교육부 주요 정책으로 채택됐다”라고 밝혔다. 한편 부산시교육청은 전국 최초 학교행정지원본부를 설립해 화제가 됐다. 모든 학교에서 공통으로 수행하는 반복적인 업무와 교사 부담이 큰 학교 행정업무를 이관해 실질적 교원 행정업무 경감을 실현한다는 취지다. 부산시교육청은 총원 42명 규모로 올해 휴교가 예정된 신연초등학교에 학교행정지원본부를 임시 개관했다. 학교행정지원본부는 오는 7월 중 영도구에 정식으로 문을 열 계획이다. 하윤수 교육감은“방과후학교, 늘봄학교, 돌봄교실, 아침체인지 등 부산시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사업이 잘 진행이 돼서 우리 부산 아이들이 튼튼하게 자라고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새해 소망을 밝혔다.
    • 경제
    2024-01-15
  • [특별대담]대통령님과 교육부장관님께 올리는 “소망의 한문 이야기”
    한문학자이자 불교경전연구가인 설원 천명일 선생께서 신간"소망의 한문이야"를 출간 했다. 저자는 책에서 “한문(漢文)은 남의 나라 문자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만든 고귀한 문자”라고 주장하며 “후손들의 정신교육을 새롭게 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한문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연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대통령과 교육부장관, 시도 교육감과 각 대학 총장을 향한 편지글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말에서 한문을 제외할 경우, 생활용어의 뜻이나 문자의 뜻을 전연 모르게 된다.”면서 “한문을 하루빨리 국어 영역의 필수 국정 교과목으로 지정해 달라.”고 호소했다. 책은 서문 외에 △한문은 이두문(吏讀文) △의성(意聲)과 의음(義音)의 얘기 △한글 모음은 ‘의성(意聲)’ 한글 자음은 ‘의음(義音)’ △회의문자(會意文字) 이야기 △학(學)자와 각(覺)자의 무량의(無量義) △한문의 불가사의 △한문의 철리(哲理) 이야기 △한문의 명리학(命理學) 이야기 등 15장으로 구성돼 있다. 저서로 〈산성 할아버지의 이야기 천자문〉·〈수능엄경(상중하)〉·〈천수경〉·〈원각경〉·〈무량의경〉·〈절로 가는 길〉·〈漢文을 바로알자〉·〈배꼽밑에 지혜의 등불을 밝혀라〉·〈일체유심조〉·〈마음이나 알자〉·〈가지산 이야기〉·〈산성 할아버지의 뿌리 이야기〉 등이 있다.
    • 주요뉴스
    2023-10-29
  • 5∙18 나흘 전 광주 무등산 ‘증심사(證心寺)’라는 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난 8월 23일 작성된 ‘스카이데일리’ 허겸 기자의 「무등산 절에 정체불명 100명은 누구?」라는 기사를 소개합니다. 1980년 5·18 직전 광주의 한 절에서 100여 명의 외지 남성들이 국군 장교들에 의해 목격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에 따라 이들이 무기고 탈취와 교도소 습격의 조직적인 무장봉기에 가담했는지, 이들의 정체를 둘러싼 의문이 새롭게 증폭될 전망입니다. 이 절은 김대중 정부가 2000년 9월 북으로 돌려 보낸 비전향 장기수 손성모가 스님으로 신분을 감추고 간첩으로 암약했던 당시 반(反)국가세력의 거점으로 일부 기능했습니다. 손성모는 1988년 4월 첫 재판에서 “나는 간첩이 아니다”라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일체를 부인하면서도 “김일성 주석님의 조국 통일 노선을 실현하기 위해 나선 사람”이라고 자신의 남파 경위를 직접 밝힌 바 있습니다. ‘민주화 백서’ 등 5·18 증언집에서는 시민군이 이 절을 ‘사수’ 하려 했다는 증언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이런 장소에 5·18 사건의 최초 충돌로 간주되는 전남대 앞 유혈사태 4일 전에 거동 수상자 100여 명이 우리 군에게 포착된 사실이 ‘민간 5·18 진상조사위원회(민진사)’의 초동 조사 활동 과정에서 구체적인 영상 증언으로 확보됐습니다. ‘민진사’는 정보당국과 군 당국 출신 인사에 이어 학계와 민간단체 인사가 자발적으로 합류하며 100명 안팎 규모로 외연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발족한 뒤 편향됐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아 온 기존 정부 조사위 활동의 사각지대로 꼽히는 외부 세력의 개입 가능성 등을 확인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순수하고 순박한 대다수 광주시민을 40여 년간 가스라이팅 한 배후 세력이 만약 존재한다면 그 실체를 벗기고 전모를 낱낱이 드러내는 데 역량과 지혜를 모으고 있습니다. 2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광주시 동구 운림동 무등산 자락에 자리한 증심사(證心寺)에서 5·18 직전 낯선 청년 100여 명이 우리 군 장교들에 의해 목격됐습니다. 이들에 관한 목격 증언이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광주에 있는 ‘전투병과 교육사령부(전교사)’ 군수지원단 소속 장병과 군무원 약 70명은 1980년 5월 14일 점심 식사 이후 무등산을 등반했습니다. 의무병과 사진병 2명만 사병이었고 소수의 군무원을 제외하면 모두 장교들이었습니다. 이 시점은 5·18로부터 4일 전입니다. 목격자들은 그날이 수요일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대한민국 육군은 매주 수요일을 ‘전투 체육의 날’로 정해 구보와 등산 등 체력강화 훈련을 합니다. 그해 5월 18일은 일요일이고 5월 14일은 수요일이었습니다. 군수지원단 장병과 군무원들은 버스 2대에 올라 부대를 출발했습니다. 군인들은 전투복을 착용했고 군무원들은 자유 복장으로 참가했습니다. 증언은 대단히 구체적이었습니다. 버스는 지산동에서 담양군 남면 방향의 무등산을 넘어가는 산길 도로를 지났습니다. 이곳은 현재 ‘무등산 옛길’로 불립니다. 이어 김덕령 묘지 충장사에 도착한 뒤 군인들은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국군 일행은 충장사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무등산 산악행군길에 올랐습니다. 충장사(김덕령 묘지)~바람재~토끼봉을 거쳐 오후 3시쯤 중머리재 정상에 오른 뒤 무등산 정상의 육군 미사일부대가 보이도록 단체 사진 한 컷을 찍은 것으로 장병들은 기억했습니다. 이후 증심사 계곡의 소로길(작은길)로 내려오던 중 100명이 넘는 수상한 남성들이 장교들의 시야에 잡혔습니다. 머리는 긴 장발이었고 눈빛은 살기가 돌았다고 목격자들은 증언했습니다. 군인들은 “극도의 경계심을 갖는 예사롭지 않은 눈빛을 한 이들이었고 긴장한 모습이 있었다”고 훗날 증언했습니다. 하산길에 계곡 사이에 난 작은 길 양옆으로 약 50명씩 거동 수상자가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를 걸어 내려가던 군인 중에는 대화를 주고받은 이도 있었습니다. 거동 수상자들을 학생으로 여긴 한 증언자는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왜 여기에 있나?”라고 물었고 한참 뜸을 들이다가 그들 중 누군가가 “그저 놀러 왔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당시엔 군과 시민군이 교전을 벌이거나 유혈 충돌하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광주의 애국시민들은 적어도 5·18과 같은 현대사의 처참한 비극이 안방에서 일어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시점이었습니다. 시민군이 트럭과 버스를 계엄군 쪽으로 질주∙충돌하며 군의 총격과 대응 사격을 유발해 양측의 격전이 벌어졌다는 시기보다 훨씬 앞선 때였습니다. 증언에 따르면 군인들은 거동이 수상한 자라는 짐작 정도는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당시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외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을 수도 있다고 일부는 생각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낯선 남성 100여 명이 고정간첩 또는 북한에서 남파된 특수작전 대원일 가능성은 적어도 그 순간에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일부 증언했습니다. 반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장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양측은 충돌이 없었고, 증심사 입구까지 다다른 군인들은 부근에 주차한 버스를 타고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그러나 4일 뒤 5∙18이 본격 시작되고 20일 광주역과 노동청에서 최초의 군인∙경찰 사망자가 발생한 데 이어 다음날인 21일 아침 이른바 ‘군 분교 습격 사건’으로 불리는 20사단 사령부 및 62연대 지휘 차량 피습 사건이 벌어지자, 당시 등산에 참가했던 군인들 사이에서 “그놈들이다”라는 밀담이 조심스럽게 오갔다고 합니다. 이후 계엄군을 악마로 묘사하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이 증언은 40여 년간 묻혔습니다. 당시 전교사 군수지원단의 A모 대위는 “남루한 복장에 머리가 긴 장발이었고 검게 그을린 인상을 가졌다”고 최근 본지에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날카롭게 경계하면서 당황한 눈빛이었고 늘씬늘씬했다”고도 표현했습니다. 키가 훤칠했다는 뜻인지 ‘늘씬늘씬’의 의미를 되묻자 “덩치가 좋았다는 뜻”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연령에 대한 질문에는 “최소한 재수생 이상의 제대한 남자 나이로 보였고, 20대 중반이나 후반으로 보였다”고 그는 답했습니다. 또 다른 증언자 B모 대위는 “그때 증심사 계곡으로 행군하고 하산하는 우리 전투 체육의 날 행사 일행을 보고 지금 생각해 보니 뜻밖에 군인들이 많이 오니까 당혹한 눈치인지 안절부절못한 행동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라도 학생이라 생각했으나 말투가 달라 수상한 사람들이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마침 그때는 초파일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불교 신자들이 각 지역에서 온 것으로 생각했고 밥은 절에서 제공하니까 그런 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머리 긴 젊은이들이 그곳에 있었는지 또 말씨가 전라도가 아닌 학생 같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그곳에 있었는지 수상하고 궁금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당시 계엄군이었던 C씨는 “석가탄신일에 절에 가는 이들은 말끔하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가게 마련”이라며 “행색이 남루하고 초라하다는 증언은 대공 용의점을 두고 의심하기에 충분한 상황”이라고 보충 설명했습니다. 광주 무등산 증심사는 남파간첩 손성모가 위장 잠입한 장소입니다. 대공 수사 기록에 따르면 손성모는 1980년 5월 전남 해남으로 남파돼 승려로 위장해 활동하다 이듬해 2월에 경북 문경시에서 붙잡혔습니다. 손성모는 1988년 서울형사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인정신문 직후 “김일성 주석님께서 제시하신 ‘조국 통일 3대 원칙’은 가장 정당한 통일원칙”이라고 진술했습니다. 그가 직접 기록한 후일담에선 자신을 기소한 검찰을 향해 “나는 나를 ‘간첩’이다 뭐다 하고 장광설을 늘어놓은 검사 놈에게 ‘나는 간첩이 아니다. 김일성 주석님의 조국 통일 노선을 실현하기 위해 나선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썼습니다. “김일성의 통일원칙 실현”을 직접 법정에서 자술했고 5·18을 앞두고 남파된 데다 김대중 정부에 의해 다시 북한으로 돌아 갔지만 대법원은 국보법 위반 혐의를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은 1988년 10월 “국보법 제3조 1·2호의 국가기밀은 형법 제98조의 국가기밀보다 고도의 국가기밀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손성모에 대해 적용한 국보법 혐의에 따라 유죄로 인정한 서울고법의 원심을 깨고 파기 환송했습니다. 당시 대법관은 윤관·김상원·김용준이었습니다. 간첩 공모죄에 대해서 유죄가 확정된 손성모는 사회안전법상 보호감호 조치를 받아 비전향 장기수로 신분이 전환됐으며 김대중 정부 특사로 1999년 12월 형 집행이 정지될 때까지 18년간 복역했고 당시 김대중 정부에 의해 북으로 돌아갔습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대공 수사당국은 손성모가 5·18에 개입한 것으로 혐의를 뒀습니다. 특히 5·18 당시 침투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북한 특작부대원들의 길 안내자로 역할 하기 위해 5·18보다 일찍 남파된 것으로 당시 정보당국은 파악했습니다. 재판 기록에 드러난 손성모의 혐의 중엔 그가 5·18이 일어나기 11일 전인 5월 7일부터 증심사에서 승려로 신분을 위장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실제 그가 은거했던 광주 무등산의 증심사는 복수의 대공 혐의 사건들과 실타래처럼 얽혀 있습니다. 일각에선 손성모에 대한 혐의만 제대로 규명해도 5·18 북한군 개입이 확실하게 증명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북한 자료에도 증심사가 당시 시민군의 본거지로 사용됐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북한 조선노동당출판사가 1985년 펴낸 ‘광주의 분노’ 102~103쪽에는 “이때 놈들에게서 로획한 무기는 기관총 (중략) 군사 경험이 있는 50여 명의 청·장년들로 10~20명씩 4개 조로 편성했다. 무등산 입구와 남광주 역전, 광주고등학교가 이들의 본거지였다”고 기술됐습니다. 1988년 강주원∙김길식∙천순남 씨도 무장한 시민군이 5월 21일 오후 전남도청을 점령한 뒤 가장 빨리 배치된 곳이 증심사라고 증언했습니다. 당시 시민군이 도청 점령 이상으로 간첩 손성모가 있던 증심사를 사수하려 했고, 이∙삼중으로 경호했다고 천 씨 등은 진술했습니다. 5·18 유공자 중에 조영훈 씨는 증심사 종무실장으로 일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조 씨는 광주 추모승화공간 지하 돌판 113열 2행에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황석영은 ‘(1985년판)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서 “21일 보급된 무기들로 무장한 시민군들은 각자 지역 단위의 방어 태세로 들어갔는데 지원동∙학운동 부근에서 예비군 문장우(27세)를 중심으로 학운동 증심사 입구의 배고픈 다리 부근 각 건물에 배치되어 경계를 서고 있었다”며 “이들은 인근 야산을 수색하면서 밤중에 계엄군들이 접근해 오면 저지 사격을 하였다”고 썼습니다. 이 때문에 증심사는 광주사태 당시 단순히 손성모의 체류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일종의 사령부와 같은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시각입니다. 시민군이 절을 사수하려 한 행위는 통상의 상식으로는 쉽게 납득할 순 없습니다. 증심사 소속 승려들 중엔 시민군에 합세하기도 했습니다. 불교 관련 신문은 성연 스님이 “계엄군의 폭압을 보고 시위에 가담했다”고 보도했고, 진각 스님도 “헬리콥터 기총사격으로 쓰러진 여학생을 적십자병원에 후송한 것이 계기가 돼 적십자 대원으로 합류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들의 증언은 계엄군의 선제 집단 발포와 헬기 기총사격이 없었다는 주장과 각각 배치돼 다툼의 여지가 있고 조사위의 진상 규명 대상입니다.
