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3(토)
 

1965년 어느 날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마키키 街에서 한 노인이 허리를 굽히고 길바닥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노인은 길에 떨어진 깡통, 철사, 고철 덩어리 등을 눈에 띠는 대로 주워서 비닐 가방에 넣고 있었다. 집에 있던 그의 부인이 비닐 가방을 뺏으려고 하자 노인은 가방을 정원 한 귀퉁이로 던져 버렸다. 그곳에는 이미 주워 모은 쇠붙이가 가득 들은 양동이가 있었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尤南 李承晩. 그는 異域萬里에서 하루빨리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旅費를 마련한다고 길거리에서 쇠붙이를 줍기까지 했다. 그러나 尤南은 끝내 귀국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65. 7. 19일 하와이 마우나라니 요양원에서 91세로 逝去하고 말았다.


韓民族 5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들에게 ‘自由’를 가져다 준 李承晩. 그 자유는 바로 市場經濟를 導入하여 私有財産을 헌법에 보장함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내 것이 없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이 위대한 영웅을 우리는 1960년 4. 19이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대한민국이 大韓民國답게 유지 발전할 수 있도록 든든한 뿌리 역할을 한 지도자를 우리는 한낱 독재자로 罵倒하여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던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李承晩에 관한 영화를 본 것은 어릴 적에 ‘독립협회와 청년 李承晩’을 보고, 이번에 ‘건국전쟁’을 본 것이 두 번째이다. 무려 60여년만이다. 영화 ‘건국전쟁’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뿌리를 다시 찾는 영화이며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바를 밝혀주는 등대와 같은 영화이다.


영화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다.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가 아니다. 꾸밈도 없고 거짓도 없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인 기록물들을 다시 살려내어 우리들의 심장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고 1948년 8월 15일 건국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던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난 1946년 대구 폭동 사건과 1948년 제주 4.3 폭동 사건, 金九의 공산주의에 대한 無知와 말 바꾸기 등 ‘건국 전쟁’은 너무나 熾烈했다. 아! 이승만이 아니었으면 어찌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태어날 수 있었겠는가!


세계 정세와 일본의 움직임 그리고 공산주의의 실체를 한 눈에 꿰뚫어 보고 있었던 이승만은 미국의 정치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으니, 외교의 천재 이승만은 분명 하늘이 낸 인물임에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70년 번영은 이승만이 이루어낸 韓美同盟의 덕분이 아닌가! 이를 否定하는 자는 共産主義者이거나 無識한 者일 것이다!


몇 년 전 어느 외국인이 한국인의 결점 중 하나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매우 부족하다’고 했다. 이 지적에 우리는 얼마만큼 반박할 수 있을까? 


우리가 외국 여행을 마음대로 다니고, 살고 싶은 곳에 가서 살고, 만들고 싶은 同好會 마음대로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껏 연애하고⋯ 이게 모두 이승만의 한미동맹 덕분이 아닌가! 그런데도 대한민국 어디에 제대로 된 이승만의 동상 하나 세워져 있는가! 참으로 背恩忘德한 국민이다.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러고도 잘 되기를 바란다면 이건 분명 미친 나라이다.


“백성이 깨이지 못하면 나라를 보전할 수 없다.” 이승만의 名著 ‘독립정신’에 나오는 말이다.


오늘도 북한의 김정은 집단은 미사일을 쏘아대며 狂氣를 멈추지 않고 있다. 聖 어거스틴은 ‘正義와 국민을 저버린 국가란 거대한 强盜集團이다.’라고 하였다. 어거스틴의 말대로 북한은 거대한 强盜集團일 뿐이다. 우리가 북한에 태어나지 않고 이 땅에 태어난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이 있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4.19 직후 이승만은 병원을 찾아 부상 당한 학생들을 위로하였다. “각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은 젊습니다.” “미안하네. 하지만 잘 했어. 不義를 보고 참는 건 젊은이가 아니야. 젊은이는 정신이 죽으면 안 돼. 암, 안 되고 말고!”


