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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는 왜 원희룡인가?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현실이 그대로 나타났다. 불과 몇 일 전까지만 해도 ‘어대한(어짜피 당대표는 한동훈)’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되어 있었으나 원희룡 전 장관이 당대표 출마의 출사표를 던지자 정치지형이 크게 흔들리면서 윤심을 바탕에 둔 원희룡이 ‘어대원’(어짜피 당대표는 원희룡)으로 지지세가 급속히 이동하고 있는 것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성공이 야당의 거친 192석이라는 입법화기의 공격으로부터 방어가 되어야 하기에 여당의 당심은 임기 3년을 남긴 윤 대통령에 대한 애정으로 친윤을 선호한다. 거기에는 좌파의 헌법파기적 입법과 이재명과 조국을 보호하기 위한 말도 안되는 각종 탄핵의 그림자가 이미 진행되고 있기에 국회의원이 108명으로 야당에게 전투력이 떨어지는 마당에 여당의 보루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심리적 보호는 반윤, 비윤보다 친윤의 결집력이 강하다. 사진출처:채널A 국민의힘은 오는 6월 24일부터 25일(1박 2일) 동안 중앙당 당사에서 전당대회를 위한 당 대표와 최고위원 경선을 위해 출마를 위한 서류를 제출하며, 오는 7월 23일(화)에 전당대회다. 어제 나경원, 한동훈, 원희룡은 오후 1시부터, 오후 2시, 오후 3시에 릴레이 당대표 출마선언을 했고, 나경원은 경험과 승리를 강조했고, 한동훈은 수평적 당정관계, 원희룡은 당정신뢰관계회복을 대표적인 화두로 꺼냈으며 이날의 최대논점은 최상병특검을 국민의힘이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원희룡과 나경원은 이를 반대한 점이 출마선언의 최대의 이슈였다. 한동훈의 출마와 관련하여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복심격인 유영하 의원은 “하늘은 때를 가려 사람을 쓴다” 라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데 비대위원장으로서 총선패배 후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한동훈을 향한 교훈적 발언과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한동훈은 침묵의 시간을 가지면 당원들과 국민들이 부르게 되고 그때가 복귀의 시간이라는 교훈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사진출처 : 채널A 국민의힘을 대표하는 세분의 당대표 후보 중 차기 대권 창출에 가장 안전한 후보는 누구일까? 현재까지 한동훈은 여론지지율이 높고, 나경원은 수도권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상대가 더민주당에서 이재명이 대선후보가 되어 출마한다면 인천계양을 총선에서 당일선거에 이긴 원희룡이다. 인천계양을의 사전선거를 보면 약 떠블로 이재명이 승리했는데 동일 선거구에서 사전투표와 당일투표는 약 2~5%차는 인정되지만 200%의 차이가 나는 것은 비정상적인 선거결과이기 때문에 차기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부정선거만 좀 더 엄단하면 원희룡은 이재명을 꺾는다. 만약 차기 대권이 더민주당에 넘어간다면 192석을 가진 야당이 무슨 일을 벌일지? 개헌까지도 고려할 것이고, 이 경우 국내정치는 혼란과 무질서가 일어날 것이기에 보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점이므로 결국 국민의힘 당원들이 80%의 결정권이 있는 전당대회이므로 미래에 대한 안정을 선택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번 당대표 경선에도 원희룡에게 지지세가 결집될 것이다. 사진출처 : 채널A 이런 가설을 대변하듯이 세분의 후보가 당대표 출마선언을 한 지난 6월 23일 우파커뮤니티인 파이낸스투데이는 원희룡 52%, 한동훈 38%, 신의한수는 원희룡 60%, 한동훈 32%, 이봉규TV 원희룡 60%, 한동훈 31%로 우파는 원희룡에게 급속히 지지세력의 결집현상이 나타난다. 국회의원 수도권 5선의 원내대표를 지낸 나경원은 보수의 가치와 이길 수 있는 사람으로 포화를 퍼부었고, 법무장관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지낸 한동훈은 수평적 당정관계와 채상병 특검법을 국민의힘이 주도해야 한다며 국민께서 평가해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고, 3선 국회의원, 2선 제주지사, 국토부장관을 지낸 원희룡은 대통령과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드림팀 만들어 민심을 대통령께 전달하겠다는 신뢰관계 회복을 통한 당정관계의 올바른 회복을 주장했다. 이중 가장 논점이 되는 것은 채상병 특검을 주장한 한동훈의 주장인데, 반한으로 분명한 이미지 형성을 통한 지지세 유지를 위한 발언에 대해 원희룡과 나경원은 공수처 수사가 우선되었다는 상반된 입장이지만 사실 군에서 만기 제대하고 군 생활을 경험한 필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지만 해병대 박종훈 수사단장처럼 군대 내부의 사고를 동일하게 처리하여 상관인 연대장과 사단장을 수사해야 한다면 전쟁은 어떻게 치루겠는가? 이번에 선택될 국민의힘 당 대표는 야당의 192석의 횡포에 대응하려면 국회의원 경험이 단 한번도 없는 한동훈의 초보운전보다는 국회의 경험이 풍부한 나경원과 원희룡을 선호할 것이며, 집권여당은 윤석열 정부와 대립각이 아닌 상호보완이 더 효율적이며, 최상병 특검을 들고 나온 한동훈은 출마선언 이후 시간이 갈수록 지난날의 지지율은 물거품처럼 가라앉을 것이다. 더민주당에 시달린 국민의힘의 이번 전당대회는 변화보다는 안정의 원희룡을 선택할 것이다. 이번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후보와 지지층간에 뜨거운 경쟁이 정책과 토론을 통해서 경쟁하되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누가 당선되든 아름다운 승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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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연세대 몀예교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
동아일보의 객원논설위원이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를 소개하겠습니다. 며칠 전 TV에서 뉴스를 들었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한 최고위원이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출발해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거쳐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으로 이어져 왔다. 이재명이 민주당과 국가를 대표할 시대정신을 이끌어 가야 할 단계라고 했다. 그것은 이재명의 주장과 신념을 대변한 선언이다. 국민도 그 뜻을 이해는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현재까지 국정의 중책은 민주당이 맡아 왔고 지금도 절대적 여소야대의 국회이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민주당에 집중돼 있을 정도다. 문제는 민주당 안에서는 그런 선언이 가능할지 모르나, 국민의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은 초창기보다 더 증대하고 있다.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우려와 걱정은 한계선까지 도달한 상태다.국민은 김대중 대통령의 동족 간의 평화통일을 위한 열성과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가 심하므로 경제적 원조를 베풀면 15년쯤 후에는 통일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견해를 믿고 싶었다. 그런데 국민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너무 많은 원조를 했다. 그 결과는 핵무기 개발과 공산정권 굳히기에 도움을 주었다. 지금의 김정은 정권을 키워주는 결과가 되었다.노무현 정권은 어떠했는가? 우리 국민이 이런 상태로는 살 수가 없고 불안하여서 이민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의 무질서와 혼란 상태가 되었다. 국민에게 물어 보라. ‘노무현 정부가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인가?’라고. 그 주역을 담당한 세력인 86세대 운동권의 등단과 확장기였다. 대통령 자신이 자기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같이 불행한 대통령’은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몸소 남겨 주었다.그 뒤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운동권은 물론 문 대통령 스스로가 공은 내세웠으나 과(過)는 인정하지 않았다. 퇴임 후에도 자신의 임기 5년 동안에 쌓아 올린 정치적 업적을 윤석열 정부가 계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은 문 정부와 같이 가지 않는다고 추방한 윤석열을 왜 대통령으로 선출했는가?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권이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이며, 윤 정부가 계승해야 할 과업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묻게 한다. 정치 기반인 경제 분야는 어떠했는가? 이명박 정부를 계승했다면 경제성장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는 어떻게 했으며,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민주국가의 위상을 지켜 왔는가? 북한 동포를 뒤로하고 김일성 정권 세습화에 동조했다면 그것은 실정 중의 실정이다. 김대중 정신에 위배되는 결과가 되었다. 대한민국으로 귀순해 온 동포와 중국에서 우리 품으로 오려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처신은 앞으로도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할 과제다. 친북 정책은 북한 동포를 위한 절대적 의무와 권리이다. 김정은 정권을 위한 종북이 아니다.현재에도 민주당은 국정운영 방향과 방법은 물론 절차까지 관여하는 국회의 주도권을 행사한다. 국가를 위해서보다는 윤 정권을 타도하고 임기 내라도 재집권하겠다는 자세다. ‘그것도 애국심인가? 국민을 위한 정치인의 양심인가?’라고 국민은 묻는다. 누가 보든지 민주당은 국가보다는 정권을 위했고,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의 사당이 되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민주정치는 실종되었고 싸워서 이기면 그것이 정의가 된다는 개인과 집단의 투쟁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창기부터 실정에 앞장서 왔던 임종석 전 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송영길 전 당 대표, 각 분야에 자리 잡고 있던 운동권 출신의 잔여 세력이 이재명 대표를 앞세워 정권 재장악에 동참하려는 기세다. 민주당 안과 주변에 있던 친북좌파까지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선한 공존의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적 방향과 국민의 진실과 정의, 자유와 휴머니즘 정신이 보장, 구현되는 나라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잘못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진실과 정직 없는 ‘내로남불’의 정의관, 인격을 갖추지 못한 개인이나 이기적 집단세력에 정권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위하고 국민을 섬기려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여야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민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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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그립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반발로 전문의 파업이 대형 병원 중심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근무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시화되고 의료 공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안타깝기가 이를 데 없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가 문뜩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장기려 박사님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의사였다. 그래서 경성 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의과 대학과 김일성 종합 대학 교수를 지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1950년, 장기려 박사님은 철수하는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 아내와 5남매를 북에 둔 채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하였다. 그리고 부산에서 천막을 치고 복음 병원을 세워 행려병자를 치료했다. 장기려 박사님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하며 하루에 2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럴 뿐만 아니라 1959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간 절제 수술에 성공하는 등, 당시 우리나라 외과 의사 가운데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이 커지고 무료 진료가 불가능해지자 장기려는 1968년 한국 최초의 의료 보험 조합인 청십자 의료 보험 조합을 설립하였다. 청십자병원은 가난한 사람을 정성껏 치료해 줄 뿐만 아니라 치료비를 깎아 준다고 소문이 나 늘 많은 환자가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농부가 장기려 박사에게 하소연했다. “선생님, 제가 당장은 돈이 없지만 나중에 꼭 벌어서 갚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내일 당장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병원에 묶여 있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농부의 말을 들은 장기려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밤에 문을 열어 줄 테니 그때 가세요.” 농부가 깜짝 놀라자 장기려는 웃으면서 말했다. “병원에서는 아마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퇴원을 안 시켜 줄 거예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 도망을 쳐서라도 일을 해야 가족을 돌볼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장기려는 그렇게 말하고 농부에게 돈까지 쥐여 주었다. “얼마 안 되지만 차비나 하세요.” 농부는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는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기 돈으로 수술을 해 주고, 그나마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못하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다가 1995년 12월 추운 겨울날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내 마음이 그러하듯 창밖에는 겨울비가 밤새 주룩주룩 내린다. 오늘따라 ‘바보의사 성산 장기려 박사님’이 그저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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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기적의 시작’ 관람 후기
‘은종’이라는 동료 시민의 ‘기적의 시작을 보고’라는 관람 후기를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또 다른 다큐극 영화 ‘기적의 시작’을 보고 왔습니다.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을 보신 분이라면 더더욱 꼭 보십시오. ‘건국전쟁’이 큰 그림을 그리는데 치중했다면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 대통령의 디테일한 부분을 세밀히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건국 전쟁은 역사를 잘 모르고 일방적으로 세뇌 당한 분들에게 유익한 영화입니다. 4.19는 이승만이 원인인가? 김구의 정체, 런 승만의 문제, 한강철교 폭파사건 등 이승만 대통령이 오해받고 있는 부분의 팩트를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에 대한 역사를 잘 아는 분들이 보았을 때 거의 다 아는 내용이었고 소수의 부분은 새로운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의 시작은 자료를 수집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섬세합니다. 이승만에 대한 책 몇 권을 섭렵했던 분들도 새로운 내용을 보고 저런 자료를 어떻게 찾았을까 하고 그 수고에 감탄하게 됩니다. 어쩌면 흥행에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 이승만이 한성 감옥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과정이나 서거하기 전 기도한 장면 등을 삽입한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감명을 줍니다. 이승만의 삶은 기도에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기도로 시작한 나라이니 기도를 놓지 말아야 국가가 번영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만약 성도들이 단체관람한다면 ‘기적의 시작’이 더 감명을 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의 증언자들은 이승만과 직접 만난 분들을 등장시켜 훨씬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백선엽 장군,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 그리고 그 며느리의 증언은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사실적이고 감동적인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농지개혁, 6.25 전쟁에 대한 일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경위 등은 훨씬 더 자세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역사의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깜짝 놀란 것은 이승만의 경제에 대한 관심입니다. 벌써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 앞으로 한국은 공업국이 되어야 한다고 예견한 것은 대단한 통찰력이었고, 실제로 6.25 이후에 공업국이 되기 위해 그가 이룬 업적을 세밀한 자료와 더불어 제시한 것은 그동안 몰랐던 내용이었습니다. 다큐 영화가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데, 텔렌트 임동진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이승만을 잘 살려내었습니다. 아마도 무료 출연이었을 것인데, 눈물과 마음으로 연기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정말 사랑하는 대배우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무명의 배우들이 적절하게 사건들을 잘 재현해내어 다큐에 몰입할 수 있도록 톡톡히 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동안 런 승만, 독재자, 친일파 등등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이제는 바로 잡을 때가 되었다. 위대한 거인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에게 이승만을 바로 알릴 때가 되었습니다. 두 영화를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기적의 시작’은 섬세하게 그 안을 들여다 봅니다. 성경으로 비유하면 ‘건국 전쟁’은 마가복음에 비유한다면 ‘기적의 시작’은 요한복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둘 중에 한 영화만 선택하지 마십시오. 두 영화 모두 보시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요, 애국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건국 전쟁은 제법 관람객들이 있었는데, 기적의 시작은 관객면에서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점이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적의 시작’이 훨씬 더 애정이 갑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가슴에 더 와닿는다고 했습니다. 건국 전쟁을 보신 분들은 반드시 기적의 시작도 함께 보십시오. 다른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을 먼저 보셨습니까? ‘건국 전쟁’도 보세요. 