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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석 연세대 몀예교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
    동아일보의 객원논설위원이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를 소개하겠습니다. 며칠 전 TV에서 뉴스를 들었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한 최고위원이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출발해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거쳐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으로 이어져 왔다. 이재명이 민주당과 국가를 대표할 시대정신을 이끌어 가야 할 단계라고 했다. 그것은 이재명의 주장과 신념을 대변한 선언이다. 국민도 그 뜻을 이해는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현재까지 국정의 중책은 민주당이 맡아 왔고 지금도 절대적 여소야대의 국회이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민주당에 집중돼 있을 정도다. 문제는 민주당 안에서는 그런 선언이 가능할지 모르나, 국민의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은 초창기보다 더 증대하고 있다.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우려와 걱정은 한계선까지 도달한 상태다.국민은 김대중 대통령의 동족 간의 평화통일을 위한 열성과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가 심하므로 경제적 원조를 베풀면 15년쯤 후에는 통일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견해를 믿고 싶었다. 그런데 국민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너무 많은 원조를 했다. 그 결과는 핵무기 개발과 공산정권 굳히기에 도움을 주었다. 지금의 김정은 정권을 키워주는 결과가 되었다.노무현 정권은 어떠했는가? 우리 국민이 이런 상태로는 살 수가 없고 불안하여서 이민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의 무질서와 혼란 상태가 되었다. 국민에게 물어 보라. ‘노무현 정부가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인가?’라고. 그 주역을 담당한 세력인 86세대 운동권의 등단과 확장기였다. 대통령 자신이 자기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같이 불행한 대통령’은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몸소 남겨 주었다.그 뒤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운동권은 물론 문 대통령 스스로가 공은 내세웠으나 과(過)는 인정하지 않았다. 퇴임 후에도 자신의 임기 5년 동안에 쌓아 올린 정치적 업적을 윤석열 정부가 계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은 문 정부와 같이 가지 않는다고 추방한 윤석열을 왜 대통령으로 선출했는가?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권이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이며, 윤 정부가 계승해야 할 과업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묻게 한다. 정치 기반인 경제 분야는 어떠했는가? 이명박 정부를 계승했다면 경제성장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는 어떻게 했으며,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민주국가의 위상을 지켜 왔는가? 북한 동포를 뒤로하고 김일성 정권 세습화에 동조했다면 그것은 실정 중의 실정이다. 김대중 정신에 위배되는 결과가 되었다. 대한민국으로 귀순해 온 동포와 중국에서 우리 품으로 오려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처신은 앞으로도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할 과제다. 친북 정책은 북한 동포를 위한 절대적 의무와 권리이다. 김정은 정권을 위한 종북이 아니다.현재에도 민주당은 국정운영 방향과 방법은 물론 절차까지 관여하는 국회의 주도권을 행사한다. 국가를 위해서보다는 윤 정권을 타도하고 임기 내라도 재집권하겠다는 자세다. ‘그것도 애국심인가? 국민을 위한 정치인의 양심인가?’라고 국민은 묻는다. 누가 보든지 민주당은 국가보다는 정권을 위했고,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의 사당이 되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민주정치는 실종되었고 싸워서 이기면 그것이 정의가 된다는 개인과 집단의 투쟁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창기부터 실정에 앞장서 왔던 임종석 전 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송영길 전 당 대표, 각 분야에 자리 잡고 있던 운동권 출신의 잔여 세력이 이재명 대표를 앞세워 정권 재장악에 동참하려는 기세다. 민주당 안과 주변에 있던 친북좌파까지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선한 공존의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적 방향과 국민의 진실과 정의, 자유와 휴머니즘 정신이 보장, 구현되는 나라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잘못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진실과 정직 없는 ‘내로남불’의 정의관, 인격을 갖추지 못한 개인이나 이기적 집단세력에 정권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위하고 국민을 섬기려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여야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민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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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1
  •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그립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반발로 전문의 파업이 대형 병원 중심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근무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시화되고 의료 공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안타깝기가 이를 데 없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가 문뜩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장기려 박사님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의사였다. 그래서 경성 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의과 대학과 김일성 종합 대학 교수를 지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1950년, 장기려 박사님은 철수하는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 아내와 5남매를 북에 둔 채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하였다. 그리고 부산에서 천막을 치고 복음 병원을 세워 행려병자를 치료했다. 장기려 박사님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하며 하루에 2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럴 뿐만 아니라 1959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간 절제 수술에 성공하는 등, 당시 우리나라 외과 의사 가운데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이 커지고 무료 진료가 불가능해지자 장기려는 1968년 한국 최초의 의료 보험 조합인 청십자 의료 보험 조합을 설립하였다. 청십자병원은 가난한 사람을 정성껏 치료해 줄 뿐만 아니라 치료비를 깎아 준다고 소문이 나 늘 많은 환자가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농부가 장기려 박사에게 하소연했다. “선생님, 제가 당장은 돈이 없지만 나중에 꼭 벌어서 갚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내일 당장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병원에 묶여 있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농부의 말을 들은 장기려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밤에 문을 열어 줄 테니 그때 가세요.” 농부가 깜짝 놀라자 장기려는 웃으면서 말했다. “병원에서는 아마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퇴원을 안 시켜 줄 거예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 도망을 쳐서라도 일을 해야 가족을 돌볼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장기려는 그렇게 말하고 농부에게 돈까지 쥐여 주었다. “얼마 안 되지만 차비나 하세요.” 농부는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는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기 돈으로 수술을 해 주고, 그나마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못하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다가 1995년 12월 추운 겨울날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내 마음이 그러하듯 창밖에는 겨울비가 밤새 주룩주룩 내린다. 오늘따라 ‘바보의사 성산 장기려 박사님’이 그저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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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다큐‘기적의 시작’ 관람 후기
    ‘은종’이라는 동료 시민의 ‘기적의 시작을 보고’라는 관람 후기를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또 다른 다큐극 영화 ‘기적의 시작’을 보고 왔습니다.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을 보신 분이라면 더더욱 꼭 보십시오. ‘건국전쟁’이 큰 그림을 그리는데 치중했다면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 대통령의 디테일한 부분을 세밀히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건국 전쟁은 역사를 잘 모르고 일방적으로 세뇌 당한 분들에게 유익한 영화입니다. 4.19는 이승만이 원인인가? 김구의 정체, 런 승만의 문제, 한강철교 폭파사건 등 이승만 대통령이 오해받고 있는 부분의 팩트를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에 대한 역사를 잘 아는 분들이 보았을 때 거의 다 아는 내용이었고 소수의 부분은 새로운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의 시작은 자료를 수집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섬세합니다. 이승만에 대한 책 몇 권을 섭렵했던 분들도 새로운 내용을 보고 저런 자료를 어떻게 찾았을까 하고 그 수고에 감탄하게 됩니다. 어쩌면 흥행에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 이승만이 한성 감옥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과정이나 서거하기 전 기도한 장면 등을 삽입한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감명을 줍니다. 이승만의 삶은 기도에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기도로 시작한 나라이니 기도를 놓지 말아야 국가가 번영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만약 성도들이 단체관람한다면 ‘기적의 시작’이 더 감명을 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의 증언자들은 이승만과 직접 만난 분들을 등장시켜 훨씬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백선엽 장군,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 그리고 그 며느리의 증언은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사실적이고 감동적인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농지개혁, 6.25 전쟁에 대한 일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경위 등은 훨씬 더 자세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역사의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깜짝 놀란 것은 이승만의 경제에 대한 관심입니다. 벌써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 앞으로 한국은 공업국이 되어야 한다고 예견한 것은 대단한 통찰력이었고, 실제로 6.25 이후에 공업국이 되기 위해 그가 이룬 업적을 세밀한 자료와 더불어 제시한 것은 그동안 몰랐던 내용이었습니다. 다큐 영화가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데, 텔렌트 임동진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이승만을 잘 살려내었습니다. 아마도 무료 출연이었을 것인데, 눈물과 마음으로 연기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정말 사랑하는 대배우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무명의 배우들이 적절하게 사건들을 잘 재현해내어 다큐에 몰입할 수 있도록 톡톡히 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동안 런 승만, 독재자, 친일파 등등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이제는 바로 잡을 때가 되었다. 위대한 거인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에게 이승만을 바로 알릴 때가 되었습니다. 두 영화를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기적의 시작’은 섬세하게 그 안을 들여다 봅니다. 성경으로 비유하면 ‘건국 전쟁’은 마가복음에 비유한다면 ‘기적의 시작’은 요한복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둘 중에 한 영화만 선택하지 마십시오. 두 영화 모두 보시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요, 애국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건국 전쟁은 제법 관람객들이 있었는데, 기적의 시작은 관객면에서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점이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적의 시작’이 훨씬 더 애정이 갑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가슴에 더 와닿는다고 했습니다. 건국 전쟁을 보신 분들은 반드시 기적의 시작도 함께 보십시오. 다른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을 먼저 보셨습니까? ‘건국 전쟁’도 보세요. 두 영화가 결합할 때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총선 전에 두 영화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두 영화가 흥행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사인식이 바뀌도록 열심히 홍보하는 일입니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먼저 극장으로 가십시오. 교회 단체관람을 강력히 추천합니다.”라고 동료 시민 ‘은종’은 말했습니다. 김덕영 감독의 ‘건국 전쟁’이 개봉 27일만에 100만을 돌파하며, 다큐로는 드문 흥행 기록을 세우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그리고 ‘건국 대통령 이념 보급회’의 김효선 사무총장의 ‘이승만의 독립 외교 33년’ 등 다른 기록 영화들도 ‘건국 전쟁’과 거의 동시에 선을 보였습니다. 이장호 감독의 이승만 관련 영화 ‘하우보만의 약속’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상 매체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될 나라”라는 주장을 하며 반공 애국 진영, 특히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비방하고 폄훼하는 반역 세력의 전유물처럼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런 영상 매체가 이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밝히려는 일에 효율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승만이 ‘독재자’ 또는 ‘친일파’로 낙인 찍히며 국민의 뇌리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할 추악한 인물로 악마화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독립운동과 반공 투쟁에서 승리해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되었고, 공산군의 6.25 남침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고 부흥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쉽게 공산화되어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김일성의 지배를 받는 위성국가로 편입되었을 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적인 위인이자 천재였습니다. 그는 이 나라의 국부였고, 애국자요, 선지자요, 예언자요, 세계가 공산당을 열광할 때 “공산당은 망한다”고 외쳤습니다. ‘전시 중립론’이라는 논문을 쓴 국제 정치가였고, 훌륭한 선교사였고, ‘재팬 인사이드 아웃’의 저자인 작가였고, 민족 복음화를 소망한 하나님의 종이었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며, 그는 하나님 중심의 철저한 자유 민주주의 투사였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학력 소유자였습니다. 죠지 워싱톤대 학사였던 클린턴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하바드대 석사였던 오바마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프린스턴대 박사였던 윌슨 대통령과 동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도 이만한 학력 소유자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자유의 등불을 달아준 불세출의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탁월한 외교가였으며, 토지개혁을 단행했고, 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는 ‘반상 철패’를 했으며, 의무 교육을 실시했고, 여성들을 투표에 참여케 했습니다. 의회 정치를 실시 했습니다. 그의 애국정신과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 시대의 등불이었습니다. 전교조에 의해 역사 왜곡이 극에 달한 이 나라는 이승만을 바로 알아야 대한민국이 사는 것입니다.
    • 오피니언
    • 강석종 칼럼
    2024-03-08
  • 이승만 영화 ‘기적의 시작’이 만들어진 배경 이야기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기적입니다.’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영화 '기적의 시작'을 만들고, 전국 개봉을 하기까지 모두 기적의 순간입니다. ■ 영화의 시작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저의 아버지께서 '이승만 대통령 영화를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하셨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하지 않은 제가 그 당시 더 기반이 없었던 시절, 그런 권유를 받으니 너무 막연하고 막막하게 다가 왔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에는 부모님 댁에서 같이 사는 것 외에는 따로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은 받지 말자'고 했고, 또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우리나라 영화계와 아무런 인맥도, 기반도, 심지어 카메라 한 대 조차 없던 아들이 이리저리 일감을 찾아다니는 모습에 안쓰러워 ‘카메라 한 대 얼마 하니? 카메라 한 대 사줄게. 그것 가지고 시작해 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것마저 거절했습니다. 많은 예술인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이 분야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누가 밥값을 내야 하는지 신경이 곤두섰고,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 다섯 정거장 정도는 교통비를 안 쓰고 걸어 다녔습니다. 물론 저의 집안이 그 정도 돈 못 쓸 정도로 여유가 없지는 않았으나, 저는 속으로 '이 나이에 돈벌이도 못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는 것은 사치다'라고 생각하며 가급적 걸어 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 온 저의 영화 인생은 그렇게 밑바닥부터 시작되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비록 독립영화이지만 조금씩 규모를 키워가며 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순회 상영을 다니며, DVD를 찍어 판매하는 수준에서 점차 작품을 작은 영화관에서부터 상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이 하나 둘 씩 영화관에 걸려 작품을 찾는 관객들이 늘었고, 이번엔 멀티플렉스 상영관 전국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을 지내면서 아버지의 권유를 당장 실행해 옮겨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었으나, 덕분에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일하거나 생활했던 분들을 만나 뵈면 꼭 이 대통령에 대해 질문하고 이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백선엽 장군님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뵌 분들은 그 당시에도 꽤 계셨으나, 백 장군님처럼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큰일을 하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던 분은 없었습니다. 백 장군님은 이승만 대통령과의 일화와 본인이 참여했던 전투에 대해 매우 실감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후방 전투 현장을 직접 보여주시며 설명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귀한 증언들은 매번 카메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기록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아 저는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습니다. 요즘과 달리 20년 전에는 6mm 테잎을 썼는데, 당시의 기록이 멀쩡하게 보존된 것도 작은 기적입니다. 한편 해를 거듭하며 시간이 지나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왜곡과 비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니, 멈추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국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어 '22년 12월부터는 아예 작정하고, 그동안 모았던 자료들과 추가 인터뷰를 통해 '기적의 시작'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 국민 대배우의 합류 ■ 제작 과정에서 국민배우 임동진 님도 합류하시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런 대배우분께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에 넣을 재연장면에 출연해 주시라고 요청하는 것은 큰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 배우님께서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셔서, 속으로 많이 놀랐고, 겸손한 모습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임동진 배우님과 같은 영화계 거물이 합류하셨음에도 제작환경은 딱히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제작진은 그 분 이름을 내세워 따로 모금하지 않았고, 제 성격상 여기저기 제작비 모금하러 다니기도 쑥스러워 그러지 못해서 프로듀서 김재동 목사님이 모금해 오신 제작비 내에서 해결했습니다. 그런 형편 속에 많은 분들의 우려와 달리 제작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 아들 이인수 박사의 생전 마지막 고백 기록 ■ 이번 작업에서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로 이 대통령의 쓸쓸한 말년을 제일 가까이 곁에서 지켜보셨던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입니다. '23년 11월 별세하신 이인수 박사님의 인터뷰는 결코 쉽게 성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품을 위해 그분의 증언을 꼭 담고 싶었으나, 그분의 체력에 한계가 많으셨던 때라 인터뷰 약속을 잡고 갔다가도 두 세 번 실패하여 헛걸음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인터뷰가 어렵게 되자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는 포기했습니다. 사모님이신 조혜자 여사께서 마치 곁에서 대신 말씀을 전하시듯 하고, 이인수 박사님은 옆에만 앉아 계십사 하는 게 저의 새로운 바람이자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약속도 없이 임동진 배우님과 이화장을 둘러 보러 갔다가 이인수 박사님 컨디션이 최상인 것을 발견! 당장 카메라를 켜고 마이크를 연결해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장비를 가져간 것도 다행이었고, 그게 이인수 박사님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습니다. 다시 봐도 당시 이 박사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모습이 역력합니다. 이 모든 것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 신앙인 이승만 재조명 ■ 이승만 대통령이 젊은 시절 선교사들이 전해 준 예수님을 한성 감옥에서 복역 하며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영접한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난제 앞에서 하나님께 매달렸고, 우리나라 첫 국회를 기도로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작품에서 비기독교인들을 의식해서인지, 기독교 색채를 빼고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 그런 이승만의 모습은 인간 이승만을 이끄는 원천적인 힘이었기 때문에 저는 제 작품에서 그런 부분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마지막 기도는 임동진 배우님의 뛰어난 연기력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해 줍니다. ■ 전국 극장 개봉 ■ 드디어 ‘24년 2월 22일! 기적의 시작은 전국 개봉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어렵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영화를 한 개 극장에라도 걸기도 어렵고, 극장에 걸었다 해도 관객들을 사로잡기에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 전문 인력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한 두 사람의 몫입니다.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전국 극장 개봉을 위해서 제작사들은 적게는 수 천 만 원, 많게는 수 억 원의 홍보비를 씁니다. 저희는 '기적의 시작' 홍보를 위해 쓸 수 있는 금액이 거의 없었습니다. 금액을 밝히기에 민망해 그럴 수는 없지만, 그 금액조차 제작 과정에서 다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홍보를 위해 쓴 금액은 전단지 인쇄에 30만원 가량, 작품을 소개해 주시는 유튜브 분들께 음료수를 사 드리거나 식사 대접을 한 게 전부입니다. 주말에는 감독인 제가 손수 전단지를 챙겨 광화문이나 시청 같은 곳에 가서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젊은이들 중에는 전단지에 이승만 대통령 얼굴이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접어버리며 불쾌감을 표현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전단지를 나눠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많은 홍보비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원초적인 홍보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SNS 홍보도 했으나 제가 인플루언서가 아니다 보니 효과는 미미했던 것 같습니다. 넉넉잡고 홍보비로 100만 원 정도 썼던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전국 개봉까지 이어진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렵게 잡은 서울 두 개의 극장(필름포럼과 허리우드). 시사회 이후 5개월간 상영을 통해 관객 수 천명이 관람하고, 입소문을 듣고 오는 관객 수가 줄지 않자 멀티플렉스에서 이를 눈여겨보고, 일단 전국 10개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을 준 것 같습니다. 수 많은 난관을 뚫고 드디어 전국에 소개되는 ‘기적의 시작’. 여태까지는 저와 조력자 분들의 힘으로 끌고 왔으나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렇게 극장에 걸게 되었는데 보러 와 주시지 않으면 허무하게 극장에서 내려지게 됩니다. 극장에 와서 봐 주시는 것은 작은 애국입니다. 교회에서 단체관람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CGV에 예매가 열립니다. 예매를 많이 해 주시면 더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여 더 많은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 권순도 올림
    • 주요뉴스
    2024-03-07
  • 이제는 ‘기적의 시작’이다!
