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2(월)
 

왜 진보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까?

 

‘진보’라고 불리는 단체들은 국가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릅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님을 위한 행진곡’의 노랫 가사는 진보진영 원로이자 상징이었던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백기완 소장의 시 ‘묏비나리’에 곡을 붙인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백기완은 어떤 인물일까요?


백기완은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아버지 백홍렬(白弘烈)과 어머니 홍억재 사이에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 났습니다. 


백기완의 조부인 백태주(白台周)는 3.1운동 당시에도 수천장의 태극기를 제작하여 은율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는 등 민족운동에 앞장 섰습니다. 


백기완은 백범 김구 선생과도 깊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백범 김구는 1898년 치하포 사건으로 인천 감리서에 수감되었다가 탈옥했었는데, 황해도 은율 땅을 몰래 지났을 때 백기완의 조부 백태주가 백범을 자신의 집으로 피신시키고 극진히 돌봐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해방 후 그의 부친 백홍렬이 그를 데리고 서울로 가서 백범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는 백범을 따르게 됩니다. 


백범 또한 그를 좋아해서 그가 즐겨 읊던 한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를 휘호로 써서 주기도 하고, 중학교까지 학비를 대주리라 약속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백기완은 백범 김구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백기완은 재야운동가로 1960년대 한일협정 반대 투쟁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습니다. 그 후 3선 개헌반대와 유신철폐 등 민주화운동에 많은 활동을 했으며, 1974년 유신헌법 철폐 100만인 선언 운동을 주도하여 긴급조치 1호 위반혐의로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75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열린 제13대 대통령선거 당시 재야운동권에 독자 후보로 추대돼 선거에 입후보 했지만 야권후보 단일화와 군부독재 종식을 촉구하면서 중도사퇴했습니다. 5년 뒤인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재야 운동권의 독자 후보로 추대돼 출마했지만 낙선했습니다. 


지난 2020년 1월 폐렴 증상으로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해 투병생활을 이어가다 2021년 2월 15일 오전 향년 88세로 별세했습니다.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는 어떤 뜻일까요? 


‘묏비나리’는 1979년 YWCA 위장결혼식 사건의 주모자로 수감된 백기완이 서울 서대문구치소에서 쓴 15장의 장편시입니다. 


‘묏비나리’의 ‘묏’는 묘지, 산소(봉분)를 뜻하며, ‘비나리’는 축원, 기도, 굿판을 뜻합니다. 즉 ‘묏비나리’는 ‘죽음의 굿판’이라는 뜻입니다. ‘묏비나리’는 죽음을 미화하고, 선동하고, 군대와 남한 정권을 비하하며, ‘죽음을 불사하고 투쟁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묏비나리’라는 시에 나오는 주요 용어를 살펴 보면, ‘목숨을 걸어라’, ‘죽음을 두려워 마라’, ‘죽음, 들개, 살점, 해골바가지’, ‘죽이려는 자’, ‘모진 채찍’, ‘꿈틀대다.’, ‘치켜뜬 눈’, ‘군바리’, ‘꼬꾸라지고’, ‘분단의 벽’, ‘제국의 불야성’, ‘해방’,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산자여 따르라’, ‘사람을 산채로 키워서 신경과 경락까지 뜯어 먹는 건 바로 이 세상 남은 마지막 짐승 가진 자들의 짓이라⋯’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를 1992년 간첩혐의로 수감되었던 황석영이 개사를 해서 1982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사했습니다. 


황석영이가 광주에서 만든 연극단체 ‘광대’는 종북 단체의 선전선동 단체가 되었습니다. 연극단체 ‘광대’에서 활동하던 김종률은 전남대 출신으로 제3회 MBC대학가요제에서 ‘영랑과 강진’을 불려서 은상을 수상한 경력도 있습니다. 그가 1982년에 舊 소련의 T34 탱크부대의 군가를 표절하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했습니다.  


