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2(월)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뉴스
  • 김형석 연세대 몀예교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
    동아일보의 객원논설위원이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를 소개하겠습니다. 며칠 전 TV에서 뉴스를 들었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한 최고위원이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출발해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거쳐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으로 이어져 왔다. 이재명이 민주당과 국가를 대표할 시대정신을 이끌어 가야 할 단계라고 했다. 그것은 이재명의 주장과 신념을 대변한 선언이다. 국민도 그 뜻을 이해는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현재까지 국정의 중책은 민주당이 맡아 왔고 지금도 절대적 여소야대의 국회이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민주당에 집중돼 있을 정도다. 문제는 민주당 안에서는 그런 선언이 가능할지 모르나, 국민의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은 초창기보다 더 증대하고 있다.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우려와 걱정은 한계선까지 도달한 상태다.국민은 김대중 대통령의 동족 간의 평화통일을 위한 열성과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가 심하므로 경제적 원조를 베풀면 15년쯤 후에는 통일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견해를 믿고 싶었다. 그런데 국민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너무 많은 원조를 했다. 그 결과는 핵무기 개발과 공산정권 굳히기에 도움을 주었다. 지금의 김정은 정권을 키워주는 결과가 되었다.노무현 정권은 어떠했는가? 우리 국민이 이런 상태로는 살 수가 없고 불안하여서 이민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의 무질서와 혼란 상태가 되었다. 국민에게 물어 보라. ‘노무현 정부가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인가?’라고. 그 주역을 담당한 세력인 86세대 운동권의 등단과 확장기였다. 대통령 자신이 자기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같이 불행한 대통령’은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몸소 남겨 주었다.그 뒤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운동권은 물론 문 대통령 스스로가 공은 내세웠으나 과(過)는 인정하지 않았다. 퇴임 후에도 자신의 임기 5년 동안에 쌓아 올린 정치적 업적을 윤석열 정부가 계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은 문 정부와 같이 가지 않는다고 추방한 윤석열을 왜 대통령으로 선출했는가?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권이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이며, 윤 정부가 계승해야 할 과업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묻게 한다. 정치 기반인 경제 분야는 어떠했는가? 이명박 정부를 계승했다면 경제성장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는 어떻게 했으며,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민주국가의 위상을 지켜 왔는가? 북한 동포를 뒤로하고 김일성 정권 세습화에 동조했다면 그것은 실정 중의 실정이다. 김대중 정신에 위배되는 결과가 되었다. 대한민국으로 귀순해 온 동포와 중국에서 우리 품으로 오려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처신은 앞으로도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할 과제다. 친북 정책은 북한 동포를 위한 절대적 의무와 권리이다. 김정은 정권을 위한 종북이 아니다.현재에도 민주당은 국정운영 방향과 방법은 물론 절차까지 관여하는 국회의 주도권을 행사한다. 국가를 위해서보다는 윤 정권을 타도하고 임기 내라도 재집권하겠다는 자세다. ‘그것도 애국심인가? 국민을 위한 정치인의 양심인가?’라고 국민은 묻는다. 누가 보든지 민주당은 국가보다는 정권을 위했고,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의 사당이 되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민주정치는 실종되었고 싸워서 이기면 그것이 정의가 된다는 개인과 집단의 투쟁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창기부터 실정에 앞장서 왔던 임종석 전 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송영길 전 당 대표, 각 분야에 자리 잡고 있던 운동권 출신의 잔여 세력이 이재명 대표를 앞세워 정권 재장악에 동참하려는 기세다. 민주당 안과 주변에 있던 친북좌파까지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선한 공존의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적 방향과 국민의 진실과 정의, 자유와 휴머니즘 정신이 보장, 구현되는 나라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잘못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진실과 정직 없는 ‘내로남불’의 정의관, 인격을 갖추지 못한 개인이나 이기적 집단세력에 정권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위하고 국민을 섬기려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여야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민의 선택이다.
    • 주요뉴스
    2024-04-01
  •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그립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반발로 전문의 파업이 대형 병원 중심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근무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시화되고 의료 공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안타깝기가 이를 데 없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가 문뜩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장기려 박사님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의사였다. 그래서 경성 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의과 대학과 김일성 종합 대학 교수를 지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1950년, 장기려 박사님은 철수하는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 아내와 5남매를 북에 둔 채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하였다. 그리고 부산에서 천막을 치고 복음 병원을 세워 행려병자를 치료했다. 장기려 박사님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하며 하루에 2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럴 뿐만 아니라 1959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간 절제 수술에 성공하는 등, 당시 우리나라 외과 의사 가운데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이 커지고 무료 진료가 불가능해지자 장기려는 1968년 한국 최초의 의료 보험 조합인 청십자 의료 보험 조합을 설립하였다. 청십자병원은 가난한 사람을 정성껏 치료해 줄 뿐만 아니라 치료비를 깎아 준다고 소문이 나 늘 많은 환자가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농부가 장기려 박사에게 하소연했다. “선생님, 제가 당장은 돈이 없지만 나중에 꼭 벌어서 갚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내일 당장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병원에 묶여 있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농부의 말을 들은 장기려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밤에 문을 열어 줄 테니 그때 가세요.” 농부가 깜짝 놀라자 장기려는 웃으면서 말했다. “병원에서는 아마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퇴원을 안 시켜 줄 거예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 도망을 쳐서라도 일을 해야 가족을 돌볼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장기려는 그렇게 말하고 농부에게 돈까지 쥐여 주었다. “얼마 안 되지만 차비나 하세요.” 농부는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는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기 돈으로 수술을 해 주고, 그나마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못하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다가 1995년 12월 추운 겨울날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내 마음이 그러하듯 창밖에는 겨울비가 밤새 주룩주룩 내린다. 오늘따라 ‘바보의사 성산 장기려 박사님’이 그저 그립기만 하다.
    • 주요뉴스
    2024-03-12
  • 다큐‘기적의 시작’ 관람 후기
    ‘은종’이라는 동료 시민의 ‘기적의 시작을 보고’라는 관람 후기를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또 다른 다큐극 영화 ‘기적의 시작’을 보고 왔습니다.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을 보신 분이라면 더더욱 꼭 보십시오. ‘건국전쟁’이 큰 그림을 그리는데 치중했다면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 대통령의 디테일한 부분을 세밀히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건국 전쟁은 역사를 잘 모르고 일방적으로 세뇌 당한 분들에게 유익한 영화입니다. 4.19는 이승만이 원인인가? 김구의 정체, 런 승만의 문제, 한강철교 폭파사건 등 이승만 대통령이 오해받고 있는 부분의 팩트를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에 대한 역사를 잘 아는 분들이 보았을 때 거의 다 아는 내용이었고 소수의 부분은 새로운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의 시작은 자료를 수집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섬세합니다. 이승만에 대한 책 몇 권을 섭렵했던 분들도 새로운 내용을 보고 저런 자료를 어떻게 찾았을까 하고 그 수고에 감탄하게 됩니다. 어쩌면 흥행에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 이승만이 한성 감옥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과정이나 서거하기 전 기도한 장면 등을 삽입한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감명을 줍니다. 이승만의 삶은 기도에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기도로 시작한 나라이니 기도를 놓지 말아야 국가가 번영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만약 성도들이 단체관람한다면 ‘기적의 시작’이 더 감명을 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의 증언자들은 이승만과 직접 만난 분들을 등장시켜 훨씬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백선엽 장군,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 그리고 그 며느리의 증언은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사실적이고 감동적인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농지개혁, 6.25 전쟁에 대한 일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경위 등은 훨씬 더 자세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역사의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깜짝 놀란 것은 이승만의 경제에 대한 관심입니다. 벌써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 앞으로 한국은 공업국이 되어야 한다고 예견한 것은 대단한 통찰력이었고, 실제로 6.25 이후에 공업국이 되기 위해 그가 이룬 업적을 세밀한 자료와 더불어 제시한 것은 그동안 몰랐던 내용이었습니다. 다큐 영화가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데, 텔렌트 임동진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이승만을 잘 살려내었습니다. 아마도 무료 출연이었을 것인데, 눈물과 마음으로 연기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정말 사랑하는 대배우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무명의 배우들이 적절하게 사건들을 잘 재현해내어 다큐에 몰입할 수 있도록 톡톡히 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동안 런 승만, 독재자, 친일파 등등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이제는 바로 잡을 때가 되었다. 위대한 거인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에게 이승만을 바로 알릴 때가 되었습니다. 두 영화를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기적의 시작’은 섬세하게 그 안을 들여다 봅니다. 성경으로 비유하면 ‘건국 전쟁’은 마가복음에 비유한다면 ‘기적의 시작’은 요한복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둘 중에 한 영화만 선택하지 마십시오. 두 영화 모두 보시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요, 애국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건국 전쟁은 제법 관람객들이 있었는데, 기적의 시작은 관객면에서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점이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적의 시작’이 훨씬 더 애정이 갑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가슴에 더 와닿는다고 했습니다. 건국 전쟁을 보신 분들은 반드시 기적의 시작도 함께 보십시오. 다른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을 먼저 보셨습니까? ‘건국 전쟁’도 보세요. 두 영화가 결합할 때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총선 전에 두 영화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두 영화가 흥행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사인식이 바뀌도록 열심히 홍보하는 일입니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먼저 극장으로 가십시오. 교회 단체관람을 강력히 추천합니다.”라고 동료 시민 ‘은종’은 말했습니다. 김덕영 감독의 ‘건국 전쟁’이 개봉 27일만에 100만을 돌파하며, 다큐로는 드문 흥행 기록을 세우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그리고 ‘건국 대통령 이념 보급회’의 김효선 사무총장의 ‘이승만의 독립 외교 33년’ 등 다른 기록 영화들도 ‘건국 전쟁’과 거의 동시에 선을 보였습니다. 이장호 감독의 이승만 관련 영화 ‘하우보만의 약속’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상 매체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될 나라”라는 주장을 하며 반공 애국 진영, 특히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비방하고 폄훼하는 반역 세력의 전유물처럼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런 영상 매체가 이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밝히려는 일에 효율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승만이 ‘독재자’ 또는 ‘친일파’로 낙인 찍히며 국민의 뇌리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할 추악한 인물로 악마화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독립운동과 반공 투쟁에서 승리해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되었고, 공산군의 6.25 남침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고 부흥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쉽게 공산화되어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김일성의 지배를 받는 위성국가로 편입되었을 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적인 위인이자 천재였습니다. 그는 이 나라의 국부였고, 애국자요, 선지자요, 예언자요, 세계가 공산당을 열광할 때 “공산당은 망한다”고 외쳤습니다. ‘전시 중립론’이라는 논문을 쓴 국제 정치가였고, 훌륭한 선교사였고, ‘재팬 인사이드 아웃’의 저자인 작가였고, 민족 복음화를 소망한 하나님의 종이었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며, 그는 하나님 중심의 철저한 자유 민주주의 투사였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학력 소유자였습니다. 죠지 워싱톤대 학사였던 클린턴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하바드대 석사였던 오바마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프린스턴대 박사였던 윌슨 대통령과 동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도 이만한 학력 소유자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자유의 등불을 달아준 불세출의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탁월한 외교가였으며, 토지개혁을 단행했고, 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는 ‘반상 철패’를 했으며, 의무 교육을 실시했고, 여성들을 투표에 참여케 했습니다. 의회 정치를 실시 했습니다. 그의 애국정신과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 시대의 등불이었습니다. 전교조에 의해 역사 왜곡이 극에 달한 이 나라는 이승만을 바로 알아야 대한민국이 사는 것입니다.
    • 오피니언
    • 강석종 칼럼
    2024-03-08
  • 이승만 영화 ‘기적의 시작’이 만들어진 배경 이야기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기적입니다.’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영화 '기적의 시작'을 만들고, 전국 개봉을 하기까지 모두 기적의 순간입니다. ■ 영화의 시작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저의 아버지께서 '이승만 대통령 영화를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하셨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하지 않은 제가 그 당시 더 기반이 없었던 시절, 그런 권유를 받으니 너무 막연하고 막막하게 다가 왔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에는 부모님 댁에서 같이 사는 것 외에는 따로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은 받지 말자'고 했고, 또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우리나라 영화계와 아무런 인맥도, 기반도, 심지어 카메라 한 대 조차 없던 아들이 이리저리 일감을 찾아다니는 모습에 안쓰러워 ‘카메라 한 대 얼마 하니? 카메라 한 대 사줄게. 그것 가지고 시작해 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것마저 거절했습니다. 많은 예술인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이 분야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누가 밥값을 내야 하는지 신경이 곤두섰고,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 다섯 정거장 정도는 교통비를 안 쓰고 걸어 다녔습니다. 물론 저의 집안이 그 정도 돈 못 쓸 정도로 여유가 없지는 않았으나, 저는 속으로 '이 나이에 돈벌이도 못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는 것은 사치다'라고 생각하며 가급적 걸어 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 온 저의 영화 인생은 그렇게 밑바닥부터 시작되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비록 독립영화이지만 조금씩 규모를 키워가며 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순회 상영을 다니며, DVD를 찍어 판매하는 수준에서 점차 작품을 작은 영화관에서부터 상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이 하나 둘 씩 영화관에 걸려 작품을 찾는 관객들이 늘었고, 이번엔 멀티플렉스 상영관 전국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을 지내면서 아버지의 권유를 당장 실행해 옮겨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었으나, 덕분에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일하거나 생활했던 분들을 만나 뵈면 꼭 이 대통령에 대해 질문하고 이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백선엽 장군님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뵌 분들은 그 당시에도 꽤 계셨으나, 백 장군님처럼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큰일을 하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던 분은 없었습니다. 백 장군님은 이승만 대통령과의 일화와 본인이 참여했던 전투에 대해 매우 실감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후방 전투 현장을 직접 보여주시며 설명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귀한 증언들은 매번 카메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기록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아 저는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습니다. 요즘과 달리 20년 전에는 6mm 테잎을 썼는데, 당시의 기록이 멀쩡하게 보존된 것도 작은 기적입니다. 한편 해를 거듭하며 시간이 지나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왜곡과 비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니, 멈추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국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어 '22년 12월부터는 아예 작정하고, 그동안 모았던 자료들과 추가 인터뷰를 통해 '기적의 시작'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 국민 대배우의 합류 ■ 제작 과정에서 국민배우 임동진 님도 합류하시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런 대배우분께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에 넣을 재연장면에 출연해 주시라고 요청하는 것은 큰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 배우님께서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셔서, 속으로 많이 놀랐고, 겸손한 모습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임동진 배우님과 같은 영화계 거물이 합류하셨음에도 제작환경은 딱히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제작진은 그 분 이름을 내세워 따로 모금하지 않았고, 제 성격상 여기저기 제작비 모금하러 다니기도 쑥스러워 그러지 못해서 프로듀서 김재동 목사님이 모금해 오신 제작비 내에서 해결했습니다. 그런 형편 속에 많은 분들의 우려와 달리 제작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 아들 이인수 박사의 생전 마지막 고백 기록 ■ 이번 작업에서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로 이 대통령의 쓸쓸한 말년을 제일 가까이 곁에서 지켜보셨던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입니다. '23년 11월 별세하신 이인수 박사님의 인터뷰는 결코 쉽게 성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품을 위해 그분의 증언을 꼭 담고 싶었으나, 그분의 체력에 한계가 많으셨던 때라 인터뷰 약속을 잡고 갔다가도 두 세 번 실패하여 헛걸음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인터뷰가 어렵게 되자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는 포기했습니다. 사모님이신 조혜자 여사께서 마치 곁에서 대신 말씀을 전하시듯 하고, 이인수 박사님은 옆에만 앉아 계십사 하는 게 저의 새로운 바람이자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약속도 없이 임동진 배우님과 이화장을 둘러 보러 갔다가 이인수 박사님 컨디션이 최상인 것을 발견! 당장 카메라를 켜고 마이크를 연결해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장비를 가져간 것도 다행이었고, 그게 이인수 박사님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습니다. 다시 봐도 당시 이 박사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모습이 역력합니다. 이 모든 것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 신앙인 이승만 재조명 ■ 이승만 대통령이 젊은 시절 선교사들이 전해 준 예수님을 한성 감옥에서 복역 하며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영접한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난제 앞에서 하나님께 매달렸고, 우리나라 첫 국회를 기도로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작품에서 비기독교인들을 의식해서인지, 기독교 색채를 빼고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 그런 이승만의 모습은 인간 이승만을 이끄는 원천적인 힘이었기 때문에 저는 제 작품에서 그런 부분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마지막 기도는 임동진 배우님의 뛰어난 연기력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해 줍니다. ■ 전국 극장 개봉 ■ 드디어 ‘24년 2월 22일! 기적의 시작은 전국 개봉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어렵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영화를 한 개 극장에라도 걸기도 어렵고, 극장에 걸었다 해도 관객들을 사로잡기에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 전문 인력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한 두 사람의 몫입니다.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전국 극장 개봉을 위해서 제작사들은 적게는 수 천 만 원, 많게는 수 억 원의 홍보비를 씁니다. 저희는 '기적의 시작' 홍보를 위해 쓸 수 있는 금액이 거의 없었습니다. 금액을 밝히기에 민망해 그럴 수는 없지만, 그 금액조차 제작 과정에서 다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홍보를 위해 쓴 금액은 전단지 인쇄에 30만원 가량, 작품을 소개해 주시는 유튜브 분들께 음료수를 사 드리거나 식사 대접을 한 게 전부입니다. 주말에는 감독인 제가 손수 전단지를 챙겨 광화문이나 시청 같은 곳에 가서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젊은이들 중에는 전단지에 이승만 대통령 얼굴이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접어버리며 불쾌감을 표현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전단지를 나눠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많은 홍보비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원초적인 홍보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SNS 홍보도 했으나 제가 인플루언서가 아니다 보니 효과는 미미했던 것 같습니다. 넉넉잡고 홍보비로 100만 원 정도 썼던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전국 개봉까지 이어진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렵게 잡은 서울 두 개의 극장(필름포럼과 허리우드). 시사회 이후 5개월간 상영을 통해 관객 수 천명이 관람하고, 입소문을 듣고 오는 관객 수가 줄지 않자 멀티플렉스에서 이를 눈여겨보고, 일단 전국 10개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을 준 것 같습니다. 수 많은 난관을 뚫고 드디어 전국에 소개되는 ‘기적의 시작’. 여태까지는 저와 조력자 분들의 힘으로 끌고 왔으나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렇게 극장에 걸게 되었는데 보러 와 주시지 않으면 허무하게 극장에서 내려지게 됩니다. 극장에 와서 봐 주시는 것은 작은 애국입니다. 교회에서 단체관람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CGV에 예매가 열립니다. 예매를 많이 해 주시면 더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여 더 많은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 권순도 올림
    • 주요뉴스
    2024-03-07
  • 이제는 ‘기적의 시작’이다!
