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2(월)
 

▶한적한 여행이 주는 멋과 맛

 

일요일 아침, 청명한 가을 하늘이 보였다.

그곳에 여름의 강렬한 햇볕이 자리했다.

 

휴일의 여유로운 시간,

야외로 가기로 한 날이다.

 

함께하는 이는 차를 가지고 오는 권대근 교수,
우리 동네 사는 명리학자 고죽 이종민 선생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삼랑진의 호젓하고 깔끔한 맛 국수를 먹으러 간다.

 

삼랑진 검세리.

그곳에는 조선시대 영남대로의 요충지였던 작원관지를 잠시 들렀다.

작원관에서 황산역(물금)까지 낙동강을 따라 이어진다.
그곳 황산역에서 휴산역(동래구 수안)까지를 황산도라고 불렀다.

 

작원관지를 들리고,
만어 국수로 들어섰다.

깔끔한 실내에 손님들이 만족감을 드러냈다.

 

휴일 아침의 고요함을

조용히 가로질러 내놓은 국수

셋이서 말이 필요 없이 후루룩,

 

이렇게 맛깔난 국수를 먹고
느긋한 이야기를 꿈꿨으나,
휴일 점심 시간이 그런 여유를 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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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문학평론가 권대근 교수의 시 몇 수를 여기에 띄운다.

 

▶권대근 작가의 시 세계 

와인과 여인


어느 한 곳에 눈이 밟히는 것은

나팔꽃이 아침한테 눈을 떠라고

다급히 깨우는 일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무겁지 않은 것은

영혼의 울림이 퍼지고 어디론가로 번져가서

화선지 물감처럼 그 속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마음이 다른 마음에 꽂히는 것은

굽이치는 파도가 암초를 뚫고

아스라이 여인의 향내로 질주하는 일이다

 

정녕 와인 한 잔으로 가슴이 흔들리는 것은

처마 끝의 작은 물 방울방울이

겹겹이 쌓이는 차디찬 자신의 몸 위로

그리움을 날리고 싶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뜨거움의 결이 쌓일 때마다 나는

저온창고에 오래 보관된 와인을 마신다



온천천의 속삭임


물의 여신이 푸르고 하얀 미소 날리며 질주를 한다.

냇가의 마른 돌들은 전부 버선발

반가운 여인 앞에 가슴을 열어젖히니

생명의 숨소리전진의 고동소리

힘찬 물살로 화답하구나

 

고마리 초록빛 물감 드리우고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가득 채운다

겨우내 잠든 고운 님 찾아

하얀 꿈속 생명의 언어들 흔들어 깨우고자

번지 없는 바람 타고 풍랑이 되리

 

목마른 수초들은

녹슨 악기를 닦아내며 촉촉한 그대 손길 기다리니

감미로운 선율로 거침없이 달려 가구나

낮은 자리로 천 년을 마르지 않을

미풍에도 속삭이는 온천천의 악기들이여

 

분홍색 흰색 꽃물결 이루며

흐름으로 존재를 증명하려는 너의 몸짓

움틀거리고 질주하면서도

바다를 향한 마음은 송죽 같고

한결같음은 바위 같구나



담쟁이 비가


막다른 골목에

주둥이가 막힌 수십 개의 비닐봉지가

심한 가슴앓이를 하며

닫힌 출구를 찾아 절규하고 있다.

 

숨이 막힐 듯 가로지른 담장 위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햇살 받아 빛나는데

여윈 담쟁이 넝쿨이

애타는 갈증으로 블록을 휘어 넘고 있다

 

서로간의 언어가 차단된 공간

한기가 피어오르고

새들은 절규와 갈증에 무심하듯

잔디를 뜯고 있다

 

세속에 밀리고 밀려왔나.

불현 듯 그리움을 찾은 빛살이

상처투성이의 마음을 씻다가 돌아서면

나는 힘없이 야윈 몸을 흔들어댄다


나팔꽃


삶이 난무하다 지치면

밤은 먹물 속에 있지.

과거로만 이어진 꿈의 육교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푸른 형관등 빛으로 밝힌다.

 

불타던 석양의 가녀린 빛과

나그네의 숨결이 묻힌

너의 푸른 옷깃에

무심을 군것질하는 세월의 꼬리표

또 하나 달아둔다.

