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8(토)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실시간뉴스
  • 원암 장영주 칼럼,대한민국과 대박민국 (상)
    대한민국과 대박민국 (상) “대한(大韓)‘이란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일통’의 거국적인 꿈을 마침내 이루었다는 가슴 뜨거운 선언이다. ‘대한제국(1897년~1910년)’은 나라의 주인이 황제라는 뜻이었으나 결국 경술국치로 멸망하였다. 9년 뒤인 1919년 3월 1일 ‘백성(국민)’들의 자주적 결행으로 기미년 삼일만세 운동이 일어난다. 한반도의 독립과 민주화를 향한 폭발적인 기운은 들불처럼 맹렬하게 국내외로 퍼져나간다. 당시 지구촌의 생령의 2/3가 서구제국의 식민철권통치로 신음하고 있던 터이다. 동방의 한 모퉁이의 작은 나라에서 점화 된 평화의 횃불이 인류의 자유와 인권보호의 크고 강력한 시발점이 되는 전기가 되었다. 한 달 뒤인 4월 10일 상해 임시의정원 첫 회의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가 정해진다.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는 뜻이 한마음으로 통한 것이다. 황제가 주인인 ‘대한제국’으로 멸망했으니 국민이 주인 되는 ‘대한민국’으로 흥해보자는 독립투사들의 통찰력이자 결단어린 선택이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제정은 대한제국으로의 복국(復國)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현대적인 체제의 국가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한 번도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조선의 역사에서 단 10년 만에 미래의 자유사회로 순간 이동한 셈이니 역사적인 대박이 터진 셈이다. 이 또한 인류의 미래를 위한 거룩하고 빛나는 선언이 아닐 수 없다. 대한의 ‘한(韓)’이란 글자는 순수한 우리말인 ‘한’을 한자에서 음차 한 것이다. 우리말의 ‘한’은 중앙아시아의 ‘칸’과 동의어로 지도자, 중심, 시원, 밝다, 크다. 영원하다 등등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숨을 내 쉬거나 들이 쉴 때를 ‘호흡’이라고 하고 ‘하하하’ 웃고 ‘흑흑흑’ 흐느끼고 피곤하거나 마음이 어두우면 절로 ‘한숨’을 쉰다. 이처럼 ‘한’은 기본적인 생명원음이기도 하다. 6월이 되면 침략의 역사와 이를 물리치고 자유를 되찾으려고 생명을 초개처럼 버린 선열들의 뜨거운 한숨이 내 생명의 숨결 속에서도 거울처럼 비추어진다.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1일은 국가제정 ‘의병의 날’이고 6일은 ‘현충일’이다. 현충일이 6월 6일로 지정된 것은 고려 현종 5년, 망종(芒種)날을 기해 조정에서 장병의 유골을 집으로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는 기록에서 기인되었다. 보리가 익고 모내기가 시작되는 날인 '망종'은 농경사회에서는 “가장 좋은 날”인 만큼 마땅히 선열에 제사지내는 날이었다. 1014년의 일이니 천 년 전부터 생겨난 전통이다. 1592년 6월1일, 홍의장군 곽재우가 의병을 이끌고 ‘정암진 전투’에서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 거둔 날이다. 그러나 6일 후, 조선 최고의 명장 신립 장군이 이끄는 정규군은 충주의 탄금대 전투에서 전몰당하면서 천추의 한을 남긴다. 1592년 6월 16일이 되자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옥포에서 해전으로는 첫 대승을 거둔다. 1949년 6월 26일,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김구 선생’이 남북의 충돌을 막고자 동분서주하다가 흉탄에 쓰러졌다. 꼭 1년 뒤인 이듬해 6월 25일, 북한 김일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습 남침을 함으로써 동족상잔의 비극이 탄생한다. 한국인 250만 명, 중국인 100만 명, 미국인 5만4천 명 등 4백만 명 정도가 사망하였다. 남한은 산업시설 43%, 주택 33%가 파괴됐으며 북한은 공업생산력의 60%, 농업생산력의 78%가 파괴되었다. 6.25동란은 인류 역사상 4번째로 피해가 큰 전쟁으로 기록되고 초토화 된 한반도는 허리가 동강 난 채 지금껏 분단이 고착되어 있다. 그러나 불탄 자리에도 생명은 강인하게 돋아나듯이 우리는 결코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난다. 6.25때 태어난 신생아들이 73세가 된 지금 ‘대한민국(大韓民國)’은 2차 세계대전 후 태어난 140여개의 신생국 중 산업화, 민주화를 이룬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개발해온 무기들이 이제는 세계적인 방산수출품이 되어 나라의 경제에 도움을 주고 6위의 군사력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 2023년 5월 26일, 우여곡절 끝에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니 대한민국 앞에 ‘우주의 문’도 활짝 열렸다. 누리호는 설계, 제작, 시험 등 모든 과정이 국내 기술로 개발되었다. 이로서 적은 인원과 최소한의 예산으로 ‘미사일 7대 강국’ 반열에 오르니 강대국들과의 경쟁에 뛰어든 지 불과 30년 만에 이룬 대박쾌거이다.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고, 신의 목숨 또한 스러지지 않았음에 적도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今臣戰船 亦有十二 臣若不死 則賊亦不敢侮我矣) 모든 것을 빼앗긴 전장에서 자신의 목숨으로 마지막 승리를 이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우렁찬 숨소리이다. 그렇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결코 꺾이지 않는 것이 대한국인이다. 대를 이어 물려받은 불퇴전의 용기와 공생의 지혜로 인류 진화를 선도하는 것만이 우리 대한민국의 크고 밝은 대박 사명인 것이다.