    스카이데일리 임명신 기자의 “[기획] 이승만 다큐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길 위에 김대중’ 압도”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권순도 감독이 20년 구상 끝에 작년 10월 내놓은 ‘기적의 시작’은 독립영화 특유의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건국 전쟁’ 흥행 속에 역주행 중입니다. 같은 주제의 두 다큐는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필히 두 편 모두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같은 목표, 다른 매력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1875~1965)을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월 1일 개봉한 김덕영 감독의 작품 ‘건국 전쟁’이 주목받으며 4개월 전 나온 권순도 감독의 작품 ‘기적의 시작’도 역주행에 가속도가 붙었다. 두 작품 다 철저히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된 다큐지만 흐느끼는 관객이 속출할 만큼 뜨거운 반응이다. 두 편의 이승만 다큐가 또 다른 역사 인물 다큐를 압도한 것도 눈길을 끈다. 훨씬 유리한 여건 속에 제작된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작 ‘길 위에 김대중’이 개봉 4주 후 12만 관객을 동원한 반면 ‘건국 전쟁’은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 수 18만 명을 돌파했다. 누적 관객 수 3위, 개봉관 수도 개봉 당초보다 3.3배 늘어난 상태에서 11일 누적 관객 수 24만 명을 넘어섰다. 다큐로선 이례적인 성적이 어디까지 갈지 관심을 모은다. ‘기념관 하나 없는 이승만’이 ‘기념시설 최다의 김대중’을 이겼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편 ‘기적의 시작’은 작년 10월 하순 서울 시내 단 두 곳(종로3가 낙원상가 헐리우드 극장·신촌 필름포럼)에서 개봉된 가운데 주로 각종 애국단체∙교회 등의 상영회를 통해 관람객을 늘려 갔다(현재까지 5000명 정도). ‘건국 전쟁’이 2월 1일 전국 CGV에 걸리고 화제를 부르자‘기적의 시작’ 역시 개봉 약 4개월 만인 22일 CGV 재개봉이 결정됐다. ‘기적의 시작’ ‘건국 전쟁’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졌고, 멸망의 위기를 넘어 훗날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틀을 구축했는지 조목조목 짚는다. 농지개혁, 문맹퇴치(교육개혁), 안보·경제발전을 담보한 한미 동맹, 자원 빈국의 산업화에 절실한 원자력발전의 토대 마련 등 다가올 산업화가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어떻게 준비됐는지를 두 편의 다큐 영화 는서로 다른 톤으로 설명해 준다. 각각의 장점이 있으며 지루하지 않을 반복 학습 효과가 기대된다.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을 다룬 최초의 본격 다큐 영화라는 의미 외에 애국지사로서의 역정과 기독교 신앙의 상관성을 조명한 점도 돋보인다. 창군 및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1920~2020)과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1931~2023) 박사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원로배우 임동진 목사의 이승만 연기 역시 독보적인 부분이다. 두 다큐는 1천 수백 년에 걸친 왕조 시대와 근대 식민지 시대를 겪은 중세적 공동체에서 자유 민주공화국 헌정 질서 마련이 얼마나 천지개벽할 일이었는지를 묵직하게 일깨운다. 공통된 주제지만 두 감독이 친분이 있거나 사전 협의한 것도 아닌데 내용상 겹치지 않는다.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 학습판이므로 둘 다 관람할 가치가 충분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공산화가 신생국들의 대세였던 시절, 이승만은 현대 국가(자유민주공화국)의 본질과 시스템을 이해한 유일한 한반도인으로 볼 만하다. 두 다큐의 시의성도 각별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오늘날, 정통성 논란은 결국 ‘이승만의 나라’ ‘김일성의 나라’ 양자택일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 세계사적 인물 이승만… 우선 다큐부터 ‘건국 전쟁’ 출연자의 한 사람인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전 이승만연구원장)는 연구원이 보관 중인 이승만 1차 자료 100박스에 대해 예산 부족으로 손을 못 대고 있다며 아쉬움을 수차례 토로한 바 있다. 그 자료들은 대부분 40년 망명 생활 중 세계정세를 전하거나 논한 신문·잡지 스크랩과 친필 메모들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세계사적 차원에서 연구돼야 할 인물 이승만’이라는 시각에 힘이 실린다. 이승만의 생애는 드라마틱하고 불가사의한 요소로 충만하다. 영화∙드라마 등 대중 서사 장르를 통해 그려질 날이 와야겠지만 일단 다큐가 절실했다. 관련 사실들이 극단적으로 왜곡되거나 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교과서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교과서 밖에선 악마화∙희화화됐을 뿐이다. 해석의 문제 이전에 팩트 자체가 엉터리인 경우도 많다.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가짜 뉴스·역사∙왜곡의 결정판 명저 ‘슬픈 중국’의 저자이자 ‘건국 전쟁’ 첫머리에 등장한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는 조선일보 칼럼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팩트를 지어 내는 역사가들’에서 “김덕영 감독의 작가 정신과 예술혼이 거짓 뉴스와 허위 정보를 마구 엮어 일방적으로 이승만 악인전(惡人傳)을 집필해 온 역사학계의 고루한 시대착오와 부족 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죽이기’ 최근 사례로 송 교수는 “(역사학자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박태균)”가 TV 교양 프로에서 이승만의 1952년 대선 승리에 대해 기호 1번을 독점해 대다수 문맹 유권자 몰표를 유도한 결과라는 취지로 설명한 점을 들었다. 이어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것과 김 감독이 당시의 선거 포스터를 꼼꼼히 뒤져 이를 입증해 냈음을 짚었다. 이승만은 기호 1번이었던 적이 없다. 이승만에 얽힌 대표적 오해인 6·25전쟁 발발 직후 라디오방송 틀어 놓고 도망갔다는 미확인 소문이 오늘날까지 조롱과 저주 담긴 별명 ‘런Run승만’으로 살아 있다. 김 감독의 ‘건국 전쟁’에서 ‘한강 다리 폭파’ ‘3.15 부정선거’ ‘하와이 도피설’ 등을 바로 잡을 증거들이 제시됐다. 또 한4·19 이후 이승만의 행보야말로 ‘독재자’ 낙인이 왜 부당한지에 대한 결정적 증거다. 자신과 무관한 부통령 선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무일푼의 독재자? 그런 인물이 과연 독재자일 수 있는지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묻고 있다. 한국인이 처음 만난 이승만… ‘건국 전쟁’ 감동 후기 이어져 조지워싱턴대(학사)∙하버드대(석사)∙프린스턴대(박사) 출신의 이승만이 얼마든 취득 가능했을 미국 시민권을 마다한 채 40년간 무국적자의 불편함을 견딘 사실에 김 감독은 주목했다. 아울러 미국 내 이승만의 족적이 그간 어떻게 왜 지워졌는지 현지 교민들 증언으로 전해진다. 1953년 정전협정 1년 후 미국 방문 당시 자유의 투사로 칭송받으며 뉴욕 시가를 대대적으로 퍼레이드한 영상은 ‘건국전쟁’을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이승만이 공산주의에 맞설 냉전 구도의 불가피성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미국 등 서방세계 조야에 열렬히 설명∙설득한 점도 부각된다. 그것이 대한민국 탄생 비밀의 한 측면이다. 공산주의의 본질·실상에 대부분 무지하던 시절이었다. 개봉 초기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만 네이버 영화면에 누락돼 있어 “좌편향 문화계의 이승만 지우기”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관람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육박했다. “덕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어 감사하다” “공산화 저지의 공로만큼은 이승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감상 후기가 가장 많다. 조선일보가 김 감독을 자세히 인터뷰한 것 또한 눈길을 끈다. 여기서 김 감독은“(이승만) 공부를 시작한 뒤 큰 반성을 하게 됐고 그를 비롯한 건국 세대에 대한 죄송함을 영화에 담았다”고 밝혔다. 2012년 유튜브에 유포된 악의적 이승만론(論) ‘백년 전쟁’이 오히려 일부 네티즌이 진실 찾기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것과 흡사한 경우라 할 것이다. 북한은 왜 그렇게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을까… 586세대 김 감독의 각성 김 감독은 1950년대 동유럽 국가들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들을 조명한 다큐‘김일성의 아이들’(2020)로 유명하다. 1만명 가량 동유럽에 분산 위탁돼 자라다 스탈린 사후 격변 속에 집단귀국 당한 후 김일성 유일 체제를 위해 잊혀진 존재들이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북한에 관심을 가지다가 1990년대 중반까지 평양에 ‘이승만 괴뢰도당 타도’구호가 있었음을 알게 됐으며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는지 궁금해졌다. 김 감독이 작품 구상 및 제작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은 이승만을 향한 집요한 폄훼가 “오랜 세월 좌파들의 선동에 의한 부당한 평가”와 “북한의 공작” 탓이 컸다는 사실이다. 김 감독 자신이 북한에 호감 내지 환상을 가진 586세대 일반의 감성과 역사관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그 폐해 또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거짓의 선글라스를 벗으면 평생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았고 애국애족의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했던 한 노인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며 울먹였다. 한 네티즌의 댓글 “대한민국이 버린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위대함은 대한민국 국민만 모른다. 참담한 현실에 부끄럽고 한없이 죄송하다”는 심정과 고스란히 겹친다. ‘건국’ ‘산업화’ 없이 ‘민주화’는 불가능… 그러나 뒤틀린 역사교육 김 감독의 말대로 이승만은 “(파고들수록)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한 한국사의 유일한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 그렉 브레진스키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미래 비전과 안정된 보장 시스템이 존재해야 건국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듯이 “바로 그걸 이승만이 해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결코 일본의 패망으로 당연히 얻어진 게 아니었다. 김 감독은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경제 개발이란 기관차가 달린 것”으로 두 지도자의 시대를 요약한다. 핵심적인 통찰이다. 산업화를 통한 중산층의 성장 없이 이뤄지는 ‘민주’란 ‘인민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중국(중화인민공화국)도 모두‘민주’를 전면에 내세운다.문재인 정부 시절 현행 헌법에서‘자유’를 삭제하고자 시도한 행위의 의미와 그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알아차리게 됐다. ‘독재자’라는 꼬리표가 3대 세습체제 속에 신격화된 북한 권력자들에게 붙는 대신 변명없이 자진 하야한 이승만에게 당연한 듯 붙는 게 온당한지 이제라도 저마다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이승만=살인마’의 관점을 일반화시키면서 제주 4.3의 비극이 대한민국 수립 및 그것을 위한 한반도 유사 이래 최초의 보통 선거(5.10총선) 저지를 위한 남로당의 무장 폭거에서 출발한 것임은 도외시한다. 이것이 지난 30년 우리나라 제도권 안팎의 역사교육 현실이다. 놓칠 수 없는 ‘기적의 시작’ 권 감독의 20년 구상 끝에 태어난 ‘기적의 시작’은 공산주의가 유라시아 대륙을 뒤덮었던 시절 그 끝자락 한반도에서 어떻게 자유 민주공화국이 수립·유지될 수 있었는지, 이승만 덕분에 가능했던 대한민국탄생의 기적과 그것이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토대가 됐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독실한 크리스천의 면모도 조명했으며 원로배우 임동진의 이승만 재연으로 다큐 이상의 감동을 더했다. 백선엽 장군 인터뷰와 ‘기적의 시작’ 개봉 며칠 후 별세한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전 명지대 법정대 학장) 박사의 영상은 진귀한 역사적 자료가 됐다. 본인들의 생전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대통령 하야 후 전주 이씨 문중의 주선으로 이승만 슬하에 30세때 입적한 이 박사와 그 가족은 지난 60여 년간 이승만 죽이기의 실질적 희생자였다. 권 감독에 따르면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 박사가 기적처럼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한 마디 한 마디 온 힘을 다하듯 간신히 해독 가능한 발음으로 건국 대통령의 애국 열정과 말년의 부자(父子)인연을 증언한 모습이‘기적의 시작’에 실려 있다. 특히 망명 생활의 근거지였던 하와이에서 몇 개월 휴식한 이승만 내외가 귀국하려던 당일 한국 정부로부터 하와이 잔류를 종용당한 장면, 이후 우울 속 건강 악화로 현지에서 임종을 맞게 된 과정이 생생하게 회고됐다. ‘건국전쟁’에서 하와이 망명설이라는 거짓 뉴스 유포의 전후 맥락을 짚었다면 ‘기적의 시작’은 당사자들의 내면을 전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현대사 공부? 화제의 이승만 다큐 두 편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에 맞선 체제 정당성 대결의 최전선에 있다. 총선을 약 2개월 앞둔 시점에서 또 하나의 선거전이 될 수 있다. ‘서울의 봄’은 대다수 관객에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허구의 틀을 빌어 사실상 실존 인물과 역사를 거꾸로 해석한 상업영화다. ‘서울의 봄’이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적폐의 나라’라는 인식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반면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절체절명 위기와 우여곡절 속에서 이승만이라는 한 애국자가 지향한 가치를 되새긴다.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자유민주 헌법) 위에 박정희의 산업화(근대화)가 가능했다는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1979년 10.26으로 중단될 뻔한 산업화를 완결짓고 민주화 시대를 예비한 게 전두환의 신군부, 즉 제5공화국이다. 그렇다면 영화 ‘서울의 봄’이 기도한 신군부 악마화는 대한민국 헌정사의 부정 아닌가. 이원석 검찰총장이 몇몇 동료들과 ‘서울의 봄’을 관람한 인증 샷과 소감을 남겼다. 기존 민주화운동 세력의 신군부 서사에 충실한 발언이었다. 건국의 역사를 제쳐둔 채 민주화를 말할 수 있을까.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관람 권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 요인과 ‘73년생 한동훈’ 등 여당 인사들의 관람 필요성이 역설되기도 한다.
