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9-2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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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노래자랑’과 ‘k-딴따라’

 

  송해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95세로 알려졌지만 실제는 두 살이 더 많다는 본인의 고백도 있었으니 향년 97세가 될 수도 있다. 그는 1988년부터 35년 동안 KBS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아 '국민 MC'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 4월에는 최고령 TV음악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올라 모두 기뻐하였다. 내친김에 100세까지 거뜬히 이어가시라는 소망을 뿌리치듯 우리 곁을 떠나셨다. 혹시 하늘에서 열리는 ‘천국 노래자랑’ 잔치무대에서 사회를 보기 위해서였을까? 


 2015년, 그의 삶을 담은 ‘나는 딴따라다’가 출간 되었다.

 

 ‘딴따라’는 ‘예능인’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딴따라’는 춥고, 배고프고, 하룻밤 머물 곳을 걱정하면서도 재능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내켜 하지 않던 직종이었다. 자녀가 배우, 가수, 만담가, 악극단원이라도 되겠다면 ’딴따라‘는 가족이 될 수 없다며 인연을 끊겠다는 부모도 많았다. 화려한 분장과 조명 뒤에서 대부분이 맵고 쓰고 굴곡진 삶을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코미디언 ’이주일‘ 씨는 7대 독자인 아들이 방금 사망했다는 말을 듣고도 무대로 나가 관객을 ‘웃겨드리고’ 빈소로 달려갔다.   

 

 송해 선생도 예외가 아니었다. 평양국립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였으나 공산당을 피해 혈혈단신 월남한다. 국군에 복무 중에 대구 아가씨와 결혼하지만 63년이 지나서야 부인에게 면사포를 씌워드린다. 교통방송 진행자일 때 외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자 17년간 진행하던 방송을 중도 포기했다.

 

  고향 잃은 월남자요, 전쟁 통의 딴따라였기에 평생을 아끼며 검소하게 살았다. 염색포함 4천 원짜리 단골 이발관, 2천 원짜리 단골 낙원동 국밥집, 대중교통만을 고집하면서도 남모를 덕도 많이 베풀었다. 지방 출장 시 먼저 가신 아내의 영정사진에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거르지 않은 정 많은 분이다. 그러나 권세가들이 녹화장 앞자리에 앉는 것을 몹시 싫어해서 뒤로 가라고 호통을 쳤다. 국민의 진정한 이웃이요 벗이 아닐 수 없다. 


  ‘딴따라’의 삶과 형상은 우리나라가 걸어온 모습과 역사와 일치 한다.

 

 우리의 딴따라들은 일제 강점기엔 나라 잃어 정처 없는 ‘나그네 설움’을 부르면서 서로 위로했다. 6.25의 전쟁터에서는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면서 도 전선을 굳게 지켰다. 그날 밤, 부산 영도다리 난간 위의 초생 달도 금순이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낙동강 전선을 기어이 방어하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서울을 탈환하였다. 국민오빠 ‘남진’은 인기가 한창임에도 해병대 전투병으로 월남전에 참전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월남 땅에서 전역한다. ‘김추자’는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세월이 흘러 이민 가는 세대가 많아지더니 ‘나성(LA)에 가면 소식을 전해 달라.’며 연인을 깔끔하게 보내준다. 나라와 사회가 안정되면서 차츰 사랑과 이별의 일상에서 눈물이 사라져 간다. 

 

  나훈아는 늙마에 ‘인생이 왜 이래’라며 테스 형을 소환하더니 남북문제도 ‘사내답게’ 당당하게 소신을 밝힌다. 고모부와 이복형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김정은 앞에서는 죽어도 노래할 수 없어서 평양공연에 불참했다고 고백한다. 수많은 정치가와 군인들이 하지 못하는 말과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연예인은 이미 일개 딴따라가 아니다. 그들은 가족과 나라를 위하여 효도와 충성으로 몸과 마음을 바치고 마침내 지구의 평화를 노래하고 춤추는 진정한 예술인이며 정치가이고 철학자이다. 


 ‘싸이’의 말 춤이 세계를 휘돌더니 ‘BTS’는 유엔에서 초청연설을 하고 최근에는 미합중국의 대통령 이름으로 백악관에 초대 받았다. ‘비틀즈’보다 영향력이 더 막강해졌다. 블랙핑크가 좋아서 무작정 한국에 왔다는 서양 젊은이들도 많다.

 

 많은 아이돌 가수들에 이어 미나리, 파친코, 오징어 게임 등 한국노래와 영화가 연속적으로 크게 히트한다. 각종 영화제에서 한국 배우들이 조연, 주연에 오르는 덕분에 한국어 노랫말과 대사가 젊은 지구촌을 풍미하고 있다. 제2 언어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어느새 8,200만 명에 달하니 결코 적은 수는 아니다.

 

  아시아권에서 맴돌던 초기 한류 드라마의 인기가 사그라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제 한류는 ‘k’로 상징하는 거대한 문화 사조가 되어 지구촌으로 확장, 진화하고 있다. k-푸드, k-뷰티, k-스포츠, k-의료, k-웨폰 등등 코리아는 다가오는 세계의 ‘기술문화종주국’이 될 듯하다. 


 진(晋)나라의 ‘진수’(陳壽, 233∼297)는 ‘동이족은 제천의식과 함께 가무음곡을 즐길 줄 아는 민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삼국지 위지 동이전) 

 

“동이의 사람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에 며칠을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밥 먹고 노래 부르고 춤춘다.” (連日飮食歌舞) 

 

  이때 상하가 어울려 구분 없이 먹고 마시면서 노래와 춤을 즐기는 데, 신분이 엄격하게 구분되는 대륙의 계층음악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인 선교사도 “조선은 어린이들까지도 길에서 늘 노래를 부를 정도로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했다. 중국의 56개 민족 중에서도 조선족의 가무능력은 최고로 평가 받는다. 한민족 고유의 신바람과 흥으로 모두 하나 되는 DNA가 우리의 혈관 속에 살아 내려오고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법이다. 

 

 강한 자는 과연 누구인가?

 

 한 줄 노래로도 가슴 깊이 뿌리박은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하는 자이다. 

 

 ‘덩더꿍’ 허공 같은 춤사위로 절망의 터를 희망의 땅으로 바꾸는 자이다. 

 

 ‘한’을 ‘흥’으로 능히 풀어내어 한숨으로 비단을 짜내는 신령스런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을 가리고 발목 잡던 모든 장애와 어두움은 끝없는 비상(飛翔)을 위해 태워질 연료가 될 뿐이다.

 

 "역사는 흥겹고 신명나게 세상을 이끄는 그들을 ‘k-딴따라’ 라고 부를 것이다."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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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3022
이기욱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리가 잘 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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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암 장영주 칼럼] ‘천국노래자랑’과 ‘k-딴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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