    • 주요뉴스
    2023-05-30
  • 장군의 마음 제5화 /‘다시 부르는 빛의 노래’
    장군의 마음 5화 /‘다시 부르는 빛의 노래’ 올해로 광복절(光復節)이 77주년이 되었다. 나라를 되찾은 것을 왜 빛을 회복했다고 할까? 나라를 잃으면 인간의 자유와 생명체로써의 존엄한 빛을 잃기 때문이다. 오직 나라를 되찾음으로써 생명의 빛을 회복할 수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와 땅을 가로채고, 일본은 아예 침략한 적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우리의 옛 역사가 너무 찬란하여 차마 똑바로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의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는 건 우리도 마찬 가지이다. 이스라엘교육에서 역사과목은 오전으로만 편성되는데 학생들의 정신이 더 또렷할 때를 택한 것이다. 이 시간에는 할아버지 같은 ‘랍비’가 학생들의 골수에 이스라엘의 혼을 각인하듯이 자신의 생명을 다 쏟아 부어 가르친다. 이 장면을 직접 본 어느 서울대학교 교수는 “나는 과연 저렇게 뜨겁게 제자들을 교육하고 있는가!”라는 자성의 글을 썼다. 만주에서 발흥한 청나라 12명의 황제의 성씨는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청의 개국시조도 ‘애신각라 누루하치’이고 마지막 황제 역시 ‘애신각라 부의’ 이다. ‘애신각라’란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말자.’ 는 청 황제들의 삶의 목표이자 통치 이념이었다. 고구려와 발해, 여진족의 청나라로 이어지는 만주 땅 일대가 우리 겨레의 옛 땅임을 증명한 사람과 자료는 수없이 많다. 안동 출신 ‘이원태’(◎坮)는 우리 민족의 이동에 따른 강역의 변천을 ‘동이구족(東夷九族)’의 역사로 삼아 학문적으로 정확하게 그렸다. 더불어 환국의 환인, 배달국의 환웅, 옛 조선의 단군 47대의 역사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이원태가 교관으로 재임하였던 ‘신흥무관학교’는 만주 서간도에 우뚝한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1910년, ‘우당 이회영’, ‘성제 이시영’의 여섯 형제들이 지금의 6백억 원에 추산되는 엄청난 가산을 정리하여 설립한다. 1932년 ‘우당 이회영’은 독립작전 수행 중 체포되어 ‘다이렌 수상경찰’에서 고문치사로 순국하시니 향년 65세였다. 형제들은 광복을 보지 못한 채 고문사, 병사, 객사, 아사한다. 다섯째인 ‘이시영’만이 살아남아 대한민국의 초대 부통령에 임명되지만 머지않아 사임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일부 재산의 환급을 제안하나 이시영은 재산을 찾겠다고 독립 운동한 게 아니라며 거절한다. ‘아흔 아홉 칸’으로 유명한 안동 ‘임청각’의 ‘석주 이상용’ 일가도 엄청난 가산을 한 톨 남김없이 정리하여 동참한다. 곧 태어날 손주가 이미 남의 땅이 된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인이 되게 할 수는 없다며 고향을 등지고 엄동설한에 기어이 만주로 향한다. ‘석주’는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대통령)에 선출되기도 하지만 74세로 결국 남의 땅에서 돌아가신다. 천신만고 끝에 독립을 이루고 자기의 땅에 대한민국이 건국하였음에도 석주의 후손들은 집 한 채 없이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들은 다만 3천5백 명의 독립군들 핏줄 속에 민족혼을 심기 위해 일심으로 모든 것을 바쳤다. 거룩한 빛을 광복하려는 그 정신이 ‘신흥무관학교 교가’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의 *영절에 여러 만만 *헌원 자손 업어 기르고/ *동해 섬 중 어린 것을 품에다 품어 젖 먹여준 이가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중략-/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 내어 새나라 세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청년들이라./두 팔 들고 고함쳐서 노래하여라./ 자유의 깃발이 떳다.” 이 가사는 중국대륙의 주요 거점과 서북, 서남 전체가 한민족의 고토이자 활동무대였음을 상기시킨다. 장차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독립군들이 웅장한 가슴을 북처럼 울리는 노래가 아닌가. 가사 중의 ‘중국을 업어 기르고 일본을 품어 길렀다.’는 대목은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도저히 근접할 수조차 없다. 그 교가를 지은이는 ‘석주 이상용’이다. 이 사실은 ‘석주’의 손자며느리인 ‘허 은’님의 회고록에서 밝혀진다. 1910년의 신흥무관학교 교가는 놀랍게도 고구려인들의 애창곡이었던 ‘고구려인의 노래’와 뜻과 기상이 그 맥을 같이 한다. ‘고구려인의 노래’ “오호 어리석은 한나라 어린 애들아 요동은 향하지 마라. 개죽음이 부른다./ 문무의 우리 선조 *한웅이라 불렀느니/ 자손들은 이어져서 영웅호걸 많단다./ 주몽태조 광개토님 위세는 세상에 울려 더할 나위 없었고/ *유유, *일인, 양만춘은 나라 위해 옷 바꿔 스스로 사라졌다./ 세상 문명은 우리가 가장 오래니 오랑캐, 왜구 다 물리치고 평화를 지켰다./ *유철, *양광, *이세민도 보기만 해도 무너져서 망아지처럼 도망갔다./ *영락기공비는 천 척 만 가지 기가 한 색으로 태백은 높단다.“ 같은 시대인 1400년 전, 중원대륙의 농민들도 “요동에 가서 억울하게 죽지말자.”는 노래를 불렀다하니 안팎이 꼭 들어맞는다. 우리의 정신과 강토의 회복을 목숨으로 구했던 선열들의 빛나는 마음이 각자의 가슴에 되살아나길 기원한다. 가족을 향한 ‘효심‘과 나라를 향한 ’충성‘, 나아가 지구사랑을 이루는 무수한 홍익독립군을 양성하자. 그때 한,중,일 삼국과 인류의 평화가 지구촌 위에 아름답게 펼쳐질 것이다. (끝)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화가.
    • 주요뉴스
    2022-08-24
  • 장군의 마음 4화 / "또 다른 의병 항왜 ‘사야가(沙也可)와 준사(俊沙)’ "
    장군의 마음 4화 제목 : "또 다른 의병 항왜 ‘사야가(沙也可)와 준사(俊沙)" 430년 전, 일본이 조선을 침공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잔인한 폭력에 노출 된 조선은 당시 국민의 반이 죽거나 다쳤다. 대대적인 그 후유증은 조선의 명줄을 끝끝내 쥐고 흔들었다. 어쩔 수없이 국가적 전쟁에 휘말린 각국의 장졸들 또한 생각이 없을 리 만무하다. 자신들이 전형적인 약탈전쟁의 비극에 강제로 동원된 존재임을 자각을 하는 무리도 있었다. 일본의 내전 중 ‘히데요시’에게 잔혹하게 정복되는 과정에서 가문전체가 몰살된 경우도 있었다. 꼭두각시 같은 처지에 빠진 용병 이란 지괴감에 빠진 왜군들도 있었다. 이처럼 왜군 중에 조선군에게 투항한 왜군을 ‘항왜’(降倭)라고 하였다. 반대로 조선에서 일본군으로 투항하여 앞잡이가 된 자들은 ‘순왜’(順倭)라고 하였다. ‘항왜’들은 ‘예의지국 조선’의 높은 문화를 존중하여 나름 잘못된 침략이라는 판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개인으로 또는 부대 전체가 투항하기도 하여 항왜의 수가 1만2천명에 이르렀다. 돌격장, 중간계급, 병사들도 있어 탁월한 능력과 충성심으로 많은 전공을 세운다. 병자호란까지 ‘나의 나라-조선’을 위해 출전도 하며 이 땅에 대를 이어 뿌리 내린다. 그중에 안골포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항복하고 귀순한 ‘항왜’로 준사(俊沙)가 있다. 영화 ‘한산’에서는 물론 감독의 설정에 따른 것이지만 ‘전체를 꿰뚫는 핵심’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키워드 있다. 그것은 바로 ‘의(義)의 가치’에 대한 ‘이순신 장군’과 포로가 된 ‘준사’의 문답이다. 준사가 이순신 장군과 독대하는 장면에서 준사는 “내가 사천에서 당신을 쏘았다.”고 고백한다. 준사는 죄고의 지휘관인 장수(이순신)가 위험을 무릅쓰고 최 일선에서 전투에 임하는 것을 적선인 맞은편의 왜선에서 선명하게 보고 있었다. 