    • 주요뉴스
    2024-03-06
  • 3.1 독립운동 정신으로 4.10 총선 승리하자!
    ‘한국 NGO연합’ 및 ‘자유정의시민연합’의 글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3.1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이번 4.10 총선에서 3.1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좌파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자. 4.10 총선은 대한민국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차대한 선거다. 선거라기보다 제2의 6.25와 같은 선거전쟁이다. 4.10 전쟁에 나서는 국민들은 죽을 각오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 나 하나쯤의 자만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경각에 달린 나라를 구해야 한다. 자유대한민국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4.10 총선에서 반드시 자유 우파세력이 국회 다수석이 되어야 하는 것은 진정 역사적 대업이고 사명이다. 문재인의 5년과 더불당이 다수당으로 국회를 농단한 8년 동안 우파들은 충분히 경험했다. 다시는 무도한 반 대한민국 세력이 정부와 국회를 장악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적 합의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만에 하나 아직도 안일하고, 나약한 국가 정체성으로 대한민국 이념과 사상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차제에 분명하고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갖도록 분발해야 할 것이다. 영화 ‘건국전쟁’을 봤다면 자유의 가치를 정말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은 좌파시만단체와 협약을 맺어 그들에게 최소 10석의 비례대표 자리를 주기로 합의한 모양이다. 그들 대부분은 친북, 종북단체 출신들이며, 이념 측면에서 북한과 궤를 같이 하는 세력들이다. 따라서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을 많이 지지하게 되면, 극단적으로 친북, 간첩세력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 대한민국 최악의 시나리오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은 공산화되었다. 당시 미군 철수 후 미군이 남기고 간 많은 최신 무기와 보급품, 병력에서도 월맹군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던 월남이 왜 공산화 되었을까? 당시 월남은 월맹에 비해 정신력에서 이미 패했다. 그리고 정부, 군, 정치판에 월맹의 간첩들이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었다. 그것도 고위직에 자리했다고 하니 월남은 월맹의 손바닥 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떨까? 아마 지금의 대한민국도 그 당시의 월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에도 북한 간첩이 35만이 침투해 있다는 소리가 탈북한 북한 고위인사들을 통해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침묵은 동조와 마찬가지다. 간첩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떠할까? 오늘은 3.1 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그러나 독립운동 기념일행사를 할 정도로 나라의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해서 오늘 우리는 주사파와 친북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한 제2의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여 4.10 총선에서 좌파세력들을 패퇴시킬 것을 천명한다. 여기에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 등 위대한 선배들의 뒤를 이어 좌파세력을 척결하고, 자유우파세력 모두가 한 마음으로 4.10 총선 승리를 위해 진군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2024년 3월 1일 한국NGO연합/자유정의시민연합
    • 주요뉴스
    20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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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성애∙동성혼 지지자 이균용 대법원장 임명을 반대합니다.
    지난 8월 22일 신임 대법원장 후보로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61·사법연수원 16기)가 지명됐습니다.이 후보자는 경남 함안 출신으로 부산 중앙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1990년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해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원장, 대전고법원장 등을 거쳤습니다.그는 엘리트 판사 모임으로 불리는 민사판례연구회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사법부 내에서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법관으로 분류되며, 지난해 7월에는 김재형 대법관 후임으로 추천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얼마 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우리 헌법 정신은 동성 간의 혼인을 금지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이 후보자의 발언은 대법원 판례, 헌법재판소 결정, 법학계 다수 의견, 국제법 및 우리 국민 법감정에 배치된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 제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헌법 36조 1항은 인간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이 가족생활에 있어서도 보장되어야 함을 규정함과 동시에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제도적 보장 역시 규정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나아가 “제도 보장으로서의 혼인은 일반적인 법에 의한 페지나 제도 본질의 침해를 금지한다는 의미의 최소보장 원칙이 적용되는 대상으로서 혼인제도의 규범적 핵심을 말하고, 여기에는 당연히 일부일처제가 포함된다”고 판시하였다(헌재 2014.7.24. 2011헌바275).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가 “동성결혼 허용”을 시사했습니다. 이 나라는 5천년동안 예의범절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고, 그렇게 살아 온 민족입니다. 아들이 ‘아내’ 즉 ‘며느리’라고 데리고 온 것이 ‘남자’이고, 딸이 ‘남편’ 즉 ‘사위’라고 데리고 온 것이 ‘여자’를 데리고 와서 결혼하겠다고 하는 것은 절대 반대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남자끼리 항문 성교와, 여자들끼리 미친 짓 하는 동성결혼은 가정을 파괴시키고, 자기 자신의 건강을 망쳐 결국 에이즈나 각종 병으로 비참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작년 에이즈 신규 감염 가운데 92%가 남성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신규 감염원인 가운데 성접촉으로 인한 감염이 99%를 차지했으며, 이 가운데 동성 간 접촉이 60%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여성은 7.7%였으나 남성이 92.3%로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에이즈가 처음 보고된 1985년부터 2022년 말까지 외국인을 제외하고, 신고된 누적 생존자는 1만5880명으로, 남자 1만4882명, 93.7%이며, 여자는 998명, 6.3%입니다. 가수 퀸, 프레디 머큐리나 록 허드슨도 동성애 하다 에이즈로 죽었습니다. 동성결혼이 합법화 되면 우리나라는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기 때문에 마약처럼 퍼져 동성애자 나라가 될 것입니다. 동성애에 중독된 한국이 되고 싶습니까? 성 소수자, 즉 동성애자들은 대개 기독교에 대한 증오심이 극단적입니다. 기독교가 동성애를 명백하게 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 좌파 즉, 네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기독교 정신을 해체하지 않고는 무신론적 공산혁명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극단적 반기독교적인 동성애자들을 앞세워 반기독교적인 젠더 이데올로기를 성 정치화하여 이들을 혁명의 전위 부대로 동원하고 있습니다. ‘젠더 이데올로기가 보편화되면 기독교적 가치관과 질서는 붕괴되고 결국 교회는 침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차별금지법과 사학법 개정 통과에 매달리고 좌파 언론을 통해서 기독교를 집요하게 공격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국힘당이 한국교회를 속이고 ‘척’을 지고서 내년 총선을 어떻게 치루겠다는 것입니까? 대법원장을 앞세워 동성결혼과 차별금지법에 총대를 매라는 속셈입니까? 국힘당이 한국 교회와 원수지간이 되려는 것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수크그 법안’ 파동으로 하나님과 한국 교회의 미움을 샀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슬람을 끌어 들여 ‘할랄인증 국가’ 만들겠다고 해서 하나님과 한국교회의 원성을 사더니, 기독교의 신망을 잃어 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동성애∙동성혼 합법론자인 이균용 판사를 대법원장 후보로 추첨함으로 하나님과 한국교회의 반대를 자초하였습니다. 헌법을 부인하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즉각 사퇴하십시오. 이 후보자는 동성애와 동성결혼 옹호∙조장뿐만 아니라 헌법의 ‘양성평등’이 아닌 ‘성 평등’ 구현을 기본으로 하는 대법원 인적 구성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성 평등’은 아침에는 남자, 점심에는 여자, 저녁에는 다시 남자라는 젠더플루이드뿐만이 아니라 50여개의 성별을 인정하자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를 강력 반대합니다. 당장 인준 거부하고 다른 인물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안타까운 것은 현 정부가 보수 인사(판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까? 혹시 보수적 가치를 지닌 판사가 없는 것은 아닌지 정말 우려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동성 결혼 문제만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제이니 결코 좌시할 수 없으며, 윤석열 대통령이 하나님께 징계 당하지 않도록 이 결정에 신중하도록 요청드립니다. 이대로 동성애∙동성혼 합법론자인 이균용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윤석열 대통령도 하나님과 한국교회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만약 대법원장이 동성애∙동성혼 찬성론자를 대법원장에 임명되면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 주사파와 동성애 독재와 민중민주주의라는 공산주의를 척결하라는 하나님과 한국교회의 바램을 여지없이 배반하는 것입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국회에서 마땅히 부결되어야 하고,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하나님께 회개해야 하며, 국힘당 지도부는 국민과 교회 앞에 책임을 져야 하며, 헌법을 부인하는 이균용 후보자는 즉각 사퇴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10월 6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을 진행했습니다. 무기명 전자투표로 진행된 임명동의안 표결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이 가결 요건입니다. 표결 결과 출석 의원 295명 중 찬성 118명, 반대 175명, 기권 2명으로 부결되었습니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은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35년만에 처음입니다. 대법원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대법원이 운영되는 건 1993년 김덕주 전 대법원장이 재산 공개에 따라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탓에 사퇴한 이후 최재호 대법관 권한대행 이후 30년 만에 초유의 대법원장 공백 사태를 맞게 됐습니다. 이에 대해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무리하게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도 기각해 줬는데 그 은혜도 모르고 배은망덕하다. 이재명 대표 구속 영장은 대법원장 표결 후 청구했어야 했다. 무얼 그리 급하게 서둘렀는지 추석 밥상 민심을 기대한 것 같은 데 둘 다 망쳐서 유감”이라고 했습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대법원장 공백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라며 “줄줄이 있는 사건과 김명수 체제에서 만연된 재판 지연 사태로 가뜩이나 고통 받는 재판 관계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대법원장 공백이 길어지면 법원 인사는 지연되고 신속하게 재판 받을 국민 권리는 크게 침해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법원장 공석 사태로 당장 빨간 불이 켜진 건 법관 인사입니다. 해마다 2월 20일 전후로 발령이 나는 승진∙전보 인사 작업을 통상 12월 초에 시작하는데, 인사 원칙 등을 대법원장이 승인해야 그 기준에 맞춰 인사 작업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정상적이라면 11월 전에 인사 원칙이 정해져야 하고, 11월 내에 새대법원장이 취임하지 못한다면 전국 법관 3,100여명의 인사에 차질이 불가피합니다. 수도권의 한 고법판사는 “진짜로 인사를 못 하거나 밀리는 상황이 오면, 일단 고법 판사 선발이나 부장 승진이 달린 기수의 법관들 반발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며 “전국으로 옮겨 다니는 모든 법관들이 2월 인사에 맞춰서 전세 계약∙자녀 전학 등 일정을 짜놓는데, 이 일정에 변수가 생기면 법원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대법원장 없이는 전원 합의체 선고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현재 전원합의체에서 논의 중인 사건은 총 5건으로, 이 중 1건이 1월 퇴임 예정인 민유숙 대법관 주심 사건입니다. 고차 대법관이 주심을 맡았던 전원합의체 사건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떠나 새 주심이 사건을 넘겨받을 경우 그만큼 시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행정 업무를 떠안게 된 이철상 대법관의 소부 사건들도 지연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안 대법관은 6일 “(대법원장) 재임명이 되지 않으면 당장 재판을 못 하게 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재판받을 권리에 공백이 있어선 안 되고, 어려운 사태가 빨리 해소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재산 신고 등을 이유로 낙마한 사례는 많지 않은데, 진짜 부적절한 인물이라 부결했다기보다 여∙야가 법원을 정치공방의 볼모로 삼은 것”이라며 “법관들의 사기에도 영향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장은 “야당이 윤 정부와 힘겨루기의 결과로 사법부를 혼란에 빠뜨린 것”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두 번째 후보자도 낙마시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내다 봤습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농담처럼 말하던 상황이 현실이 되니 너무 황당하다”며 “다음 후보자는 좀 빨리 통과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교회는 동성 결혼을 허락하지 않도록 윤석열 대통령이 하나님께 버림 받지 않도록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는 주사파만이 아니라 동성애 독재를 막는 대법원장이 나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다음 대법원장 후보는 주사파와 동성애 전체주의와 싸울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가능하면 신실한 기독교인이 대법원장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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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09
