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9-28(수)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뉴스
  • 국민의 힘은 아수라장이다!
    국민의힘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나? 신개념 국가경영포럼 회장 황영석 이준석 하나를 원칙대로 처리하지 못해 쩔쩔매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70%물갈이 깜이다. 말하자면 국민의힘 뺏지들은 무능력한 국회의원, 문제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소신발언이 없는 국회의원, 대안없이 양비론으로 일관하는 국회의원 등으로 아직도 국민의힘은 아수라장이다. 먼저 이준석과 관련하여 사단체가 아닌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해결해야 할 방식은 당리당략이나 정치적 계파나 사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첫째 만약 당대표가 이준석이 아닌 그 누구도 당 대표와 관련된 성 관련 추문이나, 그와 관련된 사실적인 증거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둘째로 국민의힘이 추진하려는 방향과는 다른 법원의 가처분 등 판단이 나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시작은 당 대표로부터 시작했으나 계속하여 할 일 많은 집권여당을 어렵게 할 때는 어떻게 해냐 하나?라는 세 가지에 충실하면 해결된다. 또 한 가지는 이준석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고 일을 처리했으나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에 이준석의 가처분 인용 등으로 예견하지 못한 사태가 나타나면 어떻게 처리하나? 첫째에 해당하는 사람이 정당의 고위직일수록 스스로 사임하는 것이 당연하나 사임하지 않으면 무거운 징계로 마무리해야 한다. 둘째로 당의 집행부가 정당의 뜻을 합법적으로 모아 집행하였으나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면 지적된 부분을 보완하여 신속하게 집권여당이 갈 길을 가야한다. 정당은 당헌과 당규에 의거하여 각 직책의 당직자들이 위임받은 것을 성실히 수행하면 될 것이기에 법원의 판단을 수용하여 당헌과 당규를 수정, 보완 등 개정할 부분이 있으면 개정해서 전당대회 등의 날짜와 방법을 확정, 발표하여 하루빨리 당을 정상화해야 한다. 셋째 사건 자체가 당 대표 자신의 문제로 시작했으나,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는 이유나 기타의 이유로 정부를 뒷받침해야 할 여당의 대표가 자중하지 않고 오히려 옳든 그러든 계속하여 문제를 제기한다면 당연히 출당 등 강력히 징계해야 한다. 또 지금처럼 예민한 시국에 시행착오를 일으킨 권성동 원내대표도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체리따봉을 노출하여 윤석열 대통령까지 어렵게 만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에는 민생문제, 경제문제, 국방, 교육, 국제외교 등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도 당내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가장 우선적이나 문제해결의 핵심은 제기하지 않은체 “윤핵관”이나 이준석을 양비론으로 일관하는 이들을 보면 참 대책이 없어 보인다. 이와 같은 흐름은 큰 의미에서 국민의힘이 시스템이 부족하고 무사안일적인 국회의원 공천에 관한 당헌과 당규가 잘못되어 있기에 굳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힐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당내 정적을 의식해서 정확한 해법을 제시할 이유가 없고, 얼렁뚱당 하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이다. 만약 예를 들어 정당발전과 정치발전을 위해서 국민의힘의 경우 매 공천 때마다 30%물갈이는 기본으로 하고 제1야당인 더민주당에 비해 정당지지도가 떨어지면 50%의 물갈이를 원칙으로 하되, 여의도연구원의 기능을 강화하여 첫째 의정활동, 입법활동, 홍보활동, 지역구활동 등에 대해 불문의 외부전문가들이 이를 확인하여 평가하고, 둘째 전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로 평가하고, 셋째 지역구 주민들로부터 여론조사로 평가받는 공천시스템이라면 어영부영 소신이 없는 소극적인 국회의원,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무능력한 국회의원, 이준석 처리 등 의사결정에 올바른 발언하나 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탈락시킬 수 있었다면 벌써 해결됐을 일이다. 알고 보면 지금의 당내문제도 차기 뱄지 확보를 위해 공천권의 확보라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이해관계가 엄존하기에 정치발전을 저해하기에 당헌개정의 요건인 전당대회 재적 대의원 3분의 1이상의 요구는 복잡할 수 있으나 상임전국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개정발의를 해야 한다. 국민의힘 당헌개정은 전당대회 재적대의원 또는 전국위원회 재적대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며 만약 전국위원회가 당헌개정을 의결한 경우에는 다음 전당대회의 추인을 받아야 한다. 마치 한 마리 올챙이가 우물을 흐려도 정리하지 못하는 국민의힘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나? 국민의힘은 비록 법원의 판단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지라도 3권 분립의 의미를 되살려 판결을 수용해서 당헌당규의 개정을 통해 보완하고, 나이가 젊다고 용인될 수 없는 정치무대에서 일국의 당 대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과 분탕질에 대해서는 단호한 추가처벌로서 일벌백계해야 하며, 당내 분란은 물론이고 좌파들의 유튜브 등을 통한 조직적인 공격을 받은 권성동 원내대표도 아쉽기는 하더라도 집권여당의 도덕적 명분을 세우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국회의원·광역자치단체장 후보자 공천에 대해 5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준석 대표가 지난 지방선거에 도입했던 PPAT(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 적용 대상을 지방의회 의원 후보자 등에서 국회의원·광역자치단체장 후보자 등으로 넓히는 방안을 2호 혁신안으로 발표했는데, 그렇다면 현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더욱 피폐(疲弊)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천에 관한 원칙이 희미한 국민의힘 당헌당규를 개정해서 연기자형 국회의원들은 공천에서 탈락시키고 정치신인들을 수혈하고 평가하는 정상적인 정당으로 변모해야 한다.