    • 주요뉴스
    2023-08-25
  • 방송 3社 주관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끝장 토론’을 즉각 실시하라!
    방송 3社 주관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끝장 토론’을 즉각 실시하라! 오늘의 내용은 ‘신광조’ 선생이 쓰신 몇 편의 글에서 방사능과 관련된 부분만 모아서 정리했습니다. 나라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경제상황도 녹록치 않지만, 더욱 심난한 것은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데서 오는 불신문제입니다. 정부를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지만, 이는 국민들 간에 서로를 희망의 경쟁상대로 보지 않고, 소 닭 보듯 하거나 미움을 넘어 증오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나라를 경영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제자의 질문에 공자는 “나라를 경영하는 기본은 식량을 비축하고, 군비를 충실히 하고,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자공이 다시 “그 중에서 마지막까지 하나를 갖는다면 무엇을 취해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공자가 “군비와 병력확충보다 중요한 것이 식량 비축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신뢰다. 백성들이 믿고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사회는 신뢰감 없이는 성립하지 못합니다. 정치를 못 믿고 사람을 못 믿어 불신이 극한에 이르면 사회는 붕괴하고 맙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의 근본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국민과 위정자가 서로 믿어야 돌아가는 것이 정치입니다. 신망 없는 위정자가 국민 앞에 나설 수 없듯이, 신망을 잃은 나라는 세계로 진출할 수 없습니다. 불신으로 가득 찬 사회는 일은 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데에만 급급합니다. 우리는 지난 2008년 엄청난 광우병 소동을 겪었습니다. 미국산(産) 소고기 수입 여부를 두고 항의하는 촛불집회와 시위가 무려 106일간 열린 것입니다. K-광우병 소동은 실제 환자가 생겨서가 아니라, 정부나 여당정치권이 ‘MBC PD수첩’ 등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 시 국민에게 怪病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대로 설명하거나 반박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일부 과학자나 식품영양학자들 그리고 이에 부화뇌동한 언론이나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위험성은 사후 확연히 판명되었지만, 어처구니없이 왜곡되거나 과장된 것이었습니다. 한국인이 미국인에 비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둥,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되지 않는 과장되고 잘못된 정보가 의도적인 것인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도 없게 퍼져, ‘대통령 물러나라, 농수산 장관 물러나라!’ 등의 탄핵 열풍으로 번졌습니다. 여기에 소모된 금전적 손해액만 5천억 원이 넘는다는 경제 분석 보고서가 있습니다. 결국 자국산 소고기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괴담이라고 판명된 광우병 소동은 정권을 흔들었습니다. 광우병 소동으로 세계를 깜작 놀라게 한 대한민국은 13년만인 2022년 미국산 쇠고기 최대 수입국이 되었습니다. 마장동에서 수입 쇠고기를 팔아 자식들 학비를 대던 내 친구는 몇 개월의 광우병 소동을 견디지 못하고, 가게를 접고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광우병에 취약한 MM 유전자를 한국인은 95%나 보유하고 있어 좁쌀만한 크기의 고기를 섭취해도 뇌가 숭숭 뚫리고 감염된다는 거짓 정보를 국민 대다수가 믿었습니다. 광우병 소동의 단초이자 수훈갑인 ‘MBC PD수첩’ 당사자들은 시청률 올렸다고 출세하고 사장 등도 하면서 지금도 잘나가고 있지만, 소고기 수입으로 먹고 살았던 수많은 국민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피눈물을 흘렸고 삶을 自暴自棄했습니다. 또 다시 일고 있는 제2의 광우병 소동인 후쿠시마 원전 방류수 처리문제를 슬기롭게 해결 못하면 우리 모두 파멸입니다. 탈원전 정책이 나라를 깨끗이 망하게 하는 망국의 정책임을 간파하면서 방사선, 방사능 등에 대해서 많이 연구하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는데,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나 원자력 정책을 다루는 공무원들마저도 방사선 방사능을 제대로 모르고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외국 의과학 저널에 실린 수많은 핵의학 관련 논문을 조사한 결과, 과도∙과다하지 않는 방사선 쪼임은 세포를 각성시키고 활성화시켜 암 발생을 낮추는 등 건강에 이롭게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방사능 물질이 검출된 대만의 수돗물 음용 국민들이 더 건강해졌고 미국 콜라라도 덴버시, 이란 람사르 지역 리오의 해변 등 방사선이 과다한 지역이 휴양지이고 장수지역이라는 것이 조금씩 이해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원자력 방사선이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이유도 따지지 않고 무서워하고 미워합니다.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방류문제는 온 나라를 뒤흔들 복병입니다. 전혀 문제가 없다는 측과, 바다를 오염시키고 온 국민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측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사실과 과학에서 반은 맞고 반이 틀린 것은 없습니다. ‘To be or Not to be’, 즉 0과 1이 있을 뿐입니다. 진실(True) 또는 허위(False)만 있을 뿐입니다. 지금 어느 한 쪽은 ‘일부러’ 또는 오해하여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장으로 인한 피해는 주장하는 자에게 돌아가지 않으며, 논란이 거듭될수록 피해는 고스란이 수산업자를 비롯한 국민들이 입게 됩니다. 사단법인 <사실과 과학>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나의 견해는,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방류로 국민의 건강 피해는 전혀 없다’는 것이 확고한 입장입니다. 나는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과학자들의 이론과 견해를 탐색하고 그들의 논리 진위를 가리는 데 수많은 불면의 밤을 지새웠습니다. 나의 견해는 확고합니다. 월성 1호기 방사능 삼중수소가 멸치 한 마리 먹는 것과 같은 방사능 양에 해당하듯,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가 미국 캐나다 태평양 적도를 지나 5년 후 제주도에 도착하면, 우리가 그 바닷물이나 수산물을 최대한 먹는다고 해도 일 년에 전복 한 마리 먹는 것 정도입니다. 나의 의견에 대한 반박을 기대하면서, 일단은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방류는 국민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이러한 논란은 아무 죄도 없는 우리 수산업자들만 기분이나 헛소문으로 인해 다 죽인다.’는 논리를 밝혀 둡니다. 왜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방류가 국민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과학에 바탕을 두지 않는 선동이론이자, 가짜 이론일까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방사성물질의 영향이 과연 무엇인가가 큰 관심사입니다. 장기간의 영향은 아무도 모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히 여과를 통해 제거하지 못하는 삼중수소가 문제라는 주장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에는 가장 중요한 내용인 방사성물질의 양과 농도, 그리고 정량적인 피폭량 이야기가 빠져 있습니다. 당연히 방사성물질에 의한 인체 위해는 우리가 섭취하는 양이 얼마인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농도의 양과 피폭량을 말하지 않고 “미량이라도 위험하다”, “장기간이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은 지어낸 괴담입니다. 이것은 가짜 조작논문으로 1950년대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아무리 작은 방사선량이라도 위험할 수도 있다’는 멀러 과학자의 LNT 가설에 起因하는데, 이것은 이미 21세기 과학계의 최고 스캔들로 밝혀졌습니다. 한국의 환경운동가나 탈원전파 과학자들만 상식을 거부하고 헛소리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빗물에는 자연에서 생성된 삼중수소가 1리터에 1베크렐 (Bq) 정도가 들어 있습니다. 1 베크렐(Bq)은 1초에 1개의 방사선이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민물에는 리터당 1Bq의 삼중수소가 들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서울시민들이 소변검사를 하면 1리터당 1∽2 Bq의 삼중수소가 검출됩니다. 반면 민물에 흘러 들어가는 바닷물 속 삼중수소 농도는 리터 당 0.1 Bq 안팎입니다. 이것은 물이 바다에 머무르는 동안 삼중수소가 반감기에 따라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물장어를 먹으면 같은 양의 바닷장어를 먹을 때와 비해 10배 많은 삼중수소를 섭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민물장어를 먹으면 위험한가? 전혀 아닙니다. 장기간 먹으면 위험한가? 전혀 아닙니다.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바다로 많이 흘러 들어가면 부근 바닷물의 삼중수소 농도가 평소보다 올라 갑니다. 이 시기에 잡힌 물고기를 섭취하면 위험한가? 전혀 아닙니다. 삼중수소가 축적된 물고기가 막 잡히는가? 전혀 아닙니다. 매년 동해에 비로 내리는 삼중수소량이 후쿠시마에 저장된 총 삼중수소량보다 더 많습니다. 그 영향이 있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후쿠시마에서 방류 후 수 km만 흘러가도 삼중수소 농도가 리터당 1Bq로 민물 수준이 됩니다. 물은 흘러가면서 거의 모든 것들이 희석되는 것입니다. 후쿠시마 방류수는 5년 동안 흘러 흘러 제주도에 도착합니다. 바닷물이 수 km만 흐르면, 삼중수소 농도 차원에서는 민물이 비다로 유입되는 경우와 같습니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서 삼중수소 농도변화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장기간의 영향도 없다는 것은 꼴통 과학자이거나 마누라가 강의실까지 쫄쫄 따라다니며 감시받고 사는, 前 S대 싸이코 교수를 빼고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방류구 바로 앞은 위험할까요? 전혀 아닙니다. 후쿠시마 방류수 삼중수소 농도 상한선은 1리터당 1,500Bq입니다. 음용은 불허되지만, 이 방류수를 하루 2리터씩 365일 마신다면 그 피폭량은 청정한 바다에서 자란 전복을 1마리 먹어서 그에 함유된 방사성 물질 폴로늄을 먹고 피폭 받는 양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80년동안 매일 2리터씩 평생 마신다고 해도, 매년 전복 한 마리씩 먹는 것과 같아서 평생동안 80마리 전복을 먹는 효과와 같은 것입니다.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가 건강에 해롭다면 나처럼 완도 소안도에 가서 한 번에 전복을 50마리씩 먹는 자는 폴 쎄 방사능에 피폭되어 눈이 멀든지 뼈가 녹아 앉은뱅이가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정윤처럼 방사능 위험을 과다하게 부풀려 안전에 관한 용역을 따내고 ‘개 뼈다구’ 같은 용역보고서를 써 돈을 많이 벌면서 전복 같은 다량의 방사능 함유 수산물을 배 터지게 먹고 사는 자는 그럴 것입니다. “신 박사님! 신 박사님!( 참고로 나는 박사학위를 소유한 자가 아니다. 4학기를 마치고 중간에 학비가 없어 그만 뒀다) 후쿠시마 삼중수소는 인공 방사성물질이고, 전복의 폴로늄은 자연 방사성 물질이니 다르다고 탈핵 교주 김익중이가 가르쳐줬어라, 김익중이 강의도 많이 해서 돈도 많이 벌었다오. 또 신 박사님과 고향이 같은 광주 출신 아니요. 어린 학생들하고 겁 많은 주부들에게 잘 먹히고 침 튀겨 가면서 강의도 열심히 하요.” “뚱딴지 같은 소리 그만 좀하고 정신 좀 차리시오. 전혀 그렇지 않소, 폴로늄은 실제로는 암살에 사용된 독성물질이지만 전복 등 해산물이나 육지에서 나는 육류 등 우리 먹거리 대부분에 들어 있는 것과 똑 같소. 흙 설탕과 백설탕이 색깔만 다르지 어떻게 성분이 다르겠소. 김익중이하고 계나 묻으시오. 전복에 있는 것과 같이 극미량이라면, 피폭이 극미량이고, 그것은 남자의 거시기에만 좋을 뿐, 건강에 영향은 전혀 없는 것이오. 우리는 바다와 강에서 수많은 먹거리를 채취하면서, 이미 후쿠시마 원전 방류수의 영향이 없음을 이미 경험했소. 일본이 우리나라에 방류에 대한 양해를 먼저 구하고, 우리는 방류수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오.”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가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들입니다. 사실 온 세상에는 방사능 천지입니다. 사람들이 맛있어 하고 몸에 좋은 과일이나 고기에는 방사능 물질이 충분히 들어 있습니다. 탈핵 강의하고 다니며 돈을 많이 버는 김익중이가 세슘 방사능 물질이 들어있다고 300년간 먹지 말라는 후쿠시마산 고등어 2마리에는 오늘 아침 내가 먹은 바나나 1개에 들어있는 방사능 물질 세슘137의 양이 똑같이 들어 있습니다. 월성 1호기 전체에서 일 년간 나오는 방사능 삼중수소 양은 멸치 한 마리 먹는 것과 똑같은 삼중수소 양입니다. 후쿠시마 오염 처리 방류수 전체가 일 년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일 년에 전복 한 마리에 들어있는 방사능 폴로늄을 먹는 것과 똑같은 효과입니다. 폴로늄을 한계치 이상 섭취하면 독성이 있지만, 미량은 보약입니다. 폴로늄이 독성을 가지려면 전복을 2만개 이상 배가 터지도록 일시에 먹으면 됩니다. 생소고기, 장어,, 전복 표고버섯, 굴 등 남자의 거시기에 좋은 음식은 다 일관성 있게, 방사능 물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방사능이 무섭다고 떠들어대는 자들은 거의 다 남자의 거시기에 좋다고 하면 남의 것까지 뺏어 먹는 자들입니다. 자연이고 인공이니까 다르다구요? 백설탕과 흑설탕의 성분이 다릅니까? 영양 효과가 다릅니까? 방사능 방사선에 대한 공포는 원자력이 없어져야 돈을 더 많이 오래 벌 수 있는 석유나 가스업자들이 탈핵 무당들을 세뇌시키거나 지원하여 창조하고 가공한 공포이지(generating bias by marketing strategy), 방사능 물질이 인간의 건강에 실제로 해를 끼쳐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기분‧정서와 사실‧과학이 다른 이 문제를 실제로 해결할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 밖에는 없습니다. 언론에 나와서 떠들고 있는 우리나라 탈핵 무당들은 정말 可觀입니다. 순진무구한 겁이 많은 국민들은 상대로 사기 공갈포를 시도 때도 없이 날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에는 단 하나의 사실도 진실도 없습니다. 모르고 착각해서 그런 것인지, 마누라가 유명해지고 빨리 돈 벌어오라고 족치니까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언론계에 종사하는 이들도 소문과 풍문에만 반응하고, 감으로 세상을 살 뿐 공부라고는 안 하고 책이라고는 안 읽습니다. 마블 쇼나 김현정 쇼 등에서는 엉터리 패널을 모셔놓고 장단을 맞추고 추임새를 넣습니다. 참 슬픈 코미디입니다. 마음이 너무나 순진한 국민들은 사이비 과학자인 탈핵 무당들의 사기 거짓 발언은 찰떡처럼 믿고, 진실과 사실과 과학만을 말하는 사람의 말은 믿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퇴양난에 빠집니다. 비생산적인 소문의 헛다리 잡고 삐약 삐약하다 다 죽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공영방송 3사 KBS, MBC, SBS가 공동 주관하는 ‘후쿠시마 방류수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끝장 토론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후쿠시마 방류수 문제는 광우병 소동보다 훨씬 휘발성이 크고 국정의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실과 과학파’는 방류 걱정이 기우라는 측에서는 정범진, 정용훈, 주한규 맹장들입니다. 3J를 토론자로 출전시키겠습니다. 방류 결사 반대쪽에서는 3명이 와도 괜찮고 4명이 와도 5명이 와도 괜찮습니다. 서균열, 이정윤, 박종운, 김익중 등 TV 나오고 싶어 환장하는 족속들이 나와 줬으면 좋겠고, 청담동에 가서 스트레이트 파마 고대하기를 좋아하는 양이원영이가 나와도 좋겠습니다. 농담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윤 대통령에게는 TV 토론을 조기에 추진하는 것이 국정 수행 동력 확보의 급소입니다. TV 3社, 그리고 정치권도 마땅히 적극 협조해야 합니다. 국민들도 쌍심지를 켜고 누가 맞는 말을,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를 밤이 새도록 지켜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8할 이상이 믿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 처리 수 방류반대는 틀린 것입니다. 전 세계가 문제가 없다는데, 한국과 일본 수산인 일부만 極烈 반대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誤認이고 誤解입니다. 바다와 대기는 흐르면 거의 다 천천히 정화됩니다. 천지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하나님이 내린 축복입니다. 