    스카이데일리 임명신 기자의 “[기획] 이승만 다큐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길 위에 김대중’ 압도”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권순도 감독이 20년 구상 끝에 작년 10월 내놓은 ‘기적의 시작’은 독립영화 특유의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건국 전쟁’ 흥행 속에 역주행 중입니다. 같은 주제의 두 다큐는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필히 두 편 모두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같은 목표, 다른 매력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1875~1965)을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월 1일 개봉한 김덕영 감독의 작품 ‘건국 전쟁’이 주목받으며 4개월 전 나온 권순도 감독의 작품 ‘기적의 시작’도 역주행에 가속도가 붙었다. 두 작품 다 철저히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된 다큐지만 흐느끼는 관객이 속출할 만큼 뜨거운 반응이다. 두 편의 이승만 다큐가 또 다른 역사 인물 다큐를 압도한 것도 눈길을 끈다. 훨씬 유리한 여건 속에 제작된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작 ‘길 위에 김대중’이 개봉 4주 후 12만 관객을 동원한 반면 ‘건국 전쟁’은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 수 18만 명을 돌파했다. 누적 관객 수 3위, 개봉관 수도 개봉 당초보다 3.3배 늘어난 상태에서 11일 누적 관객 수 24만 명을 넘어섰다. 다큐로선 이례적인 성적이 어디까지 갈지 관심을 모은다. ‘기념관 하나 없는 이승만’이 ‘기념시설 최다의 김대중’을 이겼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편 ‘기적의 시작’은 작년 10월 하순 서울 시내 단 두 곳(종로3가 낙원상가 헐리우드 극장·신촌 필름포럼)에서 개봉된 가운데 주로 각종 애국단체∙교회 등의 상영회를 통해 관람객을 늘려 갔다(현재까지 5000명 정도). ‘건국 전쟁’이 2월 1일 전국 CGV에 걸리고 화제를 부르자‘기적의 시작’ 역시 개봉 약 4개월 만인 22일 CGV 재개봉이 결정됐다. ‘기적의 시작’ ‘건국 전쟁’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졌고, 멸망의 위기를 넘어 훗날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틀을 구축했는지 조목조목 짚는다. 농지개혁, 문맹퇴치(교육개혁), 안보·경제발전을 담보한 한미 동맹, 자원 빈국의 산업화에 절실한 원자력발전의 토대 마련 등 다가올 산업화가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어떻게 준비됐는지를 두 편의 다큐 영화 는서로 다른 톤으로 설명해 준다. 각각의 장점이 있으며 지루하지 않을 반복 학습 효과가 기대된다.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을 다룬 최초의 본격 다큐 영화라는 의미 외에 애국지사로서의 역정과 기독교 신앙의 상관성을 조명한 점도 돋보인다. 창군 및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1920~2020)과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1931~2023) 박사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원로배우 임동진 목사의 이승만 연기 역시 독보적인 부분이다. 두 다큐는 1천 수백 년에 걸친 왕조 시대와 근대 식민지 시대를 겪은 중세적 공동체에서 자유 민주공화국 헌정 질서 마련이 얼마나 천지개벽할 일이었는지를 묵직하게 일깨운다. 공통된 주제지만 두 감독이 친분이 있거나 사전 협의한 것도 아닌데 내용상 겹치지 않는다.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 학습판이므로 둘 다 관람할 가치가 충분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공산화가 신생국들의 대세였던 시절, 이승만은 현대 국가(자유민주공화국)의 본질과 시스템을 이해한 유일한 한반도인으로 볼 만하다. 두 다큐의 시의성도 각별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오늘날, 정통성 논란은 결국 ‘이승만의 나라’ ‘김일성의 나라’ 양자택일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 세계사적 인물 이승만… 우선 다큐부터 ‘건국 전쟁’ 출연자의 한 사람인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전 이승만연구원장)는 연구원이 보관 중인 이승만 1차 자료 100박스에 대해 예산 부족으로 손을 못 대고 있다며 아쉬움을 수차례 토로한 바 있다. 그 자료들은 대부분 40년 망명 생활 중 세계정세를 전하거나 논한 신문·잡지 스크랩과 친필 메모들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세계사적 차원에서 연구돼야 할 인물 이승만’이라는 시각에 힘이 실린다. 이승만의 생애는 드라마틱하고 불가사의한 요소로 충만하다. 영화∙드라마 등 대중 서사 장르를 통해 그려질 날이 와야겠지만 일단 다큐가 절실했다. 관련 사실들이 극단적으로 왜곡되거나 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교과서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교과서 밖에선 악마화∙희화화됐을 뿐이다. 해석의 문제 이전에 팩트 자체가 엉터리인 경우도 많다.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가짜 뉴스·역사∙왜곡의 결정판 명저 ‘슬픈 중국’의 저자이자 ‘건국 전쟁’ 첫머리에 등장한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는 조선일보 칼럼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팩트를 지어 내는 역사가들’에서 “김덕영 감독의 작가 정신과 예술혼이 거짓 뉴스와 허위 정보를 마구 엮어 일방적으로 이승만 악인전(惡人傳)을 집필해 온 역사학계의 고루한 시대착오와 부족 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죽이기’ 최근 사례로 송 교수는 “(역사학자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박태균)”가 TV 교양 프로에서 이승만의 1952년 대선 승리에 대해 기호 1번을 독점해 대다수 문맹 유권자 몰표를 유도한 결과라는 취지로 설명한 점을 들었다. 이어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것과 김 감독이 당시의 선거 포스터를 꼼꼼히 뒤져 이를 입증해 냈음을 짚었다. 이승만은 기호 1번이었던 적이 없다. 이승만에 얽힌 대표적 오해인 6·25전쟁 발발 직후 라디오방송 틀어 놓고 도망갔다는 미확인 소문이 오늘날까지 조롱과 저주 담긴 별명 ‘런Run승만’으로 살아 있다. 김 감독의 ‘건국 전쟁’에서 ‘한강 다리 폭파’ ‘3.15 부정선거’ ‘하와이 도피설’ 등을 바로 잡을 증거들이 제시됐다. 또 한4·19 이후 이승만의 행보야말로 ‘독재자’ 낙인이 왜 부당한지에 대한 결정적 증거다. 자신과 무관한 부통령 선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무일푼의 독재자? 그런 인물이 과연 독재자일 수 있는지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묻고 있다. 한국인이 처음 만난 이승만… ‘건국 전쟁’ 감동 후기 이어져 조지워싱턴대(학사)∙하버드대(석사)∙프린스턴대(박사) 출신의 이승만이 얼마든 취득 가능했을 미국 시민권을 마다한 채 40년간 무국적자의 불편함을 견딘 사실에 김 감독은 주목했다. 아울러 미국 내 이승만의 족적이 그간 어떻게 왜 지워졌는지 현지 교민들 증언으로 전해진다. 1953년 정전협정 1년 후 미국 방문 당시 자유의 투사로 칭송받으며 뉴욕 시가를 대대적으로 퍼레이드한 영상은 ‘건국전쟁’을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이승만이 공산주의에 맞설 냉전 구도의 불가피성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미국 등 서방세계 조야에 열렬히 설명∙설득한 점도 부각된다. 그것이 대한민국 탄생 비밀의 한 측면이다. 공산주의의 본질·실상에 대부분 무지하던 시절이었다. 개봉 초기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만 네이버 영화면에 누락돼 있어 “좌편향 문화계의 이승만 지우기”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관람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육박했다. “덕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어 감사하다” “공산화 저지의 공로만큼은 이승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감상 후기가 가장 많다. 조선일보가 김 감독을 자세히 인터뷰한 것 또한 눈길을 끈다. 여기서 김 감독은“(이승만) 공부를 시작한 뒤 큰 반성을 하게 됐고 그를 비롯한 건국 세대에 대한 죄송함을 영화에 담았다”고 밝혔다. 2012년 유튜브에 유포된 악의적 이승만론(論) ‘백년 전쟁’이 오히려 일부 네티즌이 진실 찾기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것과 흡사한 경우라 할 것이다. 북한은 왜 그렇게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을까… 586세대 김 감독의 각성 김 감독은 1950년대 동유럽 국가들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들을 조명한 다큐‘김일성의 아이들’(2020)로 유명하다. 1만명 가량 동유럽에 분산 위탁돼 자라다 스탈린 사후 격변 속에 집단귀국 당한 후 김일성 유일 체제를 위해 잊혀진 존재들이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북한에 관심을 가지다가 1990년대 중반까지 평양에 ‘이승만 괴뢰도당 타도’구호가 있었음을 알게 됐으며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는지 궁금해졌다. 김 감독이 작품 구상 및 제작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은 이승만을 향한 집요한 폄훼가 “오랜 세월 좌파들의 선동에 의한 부당한 평가”와 “북한의 공작” 탓이 컸다는 사실이다. 김 감독 자신이 북한에 호감 내지 환상을 가진 586세대 일반의 감성과 역사관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그 폐해 또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거짓의 선글라스를 벗으면 평생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았고 애국애족의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했던 한 노인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며 울먹였다. 한 네티즌의 댓글 “대한민국이 버린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위대함은 대한민국 국민만 모른다. 참담한 현실에 부끄럽고 한없이 죄송하다”는 심정과 고스란히 겹친다. ‘건국’ ‘산업화’ 없이 ‘민주화’는 불가능… 그러나 뒤틀린 역사교육 김 감독의 말대로 이승만은 “(파고들수록)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한 한국사의 유일한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 그렉 브레진스키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미래 비전과 안정된 보장 시스템이 존재해야 건국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듯이 “바로 그걸 이승만이 해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결코 일본의 패망으로 당연히 얻어진 게 아니었다. 김 감독은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경제 개발이란 기관차가 달린 것”으로 두 지도자의 시대를 요약한다. 핵심적인 통찰이다. 산업화를 통한 중산층의 성장 없이 이뤄지는 ‘민주’란 ‘인민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중국(중화인민공화국)도 모두‘민주’를 전면에 내세운다.문재인 정부 시절 현행 헌법에서‘자유’를 삭제하고자 시도한 행위의 의미와 그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알아차리게 됐다. ‘독재자’라는 꼬리표가 3대 세습체제 속에 신격화된 북한 권력자들에게 붙는 대신 변명없이 자진 하야한 이승만에게 당연한 듯 붙는 게 온당한지 이제라도 저마다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이승만=살인마’의 관점을 일반화시키면서 제주 4.3의 비극이 대한민국 수립 및 그것을 위한 한반도 유사 이래 최초의 보통 선거(5.10총선) 저지를 위한 남로당의 무장 폭거에서 출발한 것임은 도외시한다. 이것이 지난 30년 우리나라 제도권 안팎의 역사교육 현실이다. 놓칠 수 없는 ‘기적의 시작’ 권 감독의 20년 구상 끝에 태어난 ‘기적의 시작’은 공산주의가 유라시아 대륙을 뒤덮었던 시절 그 끝자락 한반도에서 어떻게 자유 민주공화국이 수립·유지될 수 있었는지, 이승만 덕분에 가능했던 대한민국탄생의 기적과 그것이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토대가 됐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독실한 크리스천의 면모도 조명했으며 원로배우 임동진의 이승만 재연으로 다큐 이상의 감동을 더했다. 백선엽 장군 인터뷰와 ‘기적의 시작’ 개봉 며칠 후 별세한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전 명지대 법정대 학장) 박사의 영상은 진귀한 역사적 자료가 됐다. 본인들의 생전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대통령 하야 후 전주 이씨 문중의 주선으로 이승만 슬하에 30세때 입적한 이 박사와 그 가족은 지난 60여 년간 이승만 죽이기의 실질적 희생자였다. 권 감독에 따르면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 박사가 기적처럼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한 마디 한 마디 온 힘을 다하듯 간신히 해독 가능한 발음으로 건국 대통령의 애국 열정과 말년의 부자(父子)인연을 증언한 모습이‘기적의 시작’에 실려 있다. 특히 망명 생활의 근거지였던 하와이에서 몇 개월 휴식한 이승만 내외가 귀국하려던 당일 한국 정부로부터 하와이 잔류를 종용당한 장면, 이후 우울 속 건강 악화로 현지에서 임종을 맞게 된 과정이 생생하게 회고됐다. ‘건국전쟁’에서 하와이 망명설이라는 거짓 뉴스 유포의 전후 맥락을 짚었다면 ‘기적의 시작’은 당사자들의 내면을 전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현대사 공부? 화제의 이승만 다큐 두 편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에 맞선 체제 정당성 대결의 최전선에 있다. 총선을 약 2개월 앞둔 시점에서 또 하나의 선거전이 될 수 있다. ‘서울의 봄’은 대다수 관객에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허구의 틀을 빌어 사실상 실존 인물과 역사를 거꾸로 해석한 상업영화다. ‘서울의 봄’이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적폐의 나라’라는 인식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반면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절체절명 위기와 우여곡절 속에서 이승만이라는 한 애국자가 지향한 가치를 되새긴다.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자유민주 헌법) 위에 박정희의 산업화(근대화)가 가능했다는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1979년 10.26으로 중단될 뻔한 산업화를 완결짓고 민주화 시대를 예비한 게 전두환의 신군부, 즉 제5공화국이다. 그렇다면 영화 ‘서울의 봄’이 기도한 신군부 악마화는 대한민국 헌정사의 부정 아닌가. 이원석 검찰총장이 몇몇 동료들과 ‘서울의 봄’을 관람한 인증 샷과 소감을 남겼다. 기존 민주화운동 세력의 신군부 서사에 충실한 발언이었다. 건국의 역사를 제쳐둔 채 민주화를 말할 수 있을까.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관람 권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 요인과 ‘73년생 한동훈’ 등 여당 인사들의 관람 필요성이 역설되기도 한다.