    • 주요뉴스
    2022-09-07
  • 장군의 마음 제5화 /‘다시 부르는 빛의 노래’
    장군의 마음 5화 /‘다시 부르는 빛의 노래’ 올해로 광복절(光復節)이 77주년이 되었다. 나라를 되찾은 것을 왜 빛을 회복했다고 할까? 나라를 잃으면 인간의 자유와 생명체로써의 존엄한 빛을 잃기 때문이다. 오직 나라를 되찾음으로써 생명의 빛을 회복할 수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와 땅을 가로채고, 일본은 아예 침략한 적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우리의 옛 역사가 너무 찬란하여 차마 똑바로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의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는 건 우리도 마찬 가지이다. 이스라엘교육에서 역사과목은 오전으로만 편성되는데 학생들의 정신이 더 또렷할 때를 택한 것이다. 이 시간에는 할아버지 같은 ‘랍비’가 학생들의 골수에 이스라엘의 혼을 각인하듯이 자신의 생명을 다 쏟아 부어 가르친다. 이 장면을 직접 본 어느 서울대학교 교수는 “나는 과연 저렇게 뜨겁게 제자들을 교육하고 있는가!”라는 자성의 글을 썼다. 만주에서 발흥한 청나라 12명의 황제의 성씨는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청의 개국시조도 ‘애신각라 누루하치’이고 마지막 황제 역시 ‘애신각라 부의’ 이다. ‘애신각라’란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말자.’ 는 청 황제들의 삶의 목표이자 통치 이념이었다. 고구려와 발해, 여진족의 청나라로 이어지는 만주 땅 일대가 우리 겨레의 옛 땅임을 증명한 사람과 자료는 수없이 많다. 안동 출신 ‘이원태’(◎坮)는 우리 민족의 이동에 따른 강역의 변천을 ‘동이구족(東夷九族)’의 역사로 삼아 학문적으로 정확하게 그렸다. 더불어 환국의 환인, 배달국의 환웅, 옛 조선의 단군 47대의 역사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이원태가 교관으로 재임하였던 ‘신흥무관학교’는 만주 서간도에 우뚝한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1910년, ‘우당 이회영’, ‘성제 이시영’의 여섯 형제들이 지금의 6백억 원에 추산되는 엄청난 가산을 정리하여 설립한다. 1932년 ‘우당 이회영’은 독립작전 수행 중 체포되어 ‘다이렌 수상경찰’에서 고문치사로 순국하시니 향년 65세였다. 형제들은 광복을 보지 못한 채 고문사, 병사, 객사, 아사한다. 다섯째인 ‘이시영’만이 살아남아 대한민국의 초대 부통령에 임명되지만 머지않아 사임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일부 재산의 환급을 제안하나 이시영은 재산을 찾겠다고 독립 운동한 게 아니라며 거절한다. ‘아흔 아홉 칸’으로 유명한 안동 ‘임청각’의 ‘석주 이상용’ 일가도 엄청난 가산을 한 톨 남김없이 정리하여 동참한다. 곧 태어날 손주가 이미 남의 땅이 된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인이 되게 할 수는 없다며 고향을 등지고 엄동설한에 기어이 만주로 향한다. ‘석주’는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대통령)에 선출되기도 하지만 74세로 결국 남의 땅에서 돌아가신다. 천신만고 끝에 독립을 이루고 자기의 땅에 대한민국이 건국하였음에도 석주의 후손들은 집 한 채 없이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들은 다만 3천5백 명의 독립군들 핏줄 속에 민족혼을 심기 위해 일심으로 모든 것을 바쳤다. 거룩한 빛을 광복하려는 그 정신이 ‘신흥무관학교 교가’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의 *영절에 여러 만만 *헌원 자손 업어 기르고/ *동해 섬 중 어린 것을 품에다 품어 젖 먹여준 이가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중략-/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 내어 새나라 세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청년들이라./두 팔 들고 고함쳐서 노래하여라./ 자유의 깃발이 떳다.” 이 가사는 중국대륙의 주요 거점과 서북, 서남 전체가 한민족의 고토이자 활동무대였음을 상기시킨다. 장차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독립군들이 웅장한 가슴을 북처럼 울리는 노래가 아닌가. 가사 중의 ‘중국을 업어 기르고 일본을 품어 길렀다.’는 대목은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도저히 근접할 수조차 없다. 그 교가를 지은이는 ‘석주 이상용’이다. 이 사실은 ‘석주’의 손자며느리인 ‘허 은’님의 회고록에서 밝혀진다. 1910년의 신흥무관학교 교가는 놀랍게도 고구려인들의 애창곡이었던 ‘고구려인의 노래’와 뜻과 기상이 그 맥을 같이 한다. ‘고구려인의 노래’ “오호 어리석은 한나라 어린 애들아 요동은 향하지 마라. 개죽음이 부른다./ 문무의 우리 선조 *한웅이라 불렀느니/ 자손들은 이어져서 영웅호걸 많단다./ 주몽태조 광개토님 위세는 세상에 울려 더할 나위 없었고/ *유유, *일인, 양만춘은 나라 위해 옷 바꿔 스스로 사라졌다./ 세상 문명은 우리가 가장 오래니 오랑캐, 왜구 다 물리치고 평화를 지켰다./ *유철, *양광, *이세민도 보기만 해도 무너져서 망아지처럼 도망갔다./ *영락기공비는 천 척 만 가지 기가 한 색으로 태백은 높단다.“ 같은 시대인 1400년 전, 중원대륙의 농민들도 “요동에 가서 억울하게 죽지말자.”는 노래를 불렀다하니 안팎이 꼭 들어맞는다. 우리의 정신과 강토의 회복을 목숨으로 구했던 선열들의 빛나는 마음이 각자의 가슴에 되살아나길 기원한다. 가족을 향한 ‘효심‘과 나라를 향한 ’충성‘, 나아가 지구사랑을 이루는 무수한 홍익독립군을 양성하자. 그때 한,중,일 삼국과 인류의 평화가 지구촌 위에 아름답게 펼쳐질 것이다. (끝)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화가.