창조주는 위대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와 방송국 관계자에게 간절히 건의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방류 무해파 주장 3인 정범진, 정용훈, 주한규 3J와, 방류 결사 반대파 3인 서균열, 이정윤, 양이원영 3인간에, 방송 3사 주관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밤샘 끝장 토론>을 실시하시기를 바랍니다. 과학의 시대에 서로 코끼리 다리 만지면서 우김질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 잘못도 죄도 없는 수산업자들의 권익은 누가 보호할 것입니까? 후쿠시마 오염 방류수 처리 문제는 광우병 소동과 똑 같습니다. 나도 좀 배우게 일체의 선입견을 배제하고 방송 3사에서 주관하여 공정 공평하게 공개 토론을 실시하시길 바랍니다. 언론이 하는 역할이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똑똑하고 현명한 듯하지만,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제발 겸허해집시다. 요즘 ‘오염수냐? 오염 처리수냐?’라는 단어 선택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말 장난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빗물을 모아서 식수로 사용했습니다. 냇물을 그대로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산업화로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 들기 시작하면서 생명과 농업에 필수적인 물을 모아다가 각 가정으로 연결하는 상수도가 생겼습니다. 가정마다 들어오는 식수원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빗물을 모은 것이 아닙니까? 상수도에 여과 시설을 설치하여 소독과 살균된 물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물을 뭐라고 합니까? ‘빗물 처리수’라고 부릅니까? 아니면 ‘냇물 처리수’라고 부릅니까? 수돗물이라고 부릅니까? 그냥 수돗물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수돗물보다 생수를 구입해서 마십니다. 이 생수 역시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공장에서 소독과 살균 처리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공장에서 출하되는 이 물을 ‘처리수’라고 부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생수’라고 부릅니다. 문재앙 정부 때에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일곱 차례의 전문가 간담회를 진행한 결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결론(2020년 10월 15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니까 해양 오염으로 선동질이나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난리입니까? ‘오염수’니, ‘오염 처리수니’라고 하는 것도, 저들의 뻔한 수작이 아닙니까?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대책에 관해, 공영방송 3社 주관 ‘끝장 토론’을 즉각 실시하시길 바랍니다.
    • 주요뉴스
    2023-05-17
  • 스승의 날! 붉게 물드는 이 나라 교육의 미래는?
    스승의 날! 붉게 물드는 이 나라 교육의 미래는?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스승의 은혜를 되새기는 뜻으로 만든 날이 ‘스승의 날’입니다. 교권을 존중히 여기고. 스승을 공경하도록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며, 교사의 사기 진작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지정된 날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교육을 말하면서 ‘선생은 있지만 스승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이란 뜻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진정한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날은 참 스승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현실입니다.그런데 이 스승이란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요?스승의 어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무당’을 나타내는 ‘무격(巫覡)’에서 유래한다는 설과, ‘중’을 나타내는 ‘사승’에서 유래한다는 설입니다.여기에서 ‘巫’는 곧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두 사람을 말하는데, 쌍둥이 산 즉 쌍산입니다. 옛날 무당을 나타내는 말로 ‘무격(巫覡)’이란 말이 있습니다. ‘무(巫)’는 ‘여자무당’을 말하고, ‘격(覡)’은 ‘남자 무당’을 말합니다. 그런데 옛 문헌을 보면 ‘무(巫)’를 ‘스승 무’라 하고, ‘격(覡)’을 ‘화랑이 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국 ‘스승’이란 ‘여자 무당’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자 무당’은 고대사회의 모계사회에서 대단한 지위를 지니고 있었으며, ‘격(覡)’이라는 말의 ‘화랑이 격’은 ‘남자 무당’을 뜻하는 것으로, ‘화랑’은 신라 시대의 ‘화랑’과 같은 것입니다.스승은 원래 중을 높여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15세기의 문헌 〈월인석보〉에는 ‘스승’이 나오는데, ‘법(法)치닌 스승이오 ㅣ호닌 제자(弟子)이라’고 하였습니다.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는 불교의 ‘중’을 ‘스승(師)’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옛날에는 ‘중’을 존경해서 부를 때 ‘사승(師僧)’ 혹은 ‘사(師)님’이라는 호칭을 썼던 것입니다.〈동언교략(東言巧略)〉에 보면 사(師)의 중국 발음이 ‘스’란 점으로 미루어 ‘사승(師承)’이 ‘스승’의 어원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승’이 변해서 ‘스승’이 되었으며, ‘사(師)님’이 변해서 ‘스님’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승’이라는 말은 ‘중’을 높여 부르는 ‘사승(師僧)’에서 온 말입니다.이율곡의 〈학교모범(學校模範)〉에는 ‘스승을 쳐다볼 때 목 위에서 봐서 안 되고, 선생 앞에서는 개를 꾸짖어서도 안 되고, 웃는 일이 있더라도 이빨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스승과 겸상할 때는 7푼만 먹고 배부르게 먹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성균관 ‘학칙(學則)’에는 “길에서 스승을 만나거든 두 손을 머리 위로 쳐들고 길 왼쪽에 서 있어야 하고, 말을 타고 가거든 몸을 엎드려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려 때에는 ‘선생’이란 말은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 대한 존칭이었습니다. 조선조 중엽 때 문헌인 〈해동잡록(海東雜錄)〉에 보면 당시 선비들이 술 마시며 글 짓는 문주회(文酒會)에서 벼슬이 높거나 낮건 간에 서로 ‘선생’이라 호칭을 하였습니다. ‘비록 벼슬이 높은 귀인일지라도 과거에 급제하지 않으면 선생이라 부르지 않고 그저 대인이라 부르는 것이 고려 때부터의 법도’라고 기록하였습니다.아무튼 선생을 높이기 위하여 만든 ‘스승의 날’이 현재는 5월 15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스승의 날’ 유래는 1958년 충남 강경 여자중고등학교의 청소년적십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윤석란을 비롯한 단원들은 병환 중에 계신 선생님 위문과 퇴직하신 스승님의 위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63년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처음으로 5월 26일을 ‘은사의 날’로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1965년에는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신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다시 정하고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전국 온 백성에 가르침을 주어 존경받는 것처럼, 스승이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시대가 왔으면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불확실성 시대에는 인류와 겨레의 참 스승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1807년 독일은 나폴레옹 군대에 패했습니다. 국민들은 절망 속에서 타락해 갔고, 사회에는 이기심이 충만했습니다. 도덕과 정의가 실종된 사회가 바로 당시의 독일 사회였습니다. 이때 한 사람의 지식인이 나타나 「독일 국민에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피를 토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철학자 피히테(Johann Fichte, 1762~1814)였습니다. “독일이 왜 패하였는가? 군대가 약해서가 아니다. 패한 것은 독일인 모두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국가론을 길러야 한다.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실천하자”라며, 그렇게 그는 밤낮을 안 가리고 뛰어 다니며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후 64년이 지난 1871년 독일 국민은 프랑스를 점령하고 돌아오는 영웅 몰트케(Helmuth Karl B.vo Moltke) 원수를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이때 과묵한 사상가로 알려진 몰트케는 “독일의 승리는 나와 군인들의 공이 아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공’이다. 이 모든 영광을 그들에게 돌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곁엔 이런 스승도 있습니다. 한 고교 교사가 현해탄을 오가며 ‘구출 작전’을 편 끝에 30대 남자의 꾐에 속아 일본 유흥업소에 넘겨진 여 제자를 3개월만에 한국으로 되돌아오게 했습니다. 방학기간이던 지난 1월 하순, 서울 A여고 L교사는 졸업을 앞두고 있는 제자인 K양의 언니로부터 ‘2개월 전 일본으로 건너간 동생이 도쿄의 유흥업소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언니는 동생이 여권을 빼앗겼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 올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왔다며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L 교사는 ‘무슨 방법을 쓰든 1월 30일 일본 도쿄 나리타공항 국제선 입국장으로 나오라고 전해달라’고 언니에게 말했습니다. 간신히 공항에서 스승과 제자가 만났지만 함께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리하여 L 교사는 주일한국대사관에 연락, 제자를 공항 근처 보호소에 대기토록 조치한 뒤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 후 1개월 동안 수소문 끝에 3월 초순 마침내 스승과 제자는 한국 김포공항에서 감격어린 재회를 했다. 수렁에 빠질 뻔한 제자를 구해낸 L 교사는 ‘제자가 상처를 입어서는 안된다’며 인터뷰는 물론 사진 촬영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우리의 학교와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제자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던 시대에서 이제는 제자가 교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사와 학생 모두의 문제입니다. 위의 예화를 통해 참 교사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자를 위해서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끝가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소수의 교사들로 인해 어두워졌던 교단을 밝혀주는 촉매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자를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는 이 교사야말로 자신의 본분을 다한 스승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 학생들의 학력 저하로 교육부와 교육청이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81조 3천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며, 학생 수는 계속 감소해 학생 1인당 교부금 총액도 1,528만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광복 후 77년, 우리는 교육의 힘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습니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합니다. 이 말은 올바른 교육이 국가발전을 위한 기초가 된다는 뜻입니다. 교육개혁은 기존의 교육체제를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며, 시대적•사회적 요청과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교육 운영의 모든 국면을 변혁하는 교육정책입니다. 1980년 7월 30일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으로 교육개혁 조치를 단행하게 되었으며, 이를 ‘7•30교육개혁’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교육은 이미 경제, 교육 분야 전문가, 미래학자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역대 대통령은 교육개혁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교육에 대한 우려는 이미 오래전에 널리 알려진 것처럼, 세계의 석학이자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1928-2016)는 “한국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교육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7시간씩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예일대 경제학 교수이자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자문 위원이었던 배리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 박사는 “한국의 교육이 시험을 위한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지한파 경제학자이면서 UC버클리 한국학 연구소의 전임교수이기에 더욱 경종을 울립니다. 수많은 미래학자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한국의 교육은 이대로는 안된다. 교육개혁이 답이다.”는 겁니다. 천재과학자 아인슈타인도 “어떤 문제도 그 문제를 유발한 제도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황승연 경희대 교수는 “독일의 대학에는 입학식이 없다. 졸업식도 없다. 직접적으로 공부와 관련없는 행사는 원칙적으로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지금의 교육은 전부 좋은 대학, 취직시험을 위한 것으로 제가 60년 전에 받았던 교육보다 질이 떨어진다. 교육을 사람의 인성, 인품을 가르는 방향으로 개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교육의 힘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백년대계는 인간 교사와 AI 개인교사와 최적의 협업을 통해 수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AI 교육혁명을 리드하여 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데이터•테크놀로지•인문적 소양과 창의성과 인성을 키워주는 맞춤교육을 해야 합니다. 교육개혁은 학교를 넘어 일터를 바꾸고, 사회 전체를 바꾸어야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문재앙 정부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교육 정책을 하루아침에 바꾸면서 교육 현장에 대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예산 집행권을 앞세워 대학 위에 군림하면서 혁신은 외면했습니다. 작년 6월의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 독주’가 막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진보 세력이 장악해온 교육 현장이 바뀌어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제대로된 교육 개혁은 국민의 뜻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 독일의 성공적 국가의 교육정책을 하나의 예로 말씀드린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가 ‘전교조’에 의해 붉게 물들어 버린 이 나라의 미래가 심히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저 붉은 물줄기를 틀어서 국부이신 이승만 대통령의 4대 건국 이념으로 돌아 가서, 이 나라가 선진 한국으로 우뚝 서는데 함께 뭉쳐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미래와 희망은 기초 교육에 있습니다. 교육의 기초가 잘 되어야 이 나라 앞날에 희망이 있습니다. 선진한국의 기초가 되는 교육을 바로 세웁시다. 이 땅 위에 수고하는 교사들이여! 최선을 다하는 가르침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결실을 거둡니다. 오늘도 스승의 보람을 느끼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 주요뉴스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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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파들이 말하는 민주화 유공자들이란?