부하(나대용)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는 장군의 모습에서 ‘의리’를 보았기에 비록 적이지만 큰 감동을 받는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부하들을 사지로 내모는 왜장과 비교 되는 장면에서 준사는 큰 각성을 얻는다. 그리고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 간절하게 묻사오니 부디 답하여 주십시오.”라고 질문을 한다. 이순신 장군은 '의(義)와 불의(不義)의 전쟁'이라고 답한다. 약탈을 위한 ‘나라와 나라의 전쟁’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구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의미이다. 장군의 답에 준사는 진심으로 감화되어 항왜가 되고 끝까지 조선군을 돕는다. 영화 ‘한산’에서 준사의 활약은 그 비중이 아주 크다. ‘와키자카’의 조선인 애첩의 비녀와 자신의 목걸이가 같은 무늬임을 발견하고 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확인한다. ‘와키자카’의 애첩은 군관 ‘임준영’에게 정보를 주고 있었다. 발각이 되자 그 비녀를 뽑아 ‘와키자카’의 가슴을 찌른다. 준사는 혀를 물고 자결 하려던 그녀를 탈출시키고 서신을 자신의 목걸이를 신표로 이순신 장군에게 전한다. 일본군이 전주성이 아니라 전라 좌수영을 직격하려고 웅치로 향한다는 일급 군사기밀이었다. 그의 신물인 목걸이와 ‘와키자카’의 조선인 애첩의 비녀와 거북선 용머리 밑의 충파용 기둥은 똑같은 ‘귀면상’의 모습이다. 무서운 도깨비 같기도 한데 바로 ‘배달국 제14대 천황’인 ‘치우천황’이다. ‘전쟁의 신’인 치우천황이 철제투구를 쓴 ‘동두철액(銅頭鐵額)’의 모습이다. 이 형상은 실로 4천 7백여 년 만인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붉은 악마’의 엠블럼이 되어 대한민국에 부활한다. 영화 ‘명량’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 선실에 치우천황이 그려져 있다. ‘김한민 감독’이 진정 하고 싶은 우리 역사에 대한 뜨거운 속마음이다. 그의 삼부작인 ‘노량’, ‘한산’, ‘명량’의 숨어 있는 진짜 주제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준사는 곧바로 웅치 전투에 합류해 의병들과 함께 왜군에 맞서 싸운다. 영화 종반부 의병부대장 ‘황박’이 전사하고 준사도 죽을 위기에 몰리지만 ‘황진’의 구원군이 등장해 준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준사는 '의(義)' 자가 적힌 의병 깃발을 들고 돌격한다. 단군왕조 이전부터 전해내려 오던 ‘366사(事)’를 을파소 선생이 고구려의 동량을 가리치기 위해 다시 엮은 ‘참전계경’이 있다. 그 중 ‘의(義)’를 가르치는 대목이 있다. “믿음이란 하느님의 섭리에 꼭 들어맞는 것이요, 사람의 일을 반드시 이루어 주는 것으로 의(義), 약(約), 충(忠), 열(列), 순(循)이 있다. 그중 ‘의’가 가장 먼저라는 지혜의 가르침이다. 제 22사 의(義.) ‘의’란 정제되지 아니한 순수한 믿음에 부응하여 일어나는 기운이며 그 믿음을 실천하는 기운이다. 의기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용기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요 용단을 내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굳센 의지로 마음의 관문을 걸어 잠그므로 뇌성벽력이라도 그 의로운 기운을 깨지 못한다. 그 의기로 용기를 일으켜 세우면 금강석과도 같이 굳세고 강하며, 그 의기로 용단을 내려 움직이면 물꼬 터진 강물과도 같이 굳센 힘이 있다.(義 粗信而孚應之氣也 其爲氣也 感發而起勇 勇定而立事 牢鎖心關 霹靂 莫破 堅剛乎金石 決瀉乎江河) 준사는 1597년 명량해전에 다시 등장하니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에 동승하여 함께 악전고투에 임한다. 이순신은 안위, 김응함 등에게 적선들을 공격하도록 하고 송여종과 정응두 등은 협력해 일본의 배를 공격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 준사는 바다에 빠진 왜군 중에서 적장을 발견한다. 준사가 적장 “마다시”의 얼굴을 보고 확인하자 이순신은 그 시신을 참수해 목을 높이 걸어 일본군의 사기를 꺾는다. 결국 일본 수군함선 330여 척이 이순신이 이끄는 13척의 조선수군에 대패하고 다시 남해로 도주한다. 이후로는 완전히 서진을 포기한다. 이 명분 없는 살육의 전쟁에서 조선군으로 합류하고자한 일본의 무장이 또 있었다. 22살의 일본군 ‘사야가(沙也可)' 선봉장은 조선 땅에 상륙한 지 1주일 만인 4월 20일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朴晋)‘과 ’김응서(金應瑞)‘에게 은밀히 편지를 보낸다. “임진년 4월 일본국 우선봉장 사야가(沙也可)는 삼가 목욕재계하고 머리 숙여 조선국 절도사 합하에게 글을 올리나이다. 지금 제가 귀화하려 함은 지혜가 모자라서도 아니요, 힘이 모자라서도 아니며,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무기가 날카롭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저의 병사와 무기의 튼튼함은 백만의 군사를 당할 수 있고 계획의 치밀함은 천 길의 성곽을 무너뜨릴 만합니다. 아직 한 번의 싸움도 없었고 승부가 없었으니 어찌 강약에 못 이겨서 화(和)를 청하는 것이겠습니까. 다만, 저의 소원은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후략)” 그들의 갈고 닦은 전투실력과 담대함은 조선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철학과 가치관이 뚜렷한 ‘항왜(降倭)’는 또 다른 ‘의병’이 되었다. 투항한 ‘사야가’ 장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의병, 관군과 협력하여 벌인 78회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다. 사야가의 호는 ‘모하당(慕夏堂)’이다. 모하당 문집에는 그가 이순신 장군에게 보내는 답신도 적혀 있다. "하문하옵신 조총과 화포, 화약 만드는 법은 전번에 조정에서 내린 공문에 따라 벌써 각 진에 가르치는 중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총과 화약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기어코 적병(왜군)을 전멸하기를 밤낮으로 축원하옵니다." ‘사야가(沙也可)는 훗날의 ‘모하당 김충선’(慕夏堂 金忠善 1571~1642)이다. 선조가 성을 하사하니 ‘김충선(金忠善)’은 모래(沙)에서 나온 금(金)이라는 뜻으로 ‘사성 김씨’의 시조로 본관은 김해 김 씨이다. 종전 후 그는 진주목사 장춘점의 딸과 결혼한다.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괄의 난에 공을 세워 ‘삼란 공신’이 되었음에도 나라가 주는 녹을 일체 받지 않는다. ‘신하로서 당연히 한 일에 무슨 대가가 필요하냐?“는 올곧은 마음이다. 조정은 여진족을 막기 위해 내방소를 설치하고 그에게 북방 경비를 맡기니 10년간 빈틈없이 지켜낸다. 그 후, 병자호란이 일어나 북쪽 땅이 짓밟혔다는 소식을 듣자 66세의 나이에 의병을 모아 급히 남한산성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도중에 조정에서 항복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예의의 나라 군신으로서 어찌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겠는가, 춘추의 대의도 끝났구나."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경상도 달성군 우록에 터를 잡아 후학을 가르치며 살다가 72세로 세상을 떠난다. 우록동 삼정산에 부인과 나란히 묻히고 지증추 부사, 병조판서에 추증된다. 뺨 붉은 22세의 젊은 청년 왜장 ‘사야가’는 ‘김충선’ 장군이 되어 조선 땅에 뼈를 묻고 후손들이 번창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함께 투항하여 활동한 사여모(沙汝某) 김성인(金誠仁)의 후손들도 청도에 살고 있다. 그들이 흠모한 것은 ‘힘으로 빼앗음’이 아니라 ‘의로움의 공유’로써 바로 국조 단군께서 전해주신 “홍익인간 정신‘이었다. (끝) 원암 장영주.