    • 주요뉴스
    2022-08-24
  • 장군의 마음 4화 / "또 다른 의병 항왜 ‘사야가(沙也可)와 준사(俊沙)’ "
    장군의 마음 4화 제목 : "또 다른 의병 항왜 ‘사야가(沙也可)와 준사(俊沙)" 430년 전, 일본이 조선을 침공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잔인한 폭력에 노출 된 조선은 당시 국민의 반이 죽거나 다쳤다. 대대적인 그 후유증은 조선의 명줄을 끝끝내 쥐고 흔들었다. 어쩔 수없이 국가적 전쟁에 휘말린 각국의 장졸들 또한 생각이 없을 리 만무하다. 자신들이 전형적인 약탈전쟁의 비극에 강제로 동원된 존재임을 자각을 하는 무리도 있었다. 일본의 내전 중 ‘히데요시’에게 잔혹하게 정복되는 과정에서 가문전체가 몰살된 경우도 있었다. 꼭두각시 같은 처지에 빠진 용병 이란 지괴감에 빠진 왜군들도 있었다. 이처럼 왜군 중에 조선군에게 투항한 왜군을 ‘항왜’(降倭)라고 하였다. 반대로 조선에서 일본군으로 투항하여 앞잡이가 된 자들은 ‘순왜’(順倭)라고 하였다. ‘항왜’들은 ‘예의지국 조선’의 높은 문화를 존중하여 나름 잘못된 침략이라는 판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개인으로 또는 부대 전체가 투항하기도 하여 항왜의 수가 1만2천명에 이르렀다. 돌격장, 중간계급, 병사들도 있어 탁월한 능력과 충성심으로 많은 전공을 세운다. 병자호란까지 ‘나의 나라-조선’을 위해 출전도 하며 이 땅에 대를 이어 뿌리 내린다. 그중에 안골포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항복하고 귀순한 ‘항왜’로 준사(俊沙)가 있다. 영화 ‘한산’에서는 물론 감독의 설정에 따른 것이지만 ‘전체를 꿰뚫는 핵심’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키워드 있다. 그것은 바로 ‘의(義)의 가치’에 대한 ‘이순신 장군’과 포로가 된 ‘준사’의 문답이다. 준사가 이순신 장군과 독대하는 장면에서 준사는 “내가 사천에서 당신을 쏘았다.”고 고백한다. 준사는 죄고의 지휘관인 장수(이순신)가 위험을 무릅쓰고 최 일선에서 전투에 임하는 것을 적선인 맞은편의 왜선에서 선명하게 보고 있었다. 부하(나대용)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는 장군의 모습에서 ‘의리’를 보았기에 비록 적이지만 큰 감동을 받는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부하들을 사지로 내모는 왜장과 비교 되는 장면에서 준사는 큰 각성을 얻는다. 그리고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 간절하게 묻사오니 부디 답하여 주십시오.”라고 질문을 한다. 이순신 장군은 '의(義)와 불의(不義)의 전쟁'이라고 답한다. 약탈을 위한 ‘나라와 나라의 전쟁’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구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의미이다. 장군의 답에 준사는 진심으로 감화되어 항왜가 되고 끝까지 조선군을 돕는다. 영화 ‘한산’에서 준사의 활약은 그 비중이 아주 크다. ‘와키자카’의 조선인 애첩의 비녀와 자신의 목걸이가 같은 무늬임을 발견하고 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확인한다. ‘와키자카’의 애첩은 군관 ‘임준영’에게 정보를 주고 있었다. 발각이 되자 그 비녀를 뽑아 ‘와키자카’의 가슴을 찌른다. 준사는 혀를 물고 자결 하려던 그녀를 탈출시키고 서신을 자신의 목걸이를 신표로 이순신 장군에게 전한다. 일본군이 전주성이 아니라 전라 좌수영을 직격하려고 웅치로 향한다는 일급 군사기밀이었다. 그의 신물인 목걸이와 ‘와키자카’의 조선인 애첩의 비녀와 거북선 용머리 밑의 충파용 기둥은 똑같은 ‘귀면상’의 모습이다. 무서운 도깨비 같기도 한데 바로 ‘배달국 제14대 천황’인 ‘치우천황’이다. ‘전쟁의 신’인 치우천황이 철제투구를 쓴 ‘동두철액(銅頭鐵額)’의 모습이다. 이 형상은 실로 4천 7백여 년 만인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붉은 악마’의 엠블럼이 되어 대한민국에 부활한다. 영화 ‘명량’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 선실에 치우천황이 그려져 있다. ‘김한민 감독’이 진정 하고 싶은 우리 역사에 대한 뜨거운 속마음이다. 그의 삼부작인 ‘노량’, ‘한산’, ‘명량’의 숨어 있는 진짜 주제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준사는 곧바로 웅치 전투에 합류해 의병들과 함께 왜군에 맞서 싸운다. 영화 종반부 의병부대장 ‘황박’이 전사하고 준사도 죽을 위기에 몰리지만 ‘황진’의 구원군이 등장해 준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준사는 '의(義)' 자가 적힌 의병 깃발을 들고 돌격한다. 단군왕조 이전부터 전해내려 오던 ‘366사(事)’를 을파소 선생이 고구려의 동량을 가리치기 위해 다시 엮은 ‘참전계경’이 있다. 그 중 ‘의(義)’를 가르치는 대목이 있다. “믿음이란 하느님의 섭리에 꼭 들어맞는 것이요, 사람의 일을 반드시 이루어 주는 것으로 의(義), 약(約), 충(忠), 열(列), 순(循)이 있다. 그중 ‘의’가 가장 먼저라는 지혜의 가르침이다. 제 22사 의(義.) ‘의’란 정제되지 아니한 순수한 믿음에 부응하여 일어나는 기운이며 그 믿음을 실천하는 기운이다. 의기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용기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요 용단을 내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굳센 의지로 마음의 관문을 걸어 잠그므로 뇌성벽력이라도 그 의로운 기운을 깨지 못한다. 그 의기로 용기를 일으켜 세우면 금강석과도 같이 굳세고 강하며, 그 의기로 용단을 내려 움직이면 물꼬 터진 강물과도 같이 굳센 힘이 있다.(義 粗信而孚應之氣也 其爲氣也 感發而起勇 勇定而立事 牢鎖心關 霹靂 莫破 堅剛乎金石 決瀉乎江河) 준사는 1597년 명량해전에 다시 등장하니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에 동승하여 함께 악전고투에 임한다. 