    좌파들이 말하는 민주화 유공자들이란? 지난 번에도 말한 것처럼 다시 한번 더 말씀 드립니다. 북조선 사전에는 사람이란 ‘노동자, 농민 등 무산 계급’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적이 누구냐? ‘미국, 자본가, 남한 정부’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주체 사상을 배우고 널리 전파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답게 사는 것을 미국, 자본가, 남한 파쇼 정부가 방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3대 적을 무찌르는 투쟁이 곧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사파 강령에 있는 말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좋은 정치적 방향이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 실체는 다릅니다. 이들의 민주화 운동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북조선의 인민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이었습니다. ‘민주화 인사’라는 인물 치고 간첩 아니며, 주사파 아닌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들은 이 땅에서 민주화의 가면을 쓰고 역적 행위를 자행해 온 반역 세력들입니다. 1978년부터 1979년까지 강남 일대 부유층 집에 강도가 드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습니다. 범인을 계속 못 잡고 있었는데, 1979년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 집에 강도가 들어 일가를 흉기로 위협해서 금품을 빼앗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최 회장은 중동에서 건설업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최회장 집의 경비원이 수차례 흉기에 찔려서 중상을 입었습니다. 하여간 이 강도를 고문 기술자로 유명한 이근안이 잡았는데, 강도 짓으로 빼앗은 돈을 가지고 남조선 통일을 위한 혁명 군자금으로 사용하려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잡은 강도 중 한 명이 현재 더불어 민주당의 이학영 의원입니다. 5년 복역했는데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민투위 강도 사건의 강도 전과자들을 민주화 유공자로 만들어 줬습니다. 그 이후 이학영은 더불당에서 국회의원까지 하고 있습니다. 달러 벌러 열사의 땅 중동에 가서 일하고 있는 崔 회장 집을 강도 짓을 한 것이 민주화운동이고, 경비원 칼로 찔러서 중태로 만든 강도들을 민주화운동의 유공자라니!! 이것이 좌파들이 말하는 민주화 유공자들입니다. 오는 9일 국회 소위원회에서 민주 유공자법에 대한 첫 심의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국회 소위원회에서 통과가 되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회부되어 가결이 되어야 시행될 수 있습니다.한편, 민주유공자법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망 또는 행방불명, 상이를 입은 사람을 민주유공자로 예우하고, 그 유족 또는 가족에 대해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법으로, 지난 2019년 12월 기준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136명, 부상당한 사람이 693명 등 총 829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민주당에서 셀프로 민주화 유공자 혜택 법안을 만들어 광주 사태때 광주에 있지도 않았는데, 민주화 유공자로 서로가 서로를 인증해 연금에 아파트 분양 특혜, 민주화 유공자 자녀 대학 특례 입학까지 주고 있습니다. 현대판 음서제 ‘민주화 유공자법’을 재추진 하고 있습니다. 더불당이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혜택을 주는 ‘민주화유공자법’ 제정을 추진하고 나서면서 다시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21년에도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보궐선거를 앞두고 철회한 적이 있었습니다. 작년에도 민주화유공자법 제정 재추진 요구에는 더불당과 정의당 의원 등 무소속까지 포함해 175명이 입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여당은 청년들에게 박탈감만 주는 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3년 전 더불당 우원식 의원이 “이한열, 박종철, 전태일을 비롯해서 머리 깎으신 분들, 그 이외에 800명 정도 되는 열사들을 유공자로 만들자⋯”라고 하면서 발의한 법안에 1964년 이후 민주화 운동을하다 숨지거나 다친 800여명의 배우자∙자녀 등에게 교육과 취업, 의료 혜택을 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민주화유공자법은 지난 15대 국회때부터 발의돼 왔지만 ‘운동권 특혜’ 논란에 번번이 무산되었고, 재작년에는 설훈 의원 등 70여명이 비슷한 법안을 또 발의했다가 4∙7보궐선거를 앞두고 ‘운동권 셀프 특혜법’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철회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청년 박탈감 선사법”이라며, “입법을 중단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광주사태 실제 희생자에 대한 민주화 유공자 연금은 기존대로 줘도 상관 없지만 조폭 두목이 광주 희생자 협회 회장, 광주사태 때 서울에 있었던 이해찬, 이런 경우에는 자격을 박탈해야 합니다. 심사를 통해 저런 자들을 걸러 내고 거기서 나온 재원으로 실제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 경찰, 소방관 유족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공산주의에 맞서는 것이며,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시도 때도 없이 선거에 몰입합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선거는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더 웃기는 것은 ‘민주화’라는 괴물입니다. 이것은 만능이 되었습니다. 강도가 민주화 유공자가 되고, 폭력이 민주화 운동이 되어 가담자는 각종 혜택을 누립니다. 배 타고 놀러 가다가 죽은 자들도 유공자 자격 달라고 합니다.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면 그것도 민주운동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나라의 등골을 빼 먹자는 찰나(刹那)적 이기주의의 본질입니다. 이것을 속된 말로 하면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가 됩니다. 이런 사회는 짐승들이 사는 “정글 사회”인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살려면 사람이 짐승으로 변해야 합니다. 즉 인류사회는 문을 닫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평화로운 국가가 되려면 좌익사상, 민주화 운동, 촛불 정신은 반드시 정리되어야 합니다.
    • 주요뉴스
    2023-03-03
  • 민주당엔 독재의 살벌한 광풍이 불고 있다!
    이재명 체포동의안 표결 지난 2월 27일 벌어진 국회 이재명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에 총 297명의 국회의원이 참석했습니다. 개표 결과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가 나왔습니다. 현재 169석의 더불당으로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작게 봐도 30여표의 내부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압도적 부결을 예상했던 더불당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무소속 양향자 의원, 이용수 할머니로부터 ‘할머니들 팔아 먹기’ 항의를 받은 윤미향 의원까지 찾아가 체포동의안 부결을 유도했고, 친문계 의원들을 찾아가 같은 입장을 드러내며 친근감을 드러내며 민주당 지도부는 압도적 표결 결과를 언론 등 외부에 흘려 보내며 자신감을 드러 냈었습니다. 그러나 체포 결의안 투표를 마치고 개표에 들어가면서 결과 발표가 조금 늦어지더니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일방적 부결을 예측했던 상황에서 여∙야당 검표 요원들이 국회의장 앞으로 모여서 뭔가 합의를 해야 할 상황이 나타난 것처럼 보이더니 시간이 점점 지나가면서 급기야 2시간 가까이 개표가 연장되었습니다. 이유는 두 개의 표가 가∙부 여부를 놓고 양쪽의 의견이 갈린 것입니다. 마침내 국회의장이 1표 무효, 1표 기권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개표 전체 결과 발표에서 체포동의안 찬성에 139표가 나온 것입니다. 국민의힘 의원 115명보다 24명이 더 찬성표가 나온 것입니다. 이내 더불당 쪽에서 놀란 듯 침묵이 흘러 나왔습니다. 사실 이재명이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에 더불당을 공산당식으로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무조건 나와서 부결시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아무리 머저리 등신들이 모인 당이라고 하더라도 국회의원입니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전부 입법기관입니다. 그런 의원들을 무조건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원 몽땅 다 나왔습니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는 찬성 139표이며, 반대 138표보다 1표 더 나왔습니다. 체포동의안은 재석의원 과반 참석에 참석의원 과반 찬성으로 가결되는데, 이날 찬성표가 반을 넘지 못했으므로 부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대표보다 찬성표가 더 많은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면서 더불당 내부에서조차 이재명을 위한 ‘방탄 정국’을 부담스러워 했다는 것이 확인된 셈입니다. 더불당은 몇 명이나 반란표를 던졌을까요? 18표일까요? 31표일까요? 38표일까요? 40표 이상일까요? 부결표를 던지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민주당으로 분류되는 무소속 의원 6석까지 고려하면 야권에서만 40표 가까운 이탈표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일찍이 찬성표를 던질 것을 예고한 국민의힘 114석, 정의당 6석, 시대전환 1석 등 121명이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고 가정하면 이날 나온 찬성표 139표 가운데 18표는 야권에서 나왔다는 말이 됩니다. 무효나 기권을 넘어 더불당 안에서도 이재명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의원이 상당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실제 이날 찬성표가 10표만 더 나왔다면 절반이 넘어 이재명 체포동의안이 가결될 수 있었습니다. 표결에서 기권 9표와 무효 11표로 빠진 더불당의 이탈표가 찬성으로 돌아 섰다면 가결이 충분히 현실화 될 수 있었습니다. 친명계 더불당 의원은 표결 결과에 대해 “굉장히 큰 충격”이라며, “이렇게 호소했는데도 여당과 보조를 맞추는 사람들과 갈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분당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 사람들(이탈표)이 나가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이 넘이 표결 전까지 당 의원 개개인에게 전화하고 편지 쓰고 부결시켜 달라고 별짓을 다 했습니다. 의원들은 그러겠다고 말했으나 표결이 끝나고 의원들이 이재명에게 “내가 부결시켜준다니까 진짜로 알더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재명은 두 가지를 우습게 본 것입니다. 첫째는, 국회의원을 우습게 본 것입니다. 겨우 성남시장하고 도지사만 했던 이재명이 당과 정치에 대해서 무엇을 알까요? 정치에 있어서 국회의원들은 하늘 같은 선배들입니다. 시장할 때야 조폭들을 옆에 두고 온갖 짓을 다 해도 넘어 갔지만 대표랍시고 당에 들어와서 조폭식으로 될 것 같을까요? 또 하나는 사람을 우습게 본 것입니다. 쥐새끼처럼 혼자 살아 보겠다고 거대 야당 뒤에 숨어서 끝까지 바둥대고 있습니다. 이 쥐새끼 한 넘 방탄하느라고 국회를 365일 내내 열었습니다. 뭔 넘의 일을 한다고 3.1절 날도 문을 열었습니다. 전기비 등 모든 운영비 들어가는 게 얼마인데 공휴일 일 했다고 휴일근무수당까지 챙겨 먹는 넘들입니다. 이러고도 방탄 국회 아니라고 빡빡 우깁니다. 국민을 우습게 본 것입니다. 무참히 깨졌는데도 반성은커녕 이재명과 개딸들은 반란표 찾는다고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습니다. 공산당입니다. 눈앞에 이익만 보고 한 치 앞도 못 보는 머저리 등신들은 꼭 죽어야 죽은 줄 아는 넘들입니다. 이재명의 용서받지 못할 큰 죄는 사람을 우습게 본 죄입니다. 이 넘은 “부결시켜준다니까 진짜로 부결시켜주는 줄 알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민주당에 가장 위협적인 것은 대장동 사건만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압도적인 국회 의석도 큰 위협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현재 169석으로 국회에서 못할 일이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를 반신불수로 만든 것이 그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힘은 절제를 잃으면 그 크기만큼의 부작용을 부릅니다. 지금 더불당에서 독재의 살벌한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땅에서 북조선과 똑같은 살벌한 감시와 무차별 보복의 광풍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민주당 내부의 반당 분자 색출 광풍입니다. 민주당은 지금 지난 27일 국회에서 있있던 이재명 체포 동의안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자당 의원을 색출하기 위해 온갖 살벌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터넷 까페 등에는 반란표를 던진 민주당내 비명계 의원의 명단과 전화번호까지 떠돌아 문자 폭탄이 쏟아진다고 합니다. 이재명의 개딸들은 ‘수박(민주당내 보수성향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졌느냐?", "양심 고백하고 자수하라"는 등의 문자폭탄을 퍼붓고 있습니다. 심지어 친명계 의원들까지 비명계 의원들을 향해 실명까지 거론하며 “동의안에 투표를 했는지 밝히라?”고 공개적인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헌법이 보장한 투표의 비밀을 공개하라는 요구입니다. 북조선의 무시무시한 독재의 광풍과 한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공산당이 제일 주장하는 것이 ‘사람이 먼저다’입니다. 그래서 인민이라 부르고는 사람을 개 잡듯이 잡는 넘들이 공산당 넘들입니다. 이런 광풍에 31명의 이탈표 중 일부 의원은 실명 고백까지 한 것으로 들립니다. 이게 민주국가의 정당이 맞습니까? 이재명의 무서운 독선적 야만성이 고스란히 표출된 반란 색출 광풍을 보며 이재명이 대통령이 됐다면 우리는 지금 어떨까를 상상하며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 이재명이 있는 곳은 찢어지거나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국회 체포동의안이 가까스로 부결된 것은 사실상 가결과 다름 없습니다. 체포되어 감방에 들어갈 처지에 반성하고 원인 분석해서 국민 앞에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한다는 짓이 반란자 색출한다며 아무 근거도 없는 반란자 명단을 작성해 유포하는 인권 및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발작 짓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가장 사익하고 가장 치졸한 이재명이 대표직을 버리기를 바란다는 것은 차라리 산에서 물고기 잡는 게 낫습니다. 이 넘은 감빵 속에 처박혀도 절대 내놓지 않을 넘입니다. 이 넘의 죄는 사약을 내려 먹이려 해도 이를 악다물고 악악대며 먹지 않을 넘입니다. 옆에서 입을 찢어 들어부어야만 하는 사내다운 면모는 하나도 없는 찌질한 넘일 뿐입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찢어지고 깨어지던 이재명의 말로는 내 알 바 아니지만 이제 우리에겐 오직 대통령과 당과 우파 온 애국민 모두가 단합하고 단결하는 것만이 그동안 저들이 겁 없이 저질러 온 온갖 만행을 심판하는 길입니다! 지난 대선의 국운과 정권 교체의 기적에 한없는 감사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을 뽑아 주신 국민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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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02
  • ■ 이재명의 실체