    • 주요뉴스
    2022-08-24
  • 장군의 마음 제3화/장군의 눈물
    선조는 즉위 16년(1593년)에 새로이 ‘삼도수군통제사’ 직제를 만들었다.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로 전라좌수사 ‘이순신’으로 하여금 겸임케 하였다. 통제사의 본영을 ‘삼도수군통제영’ 줄여서 ‘통제영’ 또는 ‘통영’이라고 불렀다. 한산대첩의 위대한 승리는 ‘통영’이라는 이름에서 영원히 빛나고 있다.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제61회 통영한산대첩축제’가 8월 6일부터 9일간 통영시 일원에서 개최되었다. 통영시는 올해 한산대첩축제의 주제를 '장군의 눈물'로 정했다.
    • 주요뉴스
    2022-08-13
  • 장군의 마음/제2화, 임진왜란의 국제적 의미
    이순신 장군은 평생을 변치 않는 한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셨다. 장군은 생사를 초월한 ’일심’의 결과로 마침내 일본이라는 거대한 ’적의 스승’이 되셨다. ‘전(戰)’과 ‘란(亂)’은 싸움이란 뜻은 같지만 쓰임새는 다르다. ‘우크라이나 전’, ‘세계대전’처럼 외국과의 싸움은 ‘전’이고 ‘란’은 동족간의 다툼으로 치부하여 ‘6.25 동란’, ‘병자호란’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왜(倭)’나 ‘호(胡)’를 남이 아닌 일가로 치부해왔다는 뜻이다.
    • 주요뉴스
    2022-08-08
  • [원암 장영주 칼럼]한산에서 큰 뫼로.
    2022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은 나토 동맹국, 파트너 국 회의에서 "자유와 평화는 국제사회와 연대에 의해 보장된다.“고 선언하였다. 깊은 철학과 아득한 전통에 따라 만들어지는 K-방산 무기들이 세계 평화의 큰 뫼가 되어 ‘압도적으로 널리 이롭게 역사’하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 주요뉴스
    2022-07-31

실시간 기사

  • 원암 장영주 칼럼,대한민국과 대박민국 (하)
    우리가 인류와 세계에 이바지 할 사명은 옛 조선의 건극(建極)에 또렷이 실려 있다. 홍익인간의 조화와 상생의 밝은 마음씨를 수없이 양성하는 것이다. 깊고 오랜 가르침은 흥보, 놀보 이야기에도 은유적이지만 정교하게 심어져 내려오고 있다. 제비가 마음씨 착한 흥보에게 ‘박 씨’를 물어다 주고 비루했던 그의 삶이 소위 대박을 치는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이야기이다. ‘박’은 ‘밝음’을 의미한다. 제비가 물어다 준 ‘박 씨’는 ‘밝은 씨앗’으로 곧 사람의 양심의 상징이다. 국조 단군 왕검께서는 박달나무 아래에서 태어나셨다. 박달나무는 밝은 땅에서 자라는 나무이고 박달재는 밝은 땅의 언덕이다. 박혁거세는 밝고 빛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분으로 박 씨는 밝은 씨족이다. 착한 사람에게는 양심의 씨앗이 자리 잡아 성장하고 결국 그의 삶이 화엄장려하게 대박이 난다는 선조들의 지혜로운 예언이자 가르치심인 것이다. 흥보가 대박의 주인공이 되는 역전의 삶은 마치 무수한 질곡을 뚫고 세계 10위권에 도착한 지금 우리의 삶과 그 궤적을 같이 한다.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대통령 내외가 프랑스 파리를 방문하였다. ‘BUSAN’은 알파벳 속에 B(해운대 마천루)-U(광안대교)-S(해동 용궁사)-A(다이아몬드타워)-N(다대포 해수욕장)등을 내포하고 있다. 김건희 영부인의 가방에는 “부산은 준비되어 있습니다.(BUSAN is Ready)”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대통령 또한 파리에서 부산 액스포 유치를 위해 영어로 연설을 하였다. 전문가들은 미국의회에서 영어로 연설 할 때보다 좀 더 영국발음에 근접했다고 한다. 장소가 유럽인 만큼 디테일까지 갈고 닦는 정성을 드린 것이다. 이는 결국 ”대한민국은 준비 되어 있습니다.(korear is Ready)" 라는 선언이다. 세계인의 가슴에 한국인의 밝은 미래를 향한 공생의 씨앗을 선물한 것이다. 국조 단군의 밝은 씨앗은 고구려로 이어진다. 고구려의 국시는 옛 조선의 정신과 땅을 ‘다물’려 받으려 했던 다물(多勿)이다. 을밀대를 세운 을밀선인은 ‘다물흥방가(多勿興邦歌)’가를 지어 국민들이 아침저녁으로 부르게 하였다. 가히 고구려의 애국가라고 할 수 있었다. 을밀은 재상 을소, 을파소의 후손이자 을지문덕의 선조이다. 다물흥방가의 몇 구절을 살펴본다. “지나간 것은 법(法)이 되고 뒤에 오는 것은 위(上)가 된다. 법은 나지도 죽지도 않고 위는 귀함도 천함도 없도다. 참 천명의 큼이여, 성품을 낳아 광명에 통하네. 집에서는 효도하고 나서면 충성함이라. 광명은 그래서 모든 선을 행하지 않음이 없고, 효와 충은 그래서 모든 악은 일체 짓지 않나니. 백성의 옳은 바는 나라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니 나라 없이 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나라가 소중하기 때문에 백성은 사물이 있어 복을 누리고 내가 있기 때문에 나라엔 혼이 있어 덕을 누린다네. 태백의 가르침은 우리의 스승일세. 우리들 자손들은 그래서 더 평등하고, 우리들의 스승은 그래서 가르침마다 새롭다네.” 나라가 옛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로 발전해가며 ‘효와 충과 도’가 삶의 스승인 법이 되어 누구나 평등하니 나날이 새롭다고 고구려의 온 백성이 노래한다. 그 정신과 에너지를 ‘다물’려 받아 고구려, 발해의 국혼이 된다. 그 혼은 온갖 고초를 겪어내며 마침내 대한민국을 열어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국혼이란 문화력으로 소프트 파워의 근원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통령의 파리에서의 외교성공에는 우리의 뛰어난 선진 기술력과 에스파, 조수미, 싸이의 세계적으로 검증된 스타들의 문화력이 뒷받침을 하고 있었다. 베트남 국빈방문에서도 국위를 크게 선양한 것 역시 세계를 뒤덮는 k-컬쳐의 힘이 바탕이 되고 있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는 미국의 아트넷뉴스과 대담을 한다. ”윤 대통령 취임 후 1년간 해외순방을 다니거나 해외인사들을 만나면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음을 느낀다. 국가 간 갈등에는 예술, 문화가 그 해소에 큰 영향을 끼친다. 나는 k-컬쳐의 영업사원으로 대통령과 정부를 돕는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 할 것이다.“ 최근 러시아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바그너 그룹과의 내전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빠져 들고 있다. 21C 부터는 소트트 파워인 평화의 문화력이 아닌 총과 대포라는 살상의 하드 파워만을 신봉하는 철권통치자들과 그의 나라들은 녹아 무너져 내릴 것이다. 세상은 대포와 총의 하드파워의 두려움으로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결국은 무력으로 평정 된 땅보다 문화라는 소프트 파워에 물든 개개인의 가슴이 훨씬 더 넓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우신조로 조성 된 한류라는 소프트 파워의 대박기운을 타고 한바탕 신명나게 놀아보자. 자유통일은 절로 이루어지고 우리는 기술대국, 수출대국, 문화대국, 교육대국, 철학대국이 되어 G-4, G-3, G-2국으로 상승 할 것이다. 미래의 대한민국은 반드시 대박민국이 될 것이다. (끝)