이순신은 안위, 김응함 등에게 적선들을 공격하도록 하고 송여종과 정응두 등은 협력해 일본의 배를 공격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 준사는 바다에 빠진 왜군 중에서 적장을 발견한다. 준사가 적장 “마다시”의 얼굴을 보고 확인하자 이순신은 그 시신을 참수해 목을 높이 걸어 일본군의 사기를 꺾는다. 결국 일본 수군함선 330여 척이 이순신이 이끄는 13척의 조선수군에 대패하고 다시 남해로 도주한다. 이후로는 완전히 서진을 포기한다. 이 명분 없는 살육의 전쟁에서 조선군으로 합류하고자한 일본의 무장이 또 있었다. 22살의 일본군 ‘사야가(沙也可)' 선봉장은 조선 땅에 상륙한 지 1주일 만인 4월 20일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朴晋)‘과 ’김응서(金應瑞)‘에게 은밀히 편지를 보낸다. “임진년 4월 일본국 우선봉장 사야가(沙也可)는 삼가 목욕재계하고 머리 숙여 조선국 절도사 합하에게 글을 올리나이다. 지금 제가 귀화하려 함은 지혜가 모자라서도 아니요, 힘이 모자라서도 아니며,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무기가 날카롭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저의 병사와 무기의 튼튼함은 백만의 군사를 당할 수 있고 계획의 치밀함은 천 길의 성곽을 무너뜨릴 만합니다. 아직 한 번의 싸움도 없었고 승부가 없었으니 어찌 강약에 못 이겨서 화(和)를 청하는 것이겠습니까. 다만, 저의 소원은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후략)” 그들의 갈고 닦은 전투실력과 담대함은 조선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철학과 가치관이 뚜렷한 ‘항왜(降倭)’는 또 다른 ‘의병’이 되었다. 투항한 ‘사야가’ 장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의병, 관군과 협력하여 벌인 78회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다. 사야가의 호는 ‘모하당(慕夏堂)’이다. 모하당 문집에는 그가 이순신 장군에게 보내는 답신도 적혀 있다. "하문하옵신 조총과 화포, 화약 만드는 법은 전번에 조정에서 내린 공문에 따라 벌써 각 진에 가르치는 중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총과 화약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기어코 적병(왜군)을 전멸하기를 밤낮으로 축원하옵니다." ‘사야가(沙也可)는 훗날의 ‘모하당 김충선’(慕夏堂 金忠善 1571~1642)이다. 선조가 성을 하사하니 ‘김충선(金忠善)’은 모래(沙)에서 나온 금(金)이라는 뜻으로 ‘사성 김씨’의 시조로 본관은 김해 김 씨이다. 종전 후 그는 진주목사 장춘점의 딸과 결혼한다.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괄의 난에 공을 세워 ‘삼란 공신’이 되었음에도 나라가 주는 녹을 일체 받지 않는다. ‘신하로서 당연히 한 일에 무슨 대가가 필요하냐?“는 올곧은 마음이다. 조정은 여진족을 막기 위해 내방소를 설치하고 그에게 북방 경비를 맡기니 10년간 빈틈없이 지켜낸다. 그 후, 병자호란이 일어나 북쪽 땅이 짓밟혔다는 소식을 듣자 66세의 나이에 의병을 모아 급히 남한산성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도중에 조정에서 항복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예의의 나라 군신으로서 어찌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겠는가, 춘추의 대의도 끝났구나."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경상도 달성군 우록에 터를 잡아 후학을 가르치며 살다가 72세로 세상을 떠난다. 우록동 삼정산에 부인과 나란히 묻히고 지증추 부사, 병조판서에 추증된다. 뺨 붉은 22세의 젊은 청년 왜장 ‘사야가’는 ‘김충선’ 장군이 되어 조선 땅에 뼈를 묻고 후손들이 번창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함께 투항하여 활동한 사여모(沙汝某) 김성인(金誠仁)의 후손들도 청도에 살고 있다. 그들이 흠모한 것은 ‘힘으로 빼앗음’이 아니라 ‘의로움의 공유’로써 바로 국조 단군께서 전해주신 “홍익인간 정신‘이었다. (끝) 원암 장영주.
    • 주요뉴스
    2022-08-24
  • "국민의힘 비대위를 부른 이준석 전 대표는 자중해야!"
    도대체 왜 국민의힘은 당 내분과 내홍을 수습하기 위한 비대위체제는 제1차적 책임이 이준석 당 대표에게 있지만, 이것을 명확히 정리하지 못하여 당을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을 하게했나?
    • 주요뉴스
    2022-08-13
  • 장군의 마음 제3화/장군의 눈물
    선조는 즉위 16년(1593년)에 새로이 ‘삼도수군통제사’ 직제를 만들었다.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로 전라좌수사 ‘이순신’으로 하여금 겸임케 하였다. 통제사의 본영을 ‘삼도수군통제영’ 줄여서 ‘통제영’ 또는 ‘통영’이라고 불렀다. 한산대첩의 위대한 승리는 ‘통영’이라는 이름에서 영원히 빛나고 있다.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제61회 통영한산대첩축제’가 8월 6일부터 9일간 통영시 일원에서 개최되었다. 통영시는 올해 한산대첩축제의 주제를 '장군의 눈물'로 정했다.
    • 주요뉴스
    2022-08-13
  • 장군의 마음/제2화, 임진왜란의 국제적 의미
    이순신 장군은 평생을 변치 않는 한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셨다. 장군은 생사를 초월한 ’일심’의 결과로 마침내 일본이라는 거대한 ’적의 스승’이 되셨다. ‘전(戰)’과 ‘란(亂)’은 싸움이란 뜻은 같지만 쓰임새는 다르다. ‘우크라이나 전’, ‘세계대전’처럼 외국과의 싸움은 ‘전’이고 ‘란’은 동족간의 다툼으로 치부하여 ‘6.25 동란’, ‘병자호란’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왜(倭)’나 ‘호(胡)’를 남이 아닌 일가로 치부해왔다는 뜻이다.
    • 주요뉴스
    2022-08-08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국민의 힘은 아수라장이다!