    • 주요뉴스
    2024-03-06
  • 3.1 독립운동 정신으로 4.10 총선 승리하자!
    ‘한국 NGO연합’ 및 ‘자유정의시민연합’의 글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3.1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이번 4.10 총선에서 3.1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좌파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자. 4.10 총선은 대한민국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차대한 선거다. 선거라기보다 제2의 6.25와 같은 선거전쟁이다. 4.10 전쟁에 나서는 국민들은 죽을 각오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 나 하나쯤의 자만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경각에 달린 나라를 구해야 한다. 자유대한민국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4.10 총선에서 반드시 자유 우파세력이 국회 다수석이 되어야 하는 것은 진정 역사적 대업이고 사명이다. 문재인의 5년과 더불당이 다수당으로 국회를 농단한 8년 동안 우파들은 충분히 경험했다. 다시는 무도한 반 대한민국 세력이 정부와 국회를 장악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적 합의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만에 하나 아직도 안일하고, 나약한 국가 정체성으로 대한민국 이념과 사상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차제에 분명하고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갖도록 분발해야 할 것이다. 영화 ‘건국전쟁’을 봤다면 자유의 가치를 정말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은 좌파시만단체와 협약을 맺어 그들에게 최소 10석의 비례대표 자리를 주기로 합의한 모양이다. 그들 대부분은 친북, 종북단체 출신들이며, 이념 측면에서 북한과 궤를 같이 하는 세력들이다. 따라서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을 많이 지지하게 되면, 극단적으로 친북, 간첩세력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 대한민국 최악의 시나리오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은 공산화되었다. 당시 미군 철수 후 미군이 남기고 간 많은 최신 무기와 보급품, 병력에서도 월맹군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던 월남이 왜 공산화 되었을까? 당시 월남은 월맹에 비해 정신력에서 이미 패했다. 그리고 정부, 군, 정치판에 월맹의 간첩들이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었다. 그것도 고위직에 자리했다고 하니 월남은 월맹의 손바닥 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떨까? 아마 지금의 대한민국도 그 당시의 월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에도 북한 간첩이 35만이 침투해 있다는 소리가 탈북한 북한 고위인사들을 통해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침묵은 동조와 마찬가지다. 간첩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떠할까? 오늘은 3.1 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그러나 독립운동 기념일행사를 할 정도로 나라의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해서 오늘 우리는 주사파와 친북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한 제2의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여 4.10 총선에서 좌파세력들을 패퇴시킬 것을 천명한다. 여기에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 등 위대한 선배들의 뒤를 이어 좌파세력을 척결하고, 자유우파세력 모두가 한 마음으로 4.10 총선 승리를 위해 진군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2024년 3월 1일 한국NGO연합/자유정의시민연합
    • 주요뉴스
    2024-03-02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한동훈 비대위에, 이승만 박정희정신은 어디에?
    작년 12월 28일 오전 11시 비대위원 10명을 발표했는데,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직접 인선했으며, 비대위원이 공식 발표되기 전까지 어떤 언론도 미리 취재해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보안이 철저했습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당헌 96조에 따라 당연직 비대위원인 윤재옥 원내대표와 유의동 정책위의장(평택을) 등 2명을 제외하고, 김예지, 민경우, 김경률, 구자룡, 장서정, 한지아, 박은식, 윤도현 등 8명을 새로운 비대위원으로 지명했다고 밝혔습니다. 비대위는 한 위원장을 포함해 총 11명으로 꾸려졌습니다. 당연직을 제외한 8명의 지명직 비대위원들이 어떤 인물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⓵김경률은 회계사로 과거 참여연대에서 부패 감시 활동을 했으며, ‘조국 사태’를 계기로 민주당과 시민단체의 문제점 고발에 몸을 던졌던 인물입니다.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이며, 날카롭고 정의롭게 팩트로 민주당의 부조리를 파헤친 ‘조국 흑서’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⓶구자룡은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로 법과 상식에 논리적인 팩트만 말합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 영입된 인재로 인적 쇄신의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⓷장서정은 돌봄 교육 통합플랫폼 서비스 ‘자란다’ 대표입니다. ⓸한지아는 의정부 을지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인데, 동교동계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조카입니다. ⓹박은식은 전라도 광주 출신의 내과 전문의이며, 정율성 공원을 반대했던 ‘(상식과) 호남 대안 포럼’ 대표입니다. '젊은 호남 보수'를 자처했던 인물로 국민의힘의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촉망받고 있습니다. 앞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으로도 물망에 올랐으며 현재 인재영입위원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⓺윤도현은 자립준비청년 지원 단체인 ‘샤인온라이트((SOL)’ 대표이며, 약력은 알 수 없지만 나이가 너무 어립니다.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특이점 때문에 선발된 듯 하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 영입된 인재로 인적 쇄신의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⓻민경우는 과거 운동권 핵심 출신으로 가장 주목 받는 사람으로, 현재 분당과 광명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했고, ‘민경우 수학연구소’ 소장입니다. 전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사무처장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두 번이나 징역형(총 4년 2개월)을 살았으며, 민노당에 입당해 FTA 반대 활동을 벌이기도 했으며,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이끈 사람입니다. 광우병 사태 이후 진보 진영과 거리를 두고 ‘조국 사태’를 계기로 보수로 전향을 선언했습니다. 그 후 주사파와 운동권을 비판하는 활동을 했으며, 586 운동권과 외롭게 싸웠던 인물입니다. 작년 7월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각각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관련한 민주당의 전략에 대해 강연을 하며 정치적 보폭을 넓혔습니다. 운동권의 면면을 속속히 분석,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로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인선 발표에서 “대한민국 국민과 정치개혁 위해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에 앞장설 인사”라고 소개했습니다. 주사파를 잡기 위해서 ‘호랑이굴로 정통 주사파 민경우를 영입’했습니다. 일부 언론사가 과거 발언을 소개하여 ‘제2의 하태경’으로 오해를 받고, 결국 사퇴를 했습니다. 그의 발언을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작년 10월 17일 ‘우리 시대 우상과 이성을 묻는다’라는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지금 가장 최대의 비극은 노인네들이 너무 오래 산다는 것”이라며 “그러니까 빨리빨리 돌아 가시라”고 언급한 부분만 보면, 민 소장은 노년층을 겨냥해 ‘막말’을 일삼은 것으로 비춰질만합니다. 그러나 민 소장 발언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민 소장이 비판한 대상은 노인세대가 아닌 ‘386운동권 세력’이라는 점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이 자리에서 386세대가 생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설명한 민 소장은 “우상을 믿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신념이) 깊다”며 “이걸 어떻게 해결할 거냐? 아까 좀 극단적인 표현을 썼지만, 새로운 세대가 올라와서 자연스럽게 선배들을 밀어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민 소장은 이에 앞서 일부 북한 세대를 추종했던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과, 아들 세대가 중국을 싫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 세대의 경험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86운동권 세력은 크게 친북∙반미를 내세웠던 NL계열과, 노동운동을 내세운 PD계열로 양분됩니다. 민 소장의 발언을 요약하자면, 86운동권이 내세우는 낡은 생각이 바뀌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로 교체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그는 발언 직후 곧바로 노인 폄훼의 의도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결국 “가장 최대의 비극은 노인네들이 너무 오래 산다는 것”, “그러니까 빨리빨리 돌아 가시라”등의 발언은 노년 세대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운동권 세대에 한정된 발언이라는 것입니다.민 소장의 발언은 지난 8월 정치권에서 노인폄훼 논란으로 비화된 김은경 전 민주당 혁신위원장의 ‘여명 비례 투표제’ 주장과는 차이가 있습니다.민 소장의 발언은 386운동권 세대만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김 전 위원장은 노년층 전체를 대상으로 투표권을 줄이는 게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밝혔기 때문입니다.이것을 의식한 민 소장과 국민의힘 역시, 해당 발언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민 위원장은 “정중한 사과와 함께 향후 발언이나 표현에 대해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전했고, 국민의힘은 “일부 언론에서 해당 발언 바로 뒤에 붙은 '죄송하다'는 발언은 삭제한 채 발언 전체 취지를 왜곡하여 '노인 비하'라는 취지의 단정적인 보도를 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해명했습니다.결국 386세대를 비판한 민 소장의 발언은 결코 ‘노인 폄훼성’ 발언이 아니며, 단지 운동권 세대가 현재 은퇴를 해도 무방한 60대에 접어든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솔직히 민경우의 과거 발언이 노인폄하는 절대로 아니었으며, 386운동권 폄하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정확한 표현입니다. 이같은 사실도 모르고 우파들이 여론들과 좌파들의 선전선동에 놀아났던 것입니다. 과거 유튜브에서 ‘노인 비하’ 발언한 것이 논란과 오해를 받자 “더 이상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지난 12월 30일 사퇴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민 위원의 자진 사퇴 결정은 우리 사회의 ‘양심 세력’과 ‘비양심 세력’의 참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반성과 사과를 모르는 뻔뻔한 좌파들의 모습만 보다가 민 위원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자진 사퇴’라는 책임지는 모습은 너무나 대조됩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사람을 잘 뽑은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과오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비난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돌이켜 볼 일입니다. 민 위원처럼 모두가 스스로를 반성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⑧김예지는 국민의힘에서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YWCA 성평등 정책위원이었으며, 대선에선 유승민 캠프에서 활동했습니다. 장애인 언론사 ‘비마이너’에서 활동하며 전장연 정책을 옹호해 왔습니다. 그의 비서 이가연의 남편이 전장연 활동가입니다. 그는 동성애와 동성결혼 찬성자로 순한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은 사람으로 경계해야 할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국힘 김예지가 지역구로라도 등장하면 네팔의 ‘수닐 바부 판다’처럼 될 것이기에 김예지와 같은 국회의원을 조심해야 합니다. ‘김예지’는 정의당 정혜영 국회의원과 함께 ‘동성애 관련법’을 입법 공동 발의한 사람입니다. 수닐 바부 판트(Sunil Babu Pant)는 네팔 동성애 게이 클럽 다이아몬드 소사이어티(Diamond Society) 리더로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가 네팔을 동성애 입법한 사람입니다. 김예지도 비례대표의원이듯이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김예지는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으로 국회의원을 시켜줬더니 국민의힘 등에 칼을 꽂은 것입니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한 번 정도 해 보고 못 해 보는 실정이라면 이 당 저 당 쫓아다니며 국회의원하려고 이번에 정의당과 공동발의로 동성애 관련법을 주창하고 다음은 동성애 관련당들인 민주당, 녹색당, 노동당, 정의당 등을 전전긍긍하다 지역구에 당선되면 한국 사회에 암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 제2의 '수닐 바부 판트'가 되는 것입니다. 2008년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Jogyakarta) 회의에도 ‘수닐 바부 판트’는 참석했는데 그 회의는 변태적 회의였습니다. 국제규범처럼 미화했다고 한국 경남의회에서 동성애 관련 경남 조례 대책회의를 한 경남도의회 소위원회 위원장이 제소를 국제사회에 해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것도 경남의회 이름으로 하겠다고 주창했으니 경남도민들은 잘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지체 장애우를 선택한다면 차라리 같은 지체 장애우인 국민의 힘 이종성 의원(비례 대표)은 동성애 법안 반대 세미나를 주최했는데 이런 분을 지역구로 보내야 합니다. 이상 8명의 비대위원들의 출생연도를 보면, 65년생인 민경우와, 69년생인 김경율을 제외하고 모두 70년대 이후 출생자들입니다. 그 중에 윤도현 대표는 2002년 출생으로 가장 젊습니다. 대한민국은 반공 자유 민주주의로 건국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주 적국인 중공과 북조선을 추종하는 자들은 절대로 공직자로 세워서는 안됩니다. 대한민국은 반공 자유민주주의 한미동맹 친미강화ᆞ 반중 반북하고ᆞ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정신으로 뼈 속 깊이 새겨진 자들로 대통령 국회의원 공직자들을 세워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불법 탄핵하고, 문재앙 일당들을 추종한 자들, 종중 친중 종북 친북한 자들은. 정계와 대한민국에서 영원히 퇴출시켜야 합니다. 대한민국 반공 자유민주주의 애국민 여러분이 한동훈에게 알리고 정신 똑바로 차리게 해야 합니다ᆞ. 이것이 나라와 자유 민주주의 헌법과 국민들의 자유 주권과 후손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입니다ᆞ.