  •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창제했으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단어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지금의 한글과 너무나 다르다. 어떤 과정을 통해 훈민정음 글자가 지금의 한글 글자로 진화했는지 설명한 글들이 별로 없다. 몇 사람들이 내놓은 설들만 있을 뿐 과학적 설명이 없는 것이다. 1446년에 세종이 반포한 훈민정음은 한글이 태어나기 전까지 문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채 사장돼 있었다.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한 시기는 1928년이었다. 일제가 한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탄압했다는 좌익들의 주장이 허위라는 사실,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이 시기의 조선 학자들은 왜 우리글을 '훈민정음'이라고 부르지 않고 '한글'이라고 불렀는가?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경제', '문화',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누가 만들어 준 단어들일까? 세종은 이런 문자와 이런 단어를 만들어 내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이 단어들을 누가 만들어 주었는가? 놀라지 말자. 일본이 만들어 주었다. 1935년생인 후쿠자와 유키치가 만들어 준 것이다. 이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서양문물을 받아 들이는데 일생을 바쳤다. 서양문물을 받아 들이려면 언어가 통해야 했다. 수많은 제자들을 동원했다. 그리고 영영사전을 해독하여 그 뜻을 한자단어로 전환했다. 이런 대업이 완성되지 않았다면 일본의 개화도 없었다. 그는 이 한자 단어집을 조선의 개화파들에게 내주었고, 조선인들은 그 한자 단어들을 한글로 표기했다. Democracy를 민주주의로 전환한 사람은 유키치였고,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표기한 사람들이 조선 사람들이었다. 처음에 그는 'Democracy'를 하극상으로 번역했다. 'Democracy'를 백성이 감히 왕에게 대들었다는 의미로 이해했던 것이다. 갑론을박 끝에 다시 민주주의로 바꿨다 한다. 모든 단어가 이런 과정을 통해 창조됐으니 그와 그 휘하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겠는가? 이어서 Civilization을 문명으로, Right를 권리로, Society를 사회로 번역했다. 조선인들은 이 발음을 한글 발음으로 표기만 했을 뿐이다. 복식부기, 보험, 학교, 시간, 경제, 문화, 문명, 사상, 연설, 계급, 법률, 자본, 토론, 종교, 이성, 철학, 감성, 주관, 과학, 물리, 화학, 분자, 원자, 질량, 공간, 이론, 문학, 미술, 비극,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런 단어들를 한문 단어로 만들어 준 사람이 바로 후쿠자와 유키치였던 것이다. 이에 관련한 한 에피소드가 있다. 중국이 일본의 기술을 로열티도 지불하지 않고 함부로 도용한 사실에 대해 일본이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고 항의했다. 이에 중국은 "그렇다면 일본이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한자를 무료로 사용해 왔으니 그에 대한 로열티를 내봐라" 이렇게 대꾸했다. 이에 다시 일본은 "좋다. 그럼 중국이 지금까지 일본이 만들어낸 한자 단어집을 중국이 무단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응분의 사용료를 내봐라" 이렇게 받아쳤다 한다. 그럼 조선은 무엇을 했나? 한자도 공자, 한자사전도 공자인 나라다. 무임승차(Free Rider)의 나라이고, 꼽사리만 끼어 온 나라인 것이다. 유키치 이전에는 '학교'를 '교'라 했다. 다리를 '교'라 했다. 가르치는 것을 '교'라 했고, 상대방과의 교류하는 것을 '교'라 했다. 이는 '글자'였지, 의사를 교환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스승은 교를 건너 교에 가서 교하고 하루종일 교한 학생들은 밤늦도록 교했다"고 한글로 쓰거나 말하면 누구도 뜻을 알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말은 한문을 배운 소수의 양반들끼리만 종이와 붓을 통해 소통했다. 유키치는 수많은 조선 청년들을 제자로 삼았다. 그들 중 뛰어난 사람들이 유길준(1856 ~ 1914), 주시경(1876 ~ 1914), 최현배(1894 ~ 1970), 김옥균, 윤치호 등이다. 결론적으로 조선 시대에는 '언문이다. 암클이다' 천시 받던 훈민정음이 〈후쿠자와 유키치〉에 의해 한글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 엄연한 사실은 그동안 반일적인 사회적 정서에 묻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는 배은망덕한 존재였던 것이다. 유키치는 유길준 등 조선 제자들을 통해 일본글처럼 한자와 한글을 섞인 글을 사용했다. 일단 한글말 사전이 만들어진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한문표기가 어렵다며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한글을 전용케 했다. 국한문겸용 시대를 한글 전용 시대로 전환시킨 것이다. 많은 식자들이 박정희의 한글 전용 정책을 비판한다. 이들은 지금도 한글전용이 국민을 미개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한글전용을 지지한다. 관찰한 결과 저자는 두드러진 현상을 발견했다. 국한문겸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내 토종파들이다. 반면 한글 전용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개 유학파들이다. 훈민정음 실용화 과제를 맡았던 집현전 학자들은 노예들이 쉬운 언문으로 자기들끼리 함부로 소통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토종파들도 바로 집현전 학자들과 똑같은 멘탤러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글로 그리고 구어체로 글을 쓰면 의사전달이 잘 되는데도, 이들은 간단한 내용을 길게 쓰고 거기에 더해 한문까지 넣어야 남들로부터 지식인으로 인정받는 다고 생각했다. 성경말씀이 외식하는 자들을 꾸짖어 온지가 벌써 2,000년을 훌쩍 넘겼는데 아직도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에는 외식하는 버릇이 있는 듯하다. 헤밍웨이가 노벨 문학상을 탄 것은 '노인과 바다'라는 단편소설 때문이었다. 노벨평화상이 높게 평가한 것은 단문의 구어체였다. 그런데도 토종파들은 지금도 문장을 명주실처런 길게 늘어뜨려 쓰면서 현학적(Pedantic) 분위기를 낸다. 다르게 말하자면 학자연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사실이 있다. 긴 문장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짧은 구어체 문장은 누구나 쓸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글 전용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문맹률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한문은 한글에 비해 우선 어렵고 배우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한문을 배울 능력과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문맹이 된다. 그러면 사회로부터 이탈되고 불필요한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사회병리를 촉발한다. 둘째, 한문을 배우는 시간에 그만큼의 영어를 배우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다. 우리는 어차피 영어를 통해 신문물을 받아 들인다. 한문을 배운 사람도 영어를 공부해야 새로운 문물을 받아 들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한문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중국인들은 어째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며, 어째서 기술 발달이 한국보다 더 후진돼 있는 것인가? 한문은 그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 고사를 연구하는 사람만 배우면 되는 것이다. 북조선에서는 '한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조선어, 조선글이라고 부른다. 한글 띄어 쓰기 주도한 영국 목사 존 로스(John Ross) 가두리 농장에 불과했던 조선에 수많은 외국인들이 들어 왔다. 알게 모르게 그들은 미개한 조선인들에게 서양이라는 발전된 세상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가르쳐 주었다. 한글 발전을 도와준 서양인도 있었다. 한글 문장에는 띄어 쓰기가 없었다. 오른쪽 위부터 아래로 내려 쓰는 세로 쓰기 방식이었다. 그럼 띄어 쓰기는 언제 처음 나왔을까? 최초의 한글 띄어 쓰기는 1877년 영국 목사 존 로스(John Ross)로부터 시작됐다. 국립 국어원에 따르면 그가 외국인을 위해 편찬한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에서 처음으로 띄어 쓰기가 나타난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제공한 자료를 보면 한글 문장이 먼저 나오고 그 아래 발음과 영어 단어를 차례대로 대응시켜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인물로서의 후쿠자와 유키치(Yukichi Fukuzawa, 1835~1901) 후쿠자와 유키치는 1835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가 되었다. 일본화폐 최고액권인 1만엔 권에는 1984년부터 그의 초상이 인쇄돼 있다. 그는 일본만이 아니라 중국과 조선이 다함께 참여하는 '동양의 문명개화'를 주창했다. 그는 또 그가 개척해 놓은 한자사전을 조선 제자들에게 내주었다. 그는 그가 운영하는 신문사설을 통해 일본이 한국을 영토적으로 삼키는 것은 절대 안되며, 상호 독립자존의 원칙 아래 '교역의 이득'을 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한론'도 부정하고,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881년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학생들이 파견됐다. 유키치는 조선인 유학생 유길준, 박영효, 윤치호 등을 자주 만나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이들이 귀국한 뒤에도 유키치는 꾸준히 이들과 연락을 유지했다. 독립신문 등 신문과 언론에 종사하던 윤치호에 대해서는 언론 경영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 주었다. 성금도 모아 주었다. 유길준에게는 국한문을 혼용해 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 개화파 인사들에 대한 혹돋한 형벌과 연좌제를 보고 유키치는 비분강개하여 당일 하루 식음을 전폐했다. 그는 아까운 인재들을 잃었다면 대성통곡했다. 이어 '조선독립당'의 처형이라는 글을 발표해 조선의 야만적인 형벌을 비인도적이라고 강력 규탄했다. 그리고 곧바로 탈아입구론(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간다)을 제창했다. 그가 남긴 휘호가 유명하다고 한다. 직역하면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창조하지 않으며, 사람 밑에 사람을 창조하지 않는다"는 글이다. 일본에서는 "인간은 모두 평등해서, 신분의 상하 귀천, 가문, 직업 등에 차별이 없다."고 해석하고,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말로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뜻이었다. 그는 1835년에 태어나 66세인 1901년에 타계했다. 탈아입구론(1885) 원문 (번역) "서구화의 바람이 동양을 향해 불어 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모든 국가는 서구사회와 더불어 이 운동에 동참하여 문명의 열매를 맛 보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문명은 홍역과 같지만, 여러 이로운 점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홍역보다는 이롭다. 그러므로 국가는 문명에 거역할 수 없으며 이를 받아 들여야만 한다. 문명화 과정에서 보수적인 정부(도쿠가와 막부)는 걸림돌일 뿐이며, 이를 뒤집어야만 일본에서 문명화를 이룰 수 있다.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얻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시아를 벗어나는 것'이다. 비록 일본이 정신적으로는 아시아를 벗어났지만, 이웃의 두 나라(한국과 중국)는 개혁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이 나라들의 유교적 가르침은 모두 위선적이고 뻔뻔할 뿐이다. 중국과 일본의 개혁이 실패한다면, 이들은 곧 세계 열강에게 나라를 빼앗길 것이다. 서구인들은 언제나 일본, 중국, 한국을 같은 문화를 가진 비슷한 나라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일본에게 걸림돌이 될 뿐이다. 나쁜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마찬가지로 나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일본은 이웃의 나쁜 아시아 나라들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 「시사신보」 1885(명치18)년 3월 16일 갑신정변은 1884년 12월 4일에 발생했고, 탈아입구론은 1885년 3월 16일에 발표되었다. 그는 왜 아시아를 야만의 상태에서 문명의 상태로 변화시키려 했을까? 많은 이들이 미국과 유럽 제국의 자원쟁탈 차원에서 해석한다. 그러나 저자는 좀 다르게 해석한다. 우선 그는 그가 사랑하는 조선의 제자들이 숙청당하는데 분개했다. 그래서 그는 종전의 비개입 원칙론에서 현실론으로 발을 옮겼을 것이다. 조선 사람들을 무능한 폭군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조선 왕조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조선을 탈출하여 도망 나온 조선인 개화파들 30여명을 보호해 주고, 먹여 주었다. 특히 김옥균은 10년 이상 돌보아 주었다. 역사는 사실과 해석으로 구성된다. 정한론은 조선을 징벌하자는 것이었고, 유키치는 조선과 중국을 개화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실제로 조선과 중국을 다 점령하여 두 나라를 개화시키다 미국을 침공하는 바람에 꿈을 접어야 했다. 아마도 유키치에게는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것 같다. 만일 일본이 조선과 중국을 개화시키지 못하면 아시아는 미개한 조선과 중국 때문에 서양으로부터 점령 당할 것이며, 조선과 중국이 점령당하면 일본은 고립화되어 지연 소멸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조선 경제의 초석을 깔아준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은 교육 문화 측면에서만 조선에 초석을 깔아준 것이 아니라 경제 측면에서도 초석을 깔아 주었다. 초석을 깔아준 주인공은 '후쿠자와 유키치'와 쌍벽을 이루었다는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다. 그는 일본의 독특한 자본주의 문화를 창조한 사람이다. 당시 유럽과 미국의 경영철학은 오로지 주판이었다. 그런데 시부사와는 "한 손에는 도덕을 다른 한 손에는 주판을 들라"고 가르쳤다. 그가 말한 도덕은 공자였다. 똑같은 공자로부터 일본은 '도덕'이라는 잣대를 실용화 측면에서 활용한 반면, 조선은 유교를 만들어 '앉아서만 따지는 관념론'에 매몰됐다. 일본이 받아들인 공자는 무엇이었는가? "이윤을 추구하지 말고 개선을 추구하라, 이윤은 개선에 열리는 열매다", "기업인은 정신적 귀족 이기를 추구하라, 이윤은 자동적으로 따라 온다." 1920년대의 마츠시타 고노스케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 굴지의 기업가들이 이를 따랐고, 이는 일본 전체의 문화가 되었다. 고객을 만족 시키기 위해서라면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제6장, '일본은 배울 게 많은 나라'를 정독해 주기 바란다. 그의 경영사상을 이어받은 사람들 중 유명한 사람이 그보다 54년 후에 태어난 1894년생 마쓰시타 고노스케'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서구로 넘어가 있는 조선 철도 부설권을 매입해 경부철도, 경인철도, 중앙선 등 세기적인 대공사를 완성했다. 조선에 '제일은행'을 창설했다. 1902년부터 1904년에 걸쳐 무거운 엽전 대신 지폐를 인쇄해 유통시켰다. '제일은행권' 지폐인 1원, 5원, 10원 권에는 '시부사와'의 초상이 박혀 있었다. 경부 철도 주식회사는 이미 1901년 6월에 창설됐다. 일본은 36년동안 조선을 통치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일본은 조선을 36년 통치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 45년간 조선을 개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조선 땅에 구축한 52억 달러의 고정자산을 모두 남겨 두고 맨몸으로 돌아 갔다. 일본이 빼앗기고 간 자산은 박정희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 엽전! 이 단어는 '조선인들이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종족이냐?'를 대표하는 자학적 단어였다. 1960년대에도 저자는 신당동 거리에서 '엽전이 뭐 별 수 있겠어?"라는 자조의 말들을 늘 들으면서 걸었다. 이제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들을 찾아보니 조선은 참말로 엽전이었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조선에 ① 학문과 문화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고, ② 경제의 초석을 마련해 주었고, ③ 조선으로서는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52억 달러의 고정자산과 대기업들을 남기고 간 나라다. 조선이 핍박을 받았다는 것들은 알고 보면 대부분 모략물들이다. 조선인들이 일본을 평가하는 표현들에는 구체성이 없다. 그냥 막연히 악독한 쪽바리라는 것이다.(2019. 10. 2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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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08
  • 국가의 존재 이유와 대통령의 책무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헌법 제2장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행복을 보장하며, 피해를 당한 국민을 보호하고 구조하는 것”이라고 국가의 의무를 밝혀 놓았습니다. 헌법 제66조에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했습니다. 문재앙이 지난 2020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나라가 국민에게 해야 할 역할을 다 했는지, 지금은 다하고 있는지,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단 한 사람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문재앙은 광복절 기념사 이후 37일 뒤에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며 국제 사회의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종전 선언을 하자”고 한 바로 그날 밤(9월 21일) 북조선은 대한민국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이 연평도 해역(서해 북측 수역)에서 북조선 인민군에게 총살을 당하고, 불에 태워지고, 사체도 찾지 못하도록 수장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문재앙은 피살된 국민에 대해 공개석상에서 어떠한 애도의 말도 하지 않다가 사건 발생 170시간 만에 나왔습니다. 북조선 김정은의 통지 이틀 후 지난달 2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피살자 유가족에게 처음으로 육성 애도를 표시했습니다. “한 사람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갔습니까? “국민 단 한 명도 포기 않는다”고 했던 문재앙, 북조선이 죽이면 예외입니까? 당신의 국민은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당신의 국민은 누구입니까? 문재앙의 발언 직후 여당은 “월북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당 양향자 의원은 야당을 향해 “굳이 월북이 아니라고 우기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29일 해양수산부는 “월북이 사실”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우리 국민이 북조선 인민군에게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당했는데 청와대 안보실장은 “두 정상 간에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친서도 오갔다”고 했습니다. 서해에서 우리 국민이 총 맞아 죽고 소각당했는데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습니까? 