    국민의힘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나? 신개념 국가경영포럼 회장 황영석 이준석 하나를 원칙대로 처리하지 못해 쩔쩔매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70%물갈이 깜이다. 말하자면 국민의힘 뺏지들은 무능력한 국회의원, 문제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소신발언이 없는 국회의원, 대안없이 양비론으로 일관하는 국회의원 등으로 아직도 국민의힘은 아수라장이다. 먼저 이준석과 관련하여 사단체가 아닌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해결해야 할 방식은 당리당략이나 정치적 계파나 사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첫째 만약 당대표가 이준석이 아닌 그 누구도 당 대표와 관련된 성 관련 추문이나, 그와 관련된 사실적인 증거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둘째로 국민의힘이 추진하려는 방향과는 다른 법원의 가처분 등 판단이 나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시작은 당 대표로부터 시작했으나 계속하여 할 일 많은 집권여당을 어렵게 할 때는 어떻게 해냐 하나?라는 세 가지에 충실하면 해결된다. 또 한 가지는 이준석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고 일을 처리했으나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에 이준석의 가처분 인용 등으로 예견하지 못한 사태가 나타나면 어떻게 처리하나? 첫째에 해당하는 사람이 정당의 고위직일수록 스스로 사임하는 것이 당연하나 사임하지 않으면 무거운 징계로 마무리해야 한다. 둘째로 당의 집행부가 정당의 뜻을 합법적으로 모아 집행하였으나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면 지적된 부분을 보완하여 신속하게 집권여당이 갈 길을 가야한다. 정당은 당헌과 당규에 의거하여 각 직책의 당직자들이 위임받은 것을 성실히 수행하면 될 것이기에 법원의 판단을 수용하여 당헌과 당규를 수정, 보완 등 개정할 부분이 있으면 개정해서 전당대회 등의 날짜와 방법을 확정, 발표하여 하루빨리 당을 정상화해야 한다. 셋째 사건 자체가 당 대표 자신의 문제로 시작했으나,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는 이유나 기타의 이유로 정부를 뒷받침해야 할 여당의 대표가 자중하지 않고 오히려 옳든 그러든 계속하여 문제를 제기한다면 당연히 출당 등 강력히 징계해야 한다. 또 지금처럼 예민한 시국에 시행착오를 일으킨 권성동 원내대표도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체리따봉을 노출하여 윤석열 대통령까지 어렵게 만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에는 민생문제, 경제문제, 국방, 교육, 국제외교 등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도 당내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가장 우선적이나 문제해결의 핵심은 제기하지 않은체 “윤핵관”이나 이준석을 양비론으로 일관하는 이들을 보면 참 대책이 없어 보인다. 이와 같은 흐름은 큰 의미에서 국민의힘이 시스템이 부족하고 무사안일적인 국회의원 공천에 관한 당헌과 당규가 잘못되어 있기에 굳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힐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당내 정적을 의식해서 정확한 해법을 제시할 이유가 없고, 얼렁뚱당 하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이다. 만약 예를 들어 정당발전과 정치발전을 위해서 국민의힘의 경우 매 공천 때마다 30%물갈이는 기본으로 하고 제1야당인 더민주당에 비해 정당지지도가 떨어지면 50%의 물갈이를 원칙으로 하되, 여의도연구원의 기능을 강화하여 첫째 의정활동, 입법활동, 홍보활동, 지역구활동 등에 대해 불문의 외부전문가들이 이를 확인하여 평가하고, 둘째 전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로 평가하고, 셋째 지역구 주민들로부터 여론조사로 평가받는 공천시스템이라면 어영부영 소신이 없는 소극적인 국회의원,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무능력한 국회의원, 이준석 처리 등 의사결정에 올바른 발언하나 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탈락시킬 수 있었다면 벌써 해결됐을 일이다. 알고 보면 지금의 당내문제도 차기 뱄지 확보를 위해 공천권의 확보라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이해관계가 엄존하기에 정치발전을 저해하기에 당헌개정의 요건인 전당대회 재적 대의원 3분의 1이상의 요구는 복잡할 수 있으나 상임전국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개정발의를 해야 한다. 국민의힘 당헌개정은 전당대회 재적대의원 또는 전국위원회 재적대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며 만약 전국위원회가 당헌개정을 의결한 경우에는 다음 전당대회의 추인을 받아야 한다. 마치 한 마리 올챙이가 우물을 흐려도 정리하지 못하는 국민의힘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나? 국민의힘은 비록 법원의 판단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지라도 3권 분립의 의미를 되살려 판결을 수용해서 당헌당규의 개정을 통해 보완하고, 나이가 젊다고 용인될 수 없는 정치무대에서 일국의 당 대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과 분탕질에 대해서는 단호한 추가처벌로서 일벌백계해야 하며, 당내 분란은 물론이고 좌파들의 유튜브 등을 통한 조직적인 공격을 받은 권성동 원내대표도 아쉽기는 하더라도 집권여당의 도덕적 명분을 세우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국회의원·광역자치단체장 후보자 공천에 대해 5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준석 대표가 지난 지방선거에 도입했던 PPAT(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 적용 대상을 지방의회 의원 후보자 등에서 국회의원·광역자치단체장 후보자 등으로 넓히는 방안을 2호 혁신안으로 발표했는데, 그렇다면 현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더욱 피폐(疲弊)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천에 관한 원칙이 희미한 국민의힘 당헌당규를 개정해서 연기자형 국회의원들은 공천에서 탈락시키고 정치신인들을 수혈하고 평가하는 정상적인 정당으로 변모해야 한다.