    • 오피니언
    2023-06-30
  • 원암 장영주 칼럼,대한민국과 대박민국 (상)
    대한민국과 대박민국 (상) “대한(大韓)‘이란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일통’의 거국적인 꿈을 마침내 이루었다는 가슴 뜨거운 선언이다. ‘대한제국(1897년~1910년)’은 나라의 주인이 황제라는 뜻이었으나 결국 경술국치로 멸망하였다. 9년 뒤인 1919년 3월 1일 ‘백성(국민)’들의 자주적 결행으로 기미년 삼일만세 운동이 일어난다. 한반도의 독립과 민주화를 향한 폭발적인 기운은 들불처럼 맹렬하게 국내외로 퍼져나간다. 당시 지구촌의 생령의 2/3가 서구제국의 식민철권통치로 신음하고 있던 터이다. 동방의 한 모퉁이의 작은 나라에서 점화 된 평화의 횃불이 인류의 자유와 인권보호의 크고 강력한 시발점이 되는 전기가 되었다. 한 달 뒤인 4월 10일 상해 임시의정원 첫 회의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가 정해진다.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는 뜻이 한마음으로 통한 것이다. 황제가 주인인 ‘대한제국’으로 멸망했으니 국민이 주인 되는 ‘대한민국’으로 흥해보자는 독립투사들의 통찰력이자 결단어린 선택이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제정은 대한제국으로의 복국(復國)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현대적인 체제의 국가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한 번도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조선의 역사에서 단 10년 만에 미래의 자유사회로 순간 이동한 셈이니 역사적인 대박이 터진 셈이다. 이 또한 인류의 미래를 위한 거룩하고 빛나는 선언이 아닐 수 없다. 대한의 ‘한(韓)’이란 글자는 순수한 우리말인 ‘한’을 한자에서 음차 한 것이다. 우리말의 ‘한’은 중앙아시아의 ‘칸’과 동의어로 지도자, 중심, 시원, 밝다, 크다. 영원하다 등등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숨을 내 쉬거나 들이 쉴 때를 ‘호흡’이라고 하고 ‘하하하’ 웃고 ‘흑흑흑’ 흐느끼고 피곤하거나 마음이 어두우면 절로 ‘한숨’을 쉰다. 이처럼 ‘한’은 기본적인 생명원음이기도 하다. 6월이 되면 침략의 역사와 이를 물리치고 자유를 되찾으려고 생명을 초개처럼 버린 선열들의 뜨거운 한숨이 내 생명의 숨결 속에서도 거울처럼 비추어진다.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1일은 국가제정 ‘의병의 날’이고 6일은 ‘현충일’이다. 현충일이 6월 6일로 지정된 것은 고려 현종 5년, 망종(芒種)날을 기해 조정에서 장병의 유골을 집으로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는 기록에서 기인되었다. 보리가 익고 모내기가 시작되는 날인 '망종'은 농경사회에서는 “가장 좋은 날”인 만큼 마땅히 선열에 제사지내는 날이었다. 1014년의 일이니 천 년 전부터 생겨난 전통이다. 1592년 6월1일, 홍의장군 곽재우가 의병을 이끌고 ‘정암진 전투’에서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 거둔 날이다. 그러나 6일 후, 조선 최고의 명장 신립 장군이 이끄는 정규군은 충주의 탄금대 전투에서 전몰당하면서 천추의 한을 남긴다. 1592년 6월 16일이 되자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옥포에서 해전으로는 첫 대승을 거둔다. 1949년 6월 26일,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김구 선생’이 남북의 충돌을 막고자 동분서주하다가 흉탄에 쓰러졌다. 꼭 1년 뒤인 이듬해 6월 25일, 북한 김일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습 남침을 함으로써 동족상잔의 비극이 탄생한다. 한국인 250만 명, 중국인 100만 명, 미국인 5만4천 명 등 4백만 명 정도가 사망하였다. 남한은 산업시설 43%, 주택 33%가 파괴됐으며 북한은 공업생산력의 60%, 농업생산력의 78%가 파괴되었다. 6.25동란은 인류 역사상 4번째로 피해가 큰 전쟁으로 기록되고 초토화 된 한반도는 허리가 동강 난 채 지금껏 분단이 고착되어 있다. 그러나 불탄 자리에도 생명은 강인하게 돋아나듯이 우리는 결코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난다. 6.25때 태어난 신생아들이 73세가 된 지금 ‘대한민국(大韓民國)’은 2차 세계대전 후 태어난 140여개의 신생국 중 산업화, 민주화를 이룬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개발해온 무기들이 이제는 세계적인 방산수출품이 되어 나라의 경제에 도움을 주고 6위의 군사력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 2023년 5월 26일, 우여곡절 끝에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니 대한민국 앞에 ‘우주의 문’도 활짝 열렸다. 누리호는 설계, 제작, 시험 등 모든 과정이 국내 기술로 개발되었다. 이로서 적은 인원과 최소한의 예산으로 ‘미사일 7대 강국’ 반열에 오르니 강대국들과의 경쟁에 뛰어든 지 불과 30년 만에 이룬 대박쾌거이다.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고, 신의 목숨 또한 스러지지 않았음에 적도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今臣戰船 亦有十二 臣若不死 則賊亦不敢侮我矣) 모든 것을 빼앗긴 전장에서 자신의 목숨으로 마지막 승리를 이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우렁찬 숨소리이다. 그렇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결코 꺾이지 않는 것이 대한국인이다. 대를 이어 물려받은 불퇴전의 용기와 공생의 지혜로 인류 진화를 선도하는 것만이 우리 대한민국의 크고 밝은 대박 사명인 것이다.