이 정부의 대표적인 대북 유화주의자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굉장히 유감스럽고 불행한 일이지만 이번 일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고 했습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김어준씨는 ‘화장(火葬)’이란 표현을 썼고, 유시민씨는 통지문 사과를 한 김정은을 ‘계몽군주’라고 했습니다. 다들 북한의 만행을 두둔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응은 북조선 김정은이로 하여금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을 우습게 여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 정부는 김정은이 통지문을 보내 사과했다며 반색했습니다. 그러나 북조선은 공식 사과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부인했습니다. 이는 사과는커녕 대한민국을 조롱한 처사이자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모독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이스라엘은 그 범행을 저지른 배가 육지로 돌아 가기 전에 이미 전투기가 출격해 해상에서 박살 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대통령은 즉시 유가족을 찾아 가서 위로하고 슬픔을 함께 나눴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닌 요르단도 마찬가지입니다. 2007년 2월, IS가 요르단 전투기 조종사를 산 채로 화형에 처하자 국왕이 즉시 유가족을 찾아가 위로하며 응징을 다짐했으며, 그리고는 국왕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30대를 동시에 출격시켜 IS 본거지를 격파하고 돌아 왔습니다. 당시 공격으로 IS대원 57명이 사망했습니다. 적어도 대외정책이야 어찌하든지 자국민은 지켜 줘야 대통령이고, 이런 지도자가 있어야 국민이 믿고 살지 않겠습니까? 만약 일본 해상자위대가 현해탄에서 표류하는 우리 국민을 발견한 뒤 구조하지 않고 여섯 시간이나 방치했다가 사살하고 소각했다면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과연 종전 선언이라는 망언과 자금 같은 이런 황당한 조치를 취했을까요? 스가 일본 총리가 사과 성명도 없이 고작 통지문을 한 장 달랑 보냈다면 우리 정부는 어떻게 했겠습니까? 궐기대회를 부추기며, 반일 선동으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났겠죠? 이것이 바로 문재앙 정권의 실체입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폭거이고, 당연히 보복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가다운 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조선 김정은이 보낸 통지문에 문재앙은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 국민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해온 것에 대해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북조선의 김정은이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겠습니까? 이것은 김정은에게 언제든 대한민국 국민을 죽일 수 있는 살인면허증을 준 것이 아닙니까? 청와대는 ‘북한이 도발하지 못하도록 방어태세를 철저히 하라’고 우리 군에 주문하지만 이는 상대가 도발할 경우 철저히 응징함으로써 도발할 의지를 꺾는 미국 방식과 비교됩니다. 미국은 ‘미국 국민이 공격당하면 반드시 국가가 나서서 응징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리언 패네타 전 미국 국방장관도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는 국민을 건드리면 엄중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점을 (북한에)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9·11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 제거였습니다. 미국은 10년 동안 끈질기게 빈 라덴을 추적한 끝에 2011년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은신해 있던 그를 찾아내 사살하고 바다에 수장했습니다. 미국은 빈 라덴 제거 작전을 녹화 중계해 미국 국민이 살해당하면 미국이 어떻게 보복하는지 전 세계에 보여줬습니다. 대한민국도 과거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한 전례들이 있습니다. 북한의 도발을 우리가 처음으로 원점 타격한 ‘몽금포 작전’이 있습니다. 1949년 8월10일 북한이 인천항에 정박한 미국 군사고문단장의 전용보트를 탈취하자 우리 해군은 1주일 후인 8월 17일 몽금포항에 보복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북조선이 미국 배를 탈취해서 정박해 둔 몽금포항에 우리 해군 특공대와 통영함이 접근해 37mm 포로 북한 함정 네 척을 격침했습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발생 12일째 되는 12월 4일 취임한 김관진 국방장관은 취임사에서 “앞으로 북한군이 도발할 시 우리 군은 그 원점뿐만 아니라 지원과 지휘세력까지도 완전 타격하는 철저한 응징보복을 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히며, 예하 부대에는 “현장에서 선조치 후 보고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 후 4년 동안 북한의 무모한 도발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북조선에서 가장 무서워 하는 군인이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재앙은 왜 국민 허락도 받지 않고 우리 국민을 죽인 자를 용서합니까? 집권당은 어떻게 통지문 한 장에 대북규탄결의안에서 발을 빼는 것입니까? 국가는 국민에게 위해를 가한 자를 용서할 권리가 없습니다. 오직 응징할 의무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 의무를 저버리면 국민이 위험에 처하기 때문입니다. 그 의무를 저버린 나라는 나라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참모들은 새벽이라고 문재앙을 깨우지 않았지만, 백악관 참모는 새벽에 대통령을 깨웠습니다. 2009년 4월 새벽, 북조선이 장거리 로켓를 발사했을 때, 유럽을 순방 중이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수행한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새벽 4시 30분 잠자는 대통령을 깨워 사실을 알렸습니다. 오바마는 바로 일어나 백악관 참모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상황을 보고받고 대응책을 지휘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국가이고, 대통령이 아닙니까? 먼 나라에서 로켓을 쏜 것과, 국민이 코앞에서 총살당한 것 중 어느 것이 더 긴박하고 무거운 일입니까? 그러나 우리 정부는 한술 더 떠서 그 국민을 월북자로 몰았고, 극렬 여당의 지지자들은 ‘월북이 자랑이냐?’며 유족들에 악플 공격을 했습니다. 피살 공무원의 형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만행이 더 끔찍하다”고 절규합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이슬람 테러로 프랑스인들이 참수 당하는 사건이 잇따르자 “프랑스가 공격당했다.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참수당한 중학교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파리의 한 광장에 1만명 넘는 시민들이 모였을 때, 장 카스텍스 총리와 나란히 앉은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야당 소속으로 평소 마크롱 정부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사이였지만 테러에 대한 분노로 연대한 것입니다. 이런 것이 공격당한 국가와 국민, 대통령이 해야 할 말과 행동이 아닙니까? 종전선언을 원하는 문재앙은 사건 직후 북한 책임을 일절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충성파 야당 의원들이 방어막을 치는 가운데 사건 발생 엿새 만에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북조선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각별한 의미로 받아 들인다”고 했습니다. 마크롱과 문재앙의 말 중 어느 것이 정상입니까? 적어도 “다시는 북조선이 그런 짓 못 하게 하겠다”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1700년전 확립된 군사학의 기초공식은 베게티우스가 말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1973년 파리평화협정에서 미국의 헨리 키신저는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평화협정이란 결국 ‘공산화’였다. 결국 종이 쪼가리 평화협정이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강력한 힘의 우위가 평화를 지켜 준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평화는 협정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지켜진다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3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 승전 24주년’을 맞아 “자유와 평화, 번영을 위해 헌신하신 영웅들을 잊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1999년 6월 15일은 휴전 이후 처음 발생한 남북간 해상 교전에서 우리 군이 큰 승리를 거둔 날”이라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단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우리의 압도적인 힘만이 적에게 구걸하는 가짜 평화가 아닌, 진짜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주요뉴스
    2023-10-06
  • 진보와 보수, 누가 더 정의로운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해방되었을 때, 조선에 남아 있는 34만명의 일본군을 무장 해제시키기 위해서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을 한국으로 투입했습니다. 1차로 한국에 온 미군들은 일본군의 군복을 벗기고 부산항으로 추방했으나 박헌영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강렬하게 저항했습니다. 그래서 하지 중장이 조선인들을 상대로 여론 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당시 글을 읽거나 쓸 수 없는 문맹률이 80%를 넘었습니다. 여론 조사 결과 80% 이상이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세워 달라고 했습니다. 이 결과를 하지 중장이 상부에 보고하여, 1949년 6월 30일 미군을 철수하기로 결정 내렸습니다. 해방 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했으며, 북조선은 공산주의를 했습니다. 우리가 자유 시장 경제를 할 때, 북조선은 사회통제경제(국가배급 경제)를 했습니다. 우리는 세계 제일의 나라인 미국을 친구로 삼아 한미동맹을 맺었으나, 북조선은 중국을 친구로 삼고 조중동맹을 맺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 입국론을 했을 때, 북조선은 김일성 주체 사상, 즉 주사파를 신봉했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으나, 북한은 거지 나라가 되었습니다. 사실 광복 후 분단될 당시 북조선이 우리보다 경제적인 여건이 더 유리한 조건에 있었습니다. 압록강에 건설된 동양 최대 수력 발전소인 수풍댐이 있었으며, 일제가 함경남도 일대에 건설한 세계적인 규모의 화학 생산기지가 있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도 북한이 남한보다 훨신 더 높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1961년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였으나, 북조선은 우리보다 절반(50% 이상)이나 더 높은 124달러였습니다. 1974년에 와서야 우리나라가 조금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반세기만에 한국은 3만 달러를 넘어서는 부유한 국가가 되었고, 북조선은 우리나라의 3.9%에 불과하며, 1978년 수준입니다. 왜 한국과 북조선 간에 이런 엄청난 차이가 났을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체제 차이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한국과 북조선은 분단 당시 모든 면에서 똑같았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북조선이 더 유리했습니다. 다른 점은 단 하나 우리나라는 사유 재산이 보장되는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했고, 북조선은 사유 재산을 몰수하고 국가에 의해 수행되는 철저한 공산주의 체제를 선택했다는 것뿐입니다. 한국이 북조선보다 훨씬 살기 좋은 나라인 것은 매년 수천 명의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의 잔혹한 독재 정치로부터 중국과 마주한 국경을 통해 탈출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정착한 약 3만명의 탈북자들 또한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구 소련의 스탈린은 공산혁명을 위해 4500만명을 죽였으며, 중국 공산당의 모택동은 6300만명을 죽였고, 북조선의 김일성은 700만명을 죽였습니다. 역사상 모든 공산국가 독재자들이 다 그랬습니다. 좌빨들이 암암리에 “베트남은 공산 통일되었지만 지금은 잘 살고 있다”고 거짓 선전 선동하고 있어서 통일 직후 베트남의 실상을 되돌아 봅시다.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월남)이 북베트남 공산 월맹에 무조건 항복한 후 20년 동안 베트남은 국경을 폐쇄하고 공산화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숙청 작업을 했습니다. 월남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된 후 “인간 개조”를 위한 수용소를 만들어 놓고 군인, 경찰, 공무원, 교사, 정치인, 재산가, 종교 신도 등 사회의 지도층 인사 수백만명을 잡아 들여서 대부분 처형되고 학살되었습니다. 특히 성직자들은 인간 개조가 안 된다고 판단해서 모두 처형하였습니다. 이것이 베트남에는 성당은 있어도 베트남 신부가 단 한 명도 없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벌이며 월남 패망에 앞장섰던 ‘짠후탄’ 신부 등 베트남 공산 통일의 1등 공신인 ‘베트콩’ 지도자들도 모두 숙청했습니다. 6•25 후에 북조선의 김일성이 남로당 박헌영을 제일 먼저 죽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렇게 무자비한 처형을 하자 국외로 탈출한 인구가 보트 피플 106만명, 육상 탈출이 50만명이라고 하며, 탈출 중 사망자가 11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지금도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인접국 호수에는 탈출 베트남인들이 만든 수상 마을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학살로 경제는 완전히 무너져서 “어쩔 수 없이” 1995년 이후 개방경제를 택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숙청했는지 지금 베트남에는 노인이 없고, 평균 연령이 27세라고 합니다. ⌜베트콩과 월맹의 내막⌟의 저자 ‘리 라닝’은 “베트콩으로 활동한 월남인들은 모두 숙청되었고, 일부는 재교육 수용소에 월남인들과 함께 수용해 제거해 버렸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렇게 월남 패망에 앞장 섰던 인사들까지 처형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사람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똑같은 짓을 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재앙 지지자들은 “빨갱이 밑에서도 살 수 있을 거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자신들이 제일 먼저 처형당한다는 걸 모르고 하는 모양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암약하는 좌파와 종북 세력은 공산 통일이 되면 득세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유일 주체 사상 공화국”의 불순분자로 제일 먼저 처형될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도 만약 공산화되면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공산혁명 역사상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이 다 그랬습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구 소련의 스탈린, 중국 공산당 모택동, 북조선 김일성이 다 그랬습니다. 김정일은 생전에 말하기를 “한반도 적화통일 달성시 남한의 1천명은 이민 갈 것이고, 2천만명은 숙청될 것이며, 남은 2천만명과 북조선 2천만명으로 공산국가를 건설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적화통일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역사 이래 없었던 대살육이 자행될 것입니다. 북조선은 결코 지상낙원 유토피아가 아니라 전체주의적인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통제받는 모습의 디스토피아입니다. 어떤 철없는 사람들은 북조선의 김정은을 ‘귀엽다’고 말합니다. 그 실체를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북조선의 김정은이, 정권에서 밀려나 외국에서 유랑 생활하는 자기 형을 독살한 것을 TV중계로 온 세계가 다 본 것을 벌써 잊었습니까? 자기 아버지 김정일의 최측근이며, 친족인 고모부 장성택이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기관총으로 쏴 죽여서 공개 처형한 것을 모르십니까? 그것도 모자라 고모부의 목을 가슴에 안고 군 간부들에게 보여 주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북조선의 괴수가 과연 평화를 원하고 있을까요? 자기 형제와 친족에게 이런 짓을 하는 자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습니까? 영국의 수상 처칠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6•25전쟁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지 그 사실을 벌써 잊었습니까? 공산당이 얼마나 잔혹하고 무서운지 겪어봐야 알 것입니까? 이제라도 모두들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미국도 헛되이 피 흘리지 않겠다 했습니다. 온 국민이 내 조국을 지키려 할 때 동맹국인 미국도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종교는 인류에게 아편이다”라고 말한 공산주의는 하나님과는 반대되는 사상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진화론과 유물론과 무신론의 뿌리를 가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는 타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살인자들이요, 인류 최고의 살인마 집단입니다.