    • 주요뉴스
    2022-09-07
  • 장군의 마음 제5화 /‘다시 부르는 빛의 노래’
    장군의 마음 5화 /‘다시 부르는 빛의 노래’ 올해로 광복절(光復節)이 77주년이 되었다. 나라를 되찾은 것을 왜 빛을 회복했다고 할까? 나라를 잃으면 인간의 자유와 생명체로써의 존엄한 빛을 잃기 때문이다. 오직 나라를 되찾음으로써 생명의 빛을 회복할 수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와 땅을 가로채고, 일본은 아예 침략한 적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우리의 옛 역사가 너무 찬란하여 차마 똑바로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의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는 건 우리도 마찬 가지이다. 이스라엘교육에서 역사과목은 오전으로만 편성되는데 학생들의 정신이 더 또렷할 때를 택한 것이다. 이 시간에는 할아버지 같은 ‘랍비’가 학생들의 골수에 이스라엘의 혼을 각인하듯이 자신의 생명을 다 쏟아 부어 가르친다. 이 장면을 직접 본 어느 서울대학교 교수는 “나는 과연 저렇게 뜨겁게 제자들을 교육하고 있는가!”라는 자성의 글을 썼다. 만주에서 발흥한 청나라 12명의 황제의 성씨는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청의 개국시조도 ‘애신각라 누루하치’이고 마지막 황제 역시 ‘애신각라 부의’ 이다. ‘애신각라’란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말자.’ 는 청 황제들의 삶의 목표이자 통치 이념이었다. 고구려와 발해, 여진족의 청나라로 이어지는 만주 땅 일대가 우리 겨레의 옛 땅임을 증명한 사람과 자료는 수없이 많다. 안동 출신 ‘이원태’(◎坮)는 우리 민족의 이동에 따른 강역의 변천을 ‘동이구족(東夷九族)’의 역사로 삼아 학문적으로 정확하게 그렸다. 더불어 환국의 환인, 배달국의 환웅, 옛 조선의 단군 47대의 역사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이원태가 교관으로 재임하였던 ‘신흥무관학교’는 만주 서간도에 우뚝한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1910년, ‘우당 이회영’, ‘성제 이시영’의 여섯 형제들이 지금의 6백억 원에 추산되는 엄청난 가산을 정리하여 설립한다. 1932년 ‘우당 이회영’은 독립작전 수행 중 체포되어 ‘다이렌 수상경찰’에서 고문치사로 순국하시니 향년 65세였다. 형제들은 광복을 보지 못한 채 고문사, 병사, 객사, 아사한다. 다섯째인 ‘이시영’만이 살아남아 대한민국의 초대 부통령에 임명되지만 머지않아 사임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일부 재산의 환급을 제안하나 이시영은 재산을 찾겠다고 독립 운동한 게 아니라며 거절한다. ‘아흔 아홉 칸’으로 유명한 안동 ‘임청각’의 ‘석주 이상용’ 일가도 엄청난 가산을 한 톨 남김없이 정리하여 동참한다. 곧 태어날 손주가 이미 남의 땅이 된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인이 되게 할 수는 없다며 고향을 등지고 엄동설한에 기어이 만주로 향한다. ‘석주’는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대통령)에 선출되기도 하지만 74세로 결국 남의 땅에서 돌아가신다. 천신만고 끝에 독립을 이루고 자기의 땅에 대한민국이 건국하였음에도 석주의 후손들은 집 한 채 없이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들은 다만 3천5백 명의 독립군들 핏줄 속에 민족혼을 심기 위해 일심으로 모든 것을 바쳤다. 거룩한 빛을 광복하려는 그 정신이 ‘신흥무관학교 교가’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의 *영절에 여러 만만 *헌원 자손 업어 기르고/ *동해 섬 중 어린 것을 품에다 품어 젖 먹여준 이가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중략-/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 내어 새나라 세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청년들이라./두 팔 들고 고함쳐서 노래하여라./ 자유의 깃발이 떳다.” 이 가사는 중국대륙의 주요 거점과 서북, 서남 전체가 한민족의 고토이자 활동무대였음을 상기시킨다. 장차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독립군들이 웅장한 가슴을 북처럼 울리는 노래가 아닌가. 가사 중의 ‘중국을 업어 기르고 일본을 품어 길렀다.’는 대목은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도저히 근접할 수조차 없다. 그 교가를 지은이는 ‘석주 이상용’이다. 이 사실은 ‘석주’의 손자며느리인 ‘허 은’님의 회고록에서 밝혀진다. 1910년의 신흥무관학교 교가는 놀랍게도 고구려인들의 애창곡이었던 ‘고구려인의 노래’와 뜻과 기상이 그 맥을 같이 한다. ‘고구려인의 노래’ “오호 어리석은 한나라 어린 애들아 요동은 향하지 마라. 개죽음이 부른다./ 문무의 우리 선조 *한웅이라 불렀느니/ 자손들은 이어져서 영웅호걸 많단다./ 주몽태조 광개토님 위세는 세상에 울려 더할 나위 없었고/ *유유, *일인, 양만춘은 나라 위해 옷 바꿔 스스로 사라졌다./ 세상 문명은 우리가 가장 오래니 오랑캐, 왜구 다 물리치고 평화를 지켰다./ *유철, *양광, *이세민도 보기만 해도 무너져서 망아지처럼 도망갔다./ *영락기공비는 천 척 만 가지 기가 한 색으로 태백은 높단다.“ 같은 시대인 1400년 전, 중원대륙의 농민들도 “요동에 가서 억울하게 죽지말자.”는 노래를 불렀다하니 안팎이 꼭 들어맞는다. 우리의 정신과 강토의 회복을 목숨으로 구했던 선열들의 빛나는 마음이 각자의 가슴에 되살아나길 기원한다. 가족을 향한 ‘효심‘과 나라를 향한 ’충성‘, 나아가 지구사랑을 이루는 무수한 홍익독립군을 양성하자. 그때 한,중,일 삼국과 인류의 평화가 지구촌 위에 아름답게 펼쳐질 것이다. (끝)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화가.