    • 주요뉴스
    2024-01-03
  •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할 한동훈의 비대위
    지난 12월 26일 한동훈 장관의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을 듣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비례로도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동료 시민과 이 나라의 미래만 생각하면서 승리를 위해서 용기 있게 헌신하겠습니다. 저는 승리를 위해 뭐든지 다 할 것이지만 제가 그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는 않겠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적 욕심이 아니라 애국심으로만 승리를 위한 용기 있는 헌신을 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그리고 비서실장에 김형동 의원을 임명했으며, 27일에는 ‘비정치인 중심으로 비대위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나이보다는 능력을 중심으로 인선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한 위원장은 28일 국회 출근길에서 비대위원 인선 관련 취재진 질문에 “당연히 비정치인 위주”라며 “정치인 위주로 할 거면 제가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게 이상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저는 우리 사회에 자기가 땀 흘려 돈 벌고, 가족을 보호하고, 동료 시민으로서 선의를 가진 분들을 (비대위원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한 위원장은 “저는 생물학적 나이를 기준으로 한 ‘세대 포위론’이나 ‘세대교체론’이란 말은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둑의) 이창호 사범이 10대에 세계를 제패했고, 조지 포먼은 제 나이 때에 (복싱) 헤비급 챔피언을 했고, 히치콕은 60세 때 (영화) 사이코를 만들었다”며 “열정과 동료 시민에게 봉사하겠다는 선의엔 나이 제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당 일각에서 민주당 주류 세력인 86 운동권과의 선명한 대비를 위해 1970~1990년대생 중심의 ‘789 비대위’를 꾸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나이보다 능력 중심의 인선을 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한 위원장이 세대 포위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탈당과 신당 창당을 발표한 이준석 전 대표와 당분간 거리를 두겠다는 뜻입니다. 세대 포위론은 2030과 6070이 연합해, 민주당 지지 세력인 4050을 포위하자는 것으로 이 전 대표가 지난 대선 때 내세운 선거 전략이었습니다.한 위원장은 이날 “출마해야 할 분은 오히려 출마해야 한다”며 “불출마 자체가 미덕인 건 아니다”라고도 했습니다. 야당의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하기 위해 내년 총선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을 해야 공천을 줄 것이며, 만약 후에 약속을 어기면 즉시 출당시키겠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불출마 선언이 꼭 당내 중진 등의 ‘희생’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다만 당내에선 “중진 등에 대한 당 안팎의 희생 요구는 계속 나올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12월 28일 오전 11시 비대위원 10명을 발표했는데,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직접 인선했으며, 비대위원이 공식 발표되기 전까지 어떤 언론도 미리 취재해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보안이 철저했습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당헌 96조에 따라 당연직 비대위원인 윤재옥 원내대표와 유의동 정책위의장(평택을) 등 2명을 제외하고, 김예지, 민경우, 김경률, 구자룡, 장서정, 한지아, 박은식, 윤도현 등 8명을 새로운 비대위원으로 지명했다고 밝혔습니다. 비대위는 한 위원장을 포함해 총 11명으로 꾸려졌습니다. 지난 12월 29일 열린 국민의힘 상임전국위에서 비대위원 임명안을 의결하여 ‘한동위 비대위’가 본격 출범하게 되었으며, 공식 첫 일정으로 새해 첫 날 현충원을 참배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9일 이만희 사무총장 후임으로 초선 장동혁 의원(충남 보령·서천)을 임명했습니다.한 위원장은 이날 오후 국회 본관에서 첫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열고 "장 의원은 행정, 사법, 입법을 모두 경험했고, 특히 국민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교육공무원까지 지냈다"며 "오랜 기간 법관으로 지내며 법과 원칙에 대한 기준을 지켜오신 분으로, 우리 당이 원칙과 기준을 지키면서 승리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을 주실 분이라 생각해서 모셨다"고 설명했습니다.사무총장은 당 운영 전반을 총괄하는 것은 물론 공천관리위원회에 참여하며 선거 실무를 이끄는 핵심 요직입니다. 집권 여당 사무총장에 초선 의원이 임명된 것은 이례적입니다.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깜짝 발탁'이자 '파격 인선'이었으며, 기존 지도부에 영남 및 경찰 출신이 많다는 지적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장 의원은 1969년생으로 서울대 사범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대학생 신분이던 1991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충남교육청 교육공무원이 되는 등 약 10년간 공무원으로 재직했습니다. 2001년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2006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습니다. 이후 인천지법과 서울중앙지법, 국회 파견 판사를 지낸 뒤 2019년 2월 광주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정계에 입문했습니다.20대 총선에서 대전 유성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으나, 대선 직후인 지난해 6월 1일 충남 보령·서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습니다. 주호영·윤재옥 원내대표 체제에서 원내대변인으로 활동해 왔습니다.이어 한 위원장은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에 여론조사 전문가 홍영림 전 조선일보 기자를 임명했습니다.한 위원장은 "우리가 총선에서 승리하고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진정한 보수집단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여의도연구원이 전문 조직으로 더 발전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동안 여의도연구원장을 의원들이 해왔던 관행에서 벗어나 여론조사와 분석의 전문가를 모시게 됐다"고 밝혔습니다.그러면서 "홍 전 기자는 1994년 대우경제연구소를 거쳐 1997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30여년간 여론조사와 통계분석을 담당해온 국내 사실상 유일의 여론조사 전문 기자"라며 "우리 당의 정책과 조사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켜 줄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한편, 한 위원장의 입 역할을 할 비대위 대변인에는 YTN 출신 호준석 전 앵커가 내정됐다. 호 전 앵커는 최근 YTN을 퇴사했고, 지난 19일 당 인재영입위원회 영입 인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가운데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김형동은 국힘당 소속인 안동∙예천 의원 출신인데, 그의 과거 행적을 살펴 보면 7가지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1."총선 때, 이준석과 유승민을 품고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 부인은 아직도 중국 국적이고, 장인은 연변시 부시장을 역임한 중국 공산당 간부 출신입니다. 3. 김형동이 13년 전(2010년 10월 11일)에 “석권호 동지에게”라는 글을 썼는데, 그 글에서 “저도 동의합니다. 형님, 응원하겠습니다”라는 등 때론 친북 좌편향 속내를 보였습니다. 석권호는 민노총 간첩 사건의 핵심인물로 북한 간첩에게 활동비를 받은 인물입니다. 김형동이 제일 친하게 어울렸던 사람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여 간첩죄로 처벌받은 민주노총 핵심세력인 석권호와 막역한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4. 이준석 前 당 대표가 수석대변인으로 임명했던 '이핵관'으로 "일개 유투버의 고발로 시작된 이준석 징계는 너무 성급하다."고 주장했습니다. 5. 과거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되었을 때 ‘탄핵감상문’이란 글을 썼으며, ‘아주 잘 되었다’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오매불망 반겼다’고 고백했으며, 박근혜 탄핵에 대한 정당성을 부각시킨 자였습니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6. 또한 문재인이 당선 되었을 때에 ‘아주 잘 되었다’고 축하 칼럼을 작성했습니다. 7. 좌파들의 의료계의 좌편향 목표의 술책인 "공공의대 설립" 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이처럼 김형동의 과거 행적을 잠깐만 살펴 봐도 그가 어떤 인물과 어울렸고 어떤 이념을 가지고 살아왔던 인물인지 알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사람이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될 수 있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대한 기대는 크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며, 문제가 많은 인물은 교체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추천했는지 추천한 사람을 엄벌해야 마땅합니다. 그냥 1/300 의원도 아니고, 여당의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이라면, 그것도 총선을 앞두고 그 지위가, 업무 성격이나 중요도가 엄중한데 한동훈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시켰을까요? 아니면 몰랐을까요? 본인은 당연히 국민 앞에 언론 보도 내용에 대해 사실을 밝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불당 2중대 꼴 국힘이 진정한 자유우파 정당으로 쇄신되어 거듭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자유우파 이념에 맞지 않는 비서실장 김형동은 물러 나는 게 맞습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좌빨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좌빨을 포용해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선민후사를 하겠다’고 소리쳤던 초심(初心)이 변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실수는 신이 아닌 이상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법입니다. 미처 모르고 좌빨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잘못된 인사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충언하는 애국우파 국민들의 의견을 겸허히 수렴 하는 것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는 진정한 용기입니다. 한시바삐 김형동 임명을 철회하고, 자유우파 국민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그런 보편타당한 훌륭한 우파인사를 한번 물색해 보시기를 진심으로 권유합니다. 그러면 이제는 비대위원들을 한 명씩 살펴 보겠습니다. ⓵김경률은 회계사로 과거 참여연대에서 부패 감시 활동을 했으며, ‘조국 사태’를 계기로 민주당과 시민단체의 문제점 고발애 몸을 던졌던 인물입니다.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이며, 날카롭고 정의롭게 팩트로 민주당의 부조리를 파헤친 ‘조국 흑서’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⓶구자룡은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로 법과 상식에 논리적인 팩트만 말합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 영입된 인재로 인적 쇄신의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⓷장서정은 돌봄 교육 통합플랫폼 서비스 ‘자란다’ 대표입니다. ⓸한지아는 의정부 을지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인데, 동교동계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조카입니다. ⓹박은식은 전라도 광주 출신으로 정율성 공원을 반대했던 내과 전문의이며, ‘(상식과) 호남 대안 포럼’ 대표입니다. '젊은 호남 보수'를 자처했던 인물로 국민의힘의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촉망받고 있습니다. 앞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으로도 물망에 올랐으며 현재 인재영입위원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⓺윤도현은 자립준비청년 지원 단체인 ‘샤인온라이트((SOL)’ 대표이며, 약력은 알 수 없지만 나이가 너무 어립니다.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특이점 때문에 선발된 듯 하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 영입된 인재로 인적 쇄신의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⓻민경우는 과거 운동권 핵심 출신으로 가장 주목 받는 사람입니다. 현재 ‘민경우 수학연구소’ 소장이며, 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두 번이나 징역형(총 4년 2개월)을 살았으며, 민노당에 입당해 FTA 반대 활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전향한 후에는 586 운동권과 외롭게 싸웠던 인물입니다. 주사파를 잡기 위해서 ‘호랑이굴로 정통 주사파 민경우를 영입했는데, 일부 언론사가 과거 발언을 소개하여 ‘제2의 하태경’으로 오해를 받았으며, 결국 사퇴를 했습니다. 그의 발언을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지난 10월 17일 ‘우리 시대 우상과 이성을 묻는다’라는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지금 가장 최대의 비극은 노인네들이 너무 오래 산다는 것”이라며 “그러니까 빨리빨리 돌아 가시라”고 언급한 부분만 보면, 민 소장은 노년층을 겨냥해 ‘막말’을 일삼은 것으로 비춰질만합니다. 그러나 민 소장 발언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민 소장이 비판한 대상은 노인세대가 아닌 ‘386운동권 세력’이라는 점이 분명히 나타납니다.이 자리에서 386세대가 생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설명한 민 소장은 “우상을 믿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신념이) 깊다”며 “이걸 어떻게 해결할 거냐? 아까 좀 극단적인 표현을 썼지만, 새로운 세대가 올라와서 자연스럽게 선배들을 밀어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민 소장은 이에 앞서 일부 북한 세대를 추종했던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과, 아들 세대가 중국을 싫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 세대의 경험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86운동권 세력은 크게 친북∙반미를 내세웠던 NL계열과, 노동운동을 내세운 PD계열로 양분됩니다.민 소장의 발언을 요약하자면, 86운동권이 내세우는 낡은 생각이 바뀌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로 교체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그는 발언 직후 곧바로 노인 폄훼의 의도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결국 “가장 최대의 비극은 노인네들이 너무 오래 산다는 것”, “그러니까 빨리빨리 돌아 가시라”등의 발언은 노년 세대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운동권 세대에 한정된 발언이라는 것입니다.민 소장의 발언은 지난 8월 정치권에서 노인폄훼 논란으로 비화된 김은경 전 민주당 혁신위원장의 ‘여명 비례 투표제’ 주장과는 차이가 있습니다.민 소장의 발언은 386운동권 세대만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김 전 위원장은 노년층 전체를 대상으로 투표권을 줄이는 게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밝혔기 때문입니다.이것을 의식한 민 소장과 국민의힘 역시, 해당 발언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민 위원장은 “정중한 사과와 함께 향후 발언이나 표현에 대해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전했고, 국민의힘은 “일부 언론에서 해당 발언 바로 뒤에 붙은 '죄송하다'는 발언은 삭제한 채 발언 전체 취지를 왜곡하여 '노인 비하'라는 취지의 단정적인 보도를 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해명했습니다.결국 386세대를 비판한 민 소장의 발언은 결코 ‘노인 폄훼성’ 발언이 아니며, 단지 운동권 세대가 현재 은퇴를 해도 무방한 60대에 접어든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솔직히 민경우의 과거 발언이 노인폄하는 절대로 아니었으며, 386운동권 폄하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정확한 표현입니다. 이같은 사실도 모르고 우파들이 여론들과 좌파들의 선전선동에 놀아났던 것입니다. 과거 유튜브에서 ‘노인 비하’ 발언한 것이 논란과 오해를 받자 “더 이상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지난 12월 30일 사퇴했습니다. 안타깝지만 민 위원의 자진 사퇴 결정은 우리 사회의 ‘양심 세력’과 ‘비양심 세력’의 참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반성과 사과를 모르는 뻔뻔한 좌파들의 모습만 보다가 민 위원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자진 사퇴’라는 책임지는 모습은 너무나 대조됩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사람을 잘 뽑은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과오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비난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돌이켜 볼 일입니다. 민 위원처럼 모두가 스스로를 반성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⑧김예지는 국민의힘에서 비례 대표로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YWCA 성평등 정책위원이었으며, 대선에선 유승민 캠프에서 활동했습니다. 장애인 언론사 ‘비마이너’에서 활동하며 전장연 정책을 옹호해 왔습니다. 그의 비서 이가연의 남편이 전장연 활동가입니다. 동성애와 동성결혼 찬성자로 순한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은 사람으로 경계해야 할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국힘 김예지가 지역구로라도 등장하면 네팔의 ‘수닐 바부 판다’처럼 될 것이기에 김예지와 같은 국회의원을 조심해야 합니다. ‘김예지’는 정의당 정혜영 국회의원과 함께 ‘동성애 관련법’을 입법 공동 발의한 사람입니다. 수닐 바부 판트(Sunil Babu Pant)는 네팔 동성애 게이 클럽 다이아몬드 소사이어티(Diamond Society) 리더로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가 네팔을 동성애 입법한 사람입니다. 김예지도 비례대표의원이듯이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김예지는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으로 국회의원을 시켜줬더니 국민의힘 등에 칼을 꽂은 것입니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한 번 정도 해 보고 못 해 보는 실정이라면 이 당 저 당 쫓아다니며 국회의원하려고 이번에 정의당과 공동발의로 동성애 관련법을 주창하고 다음은 동성애 관련당들인 민주당, 녹색당, 노동당, 정의당 등을 전전긍긍하다 지역구에 당선되면 한국 사회에 암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 제2의 '수닐 바부 판트'가 되는 것입니다. 2008년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Jogyakarta) 회의에도 ‘수닐 바부 판트’는 참석했는데 그 회의는 변태적 회의였습니다. 국제규범처럼 미화했다고 한국 경남의회에서 동성애 관련 경남 조례 대책회의를 한 경남도의회 소위원회 위원장이 제소를 국제사회에 해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것도 경남의회 이름으로 하겠다고 주창했으니 경남도민들은 잘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지체 장애우를 선택한다면 차라리 같은 지체 장애우인 국민의 힘 이종성 의원(비례 대표)은 동성애 법안 반대 세미나를 주최했는데 이런 분을 지역구로 보내야 합니다. 이상 8명의 비대위원들의 출생연도를 보면, 65년생인 민경우와, 69년생인 김경율을 제외하고 모두 70년대 이후 출생자들입니다. 그 중에 윤도현 대표는 2002년 출생으로 가장 젊습니다. 대한민국은 반공 자유 민주주의로 건국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주 적국인 중공과 북조선을 추종하는 자들은 절대로 공직자로 세워서는 안됩니다. 대한민국은 반공 자유민주주의 한미동맹 친미강화ᆞ 반중 반북하고ᆞ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정신으로 뼈 속 깊이 새겨진 자들로 대통령 국회의원 공직자들을 세워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불법 탄핵하고, 문재앙 일당들을 추종한 자들, 종중 친중 종북 친북한 자들은. 정계와 대한민국에서 영원히 퇴출시켜야 합니다. 대한민국 반공 자유민주주의 애국민 여러분이 한동훈에게 알리고 정신 똑바로 차리게 해야 합니다ᆞ. 이것이 나라와 자유 민주주의 헌법과 국민들의 자유 주권과 후손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입니다ᆞ.