    • 주요뉴스
    2023-10-05
  •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누구를 찍어야 할까?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사전 투표가 10월 6일(금욜)부터 7일(토욜)까지,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합니다. 서울에서 면적이 두 번째로 넓은 곳이 강서구이며, 인구도 두 번째로 많은 곳입니다. 이번 강서 구청장 선거는 강서구의 발전과 주민의 삶을 누가 더 향상 시킬 수 있는가에 선택해야 합니다. 구청장은 정치가가 아닌 CEO를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강서구가 다른 구에 비해 낙후된 것은 정치가를 선택한 주민에게 있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한 것도 훌륭한 대통령을 국민이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가 강서 구청장이 되어야 강서구가 발전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서울 시장∙국토부 장관∙대통령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태우 후보는 1년간 강서구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한 구청장이었습니다.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허는 것이 강서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강서구민 여러분의 올바른 선택은 김태우 후보입니다. 국민 여러분들도 강서구에 지인이 있다면 전화하시기 바랍니다. 강서구에는 출근 첫 날부터 속전속결로 힘있게 일할 수 있는 여당 구청장이 필요합니다. 집권 여당의 힘있는 구청장 후보 김태우가 강서구를 천지개벽 시켜 놓을 것입니다. 숙원해결사 김태우가 속전속결로 이행합니다. 57만 강서구민의 힘있는 구청장이 될 것입니다. 김태우 후보는 어떤 사람일까요? 강서구청장 김태우 후보는 용기있는 공익제보자였습니다. 자신의 일산상의 안위와 편안함과 안락을 버리고, 조국의 민정수석실에서 저지른 비리를 권익위에 제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슬이 시퍼런 종북좌파 수괴 문제인 정권하에서 조국 민정수석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민정수석실은 공직기강을 바로잡고, 공직자의 복무 기강과 비리를 조사, 시정하는 청와대의 핵심 부서입니다. 그런 부서에서 근무한 김태우 감찰관은 청와대의 2인자였던 조국 민정수석의 비리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김태우는 조국 수석의 감찰 무마, 비리 등을 권익위에 신고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던 의로운 행동을 보여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조국 민정수석의 업무상 비리를 폭로하여 문죄인 주사파정권과 2인자 조국을 심판했던 공익제보자, 김태우! 김태우 같은 사람은 공직사회에서 올바른 국정수행의 나침반입니다. 문죄인과 조국의 비정상적인 국정을 권익위에 신고한 용기 있고, 의로운 김태우! 그는 공직사회의 표상입니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상사의 비리가 있더라도 보복 조치를 두려워하여 눈을 감고 침묵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자 문죄인과 조국 수석의 비리를 폭로했던 김태우 강서구청장 후보입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이 되는 사익(私益)을 버리고, 국민의 이익이 되는 공익(公益)을 선택했던 김태우와 같은 사람이 공직사회에 존재한다면 부정부패가 사라지고 국민을 위한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이 깃듯 아름다운 공직의 풍토가 될것입니다. 김태우 후보의 올바른 심성과 행정 능력을 기대해 봅니다. 왜 보궐선거를 하게 되었을까요?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21년 4월 7일 재보선때 자당 소속 단체장들의 잇따른 비위로 국민 혈세 800억을 들여 재보궐 선거를 치르게 했습니다. 그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번 서울시장.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는 국민들의 성인지 감수성 학습을 하는데 학습효과가 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OECD 가입국이며 경제 10위 대국 IT 최강국 대한민국이 800억을 들여 성인지 학습을 해야 하는 국가입니까? 그리고 민주당은 자당 단체장의 비위로 치뤄지는 재보선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을 뒤집고 전 당원 투표를 통해 서울시장에 박영선, 부산시장에 김영춘 후보를 선출해 재보궐 선거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때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는 아랑곳하지 않고 김태우 서울 강서구청장 후보님을 맹비난하며 또다시 도덕적 우월성을 추구하며 민심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의원의 성추행사건으로 서울 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800억원의 선거 비용을 쓰게 해놓고 공익제보하고 선거비 40억 드는 걸 말하는 것은 후안무치의 발언이며, ‘이장폐천’ 가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완전 내로남불입니다. 이번 선거 꼭 이겨야 합니다. 이영작 박사가 이기는 선거에 대해 김태우 후보에게 “40억원을 말할 것이 아니라 이번 보궐 선거는 문재인 정권과 김명수 사법부의 희생양인 것을 주장하여, 문재인과 김명수를 심판하여 달라”고 “공격적 선거 운동을 하라”고 조언을 합니다. 그래서 “우파를 모으라”고 합니다. 개딸이 “어디서 배신자가 설치고 다녀”에 대한 정답은 “내가 박원순, 오거돈입니까?”라고 말해야 합니다. 피할 것이 아니라 동문서답으로 공격적으로 응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파를 집결시키는 전략입니다. “김태우 유세장에 우산 휘두르며 돌진”하는 개딸들에게는 전형적 민주당 지지자의 모습이라고 부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술 취해서 정신없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당이 민주당이라고 하세요. 강서구에는 호남 출신이 많습니다. 호남 발전을 막는 것이 민주당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호남 사람들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지만 호남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도 가장 후진적이고 가난합니다. 광주에 복합쇼핑센터 하나 없습니다. 민주당이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김태우를 투표하여 호남이 민주당으로부터 독립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 달라고 호소하기 바랍니다. 메시지가 과감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다고 피할 것이 아닙니다. 이재명 지지율은 더 낮습니다. 과감하게 대통령 지지를 호소하세요. 합리적 중도의 지지를 얻어 내고, 우파 유권자들이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재명 심판론을 말하세요. 이재명의 국회가 나라를 마비시키고, 민생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번 강서구 보선에서 반드시 이재명의 민주당을 심판하여 달라고 주장하세요. 좌파들의 사법 카르텔을 위한 중상모략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강서구청장 김태우 후보를 지지합시다! 좌파 자신들이 저지른 중대한 죄를 감추기 위해 강서구청장 김태우를 마녀사냥 몰이를 하며 대법원까지 합세하여 정치적 사형선고를 내었지만 구사일생으로 정치적 생명을 이어 살아난 김태우가 강서구청장 후보로 다시 섰습니다. 최전선에서 목숨걸고 싸우는 김태우 후보와 국민의힘 김기현 당대표를 위시한 국민의힘 지도부 외 의원들께 힘을 주십시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내년 총선의 시작이니 우리 자유우파 동지들께선 타지역이라 방관하시지 말고 적극 협조하시어 사돈의 팔촌까지라도 강서구에 거주하시는 분이 있으시면 꼭! 강서구를 잘 사는 강서구로 만들 김태우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찍어 달라는 부탁을 하시어 정말 뜨거운 애국심을 발휘합시다. 그리고 지금 우파 후보로는 국힘당의 김태우 후보, 우리 공화당의 이명호 후보, 지유통일당의 고영일 후보 세 며잉 서로 강서구청장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동안 애국을 떠들면서도 개인의 욕심과 허영심이 더 앞선 탓에 매번 쓰디쓴 맛을 본 보수 우파입니다. 작년 교육감 선거 때와 같이 단일화를 못해 너도 나도 다함께 패자가 되어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국민의힘, 우리공화당, 자유통일당 등 여론조사에서 1등한 후보로 단일화 해야 합니다. 지금 가장 앞선 후보가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이므로 단일화 하지 못하면 필패합니다. 같은 우파 후보끼리 단일화 하지 못하면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처럼 조전혁∙박선영 교육감 후보처럼 민주당이 승리하면 윤석열 대통령 지지도 하락은 물론이고, 이재명 구속도 물 건너 가게 되며, 내년 4월 총선에 악재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올바른 셈법은 김태우∙고영일∙이명호 후보 등 3후보 관계자들이 만나서 각자 요구하는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해서 한 후보는 구청장 선거에 나가고, 양보한 후보는 4월 총선에 공천을 주는 안으로 결론을 내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힘은 전광훈 목사님과 담판을 지어야 합니다. 전 목사님도 셈을 해 봐야 합니다. 김태우 후보가 승리하거나, 고영일 후보가 승리하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두 후보측의 양보없는 난타전으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경우 김태우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패배해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게 될 경우 전광훈 목사님은 정치적으로 어마어마한 질타를 받게 되며 향후 정치적 입지면에서도 설 자리가 완전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김태우 후보의 패배는 윤석열 정부의 패배가 되고, 보수∙우파의 궤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달을 만들지 않으려면 전광훈 목사님의 자유통일당의 힘을 인정하고 서로 협약을 하고 강서구 구청장 후보 단일화를 바로 이뤄야 합니다. 패배하면 이재명 구속도 없으며, 내년 4월 총선의 승리도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 것입니까?
    • 주요뉴스
    2023-10-04
  • ‘국군과 육사의 뿌리’가 무엇일까?
    요즘 때아닌 ‘국군의 뿌리’에 대한 논쟁이 일어 났습니다. 육사 16기 출신이며, 김대중 정부때 국정원장을 했으며, 독립군 후손들의 모임인 현 광복회 회장인 이종찬 씨는 “육사의 뿌리는 신흥무관학교”라고 했으며, 또한 “독립군이 국군의 뿌리”라고 정신나간 소리를 했습니다. 이건 역사를 왜곡하다 못해 등나무처럼 밸밸 꼬는 식의 옳지 않는 언동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를 모르면 가만히 있기나 하든지, 과연 국군과 육사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또한 국군의 날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국군의 날은 왜 10월 1일일까요? 현재 대한민국 국방부는 국군의 뿌리를 구한말 의병과 대한제국군, 한국광복군 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들을 정신적으로 계승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군 역사의 시작은 일제에서 해방된 1945년 8월 15일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광복 후 위탁 통치를 하게 된 미군정 당국은 남한이 당시 처한 상황을 따져 보았을 때 미군 병력만으로는 안보를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1945년 11월 13일 미군정법령 제28호에 근거, 현 국방부의 모태가 된 최초의 우리나라 국방 조직 '국방사령부'를 발족하고, 그 예하에 군무국(군사국)과 경무국을 설치하였고, 군무국 내에는 육군부와 해군부를 두었으며, 초대 국방사령부장에는 미군정 헌병사령관인 쉬크(L. E. Schick) 중장이 1945년 11월 14일 취임하였습니다. 또한 상기 군정 법령 28호에 의하여 국방사령부가 설치되면서 1946년 1월 15일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에서 '남조선 국방경비대'를 창설했는데, 이것이 대한민국 육군과 공군의 모체입니다. 1946년 1월 21일 한국 내 모든 사설 군사단체는 미군정에 의해 불법화되고 해체되었습니다. 그뒤 국방사령부는 1946년 3월 29일 군정 법령 제64호에 의해 국방부로 개칭되었습니다. 1946년 6월 15일에 ‘조선경비대’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이름의 ‘경비대’는 ‘Guard Unit’가 아닌 ‘경찰경비대’를 뜻하는데, 미군정 당국은 당초 ‘국방경비대’의 명칭을 ‘조선경찰예비대’로 하였으나, 우리나라측에서 ‘남조선경비대’라고 불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1948년 9월 1일 대한민국 '육군'으로 편입되고, 9월 5일 대한민국 육군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1월 30일 ‘국군조직법’에 의하여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군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국군준비대처럼 독립 직후 한반도에는 훗날 정규 국군이 되기 위해 준비중이던 무장집단이 많았습니다. 그 구성도 일본군이나 관동군 출신, 팔로군, 국부군, 광복군, 만주군 등 출신 성분이 다양했습니다. 1945년 11월경에는 군사 단체가 60개가 넘을 정도였습니다. 미 군정은 이들이 상황을 어지럽힌다 판단하여 훗날 대한민국 해군이 될 ‘해방병단’을 제외한 모든 사설 무장단체들을 해체시켰습니다. 1945년 11월 11일 손원일 제독과 윤치창이 함께 설립한 해사대(海事隊)와 석은태 대표가 단장으로 있던 ‘조선해사보국단’을 합친 ‘조선해사협회’의 건의에 따라 미군정 당국이 상선사관들과 초대 해군 참모인 손원일을 중심으로 ‘해방병단’을 조직하였으며, 이를 모체로 1946년 6월 15일 ‘군정법령’ 제28호에 의하여 해안 및 도서 순찰을 실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해안경비대가 창설되었습니다. 조선해안경비대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1948년 9월 1일 국군으로 편입되었고, 9월 5일 대한민국 해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1월 30일 ‘국군조직법’에 의해 정식으로 대한민국 해군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공군은 육군에 속해 있던 '육군항공사령부'가 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군항공사령부는 대통령령 제254호인 '공군본부 직제'에 따라 1949년 10월 1일에 육군으로부터 독립하여 대한민국 공군으로 창설되었습니다. 이로써 국군은 육∙해∙공군의 3군 체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국군은 1945년 11월 11일에 창설된 해군의 뿌리가 되는 해방병단(海防兵團)과 1946년 1월 15일에 창설된 조선국방경비대로 시작되었습니다. 해군의 기원인 해방병단은 민간상선사관 출신들이 모인 곳이었고, 육군의 기원인 조선국방경비대는 만주군, 일본군, 중국군, 독립군 등 당시 한국인들이 종군했던 군사조직 및 무장단체 출신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공군은 1949년 10월 1일 육군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날을 창설일로 정해 기념했습니다. 이후 육·해·공군의 단결과 국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한국 전쟁 당시 동부 전선에서 육군 제3사단이 선봉으로 38선을 돌파한 1950년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하여 기리고 있습니다. 미군정 초대 국방사령관이었던 미 육군 중장 L.E. 쉬크 장군의 지시로 통역관 및 군 간부요원 확보를 위해 오늘날 육군사관학교의 모체인 ‘군사영어학교(軍事英語學校, Military La ngu age School)’가 1945년 12월 5일 개교하였습니다. 초대 교장은 그린 육군 중령이었으나, 개교 후 5개월 사이에 4번이나 교장이 바뀌면서 실질적인 학교 운영자는 법무장교인 리스 소령과 부교장은 원용덕 참령(소령)이었습니다. 초창기에는 감리교신학대학교(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냉천동) 건물을 활용하다가 1946년 2월 27일엔 태릉으로 옮겼습니다. 이 군사영어학교의 설치 목적 자체가 통역관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일본군, 만주군, 중국군 출신 장교 및 준사관 중에서 중등학교 이상을 졸업하고 영어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구비한 자로 제한했습니다. 주로 군사영어(Military English)와 한국사, 참모학, 화기훈련, 자동차 교육 등이 실시됐습니다. 웨스트포인트의 교육방식을 따랐으며 사관생도들에겐 통역관에 준하는 급료가 지불되었고, 일정한 교육을 거친 뒤에 졸업한 이들은 소위로 임관되었으며, 영관급 장교나 장군이 없던 당시 한국군의 특성상 빠르게 진급했습니다. 그러나 ‘군사영어학교’로는 당장 필요한 장교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1946년 4월 30일 군사영어학교를 폐교될 때까지 110명이 졸업했습니다. 그 다음 날인 1946년 5월 1일 정규의 간부양성기관인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南朝鮮 國防警備士官學校)를 개교하여 당시 남아있던 학생들을 1기생으로 전입시켜서 간부 양성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1946년 6월 14일에는 ‘조선경비사관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9월 5일 ‘육군사관학교’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 1-6기에 걸쳐 총 1254명의 군 간부를 배출하였습니다. 1951년 10월 30일 밴 플리트 장군의 도움으로 경남 진해에서 육군 본부 직할의 4년제 육군사관학교로 재창설된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육사 16기 출신 이종찬이 “육사의 뿌리는 신흥무관학교”이며, 또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이라는 정신나간 소리를 하자 육사 총동창회에서 그를 성토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김대중 정권하에서 초대 안기부장까지 지냈고, 요즘 러시아 공산당원 출신 홍명도의 흉상 이전 문제를 일으켜 부자가 합세해 윤석열 정부를 공격하고 나섰습니다. 이건 역사를 왜곡하다 못해 등나무처럼 밸밸 꼬는 식의 옳지 않는 언동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를 모르면 가만히 있기나 하든지, 먼저 말한 것처럼 육사의 뿌리를 따진다면 1945년 12월 미군정이 서대문 냉천동 감리교회 자리에 세운 ‘군사영어학교’가 될 것입니다. 해방된 한국의 치안을 담당할 자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미군정에서 과거에 군경력을 가진 일본군, 만주군, 중국군 출신을 대상으로 공모를 통해 일정한 교육을 시켜서 장교로 임관을 시켰습니다. 그때 배출된 사람들이 군번 1번을 받은 이형근 대위로부터 마지막 군번 110번을 받은 이응준 대령 등 총 110명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해방이 되면서 마지막으로 달고 있던 계급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소위, 어떤 사람은 대위, 중령, 이런 식으로 임관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15일에 최초로 국군 1연대가 지금 육사가 있는 태릉에서 창설되었으며, 5월 1일에는 육사의 전신인 "국방경비사관학교"가 역시 태릉에서 창설되었습니다. 그때 1기생으로 서종철, 김점곤 등이 입교를 하여 임관하였습니다. 그러다 전쟁통에 10기까지만 가까스로 임관을 시키고, 중단되었다가 1951년 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의 도움으로 진해에 4년제 정규 육사가 문을 열게 된 것입니다. 그때 전두환, 노태우 등이 11기 생도로 입교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신흥무관학교가 육사의 뿌리라고? 모르면 말이나 하지 않으면 밉지나 않고, 치매 걸린 노망난 늙은이 취급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또 국군의 뿌리가 왜 광복군입니까? 오늘의 육사는 분명히 미국 육사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복사해 온 것이나 다름없다. 창설 당시에 밴플리트 장군의 처남이 육군 중령으로 미 육사에 근무하고 있어서 어렵게 생도들의 학과 프로그램을 보내주어서 웨스트포인트와 유사하게 교육을 시켰으며, 병사들의 훈련도 미군정 시대에는 미군 교관들이 시켰습니다. 그리고 전투하는 방식도 미군 전투 교범에 있는 원칙과 준칙을 적용했기 때문에 국군의 뿌리가 광복군이니, 독립군이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특히 이종찬 씨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세운 "신흥무관학교"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는 모양이지만, 러시아 공산당원으로 독립군들을 살해한 홍명도를 어떤 이유에서 인지 자기 조부와 같이 독립유공자 반열에 올려 예우를 받게 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을 하지, 누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신흥무관학교가 육사의 뿌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며, 공산주의자 흉상이 육사 교정에 있게 할 수도 취지와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종찬이란 자가 독립유공자인 이회영의 후손이고, 윤석열과 절친인 이철우 교수의 부친이라고 해서 느닷없이 광복회장 자리에 임영된 것도 말이 많고, 87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그 자리를 고사했어야 했다는 여론이 지배적입니다. 公과 私는 분명히 가려야 합니다. 공도 아니고 사도 아니게 어정쩡한 태도로 방치하면 결국 우리 후손들이 고생을 하게 됩니다. 부자 모두가 불만을 품고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반기를 들었다면 임명권자에게 더이상 부담을 주지 말고 광복회장직을 사퇴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서로 이념과 사상이 다른 사람들이 안 해도 될 싸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단지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고 그동안 수많은 혜택을 누렸으면 이젠 은퇴하고 여생을 누리고 더이상 윤석열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앞 사람들이 잘못해 놓으니, 안 해도 될 싸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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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03
  • 왜 철도노조가 4년 만에 파업을 할까?