    • 주요뉴스
    2022-08-24
  • 장군의 마음 4화 / "또 다른 의병 항왜 ‘사야가(沙也可)와 준사(俊沙)’ "
    장군의 마음 4화 제목 : "또 다른 의병 항왜 ‘사야가(沙也可)와 준사(俊沙)" 430년 전, 일본이 조선을 침공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잔인한 폭력에 노출 된 조선은 당시 국민의 반이 죽거나 다쳤다. 대대적인 그 후유증은 조선의 명줄을 끝끝내 쥐고 흔들었다. 어쩔 수없이 국가적 전쟁에 휘말린 각국의 장졸들 또한 생각이 없을 리 만무하다. 자신들이 전형적인 약탈전쟁의 비극에 강제로 동원된 존재임을 자각을 하는 무리도 있었다. 일본의 내전 중 ‘히데요시’에게 잔혹하게 정복되는 과정에서 가문전체가 몰살된 경우도 있었다. 꼭두각시 같은 처지에 빠진 용병 이란 지괴감에 빠진 왜군들도 있었다. 이처럼 왜군 중에 조선군에게 투항한 왜군을 ‘항왜’(降倭)라고 하였다. 반대로 조선에서 일본군으로 투항하여 앞잡이가 된 자들은 ‘순왜’(順倭)라고 하였다. ‘항왜’들은 ‘예의지국 조선’의 높은 문화를 존중하여 나름 잘못된 침략이라는 판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개인으로 또는 부대 전체가 투항하기도 하여 항왜의 수가 1만2천명에 이르렀다. 돌격장, 중간계급, 병사들도 있어 탁월한 능력과 충성심으로 많은 전공을 세운다. 병자호란까지 ‘나의 나라-조선’을 위해 출전도 하며 이 땅에 대를 이어 뿌리 내린다. 그중에 안골포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항복하고 귀순한 ‘항왜’로 준사(俊沙)가 있다. 영화 ‘한산’에서는 물론 감독의 설정에 따른 것이지만 ‘전체를 꿰뚫는 핵심’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키워드 있다. 그것은 바로 ‘의(義)의 가치’에 대한 ‘이순신 장군’과 포로가 된 ‘준사’의 문답이다. 준사가 이순신 장군과 독대하는 장면에서 준사는 “내가 사천에서 당신을 쏘았다.”고 고백한다. 준사는 죄고의 지휘관인 장수(이순신)가 위험을 무릅쓰고 최 일선에서 전투에 임하는 것을 적선인 맞은편의 왜선에서 선명하게 보고 있었다. 부하(나대용)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는 장군의 모습에서 ‘의리’를 보았기에 비록 적이지만 큰 감동을 받는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부하들을 사지로 내모는 왜장과 비교 되는 장면에서 준사는 큰 각성을 얻는다. 그리고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 간절하게 묻사오니 부디 답하여 주십시오.”라고 질문을 한다. 이순신 장군은 '의(義)와 불의(不義)의 전쟁'이라고 답한다. 약탈을 위한 ‘나라와 나라의 전쟁’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구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의미이다. 장군의 답에 준사는 진심으로 감화되어 항왜가 되고 끝까지 조선군을 돕는다. 영화 ‘한산’에서 준사의 활약은 그 비중이 아주 크다. ‘와키자카’의 조선인 애첩의 비녀와 자신의 목걸이가 같은 무늬임을 발견하고 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확인한다. ‘와키자카’의 애첩은 군관 ‘임준영’에게 정보를 주고 있었다. 발각이 되자 그 비녀를 뽑아 ‘와키자카’의 가슴을 찌른다. 준사는 혀를 물고 자결 하려던 그녀를 탈출시키고 서신을 자신의 목걸이를 신표로 이순신 장군에게 전한다. 일본군이 전주성이 아니라 전라 좌수영을 직격하려고 웅치로 향한다는 일급 군사기밀이었다. 그의 신물인 목걸이와 ‘와키자카’의 조선인 애첩의 비녀와 거북선 용머리 밑의 충파용 기둥은 똑같은 ‘귀면상’의 모습이다. 무서운 도깨비 같기도 한데 바로 ‘배달국 제14대 천황’인 ‘치우천황’이다. ‘전쟁의 신’인 치우천황이 철제투구를 쓴 ‘동두철액(銅頭鐵額)’의 모습이다. 이 형상은 실로 4천 7백여 년 만인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붉은 악마’의 엠블럼이 되어 대한민국에 부활한다. 영화 ‘명량’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 선실에 치우천황이 그려져 있다. ‘김한민 감독’이 진정 하고 싶은 우리 역사에 대한 뜨거운 속마음이다. 그의 삼부작인 ‘노량’, ‘한산’, ‘명량’의 숨어 있는 진짜 주제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준사는 곧바로 웅치 전투에 합류해 의병들과 함께 왜군에 맞서 싸운다. 영화 종반부 의병부대장 ‘황박’이 전사하고 준사도 죽을 위기에 몰리지만 ‘황진’의 구원군이 등장해 준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준사는 '의(義)' 자가 적힌 의병 깃발을 들고 돌격한다. 단군왕조 이전부터 전해내려 오던 ‘366사(事)’를 을파소 선생이 고구려의 동량을 가리치기 위해 다시 엮은 ‘참전계경’이 있다. 그 중 ‘의(義)’를 가르치는 대목이 있다. “믿음이란 하느님의 섭리에 꼭 들어맞는 것이요, 사람의 일을 반드시 이루어 주는 것으로 의(義), 약(約), 충(忠), 열(列), 순(循)이 있다. 그중 ‘의’가 가장 먼저라는 지혜의 가르침이다. 제 22사 의(義.) ‘의’란 정제되지 아니한 순수한 믿음에 부응하여 일어나는 기운이며 그 믿음을 실천하는 기운이다. 의기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용기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요 용단을 내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굳센 의지로 마음의 관문을 걸어 잠그므로 뇌성벽력이라도 그 의로운 기운을 깨지 못한다. 그 의기로 용기를 일으켜 세우면 금강석과도 같이 굳세고 강하며, 그 의기로 용단을 내려 움직이면 물꼬 터진 강물과도 같이 굳센 힘이 있다.(義 粗信而孚應之氣也 其爲氣也 感發而起勇 勇定而立事 牢鎖心關 霹靂 莫破 堅剛乎金石 決瀉乎江河) 준사는 1597년 명량해전에 다시 등장하니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에 동승하여 함께 악전고투에 임한다. 이순신은 안위, 김응함 등에게 적선들을 공격하도록 하고 송여종과 정응두 등은 협력해 일본의 배를 공격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 준사는 바다에 빠진 왜군 중에서 적장을 발견한다. 준사가 적장 “마다시”의 얼굴을 보고 확인하자 이순신은 그 시신을 참수해 목을 높이 걸어 일본군의 사기를 꺾는다. 결국 일본 수군함선 330여 척이 이순신이 이끄는 13척의 조선수군에 대패하고 다시 남해로 도주한다. 이후로는 완전히 서진을 포기한다. 이 명분 없는 살육의 전쟁에서 조선군으로 합류하고자한 일본의 무장이 또 있었다. 22살의 일본군 ‘사야가(沙也可)' 선봉장은 조선 땅에 상륙한 지 1주일 만인 4월 20일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朴晋)‘과 ’김응서(金應瑞)‘에게 은밀히 편지를 보낸다. “임진년 4월 일본국 우선봉장 사야가(沙也可)는 삼가 목욕재계하고 머리 숙여 조선국 절도사 합하에게 글을 올리나이다. 