    • 주요뉴스
    2024-01-02
  •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기도
    “차표도 없이 엉겁결에 승차한 인생 2023호 인생 열차는 이제 곧 그 종착역을 도착하게 됩니다. 바쁘게 뛰어 온 사람이나, 놀며 쉬며 유유자적으로 살아온 사람이나 ‘2023호’라는 열차는 똑같이 인생역에 도착할 겁니다. 섭섭한 일! 아쉬운 일! 못다 한 일! 모든 일들이 인생 열차와 함께 ‘2023호’역에 도착 후 마감을 합니다. 그러나 최신형 KTX 열차보다 더 좋은 ‘2024호’ 인생 열차가 시동을 걸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열차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세상을 달려 나갈 것입니다.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은 뒤로하고 오로지 나의 인생에 행복한 그림을 그리시기를~ 인생 열차는 이 세상 모든 행복과 불행을 함께 싣고 출발하지요. 불행은 다음 역에 하차시키고 행복과 기쁨만 가득 싣고 끝없이 펼쳐진 철길을 달려 봅시다. 그 철길은 산 넘어, 바다 건너 어디든 펼쳐져 있습니다. ‘2024호’ 열차는 차표도 필요 없고, 돈도 달라 하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타고 다니시고, 좋은 곳 많이 다니며, 행복한 추억의 그림자를 남기고 건강과 희망을 가득 싣고 새로운 인생 열차 2024호 열차를 타고 출발합시다.” 갑진년(甲辰年) 새해 첫 날!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기도를 소개 드리겠습니다. 어느 추운 눈 내리는 겨울밤이었습니다. 불을 끄고 막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프란시스코’는 귀찮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이 찾아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에는 험상궂은 나병환자가 추워서 벌벌 떨며 서 있었습니다. 나병환자의 흉측한 얼굴을 보고 섬칫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죄송하지만 몹시 추워 온 몸이 꽁꽁 얼어 죽게 생겼네요. 몸 좀 녹이고 가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문둥병 환자는 애처롭게 간청을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당장 안된다고 거절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못해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주고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자리에 앉자 살이 썩는 고름으로 심한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어떻게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요 벌써 사흘째 굶어 배가 등가죽에 붙었습니다.” ‘프란시스코’는 식당에서 아침 식사로 준비해 둔 빵과 우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문둥병 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빵과 우유를 게걸스럽게 다 먹어 치웠습니다. 식사 후 몸이 좀 녹았으니 나가주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문둥병 환자는 가기는커녕 기침을 콜록이며 오히려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성도님! 지금 밖에 눈이 많이 내리고 날이 추워 도저히 가기 어려울 것 같네요. 하룻밤만 좀 재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 수 없지요. 누추하기는 하지만, 그럼 여기 침대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지요.” 마지못해 승낙을 했습니다. 염치가 없는 문둥병 환자에게 울화가 치밀어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혼자 살고 있어서 침대도 일인용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침대를 문둥병 환자에게 양보를 하고 할 수 없이 맨바닥에 자려고 하였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문둥병 환자는 또다시 엉뚱한 제의를 해 왔습니다. “성도님, 제가 몸이 얼어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네요. 미안하지만 성도님의 체온으로 제 몸을 좀 녹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처구니없는 문둥병 환자의 요구에 당장 자리에 일어나 밖으로 내 쫓아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꾹 참고 그의 요구대로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문둥병 환자를 꼭 안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일인용 침대라 잠자리도 불편하고 고약한 냄새까지 나는 문둥병 환자와 몸을 밀착시켜 자기 체온으로 녹여주며 잠을 청했습니다. 도저히 잠을 못 이룰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꿈속으로 빠져 들어 갔습니다. 꿈속에서 주님이 기쁘게 웃고 계셨습니다. “프란시스코야! 나는 네가 사랑하는 예수란다. 네가 나를 이렇게 극진히 대접했으니 하늘에 상이 클 것이다.” “아 주님! 나는 아무것도 주님께 드린 것이 없습니다.” 꿈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자리에 일어 났습니다. 벌써 날이 밝고 아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침대에 같이 자고 있어야 할 문둥병 환자는 온데 간데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름 냄새가 베어 있어야 할 침대에는 오히려 향긋한 향기만 남아 있을 뿐 왔다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아! 주님이셨군요. 주님이 부족한 저를 이렇게 찾아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프란시스코’는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모든 것을 깨닫고 밤에 문둥병 환자에게 불친절했던 자신의 태도를 회개하며 자신과 같은 비천한 사람을 찾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 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이 기도가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 프란시스코’의 ‘평화의 기도’입니다. 계묘년 한 해가 삶의 흔적과 긴 여운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2024년 갑진년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뜻하는 모든 소망 다 이루시어, 입가에는 함박 웃음꽃이 가득하며,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다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주님! 새해에는 회복이 되게 하옵소서. 예배(禮拜)가 회복되고, 경제(經濟)가 회복되고, 건강(健康)이 회복되고, 관계(關係)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주님! 새해에는 해결되게 하소서. 묶인 것이 풀리고, 닫힌 것이 열리고, 막힌 것이 뚫리고, 문제(問題)들이 해결되게 하옵소서. 주님! 새해에는 채워지게 하옵소서. 사랑이 채워지고, 은혜(恩惠)가 채워지고, 행복(幸福)이 채워지고, 필요(必要)가 채워지게 하옵소서. 주님! 새해에는 타오르게 하옵소서. 사랑이 타오르고, 열정(熱情)이 타오르고, 의욕(意慾)이 타오르고, 부흥(復興)이 타오르게 하옵소서. 주님! 새해에는 일어나게 하옵소서. 믿음이 일어나고, 정의(正義)가 일어나고, 의인(義人)이 일어나고, 대한민국(大韓民國)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모두 일어나 새 일을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祝福하며 祈禱하옵나이다. 아멘
    • 주요뉴스
    2024-01-01
  • ‘승려 자승의 자살, 유인촌 장관은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를 철회하라!’
    ‘할 말을 해야 법치주의가 바로 선다’라는 제목은 제 개인 블로그에서 약 4년이 되었지만, ‘뉴스워크’를 통해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게 된 것은 올 1월부터였으며, 벌써 한 해가 다 저물어 갑니다. 뉴스워크에서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는 약 500여명의 시청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4천명으로 늘어 났습니다. 그동안 시청해 주신 애독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꼭 눌러 주시면 방송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한 해의 마무리를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해의 마지막 방송을 ‘무엇으로 할까?’라고 고민하다가 ‘승려 자승의 자살을 ‘소신공양’으로 사기 치는 조계종은 정신 차리시고, 유인촌 장관은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를 철회하라!’라는 내용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1월 29일 전 조계종 총무원장의 승려 ‘자승’이 분신 자살을 했습니다. 이를 두고 ‘입적이다’ 또는 ‘소신 공양이다’라는 말들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불가의 상황을 잘 모르지만 승려 자승(慈乘)이, 공도 많고 말도 많았던 서의현 전 총무원장 이후, 다시 교계를 통합해 낸 총무원장이란 명성이 귀에 익어 큰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종교란, 특정한 종교 일부 외에 인류 역사와 인생사에 매우 선의적인 선도와 공덕을 남기는 게 변함없는 정설입니다. 그 때문에 지구상 3대 종교니, 4대 종교니 분별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불교이고 역사도 깊고, 교리도 명백하게 정립되어 있어 승려들의 생활도 엄숙합니다. 그러함에 교계 최상 지도자급인 총무원장을 젊은 나이에 2대(33대. 34대)에 걸쳐 재임해 8년간이나 수장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통합적 지도력이 큰 공적을 이루었을 것이며, 영광의 관록이기에 근래까지도 교계 영향력이 최상이라 했을 것입니다. 그 시대(1990년대)에 그렇게도 막강했던 서의현 총무원장께서도 2선의 영광 후, 3선에 도전하려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아 영향력을 잃고 승적 박탈의 수모를 겪기까지 했으나, 승려 자승은 그러지를 않고 여력을 탄탄히 남긴 채 영광의 퇴임식을 가졌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 무리없이 공을 남기고 내려앉아 높은 존경을 받아왔던 지도자가, 불과 2~3일 전까지도 앞으로 할 일거리를 계획하고 발표하고 하면서, 한편으론 극비리에 유서(임종계)를 이곳저곳에 여러 장이나 남기고선,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 칠장사 요사채를 통째로 불태우는 자화장으로 소신공양(燒身供養)의 놀라움으로 무엇을 교시하려는 도량(度量)이었을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잘 모르긴 해도 소신공양(燒身供養)이니, 자화장(自火葬)이니 하는 것은 승려 자승이 한 것같은 형식으로 행한 일은 들은 적도 없으며, 옛부터 도력(道力) 높은 고승들이 손가락을 스스로 태우면서 불공을 드리는 인고의 공양이나, 앉아서 임종하는 좌탈입망(坐脫立亡) 등의 기적(奇跡)을 남기는 일은 있었지만, 스스로 다비식(불교 화장식)을 거행하는 것도, 15년 전 쯤에 어느 노승이 기거 사찰 인근의 공터에 장작을 가득 쌓아 놓고 그 장작 위에 누워 거기에 불을 질러서 스스로 다비하여 입적한 일이 있었지만 교계 지도자가 CCTV가 빤히 촬영됨을 알면서 휘발유 통을 양손에 들고 들어가 요사채를 불태우면서 스스로 그러했다는 것은 상상 이상입니다. 이런 입적(入寂)으로 무엇을 가르치거나 주장하려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교계의 주류급 인사들은 암암리에 멧세지를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르나 불가의 사부대중(四部大衆)들도 이해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근래 국내 종교 지도급 인사들이 모범을 보이기는 커녕 신도들을 오도하고 국민을 불안케 하고, 국정을 어지럽히거나, 반역적 행동을 일삼는 행위가 자심하여 종교무용론을 담론하거나 냉담자들이 속출하는 지경인데 호국불교 조계종의 큰 별이셨던 어른이 호국할 여력을 파묻고 70세의 나이에 저렇게 열반(涅槃)하심은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조계종단은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경기도 안성시 칠장사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을 ‘소신공양’으로 규정했지만, 참여불교재가연대가 지난 12월 2일 교단자정센터에서 조계종 승려 4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신공양’이라는 답변은 겨우 6.9%였으며 ‘영웅 만들기’라는 답변이 93.1%로 압도적으로 나왔습니다. 또 ‘자승 승려가 한국 불교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종단 안정과 불교 중흥을 위해 노력한 큰 스님’이라는 답변에 6.2%였으며, “끝없는 정치적 욕망과 명예를 추구한 사람이다”라는 응답이 93.8%로 절대적으로 많았습니다. 교단자정센터는 또 “사찰의 전각을 태우면서 자살한 자승의 자살을 소신공양이라고 미화하는 것은 불자들에게는 삿된 수행을 장려하는 꼴이고, 이교도들에게는 사찰의 방화를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자살은 중범죄입니다. 감옥을 피해 가더라도 인생 유죄는 피할 수 없습니다. 자살로 모든 것이 소멸된다면 53만 종의 생명들이 역사하는 지구는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자살률 세계 1위,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언론 보도에서도 '자살'이라는 단어 사용을 자제할 정도인데, 불교계 '큰스님'의 극단 선택을 '소신공양'이나 '입적'이란 말로 치장하는 것이 정당합니까? 만약 조계종에서 자승 스님과 같은 극단 선택에 대해 '소신공양'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수행자 사이에서는 충분히 있는 일", "절대 피안의 세계로 깨달음의 성취를 한 것"이라고 치장한다면, 일반인의 극단 선택을 조장하는 것이 아닙니까? 생명의 가치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고 일반인에게 전파해야 할 종교가 오히려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개인적 일탈을 소신공양으로 포장하는 것은 한국 불교의 타락의 정점을 보이는 것입니다. 자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조계종이 공식적으로 '소신공양'이라고 정의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과연 부처가 분신을 요구했습니까? 아니 요구를 떠나서 부처가 지금 다시 온다면 분신을 용인할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불교 교리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 불살생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생명을 죽이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 자기 생명도 죽이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내 생명은 내 것이니 내 맘대로 죽여도 된다는 교리가 도대체 불교 경전이나 교리 어느 구석에 나온다는 말인가요? 물론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약왕보살의 일화를 들고나와 소신공양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전개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분신자살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더구나 약왕보살은 번뇌로 죽은 것이 아니라 대중의 진리를 위해 보시한 것이고 나중에 다시 화생합니다.이런 '소신공양'이라는 부처의 본래 가르침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뻔뻔한 주장으로 '자살한' 승려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은 불교만이 아니라 종교 자체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조계종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 것에 대해 당장 사과하고 대중의 용서를 구해야 마땅합니다. ‘소신공양’이란 문자 그대로 진리를 위해 몸을 불태워 공양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승은 자신이 남긴 유서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지극히 개인적인 번뇌로 자살했습니다. 한국의 불교 승려, 특히 조계종 간부로 있는 이들은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고 거금을 주무르면서 문자 그대로 '잘 먹고 잘살고' 있다는 사실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그런데 그런 조계종 간부의 노른자위 자리인 총무원장을 지내고 여러 비위와 추문에 연루되었던 자승이 자기 몸만 불사르는 것이 아니라 절간을 불태워 가면서 자살하는 경우는 불교 역사만이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을 것입니다.불교의 승려라면 불교 교리의 으뜸인 사성제를 이루기 위하여 팔정도를 모범적으로 실천해야 마땅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팔정도 어디에도 분신 자살을 촉구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세상 고통은 모조리 집착에서 오는 것이고 그 집착을, 도를 수행하여 없애야 하는데 그 구체적인 방편이 팔정도, 곧 바르게 보고, 사유하고, 말하고, 실천하고, 생활하고, 정진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런데 개인적 번뇌를 못 견뎌 분신자살하는 것이 이 팔정도 어디에 들어 있다는 말인가요? 그런데 진리를 위해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정진한다고 주장하는 불교의 고위 간부였던 승려가 개인적 번뇌로 자살한 것을, 탄압받는 민중의 종교를 지킨다는 올바른 마음에서 자신을 희생시킨 것을 지칭하는 '소신공양'으로 위장하는 것은 명백한 사기에 가까운 짓입니다. 기독교는 이미 여러 추문으로 사회에서 ‘개독교’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욕을 먹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교계에 들려 오는 뉴스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개인적 일탈을 조계종이 조직적으로 ‘소신공양’으로 포장하는 짓까지 저지르는 것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부패한 것인지 잘 보여 주는 사건으로 역사에 남을 일입니다. 조계종은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지난 12월 11일, 2010년 서울 양천구 국제선센터에서 기도 스님으로 활동하던 중 당시 총무원장이던 자승 승려의 추천으로 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으로 인연을 맺었던 동국대 전 교법사 진우 승려는 “자승 죽음은 방화 사건, 조계종 상층부 혀 깨물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2월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마련된 자승 승려의 분향소를 찾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자승 승려의 국민 훈장 무궁화장 추서했다고 밝혔습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국민훈장(5등급) 중 1등급에 해당합니다. 정부는 자승 승려의 한국 불교 안정과 전통문화 발전, 종교 간 화합, 사회통합을 향한 공적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즉시 당장 승려 자승의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를 철회하시기 바랍니다. 문재앙은 분실 자살한 전태일에게 대한민국 최고 국민 훈장 무궁화장을 주고, 윤석열은 방화와 분실 자살한 사람에게 ‘국민 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습니다. 도대체 국민들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자살해야 최고 국민 되는 것입니까? 평소 훌륭했으면 살아 있을 때 주던가 하지 왜 자살한 직후에 국민 최고 훈장을 주는 것입니까? ‘자살 공화국’이라고 ‘대책을 세워야 된다’고 하면서 왜 자살을 미화하는 것입니까? 자살한 사람을 최고 국민으로 띄우니 OECD 최고 자살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 주요뉴스
    2023-12-29
  • ‘한동훈은 어떤 사람인가?’