영화가 끝날 무렵이 되자 같이 영화를 보던 아내와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라고 해야 할까. 죄책감이라고 해야 할까. 建國戰爭을 승리로 이끈 이 위대한 지도자의 발자취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나 자신에 대한 분노라고 해야 할까?


‘竹齋’라는 애국시민의 관람 후기였습니다. 다음은 어느 동료 시민의 건국 전쟁 관람 후기를 소개하겠습니다.


'건국전쟁'을 관람했다. 일제 치하에서 수많은 열사들이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솔직히 이분들이 대한민국독립에 기여했을까?


물론 한국인들이 독립투쟁을 했다는 걸 세계 만방에 인식시킨 것을 사실이나 냉정하게 말해서 그건 아니다. 


이승만이 당시로부터 40년전에 예측한 대로 미일전쟁이 발발했고, 미국이 일본을 원자폭탄 두 발로 박살 내서 부수적으로 얻게 된 독립이다. 


여기서 이승만은 외교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인식했다. 1875년생 이승만은 조지워싱턴대, 하버드 대학원, 프린스턴 대학원 등 최고의 명문대에서 학위를 따며 미국 엘리트들과 인맥을 넓힘으로써 조선족 유일무이한 지식인이고, 국제적인 인물이며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애국자로 등장했다.


미국에 의해 해방을 맞이하자 중국서 주로 활동한 김구가 건국을 준비했으나 국제감각 없이 통일 정부를 주창하며 북한을 방문해서 북한의 음모에 이용만 당하고 있는 위험한 시기에 이승만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관철시킨다.


그리고 대통령으로 토지개혁을 단행해 국민들의 의식을 전환시킴으로써 나라의 기틀을 잡는다. 


여기서 좌파들은 김구는 통일국가, 미국과 이승만을 분단국가 주범으로 비난한다. 좌파들의 소원대로 김구의 통일국가가 됐다면 지금 우리는 김일성 3대 치하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당시 미국은 태평양전쟁도 벅차서 소련에게 한반도 점령을 맡기려고 했지만 소련의 흉계를 간파한 전략가들에 의해 38선 구상으로 그나마 남한을 구출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어째든 남북이 각각 독립 정부를 세웠으나 미군이 철수한 상태에서 북한은 소련의 지원하에 6.25 동란을 일으키고 미국 등 연합군이 참전했으나 중공군이 개입하자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지니 미국은 휴전을 통해 전쟁에서 탈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휴전을 해봐야 북한의 남침은 반복되고 적화는 시간문제다.

휴전협상에서 한국의 의견은 묵살됐다.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주장했다. 이게 먹힐 리가 없자, 반공포로들을 전격 석방했다. 명분은 제네바협약이고, 반공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정체성의 표방이며 자신의 발언권 확보다.


이로써 미국은 이승만을 달래야 할 필요를 느끼고 한국이 요구한 한미상호방위조약체결과 무상원조를 약속하게 된다. 백척간두의 중대한 시기에 넓은 인맥과 한반도 주변 정세를 정확히 꿰뚫었던 이승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로써 미국의 무상원조와 안보 우산으로 대한민국 번영의 토대가 마련됐고, 원자력육성을 위해 미국에 인재를 파견하는 등 지금의 에너지 강국이 되도록 했다.


건국 대통령, 국부 이승만을 이 땅의 좌파들은 그가 토대를 만든 번영국가에 살면서 그를 친일파, 독재자, 살인자로 짓밟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 땅의 좌빨들을 섬멸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번영은 커녕 패망될 수 있음에 소름이 돋는다.


2.1일 개봉된 '건국 전쟁'과 1.10일 개봉된 '길 위의 김대중'이 좌우 진영 스크린 전쟁을 벌이고 있으나 누적 관객 수가 43만명 대 12만명으로 '건국과 길고양이 전쟁'은 이미 끝났다.(제가 추가로 덧붙여서 말하면 ‘건국 전쟁’의 지난 2월 21일 기준으로 누적 관객 수 8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강석종 뉴스워크 칼럼니스트 기자 newswalk@naver.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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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료 시민’의 건국 전쟁 관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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