지금 제가 귀화하려 함은 지혜가 모자라서도 아니요, 힘이 모자라서도 아니며,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무기가 날카롭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저의 병사와 무기의 튼튼함은 백만의 군사를 당할 수 있고 계획의 치밀함은 천 길의 성곽을 무너뜨릴 만합니다. 아직 한 번의 싸움도 없었고 승부가 없었으니 어찌 강약에 못 이겨서 화(和)를 청하는 것이겠습니까. 다만, 저의 소원은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후략)” 그들의 갈고 닦은 전투실력과 담대함은 조선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철학과 가치관이 뚜렷한 ‘항왜(降倭)’는 또 다른 ‘의병’이 되었다. 투항한 ‘사야가’ 장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의병, 관군과 협력하여 벌인 78회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다. 사야가의 호는 ‘모하당(慕夏堂)’이다. 모하당 문집에는 그가 이순신 장군에게 보내는 답신도 적혀 있다. "하문하옵신 조총과 화포, 화약 만드는 법은 전번에 조정에서 내린 공문에 따라 벌써 각 진에 가르치는 중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총과 화약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기어코 적병(왜군)을 전멸하기를 밤낮으로 축원하옵니다." ‘사야가(沙也可)는 훗날의 ‘모하당 김충선’(慕夏堂 金忠善 1571~1642)이다. 선조가 성을 하사하니 ‘김충선(金忠善)’은 모래(沙)에서 나온 금(金)이라는 뜻으로 ‘사성 김씨’의 시조로 본관은 김해 김 씨이다. 종전 후 그는 진주목사 장춘점의 딸과 결혼한다.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괄의 난에 공을 세워 ‘삼란 공신’이 되었음에도 나라가 주는 녹을 일체 받지 않는다. ‘신하로서 당연히 한 일에 무슨 대가가 필요하냐?“는 올곧은 마음이다. 조정은 여진족을 막기 위해 내방소를 설치하고 그에게 북방 경비를 맡기니 10년간 빈틈없이 지켜낸다. 그 후, 병자호란이 일어나 북쪽 땅이 짓밟혔다는 소식을 듣자 66세의 나이에 의병을 모아 급히 남한산성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도중에 조정에서 항복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예의의 나라 군신으로서 어찌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겠는가, 춘추의 대의도 끝났구나."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경상도 달성군 우록에 터를 잡아 후학을 가르치며 살다가 72세로 세상을 떠난다. 우록동 삼정산에 부인과 나란히 묻히고 지증추 부사, 병조판서에 추증된다. 뺨 붉은 22세의 젊은 청년 왜장 ‘사야가’는 ‘김충선’ 장군이 되어 조선 땅에 뼈를 묻고 후손들이 번창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함께 투항하여 활동한 사여모(沙汝某) 김성인(金誠仁)의 후손들도 청도에 살고 있다. 그들이 흠모한 것은 ‘힘으로 빼앗음’이 아니라 ‘의로움의 공유’로써 바로 국조 단군께서 전해주신 “홍익인간 정신‘이었다. (끝) 원암 장영주.
    • 주요뉴스
    2022-08-24
  • "국민의힘 비대위를 부른 이준석 전 대표는 자중해야!"
    도대체 왜 국민의힘은 당 내분과 내홍을 수습하기 위한 비대위체제는 제1차적 책임이 이준석 당 대표에게 있지만, 이것을 명확히 정리하지 못하여 당을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을 하게했나?
    • 주요뉴스
    2022-08-13
  • 장군의 마음 제3화/장군의 눈물
    선조는 즉위 16년(1593년)에 새로이 ‘삼도수군통제사’ 직제를 만들었다.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로 전라좌수사 ‘이순신’으로 하여금 겸임케 하였다. 통제사의 본영을 ‘삼도수군통제영’ 줄여서 ‘통제영’ 또는 ‘통영’이라고 불렀다. 한산대첩의 위대한 승리는 ‘통영’이라는 이름에서 영원히 빛나고 있다.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제61회 통영한산대첩축제’가 8월 6일부터 9일간 통영시 일원에서 개최되었다. 통영시는 올해 한산대첩축제의 주제를 '장군의 눈물'로 정했다.
    • 주요뉴스
    2022-08-13
  • 장군의 마음/제2화, 임진왜란의 국제적 의미
    이순신 장군은 평생을 변치 않는 한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셨다. 장군은 생사를 초월한 ’일심’의 결과로 마침내 일본이라는 거대한 ’적의 스승’이 되셨다. ‘전(戰)’과 ‘란(亂)’은 싸움이란 뜻은 같지만 쓰임새는 다르다. ‘우크라이나 전’, ‘세계대전’처럼 외국과의 싸움은 ‘전’이고 ‘란’은 동족간의 다툼으로 치부하여 ‘6.25 동란’, ‘병자호란’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왜(倭)’나 ‘호(胡)’를 남이 아닌 일가로 치부해왔다는 뜻이다.
    • 주요뉴스
    2022-08-08
  • (황영석 칼럼)"이준석 대표의 분탕질과 대통령 국정지지도"
    사람은 어떤 사건에 의해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변화에 따른 평가에 따라서 살고 죽는 것이기에 만약 이준석 대표가 좀 더 대범하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다면 어떠했을까?
    • 주요뉴스
    2022-08-06
  • [원암 장영주 칼럼]한산에서 큰 뫼로.
    2022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은 나토 동맹국, 파트너 국 회의에서 "자유와 평화는 국제사회와 연대에 의해 보장된다.“고 선언하였다. 깊은 철학과 아득한 전통에 따라 만들어지는 K-방산 무기들이 세계 평화의 큰 뫼가 되어 ‘압도적으로 널리 이롭게 역사’하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 주요뉴스
    2022-07-31
  • [원암 장영주 칼럼]‘조선수군을 만나면 도망쳐라.’
    우리는 우리의 핏줄 속에 녹아있는 위대한 ‘필사즉생’의 DNA에 따라 근해는 물론 지구상의 전 해역을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너나없이 틀림없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예가 아닌가!
    • 주요뉴스
    2022-07-17
  • [황영석 칼럼]민심도 떠나버린 이준석 대표에 대한 징계는?
    민심도 떠나버린 이준석 대표에 대한 징계는?,박근혜 키드(kid)로 혜성처럼 정치권에 등장해 국민의힘 당 대표에 올랐으나, 성접대 의혹의 풍랑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인 이준석에 대해 김소연 변호사는 증거로 대응하고 있다.
    • 주요뉴스
    2022-07-05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