두 영화가 결합할 때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총선 전에 두 영화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두 영화가 흥행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사인식이 바뀌도록 열심히 홍보하는 일입니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먼저 극장으로 가십시오. 교회 단체관람을 강력히 추천합니다.”라고 동료 시민 ‘은종’은 말했습니다. 김덕영 감독의 ‘건국 전쟁’이 개봉 27일만에 100만을 돌파하며, 다큐로는 드문 흥행 기록을 세우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그리고 ‘건국 대통령 이념 보급회’의 김효선 사무총장의 ‘이승만의 독립 외교 33년’ 등 다른 기록 영화들도 ‘건국 전쟁’과 거의 동시에 선을 보였습니다. 이장호 감독의 이승만 관련 영화 ‘하우보만의 약속’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상 매체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될 나라”라는 주장을 하며 반공 애국 진영, 특히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비방하고 폄훼하는 반역 세력의 전유물처럼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런 영상 매체가 이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밝히려는 일에 효율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승만이 ‘독재자’ 또는 ‘친일파’로 낙인 찍히며 국민의 뇌리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할 추악한 인물로 악마화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독립운동과 반공 투쟁에서 승리해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되었고, 공산군의 6.25 남침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고 부흥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쉽게 공산화되어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김일성의 지배를 받는 위성국가로 편입되었을 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적인 위인이자 천재였습니다. 그는 이 나라의 국부였고, 애국자요, 선지자요, 예언자요, 세계가 공산당을 열광할 때 “공산당은 망한다”고 외쳤습니다. ‘전시 중립론’이라는 논문을 쓴 국제 정치가였고, 훌륭한 선교사였고, ‘재팬 인사이드 아웃’의 저자인 작가였고, 민족 복음화를 소망한 하나님의 종이었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며, 그는 하나님 중심의 철저한 자유 민주주의 투사였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학력 소유자였습니다. 죠지 워싱톤대 학사였던 클린턴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하바드대 석사였던 오바마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프린스턴대 박사였던 윌슨 대통령과 동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도 이만한 학력 소유자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자유의 등불을 달아준 불세출의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탁월한 외교가였으며, 토지개혁을 단행했고, 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는 ‘반상 철패’를 했으며, 의무 교육을 실시했고, 여성들을 투표에 참여케 했습니다. 의회 정치를 실시 했습니다. 그의 애국정신과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 시대의 등불이었습니다. 전교조에 의해 역사 왜곡이 극에 달한 이 나라는 이승만을 바로 알아야 대한민국이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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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영화 ‘기적의 시작’이 만들어진 배경 이야기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기적입니다.’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영화 '기적의 시작'을 만들고, 전국 개봉을 하기까지 모두 기적의 순간입니다. ■ 영화의 시작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저의 아버지께서 '이승만 대통령 영화를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하셨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하지 않은 제가 그 당시 더 기반이 없었던 시절, 그런 권유를 받으니 너무 막연하고 막막하게 다가 왔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에는 부모님 댁에서 같이 사는 것 외에는 따로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은 받지 말자'고 했고, 또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우리나라 영화계와 아무런 인맥도, 기반도, 심지어 카메라 한 대 조차 없던 아들이 이리저리 일감을 찾아다니는 모습에 안쓰러워 ‘카메라 한 대 얼마 하니? 카메라 한 대 사줄게. 그것 가지고 시작해 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것마저 거절했습니다. 많은 예술인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이 분야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누가 밥값을 내야 하는지 신경이 곤두섰고,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 다섯 정거장 정도는 교통비를 안 쓰고 걸어 다녔습니다. 물론 저의 집안이 그 정도 돈 못 쓸 정도로 여유가 없지는 않았으나, 저는 속으로 '이 나이에 돈벌이도 못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는 것은 사치다'라고 생각하며 가급적 걸어 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 온 저의 영화 인생은 그렇게 밑바닥부터 시작되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비록 독립영화이지만 조금씩 규모를 키워가며 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순회 상영을 다니며, DVD를 찍어 판매하는 수준에서 점차 작품을 작은 영화관에서부터 상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이 하나 둘 씩 영화관에 걸려 작품을 찾는 관객들이 늘었고, 이번엔 멀티플렉스 상영관 전국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을 지내면서 아버지의 권유를 당장 실행해 옮겨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었으나, 덕분에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일하거나 생활했던 분들을 만나 뵈면 꼭 이 대통령에 대해 질문하고 이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백선엽 장군님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뵌 분들은 그 당시에도 꽤 계셨으나, 백 장군님처럼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큰일을 하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던 분은 없었습니다. 백 장군님은 이승만 대통령과의 일화와 본인이 참여했던 전투에 대해 매우 실감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후방 전투 현장을 직접 보여주시며 설명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귀한 증언들은 매번 카메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기록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아 저는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습니다. 요즘과 달리 20년 전에는 6mm 테잎을 썼는데, 당시의 기록이 멀쩡하게 보존된 것도 작은 기적입니다. 한편 해를 거듭하며 시간이 지나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왜곡과 비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니, 멈추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국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어 '22년 12월부터는 아예 작정하고, 그동안 모았던 자료들과 추가 인터뷰를 통해 '기적의 시작'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 국민 대배우의 합류 ■ 제작 과정에서 국민배우 임동진 님도 합류하시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런 대배우분께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에 넣을 재연장면에 출연해 주시라고 요청하는 것은 큰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 배우님께서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셔서, 속으로 많이 놀랐고, 겸손한 모습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임동진 배우님과 같은 영화계 거물이 합류하셨음에도 제작환경은 딱히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제작진은 그 분 이름을 내세워 따로 모금하지 않았고, 제 성격상 여기저기 제작비 모금하러 다니기도 쑥스러워 그러지 못해서 프로듀서 김재동 목사님이 모금해 오신 제작비 내에서 해결했습니다. 그런 형편 속에 많은 분들의 우려와 달리 제작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 아들 이인수 박사의 생전 마지막 고백 기록 ■ 이번 작업에서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로 이 대통령의 쓸쓸한 말년을 제일 가까이 곁에서 지켜보셨던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입니다. '23년 11월 별세하신 이인수 박사님의 인터뷰는 결코 쉽게 성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품을 위해 그분의 증언을 꼭 담고 싶었으나, 그분의 체력에 한계가 많으셨던 때라 인터뷰 약속을 잡고 갔다가도 두 세 번 실패하여 헛걸음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인터뷰가 어렵게 되자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는 포기했습니다. 사모님이신 조혜자 여사께서 마치 곁에서 대신 말씀을 전하시듯 하고, 이인수 박사님은 옆에만 앉아 계십사 하는 게 저의 새로운 바람이자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약속도 없이 임동진 배우님과 이화장을 둘러 보러 갔다가 이인수 박사님 컨디션이 최상인 것을 발견! 당장 카메라를 켜고 마이크를 연결해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장비를 가져간 것도 다행이었고, 그게 이인수 박사님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습니다. 다시 봐도 당시 이 박사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모습이 역력합니다. 이 모든 것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 신앙인 이승만 재조명 ■ 이승만 대통령이 젊은 시절 선교사들이 전해 준 예수님을 한성 감옥에서 복역 하며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영접한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난제 앞에서 하나님께 매달렸고, 우리나라 첫 국회를 기도로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작품에서 비기독교인들을 의식해서인지, 기독교 색채를 빼고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 그런 이승만의 모습은 인간 이승만을 이끄는 원천적인 힘이었기 때문에 저는 제 작품에서 그런 부분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마지막 기도는 임동진 배우님의 뛰어난 연기력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해 줍니다. ■ 전국 극장 개봉 ■ 드디어 ‘24년 2월 22일! 기적의 시작은 전국 개봉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어렵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영화를 한 개 극장에라도 걸기도 어렵고, 극장에 걸었다 해도 관객들을 사로잡기에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 전문 인력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한 두 사람의 몫입니다.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전국 극장 개봉을 위해서 제작사들은 적게는 수 천 만 원, 많게는 수 억 원의 홍보비를 씁니다. 저희는 '기적의 시작' 홍보를 위해 쓸 수 있는 금액이 거의 없었습니다. 금액을 밝히기에 민망해 그럴 수는 없지만, 그 금액조차 제작 과정에서 다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홍보를 위해 쓴 금액은 전단지 인쇄에 30만원 가량, 작품을 소개해 주시는 유튜브 분들께 음료수를 사 드리거나 식사 대접을 한 게 전부입니다. 주말에는 감독인 제가 손수 전단지를 챙겨 광화문이나 시청 같은 곳에 가서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젊은이들 중에는 전단지에 이승만 대통령 얼굴이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접어버리며 불쾌감을 표현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전단지를 나눠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많은 홍보비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원초적인 홍보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SNS 홍보도 했으나 제가 인플루언서가 아니다 보니 효과는 미미했던 것 같습니다. 넉넉잡고 홍보비로 100만 원 정도 썼던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전국 개봉까지 이어진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렵게 잡은 서울 두 개의 극장(필름포럼과 허리우드). 시사회 이후 5개월간 상영을 통해 관객 수 천명이 관람하고, 입소문을 듣고 오는 관객 수가 줄지 않자 멀티플렉스에서 이를 눈여겨보고, 일단 전국 10개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을 준 것 같습니다. 수 많은 난관을 뚫고 드디어 전국에 소개되는 ‘기적의 시작’. 여태까지는 저와 조력자 분들의 힘으로 끌고 왔으나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렇게 극장에 걸게 되었는데 보러 와 주시지 않으면 허무하게 극장에서 내려지게 됩니다. 극장에 와서 봐 주시는 것은 작은 애국입니다. 교회에서 단체관람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CGV에 예매가 열립니다. 예매를 많이 해 주시면 더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여 더 많은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 권순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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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기적의 시작’이다!
스카이데일리 임명신 기자의 “[기획] 이승만 다큐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길 위에 김대중’ 압도”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권순도 감독이 20년 구상 끝에 작년 10월 내놓은 ‘기적의 시작’은 독립영화 특유의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건국 전쟁’ 흥행 속에 역주행 중입니다. 같은 주제의 두 다큐는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필히 두 편 모두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같은 목표, 다른 매력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1875~1965)을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월 1일 개봉한 김덕영 감독의 작품 ‘건국 전쟁’이 주목받으며 4개월 전 나온 권순도 감독의 작품 ‘기적의 시작’도 역주행에 가속도가 붙었다. 두 작품 다 철저히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된 다큐지만 흐느끼는 관객이 속출할 만큼 뜨거운 반응이다. 두 편의 이승만 다큐가 또 다른 역사 인물 다큐를 압도한 것도 눈길을 끈다. 훨씬 유리한 여건 속에 제작된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작 ‘길 위에 김대중’이 개봉 4주 후 12만 관객을 동원한 반면 ‘건국 전쟁’은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 수 18만 명을 돌파했다. 누적 관객 수 3위, 개봉관 수도 개봉 당초보다 3.3배 늘어난 상태에서 11일 누적 관객 수 24만 명을 넘어섰다. 다큐로선 이례적인 성적이 어디까지 갈지 관심을 모은다. ‘기념관 하나 없는 이승만’이 ‘기념시설 최다의 김대중’을 이겼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편 ‘기적의 시작’은 작년 10월 하순 서울 시내 단 두 곳(종로3가 낙원상가 헐리우드 극장·신촌 필름포럼)에서 개봉된 가운데 주로 각종 애국단체∙교회 등의 상영회를 통해 관람객을 늘려 갔다(현재까지 5000명 정도). ‘건국 전쟁’이 2월 1일 전국 CGV에 걸리고 화제를 부르자‘기적의 시작’ 역시 개봉 약 4개월 만인 22일 CGV 재개봉이 결정됐다. ‘기적의 시작’ ‘건국 전쟁’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졌고, 멸망의 위기를 넘어 훗날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틀을 구축했는지 조목조목 짚는다. 농지개혁, 문맹퇴치(교육개혁), 안보·경제발전을 담보한 한미 동맹, 자원 빈국의 산업화에 절실한 원자력발전의 토대 마련 등 다가올 산업화가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어떻게 준비됐는지를 두 편의 다큐 영화 는서로 다른 톤으로 설명해 준다. 각각의 장점이 있으며 지루하지 않을 반복 학습 효과가 기대된다.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을 다룬 최초의 본격 다큐 영화라는 의미 외에 애국지사로서의 역정과 기독교 신앙의 상관성을 조명한 점도 돋보인다. 창군 및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1920~2020)과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1931~2023) 박사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원로배우 임동진 목사의 이승만 연기 역시 독보적인 부분이다. 두 다큐는 1천 수백 년에 걸친 왕조 시대와 근대 식민지 시대를 겪은 중세적 공동체에서 자유 민주공화국 헌정 질서 마련이 얼마나 천지개벽할 일이었는지를 묵직하게 일깨운다. 공통된 주제지만 두 감독이 친분이 있거나 사전 협의한 것도 아닌데 내용상 겹치지 않는다.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 학습판이므로 둘 다 관람할 가치가 충분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공산화가 신생국들의 대세였던 시절, 이승만은 현대 국가(자유민주공화국)의 본질과 시스템을 이해한 유일한 한반도인으로 볼 만하다. 두 다큐의 시의성도 각별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오늘날, 정통성 논란은 결국 ‘이승만의 나라’ ‘김일성의 나라’ 양자택일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 세계사적 인물 이승만… 우선 다큐부터 ‘건국 전쟁’ 출연자의 한 사람인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전 이승만연구원장)는 연구원이 보관 중인 이승만 1차 자료 100박스에 대해 예산 부족으로 손을 못 대고 있다며 아쉬움을 수차례 토로한 바 있다. 그 자료들은 대부분 40년 망명 생활 중 세계정세를 전하거나 논한 신문·잡지 스크랩과 친필 메모들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세계사적 차원에서 연구돼야 할 인물 이승만’이라는 시각에 힘이 실린다. 이승만의 생애는 드라마틱하고 불가사의한 요소로 충만하다. 영화∙드라마 등 대중 서사 장르를 통해 그려질 날이 와야겠지만 일단 다큐가 절실했다. 관련 사실들이 극단적으로 왜곡되거나 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교과서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교과서 밖에선 악마화∙희화화됐을 뿐이다. 해석의 문제 이전에 팩트 자체가 엉터리인 경우도 많다.