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 중심 한국 커피 문화에 경고, 교육·체험 기반 커피 도시 비전 제시
부산이 ‘커피 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점검해야 할 핵심은 소비량이 아니라 시민의 인식 수준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제커피박물관 이혜영 관장은 14일 뉴스워크와의 인터뷰에서 “커피 도시화는 커피를 얼마나 많이 마시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커피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의 문제”라며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지식과 사고의 깊이가 도시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장은 현재 한국 사회의 커피 문화를 ‘소비는 과잉, 인식은 정체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은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지만, 커피를 대하는 태도와 이해 수준은 그에 비례하지 못하고 있다”며 “소비량과 인식이 함께 성장할 때 비로소 커피 도시라는 이름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커피 박물관과 교육,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커피 지식이 보편화되고 일상화될 때 도시의 커피 문화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에 위치한 국제커피박물관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커피 문화 확산의 거점 역할을 해오고 있다. 현재까지 누적 관람객은 약 10만 명. 이혜영 관장은 “단순 관람객들은 한 개인이 이렇게 방대한 커피 기구를 수집했다는 사실에 먼저 놀란다”며 “그러나 교육과 체험을 병행한 관람객들은 커피의 기본 원리와 역사, 추출 방식의 다양성을 이해하며 커피 세계의 깊이에 감탄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타 시·도 방문객과 외국인 관광객들 역시 “부산에 이처럼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커피 박물관이 있다는 점에 큰 인상을 받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제커피박물관의 가장 큰 경쟁력은 학생 체험 프로그램과 원데이 클래스다. 단순히 보고 지나가는 전시가 아니라, 도슨트 설명을 통해 커피 기구의 역사와 시대별 추출 방식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 관장은 “커피 추출 기구들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박물관의 핵심 강점”이라며 “멜리타 드리퍼가 탄생한 배경과 필터 개발의 계기, 기념일이나 선물용으로 제작된 우림식 커피 기구, 세계에서 가장 큰 사이폰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관람객들이 경이로움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커피를 직접 마실 수 없는 학생들의 반응이다. 관람과 체험 이후 학생들은 커피 기구와 추출 과정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질문을 쏟아낸다. 로스팅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와 다양한 추출 기구 시연 장면에서는 평소 집중력이 낮던 학생들조차 숨을 죽이고 관찰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이 관장은 “커피 체험이 학습 효과와 몰입감을 동시에 끌어내는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혜영 관장은 커피를 단순한 기호식품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커피는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마실수록 훨씬 더 유익하고 즐거운 음료”라며 “커피는 문화이자 지식이고, 취미와 여가, 정서적 안정까지 아우르는 삶의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커피박물관은 일반적인 커피 전시 공간과 비교해 수십 배에 달하는 커피 기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기구들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유리와 도자기 등 파손 위험이 큰 소재의 기구를 대거 보유하고 있음에도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학생부터 성인까지 전 세대가 커피 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 관장은 한국 사회에서 왜곡돼 사용되고 있는 커피 관련 용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카페(café)는 원래 프랑스어로 커피를 뜻하지만, 한국에서는 술집이나 음식점, 스터디카페·키즈카페 등 모든 업종에 붙으며 본래 의미가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바리스타 역시 이탈리아어로 ‘바에서 일하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국내에서는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을 책임지는 전문가라는 과도한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내 바리스타 자격증은 머신 추출과 메뉴 제조 중심의 기능 교육 자격에 가깝지만, 필요 이상으로 격상돼 인식되고 있다”며 “국제적으로도 국가 공인 커피 자격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과 한국의 커피 문화 차이에 대한 분석도 이어졌다. 일본이 조용히 천천히 음미하는 문화라면, 한국은 빠르고 다양하게 소비하는 스피드형 문화가 특징이다. 일본은 1인당 소비량은 낮지만 커피가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반면, 한국은 브랜드 카페 중심의 시장 구조와 트렌드 위주의 소비가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이 관장은 “한국은 커피를 마신다기보다 공간을 소비하는 문화에 가깝다”며 “부산이 커피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속도보다 깊이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혜영 관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도시의 품격을 드러내는 문화 자산”이라며 “부산이 진정한 커피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커피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와 교육이 먼저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