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꽂꽂한 모습도 생기있던 시선도 보이지 않는다. 올해 여든넷이 된 그는, 젊은 날 28세의 나이에 아내를 만나 56년을 함께 살았다. 외유내강한 부부의 삶이었다. 그는 밖에서 물건을 떼어오고, 거래처를 만나고, 사람을 사귀었다. 아내는 소형 가구점의 안살림을 도맡았다. 경리, 접객, 상담, 심지어는 고객의 마음까지도 살폈다.
부부는 1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은 굴지의 대기업 임원이 되었고, 장녀는 결혼과 이혼을 거쳐 홀로 살며, 차녀는 대학원까지 공부했지만 결혼을 미루다 어느새 미혼으로 늙어가고 있다.
그는 말한다. “아내가 내 인생의 반 이상이었네. 내가 아닌 우리였고, 나보다 그녀가 먼저였어.”
그런 아내가, 이제는 없다.
병석에 잠기던 그날부터 그의 어깨는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장례를 치른 뒤, 그는 모임도 끊고 외출도 줄였다. “이제 나도 끝났어.” 그는 조용히 말했지만, 그 말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았다.
노년, 이별은 반드시 온다
노년은 하루하루가 이별의 연속이다. 젊은 날의 건강과도, 직업과도, 친구와도,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도 언젠가는 작별해야 한다. 문제는 그 ‘이별’을 준비하지 못한 채 맞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친구는 아내와의 이별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매일 함께하던 아내가 당연하던 사람이었다. 따뜻한 밥, 마주 앉은 저녁, 잠들기 전의 한 마디 인사까지. 그는 그렇게 ‘당연한 사랑’에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이별도 준비가 필요하다
이별을 슬퍼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슬퍼하되, 그 슬픔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남겨진 이에게는 남은 인생이 있다.
그 인생은 혼자가 아니라, 또 다른 인연과 또 다른 책임으로 채워져 있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 노년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한 이별연습’이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반려자 없이도 하루를 잘 보내는 습관.
혼자 밥을 짓고, 혼자 산책하고, 혼자 책을 읽는 연습.
자녀와는 적당한 거리에서, 친구와는 자주 웃으며 지낼 수 있는 마음.
죽음 이후의 절차도 미리 정리하고, 유언도 준비하는 용기.
무엇보다, 나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자기포기’의 훈련.
이런 연습이 쌓이면, 마지막 순간에 남겨진 이에게도 미안하지 않고, 떠나는 나 자신에게도 덜 억울할 것이다.
"남은 인생은 오히려 내 차례입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이제 당신 차례야. 평생을 아내 위해 살아왔으니, 남은 인생은 당신 몫이야. 아내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줘야 해.”
그 말에 친구는 오래도록 눈을 감고 있었다. 눈꺼풀 뒤로 아내가 웃고 있었을까.
우리 모두 언젠가는 이별한다. 하지만 이별을 준비하는 자는, 이별 속에서도 자유롭다.
나는 오늘도 내 삶에서 조금씩, 이별연습을 한다.
당신도 이제 시작해 보면 어떨까
2025.8.6
海岩 강언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