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가짜 뉴스·역사∙왜곡의 결정판 명저 ‘슬픈 중국’의 저자이자 ‘건국 전쟁’ 첫머리에 등장한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는 조선일보 칼럼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팩트를 지어 내는 역사가들’에서 “김덕영 감독의 작가 정신과 예술혼이 거짓 뉴스와 허위 정보를 마구 엮어 일방적으로 이승만 악인전(惡人傳)을 집필해 온 역사학계의 고루한 시대착오와 부족 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죽이기’ 최근 사례로 송 교수는 “(역사학자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박태균)”가 TV 교양 프로에서 이승만의 1952년 대선 승리에 대해 기호 1번을 독점해 대다수 문맹 유권자 몰표를 유도한 결과라는 취지로 설명한 점을 들었다. 이어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것과 김 감독이 당시의 선거 포스터를 꼼꼼히 뒤져 이를 입증해 냈음을 짚었다. 이승만은 기호 1번이었던 적이 없다. 이승만에 얽힌 대표적 오해인 6·25전쟁 발발 직후 라디오방송 틀어 놓고 도망갔다는 미확인 소문이 오늘날까지 조롱과 저주 담긴 별명 ‘런Run승만’으로 살아 있다. 김 감독의 ‘건국 전쟁’에서 ‘한강 다리 폭파’ ‘3.15 부정선거’ ‘하와이 도피설’ 등을 바로 잡을 증거들이 제시됐다. 또 한4·19 이후 이승만의 행보야말로 ‘독재자’ 낙인이 왜 부당한지에 대한 결정적 증거다. 자신과 무관한 부통령 선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무일푼의 독재자? 그런 인물이 과연 독재자일 수 있는지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묻고 있다. 한국인이 처음 만난 이승만… ‘건국 전쟁’ 감동 후기 이어져 조지워싱턴대(학사)∙하버드대(석사)∙프린스턴대(박사) 출신의 이승만이 얼마든 취득 가능했을 미국 시민권을 마다한 채 40년간 무국적자의 불편함을 견딘 사실에 김 감독은 주목했다. 아울러 미국 내 이승만의 족적이 그간 어떻게 왜 지워졌는지 현지 교민들 증언으로 전해진다. 1953년 정전협정 1년 후 미국 방문 당시 자유의 투사로 칭송받으며 뉴욕 시가를 대대적으로 퍼레이드한 영상은 ‘건국전쟁’을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이승만이 공산주의에 맞설 냉전 구도의 불가피성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미국 등 서방세계 조야에 열렬히 설명∙설득한 점도 부각된다. 그것이 대한민국 탄생 비밀의 한 측면이다. 공산주의의 본질·실상에 대부분 무지하던 시절이었다. 개봉 초기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만 네이버 영화면에 누락돼 있어 “좌편향 문화계의 이승만 지우기”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관람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육박했다. “덕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어 감사하다” “공산화 저지의 공로만큼은 이승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감상 후기가 가장 많다. 조선일보가 김 감독을 자세히 인터뷰한 것 또한 눈길을 끈다. 여기서 김 감독은“(이승만) 공부를 시작한 뒤 큰 반성을 하게 됐고 그를 비롯한 건국 세대에 대한 죄송함을 영화에 담았다”고 밝혔다. 2012년 유튜브에 유포된 악의적 이승만론(論) ‘백년 전쟁’이 오히려 일부 네티즌이 진실 찾기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것과 흡사한 경우라 할 것이다. 북한은 왜 그렇게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을까… 586세대 김 감독의 각성 김 감독은 1950년대 동유럽 국가들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들을 조명한 다큐‘김일성의 아이들’(2020)로 유명하다. 1만명 가량 동유럽에 분산 위탁돼 자라다 스탈린 사후 격변 속에 집단귀국 당한 후 김일성 유일 체제를 위해 잊혀진 존재들이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북한에 관심을 가지다가 1990년대 중반까지 평양에 ‘이승만 괴뢰도당 타도’구호가 있었음을 알게 됐으며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는지 궁금해졌다. 김 감독이 작품 구상 및 제작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은 이승만을 향한 집요한 폄훼가 “오랜 세월 좌파들의 선동에 의한 부당한 평가”와 “북한의 공작” 탓이 컸다는 사실이다. 김 감독 자신이 북한에 호감 내지 환상을 가진 586세대 일반의 감성과 역사관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그 폐해 또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거짓의 선글라스를 벗으면 평생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았고 애국애족의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했던 한 노인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며 울먹였다. 한 네티즌의 댓글 “대한민국이 버린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위대함은 대한민국 국민만 모른다. 참담한 현실에 부끄럽고 한없이 죄송하다”는 심정과 고스란히 겹친다. ‘건국’ ‘산업화’ 없이 ‘민주화’는 불가능… 그러나 뒤틀린 역사교육 김 감독의 말대로 이승만은 “(파고들수록)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한 한국사의 유일한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 그렉 브레진스키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미래 비전과 안정된 보장 시스템이 존재해야 건국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듯이 “바로 그걸 이승만이 해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결코 일본의 패망으로 당연히 얻어진 게 아니었다. 김 감독은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경제 개발이란 기관차가 달린 것”으로 두 지도자의 시대를 요약한다. 핵심적인 통찰이다. 산업화를 통한 중산층의 성장 없이 이뤄지는 ‘민주’란 ‘인민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중국(중화인민공화국)도 모두‘민주’를 전면에 내세운다.문재인 정부 시절 현행 헌법에서‘자유’를 삭제하고자 시도한 행위의 의미와 그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알아차리게 됐다. ‘독재자’라는 꼬리표가 3대 세습체제 속에 신격화된 북한 권력자들에게 붙는 대신 변명없이 자진 하야한 이승만에게 당연한 듯 붙는 게 온당한지 이제라도 저마다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이승만=살인마’의 관점을 일반화시키면서 제주 4.3의 비극이 대한민국 수립 및 그것을 위한 한반도 유사 이래 최초의 보통 선거(5.10총선) 저지를 위한 남로당의 무장 폭거에서 출발한 것임은 도외시한다. 이것이 지난 30년 우리나라 제도권 안팎의 역사교육 현실이다. 놓칠 수 없는 ‘기적의 시작’ 권 감독의 20년 구상 끝에 태어난 ‘기적의 시작’은 공산주의가 유라시아 대륙을 뒤덮었던 시절 그 끝자락 한반도에서 어떻게 자유 민주공화국이 수립·유지될 수 있었는지, 이승만 덕분에 가능했던 대한민국탄생의 기적과 그것이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토대가 됐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독실한 크리스천의 면모도 조명했으며 원로배우 임동진의 이승만 재연으로 다큐 이상의 감동을 더했다. 백선엽 장군 인터뷰와 ‘기적의 시작’ 개봉 며칠 후 별세한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전 명지대 법정대 학장) 박사의 영상은 진귀한 역사적 자료가 됐다. 본인들의 생전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대통령 하야 후 전주 이씨 문중의 주선으로 이승만 슬하에 30세때 입적한 이 박사와 그 가족은 지난 60여 년간 이승만 죽이기의 실질적 희생자였다. 권 감독에 따르면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 박사가 기적처럼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한 마디 한 마디 온 힘을 다하듯 간신히 해독 가능한 발음으로 건국 대통령의 애국 열정과 말년의 부자(父子)인연을 증언한 모습이‘기적의 시작’에 실려 있다. 특히 망명 생활의 근거지였던 하와이에서 몇 개월 휴식한 이승만 내외가 귀국하려던 당일 한국 정부로부터 하와이 잔류를 종용당한 장면, 이후 우울 속 건강 악화로 현지에서 임종을 맞게 된 과정이 생생하게 회고됐다. ‘건국전쟁’에서 하와이 망명설이라는 거짓 뉴스 유포의 전후 맥락을 짚었다면 ‘기적의 시작’은 당사자들의 내면을 전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현대사 공부? 화제의 이승만 다큐 두 편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에 맞선 체제 정당성 대결의 최전선에 있다. 총선을 약 2개월 앞둔 시점에서 또 하나의 선거전이 될 수 있다. ‘서울의 봄’은 대다수 관객에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허구의 틀을 빌어 사실상 실존 인물과 역사를 거꾸로 해석한 상업영화다. ‘서울의 봄’이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적폐의 나라’라는 인식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반면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절체절명 위기와 우여곡절 속에서 이승만이라는 한 애국자가 지향한 가치를 되새긴다.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자유민주 헌법) 위에 박정희의 산업화(근대화)가 가능했다는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1979년 10.26으로 중단될 뻔한 산업화를 완결짓고 민주화 시대를 예비한 게 전두환의 신군부, 즉 제5공화국이다. 그렇다면 영화 ‘서울의 봄’이 기도한 신군부 악마화는 대한민국 헌정사의 부정 아닌가. 이원석 검찰총장이 몇몇 동료들과 ‘서울의 봄’을 관람한 인증 샷과 소감을 남겼다. 기존 민주화운동 세력의 신군부 서사에 충실한 발언이었다. 건국의 역사를 제쳐둔 채 민주화를 말할 수 있을까.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관람 권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 요인과 ‘73년생 한동훈’ 등 여당 인사들의 관람 필요성이 역설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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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연세대 몀예교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
- 동아일보의 객원논설위원이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를 소개하겠습니다. 며칠 전 TV에서 뉴스를 들었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한 최고위원이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출발해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거쳐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으로 이어져 왔다. 이재명이 민주당과 국가를 대표할 시대정신을 이끌어 가야 할 단계라고 했다. 그것은 이재명의 주장과 신념을 대변한 선언이다. 국민도 그 뜻을 이해는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현재까지 국정의 중책은 민주당이 맡아 왔고 지금도 절대적 여소야대의 국회이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민주당에 집중돼 있을 정도다. 문제는 민주당 안에서는 그런 선언이 가능할지 모르나, 국민의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은 초창기보다 더 증대하고 있다.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우려와 걱정은 한계선까지 도달한 상태다.국민은 김대중 대통령의 동족 간의 평화통일을 위한 열성과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가 심하므로 경제적 원조를 베풀면 15년쯤 후에는 통일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견해를 믿고 싶었다. 그런데 국민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너무 많은 원조를 했다. 그 결과는 핵무기 개발과 공산정권 굳히기에 도움을 주었다. 지금의 김정은 정권을 키워주는 결과가 되었다.노무현 정권은 어떠했는가? 우리 국민이 이런 상태로는 살 수가 없고 불안하여서 이민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의 무질서와 혼란 상태가 되었다. 국민에게 물어 보라. ‘노무현 정부가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인가?’라고. 그 주역을 담당한 세력인 86세대 운동권의 등단과 확장기였다. 대통령 자신이 자기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같이 불행한 대통령’은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몸소 남겨 주었다.그 뒤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운동권은 물론 문 대통령 스스로가 공은 내세웠으나 과(過)는 인정하지 않았다. 퇴임 후에도 자신의 임기 5년 동안에 쌓아 올린 정치적 업적을 윤석열 정부가 계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은 문 정부와 같이 가지 않는다고 추방한 윤석열을 왜 대통령으로 선출했는가?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권이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이며, 윤 정부가 계승해야 할 과업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묻게 한다. 정치 기반인 경제 분야는 어떠했는가? 이명박 정부를 계승했다면 경제성장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는 어떻게 했으며,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민주국가의 위상을 지켜 왔는가? 북한 동포를 뒤로하고 김일성 정권 세습화에 동조했다면 그것은 실정 중의 실정이다. 김대중 정신에 위배되는 결과가 되었다. 대한민국으로 귀순해 온 동포와 중국에서 우리 품으로 오려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처신은 앞으로도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할 과제다. 친북 정책은 북한 동포를 위한 절대적 의무와 권리이다. 김정은 정권을 위한 종북이 아니다.현재에도 민주당은 국정운영 방향과 방법은 물론 절차까지 관여하는 국회의 주도권을 행사한다. 국가를 위해서보다는 윤 정권을 타도하고 임기 내라도 재집권하겠다는 자세다. ‘그것도 애국심인가? 국민을 위한 정치인의 양심인가?’라고 국민은 묻는다. 누가 보든지 민주당은 국가보다는 정권을 위했고,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의 사당이 되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민주정치는 실종되었고 싸워서 이기면 그것이 정의가 된다는 개인과 집단의 투쟁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창기부터 실정에 앞장서 왔던 임종석 전 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송영길 전 당 대표, 각 분야에 자리 잡고 있던 운동권 출신의 잔여 세력이 이재명 대표를 앞세워 정권 재장악에 동참하려는 기세다. 민주당 안과 주변에 있던 친북좌파까지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선한 공존의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적 방향과 국민의 진실과 정의, 자유와 휴머니즘 정신이 보장, 구현되는 나라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잘못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진실과 정직 없는 ‘내로남불’의 정의관, 인격을 갖추지 못한 개인이나 이기적 집단세력에 정권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위하고 국민을 섬기려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여야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민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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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연세대 몀예교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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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그립다
-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반발로 전문의 파업이 대형 병원 중심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근무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시화되고 의료 공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안타깝기가 이를 데 없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가 문뜩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장기려 박사님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의사였다. 그래서 경성 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의과 대학과 김일성 종합 대학 교수를 지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1950년, 장기려 박사님은 철수하는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 아내와 5남매를 북에 둔 채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하였다. 그리고 부산에서 천막을 치고 복음 병원을 세워 행려병자를 치료했다. 장기려 박사님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하며 하루에 2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럴 뿐만 아니라 1959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간 절제 수술에 성공하는 등, 당시 우리나라 외과 의사 가운데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이 커지고 무료 진료가 불가능해지자 장기려는 1968년 한국 최초의 의료 보험 조합인 청십자 의료 보험 조합을 설립하였다. 청십자병원은 가난한 사람을 정성껏 치료해 줄 뿐만 아니라 치료비를 깎아 준다고 소문이 나 늘 많은 환자가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농부가 장기려 박사에게 하소연했다. “선생님, 제가 당장은 돈이 없지만 나중에 꼭 벌어서 갚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내일 당장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병원에 묶여 있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농부의 말을 들은 장기려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밤에 문을 열어 줄 테니 그때 가세요.” 농부가 깜짝 놀라자 장기려는 웃으면서 말했다. “병원에서는 아마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퇴원을 안 시켜 줄 거예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 도망을 쳐서라도 일을 해야 가족을 돌볼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장기려는 그렇게 말하고 농부에게 돈까지 쥐여 주었다. “얼마 안 되지만 차비나 하세요.” 농부는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는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기 돈으로 수술을 해 주고, 그나마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못하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다가 1995년 12월 추운 겨울날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내 마음이 그러하듯 창밖에는 겨울비가 밤새 주룩주룩 내린다. 오늘따라 ‘바보의사 성산 장기려 박사님’이 그저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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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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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기적의 시작’ 관람 후기