    요즘 이 사람만 뜨면 아주 시끌시끌합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과연 어떤 인생을 걸어왔나 쫙 한번 정리를 해 봤습니다. 한동훈 장관이 1973년 4월 9일생, 만 50세입니다. 본인이 얼마 전에 밝혔는데, 어린 시절에는 강원도 춘천에 살았다고 하죠. 여기가 부모님 고향이었다고 합니다. 충북 청주로 이사 가서 운호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녔습니다. 청주로 간 이유는 아버지가 세계 반도체 장비 1위, 우리나라 회사는 아니고 외국계 회사인데 그 회사의 한국 법인 대표를 하면서 청주에서 살게 된 겁니다. 청주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있다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으로 옵니다. 잠원동 신동 초등학교를 나오고, 그 옆에 경원중학교, 그리고 강남 압구정에 있는 현대고등학교 나와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대학교 4학년 때 사법고시에 합격하죠. 소년 급제. 최근 한 장관이 현대고 동창인 배우 이정재 씨와 밥 한번 먹었다가 ‘누가 돈을 냈네’ 하면서 시끌벅적했었죠. 요즘 부인이 또 화제입니다. 한 장관과 부인 진은정 씨는 겹치는 게 많아요. 일단 두 사람 모두 현대고등학교 출신입니다. 소문에 따르면 둘 다 현대고 전교 1등 출신이라고 하죠. 나이는 한 장관이 더 많습니다. 둘 다 현대고 나와서 진은정 씨가 서울 법대 93학번, 한 장관이 서울 법대 92학번. 캠퍼스 커플이었다는 거죠.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미국에 가서 공부도 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와서 미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진은정 씨는 우리나라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서 변호사 하고 있고, 한동훈 장관은 검사와 법무부 장관까지 하고 있는 엘리트 부부죠. 그런데 한동훈 장관에게 '처가 리스크’가 있다 이런 얘기가 좀 나옵니다. 부인 진은정 씨의 아버지, 한동훈 장관의 장인어른은 진형구 전 대전고검장입니다. 고검장까지 했으니까 아주 높은 자리까지 간 거죠. 그런데 끝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1998년에 기자들과 술자리에서 “조폐공사 파업을 유도했다” 파업을 진압해서 본보기를 보여주려고 일부러 파업을 유도했다는 말을 했다가 당시 크게 논란이 됐고 결국 옷을 벗었습니다. 진 씨와 남매지간인 한 장관 처남도 검사였는데 성추행 사건 발생해서 검사 옷 벗고 대기업으로 들어갔습니다. 한동훈 장관의 어린 시절과 가족관계 살펴봤고요, 이제 본격적인 검사 시절 얘기 좀 해볼까요? ▶‘조선제일검(檢)’이라 불린 한동훈 검사 한동훈 검사 별명이 ‘조선제일검’이라고 합니다. 이거는 ‘검찰 검(檢)’자인데, 또 항간에는 중의적인 표현으로 칼을 잘 써서 칼 검(劍)이라는 얘기도 누가 하던데요. 그만큼 수사를 잘했다는 거죠. 한 검사는 1996년 사법연수원에 입소합니다. 이원석 검찰총장과 연수원 37기 동기예요. 같은 반 같은 조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98년에 강릉 공군 제18전투비행단 법무관으로 갑니다. 사법고시 합격하고 법무관으로 군대 간 건데, 보통 법무관으로 가면 논다는데 한 검사는 군 법무관 시절 혼자 인지 수사를 해서 중령을 수뢰죄로 구속시켰다죠. 본격적인 검사 생활을 시작한 건 2001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입니다. 사실 초임 검사가 서울중앙지검에서 바로 시작을 하려면 사법연수원 성적이 상당히 좋아야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 지금으로 따지면 금융조세조사부, 그러니까 경제 사범들 조사하는 특수부입니다. 사실 흔히들 이제 이런 검사들 ‘재계 저승사자’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잡범들 하는 게 아니라 대기업들 수사를 한 건데 SK그룹의 분식회계 조사해서 당시에 최태원 SK 회장이 구속됩니다. 2003년에는 지금은 폐지된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로 갑니다. 이때 중수부장이 안대희 전 대법관. 그 밑에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했었던 ‘논두렁 시계’로 유명한 이인규 검사가 팀장, 그 밑에 한동훈 장관이 막내 검사로 들어갑니다. ‘차떼기 사건’ 기억나십니까? 한나라당뿐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도 액수는 작았지만 논란이 됐었던 그 차떼기 사건 수사를 했던 이 대선자금 수사단에서 윤석열 검사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화로부터 돈 받은 혐의로 당시 잘 나갔던 한나라당 서청원 전 대표를 구속시킨 그 수사단, 그러니까 한동훈 검사가 처음부터 센 곳에서 시작을 했던 거죠. 한 검사는 미국 가서 공부를 한 뒤 2006년 대검 중수부에 검찰 연구관으로 돌아옵니다. 이때도 윤석열 검사와 함께 수사를 하는데,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구속시키죠.엄청 큰 사건들을 도맡아 한 겁니다. 한 검사는 2007년에 부산으로 내려가거든요. 부산에 가서도 전군표 현직 국세청장을 구속시킵니다. 2009년에는 청와대로 갑니다.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고 있는 인사 검증도 사실은 청와대 근무 때 해봤던 거예요. 그리고는 법무부의 꽃이라는 법무부 검찰국으로 가죠. 그러니까 중수부-청와대-법무부 검찰국, 엘리트 코스만 밟으며 간 겁니다. 2013년 대검 정책기획과장, 2015년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 2016년 대검 부패범죄특수단 2팀장, 초고속 승진을 했는데 이때까지는 정치와 별로 엮일 게 없습니다. 그냥 수사 잘해서 초고속 엘리트 승진 코스를 밟고 있었던 겁니다. 이때 한동훈 검사를 데리고 있었던 유명한 검사 출신에게 물어봤더니 선배들은 그렇게 막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선배 말을 잘 안 들었다고 합니다. 수사에 있어서는 너무 철두철미하게 해서 좋은 의미로는 청탁이 안 통하고 정의감이 넘친 거지만, 위에서는 ‘융통성도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선배 검사도 있었다 이런 말도 전하더라고요. 그런데 한동훈 검사가 점점 정치에도 휘말리기 시작합니다. ▶정치와 엮이기 시작한 한동훈 검사, 왜? 윤석열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바로 그 사건. 한동훈 장관이 뭔가 정치적인 것과 엮이기 시작한 사건은 이게 아닌가 싶습니다. 2016년 한동훈 장관이 '국정농단 특검’으로 파견됩니다. 박영수 특검팀에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파견이 됐죠. 박영수 전 특검이 대검 중수부장 출신이에요. 잘 나가는 검사들 다 끌어모은 겁니다. 윤석열 검사 끌려간 거고, 이복현 현재 금융감독원장. 지금 윤석열 대통령 옆에 '좌동훈 우복현’이 있다 이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이 원장도 또 ‘재계 저승사자’잖아요. 이복현 검사도 이때 끌려갔고, 한동훈 검사도 끌려갔습니다. 나쁘게 표현해서 끌려갔지만 일 잘 해서 차출이 된 거죠. 여기서 이재용 삼성 부회장도 구속을 시키고, 결국은 문재인 정권의 눈에 들죠. 왜?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국정농단 특검의 힘을 받아서 문재인 대통령이 압도적인 득표로 대통령이 되잖아요. 그렇게 누가 잘 나가죠? 윤석열 검사가 잘 나가죠.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이 됩니다. 그러면 윤석열 지검장이 누구를 쓰겠어요? 한동훈 장관을 쓰죠. 2017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발탁이 됩니다. 이 3차장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이것도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그리고 나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됩니다. 이게 참 운명이 뒤바뀌는 순간인데 검찰총장 되자마자 또 누굴 쓰겠어요? 2019년 한동훈 장관이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을 하는데요. 흔히 말하는 검사장급이에요. 검사장급 몇 명 되지 않습니다. 검찰 역사상 최연소 46살에 검사장 승진을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특수통 중에 제일 잘 나가는. 거의 대검 중수부장급인 이 자리에 한동훈 검사가 있었던 기간은 불과 5개월입니다. 그 후부터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조선제일검’ 한동훈, 4번이나 좌천된 이유 한동훈 장관이 추락하게 된 계기, 그걸 촉발시킨 인물이 바로 조국 전 장관이죠. 윤석열 검찰총장과 함께 추락을 하죠. 민정수석 하다가 조국 법무부 장관을 시키려 했을 때 당시 검찰총장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윤석열이 대통령에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조국 부인 정경심 씨 사모펀드 사건이 이미 터진 상황이었거든요. 위험하다고 보고를 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하죠. 윤석열 검찰총장 되고 한동훈 검사를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발탁했는데, 한동훈 부장검사가 눈치 없이 수사를 하죠. ‘조국 가족 비리’ 수사를 아주 세게 진행합니다. 한동훈 장관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부인을 하지 않았으면 그렇게까지 압수수색하고 하지 않았을 텐데 조국 장관도 그렇고 부인 등 가족 모두가 너무 아니라고 계속 부인을 하니까 압수수색하고 수사를 더 강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건 권력한테 덤빈 거죠. 그래서 좌천되기 시작합니다. 반부패강력부장 5개월밖에 못 했다 그랬죠. 2022년 1월에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되는 등 4번 자리를 옮기는데요. 검사들 사이에서는 ‘유배지’로 불리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갔다가 용인에 있다가 또 4개월 만에 진천으로 발령이 납니다. 사법연수원 부원장까지 계속 좌천되죠. 그 사건 기억나시죠? 정진웅 차장검사가 한동훈 검사 찾아가서 휴대전화 뺏으면서 몸싸움 벌어지고 병원에 누워 있었던 그 ‘독직 폭행 사건’, 그게 이때 한 검사가 용인 법무연수원에 있을 때 벌어진 일입니다. 역설적으로 팬클럽이 생긴 것도 이때죠. 권력에 덤볐다가 좌천된 게 멋있다고요.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되기 전에 이렇게 인터뷰를 했더라고요. “한동훈 검사는 문재인 정권에서 피해를 많이 봤다. 수사를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이 되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 발탁되고 정말 드라마틱하게 인생이 또 역전이 되는데요. 여러분, 이 정도면 ‘조선제일검’ 맞습니까? ▶이명박‧박근혜‧이재용‧조국… 한동훈의 소신? 이명박, 박근혜, 이재용, 정몽구, 최태원 등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사 시절에 구속시킨 인물들입니다. 보수 정권 대통령들이고 또 대기업 총수다 보니까 한동훈 검사는 민주당 쪽 사람들이 오히려 좋아할 만한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보수진영에서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일부는 있는데요. 한동훈 장관은 강한 사람과 부패와 싸워왔을 뿐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한동훈 장관의 검사 시절을 정리하면서 이게 가장 눈길을 끄는 것 같아서 제가 한번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검사 시절 좌천되어 있을 때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권력이 물라는 것만 물어다 주는 사냥개를 원했다면 저를 쓰지 말았어야죠. 그분들이 환호했던 전직 대통령들과 대기업들 수사했을 때나 조국 장관 수사했을 때나 똑같이 할 일을 한 거고 변한 건 없습니다. 윤석열 총장이나 저나 눈 한번 질끈 감고 조국 수사 덮었으면 계속 꽃길이었을 겁니다” 이 인터뷰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측근이냐?’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훌륭한 검사고 좋은 사람입니다. 가치를 공유하는지는 몰라도 이익을 공유하거나 맹종하는 사이는 아니니 측근이란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년 동안 상식과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는 다짐을 지키는 게 쉽지 않았는데 운 좋게도 그때마다 주위에 좋은 수사관들, 실무관들, 검사들이 있었고 윤 총장도 그런 분입니다” 이게 솔직한 얘기라면 한동훈의 인생, 검사 인생, 좌천과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를 가장 잘 정리해 주는 말인 것 같아서 제가 한번 읽어 드렸습니다.
    • 주요뉴스
    2023-12-28
  • 왜! 젊은 층은 물론 온 국민이 한동훈에 열광할까요?
    오늘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동안 조선제일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집권 여당의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느냐? 아니냐?를 놓고 여론이 뜨겁게 달아 올랐습니다. 지난 21일 총선 정국에서 국민의힘을 이끌 비상대책위원장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내정되었습니다. 한동훈 장관의 비대위원장 지명은 지난 13일 김기현 대표가 ‘주류 희생’을 둘러싼 당 혁신위와 갈등과, 여권 지지율 답보 속에 사퇴를 선언한 지 8일만입니다. 윤재옥 대표권한대행은 지난 10일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을 결정한 뒤 의원 총회, 중진연석회의, 상임고문 간담회 등을 통해 당내 중지를 모아 왔습니다. 친윤(친윤석열)계를 중심으로 한 장관 추대론이 부상했고, 비윤계에서는 한동훈 장관이 정치 경험이 없고, 확장성이 적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내부 의견 수렴 절차가 진행되며 ‘한동훈 대세론’이 굳어졌습니다. 한동훈 장관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치 경험 부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같이 가면 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동훈 장관은 또 “진짜 위기는 경험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과도하게 계산하고, 몸 사릴 때 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말함으로써 사실상 비대위원장직 수락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동훈 장관의 등장을 두려워 하면서도 별것 아닌 것처럼 내숭을 떨고 있지만 정작 한동훈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공포에 질려있는 듯한 낌새가 짙게 풍기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동훈에게 대들었다가 골로 가버린 시신(屍身)들이 즐비하기 때문입니다. 송영길이 그랬고, 정청래가 그랬고, 박범계가 그랬고, 최강욱이 그랬습니다. 조국이 그랬고, 추미애가 그랬고, 김의겸과 박찬대도 그랬습니다. 정칠승과 민형배도 그랬고, 안민석도 그랬습니다. 당 대표 이재명도 한칼에 날라갔습니다. 한동훈의 쾌도난마(快刀亂麻)를 보고 국민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기 절정의 '한동훈 현상'이 보여주고 있는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한동훈은 일단 깨끗하고 신선합니다. 전과 4범의 이재명과 숫한 사법리스크의 지저분한 것과 대비됩니다. 한동훈은 진짜 검사이고, 이재명은 검사사칭 가짜 검사였던 것이 다릅니다. 한동훈은 당당하고 국민을 속이는 것이 없지만 반면에 이재명은 불리한 것에 대해선 동문서답하고 모른다로 일관하는 점이 다릅니다. 한동훈은 고등학교 동기생 배우 이정재와 식사하고 나서 개인카드로 결제했습니다. 이재명은 관용 법인카드로 마누라 김혜경이 비서를 시켜 초밥도 사 먹었는데도 모른 체했고, 자신도 일본제 샴푸를 사서 쓰고, 아침 식사도 사 먹었습니다. 이재명은 공(公)과 사(私)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공충족(公蟲族)이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한동훈은 독서광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독서량이 많습니다. 동시에 책 4권을 독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도 있습니다. 소설 '모비딕'과 루쉰의 소설 '고향'의 내용을 술술 얘기하기도 합니다. 서울법대와 콜럼비아 대학교 로스쿨 출신으로 해박하고 정확한 법리로 말합니다. 이재명은 그저 얼렁뚱땅 적당하게 넘어가려다 걸리고 마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한동훈은 최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거명되면서 정치경력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모든 길은 처음엔 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함께 가면 길이 된다”는 명언도 중국 작가 루쉰의 소설 '고향'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해서 한 말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의 아바타'라고 비난하자 한동훈은 “누구에게도 맹종한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한동훈은 민주당이 정략적으로 들고 나온 김건희 특검법은 총선용 악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명품 가방 문제도 '서울의 소리'가 만든 '몰카 공작'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려움 없이 정곡을 찔러가며 소신껏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다르게 이재명은 약삭빠르긴 하나 당당하지 못합니다. 형수에 대한 쌍욕은 물론 개딸들의 강요에 맹종하는 굴종으로 일관하는 치사한 모습은 정치 지도자로서 떳떳하지 못합니다. 얄팍한 꼼수 정치의 전형이란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한동훈은 문재인 정권에서 추미애·조국·박범계 등 3명의 법무장관으로부터 탄압받고 억압받았지만 잘 견뎌내고, 국민의 선택을 받은 새로운 정권에서 귀사 회생한 강직한 공직자입니다. 이재명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내면서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수많은 혐의에 대해 자유롭지 못합니다. 관련 공직자 5명이 부담에 못 이겨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도 일말의 미안함이나 반성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재명 자신이 최측근이라고 자랑한 김용 등이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이란 중형을 선고 받았는데도 ‘아직은 재판이 끝난 게 아니다’라고 말하며, 태연한 척하고 있습니다. 철면피요, 뻔뻔스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한동훈과 이재명은 인간 본성과 능력, 수양 면에서 차원이 다른 종자처럼 보입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생각도 변하고 있습니다. 썩어 빠진 정치 쓰레기들의 구린내 나는 혐오 정치에 대한 민심도 변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바뀐 줄도 모르고 날뛰며 경거망동하던 오늘의 송영길이 내일의 이재명이 아니란 보장도 없습니다. 왜 젊은 층은 물론 온 국민이 한동훈에 열광할까요? 그것은 그동안 이런 정치인을 보지도 만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의도 정치판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무경험인 사람이 “약자들과 서민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감동의 정치를 하겠다”고 해서 일 것입니다. 정치를 오래한 소위 정치 9단이 정치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익만을 위한 정치 9단이지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 9단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정치를 오래했어도 더 이상 신뢰를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명석하고 자제력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을 합니다. 담배는 물론 술 한 모금(?)도 안 한다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더욱이 검찰 조직내에서 술 마시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국가 지도자는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어야 하며, 수신제가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고 싶었다. 그리고 이 나라의 미래를 대비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이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 수락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9회 말 2아웃 2 스트라이크에는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애매해도 후회없이 휘둘러야 한다”며 “용기와 헌신으로 해내겠다. 국민의힘을 이기는 정당으로 이끌어 가겠다”라고 말함으로써, 엄중한 나라 상황을 비상한 각오의 마음을 밝힌 조선제일검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 여의도에 대파란이 일 것 같습니다. 집권 여당은 물론 제1야당 민주당과 이재명에게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정치판에 대변혁이 생길 것 같습니다. 1973년생 50세의 젊은 천재가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개혁하고 혁신해 줄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라고 불렸으며, 검찰에서는 ‘전국 제일 검’으로 불렸던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여의도 300명의 화법은 여의도 사투리”이며, “국민적 상식”을 강조하며, ‘586 정치’를 불신하며, ‘789 비대위’로 2023년의 무능 부패 정치 버리고, 2024년은 깨끗한 정치가 승리하는 정치개혁의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활약으로 대한민국의 정치가 새로워지고 내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 힘이 200석 이상으로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 주요뉴스