    ■ 이재명의 실체 “이재명 선거법 위반 수사가 전쟁”이라고 말하는 이재명의 무서운 실체를 알고 있습니까? 이재명 주위에는 간첩‧조폭‧주사파가 에워싸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공산혁명입니다. 조폭+동부연합+중부지역당+한총련+남총련+민노총+전교조+개딸=이재명 문재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종북 간첩 마피아 집단입니다. 한 마디로 이재명 집단은 종북 간첩 마피아 집단입니다. 이재명의 오른쪽에는 성남을 근거지로 하는 국제PJ파라는 조폭집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에는 종북 간첩집단인 중부지역당과 이석기의 경기동부그룹과 통진당, 한총련, 민노총이 있습니다. 사실상 이재명 집단은 조폭과 종북 간첩 집단의 혼성부대라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종북 마피아" 집단인 것입니다. 그 첫번째는 이재명이 성남시장 된 후, 시장실에 들러 신발을 신은 채, 책상 위에 발을 올리고 인증사진을 찍은 이태호와 함께하는 국제 피제이(PJ)파 조폭집단입니다. 또한 이재명은 지난번 광주에서 철거 재개발 비리를 저지르고, 광주 5.18 구속부상자회 회장의 감투를 쓰고 있는 광주 조폭의 두목 문흥식과도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또 다른 한편으로 종북 간첩집단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핵심에는 ‘중부지역당’이라는 간첩집단과 이석기의 경기동부그룹, 그리고 한총련이 이재명 진영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먼저, 지금 이재명 지근 거리에서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황인오’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황인오’는 1980년 사북사태 등에 개입했고, ‘중부지역당’이라는 간첩조직의 총책이었습니다. 중부지역당 검거 소식에 의하면, 그는 북한 노동당에게서 전달받은 권총을 보여주며, 조직원들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이번 대장동 비리에서 유동규와 함께 ‘화천대유’ 등에 이권을 넘겨주고 인허가 등에 깊숙히 개입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 이재명의 복심 ‘정진상’이 이석기의 경기 동부그룹 출신입니다. ‘정진상’은 이석기 그룹이었던 김미희 진영에 있다가, 김미희+이재명의 결합이 성사되자 이재명의 심복이 된 인물이며, 이후 성남시장 인수위에 참여한 인물입니다. 정진상이 이재명과 경기동부연합을 연결시키는 핵심고리로 짐작되며, 이번 청주 활동가 간첩단 사건과 연결된 000 등을 이재명 쪽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지난 번 윤미향의 정대협 안성 주택을 거래하게 해주었고, 이재명 측근 7인방 중의 하나이면서 이번에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안성의 이규민도 동국대 중심의 이적단체인 반미구국 전선에서 활동했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외 한총련 1기 의장인 김재용이 이재명의 정책을 담당하고 있고, 전남대 학생회장 출신이면서 한총련 의장이었던 강위원이 남총련을 연결시키는 고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번 전남대에서 일반인을 경찰 프락치로 오인해 고문해 죽였던 정의찬을 끌어 들인 것도 김재용이었으며, 강위원으로 연결되는 고리에서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현 민노총 위원장 양경수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 민노총 위원장인 양경수는 경기동부에 있는 외국어대 학생운동 출신입니다. 그는 귀족화된 민노총을 장악하기 위해 통진당과 한총련을 중심으로 택배노조, 건설노조, 편의점 노조 등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고 장악한 뒤, 민노총을 장악해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중부지역당, 이석기의 경기동부그룹과 통진당, 한총련, 그리고 민노총 등 간첩 종북 집단이 이재명 진영의 핵심그룹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들 조폭 집단과 종북 간첩집단이 성남시를 장악한 뒤, 조직적인 대선 자금 마련을 위해 대장동 게이트를 설계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동생(이재명)의 안위를 걱정한 형 이재선이 "정진상, 유동규 등과 관계를 끊어라"라고 충고하는 것을 외면했으며, 형 이재선과 김사랑 등이 계속 비판을 하자, 강제로 납치해 정신병원에 감금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이재명이 "형이 인사청탁(정진상, 유동규 등과 관계를 끊어라)을 해서 들어주지 않자, 형이 어머니를 폭행하는 등 만행을 한 것"이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것을 보면, 이재명이 얼마나 이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피를 나누고 이재명의 뒷바라지 한 형 이재선도, 이들과 이재명의 관계를 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형 ‘이재선’마저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렇듯 이재명 집단은 성남 국제 PJ파라는 조폭 집단과 중부지역당과 이석기의 경기동부그룹과 통진당이라는 간첩집단과 한총련 남총련 민노총이라는 이적 집단이 한 덩어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조폭 마피아+ 종북 간첩집단"이 바로 이재명 집단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재명 집단을 "종북 마피아 집단"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자유 대한의 국민 여러분! 오늘은 3∙1절 104주기입니다. 일제시대의 우리 선조들은 이 땅을 지키기 위하여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속에서도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은 공산주의와의 전쟁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70여년이 지나면서 다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동조하는 세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대한민국이 적화통일되어, 우리 모두 살인마 김정은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적화통일을 지향(地響)하는 종북 좌파 이재명을 왜 그토록 지지하십니까?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대한민국은 적화통일이 되어 지도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기적적인 간섭과 은혜로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이번에 영장이 청구된 대장동과 위례 개발 및 성남 FC 후원금 사건은 민주당의 정당 활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개인 범죄 혐의에 관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민주당이 집권했을 당시 문재인 정부 시절에 수사가 시작된 ‘이재명 성남시장’을 둘러싼 사건입니다. 1년 반 가까이 수사한 검찰이 전형적인 ‘지역 토착 비리 혐의’로 결론을 내리고 사법적 판단을 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검찰도 이 대표가 아니라 ‘이 전 시장’으로 표기할 정도로 개인 비리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이 거짓말 하는 친구에게 “너도 이재명 닮았나?”라고 한답니다. 헌정 사상 제일 무서운 사람이 이재명입니다. 이재명 하나가 온 나라를 병들게 하고, 개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루 속히 정신 차려야 합니다.
    • 주요뉴스
    2023-03-01
  • 독립 투사「이규채 연보」의 ‘감정가 0원’
    독립 투사 「이규채 연보」의 ‘감정가 0원’ 예전에 ‘KBS TV 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세월 속에 묻혀 있던 진품을 발굴해 전문 감정위원의 시선으로 감정가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창고 안에 방치되어 굴러 다니던 족자가 대단한 보물로 밝혀지기도 하고, 집안 대대로 내려온 도자기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출품자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지난 2019년 8월 11일 방송에는 1944년 전후에 작성된 회고록 한 점이 출품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 이규채(1890~1947)가 일제 말기 자필로 적은 일명 「이규채 연보(회고록)」가 소개되었습니다. 이규채 선생은 일제 강점기 만주지역 항일 투쟁의 핵심 인물로 꼽히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장원 의원과 한국독립군 참모장 등을 지냈습니다. 회고록 작성 당시 상황이 열악했는지 제대로 원고지가 아니라 세금계산서 같은 용지에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일기처럼 적혀 있었습니다. 얼핏 초라해 보이는 이 회고록을 출품한 사람은 회고록 주인의 증손자였습니다. 그는 희망 감정가로 10만 815원을 적어서 감정을 의뢰하였습니다. 감정가는 엄청난 속도로 전광판 숫자 최대한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감정가를 보는 순간, 많은 시청자들은 그 감정가에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결국 ‘0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0원'이라니⋯ 전광판에 나온 '0'이라는 글씨는 "회고록이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그 감정가를 보고 당황했습니다. 그때 김영복 서예∙고서 감정위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기록이 한 사람의 개인적인 기록이지만 나라를 잃은 많은 애국자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분들의 행적을 감히 돈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전문가들은 감정가를 추산할 수 없었습니다. 이 기록물을 통해 불꽃처럼 살아갔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알려주는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하기에 0원으로 책정했습니다.” 이 회고록은 일제 시대 만주 지역 항일 무장투쟁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이규채 선생님이 자필로 적은 일명 「이규채 연보」였습니다. 이규채 선생님의 증손자인 출품자 이상옥 씨가 회고록의 감정가를 100, 815원을 적어낸 이유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100과 광복절을 의미하는 8.15를 뜻하는 숫자로 조합한 것입니다. 이 회고록은 독립운동가들의 생애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동안 공개됐던 내용 중 가장 정확하다”는 평가할 정도로 높은 가치가 있어 보이며,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보다 독립운동에 대해 더 상세하게 적혀 있다고 했습니다. 1932년 9월 만주에서 활약하던 한국 독립군과 중국군의 합동 작전으로 항일의용군의 '쌍성보 전투'를 회고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만주를 침략한 일제에 양국이 공동으로 맞서 승리한 전투로 유명합니다. “임신년 1932년 하오에 드디어 쌍성의 성 아래에 도달하였는데 날이 이미 완전히 어두웠으며 달빛이 은은하게 비쳤다. 독립군들은 서쪽 문으로부터 돌격해 들어가 성을 격파하였다.” 하오. 12시부터 24시 “새벽녘이 되어서야 왼쪽 손에 총을 맞아 부상을 당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곁에 있던 사람이 먼저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1932년 9월 만주에서 일본군 만주군과 맞서 싸운 ‘쌍성보 전투’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의 재판기록도 기술되어 있습니다. “을해년 1935년 재판 중 또 묻기를 ‘자녀가 셋이나 있는데 그들 역시 생각하지 않는가?’라고 하기에 내가 답하기를 나에게 노모가 계시는데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런데 어찌 자녀를 염두에 두겠는가? 많은 말을 필요 없이 단지 우리 강산만 돌려 주면 그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계유년 1933년 중국에 도착해 남루한 옷을 걸치고 한 발을 끌며 반벙어리 행세를 했다. 돈을 구걸하며 신분을 숨겼다. 등 독립운동을 하면서 겪었던 위기 상황들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또한 독립운동가의 재판기록도 작성된 이 회고록에 그 어떤 전문가라도 가격을 매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이 연보의 마지막에는 독립운동과 투옥으로 헤어져 살아야 했던 가족들에 대한 미안하고 안타까운 심경을 표현한 구절이 있습니다. “아내가 우리 집안으로 시집온 지는 26년이 되었다. 나와 멀리 헤어져서 두 아들과 한 딸을 거느리고 살았다. 그런데 아내는 몸을 의탁할 친척이 없었고, 밖으로는 생활을 도와줄 만한 친구도 없었다. 초근목피로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것은 하루 이틀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런즉 다섯 살 난 아이가 수시로 밥을 달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빈 젖을 물려서 달랠 수 있었지만, 조금은 지각이 있는 여덟 살 난 아이가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것은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이 날 의뢰품을 들고 나온 이상옥 씨는 증조 할아버지와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도록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 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이 연보는 모두 54쪽으로 가석방된 후 포천의 동네 가게 ‘김수명 상점’에서 갱지와 습자지로 된 계산서를 빌려 적었습니다. ‘1890년 6월 7일 자시에 태어나다’로 시작하며, 가족들이 극심한 생활고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의 표현으로 끝납니다. 이규채 선생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3∙1운동 당시 창신서화연구회를 창설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한 후 상하이로 망명하였고, 1924년 임시정부 의정원이 되었습니다. 1930년에는 한국독립당 창설에 참여를 하여 참도장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당시 민족주의자였던 이규채 선생은 공산주의자와의 갈등으로 하얼빈 인근 영통산에 생매장을 당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출되기도 했습니다. 1932년 만주 쌍성보 전투에 참전했으며, 한국독립당 총무위원장이며, 한국독립군 참모장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1933년 베이징 한국독립당 회의에서 일제의 회유에 넘어갔다는 의심을 받고 사형 위기에 놓였으나 동료들의 변론으로 사형을 면했으며, 무기한 당권을 정지 당했습니다. 체포된 이후에는 일본 총영사에게 “2천만 민중의 마음을 귀순시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며, 2천만 민중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는 독립운동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였습니다. 1935년 9월 25일 중국 상해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가 되어 징역 10년형을 받고 경성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1940년 가출옥으로 석방이 된 뒤 고향인 경기도 포천에 은거했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반탁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를 하였으며, 1947년 3∙1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다음 날 급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가 되었으며, 경기도 포천시 가삼면 방축리에 행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독립된 주권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은 그 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피와 눈물로 싸우다 산화하신 그 분들의 노고를 재평가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0원짜리 보물을 남겨 주신 모든 독 립투사들에게 경의와 존경과 감사를 바칩니다. 지난 5년간 말도 안되는 종북 주사파 정권의 억지와 참담함 속에서 애국 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은 뼈저리게 체험하였습니다. 투쟁하는 과정에서 받았던 모멸감과 조리돌림을 생각하면 그때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에 우리가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집권당의 혼란과 방황을 보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도와 결단코 "자유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켜내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 주요뉴스
    2023-02-28
  • 3∙1 만세운동은 이승만에 의해서 일어 났다.