- ‘은종’이라는 동료 시민의 ‘기적의 시작을 보고’라는 관람 후기를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또 다른 다큐극 영화 ‘기적의 시작’을 보고 왔습니다.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을 보신 분이라면 더더욱 꼭 보십시오. ‘건국전쟁’이 큰 그림을 그리는데 치중했다면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 대통령의 디테일한 부분을 세밀히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건국 전쟁은 역사를 잘 모르고 일방적으로 세뇌 당한 분들에게 유익한 영화입니다. 4.19는 이승만이 원인인가? 김구의 정체, 런 승만의 문제, 한강철교 폭파사건 등 이승만 대통령이 오해받고 있는 부분의 팩트를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에 대한 역사를 잘 아는 분들이 보았을 때 거의 다 아는 내용이었고 소수의 부분은 새로운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의 시작은 자료를 수집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섬세합니다. 이승만에 대한 책 몇 권을 섭렵했던 분들도 새로운 내용을 보고 저런 자료를 어떻게 찾았을까 하고 그 수고에 감탄하게 됩니다. 어쩌면 흥행에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 이승만이 한성 감옥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과정이나 서거하기 전 기도한 장면 등을 삽입한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감명을 줍니다. 이승만의 삶은 기도에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기도로 시작한 나라이니 기도를 놓지 말아야 국가가 번영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만약 성도들이 단체관람한다면 ‘기적의 시작’이 더 감명을 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의 증언자들은 이승만과 직접 만난 분들을 등장시켜 훨씬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백선엽 장군,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 그리고 그 며느리의 증언은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사실적이고 감동적인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농지개혁, 6.25 전쟁에 대한 일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경위 등은 훨씬 더 자세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역사의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깜짝 놀란 것은 이승만의 경제에 대한 관심입니다. 벌써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 앞으로 한국은 공업국이 되어야 한다고 예견한 것은 대단한 통찰력이었고, 실제로 6.25 이후에 공업국이 되기 위해 그가 이룬 업적을 세밀한 자료와 더불어 제시한 것은 그동안 몰랐던 내용이었습니다. 다큐 영화가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데, 텔렌트 임동진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이승만을 잘 살려내었습니다. 아마도 무료 출연이었을 것인데, 눈물과 마음으로 연기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정말 사랑하는 대배우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무명의 배우들이 적절하게 사건들을 잘 재현해내어 다큐에 몰입할 수 있도록 톡톡히 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동안 런 승만, 독재자, 친일파 등등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이제는 바로 잡을 때가 되었다. 위대한 거인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에게 이승만을 바로 알릴 때가 되었습니다. 두 영화를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기적의 시작’은 섬세하게 그 안을 들여다 봅니다. 성경으로 비유하면 ‘건국 전쟁’은 마가복음에 비유한다면 ‘기적의 시작’은 요한복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둘 중에 한 영화만 선택하지 마십시오. 두 영화 모두 보시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요, 애국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건국 전쟁은 제법 관람객들이 있었는데, 기적의 시작은 관객면에서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점이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적의 시작’이 훨씬 더 애정이 갑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가슴에 더 와닿는다고 했습니다. 건국 전쟁을 보신 분들은 반드시 기적의 시작도 함께 보십시오. 다른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을 먼저 보셨습니까? ‘건국 전쟁’도 보세요. 두 영화가 결합할 때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총선 전에 두 영화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두 영화가 흥행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사인식이 바뀌도록 열심히 홍보하는 일입니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먼저 극장으로 가십시오. 교회 단체관람을 강력히 추천합니다.”라고 동료 시민 ‘은종’은 말했습니다. 김덕영 감독의 ‘건국 전쟁’이 개봉 27일만에 100만을 돌파하며, 다큐로는 드문 흥행 기록을 세우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그리고 ‘건국 대통령 이념 보급회’의 김효선 사무총장의 ‘이승만의 독립 외교 33년’ 등 다른 기록 영화들도 ‘건국 전쟁’과 거의 동시에 선을 보였습니다. 이장호 감독의 이승만 관련 영화 ‘하우보만의 약속’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상 매체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될 나라”라는 주장을 하며 반공 애국 진영, 특히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비방하고 폄훼하는 반역 세력의 전유물처럼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런 영상 매체가 이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밝히려는 일에 효율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승만이 ‘독재자’ 또는 ‘친일파’로 낙인 찍히며 국민의 뇌리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할 추악한 인물로 악마화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독립운동과 반공 투쟁에서 승리해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되었고, 공산군의 6.25 남침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고 부흥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쉽게 공산화되어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김일성의 지배를 받는 위성국가로 편입되었을 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적인 위인이자 천재였습니다. 그는 이 나라의 국부였고, 애국자요, 선지자요, 예언자요, 세계가 공산당을 열광할 때 “공산당은 망한다”고 외쳤습니다. ‘전시 중립론’이라는 논문을 쓴 국제 정치가였고, 훌륭한 선교사였고, ‘재팬 인사이드 아웃’의 저자인 작가였고, 민족 복음화를 소망한 하나님의 종이었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며, 그는 하나님 중심의 철저한 자유 민주주의 투사였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학력 소유자였습니다. 죠지 워싱톤대 학사였던 클린턴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하바드대 석사였던 오바마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프린스턴대 박사였던 윌슨 대통령과 동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도 이만한 학력 소유자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자유의 등불을 달아준 불세출의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탁월한 외교가였으며, 토지개혁을 단행했고, 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는 ‘반상 철패’를 했으며, 의무 교육을 실시했고, 여성들을 투표에 참여케 했습니다. 의회 정치를 실시 했습니다. 그의 애국정신과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 시대의 등불이었습니다. 전교조에 의해 역사 왜곡이 극에 달한 이 나라는 이승만을 바로 알아야 대한민국이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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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강석종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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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기적의 시작’ 관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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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영화 ‘기적의 시작’이 만들어진 배경 이야기
-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기적입니다.’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영화 '기적의 시작'을 만들고, 전국 개봉을 하기까지 모두 기적의 순간입니다. ■ 영화의 시작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저의 아버지께서 '이승만 대통령 영화를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하셨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하지 않은 제가 그 당시 더 기반이 없었던 시절, 그런 권유를 받으니 너무 막연하고 막막하게 다가 왔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에는 부모님 댁에서 같이 사는 것 외에는 따로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은 받지 말자'고 했고, 또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우리나라 영화계와 아무런 인맥도, 기반도, 심지어 카메라 한 대 조차 없던 아들이 이리저리 일감을 찾아다니는 모습에 안쓰러워 ‘카메라 한 대 얼마 하니? 카메라 한 대 사줄게. 그것 가지고 시작해 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것마저 거절했습니다. 많은 예술인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이 분야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누가 밥값을 내야 하는지 신경이 곤두섰고,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 다섯 정거장 정도는 교통비를 안 쓰고 걸어 다녔습니다. 물론 저의 집안이 그 정도 돈 못 쓸 정도로 여유가 없지는 않았으나, 저는 속으로 '이 나이에 돈벌이도 못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는 것은 사치다'라고 생각하며 가급적 걸어 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 온 저의 영화 인생은 그렇게 밑바닥부터 시작되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비록 독립영화이지만 조금씩 규모를 키워가며 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순회 상영을 다니며, DVD를 찍어 판매하는 수준에서 점차 작품을 작은 영화관에서부터 상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이 하나 둘 씩 영화관에 걸려 작품을 찾는 관객들이 늘었고, 이번엔 멀티플렉스 상영관 전국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을 지내면서 아버지의 권유를 당장 실행해 옮겨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었으나, 덕분에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일하거나 생활했던 분들을 만나 뵈면 꼭 이 대통령에 대해 질문하고 이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백선엽 장군님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뵌 분들은 그 당시에도 꽤 계셨으나, 백 장군님처럼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큰일을 하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던 분은 없었습니다. 백 장군님은 이승만 대통령과의 일화와 본인이 참여했던 전투에 대해 매우 실감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후방 전투 현장을 직접 보여주시며 설명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귀한 증언들은 매번 카메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기록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아 저는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습니다. 요즘과 달리 20년 전에는 6mm 테잎을 썼는데, 당시의 기록이 멀쩡하게 보존된 것도 작은 기적입니다. 한편 해를 거듭하며 시간이 지나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왜곡과 비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니, 멈추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국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어 '22년 12월부터는 아예 작정하고, 그동안 모았던 자료들과 추가 인터뷰를 통해 '기적의 시작'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 국민 대배우의 합류 ■ 제작 과정에서 국민배우 임동진 님도 합류하시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런 대배우분께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에 넣을 재연장면에 출연해 주시라고 요청하는 것은 큰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 배우님께서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셔서, 속으로 많이 놀랐고, 겸손한 모습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임동진 배우님과 같은 영화계 거물이 합류하셨음에도 제작환경은 딱히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제작진은 그 분 이름을 내세워 따로 모금하지 않았고, 제 성격상 여기저기 제작비 모금하러 다니기도 쑥스러워 그러지 못해서 프로듀서 김재동 목사님이 모금해 오신 제작비 내에서 해결했습니다. 그런 형편 속에 많은 분들의 우려와 달리 제작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 아들 이인수 박사의 생전 마지막 고백 기록 ■ 이번 작업에서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로 이 대통령의 쓸쓸한 말년을 제일 가까이 곁에서 지켜보셨던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입니다. '23년 11월 별세하신 이인수 박사님의 인터뷰는 결코 쉽게 성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품을 위해 그분의 증언을 꼭 담고 싶었으나, 그분의 체력에 한계가 많으셨던 때라 인터뷰 약속을 잡고 갔다가도 두 세 번 실패하여 헛걸음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인터뷰가 어렵게 되자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는 포기했습니다. 사모님이신 조혜자 여사께서 마치 곁에서 대신 말씀을 전하시듯 하고, 이인수 박사님은 옆에만 앉아 계십사 하는 게 저의 새로운 바람이자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약속도 없이 임동진 배우님과 이화장을 둘러 보러 갔다가 이인수 박사님 컨디션이 최상인 것을 발견! 당장 카메라를 켜고 마이크를 연결해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장비를 가져간 것도 다행이었고, 그게 이인수 박사님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습니다. 다시 봐도 당시 이 박사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모습이 역력합니다. 이 모든 것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 신앙인 이승만 재조명 ■ 이승만 대통령이 젊은 시절 선교사들이 전해 준 예수님을 한성 감옥에서 복역 하며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영접한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난제 앞에서 하나님께 매달렸고, 우리나라 첫 국회를 기도로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작품에서 비기독교인들을 의식해서인지, 기독교 색채를 빼고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 그런 이승만의 모습은 인간 이승만을 이끄는 원천적인 힘이었기 때문에 저는 제 작품에서 그런 부분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마지막 기도는 임동진 배우님의 뛰어난 연기력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해 줍니다. ■ 전국 극장 개봉 ■ 드디어 ‘24년 2월 22일! 기적의 시작은 전국 개봉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어렵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영화를 한 개 극장에라도 걸기도 어렵고, 극장에 걸었다 해도 관객들을 사로잡기에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 전문 인력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한 두 사람의 몫입니다.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전국 극장 개봉을 위해서 제작사들은 적게는 수 천 만 원, 많게는 수 억 원의 홍보비를 씁니다. 저희는 '기적의 시작' 홍보를 위해 쓸 수 있는 금액이 거의 없었습니다. 금액을 밝히기에 민망해 그럴 수는 없지만, 그 금액조차 제작 과정에서 다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홍보를 위해 쓴 금액은 전단지 인쇄에 30만원 가량, 작품을 소개해 주시는 유튜브 분들께 음료수를 사 드리거나 식사 대접을 한 게 전부입니다. 주말에는 감독인 제가 손수 전단지를 챙겨 광화문이나 시청 같은 곳에 가서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젊은이들 중에는 전단지에 이승만 대통령 얼굴이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접어버리며 불쾌감을 표현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전단지를 나눠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많은 홍보비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원초적인 홍보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SNS 홍보도 했으나 제가 인플루언서가 아니다 보니 효과는 미미했던 것 같습니다. 넉넉잡고 홍보비로 100만 원 정도 썼던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전국 개봉까지 이어진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렵게 잡은 서울 두 개의 극장(필름포럼과 허리우드). 시사회 이후 5개월간 상영을 통해 관객 수 천명이 관람하고, 입소문을 듣고 오는 관객 수가 줄지 않자 멀티플렉스에서 이를 눈여겨보고, 일단 전국 10개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을 준 것 같습니다. 수 많은 난관을 뚫고 드디어 전국에 소개되는 ‘기적의 시작’. 여태까지는 저와 조력자 분들의 힘으로 끌고 왔으나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렇게 극장에 걸게 되었는데 보러 와 주시지 않으면 허무하게 극장에서 내려지게 됩니다. 극장에 와서 봐 주시는 것은 작은 애국입니다. 교회에서 단체관람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CGV에 예매가 열립니다. 예매를 많이 해 주시면 더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여 더 많은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 권순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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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영화 ‘기적의 시작’이 만들어진 배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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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기적의 시작’이다!
