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9-28(수)
 

유월이 가기 전에.

 


  붉은 능소화가 피더니 유월이 가고 있다. 유월은 유독 나라를 송두리째 흔든 전란이 많았고 후손들은 6월 6일을 현충일 삼아 충정을 가슴으로 기린다. 내 목숨과 나라의 목숨을 맞바꾼 영령들의 뜨거운 단심화(丹心花)가 무궁하게 피어난다. 

 

 1592년 임진왜란이 벌어지고 불과 7일 만에 상주까지 북상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조선군이 대패한다. 상주판관 ‘권길’, 종사관 ‘윤 섬’, ‘이경류’는 전사하고 지휘관 ‘이일’은 구사일생하여 충주로 패주한다. ‘이일’의 참담한 패전에 당황한 ‘선조’와 조정은 오직 ‘조선 최고의 명장 신립’에게 의지한다. 


 6월 3일,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신립’마저 불과 서너 시간 만에 일본군에게  궤멸된다. 전략적 요충지인 충주성은 함락되니 충주목사 ‘이종장’은 전사하고 장수 ‘신립’과 종사관 ‘김여물’은 자결한다. 이로써 북방의 여진, 말갈의 막강한 기마 병력을 압도하던 조선의 정예 기마군은 증발한다. ‘서애 유성룡’이 일본군의 신무기 조총의 위력을 경고하였으나 용맹스러운 ‘신립’은 시종일관 흘려듣고 만다. 적을 가볍게 본 교병필패(驕兵必敗)의 업과이다. 


  6월 4일, 혼비백산한 임금 ‘선조’는 미적거리던 세자 책봉을 단숨에 거행하고 조정을 둘로 나눈다. 부하 뒤에 숨는 용렬함과 무능함이 그대로 노출 된다. 졸지에 세자가 되어 반쪽짜리 임금이 된 ‘광해군’은 등 떠밀리듯이 목숨 걸고 남쪽 바다에서 북쪽 함경도의 전선을 오가며 독전한다. 


  6월 5일,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아침, 선조는 황급히 한양을 빠져나와 정오에는 판문점, 저녁에는 개성에 도착한다. ‘설마, 설마, 믿었던 왕’이 황망하게 서울을 빠져나가자 분노한 백성들은 궁궐에 불을 지른다. 


  6월 7일, 수도 한양으로 일본군이 무혈 입성한다. 선조가 빠져 나가고 불과 2일 후이자 전쟁이 시작되고 단 20일만이다. 선조와 조정과 대다수 관군은 썰물처럼 사라졌으나 오히려 조선의 백성들은 스스로 의병이 되어 밀물처럼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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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2년 6월 1일, 홍의 장군 ‘곽재우’ 의병장이 의령 정암진 전투에서 첫 승리를 거둠으로 왜군의 예봉을 꺾어 버린다. 6월1일이 ‘의병의 날’로 법정 지정된 이유이다. 


  6월 16일(음5월7일) ‘이순신 장군’이 거제 옥포에서 첫 대승을 거둔다. 이로써 전라도에서 군량미를 탈취하여 단숨에 한양을 치려던 일본군의 전략은 분쇄되고 7년 전란의 승리의 교두보가 마련된다. 허나 왜란이 끝나고도 선조와 조정은 내분으로 날을 지새우더니 끝내 호란을 잉태한다. 결국 명, 청 사이에서 영리한 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을 끌어내린 인조반정이 성공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겨우 38년 만에 나라는 또다시 병자호란으로 지옥으로 변했다. 재조지은의 사대이념에 갇힌 ‘인조’는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면서 초유의 '삼전도 치욕'을 당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헛되고 헛된 것들이 쌓이고 쌓여 1910년, 결국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더니 1945년 하늘이 보우하사 어찌 어찌 독립을 얻는다. 


 1949년 6월 26일,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김구 선생’이 남북의 충돌을 막고자 동분서주하다가 흉탄에 쓰러졌다. 


  1950년 6월 25일,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 김일성은 기습 남침을 함으로써 동족상잔의 세기적인 비극이 탄생한다. 당시 한반도 인구 삼천만 명 중 한국인 250만 명, 중국인 100만 명, 미국인 5만4천 명 등 4백만 명 정도가 사망하였다. 남한의 산업시설 43%, 주택 33%가 파괴됐으며 북한은 공업생산력의 60%, 농업생산력의 78%가 감소되었다. 6.25동란은 인류 역사상 피해가 큰 4번째 전쟁으로 기록되고 초토화 된  한반도의 허리에는 3,8선이 지금껏 고착되어 있다. 


  1999년 6월 15일 제 1 연평해전이 터진다.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침범하며 도발한 북한 경비정을 밀어내면서 벌어진 해전이다. 그해 11월 대청해전에서도 연패한 북한 해군은 삼년간 복수의 칼을 간다.  


  2002년 6월 29일 북한해군의 기습적 포격으로 제 2 연평해전이 발발한다. 2010년 제1 연평 해전에도 참전한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침몰된다.  46명의 젊은 용사들이 희생후로도 북한의 핵능력은 계속 진화 중이고 대한민국의 독자적 방어는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다. 


  2022년 6월,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의 북한군에 의한 서해 피살사건이 온 나라를 강타한다. 힘없는 국민을 향한 정치권력의 행태가 시간이 갈수록 수면위로 드러나고 이제는 그 끝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한반도의 6,25동란이 계속 진행 중인 셈이다.


  2022년 6월 21일, 우여곡절 끝에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면서 대한민국 앞에 ‘우주의 문’이 활짝 열렸다. 적은 인원과 최소한의 예산으로 ‘미사일 7대 강국’반열에 오르니 강대국들과의 경쟁에 뛰어든 지 불과 30년 만에 이룬 쾌거이다. 


  6월 29부터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나토(NATO)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지구촌의 선진국이라는 북아메리카, 유럽의 30여 개 회원 국가의 군사 동맹체 나토가 우리를 초청하니 나라의 국력이 점차 차오르는 모습이다. 무엇이든 그냥 두면 잘 하지만 정부가 과도하게 관여하면 될 일도 안 되는 것이 스스로 일어나는 의병정신의 산물인가?  ‘백암 박은식’(1859~1925)은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 의병은 우리 민족국가의 정수이다.”라고 외친다. 함평 출신 의병장 ‘심남일(1871~1910)’은 “아침에 적을 치고 저녁에 조국의 산에 묻히는 것이 의병의 본 뜻”이라고 했다. 


  지금의 모습이 아깝고 아파도 늘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매미와 나비가 아프고 어렵다고 구각을 벗어던지지 못하면 어찌 찬란한 날개와 자유로운 비행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여름 사리사욕의 헛된 것은 부디 썰물처럼 쓸려가고, 민관합동의 참된 정성만이 밀물처럼 몰려와 국운이 ‘누리호’처럼 비상하기를 기원한다.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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