    • 주요뉴스
    2023-05-30
  • 장군의 마음 제5화 /‘다시 부르는 빛의 노래’
    장군의 마음 5화 /‘다시 부르는 빛의 노래’ 올해로 광복절(光復節)이 77주년이 되었다. 나라를 되찾은 것을 왜 빛을 회복했다고 할까? 나라를 잃으면 인간의 자유와 생명체로써의 존엄한 빛을 잃기 때문이다. 오직 나라를 되찾음으로써 생명의 빛을 회복할 수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와 땅을 가로채고, 일본은 아예 침략한 적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우리의 옛 역사가 너무 찬란하여 차마 똑바로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의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는 건 우리도 마찬 가지이다. 이스라엘교육에서 역사과목은 오전으로만 편성되는데 학생들의 정신이 더 또렷할 때를 택한 것이다. 이 시간에는 할아버지 같은 ‘랍비’가 학생들의 골수에 이스라엘의 혼을 각인하듯이 자신의 생명을 다 쏟아 부어 가르친다. 이 장면을 직접 본 어느 서울대학교 교수는 “나는 과연 저렇게 뜨겁게 제자들을 교육하고 있는가!”라는 자성의 글을 썼다. 만주에서 발흥한 청나라 12명의 황제의 성씨는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청의 개국시조도 ‘애신각라 누루하치’이고 마지막 황제 역시 ‘애신각라 부의’ 이다. ‘애신각라’란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말자.’ 는 청 황제들의 삶의 목표이자 통치 이념이었다. 고구려와 발해, 여진족의 청나라로 이어지는 만주 땅 일대가 우리 겨레의 옛 땅임을 증명한 사람과 자료는 수없이 많다. 안동 출신 ‘이원태’(◎坮)는 우리 민족의 이동에 따른 강역의 변천을 ‘동이구족(東夷九族)’의 역사로 삼아 학문적으로 정확하게 그렸다. 더불어 환국의 환인, 배달국의 환웅, 옛 조선의 단군 47대의 역사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이원태가 교관으로 재임하였던 ‘신흥무관학교’는 만주 서간도에 우뚝한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1910년, ‘우당 이회영’, ‘성제 이시영’의 여섯 형제들이 지금의 6백억 원에 추산되는 엄청난 가산을 정리하여 설립한다. 1932년 ‘우당 이회영’은 독립작전 수행 중 체포되어 ‘다이렌 수상경찰’에서 고문치사로 순국하시니 향년 65세였다. 형제들은 광복을 보지 못한 채 고문사, 병사, 객사, 아사한다. 다섯째인 ‘이시영’만이 살아남아 대한민국의 초대 부통령에 임명되지만 머지않아 사임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일부 재산의 환급을 제안하나 이시영은 재산을 찾겠다고 독립 운동한 게 아니라며 거절한다. ‘아흔 아홉 칸’으로 유명한 안동 ‘임청각’의 ‘석주 이상용’ 일가도 엄청난 가산을 한 톨 남김없이 정리하여 동참한다. 곧 태어날 손주가 이미 남의 땅이 된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인이 되게 할 수는 없다며 고향을 등지고 엄동설한에 기어이 만주로 향한다. ‘석주’는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대통령)에 선출되기도 하지만 74세로 결국 남의 땅에서 돌아가신다. 천신만고 끝에 독립을 이루고 자기의 땅에 대한민국이 건국하였음에도 석주의 후손들은 집 한 채 없이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들은 다만 3천5백 명의 독립군들 핏줄 속에 민족혼을 심기 위해 일심으로 모든 것을 바쳤다. 거룩한 빛을 광복하려는 그 정신이 ‘신흥무관학교 교가’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의 *영절에 여러 만만 *헌원 자손 업어 기르고/ *동해 섬 중 어린 것을 품에다 품어 젖 먹여준 이가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중략-/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 내어 새나라 세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청년들이라./두 팔 들고 고함쳐서 노래하여라./ 자유의 깃발이 떳다.” 이 가사는 중국대륙의 주요 거점과 서북, 서남 전체가 한민족의 고토이자 활동무대였음을 상기시킨다. 장차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독립군들이 웅장한 가슴을 북처럼 울리는 노래가 아닌가. 가사 중의 ‘중국을 업어 기르고 일본을 품어 길렀다.’는 대목은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도저히 근접할 수조차 없다. 그 교가를 지은이는 ‘석주 이상용’이다. 이 사실은 ‘석주’의 손자며느리인 ‘허 은’님의 회고록에서 밝혀진다. 1910년의 신흥무관학교 교가는 놀랍게도 고구려인들의 애창곡이었던 ‘고구려인의 노래’와 뜻과 기상이 그 맥을 같이 한다. ‘고구려인의 노래’ “오호 어리석은 한나라 어린 애들아 요동은 향하지 마라. 개죽음이 부른다./ 문무의 우리 선조 *한웅이라 불렀느니/ 자손들은 이어져서 영웅호걸 많단다./ 주몽태조 광개토님 위세는 세상에 울려 더할 나위 없었고/ *유유, *일인, 양만춘은 나라 위해 옷 바꿔 스스로 사라졌다./ 세상 문명은 우리가 가장 오래니 오랑캐, 왜구 다 물리치고 평화를 지켰다./ *유철, *양광, *이세민도 보기만 해도 무너져서 망아지처럼 도망갔다./ *영락기공비는 천 척 만 가지 기가 한 색으로 태백은 높단다.“ 같은 시대인 1400년 전, 중원대륙의 농민들도 “요동에 가서 억울하게 죽지말자.”는 노래를 불렀다하니 안팎이 꼭 들어맞는다. 우리의 정신과 강토의 회복을 목숨으로 구했던 선열들의 빛나는 마음이 각자의 가슴에 되살아나길 기원한다. 가족을 향한 ‘효심‘과 나라를 향한 ’충성‘, 나아가 지구사랑을 이루는 무수한 홍익독립군을 양성하자. 그때 한,중,일 삼국과 인류의 평화가 지구촌 위에 아름답게 펼쳐질 것이다. (끝)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화가.