- 스카이데일리 임명신 기자의 “[기획] 이승만 다큐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길 위에 김대중’ 압도”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권순도 감독이 20년 구상 끝에 작년 10월 내놓은 ‘기적의 시작’은 독립영화 특유의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건국 전쟁’ 흥행 속에 역주행 중입니다. 같은 주제의 두 다큐는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필히 두 편 모두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같은 목표, 다른 매력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1875~1965)을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월 1일 개봉한 김덕영 감독의 작품 ‘건국 전쟁’이 주목받으며 4개월 전 나온 권순도 감독의 작품 ‘기적의 시작’도 역주행에 가속도가 붙었다. 두 작품 다 철저히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된 다큐지만 흐느끼는 관객이 속출할 만큼 뜨거운 반응이다. 두 편의 이승만 다큐가 또 다른 역사 인물 다큐를 압도한 것도 눈길을 끈다. 훨씬 유리한 여건 속에 제작된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작 ‘길 위에 김대중’이 개봉 4주 후 12만 관객을 동원한 반면 ‘건국 전쟁’은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 수 18만 명을 돌파했다. 누적 관객 수 3위, 개봉관 수도 개봉 당초보다 3.3배 늘어난 상태에서 11일 누적 관객 수 24만 명을 넘어섰다. 다큐로선 이례적인 성적이 어디까지 갈지 관심을 모은다. ‘기념관 하나 없는 이승만’이 ‘기념시설 최다의 김대중’을 이겼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편 ‘기적의 시작’은 작년 10월 하순 서울 시내 단 두 곳(종로3가 낙원상가 헐리우드 극장·신촌 필름포럼)에서 개봉된 가운데 주로 각종 애국단체∙교회 등의 상영회를 통해 관람객을 늘려 갔다(현재까지 5000명 정도). ‘건국 전쟁’이 2월 1일 전국 CGV에 걸리고 화제를 부르자‘기적의 시작’ 역시 개봉 약 4개월 만인 22일 CGV 재개봉이 결정됐다. ‘기적의 시작’ ‘건국 전쟁’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졌고, 멸망의 위기를 넘어 훗날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틀을 구축했는지 조목조목 짚는다. 농지개혁, 문맹퇴치(교육개혁), 안보·경제발전을 담보한 한미 동맹, 자원 빈국의 산업화에 절실한 원자력발전의 토대 마련 등 다가올 산업화가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어떻게 준비됐는지를 두 편의 다큐 영화 는서로 다른 톤으로 설명해 준다. 각각의 장점이 있으며 지루하지 않을 반복 학습 효과가 기대된다.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을 다룬 최초의 본격 다큐 영화라는 의미 외에 애국지사로서의 역정과 기독교 신앙의 상관성을 조명한 점도 돋보인다. 창군 및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1920~2020)과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1931~2023) 박사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원로배우 임동진 목사의 이승만 연기 역시 독보적인 부분이다. 두 다큐는 1천 수백 년에 걸친 왕조 시대와 근대 식민지 시대를 겪은 중세적 공동체에서 자유 민주공화국 헌정 질서 마련이 얼마나 천지개벽할 일이었는지를 묵직하게 일깨운다. 공통된 주제지만 두 감독이 친분이 있거나 사전 협의한 것도 아닌데 내용상 겹치지 않는다.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 학습판이므로 둘 다 관람할 가치가 충분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공산화가 신생국들의 대세였던 시절, 이승만은 현대 국가(자유민주공화국)의 본질과 시스템을 이해한 유일한 한반도인으로 볼 만하다. 두 다큐의 시의성도 각별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오늘날, 정통성 논란은 결국 ‘이승만의 나라’ ‘김일성의 나라’ 양자택일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 세계사적 인물 이승만… 우선 다큐부터 ‘건국 전쟁’ 출연자의 한 사람인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전 이승만연구원장)는 연구원이 보관 중인 이승만 1차 자료 100박스에 대해 예산 부족으로 손을 못 대고 있다며 아쉬움을 수차례 토로한 바 있다. 그 자료들은 대부분 40년 망명 생활 중 세계정세를 전하거나 논한 신문·잡지 스크랩과 친필 메모들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세계사적 차원에서 연구돼야 할 인물 이승만’이라는 시각에 힘이 실린다. 이승만의 생애는 드라마틱하고 불가사의한 요소로 충만하다. 영화∙드라마 등 대중 서사 장르를 통해 그려질 날이 와야겠지만 일단 다큐가 절실했다. 관련 사실들이 극단적으로 왜곡되거나 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교과서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교과서 밖에선 악마화∙희화화됐을 뿐이다. 해석의 문제 이전에 팩트 자체가 엉터리인 경우도 많다.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가짜 뉴스·역사∙왜곡의 결정판 명저 ‘슬픈 중국’의 저자이자 ‘건국 전쟁’ 첫머리에 등장한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는 조선일보 칼럼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팩트를 지어 내는 역사가들’에서 “김덕영 감독의 작가 정신과 예술혼이 거짓 뉴스와 허위 정보를 마구 엮어 일방적으로 이승만 악인전(惡人傳)을 집필해 온 역사학계의 고루한 시대착오와 부족 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죽이기’ 최근 사례로 송 교수는 “(역사학자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박태균)”가 TV 교양 프로에서 이승만의 1952년 대선 승리에 대해 기호 1번을 독점해 대다수 문맹 유권자 몰표를 유도한 결과라는 취지로 설명한 점을 들었다. 이어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것과 김 감독이 당시의 선거 포스터를 꼼꼼히 뒤져 이를 입증해 냈음을 짚었다. 이승만은 기호 1번이었던 적이 없다. 이승만에 얽힌 대표적 오해인 6·25전쟁 발발 직후 라디오방송 틀어 놓고 도망갔다는 미확인 소문이 오늘날까지 조롱과 저주 담긴 별명 ‘런Run승만’으로 살아 있다. 김 감독의 ‘건국 전쟁’에서 ‘한강 다리 폭파’ ‘3.15 부정선거’ ‘하와이 도피설’ 등을 바로 잡을 증거들이 제시됐다. 또 한4·19 이후 이승만의 행보야말로 ‘독재자’ 낙인이 왜 부당한지에 대한 결정적 증거다. 자신과 무관한 부통령 선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무일푼의 독재자? 그런 인물이 과연 독재자일 수 있는지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묻고 있다. 한국인이 처음 만난 이승만… ‘건국 전쟁’ 감동 후기 이어져 조지워싱턴대(학사)∙하버드대(석사)∙프린스턴대(박사) 출신의 이승만이 얼마든 취득 가능했을 미국 시민권을 마다한 채 40년간 무국적자의 불편함을 견딘 사실에 김 감독은 주목했다. 아울러 미국 내 이승만의 족적이 그간 어떻게 왜 지워졌는지 현지 교민들 증언으로 전해진다. 1953년 정전협정 1년 후 미국 방문 당시 자유의 투사로 칭송받으며 뉴욕 시가를 대대적으로 퍼레이드한 영상은 ‘건국전쟁’을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이승만이 공산주의에 맞설 냉전 구도의 불가피성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미국 등 서방세계 조야에 열렬히 설명∙설득한 점도 부각된다. 그것이 대한민국 탄생 비밀의 한 측면이다. 공산주의의 본질·실상에 대부분 무지하던 시절이었다. 개봉 초기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만 네이버 영화면에 누락돼 있어 “좌편향 문화계의 이승만 지우기”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관람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육박했다. “덕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어 감사하다” “공산화 저지의 공로만큼은 이승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감상 후기가 가장 많다. 조선일보가 김 감독을 자세히 인터뷰한 것 또한 눈길을 끈다. 여기서 김 감독은“(이승만) 공부를 시작한 뒤 큰 반성을 하게 됐고 그를 비롯한 건국 세대에 대한 죄송함을 영화에 담았다”고 밝혔다. 2012년 유튜브에 유포된 악의적 이승만론(論) ‘백년 전쟁’이 오히려 일부 네티즌이 진실 찾기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것과 흡사한 경우라 할 것이다. 북한은 왜 그렇게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을까… 586세대 김 감독의 각성 김 감독은 1950년대 동유럽 국가들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들을 조명한 다큐‘김일성의 아이들’(2020)로 유명하다. 1만명 가량 동유럽에 분산 위탁돼 자라다 스탈린 사후 격변 속에 집단귀국 당한 후 김일성 유일 체제를 위해 잊혀진 존재들이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북한에 관심을 가지다가 1990년대 중반까지 평양에 ‘이승만 괴뢰도당 타도’구호가 있었음을 알게 됐으며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는지 궁금해졌다. 김 감독이 작품 구상 및 제작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은 이승만을 향한 집요한 폄훼가 “오랜 세월 좌파들의 선동에 의한 부당한 평가”와 “북한의 공작” 탓이 컸다는 사실이다. 김 감독 자신이 북한에 호감 내지 환상을 가진 586세대 일반의 감성과 역사관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그 폐해 또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거짓의 선글라스를 벗으면 평생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았고 애국애족의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했던 한 노인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며 울먹였다. 한 네티즌의 댓글 “대한민국이 버린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위대함은 대한민국 국민만 모른다. 참담한 현실에 부끄럽고 한없이 죄송하다”는 심정과 고스란히 겹친다. ‘건국’ ‘산업화’ 없이 ‘민주화’는 불가능… 그러나 뒤틀린 역사교육 김 감독의 말대로 이승만은 “(파고들수록)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한 한국사의 유일한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 그렉 브레진스키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미래 비전과 안정된 보장 시스템이 존재해야 건국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듯이 “바로 그걸 이승만이 해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결코 일본의 패망으로 당연히 얻어진 게 아니었다. 김 감독은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경제 개발이란 기관차가 달린 것”으로 두 지도자의 시대를 요약한다. 핵심적인 통찰이다. 산업화를 통한 중산층의 성장 없이 이뤄지는 ‘민주’란 ‘인민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중국(중화인민공화국)도 모두‘민주’를 전면에 내세운다.문재인 정부 시절 현행 헌법에서‘자유’를 삭제하고자 시도한 행위의 의미와 그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알아차리게 됐다. ‘독재자’라는 꼬리표가 3대 세습체제 속에 신격화된 북한 권력자들에게 붙는 대신 변명없이 자진 하야한 이승만에게 당연한 듯 붙는 게 온당한지 이제라도 저마다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이승만=살인마’의 관점을 일반화시키면서 제주 4.3의 비극이 대한민국 수립 및 그것을 위한 한반도 유사 이래 최초의 보통 선거(5.10총선) 저지를 위한 남로당의 무장 폭거에서 출발한 것임은 도외시한다. 이것이 지난 30년 우리나라 제도권 안팎의 역사교육 현실이다. 놓칠 수 없는 ‘기적의 시작’ 권 감독의 20년 구상 끝에 태어난 ‘기적의 시작’은 공산주의가 유라시아 대륙을 뒤덮었던 시절 그 끝자락 한반도에서 어떻게 자유 민주공화국이 수립·유지될 수 있었는지, 이승만 덕분에 가능했던 대한민국탄생의 기적과 그것이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토대가 됐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독실한 크리스천의 면모도 조명했으며 원로배우 임동진의 이승만 재연으로 다큐 이상의 감동을 더했다. 백선엽 장군 인터뷰와 ‘기적의 시작’ 개봉 며칠 후 별세한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전 명지대 법정대 학장) 박사의 영상은 진귀한 역사적 자료가 됐다. 본인들의 생전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대통령 하야 후 전주 이씨 문중의 주선으로 이승만 슬하에 30세때 입적한 이 박사와 그 가족은 지난 60여 년간 이승만 죽이기의 실질적 희생자였다. 권 감독에 따르면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 박사가 기적처럼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한 마디 한 마디 온 힘을 다하듯 간신히 해독 가능한 발음으로 건국 대통령의 애국 열정과 말년의 부자(父子)인연을 증언한 모습이‘기적의 시작’에 실려 있다. 특히 망명 생활의 근거지였던 하와이에서 몇 개월 휴식한 이승만 내외가 귀국하려던 당일 한국 정부로부터 하와이 잔류를 종용당한 장면, 이후 우울 속 건강 악화로 현지에서 임종을 맞게 된 과정이 생생하게 회고됐다. ‘건국전쟁’에서 하와이 망명설이라는 거짓 뉴스 유포의 전후 맥락을 짚었다면 ‘기적의 시작’은 당사자들의 내면을 전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현대사 공부? 화제의 이승만 다큐 두 편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에 맞선 체제 정당성 대결의 최전선에 있다. 총선을 약 2개월 앞둔 시점에서 또 하나의 선거전이 될 수 있다. ‘서울의 봄’은 대다수 관객에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허구의 틀을 빌어 사실상 실존 인물과 역사를 거꾸로 해석한 상업영화다. ‘서울의 봄’이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적폐의 나라’라는 인식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반면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절체절명 위기와 우여곡절 속에서 이승만이라는 한 애국자가 지향한 가치를 되새긴다.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자유민주 헌법) 위에 박정희의 산업화(근대화)가 가능했다는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1979년 10.26으로 중단될 뻔한 산업화를 완결짓고 민주화 시대를 예비한 게 전두환의 신군부, 즉 제5공화국이다. 그렇다면 영화 ‘서울의 봄’이 기도한 신군부 악마화는 대한민국 헌정사의 부정 아닌가. 이원석 검찰총장이 몇몇 동료들과 ‘서울의 봄’을 관람한 인증 샷과 소감을 남겼다. 기존 민주화운동 세력의 신군부 서사에 충실한 발언이었다. 건국의 역사를 제쳐둔 채 민주화를 말할 수 있을까.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관람 권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 요인과 ‘73년생 한동훈’ 등 여당 인사들의 관람 필요성이 역설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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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기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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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독립운동 정신으로 4.10 총선 승리하자!