    3∙1 만세운동은 이승만에 의해서 일어 났다. 곧 삼일절 103주기입니다. 삼일절 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우리의 영원한 누나 유관순 열사입니다. 그런데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유언을 기억하십니까?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보통 한국인들은 3.1운동의 배경이 동경 2.8 만세 사건의 영향을 받아 손병희의 천도교와 이승훈을 비롯한 기독교, 그리고 불교 지도자들의 연합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시대적 상황과 여러 역사적 자료를 검토해보면 이 운동의 배경에는 거목 이승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말미,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1918년 미국 상∙하원 합동 국회 연두 교서 연설에서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했습니다. 이것은 윌슨 대통령이 프린스톤대 총장 재학시절부터 '약소민족 해방론'을 이승만으로부터 들어 왔던 열매로 추정됩니다. 이 연설을 들은 이승만은 1차대전이 끝나면 대한 독립의 기회가 올 것을 곧 바로 직감하고 본국 내에서 독립 열망에 대한 궐기의 필요성을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하와이에 다녀가는 동지들에게 역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귀향길에 찾아온 여운형의 동생 여운홍을 비롯, 오가던 동지들뿐 아니라 친분 있던 선교사들에게도 이 메세지를 조선 반도에 기회 있을 때마다 보냈습니다. 이 메세지는 귀국길에 일본 한인 유학생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동양인 최초 프린스톤대 정치학박사 이승만의 이러한 메세지는 동경 한인 YMCA 청년 중심으로 동경 2∙8 유학생 만세운동으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1918년 11월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 강화회의에서 약소민족 의제가 정해졌다는 소식을 접한 이승만은 '드디어 기회가 왔다'란 밀서와 밀령을 본국과 중국에 급히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촌 김성수의 사상과 일화」라는 책의 증언에 따르면 1918년 12월 어느 날 이승만이 보낸 밀사가 중앙학교 숙직실로 찾아 왔습니다. 그가 지니고 온 밀서의 내용은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론의 원칙이 정식으로 제출될 이번 강화회의를 이용하여 한민족의 노예 생활을 호소하고 자주권을 회복시켜야 한다. 미국에 있는 동지들도 이 구국운동을 추진하고 있으니 국내에서도 이에 호응해 주기 바란다.” 당시 이 메세지를 전달받은 사람은 김성수, 송진우, 현상윤 세 사람이었고, 이들 3인은 곧 바로 거국적인 항일독립운동 주도의 목표를 세웁니다. 이 세 사람은 즉시 천도교 손병희, 기독교 이승훈, 함태영 등과 합세하여 3.1 궐기대회를 기획, 추진합니다. 이 밀서에 대한 기록은 초대 상공부 장관을 역임한 임영신의 자서전 「나의 40년 투쟁사」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은 1949년 출간된 「우남 이승만 전」 가운데 ‘3∙1운동 전후’장에 나옵니다. 이에 의하면 이승만은 “여러 차례 서면과 밀사, 그리고 전신으로도 보냈다”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1918년 겨울, 안창호가 이끄는 국민회는 하와이에 있던 이승만을 파리강화회의에 미주 대표로 파송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이에 이승만은 1919년 초에 하와이에서 미 본토로 들어와 서재필과 장택상을 2월 5일 초에 뉴욕에서 만나 여러 회합 끝에 미국의 독립발상지 필라델피아에서 미주 동포들을 중심으로 '한인 대표자 회의'를 갖고 시가행진을 통해 독립궐기 행사를 가질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동의한 서재필과 함께 공동 서명한 전단지를 만들어 미국 동지들에게 발송했습니다. 이렇게 2월에 이승만 스스로 미국 동지들과 함께 기획한 이 행사는 본국에서 3∙1운동 일어난 다음 달 4월 14-16일, ‘제1차 한인대회’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회의 도중 상해임시정부 대표로 이승만이 선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대회 마지막 날 모인 대표자 전원은 회의 장소로부터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까지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 시가행진을 가지고 이승만이 영문으로 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외침으로 행사를 마쳤습니다. 회의록에 의하면, 임시 의장으로 이 대회 개회를 선언한 서재필은 자신이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제1차 한인대회 의장 자격이 없으니 공식 의장을 선출해 줄 것을 요청하자 이승만이 일어나 이것은 우리 모두 양해하는 바니 서재필이 정식 의장직을 맡아줄 것을 동의, 만장일치로 가결하므로서 서재필은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회의 도중 이승만이 상해 임시정부 대표자로 선출된 것을 알게 되자 서재필은 이승만을 민족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앞세우고 그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이승만은 본국에는 3∙1운동의 불꽃을 당겼고, 미국에서는 직접 독립궐기대회를 주관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 미루어보면 3∙1운동은 본국에서 스스로 일어난 운동이 아니라 미국 동포는 아니지만 미국에 살던 독립운동가 이승만의 혜안과 선각자의 역활로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산당으로부터 우리 민족을 지켜 자유민주공화국을 세웠던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일제 압제로 고통받고 있던 우리 민족을 독립운동을 통해 민족정신을 깨우친 위대한 선구자요 독립투사입니다. 특별히 미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이러한 위인이 미국 동포 아닌 참 미국 동포였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갖고 우리 후손들을 이승만에 버금가는 위대한 지도자들로 양성하는 일에 비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참고 : 이승만은 근 40년간 미국 거주자이면서 미국시민권 취득이 얼마든지 가능했었으나 본인이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타국의 시민권을 가질 수 없다 하여 우정 시민권을 획득하지 않았다.)이승만은 29세에 한성 감옥에서 「독립정신」 책을 저술한 사상가이며, 5년 반 만에 죠지 워싱톤 대학 학사, 하바드 대학 석사, 프린스톤 대학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천재였습니다.40여년간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끊임없이 투쟁했던 독립운동가였으며, 70% 이상이 사회∙공산주의 사상을 갖고 있던 반토막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건국 대통령입니다.6∙25 남침으로 적화위기에 몰린 나라를 유엔군을 통해 나라를 구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경제 대국 발전의 기틀을 세운 지도자입니다.4∙19 데모로 부정선거 책임을 자신이 걸머지고 ‘백성이 원한다면⋯’ 스스로 하야하여 물러선 진정한 민주주의 투사입니다.5∙16 군사정권이 귀국길을 막는다고 낙심하면서도 ‘조국을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맡기며 간절히 기도하며 하와이에서 외롭게 운명하신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입니다.바로 그 분이 올 해 103주년을 맞이하는 3.1절 뒤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계십니다.우리들 모두 독립선언서, 33인 민족대표, 유관순 등은 잘 알면서도 정작 알아야 할 3∙1 독립운동의 거대한 불화산의 단초가 되었던 이승만은 오늘도 역사의 뒤안길에 희미한 자국을 남기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Fact)과 진실은 영원히 감춰지지 않는다는 역사의 진리를 결코 간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이승만, 한성 감옥에서 자신을 만나주셨던 구원자 예수, “썩은 고목 나무에서 새싹이 나오려면⋯” 새 종교, 기독교로 사람이 교화되는 길만이 영국과 미국 같은 선진 문명국이 될 수 있다고 믿고 평생을 기독교 교육자로 헌신하여 YMCA, 하와이 한인 학교, 하와이 한인교회를 설립하여 민족을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경천애인” 가르침으로 이끌었던 이승만! 당신은 한국의 죤 낙스요,당신은 한국의 그룬트비 목사요,당신은 한국의 죠지 워싱톤이요,당신은 진정한 '민족 목회자' 이셨습니다. 위 내용의 많은 부분을 인보길의 「이승만 현대사, 위대한 3년 1952-1954」 서론에서 발췌한 이승만 건국 대통령 기념사업회 필라델피아 지회장 황준석 목사의 글을 소개한 것입니다. 1904년에 ‘이승만’이라는 청년이 미국에 공부하러 갔습니다. 전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하고 살펴보니까 기독교 나라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가 5만명 밖에 되지 않았으며, 어떤 기록에는 3천명 밖에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이승만은 기독교 입국론을 세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1시간씩 “주님! 이 땅에 100만명의 성도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하관식을 할 때에, 그의 관이 땅속으로 내려갈 때 기독교 인구가 108만명을 돌파했습니다. 그리고 70년만에 1,200만명의 성도가 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를 했지만 오늘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는 이승만의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세우지 않았다면 우리는 북조선의 김일성 수령님을 모시고 살아야 했습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5천만 국민들은 이승만의 혜택으로 지금까지 살아 온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 세운 나라입니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에도 없는 건국 설계도를 그렸습니다. 첫째는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둘째는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 경제, 셋째는 군사 안보적으로는 한미동맹, 넷째는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입국론이었습니다. 이것을 ‘대한민국의 4대 기둥’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설계도대로 박정희 대통령이 집을 지은 나라입니다. 이 두 분의 계획은 적중했고, 그 결과 우리는 세계 10대 나라에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 주요뉴스
    2023-02-27
  • 노란봉투법,"하얀종이 줄까? 빨간 종이 줄까?"