1980년에 사망한 고(故) 윤상원 씨와 1978년에 사망한 故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을 1982년에 했습니다. 이 결혼식에서 ‘윤상원을 기린다’고 하면서 5·18 민주화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1970년대 말부터 광주의 극회 광대에서 활동하던 문화 운동 관련자들이 모여 지하방송 ‘자유 광주의 소리’를 창설하기로 하고 첫 작품으로 만든 음악극 「넋풀이 굿(빛의 결혼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넋풀이 굿」은 박기순과 윤상원의 영혼결혼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고인이 된 두 남녀가 저승으로 가면서 ‘산 자’에게 남기는 마지막 노래로 배치되어 있으며, 이후 민중가요의 가장 대표적인 양식으로 자리매김 되었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 이 노래는 민주화운동 집회를 시작할 때 민주화운동의 열사들에게 바치는 묵념과 함께 불리는 노래가 될 정도로 한국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5월 18일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이 노래는 기념식장에서 공식적으로 제창되었으나 2010년과 2013년 국가보훈처가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빼려다 유족들의 반대에 부딪치는 사건이 발생했고, 2013년 6월 국회에서 이 노래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공식 추모곡으로 지정하자는 결의안이 통과되었으며, 제19대 문재앙때 2017년 5월 12일 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것을 국가보훈처에 지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알려졌으나, 표준어 규정에 따라 최근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부릅니다. 종북 빨치산에서 전사를 양성하는데 광주에 양성된 남민전 전사 3명이 윤한봉, 김상윤, 김남주입니다.


김남주는 공작금으로 광주에 ‘녹두서점’을 개업했는데, 이 서점이 종북단체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파리코뮌 강의를 하면서 종북 전사를 양성했습니다. 여기서 양성된 남민전 전사가 윤상원∙이학영∙박석률 등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처음 만들어질 때 영혼결혼식의 신랑 윤상원은 광주지역에서 활동하던 남민전 전사입니다. 그는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6개월 만에 퇴사하고 1978년 10월 아세아자동차 바로 옆 공장에 위장 취업을 했으며, 1980년 4월 김대중 지원단체의 사무국장이 되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폭동과 광주시민 선동에 관여하고,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새벽 2시에 칼에 찔려 죽은 뒤 불에 태워졌습니다.(간첩의 소행으로 의심)


영혼 결혼식의 신부 박기순은 역시 종북 남민전의 여전사이고, 1978년 전남대 3학년때 좌빨 활동으로 퇴학당하고, 아세아자동차 옆 한남 플라스틱 공장에 위장 취업했으며, 1978년 12월 26일 오빠 박형선의 집에서 자다가 연탄가스로 사망했습니다.


종북 남민전의 윤한봉이 5.18 재단 설립자인데, 그의 여동생이 박기순의 오빠 박형선의 부인입니다. 윤한봉은 518 재단의 설립자가 되어 518폭동 훨씬 전 1978년 12월 26일에 연탄가스로 죽은 자기 여동생의 시누를 1급 518 유공자로 만들었습니다.


1989년 북조선의 김일성이 황석영과 윤이상을 북조선으로 입북시키고, 5∙18을 이용하여 대남 선전선동에 쓸 영화제작을 하라고 했습니다.


황석영이가 시나리오를 쓰고 윤이상이가 영화음악을 만들어서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김일성에게 바쳤습니다. 이 영화의 주제곡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고, 이 영화에서 ‘님’은 ‘김일성’을 뜻합니다. 그래서 북조선과 종북 단체에게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김일성에 대한 충성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백기완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향해, 처절하게 절규하며 죽음의 춤판에 앞장서라는 요구는 무엇을 위한 민중 투쟁이며, 누구를 위한 해방이고, 누구를 위한 죽음입니까?


이러한 배경을 가진 노래를 목청껏 합창하는 우파 정치인들은 대가리가 비었거나 우파 행세하는 골수 좌파들입니다. 


왜 김대중의 종북 좌파들과 김영삼의 민주팔이 좌파들이 국가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이유를 아시겠죠?


강석종 칼럼니스트 기자 newswalk@naver.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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