 

땀과 눈물로 피고 지는 낮과 밤

뜨거운 바람소리만

슬픈 메아리가 멈추고 간

고요의 심해에서

울타리를 타고 넘는 너의 젖은 꽃등에

내 마른 입술을 포갠다


 

섬 엉컹퀴


보랏빛

털북숭이

고운 바람

같이 노네

 

이제나

저제나

푸른 물빛

걷어차고

 

오실 임

기다리느라

키만 훌쩍

자랐구나

 


흙 털기

 

나물줄기는 흙 덕분으로 척박한 땅에

잔뿌리를 아래로 뻗어

물기를 흡수한다

 

굵고 긴 뿌리는 수직으로

잘고 가는 뿌리는

수평으로 나아간다

 

흙에 묻은 물기는

사람 신체의 살과 같다.

뼈와 혈관이 붙어있다고 해서

몸이 다 온전한 건 아니다

 

한 여인이 나물을

뿌리째 뽑아

미소를 흘리며 흙을 턴다

눈물을 안 보이려 흙은 가루로 떨어져나간다

 

얼마나 무겁다고

얼마나 더럽다고

나물도 숨기고 싶은 것이 있을 텐데

 

돌밭에서 끈질기게 생을 이어온 나물들

흙털이는 절망이다

신상털기 앞에 누구나의

생은 절벽이다 

 

 

욕망의 키네틱스

-주이상스를 위한 변론

 

생명보다 깊은

정적으로 침잠해 있는

수풀 속

상징계로부터

유배되고 은폐된

내 이름은 주이상스

 

상상계 그대로의

원시가 고스란히 남아

술래처럼 숨어있는 곳

때때로 그 놈은

상징계를 뚫고

나오려고 총을 든다

 

술에 취해

달도 뜨지 않는 밤이 되면

그림자만 남은 감옥에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무의식에 복역 중이던

거친 욕망의 덩어리가

오이디푸스 콤플랙스

아래에서도

두터운 상징계의

철벽을 넘보고 있다 

 

굴비찬


한 상 가득

밥상의 주인공굴비 너는

어찌하여 마른 눈망울에 푸른 열망을

귀한 사람 천한 사람

가리지 않고 보내느냐

조기로 태어나

사람의 기를 돋우고

굴비로 성장하여

널리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니

과연 해족의 으뜸이로구나

촉촉한 서해 바닷바람에

자연이 만들어낸

천하의 맛을 더하니

노릇노릇 구운 굴비

자르르르 흐르는 윤기

젖은 너의 이름

석수어요굴비니라


커피 한 잔


사방에서 풍기는 은비로움과

환상적인 네온과 음률

거기다가 촛불이 타는 예인촌

주변의 조용한 카페에서

 

쉴새없이 명멸하는 도시의

야경을 굽어보며

마시는 커피는

세련된 문화인의 맛이 있을 테고

 

촌가의 마당 한가운데 평상을 놓고

은분을 흠씬 뿌려놓은 듯한

은하수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는

청초한 숨결이 있지 않을까

 

누가

커피는 철학이라 했나

어느 누가

인생이라 했나.

 

 

 

눈물 젖은 고구마

 

고구마는 눈물이다 이런 명명이 진부하다 해도 그를 기억하면 다른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곯은 배를 움켜쥐고 비좁은 고방 문을 열면 그는 차디찬 몸으로 나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쓰러지지 말거라’, ‘주저앉지 말거라’ ‘엄마도 아버지도 죄가 없다내 목구멍을 힘들게 넘어가며 내 불만까지 주저앉혀 주었다 아가강냉이보다 낫다며 그는 내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굴곡진 역사를 모르는 아내가 고구마를 먹으며 웃음 지으면 적빈의 기억이 나를 덮쳤다 가슴 밑바닥에 흐르는 빙하가 비명을 지르며 흘러넘치면 찌푸린 내 얼굴을 보며그는 옛날의 네가 아니다라며 나를 다독이고 내 절망까지 거두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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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근 시인

문학박사(동아대)

명예철학박사(대신대학원대)

 

88년 월간 <동양문학등단,

<경북신문> <중앙일보신춘문예 평론 및 수필 부문 당선

 

2000 중국연변대 초청 수필특강(중국 연변)

2016 국제PEN한국본부 토론토지부 초청 문학특강(캐나다 토론토)

2016 미주 중앙일보 주최 문학특강(미국 달라스)

2018 해외한국문학학술강연 (영국 런던)

2018 미주 중앙일보 주최 문학특강(미국 달라스)

2019 한국문협 인니지부 초청 특강(인도네시아 자카르타)

2021 미주 LA한국문인협회 초청 문학특강

 

국제PEN 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한국문학세계화위원회 위원장

대신대학원대학교 문학언어치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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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여유를 [권대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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