- ‘한국 NGO연합’ 및 ‘자유정의시민연합’의 글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3.1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이번 4.10 총선에서 3.1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좌파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자. 4.10 총선은 대한민국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차대한 선거다. 선거라기보다 제2의 6.25와 같은 선거전쟁이다. 4.10 전쟁에 나서는 국민들은 죽을 각오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 나 하나쯤의 자만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경각에 달린 나라를 구해야 한다. 자유대한민국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4.10 총선에서 반드시 자유 우파세력이 국회 다수석이 되어야 하는 것은 진정 역사적 대업이고 사명이다. 문재인의 5년과 더불당이 다수당으로 국회를 농단한 8년 동안 우파들은 충분히 경험했다. 다시는 무도한 반 대한민국 세력이 정부와 국회를 장악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적 합의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만에 하나 아직도 안일하고, 나약한 국가 정체성으로 대한민국 이념과 사상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차제에 분명하고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갖도록 분발해야 할 것이다. 영화 ‘건국전쟁’을 봤다면 자유의 가치를 정말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은 좌파시만단체와 협약을 맺어 그들에게 최소 10석의 비례대표 자리를 주기로 합의한 모양이다. 그들 대부분은 친북, 종북단체 출신들이며, 이념 측면에서 북한과 궤를 같이 하는 세력들이다. 따라서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을 많이 지지하게 되면, 극단적으로 친북, 간첩세력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 대한민국 최악의 시나리오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은 공산화되었다. 당시 미군 철수 후 미군이 남기고 간 많은 최신 무기와 보급품, 병력에서도 월맹군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던 월남이 왜 공산화 되었을까? 당시 월남은 월맹에 비해 정신력에서 이미 패했다. 그리고 정부, 군, 정치판에 월맹의 간첩들이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었다. 그것도 고위직에 자리했다고 하니 월남은 월맹의 손바닥 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떨까? 아마 지금의 대한민국도 그 당시의 월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에도 북한 간첩이 35만이 침투해 있다는 소리가 탈북한 북한 고위인사들을 통해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침묵은 동조와 마찬가지다. 간첩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떠할까? 오늘은 3.1 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그러나 독립운동 기념일행사를 할 정도로 나라의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해서 오늘 우리는 주사파와 친북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한 제2의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여 4.10 총선에서 좌파세력들을 패퇴시킬 것을 천명한다. 여기에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 등 위대한 선배들의 뒤를 이어 좌파세력을 척결하고, 자유우파세력 모두가 한 마음으로 4.10 총선 승리를 위해 진군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2024년 3월 1일 한국NGO연합/자유정의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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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 야당 국회의원들의 저잣거리나 뒷골목에서 하는 언행
- 야당 특히 더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쏫아내는 발언을 보면 고등생 수준과 유사하다. 청소년기를 대표하는 고등학생 시절은 아직 성년기에 이르지 못한 정신상태이나 몸은 이미 성인처럼 성숙했기에 자신의 정체성도 확립하지 못핸채 정서적으로 불안과 혼란을 초래하는 반항기라고 표현하듯이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일부 국회의원들은 국회에서 의사진행 중에 행하는 발언이 형사사건에 해당하지 않는 것을 배경으로 국회의정 질문이나, 국정감사나 청문회에서 행하는 발언의 수준과 내용을 보면 마치 고등학생들의 승강이를 놓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히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이 얼마나 고귀하며, 대단한 존재인가를 말장난이 아닌 국가발전을 위한 대안이나 문제제기를 해야 하나, 대표적인 인사로 박찬대 더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들어보면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험담과 잡담으로 신성한 국회를 난장판으로 장식했다. 문제는 그렇게 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는데, 오히려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것을 환호하는 더민주당 국회의원들 역시 한 통속이며, 비록 숫자는 적으나 전투력이 연약해서 이것을 실랄하게 비판하지 못하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도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품위있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하나 이재명 더민주당 대표 체제에서는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피해보려는 수작으로 정치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언어와 행동은 그들 자신을 기초의원 국회의원이 아닌 기초의원 정도의 품위로 떨러뜨린다. 사진출처 : 국회방송, 박찬대 더민주당 원내대표 박찬대 더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9월 4일 오전 약 40여분간 이어진 국회 본회의장 교섭단체 연설에서 국체적인 팩트없이 아전인수격 발언의 전형인 “윤 대통령은 헙법 수호 의지가 없다” “ 김형석 독립기념관장과 김문수 고용 노동부장관을 즉각 해임하라” 심지어 친일 굴종외교를 한 사실이 없음에도 “정부의 일방적 친일 정책에 힘을 얻은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 왜곡을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러다 독도마저 일본에 내주고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주하지 않을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이 대응해야 하나 늦으니 대통령실이 최근 “독도를 선동 소재로 삼아 국제분쟁지역으로 만드는 것이 일본이 원하는 전략”이라고 반박했음에도 ‘독도 지우기’를 기정사실화하고 ‘친일몰이’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더민주당 서미화 의원은 지난 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운영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더민주당이 아무리 윤석열 대통령실과 여당에 대해 총공세를 펼쳐도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에게 “친일파 밀정입니까?”(민주당 서미화), “아닙니다”(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스스로 밀정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겠죠.”(서 의원) “윤석열 정부가 독도를 팔아 넘기려 한다”며 괴담을 흘리는 수준의 발언으로 국회일정을 채우며 국회의 세비를 받으려 해서는 안된다. 사진출처 : 국회방송, 서미화 더민주당 국회의원 진성준 더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일제 식민지를 미화하거나 친일 반민족 행위로 찬양, 고무한 사람은 공직을 맡거나 공공기관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법제화 할 것”이라며 이를 곧 당론화할 것이며,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부정히고, 훼손하는 행위도 엄격히 금지하고 처벌하도록 법제화할 것”이라며 무슨 대단한 일을 처리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자신들의 영웅인 김대중, 노무현의 친일관련 발언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그러나 사실은 독도에 대해 세계적으로 독도를 지우려했던 더민주당의 흑역사를 보면 첫째 세계인으로부터 독도 영유권을 포기한 것은 1999년 1월에 김대중 정권이 독도가 아닌 울릉도를 기준으로 신한일어협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사실상 독도를 포기한 듯하나 반드시 독도의 영유권은 지속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둘째 이 협정에 가장 찬성했던 사람이 노무현 부총재와 정동영 대변인이었다. 2004년 7월에 제주도에서 한일정상회담이 있었으며, 셋째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렀던 사례에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이때 일본 언론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렀다며 독도를 일본에 용인했다고 언론에 보도되어, 일본인들의 가정용 TV를 장식하는 이슈가 되었으며, 또 2018년 평창올림픽이 있을 때 노무현 정부의 한반도기에서 독도가 지워졌다. 비록 해적선에 아무리 선량한 해적이 배를 타도, 그 배에 일단 해적선을 타면 해적이 되듯이 사법리스가 있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무리 강경투쟁의 일환으로 설쳐된다 하여도 국회의원들이 막가파 수준의 어린애처럼 발언하는 것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그러면서 더민주당은 일본보다 더 많이 나오는 중국의 핵오염수에 대해 거론해 본 일도 없다. 과연 더민주당은 중국에서 나오는 삼중수소와 일본에서 나오는 삼중수소가 달라서 그럴까? 더민주당은 일본의 핵 오염수에 대한 허위 선전과 선동으로 인해 수산사업에 종사해 온 수 많은 사업자들이 받아온 고통과 고초에 대해 수산관련 사업자들에게는 어떻게 보상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더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저잣거리나 뒷골목에서 하는 싸구려 언행을 벗어나 대한민국 국가발전을 위한 대적인 비판과 법률제안으로 박찬대나 서미화의 틀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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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 야당 국회의원들의 저잣거리나 뒷골목에서 하는 언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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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RE100과 재생에너지 전환의 필요성
-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라면 삶과 세상의 질적인 면에서 발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곧 전기 에너지의 생산과 사용에 있고, 전기의 생산은 석탄, 석유와 가스, 원자력을 활용하여 전기를 생산하지만 아직도 전기 생산의 고마움은 잘 알자 못하고 있다. 전기는 단순히 밤에 어두움을 물리치고 각종 주택과 아파트와 사무실과 회사를 밝히는 전등뿐만 아니라 에어컨, 크고 작은 사업장, 회사 등 어느 곳에 사용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나 전기의 생산에는 관심이 없는 이율배반적인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깊은 무지일 수도 있다. 세계 최초의 발전기는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페러데(1791~1867)이에 의해 개발되었고. 화석원료인 석탄, 석유, 천연가스로 전기를 생산하거나 물로 전기를 생산하거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원자력 발전소나 태양열이나 풍력으로도 발전소를 설치하여 전기를 생산하기도 한다. 사진제공 : 코리아쏘나 에너지 태양광발전 설치 작업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 연합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전기의 생산은 석탄발전소 37%, 원자력 28.5%, 가스 25.5%, 기타 6.8%로서 여전히 화석원료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처지이다. 유엔은 ‘RE 100’ 즉 “재생에너지 전기((Renewable Electricity) 100%”라는 의미로 기업활동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겠다고 자발적인 글로발 캠페인을 벌였으며,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Carbon Disclosure Project)와 파트너쉽을 맺은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 주도로 2014년에 시작되었으며, 그 목적은 심각하게 직면한 글로벌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활동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필요한 전기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여 이산화탄소를 0%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RE100이 필요한 이유는 지구의 이상기후로서 2020년 태풍 뱀코가 필리핀 수도 마닐라를 심각하게 덮쳤으며, 올해 2월 미국에서는 이상 한파로 영하 41도를 기록하는 등 500 여곳에서 최저 기온 기록이 깨졌고, 6월 캐나다에서는 기온이 50도 가까이 치솟는 백 년만의 폭염으로 100여명이 숨졌으며, 7월 중국에서도 천년 만의 폭우로 3백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같은 달 서유럽에서는 백년 만의 폭우로 2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우리나라도 2018년 역대급 폭염, 2019년 역대 가장 많은 태풍, 2020년 역대 최장 장마를 겪었고, 2023년 서울의 폭염일수 역시 역대 3위였으나 2024년 역대급 폭염일수를 갈아치울 폭염현상이 나타났다. 사진제공 : 브리스뉴스, 해상풍력발전소 사진 RE100으로 가기 위해서는 전력부문의 생산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최우선이며, 태양광과 풍력으로 인한 재생에너지 기술이 검증되었고, 이에 2019년 미국은 130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석탄발전량을 추월했으며, 2021년 상반기 선진국 모임인 OECD 국가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평균 33%였으며, 발빠른 유럽의 덴마크 77%, 독일 43%, 프랑스 25%, 북아메리카의 캐나다 71%, 일본 22%등이나 우리나라는 꼴찌로 겨우 7%로 수준이다. RE100의 목표연도는 2030년으로 불과 6년을 앞두고 있기에 지난해 9월 21일 윤석열 대통령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무탄소 에너지의 국제 확산과 선진국 개도국간 기후 격차 해소를 위한 국제 플랫폼으로 “CF(카본프리 무탄소) 연합”을 제안했을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 되었다. 태양광과 풍력에너지가 시대적으로 필요에 직면했지만 지난 날 문재인 정부에서 무분별한 임야의 난개발과 산사태 등으로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거부감이 많은 재생에너지에 대해 2030년까지 유엔의 RE100의 기준을 준수해야 하기에 올바른 이해와 자세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은 유엔 RE100 기준에 미흡해서 제조업 수출이 제한 받거나 범칙금을 물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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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RE100과 재생에너지 전환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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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하동진교파출소 경찰 전원 중징계 돼야
- 가끔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일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 비밀이 숨겨진 사건이다 경찰을 시민의 지팡이로 부르는 이유는 시민이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 주질 바래서 일 것이나 하동 진교파출소의 실종신고가 된 40대 여성이 경찰 순찰차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단순 경찰관들의 근무태만에서 비롯되었다는 조사결과는 사건을 덮기 위한 처방이라고 보여 진다. 만약 이번 하동진교파출소의 비상식적인 사건에서 CCTV가 없다면 파출소 직원 중 누구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 규명되기 어렵고, 누구에게도 명확한 책임을 묻기 어려운 사건이다. 공무원의 업무는 항상 대민관계에서 벌어지고 대개 파출소에서 일어나는 일은 고위층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의 일상적인 일과 관련될 수 있기에 항상 CCTV가 가동되어야 하며, 만약 CCTV로 확인할 수 없다면 그 자체가 파출소장 등에게 항상 책임을 부과해야 지켜질 것이다. 경남 경찰청은 지난 8월 30일 ‘하동 진교파출소 순찰차 사망사건’은 “당시 파출소 경찰관들이 기본 근무를 규정되로 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방문했을 때도 근무태만이 확인된다”며 밝혔듯이 지적장애가 있었던 40대 여선 A씨가 하동경찰서 소속 진교파출소에 주차된 순찰차에서 약36시간이나 방치된 뒤 안에서 문을 열수도 없고, 앞자리로 갈 수도 없는 상태에서 고체온증 등으로 사망했다고 추정했지만 좁은 공간에서 꼼짝할 수 없는 상태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경남경찰청의 CCTV에 의한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순찰차로 들어가기 전에 파출소 문을 여러 차례 흔들거나 두드렸고, 이후 다시 문이 열린 순찰차에 탑승했다고 하며, 당시 파출소에는 민원업무를 처리하는 상항근무자 2명과 출동대기 근무자 2명 등 4명이 있었으나 그나마 상황근무자 2명은 숙직실에 있었고, 대기근무자 1명도 2층에 있었으며, 다른 1명도 파출소 1층에 있었지만 근무위치가 아닌 회의실에 있었다 하니 제대로 근무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A씨가 발견된 순찰차는 숨진 채 발견될 때까지 36시간 동안 최소 7차례는 순찰을 나갔어야 했으나, 한 번도 나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근무교대시 차량을 점검한 후 인계해야 한다는 경찰경비원칙을 이행했다면 A씨가 발견될 때까지 최소 3차례 차량점검 기회가 있었고, 하동파출소 경찰들이 근무와 순찰, 근무교대시 차량점검만 제대로 했어도 A씨는 사망추정 시간인 16일 오후 2시쯤까지 최소 5번은 목숨을 건질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A씨는 지적장애 등으로 오랜 기간 병원에서 입원해 있었으며, 이 사건에 앞서 한 달여간 3차례나 실종신고가 있었을 정도였고, 이날도 A씨는 주거지를 나와 4시간 가량 배회하다 파출소를 찾아간 것으로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집을 찾지 못해, A씨에게 각인된 민중의 지팡이이자 시민의 지팡이인 경찰에 도움을 받고자 파출소에 간 것으로 추정되나 오히려 목숨을 잃었다. 당연히 공무원은 행위에 따라 평가의 대상이며, 선행과 악행에 대해 상벌을 받아야 하기에 인사혁신처에서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 실현을 위하여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공직사회의 확실한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공감되는 2020년 업무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공무원의 상벌 중에는 벌에 해당하는 징계로는 중징계로서 파면, 해임, 강등, 정직이 있고, 이중 파면과 해임은 공무원의 신분을 완전히 해제하며, 경징계로서는 감봉과 견책 등이 있다. 물론 징계 대상자가 상훈법, 정부표창규정, 모범공무원규정 등에 의하여 징계의 감경을 받을 수 있으나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에 의하여 감경을 받을 수 없는 사항 중 제4조(징계의 감경) 제7호의 「적극행정 운영규정」 제2조제2호에 따른 소극행정(이하 이 조에서 “소극행정”이라 한다)에 해당되므로 하동 진교파출소 소장 이하 전원은 징계의 감경을 받아서는 안된다. 이번 사건에서 CCTV로 확인된 사항만 보드라도 정상적인 근무를 태만한 진교파출소장을 전원이 중징계를 받아야 하지만 이런 허술한 직무태만을 허용한 하동경찰서장과 산하 파출소 감독 관련 부서의 책임자도 중징계를 받아야 하는 것은 일벌백계의 교훈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신보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진교파출소 경찰관들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미덕과 미풍을 실천하는 경찰공무원들이 많이 있기에 여전히 시민의 지팡이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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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하동진교파출소 경찰 전원 중징계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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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순의 약선요리]가을의 양생과 건강한 생활 방식...당뇨를 예방하는 여주볶음