    • 주요뉴스
    2022-08-24
  • 장군의 마음 4화 / "또 다른 의병 항왜 ‘사야가(沙也可)와 준사(俊沙)’ "
    장군의 마음 4화 제목 : "또 다른 의병 항왜 ‘사야가(沙也可)와 준사(俊沙)" 430년 전, 일본이 조선을 침공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잔인한 폭력에 노출 된 조선은 당시 국민의 반이 죽거나 다쳤다. 대대적인 그 후유증은 조선의 명줄을 끝끝내 쥐고 흔들었다. 어쩔 수없이 국가적 전쟁에 휘말린 각국의 장졸들 또한 생각이 없을 리 만무하다. 자신들이 전형적인 약탈전쟁의 비극에 강제로 동원된 존재임을 자각을 하는 무리도 있었다. 일본의 내전 중 ‘히데요시’에게 잔혹하게 정복되는 과정에서 가문전체가 몰살된 경우도 있었다. 꼭두각시 같은 처지에 빠진 용병 이란 지괴감에 빠진 왜군들도 있었다. 이처럼 왜군 중에 조선군에게 투항한 왜군을 ‘항왜’(降倭)라고 하였다. 반대로 조선에서 일본군으로 투항하여 앞잡이가 된 자들은 ‘순왜’(順倭)라고 하였다. ‘항왜’들은 ‘예의지국 조선’의 높은 문화를 존중하여 나름 잘못된 침략이라는 판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개인으로 또는 부대 전체가 투항하기도 하여 항왜의 수가 1만2천명에 이르렀다. 돌격장, 중간계급, 병사들도 있어 탁월한 능력과 충성심으로 많은 전공을 세운다. 병자호란까지 ‘나의 나라-조선’을 위해 출전도 하며 이 땅에 대를 이어 뿌리 내린다. 그중에 안골포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항복하고 귀순한 ‘항왜’로 준사(俊沙)가 있다. 영화 ‘한산’에서는 물론 감독의 설정에 따른 것이지만 ‘전체를 꿰뚫는 핵심’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키워드 있다. 그것은 바로 ‘의(義)의 가치’에 대한 ‘이순신 장군’과 포로가 된 ‘준사’의 문답이다. 준사가 이순신 장군과 독대하는 장면에서 준사는 “내가 사천에서 당신을 쏘았다.”고 고백한다. 준사는 죄고의 지휘관인 장수(이순신)가 위험을 무릅쓰고 최 일선에서 전투에 임하는 것을 적선인 맞은편의 왜선에서 선명하게 보고 있었다. 부하(나대용)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는 장군의 모습에서 ‘의리’를 보았기에 비록 적이지만 큰 감동을 받는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부하들을 사지로 내모는 왜장과 비교 되는 장면에서 준사는 큰 각성을 얻는다. 그리고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 간절하게 묻사오니 부디 답하여 주십시오.”라고 질문을 한다. 이순신 장군은 '의(義)와 불의(不義)의 전쟁'이라고 답한다. 약탈을 위한 ‘나라와 나라의 전쟁’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구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의미이다. 장군의 답에 준사는 진심으로 감화되어 항왜가 되고 끝까지 조선군을 돕는다. 영화 ‘한산’에서 준사의 활약은 그 비중이 아주 크다. ‘와키자카’의 조선인 애첩의 비녀와 자신의 목걸이가 같은 무늬임을 발견하고 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확인한다. ‘와키자카’의 애첩은 군관 ‘임준영’에게 정보를 주고 있었다. 발각이 되자 그 비녀를 뽑아 ‘와키자카’의 가슴을 찌른다. 준사는 혀를 물고 자결 하려던 그녀를 탈출시키고 서신을 자신의 목걸이를 신표로 이순신 장군에게 전한다. 일본군이 전주성이 아니라 전라 좌수영을 직격하려고 웅치로 향한다는 일급 군사기밀이었다. 그의 신물인 목걸이와 ‘와키자카’의 조선인 애첩의 비녀와 거북선 용머리 밑의 충파용 기둥은 똑같은 ‘귀면상’의 모습이다. 무서운 도깨비 같기도 한데 바로 ‘배달국 제14대 천황’인 ‘치우천황’이다. ‘전쟁의 신’인 치우천황이 철제투구를 쓴 ‘동두철액(銅頭鐵額)’의 모습이다. 이 형상은 실로 4천 7백여 년 만인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붉은 악마’의 엠블럼이 되어 대한민국에 부활한다. 영화 ‘명량’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 선실에 치우천황이 그려져 있다. ‘김한민 감독’이 진정 하고 싶은 우리 역사에 대한 뜨거운 속마음이다. 그의 삼부작인 ‘노량’, ‘한산’, ‘명량’의 숨어 있는 진짜 주제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준사는 곧바로 웅치 전투에 합류해 의병들과 함께 왜군에 맞서 싸운다. 영화 종반부 의병부대장 ‘황박’이 전사하고 준사도 죽을 위기에 몰리지만 ‘황진’의 구원군이 등장해 준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준사는 '의(義)' 자가 적힌 의병 깃발을 들고 돌격한다. 단군왕조 이전부터 전해내려 오던 ‘366사(事)’를 을파소 선생이 고구려의 동량을 가리치기 위해 다시 엮은 ‘참전계경’이 있다. 그 중 ‘의(義)’를 가르치는 대목이 있다. “믿음이란 하느님의 섭리에 꼭 들어맞는 것이요, 사람의 일을 반드시 이루어 주는 것으로 의(義), 약(約), 충(忠), 열(列), 순(循)이 있다. 그중 ‘의’가 가장 먼저라는 지혜의 가르침이다. 제 22사 의(義.) ‘의’란 정제되지 아니한 순수한 믿음에 부응하여 일어나는 기운이며 그 믿음을 실천하는 기운이다. 의기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용기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요 용단을 내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굳센 의지로 마음의 관문을 걸어 잠그므로 뇌성벽력이라도 그 의로운 기운을 깨지 못한다. 그 의기로 용기를 일으켜 세우면 금강석과도 같이 굳세고 강하며, 그 의기로 용단을 내려 움직이면 물꼬 터진 강물과도 같이 굳센 힘이 있다.(義 粗信而孚應之氣也 其爲氣也 感發而起勇 勇定而立事 牢鎖心關 霹靂 莫破 堅剛乎金石 決瀉乎江河) 준사는 1597년 명량해전에 다시 등장하니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에 동승하여 함께 악전고투에 임한다. 이순신은 안위, 김응함 등에게 적선들을 공격하도록 하고 송여종과 정응두 등은 협력해 일본의 배를 공격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 준사는 바다에 빠진 왜군 중에서 적장을 발견한다. 준사가 적장 “마다시”의 얼굴을 보고 확인하자 이순신은 그 시신을 참수해 목을 높이 걸어 일본군의 사기를 꺾는다. 결국 일본 수군함선 330여 척이 이순신이 이끄는 13척의 조선수군에 대패하고 다시 남해로 도주한다. 이후로는 완전히 서진을 포기한다. 이 명분 없는 살육의 전쟁에서 조선군으로 합류하고자한 일본의 무장이 또 있었다. 22살의 일본군 ‘사야가(沙也可)' 선봉장은 조선 땅에 상륙한 지 1주일 만인 4월 20일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朴晋)‘과 ’김응서(金應瑞)‘에게 은밀히 편지를 보낸다. “임진년 4월 일본국 우선봉장 사야가(沙也可)는 삼가 목욕재계하고 머리 숙여 조선국 절도사 합하에게 글을 올리나이다. 