    철도노조는 사측과 지난 7월부터 6차례의 실무교섭과 1차례의 본교섭을 가졌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중앙노동위원회 조정도 결렬되자 지난 8월 28∼30일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찬성률 64.4%로 가결되어 9월 14일 오전 9시부터 18일 오전 9시까지 4일간 한시 파업에 들어 갔습니다. 2019년 11월 이후 거의 4년 만의 파업입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철도노조 파업에 따라 고속철도(KTX)와 새마을호 등 여객열차와 화물 열차를 20∼60%가량 감축 운행할 예정이어서 이용객 불편과 수출업계 화물 운송 차질이 우려됩니다. 철도노조는 공공철도 확대, 4조 2교대 전면 시행, 성실 교섭 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에스알(SR)이 운영하는 수서고속철도(SRT) 노선이 지난 1일부터 경전·전라·동해선으로 확대되고 경부선 주중 운행은 축소됐는데, 철도노조는 수서역 기반 SRT와 서울역 기반 KTX의 분리 운영을 철도 민영화 수순으로 보고 있습니다. 노조는 “2교대는 야간 이틀 연속근무의 어려움을 개선하려고 마련한 근무 체계로, 노사 합의 사항이지만 4년 넘게 전면 시행이 미뤄지고 있다”며 “철도노동자의 파업은 현장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절실한 요구에 기반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노조는 이날 정오 서울역 1호선 3번 출구에서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파업 출정식을 여는 등 서울·부산·대전·영주·호남지방본부 5개 본부별 출정식을 개최할 계획이었습니다. 국토부는 비상대책반을 백원국 제2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정부 합동 비상수송대책본부'로 확대 운영했습니다. 대체 인력을 활용해 출퇴근 시간대 광역전철과 KTX 등의 운행률을 평소의 70% 수준으로 확보하며 국민 불편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었습니다. 코레일은 파업 예고 기간 수도권 전철의 경우 평시 대비 75%(출근 시간대 90% 이상 운행, 14일 출근 시간대는 98%), KTX는 68%, 일반 열차 새마을호는 58%, 무궁화호는 63% 수준의 평시 대비 운행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화물 열차는 코레일 내부 대체 기관사를 투입해 평시 대비 27%를 유지하고, 수출입 화물과 산업 필수품 등 긴급 화물 위주로 수송에 나설 방침입니다. 파업 시 운용 인력은 필수 유지 인력 9795명과 대체 인력 4962명 등 총 14,757명으로 평시 인력의 61.2% 수준입니다. 코레일 관계자는 “파업 예고 기간에 수도권 전철은 출근 시간대 평시 대비 90% 이상 운행을 유지해 불편을 최소화할 예정이지만, 열차 지연 등이 우려되므로 사전에 확인해 달라”며 “바쁘신 고객은 버스나 항공 등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또 “파업 기간 열차 운행이 중지되면 전액 환불해 드린다”고 했으며 “예매한 열차의 운행 여부를 꼭 확인해 달라”고 덧붙였습니다. 철도노조는 2019년 11월 20일 '4조 2교대' 근무제 도입을 위한 인력 4천명 충원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갔고 같은 달 25일 노사 간 협상 타결로 파업을 철회했습니다. 당시 화물 열차 운행률은 20.7%에 불과해 물류대란이 발생했고, KTX 87.5%·일반 열차 69.6%·전철 82.4%의 운행률을 각각 기록해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었습니다. 파업 장기화 우려에 시멘트 및 건설업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경기 의왕의 오봉역에 화물 열차 4대 중 3대가 줄지어 멈춰 있습니다. 주로 철도를 이용하는 시멘트 업계의 수송에 차질이 빚어졌고, 건설현장의 공사 일정도 줄줄이 늦춰지게 되었습니다. 당장은 육로로 옮기면 되지만, 파업이 장기화되면 운송비는 늘어나고 운송 일정은 줄줄이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2016년 74일간의 철도파업 당시 시멘트 업계의 피해는 300억원을 넘었는데, 한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육송을 한다면 차가 바로 구해지는 게 아니니까 일단 이송 물량이 확 줄어 든다”고 했습니다. 건설업계도 시멘트 운송이 늦어지면 레미콘 타설에 차질을 빚는 만큼 파업 상황에 예의 주시하고 있는데, “이제 파업한 것이라서 지금은 크게 영향이 (없는데 파업이) 장기화되면 조금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서범수 의원이 코레일에서 제출받아 발표한 자료를 연도별로 보면 2019년 55일(3회), 2020년 16일(1회), 2021년 72일(2회), 2022년 19일(3회), 2023년 8일(1회)이다. 4년간 1491일 중 태업 일수가 170일이므로 8.7일에 한 번씩 태업을 한 셈입니다. 이것은 지난 4년간 철도노조는 9일에 하루 꼴로 태업을 했으며, 태업으로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열차는 모두 1038편으로, 1편당 지연 시간은 평균 44분으로 지연 운행하여 열차 이용객들에게 불편을 줬습니다. 태업 기간 환불은 380만3000건으로 집계됐으며, 이에 따른 손해액이 11억 5100만원에 달한다고 코레일은 밝혔습니다. 코레일은 도착 예상 시간보다 15분 59초를 초과할 경우로 도착 지연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철도노조의 상습적인 태업으로 열차 이용객의 수십만 시간을 날린 셈입니다. 최근 열차가 제 시간에 독착하는 꼴을 못 봤는데, 이것이 다 태업에 의한 것이었다니 참 기가 막힙니다. 시간이 곧 돈인데, 민간회사였으면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서비스 정신입니까? 황교안 전 총리는 페이스북에서 「민노총의 ‘민폐 파업’」이라는 글에서 “철도노조가 4일간의 파업에 들어 갔습니다. 코레일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 3년간 1조 2천억원이 넘는 당기 순손실을 기록할 전망입니다. 하루 이자만 해도 10억원씩이나 발생합니다. 엄청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구 노력은 커녕 자신들의 몸집을 불리기 위한 정치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하필이면 추석 직전, 열차 이동이 매우 중요한 시기를 일부러 택했습니다. 국민들은 취소된 열차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지하철을 30분씩 기다리고도 못 타기가 일쑤입니다. 철도노조가 내세우는 첫번째 파업 조건은 “서울역 기반 KTX와 수서역 기반 SRT를 합치라”는 것입니다. 이를 분리 운행하는 것은 민영화 수순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입니다. 정부는 민영화을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하는데도 억지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2016년 SRT의 출범으로 인해 고속철도의 경쟁체계가 도입되면서 서비스 개선과 요금차별화 등으로 고객에게 선택권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바람직한 것 아닙니까? 지금 파업을 하는 노조는 고객의 편의가 우선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편하게 일할까?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힘을 확대하고 행사할까?’가 우선인 것입니다. 철도노조는 2002년 11월 4일에 민노총에 가입했습니다. 이미 정치집단으로 변질된 민노총! '민노총은 해제가 답'입니다. 철도노조는 즉시 정치파업을 중단하고 국민을 위해 현장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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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6
  • 이재명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지난 21일 이재명 더불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 표결을 통해 가결됐습니다. 이로써 이재명 대표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재적 의원 298명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수행 중인 박진 외교부 장관, 수감 중인 무소속 윤관석 의원, 단식 도중 입원한 이 대표 본인을 제외한 295명 전원이 참여했습니다.이들 재석 295명 가운데 찬성 149표, 반대 136표, 기권 6표, 무효 4표로 집계됐습니다. 출석 의원 과반 이상 찬성으로, 가결 정족수를 넘기며 요건을 충족했습니다.국민의힘 110명, 그간 찬성 입장이었던 정의당 6명, 시대전환 1명, 한국의희망 1명, 여권 성향 무소속 2명이 전원 가결 대열에 합류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를 가정할 때 민주당에서 최소 29명이 찬성표를 던진 셈입니다.서울중앙지법은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기일을 오는 26일 오전 10시로 지정했습니다. 다만 이 대표의 당일 건강 상태가 변수로 작용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일정 조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습니다.이와 관련하여 한국갤럽에서 이재명 대표의 국회 체포동의안 가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정당한 수사 절차’라는 응답이 서울에서 61%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이 서울 영등포구 민주당사 앞에서 항의를 했습니다.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은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을 색출하기 위해 의원들에게 전화를 하고, 과거 발언까지 살펴보고 있으며, 친(親) 이재명계 중심의 더불당 지도부도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자당 의원들을 ‘해당(害黨) 행위자’로 간주하고 색출, 처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민주당 최고위는 지도부 공백 사태로 사실상 당 대표 권한을 행사하게 된 강성 친명 성향의 정청래 수석 최고위원이 주재했습니다. 그는 전날 체포안 가결을 “자기 당 대표를 팔아먹은 것”이라며 “용납할 수 없는 해당 행위로,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습니다. 민주당 당규를 보면 당의 지시·결정을 위반하거나 당무에 중대한 방해행위를 했을 경우 최대 출당(黜黨) 조치까지 내릴 수 있습니다. 친명계와 강성 지지층에선 이를 근거로 “배신자들을 처단하자” “정치 생명을 끊어야 한다” 같은 주장이 나왔습니다. 무기명 비밀투표로 체포안에 찬성한 의원들을 찾아낼 방법에 대해 친명계 한 당직자는 “지지자들이 알아서 색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지층은 온갖 임의 명단을 뿌려대며 “가결 의원을 출당시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비명계는 “책임져야 할 사람은 이재명”이라며 이 대표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한 비명계 의원은 “이 대표에겐 표결 직전까지 명예롭게 퇴진할 기회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비명계는 전날 친명계가 박광온 원내대표를 강제 사퇴시킨 데 대해서도 “친명 지도부도 같이 물러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재명은 이날 체포안 가결 후 처음으로 낸 입장문에서 “더 개혁적인 민주당이 돼야 한다”고 했으나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국민을 믿고 굽힘 없이 정진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사퇴를 거부한 것입니다.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 입원 중인 그는 “윤석열 정권의 폭정에 맞서 싸울 정치 집단은 민주당”이라며 “민주당이 무너지면 검찰 독재는 더 거세지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가 지난 22일 오후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에 대한 가∙부 여부를 해명하는 상황에 대해 “양심의 자유가 있는데 얘기를 해야 되는 거잖아요. 분위기가 지금, 저게 지금 정당입니까? 조폭 집단이지!”라고 말했습니다. 진 교수는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가 가결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한 것에 대해서도 “사실은 당대표가 사퇴해야 되고, 최고위원들이 사퇴해야 되는데, 정작 사퇴해야 할 사람들은 사퇴를 안 하고 애면 원내대표를 사퇴시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무슨 이른바 배신자 색출, 수박 색출, 처단 뭐 이러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지난 21일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지지자들의 반발에 대해선 “(가결이 되자) 거기(국회의사당 등)서도 울고불고하더라고요, 약간 사이비 종교집단과 같은 현상들이 나타난다”고도 했습니다. 더불당 지도부는 이날 당 소속 의원 전원에게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기각 탄원서’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일각에선 ‘가결표 색출’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의원들 중에서는 비밀투표 원칙까지 깨고 ‘부결’ 인증샷까지 올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23일 이재명은 무기한 단식 투쟁 중단을 선언했는데, 그 시점이 '고영양 수액 요법' 의혹이 보도된 지 40여분 후였기 때문에 시민사회 안팎에서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 자유대한호국단은 지난 23일 페이스북에 “전 국민이 이재명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며 링거를 투액하고 있는 이 대표의 사진을 게재했습니다. 사진에는 “너무나 투명한 재명 씨, 고영양 수액 요법(TPN) 의혹 보도 40분 만에 단식 중단 발표”라는 문구와 함께 조선일보의 'TPN' 최초 보도 시점이 오후 1시 3분이었고, 이 대표의 단식 중단 최초 속보 시점은 연합뉴스에서 오후 1시 45분이었습니다. 같은 날 내과 전문의인 박은식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는 페이스북에 “이재명 대표님, 일어나세요. 대표님께서 맞고 계신 하얀색 수액은 탄수화물·지방·단백질·전해질 심지어 비타민까지 다 들어있는 TPN으로, 그거 맞으면 아무 것도 안 먹어도 충분히 일상 생활이 가능하다”며 “그렇게 누워만 계시면 엉치에 욕창 생긴다. 건강 챙기시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언론 사진을 통해 보이는 이 대표의 링거줄이 투명한 수액이 아닌 하얀색이라는 점을 들어 '고영양 수액 요법'으로 불리는 'TPN(Total Parenteral Nutrition·인체에 필요한 하루의 영양 성분 전부를 정맥으로 공급하는 완전비경구영양)'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박 대표는 이를 “혈관 뷔폐”라고 표현했습니다. 드디어 내일 26일 오전 10시 이재명 더불당 대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구속 영장 발부권을 가진 법원에 쏠리고 있습니다. 구속영장 발부에서 고려하는 사항은 범죄의 중대성, 도피의 우려, 증거인멸의 우려 등입니다. 이재명의 혐의는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관련 제3자 106억원 뇌물, 백현동 아파트 개발 특혜(200억원 배임), 위증교사 등 3가지입니다. 앞의 두 가지만 해도 범죄의 중대성은 인정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재명은 명색이 거대 야당의 대표이므로 도주의 우려는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거짓말, 말 바꾸기, 부하 직원에 책임 전가, 위증교사 등의 명수인 이재명에게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하는 것은 굶주린 이리가 눈 앞의 양을 잡아 먹을 염려가 없다고 하는 만큼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이재명에 대한 영장 담당 유창훈 판사는 지금까지의 영장 심사 13건 중 11건에서 증거인멸 우려를 구속사유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이재명에 대한 구속 영장 범죄사실에 검찰이 이재명의 위증교사 범죄사실을 포함시킨 것은 문자 그대로 신의 한 수라는 찬사를 듣고 있습니다. 2002년 당시 이재명 변호사가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에게 분당 파크뷰 특혜 의혹을 물어보며 검사를 사칭하여 유죄를 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 이재명은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 때 이 후보가 당시 누명을 썼다고 허위 사실을 말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백현동 로비스트 김인섭의 측근인 김병량 시장 수행 비서에게 전화해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 주면 되지 뭐 등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거짓 증언을 교사한 일이 있고 검찰이 이재명의 육성이 담긴 통화 녹음까지 증거로 제시하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이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를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고 재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는 공산주의자라 할 것이므로 우리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얼마 전 국힘당 정진석 의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자가 제반 증거에 의해 공산주의자임이 판명되었음에도 어째서 그가 여태까지 판사를 해 먹고 있도록 내 버려 두는 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대법원장이 취임하면 우선 그 자부터 조사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재명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 어떻게 될까요?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 대표의 영장실질심사의 심리는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맡았습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대표가 건강 상태를 이유로 기일 연기를 요청하면 법원이 검찰 측 의견까지 확인한 뒤 심문을 미룰 가능성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영장심사에는 피의자 본인이 출석해야 합니다.영장심사는 아니지만 이미 이 대표의 요청으로 재판이 미뤄진 사례도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김동현 부장판사)는 애초 이달 15일 대장동·위례신도시 특혜 의혹 첫 재판 열 예정이었으나 이 대표 측의 요청으로 10월 6일로 연기했습니다. 다만 이 대표가 출석을 자체를 포기하고 변호인만 참여해 심문을 진행하고 서면 심사를 받는다면 예정대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한편,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평소 성향과 과거 이력을 보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구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유 판사는 현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입니다. 실제로 유 판사는 지난 2월 22일 '한동훈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유튜브 매체 '시민언론 더탐사' 강진구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고, 3월 2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습니다.아울러 6월 30일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50억 클럽' 의혹과 관련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혐의를 받는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해 “구속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이번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기각할 가능성이 70%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으며, 이재명이 오히려 구속영장 심사에서 무고를 밝히면 날개를 달 수도 있습니다.이번 이재명의 구속심사를 맞은 부장판사 유창훈은 좌파성향의 판사로 지난날 오심 판사로 악명을 떨친 자이다. 이재명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 유창훈 판사를 사법계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26일날 진행되는 이재명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이재명과 그 일당들은 죄없는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 사법처리 하려 한다고 악을 쓰며 광기를 부릴 것입니다. 이재명의 구속영장 발부를 기각시킨다면 애국 시민단체들이 유창훈을 직무 유죄로 고소를 하여 사법처리 받도록 하는 것은 물론 유창훈을 탄핵시키도록 정치권에 압력을 넣는 집단행동으로 유창훈을 사법계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 주요뉴스
    2023-09-25
  • 이재명이 단식을 하는 노림수는 뭘까?