- 올해 서울과 부산은 각각 ‘118년’과 ‘120년’ 만에 기록적인 열대야를 경험했다. 자연은 거짓이 없고, 우리의 삶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문명을 통해 편리와 안락을 추구하지만, 자연을 극복하는 일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영원한 숙제다. 속담에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7월은 더위가 한창이고 8월에는 서서히 가을이 다가옴을 뜻한다. 농촌은 이 시기에 잠시 한가해지기도 한다. 지금은 열대야가 극성을 부리는 시기이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입추가 지나면 하늘과 땅의 기운이 변하기 시작한다. 양기의 기운이 점차 쇠퇴하고, 음기가 상승하며 자연은 봄과 여름의 생장과 번영에서 가을의 수렴과 수집으로 변화한다. 가을 양생의 원칙 가을철 양생의 원칙은 정신을 가다듬고 기운을 안정시키며 건조함을 완화하는 것이다. 또한, 폐를 억제하고 간을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방법으로 인체의 오장(五臟)이 균형을 유지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황제내경'에서는 "양생을 잘하는 사람은 가을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며, 정신을 가다듬어 나쁜 생각이나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가을철 적합한 음식과 양생 방법 가을철 양생 음식의 기본 원칙은 ‘추불식신랄, 소흘신랄식물(秋不食辛辣, 少吃辛辣食物)’이다. 즉, 평소보다 신맛을 약간 더하고, 매운맛은 줄이는 것이 좋다. 인체는 자연의 기운에 순응해야 오장(五臟)의 평형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여전히 습기와 열기가 대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건비거습, 익위생진(健脾祛湿, 益胃生津)’을 실천해야 한다. 이는 소화기관을 튼튼하게 하고, 습기를 몰아내며 몸 안의 진액을 보충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을은 마르는 기운이 강해지는 계절이다. 산의 나무들이 수액을 줄여 단풍이 들듯이, 인체 역시 폐(肺)가 마르는 경향이 있다. 폐는 금(金)의 기운을 띠고 있으며, 가을과 그 기운이 서로 통한다. 따라서 진액을 보충할 수 있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주, 홍당무, 토마토, 동과, 고구마, 연근, 옥수수, 포도, 배, 복숭아, 파인애플, 멜론 등 시고 달며 약간 쓴맛이 있는 식재료가 좋다. 가을철 질병 예방과 건강 관리 만약 인체가 가을의 기운에 제대로 순응하지 못한다면, 건조한 기운이 과도해지면서 바람과 합세해 ‘풍사(風邪)’를 일으킬 수 있다. 풍사는 주로 폐와 연결된 살갗의 털과 코로 침입한다. 폐의 발산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이를 빠르게 대응할 수 있지만, 인체의 저항력이 부족하면 각종 가을철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당뇨 예방을 위한 여주 볶음 가을철 건강을 위한 추천 음식으로 ‘여주 볶음’이 있다. 여주는 폭염으로 인한 열기를 식히고, 간을 해독하며 심장의 피로를 풀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고혈압과 당뇨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어 건강한 가을을 보내는 데 적합한 음식이다. 자연의 변화를 이해하고 이에 맞춘 생활 습관과 식습관을 가지는 것은 건강한 삶을 위한 중요한 방법이다. 가을의 기운에 맞추어 몸과 마음을 돌보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건강을 유지해보자. 재료-여주1개, 올리브유, 약선 간장 만드는법 : 여주를 씨를 빼고 썰어서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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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만순의 약선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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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순의 약선요리]가을의 양생과 건강한 생활 방식...당뇨를 예방하는 여주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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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 한동훈과 이재명의 여야 대표회담 미합의 의제
- 집권당 대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야당 192석을 지휘하는 제1야당 대표 이재명이 조만간 국회에서 첫 번째 공식 회담이 예상되나, 아직 양측에서 합의된 의제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회담에 앞서 한동훈 대표는 자신의 의지대로 채상병 제3자 특검법을 발의하고 싶어도 사실상 당내외에서 좌절되어 추진하지 못하나 반대로 이재명과 야당은 채상병 특검을 통해서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로부터 탈출할 꺼리를 찾고 있기에 치열한 기싸움과 실리에 매몰될 것이다. 두 사람은 대권 양자구도에 대한 암묵적 선호속에 이재명은 특별사면된 김경수에 대한 견제와 한동훈은 대권 양자구도에 대한 간절한 바램을 가지고 각자의 주장을 앞세울 것이나, 오는 10월부터 있을 재판에서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약화시켜야 하고, 한동훈은 보수층의 대선후보로서 지지세가 확산되는 기회가 되기를 갈구할 것이며, 또 양측의 입장이 소극적인 합의로는 양측의 지지층을 만족시킬 수 없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합의 혹은 발표가 예상될 수도 있다. 양측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이는 민감한 사항은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와 채상병 특검법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전당대회 당선 사진 국민의힘은 탄핵과 청문회 등 정쟁정치 중단,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등 정치개혁, 금투세 폐지를 주장할 것이고, 더민주당은 채상병 특검법,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법, 지구당 부활 등으로 주장을 예상하나 이중 정치개혁과 지구당 부활은 합의가 상당히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대표는 집권여당 대표로서 당정관계의 파트너쉽을 보더라도 윤석열 대통령과의 협력관계가 필요하나 동시에 윤 대통령과 차별화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이 사장되기에 가능한 일반인들이 상상하지 못한 한방을 합의할 가능성이 많고 이것이 파격적이라면 원외대표는 당내 수용 여부에 대해서 현직 국회의원들 사이에 상당한 파열음이 예상된다. 이재명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85.40%라는 높은 지지속에 당 대표에 선출됐고, 최고위원들도 5명 모두 친명으로 채워진 만큼 확실한 당내 입지에 못지않은 여야 대표회담에서 합의가 있어야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친문의 김경수 전 지사를 잠재울 수 있고, 오는 10월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재판에 대해서도 사법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한 방이 필요하기에 실속이 중요하다. 사진출처 : MBC, 더민주당 이재명 대표 전당대회 당선 사진 조만간 국회에서 열릴 예정인 대표회담은 21대 국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연금개혁, 금융투자소득폐지, 채상병 특검 등에서 어떤 합의를 도출하느냐에 따라 두 사람의 정치적 입지가 달라지고 이런 민생문제 외에 동상이몽을 꿈꾸나 이재명의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회담과 재판까지도 연기된 만큼 생중계하기로 한 양측회담에서 여야간 어떤 합의가 도출될지 초미의 관심사다. 한 대표는 채상병 특검이나, 김건희 특검을 받으면 당원들과 보수측으로부터 아킬레스를 손상할 것이요, 이재명은 이 두가지 중 한 가지도 도출해 내지 못하면 허세 당 대표가 될 것이다. 보수층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애정은 첫째 더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대한 거부권 행사, 둘째 외교와 안보에 대한 우려 없애는 것, 셋째 부정선거에 대한 뿌리 뽑는 것이며, 채상병 특검이나 김건희 특검을 수용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바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위험한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기에 2016년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2017년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라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를 원하지 않으며, 이런 보수층의 입장을 얼마나 잘 반영하며 국회의원 0선임에도 불구하고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판단되는 것이 한동훈 대표에 대한 국민의힘 당원과 보수층의 보편적인 시각이라고 보여진다. 이재명과 문재인과 조국이 살아남는다면 윤석열은 탄핵 될 것이며, 뿐만아니라 구속될 것이고, 윤석열이 이재명과 문재인과 조국을 구속시키면 정상적인 국가시스템이 작동할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동훈과 이재명 두 대표의 첫번째 기싸움과 실리는 어떻게 결정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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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황영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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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 한동훈과 이재명의 여야 대표회담 미합의 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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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대한민국 건국일 불태운 이종찬 광복회장
- 한 사람의 지도자는 그의 추종자가 있다면분란과 분열을 조장하는 역할이 검증되는 때이다. 최근 대한민국 건국절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시작되고 있으나, 국민의힘은 일관성이 있게 1948년 8월 15일로 인정했으며,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도 1948년 8월 15일로 인정했으나 유독 이재명 더민주당 대표에 이르러 1919년 4월 23일을 주장하는 모순이 일어난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제79회 광복절을 맞아 국제적 기준과 국민들의 일반적인 시각이 아닌 친중반일세력을 형성하며 독립유공자의 세도를 누리는 자들이 자신들에게 공적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사를 흔드는 주장으로 분란으로 만들며 8.15 경축식을 둘로 분열시키는 일을 벌여왔다. 제79회 광복절을 앞두고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임명과 관련 이종찬 회장의 불만이 광복절에까지 언쟁을 벌리고 있으나 주관적이고 특수적이지 않고 객관적, 상식적인 주장이어야 한다. 사진출처 : ohmyTV, 이종찬 광복회장 8.15 경축식 축사 이에 대해 역대 대통령들은 건국일에 대한 주장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은 물론이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말했으며, 경축일 연설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50주년”, “대한민국 건국 50년사는 파란의 시기”,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48년 이날 나라를 건설”, 2007년 8.15경축사에서 “62년 전 해방됐고, 3년 뒤 나라를 건설”했다며 연설했으며, 심지어 헌법재판소도 2014년 12월 19일 결정문에서 “해방 이후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인정했으며, 유엔총회에서도 1948년 12월 12일의 결의안에서도 “대한민국 정부,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받은 특별한 날로 인정 받는 등 1919년이 영토와 국민과 주권이 있었던 시기는 아니다. 김진태 강원특별자치도지사는 8.15 경축사에서 1948년 건국에 관련한 발언과 관련하여 민주당 강원도의회 의원들과 강원평화경제연구소, 공무원노조 강원본부 등도 성명을 내고 김 지사를 비판했는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민주당원과 이재명 당대표의 당원은 다른가? 이처럼 이들 단체는 당연한 것도 거짓 논리로 일관하니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인가? 세계 중요국가 중 미국은 1776년 7월 4일13개 주 대표들은 대영제국으로부터 미국독립을 선언한 7월 4일이나 우리와 다른 것은 국가의 3요소인 영토, 국민, 주권이 존재했으며, 중국은 1949년 10월 1일마어쩌뚱이 중화인민공화국 건설을 선언해 공산주의 중국이 태어난 날이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마치 일본의 식민통치시절이 아무렇지 않는 듯 일제강점기를 건국일로 인정하자는 터무니없는 반 광복적인 주장으로 인해 나라가 온통 이념전쟁을 벌였고, 분열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자신의 모순된 일방적인 주장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는 것보다 이시영 조부의 큰 뜻을 따라 지도자다운 면모를 광복회원들과 자신의 후손들에게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자신의 이름 그 명성을 남긴다는 말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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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대한민국 건국일 불태운 이종찬 광복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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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그 날
- 제79회 광복절 기념행사는 보수와 진보 혹은 우파와 좌파간에 극심한 시각차를 드러냈고, 해방 후 첫 번째로 8.15 따로 경축식이 진행됐고, 그 평가도 극대극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첫째 8.15 통일 독트린 발표, 둘째 윤석열 대통령의 통일로 가는 완전한 광복 실현, 셋째 8.15 경축사 키워드가 자유 50회, 통일 36회, 북한 32회, 국민 25회, 대한민국 18회, 국제사회와 통일대한민국과 북한주민과 인권은 10회, 자유통일은 9회로 사용할 정도로 자유 혹은 통일 혹은 자유통일에 대한 언급이 95회일 정도로 과거의 어떤 정부보다 자유통일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언급했고 일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민주노총는 뼈속까지 친일이라며 비판했으,며, 자유통일평화연대는 한반도에 전쟁을 현실화하는 광복절 경축사라는 비난을 했으나 이것은 이념전쟁 중인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남북대화를 위한 실무차원의 대화협의체 설치를 제안하고, 통일에 대한 비전과 구체적 방안을 발표하면서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라며 통일추진 전략도 함께 제시했다. 사진출처 : mbc, 윤석열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문제는 광복절의 기념행사에 가장 앞장서야 할 광복회의 이종찬 회장이 독립기념관장 인사와 관련하여 1948년을 건국절로 하자는 것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이며, 이는 엄청난 매국행위라며 광복절 행사에 불참하자 해방이후 처음으로 좌우가 갈라진 광복절 행사를 하게되었다. 이종찬 회장은 용산이 광복절 행사 참석을 회유했으나 거절했다며, 오히려 한국의 반역자들과 일본의 우익이 내통한 위기감이 든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우익을 반역자로서 일본과 내통했다는 문제제기를 했고, 이는 내정된 독립기념관장의 역사관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했다. 이종찬 회장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친일 뉴라이트”로서 일본식민지배를 정당화했다는 것과 자신이 독립기년관장으로 추천한 백범 김구 선생의 장손자 김진 외 1인 탈락되자 이런 일들이 이종찬 회장의 광복회와 야권의 친일몰이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정부 주도의 제79회 광복절 행사에 광복회와 야당은 불참하며 각각 광복절 행사를 따로 하는 분열과 비난이 있었다. 그러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이를 부인하며 이종찬 회장 등에게 공개적인 토론을 제한했다. 김형석 관장은 “끝내야 할 역사전쟁”이라는 책 내용과 상반되는 주장이라며, 자신은 친일도 아니며,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무시하고, 1948년을 건국절로 제정하고 한다는 주장에 대해 전혀 잘못된 주장이라며,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건국되지만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1919년 3.1 운동으로부터 시작해서 1948년 건국의 완성될 때 가지 29년간의 기간을 건국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임시정부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나 건국절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김구 선생에 대한 폄훼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런 사실이 없으며 정치선전으로 표했다. 그런데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비판하면서 8.15 광복절 행사에도 불참한 이종찬은 누구인가? 출처 : ohmy TV. 이종찬 광복회장 경축사 그는 중국 상해에서 태어났고, 독립운동가 이회영과 이시영은 그의 조부이며, 집안은 대부분이 좌파 공산주의자였고, 1960년 육사에 입학했고,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에 참여하여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 보수인사로서 국회의원 4선을 했고, 1997년 좌파 김대중과 손을 잡고 초대 국정원장을 맡았고, 대한민국 북파 정보원들에 대한 정보를 북한에 주어 휴민트 3,000여명을 몰살케 한 의심을 받고 있던 자가 광복회 회장이 된 자체가 크나 큰 문제였다. 이렇게 우파와 좌파를 넘나들며 권력의 단맛만 본 것도 문제이나 그가 김대중 정부의 국정원장시시절 휴민트 약 3,000여명에 대한 정보가 북한으로 넘어가 그들이 북한 당국에게 몰살당했고, 휴민트를 몰살시켰다는 자가 우파-좌파-우파를 간첩처럼 넘나들며 윤석열 정부에서 광복회 회장을 맡아 또다시 내란과 마찬가지로 광복절 행사마저도 분열시켰으니 이자는 자진사퇴 혹은 강퇴시키고 북한에 파견되었던 사망한 휴민트에 대한 재조사로 책임을 지워야 한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경축사에 대해 통일정책의 변화에 대해서는 지지하나, 국민의 뜻을 거르는 인사는 결정적 흠결이라며 전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은근히 저지시켰다. 이종찬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밝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그 날에 필요한 인사가 아니라 그가 해야 할 일은 광복회의 회장이 아니라 집단살해자 휴민트에 대한 책임이다. 통상 국가의 3대 구성요소인 영토, 국민, 주권이라는 원칙과 대한민국 헌법을 보더라도 건국일을 1919년 상해임시정부로 보는 것보다는 1948년 8월 15일이 더 합법적, 합리적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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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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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의회에 대한 거제시민의 선택과 민의