    하얀 종이 줄까? 빨간 종이 줄까? 어릴 때 많이 들었고, 친구들을 놀렸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지금처럼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라 옛날의 뒷간, 재래식 화장실(퍼세식 화장실)은 상당히 무서웠습니다. 특히 시골, 즉 외갓집의 뒷간은 더 무서웠습니다. 전구가 있었으면 몰라도 낮에도 어두침침하고 밤에는 더더욱 무서웠습니다. 양 다리를 발판 위에 올려 놓고 다리 사이로 변이 떨어지면 ‘풍덩’하고 똥물이 튀어 올라서 몸에 묻기도 하고, 모기나 구더기가 들끓었습니다. 또한 잘못하면 발이 걸려 넘어지거나 헛디뎌서 빠지는 일도 흔했습니다. 아래에 떨어지는 대신 넘어져 다치거나 똥범벅이 되어 구조되면 운이 좋은 것이고, 오물 속에서 질식해 죽는 사고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형들이나 어른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했었는데, 친구들 끼리도 골려 주기도 했습니다. 화장실에서 사고가 빈번했기 때문에 혼자 가지 말라는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한 밤 중에 혼자 뒷간에 가서 볼 일을 보고 뒤처리를 할 때쯤 아래에서 백골이 된 손이 올라 와서 “하얀 종이 줄까? 빨간 종이 줄까? 내가 닦아 줄까? 네가 닦을래?”라고 한다고 그래서 저녁 늦게는 볼 일을 보러 잘 안 가기도 했습니다. 오늘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노란봉투법’ 때문입니다. 노란 봉투법을 알고 있습니까? 민주당 등 야권이 추진 중인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가리킵니다. 명칭은 2014년 법원이 쌍용차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한 시민이 언론사에 4만 7,000원이 담긴 노란봉투를 보내온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이후 이 사연이 알려지면서 4만 7,000원을 넣은 봉투를 보내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고, 현행법상 언론사는 일정액이 넘는 모금을 주관할 수 없어 ‘아름다운재단’이 모금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금이 시작된 지 16일 만에 1차 목표액인 4억 7,000만 원이 달성됐고, 2월 26일에는 파업 노동자들에게 청구되는 손해배상·가압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가 출범했습니다. 이후 모금 111일 만에 총 4만 7,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최종 목표액인 14억 7,000만 원이 달성됐습니다. 특히 이 노란 봉투 캠페인은 노란봉투법 운동으로 이어졌고, 이에 2015년 4월 당시 현 더불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34명이 ‘노란봉투법’을 발의했습니다. 해당 법안은 노조법상 손해배상 책임이 면제되는 합법 파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자 개인에게는 손배를 청구하지 못하게 한 것이 핵심이었으나,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연이어 폐기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21대 국회에는 민주당 3건, 정의당 1건, 총 4건의 노란봉투법이 발의돼 있습니다.그후 2022년 8월 26일 대우조선해양이 하청 노조의 파업에 대한 책임을 물어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지회장, 부지회장, 사무장 5명을 상대로 47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노란봉투법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회가 벌인 51일간의 파업 과정에서 옥포조선소 1도크를 점거해 고공농성과 옥쇄농성을 벌여 업무를 방해하고 이로 인한 손해가 발생했다고 밝혔으나, 지회를 비롯한 노동계는 손해배상 청구는 본질적으로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을 부정하고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며 반발했습니다. 노란봉투법이 어떤 내용이냐? 하면, 노란봉투법은 노조를 보호하는 법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헌법상 맞지 않으며, 상당히 문제가 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노조 개인에 대해서 손해배상 청구를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노조가 파괴행위나 폭력행위를 하더라도 기업이 그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만든 법입니다. 예외도 있습니다. 노조 개인이 폭행 행위, 즉 폭행을 하거나, 쇠몽둥이를 가지고 다니거나, 흔들거나, 폭발물을 설치를 해서 파괴행위를 한다거나, 위협이 되는 행위를 했을 때에도 노조를 처벌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때는 예외로 규정을 해서 처벌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안전 장치가 있습니다. 노조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가 뭐냐? 하면, 노동조합이 주체가 되어서 하는 활동이라면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때는 노조를 상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역시 예외 조항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노조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을 때, 그 노조가 손해배상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 노조의 존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는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 여러 가지 예외사항을 두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이 전혀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노란 봉투법이 지금 거의 통과 직전에 있습니다. 만약에 이 법이 통과가 된다면, 아주 과격한 노조원들이 손에 쇠파이프를 들고 다니고, 자신들과 반대하는 세력들에 대해서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하거나, 동조하지 않는 화물 차량에 새총으로 쇠구슬을 쏘고, 화물차의 운행에 상당한 위협이 되는 행동을 했을 경우에, 그 노조 개인에 대해서 기업이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노란봉투법이 통과된다면, 특히 치안 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노란봉투법을 민주당이 강행을 하고 있는데, 많은 부분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건설현장에서 건폭(건설현장 폭력)들이 독버섯처럼 자랐습니다. 노조가 자기 조합원의 채용을 강요하거나 금품을 요구하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건폭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현장에서의 노사갈등과 불법 파업을 조장함은 물론 국가 경제에 끼칠 심대한 폐단과 사회적 악영향이 불 보듯 뻔합니다. 무법천지 건설현장에 등장한 거대노조의 갖은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는 결국 공사 지연과 직접적인 금전적 손실로 이어지며 언제까지 기득권 노조의 볼모가 되어야 합니까? 1980년대 건설노조에 침투한 뉴욕 마피아를 소탕했던 연방검사 출신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처럼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건폭을 소탕해서 한국판 줄리아니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더불당이 국회 상임위를 날치기했던 노란봉투법을 본회의 직회부해 건폭의 날개를 달아 주려고 합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건폭들에게 불법노조행위 손배도 물을 수 없습니다. 즉 노란봉투법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것과 같은 것으로, 건폭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법이 노란봉투법입니다. 한마디로 노란 봉투법은 건설 조폭에 날개를 달아 주는 꼴이 됩니다.
    • 주요뉴스
    2023-02-24
  • 대통령이 깡패입니까?
    대통령이 깡패입니까? 정치권의 막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막말이 있었습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향해 ‘사이코패스’라고 했으며,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문재앙을 향해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한센병 환자’에 비유했다가 사과했습니다. 천정배 의원은 ‘이명박 독재 심판 결의대회’에서 “(대통령을) 죽여 버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으며,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개구리’, ‘노가리’, ‘개잡놈’, 심지어 ‘무뇌’라고 불렀습니다. 민주당 원내대변인이었던 홍익표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귀태(鬼胎,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의 후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는 “너도 하니까 나도 한다”는 반응이며,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도 막말은 여전히 성행 중입니다. 막말 중에 최고의 막말은 김대중 정부 출범 3개월 차에 발생한 1998년 「인간시장」의 작가이며, 당시 초선이었던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이 공개석상에서 현직 대통령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해 공업용 재봉틀로 입을 박아 버려야 한다”는 발언이 모욕죄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원의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오는 27일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둔 이재명 대표는 어제(22일) 오전 더불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폭력배가 폭행을 저지르면서 왜 방어하냐? 가만히 맞으라고 하는 것은 깡패 인식이라고 생각한다”며 “수사권을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겠냐? 국가 권력을 가지고 장난하면 그게 깡패지 대통령이냐?”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한국 야당사에서 당 대표의 가장 험한 말로 기록될 것입니다. 대통령을 깡패로 욕한 것은 헌정사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대통령을 향해 깡패 운운하는 것은 공당의 대표의 말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며, ‘깡패’라는 단어를 들은 국민들은 누구의 얼굴을 먼저 떠올리겠습니까? 성남시장 집무실에 ‘깡패’라는 의혹을 받는 사람을 불러 기념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깡패 조카를 ‘심신미약’이라며 변호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깡패 출신이라는 기업인에게 북조선 방문의 댓가를 대신 내게 했다는 의혹을 받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깡패 집단의 고문이 누구였습니까? 유독 ‘깡패’, ‘조폭’, ‘양아치’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27일 국회 체포통의안 의결을 앞두고 분노 속에 나온 외마딧 소리 같은데 국민들, 특히 중도층의 혐오감을 부채질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재명이 매일 대통령선거에 패배 해서 수사를 한다, 정적 제거용이라는 등 윤석열 정부에 대하여 퍼붓는데도 민주당 지지율은 30%이며, 윤 대통령 지지율은 40%를 회복했습니다. 특히 좌파 지지도가 항상 높은 것으로 나오는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39%, 국민의힘 지지율은 45%로 오차범위 밖에서 지기 시작했습니다. 국민들은 이재명의 변명보다 윤 대통령 국정 운용에 점수를 더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일단 27일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169석을 가진 더불당에서 25표 정도가 이탈해야 가결될 터인데 반란표는 5표 정도에 그치리라는 전망입니다. 그 후로는 검찰이 불구속 기소하고, 쌍방울, 백현동, 정자동(호텔) 등 3건에 대한 수사는 계속하여 또 이들 건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검찰에 몇 번 불려 다닌 다음 2차로 체포동의안을 또 의결하는 과정으로 갈 것으로 봅니다. 그러면 이재명은 재판정에 출석하랴, 검찰에도 불려 다니랴 일주일에 절반 이상은 사법 리스크 감당하느라 당 대표 노릇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당대표직을 계속하려면 민주당은 최고 회의 같은 것을 재판정 옆에서 열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외국에선 한국 국회는 방탄 국회 차원을 넘어 ‘아이언돔 국회’로 부를 것 같습니다. 가장 진보언론이라는 경향신문의 대통령은 깡패라는 기사에 어떤 댓글이 달리는지 궁금해서 살펴봤습니다. “형수에게 욕하더니 깡패짓 자백하냐” “조카 살인 사건부터 온통 주변에 깡패 뿐이다” “김성태도 깡패 성남시장 시절 조폭 연루설” “국회가 방탄해주니 국민이 개돼지로 보이냐” “방탄 주제에 우주 최강 깡패짓 자백하냐”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뽑아준 것은 지역 발전시키고 봉사하라는 거였는데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도둑질 해쳐 먹은 거⋯” “일반인이면 진작 감방 갔을 텐데 이 꼴 난 것을 왜 원망하고 대통령 욕하냐” 경향신문 기사에 이재명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넘쳐나는 현상은 놀랍습니다. 의심스러우면 경향 한겨레 기사를 한번 찾아서 검색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낙연이 대선 후보경선에서 패배한 후 “왜 이재명을 지지한다는 발표를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어떤 그룹 회장에게 사적으로 말하길 “아무리 우리 당 후보라도 지역 조폭 세력과 연루된 사람을 지지할 순 없지 않느냐?”고 대답을 했습니다. 검찰이 이재명 자신의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275회 압수수색을 했다고 구체적인 숫자까지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압수수색을 많이 한 것입니다. 이재명에 대해 275번이나 수사를 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수사를 당하게끔 인생을 살아온 것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이재명 역시 과거 자신의 친형에게 밤낮없이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하루 40통이나 하면서 온갖 욕설을 했습니다. 이재명은 요즘 “당당하게 검찰수사를 받겠다”는 말을 싹 감췄습니다. 당당하지 않다는 것을 본인이 알기 떄문일 것입니다. 그냥 법원에 가서 영장심사 한번 받으면 될 것을 굳이 국회 체포동의안 의결까지 감행해서 전 국민을 피곤하게 합니다. 정치 심리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는 자기편 결집 효과, 상대를 공격하면서 자신이 우월하다는 존재감 과시의 심리가 들어 있다고 분석합니다. 요아킴 브라운대 교수는 “정치에서 막말로 승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승자가 된 후 더욱 심한 막말을 한다. 자신의 가장 중요한 무기로 삼는다”고 말했습니다. 형수에게도 쌍욕을 하고, 살인사건 조카를 변론하는 등의 인생역정에도 대통령 후보가 된 승리의 역정을 배경으로 또 그 수법을 써먹고 있다는 게 요아킴식 분석입니다. 정치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런 사람은 리더의 역할을 하면서 막말과 혐오를 조직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삼는다고 합니다. 생존 불안감이 커질수록 막말은 급증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 결말은 대중의 신뢰를 잃게 되고 중도층이 떨어져 나가 지지율이 곤두박질해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지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상의 분석을 보면 더불당의 지지율이 26%로 추락한 여론조사가 왜 나오고, 이재명이 매일 노래를 부르는 윤석열 정부 민생무능론이 왜 먹혀 들지 않는지 이해가 됩니다. 사실 윤 대통령은 민노총의 불법 행태, 에너지∙금융∙통신요금 3대 분야 바가지 요금 척결 등 민생문제를 문재인 정부에 비해서는 매우 선수처럼 기술력 있게 처리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보면 무능한 정부가 아니라 유능한 정부가 아니겠습니까? 정치학에서는 헤이트 스피치를 무기로 삼는 리더는 발언권 제한조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발언 종량제’를 실시하라는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챗 AI 로봇인 빙(Bing)에게 핵폭탄 비밀번호를 알고 싶다는 등 헛소리를 하는 게 두려워, 사용자 질문권을 하루 50회 이내로 제한한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한국 정치문화를 올바로 하려면 ‘대통령=깡패’ 같은 말을 함부로 못 하도록 발언 총량제를 빙(Bing)처럼 합시다. 한국 국회는 범죄혐의가 수두룩한 한 개인의 방탄용 장치가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정치판이 향하는 모든 길은 내년 총선으로 귀결됩니다. 한국의 더불당은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레거시를 바탕으로 합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이재명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치깡패’라고 한 것은 자기 형수에게 “형수씹보지”와 똑같은 욕설과 언행이며, 지금 이재명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자신의 형수에게 “형수씹보지”라는 말의 본바탕을 드러내는 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엊그제에는 당 최고위원회의 도중 잠시 졸도까지 했다고 합니다. 제1야당의 대표가 회의에서 국가 원수를 향해 ‘깡패’라고 하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요?