    2023-12-26
  • ‘일본 대학생들의 박정희 관’
    장진성 교수의 ‘일본 대학생들의 박정희 관’이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 어제 밤 일본 대학생들과 장시간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한국말을 잘하는 그들 때문에 우리는 서로 교감할 수 있었다. 국제외교정치를 전공하는 그들은 연세대와 고려대 유학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이 해안포를 발사하면 그 소리가 한국에서 보다 더 크게 들리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만큼 안정된 질서와 기나긴 평화에 체질화된 일본인들이어선지 분단 상황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이웃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컸다. 나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놀랍게도 일제히 ‘박정희!’라고 합창했다. 한국 대학생들에게서도 잘 듣지 못한 말을 일본 대학생들에게 듣는 순간, 전율 같은 감동이 솟구쳤다. 그들은 우선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장점을 "청렴함"이라고 했다. 미리 준비하고 서거한 것도 아닌데, 총에 맞아 급사했는데도 자기와 가족을 위한 비자금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에 일본이 3억 달러를 원조했을 때도 필리핀이나 다른 나라 대통령들 같은 경우 그 돈을 횡령하여 혼자만 부자가 된 반면, 박 대통령은 고스란히 국민을 위한 경제개발에 돌렸다는 것이다. 나는 어설픈 상식으로 김일성은 세습 권력을 위한 독재를 했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을 위한 독재를 했다며 분단시대의 두 長期(장기) 체제를 비교했다. 그러자 우리나라에선 ‘개발독재’라는 표현도 일본 대학생들은 ‘개발독선(獨善)’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비록 밀어붙였지만 결국은 옳지 않았느냐?며 오히려 그때 고속도로를 반대했던 이른바 민주투사들이란 사람들이 과연 역사 앞에 진실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전기를 아끼느라 청와대 에어컨을 끄고 파리채를 들었던 사실이며 서거 당시 착용했던 낡은 벨트와 구두, 화장실 변기에 사용했던 벽돌까지 그들은 박 대통령 일화를 참으로 많이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 들었는가 물었더니 박 대통령을 연구하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 '조갑제 닷컴'에서 출판한 박정희 전기를 모두 읽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우리 한국 대학생들 중 13권에 이르는 그 방대한 전기를 끝까지 읽은 학생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하고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박정희 대통령 덕에 살면서도 그 위업을 경시하는 한국의 현대사를 편향된 일방적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솔직한 역사 인식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국은 민주화의 역사만을 정당화한다고 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정작 한강에는 그 상징물이 없는 나라이다. 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그 자리에 세우는 것이 바로 역사 정립이고 후대의 예의가 아니겠냐며 한국은 일본의 과거를 자꾸 문제 삼는데 우선 저들의 현재부터 바로 세우라고 비판했다. 만약 박정희 대통령 같은 인물이 먼 옛날이 아니라 우리 부모 세대에 일본을 구원했다면 자기들은 우리의 가까운 역사로 자부심을 가지겠지만 한국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다며 매우 이상해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있을 당시 한국 대학생들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논쟁했던 이야기를 했다. 한국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박정희는 독재자일 뿐이고 왜 독재를 하게 됐는지, 그 결과가 과연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도, 분석하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치 그들의 주장은 논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고의 형식과 틀에 의존한 교과서 같았다. 박정희를 부정하면 마치 민주화 세대인 것처럼 자부하는 그들을 보니 아직도 민주주의를 모르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광우병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웃음으로 비판했다. 이념이나 국민건강 문제에 대한 우려를 떠나 시위자들의 사회적응 심리부터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일본은 어디 가나 ‘스미마셍’으로 통한다. 남에게 불편을 줄 때는 물론, 부를 때도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있다. 그래서 미안하지 않기 위해 거리에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공동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하며 자기 집 앞은 깨끗이 청소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잦은 시위들을 보면 남들에게 불편을 끼쳐서라도 자기들의 뜻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잘못된 국민 정서의 결정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용인되는 사회, 아니 법치에 도전해도 된다는 시민의식이 바로 한국의 대표적인 후진성이라고 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일본의 한류 열풍에 대한 이야기로 즐겁게 술잔을 나누었다. 나는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할 줄 아는 일본 대학생들을 위해 오늘 밥값은 내가 내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더치페이가 ‘민주주의’라며 각자 지갑을 열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감사함을 무엇으로든 표현하고 싶어 2차 노래방 값은 그들 몰래 내가 계산했다. 위의 장진성 교수의 글에서 일본 대학생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장점을 ‘청렴함’이라고 말했으며, 그리고 “박정희를 부정하면 마치 민주화 세대인 것처럼 자부하는 그들을 보니 아직도 민주주의를 모르는 나라”라고 말한 것을 보면, 현재의 우리 국민들의 심성(心性)은 뒤틀려도 한참 뒤틀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뒤틀린 것은 배은망덕(背恩忘德)하고 사대주의(事大主義)에 찌들어서 조상을 배척하고 남의 조상에 매달려 정신적 노예로 추락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국민들의 뒤틀린 심성(心性)의 시작과, 오늘의 현실은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요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조선인들이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러므로 조선 민족의 혼, 조선 민족의 문화를 상실하게 하라.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능과 악행을 들추어내되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모 조상들을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이 기풍이 되게 하라. 그렇게함으로서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갖게 하고,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하라. 그럴 때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동화(同化)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일본은 졌다.그러나 조선이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이 조선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사관을 심어놓았다. 결국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 일본의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 주요뉴스
    2023-12-25
  • 송영길 구속 이어, 그 다음은 누구일까?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300만원 씩 넣은 20개의 봉투를 윤관석 의원에게 주어 의원들에게 돌리게 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송영길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지난번 이재명에 대해서 범죄 혐의는 소명되나 그가 야당 대표이므로 여당과 언론의 견제를 받고 있어 증거인멸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영장을 기각했던 유창훈 판사입니다. 서울지방법원에 영장 전담 판사는 3명이고 그 3명이 매일 돌아가며 영장 심사를 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검찰에서는 그날 그날의 영장 담당 판사가 누가 될 것인가를 사전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유창훈이 당직인 날을 골라 송영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위 전당대회 돈 살포의 하위 책임자인 윤관석과 강래구가 위 유창훈판사에 의해 이미 구속된 바 있어 그 몸통인 송영길에 대하여 영장을 기각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또한 그가 지난 번 이재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후 국민들로부터 정치 판사라는 낙인이 찍혀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강남역에 유창훈을 비난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리고 ‘근조 유창훈’이라는 조화가 법원 앞에 줄지어 세워지는 등으로 그가 엄청난 시련을 맛보았기 때문에 함부로 기각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김명수가 서울지방법원 영장 전담 판사로 심어놓은 좌빨 판사인데 그런 그가 좌파 정치인 송영길에 대한 구속영장에 서명할 때 얼마나 그의 손이 떨렸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민심은 천심이며 역천자(민심을 거스르는 자)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차후에도 이러한 좌빨 판사들이 우리나라를 적화하려는 의도로 빨간물이 물들여진 엉터리 판결을 할 때 과감하게 그 분노를 표출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난 번 유창훈을 비난한 강남역 4거리의 현수막은 민심을 거스르는 좌빨 판사에 대한 분노 표출의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송영길은 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외에도 ‘평화와 먹고 사는 문제 연구소(먹사연)’를 통해 불법 정치 자금 7억 6,300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고, 그 중 여수 상공회의소 회장 박용하로부터 부터 받은 3억여원의 정치자금 중 4000만원은 박용하의 사업인 소각처리 시설 관련 유리한 입법 로비를 해 달라는 댓가로 받은 뇌물수수라는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송영길은 자기의 출판 기념회 석상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에 대하여 자기의 죄를 덮어 주지 않는다 하여 ‘어린 놈, 건방진 놈’ 등의 욕설을 하였고, 자신은 돈 봉투 돌릴 때 파리에 있어 돈 봉투 돌린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또 이것은 당 내 잔치로서 경미한 일이므로 나는 영장을 기각시킬 자신이 있다 라고 호언 장담하기까지 한 바 있습니다. 또한 그가 사건 관계자에게 전화한 것이 증거인멸이라고 하자, ‘전화한 게 무슨 증거인멸이냐?’라고 항변했다 합니다. 그냥 안부 전화만 한 것이라면 증거인멸이 아니겠지만 그가 돈 봉투 살포로 수사받고 있으면서 사건 관계자에게 단순 안부 전화만 했겠습니까? 앞서 본 바와 같이 좌빨 유창훈 판사가 송영길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좌빨 김명수 대법원장이 나가고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한 것도 강력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하겠습니다. 이에 대해 황교안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송영길을 향해 “구속영장을 ‘기각시킬 자신이 있다’며 허풍을 떨었다”면서 “자신의 증거인멸 행태를 방어권이라는 가당치도 않는 말로 둔갑시키며 온 국민을 속였으나, 결국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정당법 위반, 정치자금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 뇌물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내년 총선에서 비례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그의 얘기는 일장춘몽이었을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아니다. 이 역시 방탄막이었을 뿐이다. 앞으로 철저한 수사와 엄벌을 통해 사법 정의가 세워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송영길의 구속으로 돈봉투 받은 민주당 의원 21명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 될 것입니다. 송영길 구속 다음은 이재명, 그 다음은 문재앙, 그 다음은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를 월북으로 몰아 북조선에 의해 사살되고 불태워 죽게 만든 관련자 모두 구속될 것입니다. 최근 이재명의 왼팔이라는 ‘김용’이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송영길이 구속되는 등 사법적 정의가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악의 몸통 이재명이 대한 사법처리만 남았습니다. 불원간 그도 국립호텔에 들어가 국가가 공짜로 주는 음식을 먹을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총선 전에 선고될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 그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허위사실 공표)과 위증 교사입니다. 새 대법원장은 신속하고 공정한 판결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불원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송영길의 고등학교 후배로 경남 지역에서 사업을 한 A씨가 송영길에게 1억원을 후원했습니다. 검찰에서 송 전 대표에 대한 후원 경위와 자금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A씨를 불러 조사했는데, 심리적 압박으로 검찰 조사 직후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송영길의 구속 영장 발부를 앞두고 후원자가 죽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왜 좌파들 돈 거래 뒤에는 죽음이 뛰 따를까요?
    • 주요뉴스
    2023-12-20
  • 1등 차기 대선 주자 한동훈 장관의 총선 사용법?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철의 전조 현상인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시작되었습니다. 내년 4월 총선에 국힘이 패배하면 윤석열 정부의 기능은 상실하여 선장없는 나라가 되어 대혼란이 발생할 것입니다. 이런 혼란을 피하려면 임기 상관없이 결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내년 4월 10일 총선은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로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결국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죄명의 신임투표입니다. 총선이 불과 4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의 사퇴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비상상황에 돌입했습니다. 당은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당 대표와 비대위원장과 선대위원장은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총선 승리를 위한 첫번째 조건은 무엇보다 당원들과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지난 11월 30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총선 차출에 대한 국민여론조사에서 51.4 %가 찬성으로 나왔는데, 한동훈 장관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여권 내 독보적인 1등 차기 대권 주자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한동훈 장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일각에서는 한동훈 장관을 수도권 험지 출마를 거론하고 있으나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 듯 싶습니다. 물론 한동훈 장관은 당선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의석수 하나 보태는데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한 장관의 운신의 폭은 그의 출마 지역구로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선거 승리를 위해 총력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 후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한동훈 장관의 활용도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례대표가 되더라도 초선 의원으로 무시(?)를 당할 것입니다. 지역구에 나가도 위장 전입을 해서라도 중국, 북한의 해커와 프락치들을 총동원해서라도 당선을 방해할 것입니다. 가짜 뉴스에 대해 대처할 시간도 별로 없기에 험한 과정이 예상됩니다. 단지 1석을 더 얻자고 한동훈 장관을 국회로 보내자는 것은 소탐대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동훈 장관의 국회 진출을 반대합니다. 한동훈 장관이 내년 총선에 나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고 해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한동훈 장관은 국민적 인지도와 대야(對野) 공세 능력을 바탕으로 총선에서 막중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대위보다는 선대위원장으로 바람몰이를 하는 게 더 낫습니다. 선대위 때 조자룡처럼 적진을 휘젓고 다녀야 합니다. 히딩크 같은 한동훈 장관을 세워서 모든 기득권을 혁파하고 당을 제대로 혁신하여 내년 총선에 승리하여 국민들에게 희망을 줘야 합니다. 인재들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한동훈 장관은 법무부 장관일 때 빛이 나는 것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장관 자리 내려 놓지 말고, 윤석열 대통령 임기 동안은 법무부 장관 자리를 지키면서 불법 도적떼들을 말끔히 청소해야 합니다. 박쥐 DNA를 가진 철새들은 중직에서 반드시 제외시켜야 합니다. 이제 그만 속기를 바랍니다. 한 번 속을 땐 속이는 놈이 나쁜 놈이지만 두 번 속을 땐 속는 놈이 더 나쁜 놈입니다. 정권 탈취 당하고, 국가 안보 해체 당하고, 경제 무너지고, 교육도 역주행 하고, 표도 도적질 당하고, 사법부 무너져도 정신 차리지 못하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 나야 합니다. 박쥐나 자유민주주의를 대적하는 반역자를 중직에 세우면 자기 주군을 적장에게 넘기는 매국노 노릇을 하게 됩니다. 제발 정신들 차리기 바랍니다. 현재 여당 내에선 원희룡 장관이 차기 비대위원장 후보로 가장 많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정치인으로 당내 현안에 익숙하고, 초대 내각 인사로서 尹대통령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입니다. 한동훈 장관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세우고 “국민의힘에 새바람이 분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기를 바랍니다. ‘새바람이라는 의미는 국민의 힘이 변한다는 말이며, 국민의 힘이 참신해진다는 뜻이며, 국민의힘이 새롭게 탈바꿈한다는 뜻입니다. 좌파가 가장 겁내는 사람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입니다. 대통령과 함께 총선에 이겨서 썩어빠진 좌파 이념을 개몽하여 정의롭고 상식이 통하는 하나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한동훈 같은 인물은 아껴 써야 합니다. 이회창, 최병열, 서청원, 강재섭, 안상수, 홍준표, 황교안, 이준석, 김기현까지 당대표 출신으로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총선 후에는 국무총리가 되어 차기 대권을 노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원희룡 비대위원장, 한동훈 선대위원장이 딱입니다. 단, 부정선거 못 막으면 민주당 200석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윤석열 대통령이라면 한동훈 장관의 출마를 반대할 것입니다. 오히려 법무부 장관으로서 부정선거가 되지 않도록 오히려 총력을 다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용인술(?)을 기대해 봅니다.