    이재명은 지난 달 31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윤석열 정권을 향한 국민 항쟁을 시작한다”며 대통령 사죄와 국정 쇄신 등을 요구 조건으로 내걸고 ‘무기한 단식’에 들어 갔습니다. 첫째로, 이재명이 단식하는 목적은 3가지 꼼수를 노린 3대 방탄 단식입니다. 첫번째 방탄은, 취임 1주년 평가입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1년 동안 지지율 하락세로 고전했고, 사법 리스크 외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언론과 비명계의 냉정한 평가와 비판을 피하려는 단식입니다. 두번째 방탄은, 김남국 역풍입니다. 김남국 의원 제명 부결 책임은 이재명 대표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비명계 의원들도 이재명 대표의 지시가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당 내 불만이 쏟아지는 것을 막기 위한 단식입니다. 세번째 방탄은, 쌍방울 대북송금 수사입니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은 이재명 대표의 아킬레스건이 됐습니다. 구속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겁을 잔뜩 먹었습니다. 소환 조사와 영장 청구 시기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단식입니다. 3대 방탄의 결과는 체포동의안 거부, 대표 사퇴 거부입니다. 영장심사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친명계는 “단식까지한 대표에게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방어 논리를 펼칠 것입니다. 이로써 다음 총선은 사퇴나 비대위 전환 없이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치르는 게 확실해졌습니다. 덕분에 역설적으로 이번 단식의 가장 큰 수혜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상대하게 된 국민의힘이 입을 것 같습니다. 이재명이 단식 투쟁을 하자마자 더불당의 지지율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추락하자, 단식 하루 만에 문재앙이 격려 전화를 했습니다. 더불당 일각에서 이재명의 단식 명분에 의문을 표하는 상황에서 문재앙이 이재명의 손을 들어 준 것입니다. 이재명의 단식은 더불당 내의 비명계의 불만을 잠재우고, 친명계의 호들갑 속에 검찰의 수사를 피하려고 하는 간사한 자의 얕은 꼼수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이재명의 무기한 단식 선언은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한 대국민 사기극입니다. 알고보니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단식을 합니다. 출퇴근 단식은 들어 보지도 못한 일입니다. 참 기가 찹니다. 어찌 이런 인간이 세상에 있습니까? 거짓말을 죽 먹듯이 하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말종 중의 말종이 아니겠습니까? 한동훈 법무부장관도 이재명의 단식에 대해 “개인 수사 비리에 단식으로 맞서는 것”이라고 비판을 했습니다. 절도죄, 사기죄를 짓거나 소환을 받았을 때 단식하면 수사가 없어지겠습니까? 단식한다고 수사를 종료하면 앞으로 형사 사건마다 범죄자가 단식으로 맞서면 선례가 남게 될 것이므로 단호해야 합니다. 둘째로, 이죄명이 단식을 계속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요? 보통 사람이라면 5일이 지나면 병원으로 실려 나가는데 멀쩡히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출퇴근 단식에다가, 보온병에 의료용 영양식 곰탕을 몰래 먹거나, 낮에는 물과 소금만 먹는 것 같은데, 한밤 중에는 뭘 먹는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이죄명의 단식이 20일이 되었습니다. 단식을 계속하면 생명에 위협이 될 것인데, 병원에 입원을 했어도 단식을 계속한다고 합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단식 중단을 외쳐도 이죄명은 단식을 중단할 생각이 없습니다. 왜 이죄명은 단식을 고집할까요? 이죄명이 혹 죽게 된다면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첫째,감옥에서 30년 이상 구속될 이유가 없어집니다. 둘째,본인의 죽음으로 선거 부정에 따른 선거 비용 400억원 이상 배상 책임이 사라질 것입니다. 셋째,이죄명의 죽음은 대장동 등 각종 사건 수사의 동력을 상실할 것입니다. 이죄명은 자신이 죽음으로써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혹 이죄명이 사망을 한다고 해도 죗값은 반드시 치러야 할 것입니다. 과연 이죄명은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것일까요? 내가 보기에는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이죄명의 단식 중단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이죄명이 사망하기를 바라는 나쁜 놈(?)들이 많을 것입니다. 앞으로 단식 쑈를 벌리는 정치인의 모습을 더 이상 보여주지 말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가까운 대형병원은 다 놔 두고 왜 녹색병원으로 갔을까요? 이재명의 단식은 19일만에 어제 오전 6시 55분쯤 건강 악화를 이유로 119구급대와 인근에서 대기 중이던 의료진을 호출하여 단식 장소인 여의도에서 찻길로 20km 이상 떨어진 중량구 면목동에 위치한 ‘녹색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여의도에서 녹색병원으로 가는 길에는 서울성모병원, 순천향대병원, 한양대병원 등 대형 병원들이 많이 있는데, 왜 녹색병원으로 갔을까요? 이재명이 처음부터 녹색병원으로 안 가고 왜 성모병원으로 갔느냐? 하면, 119를 불렀으니 출동소방관은 당연히 관내 권역 응급의료센터인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갔더니 ‘별 거 아니라’고 입원이 안 되었습니다. 사람이 굶으면 혈액검사에서 혈액속에 ‘케톤’이 증가하는 케톤산혈증이 나오는데, 검사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녹색병원으로 가려면 사설 구급차를 사용하거나. 병원의 구급차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호흡곤란이 있다고 하면서 성모병원에서 녹색병원으로 이송하는 장면을 보면 산소마스크가 아니라 코로나때 많이 사용했던 KF94를 쓰고 있습니다. 당연히 저산소증을 보였으면 병원에서 산소마스크를 채워서 보냈을 것입니다. 이재명이 단식을 해도 검찰은 영장 청구를 하겠다고 하니 단식을 중단하고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도망쳐 드러 누울려고 했는데, 여의도 의사가 말하기를 “정신 멀쩡하고, 혈액 검사 이상 없고, 환자가 아니니까 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민노총 전교조 합작병원인 녹색병원으로 간 것입니다. 이재명의 단식 생쏘 다 들통난 것입니다. 녹색병원은 민간 종합병원으로 운동권 인사들이 운영 재단에 대거 포진한 ‘운동권 병원’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녹색병원 발전위원회 공동위원장에는 ‘박원순을 기억하는 사람들’ 대표인 송경용 성공회 신부와 민노총 양경수 위원장입니다. 이 병원을 운영하는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의 이사장은 양길승 전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입니다. 상임이사는 광우병 시위와 오염수 반대 집회 등 각종 집회를 주도해 온 진보연대 박석운 대표입니다. 홍보대사에는 배우 권해효입니다. 민노총, 전교조의 아지트가 이번에 들통이 났습니다. 좌파 매체 ‘서울의 소리’ 대표 백은종이 2020년 12월 10일 ‘공수처 출범 및 윤석열 탄핵’을 주장하며 단식을 끝내고 입원한 병원도 바로 이 곳입니다. 이 병원에서는 지난 2017~2019년 장기간 굴뚝 농성을 벌였던 파인텍 노동자들, 2018년 40일 넘게 단식 농성을 벌인 설조 스님, 2019년 국회 앞에서 고공 단식농성을 하던 형제복지원 피해자,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20일 넘게 단식하던 정의당 강은미 의원, 지난 7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 앞에서 단식하던 민주당 우원식 의원도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녹색 병원은 분명 세금 탈루부터 불법∙비리 덩어리일 듯 싶습니다. 세무조사와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할 곳입니다. 이재명이 단식 장기화에 위험 지경이라고 하는데 부인 김혜경은 왜 안 올까요? 강제 입원 시키려면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더불당은 여당 대표가 안 온다고 탓합니다. 12일을 단식해도 죽지 않는다고 큰소리 친 사람이, 명분없는 단식. 차라리 출구가 필요하다고 솔직해 보라!
    • 주요뉴스
    2023-09-19
  • 전라도 시인 정재학의 ‘나라빚을 줄이려면, 민주당부터 죽여라!’
    나라 빚이 마침내 1,134조 원에 이르렀다. 이제 1분당 1억씩 빚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무심코 보낸 오늘 하루, 나라 빚이 1,440억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두려운 일이다. 1억이란 돈은 우리 같은 서민들에겐 큰 돈이다. 한 달 백만원씩 저축해도 무려 8년이 걸린다. 그런 돈 1억원이 1분이면 순전히 이자로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나라 빚 1,134조 원이란, 달러로 1조 달러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 수출 100억 달라를 달성하면서 '수출의 날'을 기념하게 되었다. 단 1달러가 아쉬워 머리카락까지 모아서 팔던 우리가, 외환보유고가 아니라 빚이 무려 1조 달러가 되었다. 홍준표는 문재인 통치시대를 아주 간략하게 설명한 바 있다. "우리가 70년 동안 이룩한 것을 문재인은 단 4년 만에 모든 것을 허물어 놓았다." 고리원전 2호기도 드디어 멈췄다는 소식이다. 탈원전의 마지막 결과다. 문재인이 벌여놓은 그 결과가 윤석열 시대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몸부림쳐도, 문재인이 남긴 정책의 결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나라 경영 어려운 것이 이와 같을진대, 심지어 1조 달러에 이르는 나라 빚은 어찌할 것인가? 쓰지 않고 가만 있어도 하루에 1,440억씩 늘어나는 빚. 이것이 돈으로 민심을 사고, 돈으로 표를 사고, 돈으로 무능을 덮고자 한 포퓰리즘 정책의 결말이다. 여기에 코로나 지원금은 불길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 국민 1인당 몇십만 원씩 주던 그 돈을 받고, 고기 먹고 술 마시던 순간이 지나고, 우리는 이제 거지가 되었다. 세계 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 수출은 부진하고, 2달 연속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외환보유고가 줄어 들고, 경제학자들은 또 다시 제2의 IMF 경제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민주당 이놈들은 국민 1인당 1000만원 기본대출을 주장하고 있다. 양곡관리법으로 해마다 1조원을 더 쓰고, 기초연금을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늘리고, 노란봉투법으로 노조의 난(亂)을 지원해 기업을 죽이고, 심지어 난방비 지원까지~ 환장할 짓만 골라서 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공염불에 5년을 허비하며, 국가 통계마저 조작하여 국민을 속이던 그들이 민심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포퓰리즘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주면 통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반역적 계산이다. 이재명이 주도하고자 하는, 1000만원을 20년 낮은 이자로 빌려주는 것이 올바른 정책일 것인가? 나라 빚 1,134조를 만들어 놓은 자들이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돈을 주고 벗어나자? 필자(筆者)는 이들을 모조리 잡아서 한 구덩이에 넣고 파묻어버렸으면 한다. 민주당이라는 정당 전체가 정상을 상실한 무뇌아들, 뇌가 없는 자들이다. 살아서는 나라를 망치고, 경제를 망치고 북한 독재자를 위해 나라의 부(富)를 갖다 바치고, 자존(自存)을 바치고, 굴종의 세월을 보낸 민주당이다. 죽어야 그칠 민주당의 나라 망치기다. 그러므로 나라 빚을 줄이고자 한다면, 민주당부터 죽여야 한다. 나라 빚을 줄이는데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야 한다면, 그 실상을 '국민의힘'의 이름으로 공개하라. 개인이 아니라, 100만 당원의 이름으로 민주당 비리와 정책적 무능을 공개하라. 문재인이 만든 모든 포퓰리즘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나라 빚 줄이기에 집중하라. 나라 빚을 200조만 줄여다오. 나라 빚이 900조로 줄어든다면, 국민들은 두 손 높이 들어 '국민의힘'을 지지할 것이다. 사법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언론개혁, 연금개혁 등이 성공하는 것도, 나라 빚 줄이기가 그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안보도 급하고 국방도 급하다. 경제는 더욱 급하다. 사법 수복과 언론 수복은 진행되고 있는 시급한 과제다. 이 모든 것이 민주당으로부터 시작된 비극이다. 민주당의 죄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자리를 만들어라. '민주당 죄상 알리기' 전국 순회를 하라. 국민들은 민주당의 죄를 모른다. 그러므로 공개하고 처형하는 것이 민주당 박멸을 위한 답(答)이다. 기가 막혀 하늘 보기도 두렵다. 민주당이라, 5000년을 이어온 대한민국에 어찌 이런 개 같은 정당이 있을 수 있는가!!! 국민들이여! 이 글을 보고 빨리 깨어나라. 국민들의 세금이 줄줄이 새고 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바로 당신이다.
    • 주요뉴스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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