    • 주요뉴스
    2023-02-23
  • 문,"사람이 먼저다"이 구호는 "스탈린, 마오져뚱, 김일성과 그 일당들이 배 터지도록 잘 먹었고, 온갖 금지된 향락 속에 젖어 살았을때 구호입니다'"
    ‘사람이 먼저다’ 그러면 누가 사람인가? 북조선 사전에는 사람이란 ‘노동자, 농민 등 무산 계급’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적이 누구냐? ‘미국, 자본가, 남한 정부’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주체 사상을 배우고 널리 전파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답게 사는 것을 미국, 자본가, 남한 파쇼 정부가 방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3대 적을 무찌르는 투쟁이 곧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사파 강령에 있는 말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좋은 정치적 방향이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 실체는 다릅니다. 그 민주화 운동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북조선의 인민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이었습니다. ‘민주화 인사’라는 인물 치고 간첩 아니고 주사파 아닌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들은 이 땅에서 민주화의 가면을 쓰고 역적 행위를 자행해 온 반역 세력들입니다. 그리고 북조선의 김정은은 “예수 믿는 것이 최악의 반공화국 범죄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북조선에서 가장 큰 죄가 예수 믿는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북 주사파들이 이 사실을 알고 교회를 없애려고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예수 잘 믿는 공산주의 국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출발은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발상 자체가 사탄인 것입니다. 북한이라 하지 말고 북조선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먼저다'라는 역사를 알고 있습니까? "사람이 먼저다" 라는 이 구호는 문재앙 정부 들어 서서 참 많이 보고 듣게 됩니다. 그런데 이 구호의 출처가 어딘지 알고 계신가요? 공부하신 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CCC 한국대학생 선교회에 침투했던 간첩 신영복이 사용했던 말입니다. 그러면 신영복은 이 말을 혼자 생각해 냈을까요? 아닙니다. 그럼 어디서? 북조선의 김일성 주체 사상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파고 들어 가면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은 북조선의 김일성이 창작한 구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는 어디서 왔을까요? 중국 장제스와 마오져뚱이 국민당과 공산당이 내전을 벌이던 시기 그리고 마오져뚱 집권 초기에 중국 공산당 일부에서 내세웠던 구호가 바로 '인민 우선', 즉 "사람이 먼저다"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먼저다"라는 이 구호는 마오져뚱과 중국 공산당이 창안했을까요? 아닙니다. 마오보다 훨씬 이전에 1880년대 중후반 러시아 나로드스키(Narodniki, 인민주의자)들이 즐겨 쓰던 구호가 "사람이 먼저다"(People First) 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러시아 '인민주의(Narodnichestvo)'의 구호가 바로 "사람이 먼저다"였습니다. 문재앙 정부 들어서 한국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중국·북조선을 거쳐온 100년도 훌쩍 넘은 케케묵은 구호를 굶어 죽은 해골들 가리웠던 거지 보따리에서 꺼내 한우 사골보다 빈하게 우려 먹습니다. 출처도, 과거도 묻지 마세요. 그럴듯 하게 들리면 그냥 다시 우려 먹습니다. 러시아·중국·북조선,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과거에 이 구호를 써붙여 놓았다는 점입니다. 이 구호 자체는 잘못된 게 없어 보입니다. 돈보다 사람이 우선 되어야지요 권력보다 사람이 우선되어야지요 그런데 이 세 나라가 가진 또 하나의 공통점은 그 구호를 써붙여 놓고 그 구호 아래서 엄청나게 많이 굶어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소련 스탈린 시절에 약 2천만명 이상 굶어 죽고,(홀로도모르) 중공에서 인민 대약진 때만 약 4,500만명 굶어 죽었고, 그 후에도 엄청 굶어 죽었습니다. 북조선은 해방 이후 약 3백만명이 굶어 죽었고, 지금도 인권이 무시 당하고, 일당 독재, 일인 독재가 판을 칩니다. 그런데 참으로 해괴한 일입니다. 그 많은 인민들이 굶어 죽어 나갈 때 스탈린, 마오져뚱, 김일성과 그 일당들은 배 터지도록 잘 먹었고, 온갖 금지된 향락 속에 젖어 살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좋아 하면 저런 나라들 따라 갈 가능성이 높아 집니다. 조국이를 보면서 떠오르는 구호 "사람이 먼저다" 이 구호상의 사람이란 누구냐? 하면, 소련의 붉은 귀족(노멘클라투라)들이고, 중국의 태자당들이었고, 홍얼따이(홍이대, 중국 고위 공산당 후손)들이며, 북조선의 백두 혈통, 남한의 종북 주사파 ... 이들이 사람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개 돼지인데, 개 돼지라고 써놓고, 조국은 붕어, 가재, 개구리들이라고 읽습니다. 결국 “사람이 먼저다”라는 것은 북조선의 최고 존엄인 김정은 한 사람만이 사람일 뿐입니다. 우리나라가 평화로운 국가가 되려면 좌익사상, 민주화 운동, 촛불 정신은 반드시 정리되어야 합니다.
    • 주요뉴스
    2023-02-22
  •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알고 있습니까?
    ‘아시타비’를 알고 있습니까? 지난 2월 16일 검찰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아시타비’나 ‘시정 농단’ 등의 표현을 사용해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에서 ‘아시타비’가 무슨 뜻일까요? 먼저 ‘내로남불’이라는 말의 뜻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이중 잣대를 비판적으로 일컫는 우리나라의 신조어로 정치권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자성어라고 오해할 수 있는 이 단어는 1996년 신한국당의 박희태 국회의원이 공적인 자리에서 처음 사용한 이후 정치권에서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비판 등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오프라인과 온라인 등 일상에서 활발히 쓰이는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연애는 로맨스, 남이 하는 연애는 스캔들”이라는 말이 이미 1980년대부터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를 단축시킨 것 같습니다. 이 말은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중 잣대를 가진 사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즉, 남은 비난하지만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을 말합니다. 그동안 국민들은 “내가 하면 예술, 남이 하면 외설”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 썼습니다. 이 말을 네 글자로 줄여서 사용하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내로남불이 사자성어인 줄 잘못 알고 내로남불의 한자를 검색해 보기도 하지만 당연히 있을 리 없습니다. 이 ‘내로남불’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사자성어가 바로 ‘아시타비’인데, 원래부터 있던 사자성어는 아닙니다. 2001년부터 「교수신문」이 매년 12월에 연말 기획으로 사자성어를 발표하는데, 한해 동안의 대한민국 사회상을 반영하는 사자성어를 전국 대학교수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하고 있습니다. 교수신문이 2020년 12월 20일,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채택되면서 만들어진 신조어인데, 원전(原典)이 없는 신조어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것은 2020년이 처음입니다. 교수들은 선정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모든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비난하며 헐뜯는 싸움만 할 뿐,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사람들의 이중잣대를 풍자하는 말이며, 남은 비난하면서도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상황을 빗댔습니다. 모름지기 성인이 되려면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러워야 합니다. 굳이 성인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며 모범이 되는 법입니다. 그러나 이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정치인, 언론인, 검찰, 사법부, 가진 자들의 모습 때문에 2020년의 국민들은 더욱 극심학 마음에 피로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도 이런 모습은 많습니다. 특히 인격 완성이 덜된 사람일수록 그 정도가 심합니다. ‘아시타비’(我是他非)는 ‘아’는 나와 우리를 뜻하는 ‘나 아(我)’, ‘시’는 옳음을 뜻하는 ‘바늘 시(是)’, ‘타’는 타인과 다른 사람을 뜻하는 ‘타(他)’, ‘비’는 ‘그르다’는 의미를 가진 ‘아닐 비(非)’라는 한자어를 사용합니다. ‘아시타비’의 뜻은 내가 하면 옳고 상대가 하면 틀렸다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꼬집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시타비’는 같은 사안도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내로남불’의 뜻을 한자어로 번역해 새로 만든 신조어입니다. 여기서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여 이르는 신조어로,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중 잣대를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명이나 반성도 없다가, 상대방이 같은 사안으로 문제시 될 때에는 비난만 앞세우는 태도를 말합니다. 객관적이고 엄정한 판단은 결여된 채 상대방의 결점을 들추어내는 것에만 급급한 경우, 특히 정치계의 이권 다툼을 두고 비유하여 많이 쓰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갈등이 극심해 자기편이면 무조건 옹호하고 상대편은 따져 보지도 않고 무조건 공격하고 폄훼하는 잘못된 세태가 아시타비 사자성어가 만들어진 이유이며, 유래라 할 수 있습니다.
    • 주요뉴스
    2023-02-21
  • 과거 두차례 강원도 원주 치악산, 교회 지하로 도망간 이재명 대표 왈"제가 어디 도망이라도 간답니까?"
    과거 두 번이나 도주한 이재명 지난 14일 이재명 대표는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한다는 검찰에 대해 겁을 먹고 말하기를 “이해가 잘 안 된다. 제가 어디 도망 간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6일 이재명 대표는 검찰이 구속 영장을 청구하자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제1야당 대표가 국민 곁을 떠나겠습니까? 일거수일투족이 지금처럼 생중계되는 제가 가족을 버리고 도주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자서전인 「이재명은 합니다」를 보면, 과거 두 차례나 도망간 전력이 있었습니다. 어제(2월 19일) 조선일보 박국희 기자가 그것을 보도했는데, 그 내용을 말하고자 합니다. “제1야당 대표가 도주할 우려가 없는데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주장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과거 도주 전력이 19일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변호사 시절 고소 사건에 연루된 뒤 경찰 수사를 피해 몇 달간 전국으로 도주했는데 그 과정이 변호사 출신답게 치밀했다는 것입니다.이재명 대표는 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2002년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의혹 폭로 당시 경찰 수사를 피해 도주했던 사실을 고백한 적 있습니다. 당시 변호사였던 이재명 대표는 검사를 사칭해 현직 성남시장을 취재한 ‘KBS 추적 60분’ 피디와 공모한 혐의로 고소됐습니다.이재명 대표는 자서전에서 “만약 피디가 고소 내용대로 내가 시켜서 검사를 사칭했다고 말해버리면 나는 곧바로 구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나는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일단 숨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강원도로 향했다”고 썼습니다. 지명 수배 신분이던 이재명 대표는 “원주 치악산으로 가던 중 경찰의 검문에 걸리고 말았다”며 “나는 차분하게 미리 준비해둔 대로 동생의 인적사항을 불러주었습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행히 검문이 까다롭지 않아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며 “그 길로 평창에 도착해 연락해야 할 곳에 모두 연락을 한 뒤 휴대폰 배터리를 제거하고 설악산 쪽으로 들어 갔다”고 했습니다.이재명 대표는 “나는 강원도 지역을 돌다가 경찰의 추적망이 좁혀져 오는 것 같아 다시 서울로 향했다”며 “여관을 전전하다가 결국 성남검찰청을 찾아가 자수했다. 그때는 이미 피디도 벌금을 물고 나온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이 사건으로 구속된 뒤 대법원에서 벌금 150만원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이재명 대표는 2년 뒤 또 다시 다른 사건으로 도주하게 됩니다. 2004년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조례 발의를 위해 성남시민 서명운동을 주도했던 이재명 대표는 시의회에서 조례안이 부결되자 서명운동 회원들과 함께 시의회 점거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의원이 폭행당했고 의회 집기가 파손돼 이 대표는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 당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자서전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시청 바로 옆에 있는 주민교회 건물 지하로 몰래 피신했다”며 “경찰에 붙잡히면 곧바로 구속될 처지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민교회는 명동성당이나 조계사처럼 경찰이 함부로 들어와 체포할 수 없는 일종의 치외법권 구역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유세 때 이 사건을 언급하며 “두번째 구속되기 싫어서 도망 갔다”고 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성남시장 선거 출마를 결심했다는 이재명 대표는 “일단 수배자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안동지청에서 검사보로 일할 때 인연이 되었던 이○○ 지청장은 그 무렵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 변호사는 성남지청장을 찾아가 (나의 불구속을) 설득했다. 결국 사건은 벌금 500만원을 내는 것으로 종결되었고, 나는 변호사 자격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고 썼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2017년 국정농단 사태 때는 현직 대통령 신분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언제 도망갈지 모른다”며 구속하라고 주장했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과거 2017년 3월 3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구속이 당연한 사안”이라고 법원에 구속영장 발부를 주문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논단 사건과 관련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을 때 이재명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범죄 행위가 중대하고 범죄를 부인하고 있고, 언제 도망갈지 모른다. 증거 인멸 정황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고 하면서 강력하게 “구속하라”고 외쳤습니다.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해당 발언을 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여부가 사법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니! 박근혜 대통령은 어디 도망 갈 것 같아서 구속되었습니까? 관련자들이 네 명씩이나 죽기를 했습니까? 아니면 구속된 공범을 찾아가서 알리바이를 준비하라고 증거인멸을 획책하기를 했습니까? 좀스럽고 민망한 말입니다. 2017년 이재명 자신이 한 말에 따르면 구속할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과거 노무현의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가 “이재명, 혼자 법원 가서 영장 심사 받아라”고 말했습니다. 정진석 의원도 “죄가 있으면 대통령도 감옥 보내야 한다고 선창한 사람이 이재명 성남지사 아닌가”라며 “제1야당 대표는 죄를 지어도 감옥에 가지 말아야 한다면, 국회에서 ‘제1야당 대표 사법처리 금비법’을 통과시켜라”고 말했습니다. 더불당 이상민 의원도 이재명 대표를 향해 “권성동 모델 즉, 권성동 의원이 직접 (법원에) 나가서 영장심사를 받았던 사례를 따르라. 그게 깔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더불당 부산지역 소장파 정치인인 김해영 전 의원은 “민주당이 집단 망상에 빠져 있는 것 같다”며 이재명 대표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또한 박지현 전 더불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을 촉구했습니다. 더불당의 조응천 의원은 14일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한다? 저는 이것은 결연히 반대”라며 “국회의원 특권 내려 놓기는 우리 당이 계속 주장해 왔던 것이고 지난 대선 대도 공약으로 했던 것이다. (반대당론은) 거기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라나 어느 단체나 조직의 지도자는 일단 성품이 진실하고 좋아야 합니다. 이재명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입니다. 이런 넘이 대통되었으면 국민 혈세를 가지고 수천억, 아니 수천조의 불법 자금을 만들어 먹었을 것입니다. 이런 넘이 대통 안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이런 넘이 대표로 있는 더불당이 장외 투쟁한다고 합니다. 개인 범죄를 정치 투쟁하려는 미친 당입니다. 해체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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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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