    • 주요뉴스
    2023-12-19
  • 영화 ‘서울의 봄’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좌파들의 선전∙선동 영화가 개봉을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적 문제를 소재로 다룬 좌파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10일만에 관객 수 300만명을 돌파했으며, 14일만에 관중 500만을 돌파하고, 20일만에 700만명을 넘었으며, 1000만 관객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안민석이라는 넘은 “관객 1000만 돌파하면 윤 정권 무너진다”고 악담을 하고 있습니다. 이재명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역사는 순풍에 돛을 단 유람선처럼 오지 않았다. 어느 곳 하나 성한 데 없는 상처 투성이의 모습으로 수많은 주권자의 피를 먹으며 자라났다”고 말했으며, 12.12에 대해 “44년 전 오늘, 독재의 군홧발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짓밟았다. 나라를 지켜야 할 총칼이 국민에게 부여된 권력을 찬탈했다”고 했습니다. 이재명은 “잊지 않겠다. ‘서울의 봄’이 저절로 오지 않았음을 똑똑히 기억하겠다. 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도록, 사적 욕망의 권력 카르텔이 국민의 삶을 위협하지 않도록 비극의 역사를 마음에 새기겠다. 절망적인 후퇴를 반복하는 것 같아도 역사는 늘 전진한다. 결국 민주주의를 쟁취해 낸 국민의 발자취 앞에서, 군사 반란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참된 군인들의 영령 앞에서, 역사의 퇴행을 막아내고 국민의 삶을 지키겠노라 다짐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김용삼 대기자는 “12.12 반란의 주범은 정승화와 장태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전두환 대통령의 살신성인의 12. 12 결단이 없었다면 민주화를 가장한 주사파 세력들에 의해 대한민국은 지금의 남미 꼴이 되었을 것이며, ‘서울의 봄’이 아니라 ‘평양의 봄’이 되었을 것입니다. 공산 적화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중북 주사파 세력의 거짓 선전 선동, 기만 전술에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1000만명 내외의 관객이 몰렸던 한국 영화의 대다수가 대선이나 총선이 치러지는 시즌에 맞춰서 개봉을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알고 계십니까? 젊은이들의 수백만 표를 끌어 가기 위한 선거 전략입니다. 4년 전에도 21대 총선 전에 10. 26을 다룬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영화가 개봉하여 박정희 대통령과 우파 이미지 죽이기를 하였듯이, 올해에도 11월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은 12.12 ‘국난 극복’을 ‘군사 반란’으로 규정 짓고, 군을 혐오 집다능로 만들며, 망자가 된 전두환 대통령을 독재자와 학살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2007년에 개봉된 ‘화려한 휴가’는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5.18에 대하여 다룬 영화로써, 누적 관객수 685만명이었으며, 그해 12월에 있었던 대선을 노렸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승리했다는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2012년 대선을 3개월 앞두고 그해 9월에 개봉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노골적인 노무현 옹호 영화로 이병헌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했으며, 관객수 1200만명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노무현 향수를 자극해 문재앙에게 표를 몰아주기 위한 용도였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어 저들의 꿈이 잠시 무산되었습니다. 다시 젊은이들에게 노무현 신화를 일께워주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 2013년 말에 선보였던 영화 ‘변호인’이었으며, 관객수는 1138만명으로, 좌파 전문 배우 송강호가 나옵니다. 2017년에 개봉된 영화 ‘택시 운전사’는 같은 목적으로, 관객수 1218만명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앙 집권 뒷풀이 굿판이며, 대한민국 적화의 신호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12.12 사태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79년 10월 26일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사건으로 국가 요직과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하여 국가 원수가 살해를 당한 초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하여 수사하는 과정에서 12.12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때 군대 내의 권력 다툼에 대해 만든 것이 ‘서울의 봄’입니다. 이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 과정에서 국군의 중요 보직에 있었던 사람들과 당시 보안 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장군과의 힘 겨루기를 보여 줍니다. 결과적으로 나중에 대통령이 된 전두환 대통령은 악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선하다는 식의 프레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 ‘서울의 봄’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 ‘사)국군명예회복운동본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 평론가들은 1979년 ‘신군부’와 현 ‘신검부’를 억지로 연결 지어 22대 총선에서 보수진영에 악영향을 주려고 작심이라도 한 듯이 픽션이라는 방어막을 치고 실제와 허상과 각색을 넘나들면서 전두환을 전두광 악마로 만들고 군을 쓰레기 집단으로 격하시키고 싶었겠지만, 어찌된 일인지 전두환 대통령의 실제 카리스마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10·26과 12·12의 진실을 아는 우파가 이 영화를 보면 전두환 대통령의 카리스마 리더십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전두환 대통령의 7년 통치 기간을 ‘대한민국의 봄’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12·12 구국 결단이 없었다면 ‘평양의 봄’이 잠시 존재했을 것이다. 좌익들의 주기적인 선동 영화에 역사관이 형성되지 못한 학생들마저 영화의 피해자가 되거나 ‘연예인들이 문화전쟁에 더 이용당하지 않도록 12·12와 5·18의 진실을 압축해서 말하고자 한다. 첫 번째 진실은, 12·12는 군사 반란과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김재규의 패륜적 쿠데타를 진압한 국가 위기 극복의 역사다. 12·12는 패륜범 김재규가 궁정동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弑害)할 때에 정승화 참모총장은 시해 장소인 궁정동에 있었고, 시해범과 같은 차를 타고 육군본부 벙커로 갔으며, 김재규가 시해범임을 알면서도 권한 대행 대통령에게도 보고하지 않았고 비상 국무회의에서 침묵 등 시해 가담 혐의점이 있어서 참고인 조사를 위해 정승화를 연행하는 과정에 일어난 합수부 측과 정승화 총장 수사를 반대하던 군부 세력과의 충돌이었다. 역사는 현상계로 존재하기에 가정이 의미가 없지만, 1979년 12월 12일 만약 정승화가 연행되지 않았더라면 김재규는 복권되어 정승화와 함께 철권 정치와 군정을 시작했을 것이고, 김재규와 정승화는 권력을 위해 패악을 저지른 악인들이었기에 최악의 독재를 했을 것이다. 정승화 총장 연행에 실패하여 김재규의 군사독재가 열렸다면 1980년 서울의 봄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서울의 봄’ 영화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동남아 후진국 군부 정치를 겪고 있을 것이다. 전두환이라는 구국 대통령 덕분에 군을 혐오하고 역사의 진실을 호도하는 ‘서울의 봄’ 영화를 상영해도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진실은, 전두환 구국 대통령을 악마로 만든 것은 5·18 특별법 제정과 12·12, 5·18사건 상고심 선고공판과 역사 뒤집기였다. 김영삼 정권 출범 직후인 1993년, 검찰은 12·12 관련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공소를 기각했지만, 1995년 노태우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던 김영삼 정권은 정치적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12·12의 정당한 법 집행을 위한 합수부 수사는 ‘반란’으로, 5·18의 광주 ‘폭동’은 ‘민주화운동’으로 역사 심판과 규정이 180도로 바뀐다.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라 최악의 역사 뒤집기였다. 1995년 12월 21일, 5·18 특별법은 김대중에게 불법 정치자금 약점이 잡힌 김영삼의 정치 야합과 추악한 거래가 빚은 입법 참사였다. 거짓과 공작 정치가 역사에 개입하여 만든 5·18 특별법은 철저한 반공 국가였던 대한민국을 좌경화시킨 비극의 출발이었고, 지금의 좌우 진영의 극한 대립을 초래한 원죄였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로 열린 12·12, 5·18사건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12·12 사건은 김재규 일당의 패륜적 거사와 쿠데타는 묻히고, 구국 차원의 합수부 조사와 합수부장을 했던 전두환 대통령은 ‘군사 반란’과 ‘군사 반란 수괴’로 몰렸다. 북한의 5·18 모략 전쟁과 김영삼 정권이 5·18 반역의 역사를 민주화 역사로 뒤집은 추악한 정치 전쟁에 전두환 대통령이 희생이 되었다. 역사가는 김영삼 정권의 IMF 경제 위기 초래는 독선과 무능의 결과였고, 12·12와 5·18 역사 왜곡은 무지하고 무도한 대한민국의 정체성 파괴이며, 김영삼의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은 자기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구국의 영웅을 무너뜨린 악행이었고, 정치적 판결로 사법 쿠데타를 자행하여 대한민국이 5·18의 인질이 되도록 만든 국가 정체성 전복 사건으로 정리할 것이다. 세 번째 진실은, 5·18은 북한 악마들의 모략 전쟁이자, 먹고 먹히는 정치 전쟁이다. 5·18은 적화통일의 기회만 엿보던 김일성이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적 혼란을 틈타 특수 공작조를 은밀하게 침투시켜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군인과 경찰 복장으로 위장하여 민간인을 살해하여 소요 군중을 흥분시키고 진압 군경을 무자비하게 살상한 세계 전사에서 볼 수 없었던 북한 악마들의 모략 (謀略) 전쟁이었다. 5·18은 미 국무부가 기밀 해제한 문건에서 ‘김대중 추종자들(Kim Daejung followers)’과 ‘북한 민간 공작대원들(North Korean Agents)’이 개입하여 벌어진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안기부 작성 문서에는 김대중을 "광주 사태의 배후 조종자", "북한 연방제 추종자" 등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북한은 북한을 이용하여 정권을 찬탈하려고 했던 5·18 김대중 추종자들을 인질로 잡고 대한민국을 적화시키려고 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추종자들은 뱀이 뱀 꼬리를 물 듯이 김영삼의 정치자금 약점을 잡았고, 약점이 잡힌 김영삼 정권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덮기 위해 김재규의 패륜 쿠데타를 진압한 12·12를 ‘군사 반란’으로 매도하고, 5·18 국난 극복 계엄군을 학살자로, 폭동을 민주화운동으로 탈바꿈시키면서 계엄군 지휘선상에 없었던 전두환 대통령에게 ‘내란’과 ‘내란 수괴’로 뒤집어 씌우는 악마의 대리 심판을 했다. 우리는 ‘서울의 봄’ 영화를 본 사람들과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상기 3가지 진실을 먼저 읽고 거짓과 허상의 영화를 보길 바란다. ‘서울의 봄’ 영화 감상은 2시간 21분이 걸리지만 12·12와 5·18 진실은 5분이면 바로 깨달을 수 있다. 2007년 5·18을 다룬 ‘화려한 휴가’에서는 집단 사격을 기정사실처럼 다루어 계엄군을 악마처럼 편집했지만 집단 사격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서울의 봄’ 영화가 아무리 군을 혐오집단으로 추락시키고 ‘국난 극복’을 ‘군사 반란’으로 매도해도 대한민국 국군은 국민을 위한 충성심은 변함이 없고, 구국 영웅의 카리스마 흔적은 절대로 지우지 못할 것이다.” 현재 이 영화는 청년들이 가장 많이 보고 있는데, 장태완이 “국가 반역 역도들을 처단하러 가자”는 대사가 나오면 젊은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청년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년에 있는 총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영화 하나로 종북 주사파들은 노태우 이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일거에 반역으로 몰아 버리는 선동 영화입니다. 청년들은 그것도 모르고 영화가 잘 됐다고 난리입니다. 종북 주사파는 소리없이 대중 문화에 침투하여 30~50대까지를 종북 주사파의 좀비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위대한 전직 대통령들을 두고 우리 자녀들은 주사파의 문화 선동과 세뇌, 거짓, 왜곡의 영화와 드라마 중독에 빠져 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영화라는 무기로 젊은이들을 종북 주사파의 홍위병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영화관람 연령’이 “12세 관람가”입니까?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의 광고를 보면 “12세 관람가” 등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보호자 없이도 만 12세 이상이면 관람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잠시 ‘법적 또는 일반적 연령 구분’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어린이’는 ‘6~12세’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는 18세 이하를 ‘미성년자’로 구분하여 보호자 동반 없이 영화관람 불허가 대세입니다. 아울러 20세 이상은 ‘성인’이므로 독자적 행동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청소년(기본법)’은 ‘9~24세’를 말하며, ‘청소년(일반적)’은 ‘13~18세’까지를 말하며, ‘성인’은 ‘20세’ 이상을 말합니다. 위의 기준을 고려하면 영화 “서울의 봄”이 얼마나 파격적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영화는 ‘어린이용 내지 청소년용’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보기 곤란한 폭력적 장면이 하나도 없고 성인들의 드잡이질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추측건대 대립과 투쟁이 다분할 듯싶은데 정말 어린 청소년들이 보기에 적합한 내용들이란 말인가요? 저는 영화를 즐기지 않는 관계로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제목의 의미 그대로 어린아이들까지 관람 가능한 ‘봄바람 같은 애정 영화’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권장할 만한 내용이 결코 아닐 것만 같은데, 어찌하여 ‘12세 관람가’로 허가되었는지 점점 더 의심이 짙어질 뿐입니다. “서울의 봄”은 【화려한 휴가’, ‘택시 운전사’, ‘광해-왕이 된 남자’, ‘변호인’, ‘남산의 부장들’, ‘헌트’】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의 및 허가 당사자로부터 그 떳떳하고 당당한 근거와 이유를 밝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영화들이 정치적, 이념적 도구로 악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내년에 있는 총선에서 보수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장하려는 것입니다. 이미 포항에서 초등학교 학생 단체 관람을 추진했다가 논란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서울의 송례 초등학교가 6학년 학생들에게 단체 관람을 추진했습니다. 중학생들에게 단체 관람을 하는 것도 지나친 것인데, 초등학생들에게 정치 영화를 단체 관람을 시키는 교장은 정신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교장이라는 사람이 초등학생들에게 정치학습을 시키려는 의도인 것 같은데, 아마 전교조 소속일 것 같습니다. 미성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작되고, 왜곡되고, 과장돤 좌파 영화를 강제로 단체 관람시키는 것이 정상입니까? 저걸 12세 이상 관란 가능으로 심의한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지유민주당 대표 고영주 변호사는 “‘사실적 허구’라는 거짓 역사를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에 있는 그대로 사실로 받아 들이는 우리의 청년 세대, 이를 부추기는 좌파 언론들. 12.12 반란 주범은 정승하와 장태완입니다.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은 반란을 진압한 주인공입니다. 이후 출발한 제5공화국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국민이 가장 살기 좋았던 시기였습니다. 이게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의 번영과 안보가 가능했을가요? 전두환 대통령의 공은 묵살하고, 매도만 하는 것이 온당한가?”라고 말합니다. 훗날 대한민국이 몰락했다면 원인은 바로 국가적 재앙인 문화계의 일탈, 즉 영화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것에 맞서는 담대한 문화 전쟁의 선포 없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화 등 문화계의 반(反)대한민국 질주는 멈춰야 합니다. “지원하되 간섭 않겠다”는 잘못된 원칙부터 버려야 합니다. 12.12 사건을 편향된 시각으로 다룬 ‘서울의 봄’은 그 당시에 태어나지 않았던 MZ 세대와 학생들을 겨냥해서 600만 유료 관객을 넘어, 강원도와 충청도 지역에서는 전교조의 주도 아래 무료 상영 중이라고 하는데, 국힘당은 왜 손을 놓고 있습니까?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뭘 하고 있는 것입니까? 김일성 왕조의 대남 적화 전략에 영화계가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면 문체부 장관 자격이 없습니다. 문체부 장관 정신 차리세요. 빨리 대응하시길 바랍니다.
    • 주요뉴스
    2023-12-13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