지금 제가 귀화하려 함은 지혜가 모자라서도 아니요, 힘이 모자라서도 아니며,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무기가 날카롭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저의 병사와 무기의 튼튼함은 백만의 군사를 당할 수 있고 계획의 치밀함은 천 길의 성곽을 무너뜨릴 만합니다. 아직 한 번의 싸움도 없었고 승부가 없었으니 어찌 강약에 못 이겨서 화(和)를 청하는 것이겠습니까. 다만, 저의 소원은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후략)” 그들의 갈고 닦은 전투실력과 담대함은 조선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철학과 가치관이 뚜렷한 ‘항왜(降倭)’는 또 다른 ‘의병’이 되었다. 투항한 ‘사야가’ 장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의병, 관군과 협력하여 벌인 78회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다. 사야가의 호는 ‘모하당(慕夏堂)’이다. 모하당 문집에는 그가 이순신 장군에게 보내는 답신도 적혀 있다. "하문하옵신 조총과 화포, 화약 만드는 법은 전번에 조정에서 내린 공문에 따라 벌써 각 진에 가르치는 중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총과 화약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기어코 적병(왜군)을 전멸하기를 밤낮으로 축원하옵니다." ‘사야가(沙也可)는 훗날의 ‘모하당 김충선’(慕夏堂 金忠善 1571~1642)이다. 선조가 성을 하사하니 ‘김충선(金忠善)’은 모래(沙)에서 나온 금(金)이라는 뜻으로 ‘사성 김씨’의 시조로 본관은 김해 김 씨이다. 종전 후 그는 진주목사 장춘점의 딸과 결혼한다.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괄의 난에 공을 세워 ‘삼란 공신’이 되었음에도 나라가 주는 녹을 일체 받지 않는다. ‘신하로서 당연히 한 일에 무슨 대가가 필요하냐?“는 올곧은 마음이다. 조정은 여진족을 막기 위해 내방소를 설치하고 그에게 북방 경비를 맡기니 10년간 빈틈없이 지켜낸다. 그 후, 병자호란이 일어나 북쪽 땅이 짓밟혔다는 소식을 듣자 66세의 나이에 의병을 모아 급히 남한산성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도중에 조정에서 항복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예의의 나라 군신으로서 어찌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겠는가, 춘추의 대의도 끝났구나."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경상도 달성군 우록에 터를 잡아 후학을 가르치며 살다가 72세로 세상을 떠난다. 우록동 삼정산에 부인과 나란히 묻히고 지증추 부사, 병조판서에 추증된다. 뺨 붉은 22세의 젊은 청년 왜장 ‘사야가’는 ‘김충선’ 장군이 되어 조선 땅에 뼈를 묻고 후손들이 번창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함께 투항하여 활동한 사여모(沙汝某) 김성인(金誠仁)의 후손들도 청도에 살고 있다. 그들이 흠모한 것은 ‘힘으로 빼앗음’이 아니라 ‘의로움의 공유’로써 바로 국조 단군께서 전해주신 “홍익인간 정신‘이었다. (끝) 원암 장영주.
    • 주요뉴스
    2022-08-24
  • 장군의 마음 제3화/장군의 눈물
    선조는 즉위 16년(1593년)에 새로이 ‘삼도수군통제사’ 직제를 만들었다.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로 전라좌수사 ‘이순신’으로 하여금 겸임케 하였다. 통제사의 본영을 ‘삼도수군통제영’ 줄여서 ‘통제영’ 또는 ‘통영’이라고 불렀다. 한산대첩의 위대한 승리는 ‘통영’이라는 이름에서 영원히 빛나고 있다.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제61회 통영한산대첩축제’가 8월 6일부터 9일간 통영시 일원에서 개최되었다. 통영시는 올해 한산대첩축제의 주제를 '장군의 눈물'로 정했다.
    • 주요뉴스
    2022-08-13
  • 장군의 마음/제2화, 임진왜란의 국제적 의미
    이순신 장군은 평생을 변치 않는 한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셨다. 장군은 생사를 초월한 ’일심’의 결과로 마침내 일본이라는 거대한 ’적의 스승’이 되셨다. ‘전(戰)’과 ‘란(亂)’은 싸움이란 뜻은 같지만 쓰임새는 다르다. ‘우크라이나 전’, ‘세계대전’처럼 외국과의 싸움은 ‘전’이고 ‘란’은 동족간의 다툼으로 치부하여 ‘6.25 동란’, ‘병자호란’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왜(倭)’나 ‘호(胡)’를 남이 아닌 일가로 치부해왔다는 뜻이다.
    • 주요뉴스
    2022-08-08
  • [원암 장영주 칼럼]한산에서 큰 뫼로.
    2022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은 나토 동맹국, 파트너 국 회의에서 "자유와 평화는 국제사회와 연대에 의해 보장된다.“고 선언하였다. 깊은 철학과 아득한 전통에 따라 만들어지는 K-방산 무기들이 세계 평화의 큰 뫼가 되어 ‘압도적으로 널리 이롭게 역사’하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 주요뉴스
    2022-07-31
  • [원암 장영주 칼럼]‘조선수군을 만나면 도망쳐라.’
    우리는 우리의 핏줄 속에 녹아있는 위대한 ‘필사즉생’의 DNA에 따라 근해는 물론 지구상의 전 해역을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너나없이 틀림없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예가 아닌가!
    • 주요뉴스
    2022-07-17
  • [원암 장영주 칼럼]유월이 가기 전에
    유월은 유독 나라를 송두리째 흔든 전란이 많았고 후손들은 6월 6일을 현충일 삼아 충정을 가슴으로 기린다. 내 목숨과 나라의 목숨을 맞바꾼 영령들의 뜨거운 단심화(丹心花)가 무궁하게 피어난다. 이 여름 사리사욕의 헛된 것은 부디 썰물처럼 쓸려가고, 민관합동의 참된 정성만이 밀물처럼 몰려와 국운이 ‘누리호’처럼 비상하기를 기원한다.
    • 주요뉴스
    2022-06-27
  • [원암 장영주 칼럼] ‘천국노래자랑’과 ‘k-딴따라’
    송해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95세로 알려졌지만 실제는 두 살이 더 많다는 본인의 고백도 있었으니 향년 97세가 될 수도 있다. 그는 1988년부터 35년 동안 KBS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아 '국민 MC'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주요뉴스
    2022-06-16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