- 국가는 영토, 국민, 주권의 3가지 요소를 가지듯 거제시는 행정구역, 시민, 주권을 가지며 시가 해야 할 일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데 거제시장과 시의원을 통해 실현된다. 여러 가지 현상 중 2024년 8월 현재 거제시가 맞이한 최대의 난맥은 무엇이며, 비록 지방의회이나 이것을 효율적으로 풀기 위한 국민의힘과 더민주당의 여야 간 의제는 무엇인가? 최근에 드러난 거제시의 난맥상은 첫째 거제를 주도적 움직여야 할 거제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의 재판으로 인한 위기와 지역구 국회의원의 “유사 사무소 사용 혐의”로 인해 거제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고발을 받아 수사중에 있다 보니 중심세력의 빅뱅현상이며, 둘째 거제시의회의 구성이 16명의 시의원 중 8명은 친여성향이며, 나머지 8명은 친야성향으로 거제시의회는 국민의힘과 더민주당이 선의의 협치가 없이는 아무것도 안되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셋째 거제시의회의 민의에 입각한 원칙과 헛된 명예로 인한 진정성의 부재로 인한 문제이다. 현 거제시장과 시의원들은 2022년 7월 13일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서 입성했으며, 그 임기는 4년으로 2024년 8월 9일 현재 임기 절반이 넘어감에 따라 하반기 원구성을 앞두고 있기에 무엇보다도 정치적 신의와 민의가 반영되어야 함에도 어느 당에서 누가 거제시의회의 의장과 부의장 또 상임위원장의 자리를 놓고 합의하지 못한 채 이권다툼에 몰입한 상태이다. 사진출처: LIVE유튜브, 거제시의회 임시회 전 전경 우선 거제시의회는 14명의 지역구의원과 여야 1명씩의 비례대표 등 16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민의힘과 친여 성향은 신금자 거제시 의회 의장을 비롯해 윤부원, 김동수, 김선민, 김영규, 조태용, 정명희, 양태석(무소속, 가선거구) 의원 등 8명과 더민주당은 김두호 부의장을 비롯해서 최양희, 노재하, 박영옥, 안석봉, 이미숙, 이태열, 한은진 의원 등 8명으로 엄격히 말해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거제시장이 국민의힘이기에 백중세를 이뤘고, 팽팽한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거제시의회를 선택한 거제시민들의 교훈은 여야가 협치를 하라는 거제시민의 명령이며, 이 교훈은 여야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잡아야 할 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반기 거제시의회의 원구성에 있어서 국민의힘이 의장 등 중요 상임위를 차지했다면 하반기에는 더민주당에게 양보하는 것이 도리이나, 이런 합의까지 했으면서도 지난날의 합의와 약속을 깨뜨리고 아직도 원구성을 하지 못하는 것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거제시의회는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약속을 지키고 양보해서 하루 빨리 거제시의 발전을 위한 원구성과 효율적인 상임위의 구성과 거제시민 누구나가 알 수 있도록 홈페이지도 보수하여 의회의 효율적인 기능을 위해 어떤 상임위로 구성돼 있는지에 대해 공개해 주시길 요망한다. 거제시의회는 제1차 적으로 통영시 화장장 사용(약 99억원)을 포함한 약 460억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심의하고 확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제,통영,고성의 중심지인 거제시에 세무서, 법원, 검찰청, 화장장 등이 왜 통영에 있어야 하며, 거제시민들이 당연히 향유해야 할 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거제시 정치권의 통렬한 반성과 함께 진정성 있는 의회활동을 기대해 본다. 뿐만아니라 추후 의사일정도 명쾌하게 결정해서 어떻게 하면 거제시에 1천만 관광액을 유치할 것이며, 거제시를 아시아의 최대, 최고 관광지가 되게 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 거제시를 대표하는 거제시장과 거제시의회는 한화오션과 삼성정공업이라는 세계적 양대 조선소와 더불어 남해안 최고의 관광명소인 보고를 가진 천연적 관광지를 활성화시켜 자영업자들의 천국으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고 서일준 국회의원은 국회와 중앙정부에서 윤준영, 정수만, 전기풍 경남도의원은 경남도청에서 기량을 발휘해 거제시 혁신적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거제시민과 소속정당은 다를찌라도 거제시장, 거제시의회 의원, 경남도의회 의원, 국회의원이 거제시의 백년대계를 잘 설계하고, 현실성 있는 KTX역사의 위치 제고와 미래 발전을 위한 계획과 실천에 한 마음이 되어 뛰어 주시길 20년차 거제시 발전연구회장으로서 당부를 드린다. 거제시민과 시장, 시의회가 거제시의 비전을 새롭게 정립하고 원팀으로 뛸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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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의회에 대한 거제시민의 선택과 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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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指鹿爲馬)가 된 더민주당의 탄핵 중독
- 비록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이기에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마지막 단추까지 무난히 잘 끼운다. 영웅들이 천하를 얻기 위해 호연지기로 상대 정당과 정치인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과 논쟁을 벌인다면 지극히 정상적이겠으나 당원들과 국민들은 어젠가 자신의 목표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내리막길로 걸어 비참한 막을 내린다. 사람에겐 돈, 여자, 권세를 맡기면 정체성이 들어나 듯 자신이 쥔 권세로 아래위 사람들을 농락하여 마음대로 부려 마치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것을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하나 이처럼 우겨서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은 한때 세도를 부리는 듯하지만 결국은 비참한 처벌로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이 인생의 교훈이지만 아직도 더민주당은 이것을 깨닳치 못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에게 사로잡힌 더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안량한 지식으로 체면만 유지하는 이재명 사건의 판사들은 대장동, 백현동, 위례신도시 개발비리, 성남FC, 불법후원금, 위증교사,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포 등 11개 사건혐의에 7개 재판을 받게 된 이재명의 어떤 매력에 빠져 나라와 당을 바로 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국회의원 뺏지를 달고 가짜 출세하기를 바라는가? 사진출처 : 채널A, 이재명 더민주당 대표 사진 그러나 더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눈에는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없으나 진작 국민들과 역사는 그들을 매국노보다 못한 자이며, 개만도 못한 자로 여길 것을 어째 모르는가? 해병대 채상병 사건은 2024년 7월 19일 경북 예천군의 집중호우로 인해 발생한 민간인 실종 수색작업을 하다가 익사한 순직사건으로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의 수사외압이란 주장과 더민주당이 박 대령의 수사외압 주장을 사건으로 몰아 수 차례 특검을 시도한 바 있다. 이 사건은 박정훈 대령이 “책임자 처벌돼야 억울한 죽음을 막는다”며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혜”를 주장하여 국방부 장관과 사단장 등의 처벌을 주장해 왔으나, 경북 예천경찰서에서 수사한 결과 해병대 1사단 7여단장 등 현장 지휘관과 간부 등 총 6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혐의로 송치되었을 뿐, 장관과 임성근 정 해병대 1사단장은 불송치로 결정되었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더민주당 등 야당은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되나? 하고 대통령이 격로했다는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장하고 있으나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로서 크고 작은 국군의 조직과 편성은 법률로 정하나 대통령은 헌법 제74조 1항과 국군조직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군통수의 권리가 있기때문에 통수의 방법은 대노소노가 문제가 아니다. 사진출처 : 끝까지 라이브, 우원식 국회의장 사진 더민주당은 국회 192석이라는 야당의 다수의석을 앞세워 2회에 걸쳐 탄핵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자 잔머리로 국회청원을 활용하여 국보법 위반과 전과 5범의 범법자가 제기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 즉각 발의를 요구하는 ”대통령 탄핵 청원“이 지난 7월 21일로 143만 4,784명의 동의로 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지난 7월 26일 두 번째 청문회를 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청문회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에 불을 붙이려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청원을 주도한 종북 좌파단체인 촛불승리전환행동(약칭 ”촛불행동”) 대표 권오혁은 공식적으로 야당의 탄핵열차를 출발시켰으나 첫째 채상병 사건이 재판 중에 있다는 사실, 둘째 수사 중인 청원사안은 접수하지 아니한다는 점, 셋째 국가를 모독하는 내용, 넷째 국회법 제123조 4항에 의거 윤석열 대통령 탄핵청원 결의안은 헌법과 청원법 절차에 위반한 것이기에 국민의힘 한동훈 당 대표는 국회의장은 접수 혹은 수리해서는 안되는 사항이므로 이를 위반한 우원식 국회의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정청래 위원장과 간사 등을 고발처리해서 응징해야 한다. 사진출처 : JTV NEW,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정청래 위원장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를 비롯한 신임 지도부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특검에 응하느냐? 혹은 제3자 특검을 하느냐 등 잔머리를 굴리지 말고, 헌법과 법률을 어긴 더민주당 출신의 우원식 국회의장과 정청래 법사위원장 그리고 청원을 제기한 권오혁부터 고발하여 처리하시라. 만약 더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나라를 위해 내가 국회의원 안하고 차라리 바른말 해서 자녀들에게 올바른 국가를 물려주겠다고 각오한다면 이런 나라가 되지 않고 올바른 나라가 될 것이다. 중독의 대표작인 것이 마약중독이듯이 더민주당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는 정치생명을 건 사투와 국가발전을 위한 실용적이면서도 전 국민이 동의하는 “뉴리더 기수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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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황영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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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指鹿爲馬)가 된 더민주당의 탄핵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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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무리한 탄핵추진과 역풍
- 더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를 방해를 목적으로 검사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고, 희대의 전과 4범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무려 10가지 범죄혐의로 인해 사면초가에 빠진 듯하다. 더민주당의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한 방법은 대략 3가지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첫째는 야당은 문 대통령이 임명한 문형배 헌재판사를 소장으로 만들려는 법률적인 준비이다. 윤후덕 더민주당 국회의원은 헌법재판소 소장의 궐위시 권한대행 임명을 현재는 시행령에서 법률규정으로 상향시키는 헌법재판소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이것은 헌법재판소 판사의 임명은 재판관 회의에서 선출하였으나 혹은 임명 순서가 빠른 사람이 선출되었는데 이것을 법적으로 규정하여 강제력을 강화시키겠다고 하나 현재의 이종석 헌재소장의 임기를 앞두고 여권에서는 이종석 헌재소장의 연임을 구상하고 있으나 야권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헌법재판관이 헌재소장이 될 수 있도록 조치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이건 일부 검사들에 대한 탄핵은 물론이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국회에서 의결, 통과되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으로 만들기 위한 치밀한 준비와 작전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사진출처 : TV조선, 이재명 더민주당 대표 둘째는 더민주당 이재명 대표 구하기의 일환으로 이재명 재판에 방해되는 판, 검사와 장관을 모조리 탄핵이라는 이름으로 직무를 중지시켜 재판에서 유리하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 수사에 관련한 검사를 포함해 모두 4명의 검사에 대해 탄핵안을 발휘했으나 이는 국회의 입법권으로 행정부의 법 집행 기관인 검사의 수사권을 묶으려는 위헌적 발상이다. 탄핵대상의 검사는 장시효가 이미 진술한 김영철 검사, 이화영을 회유했다는 박상용 검사, 13년 전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모해위증건 엄희준 검사, 윤석열 대통령 수사와 관련한 강백신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더민주당이 발의하고 의결한 것은 모순 중의 모순이다. 특히 강백신 검사는 이재명의 목을 조아 오는 경기 부지사 이화영의 대북송금 관련으로 성과를 내고 있고, 야당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엄희준은 대장동, 백현동을 수사해온 검사이다. 셋째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회 탄핵청원을 활용하고 있다. 더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방탄을 목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가운데, 또 야당의 탄핵청원이 1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야당이 주말마다 하는 모든 집회는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올 하반기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시나리오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려고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사진출처 : TV조선, 이재명 더민주당 대표 그러나 실제로 더민주당이 준비하고 있는 이재명 보호용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5가지 탄핵이유는 첫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관련, 둘째 남북간 긴장고조, 셋째 강제징용해법의 잘못, 넷째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한 김건희 여사 양평고속도로 관련, 다섯째 문재인 정부시절 18개월이나 탈탈 털어서 죄목을 발견하지 못해 기소하지 못한 도이치모토스 주가조작 관련 건으로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사항이 없는 것을 대한민국의 현명한 국민들이 더민주당 국회의원들보다 어리석을 줄로 알고 기망하려고 난장판을 피우는 어리석은 더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의 코메디다. 그렇다면 오는 9월 6일에 있을 대장동 실무책임자인 도시개발공사 고 김문기 전 처장을 모른다고 진술한 공직선거법 관련 허위사실 공표로 2022년 9월 재판에 넘겨졌으나 기소된지 1년 안에 마무리해야 하는 공직선거법 재판이 기소 2년 만에 이재명 대표의 최후진술 후 검찰의 구형이 이루어지고 검찰 구형 1~2개월 안에 판사 선고가 이뤄지면 결과를 알게 될 것이다. 이건 포함 공직선거법 재판은 1년 이내기에 1년을 초과한 건의 판검사를 모두 고발해야 한다. 만약 이재명 대표가 지난 대선의 공직선거법 소송에서 100만원 이상의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면 더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반환, 보전을 받은 비용일체를 국고로 반환해야 하며, 추후 5년간 취임하거나 임용될 수 없어 대선후보로도 출마할 수 없기에 더민주당은 멘붕이 올 것이다. 이에 대한 종결은 국민의 신망을 받는 깨끗하고 유능하며 공익과 사익 그리고 국익과 특수집단의 이익을 구별할 줄 아는 당사자에 대한 배려와 적절한 소명과 공정한 소송지휘권을 발휘한 판사의 출현과 동시에 이재명의 10가지 범죄협의는 차례대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결국 국민을 무시한 더민주당은 다가오는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크나 큰 역풍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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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석 칼럼]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무리한 탄핵추진과 역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