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한강(漢江)은 한반도 중부에 위치한 강으로, 대한민국의 국가 1급 하천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을 이르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이 강에서 나왔습니다.길이로 보면 한반도 전체에서 네 번째로 길고, 대한민국 실효 지배 영토 한정으로도 낙동강에 이어 두 번째로 깁니다. 유량으로 보면, 한반도에서 가장 많고 유역 면적으로 봐도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매우 큰 강입니다.서울특별시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매우 넓은 강을 끼고 있는 대도시로, 폭 1km 남짓의 거대한 하천이 대도시를 가르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파리의 센강이나 런던의 템스강, 태국의 차오프라야강 등, 강을 끼고 있는 대도시는 매우 많지만 웬만하면 한강보다는 강 폭이 좁은 경우가 많습니다. 


한강이라는 명칭은 우리말 ‘한가람’에서 비롯하였습니다. 옛말에서 ‘한’'은 ‘큰’, 또는 ‘한창인’을 뜻하는 말이며, ‘가람’은 ‘강’을 가리킵니다. 즉 ‘큰 강’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자 표기의 ‘漢’은 음차일 뿐 중국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한강은 삼국시대 초기까지는 ‘대수(帶水)’라 불리었고,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아리수(阿利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제에서는 ‘욱리하(郁利河)’라 불렀습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한산하(漢山河)’ 또는 ‘북독(北瀆)’이라고 했습니다. 한강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시점은 백제가 중국의 동진과 교류하기 시작한 즈음인데, 그때부터 ‘한수(漢水)’ 또는 ‘한강(漢江)’이라고 불렀습니다. 


1963년 서울이 대확장되면서 한강이 본격적으로 서울에 편입되었습니다. 1960년대 초까지 한강대교 인근 모래사장에서 수영을 즐길 수도 있었습니다. 모래톱들도 엄청나게 많아 둔치가 모래사장이었던 지라 피서철에 한강에서 수영을 즐기는 모습은 매우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구 유입이 계속되면서 각종 산업 시설도 우후죽순처럼 들어섰기에 각종 공장에서 흘러나온 오∙폐수와 생활 하수가 한강으로 유입되며 한강의 수질이 나빠졌고, 수영도 금지되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대거 하수 처리 시설을 건설하면서 수질은 이때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물을 그대로 마시기에는 무리가 있는 수준이였으며, 하류 지역으로 갈수록 수질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강이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게 된 것은 1980년대 전두환 정부가 추진한 한강 종합개발계획에 따른 것이 많습니다. 당시 한강은 난개발로 환경오염이 심했습니다. 1980년대가 되면서 서서히 수도의 환경을 신경을 쓸 만한 경제적인 여력이 생기고, 서울 올림픽 개최권을 얻으면서 더욱 환경 개선의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미워할 때 미워하더라도 진실은 거짓일 수 없습니다.

“한강을 보면서 전두환 대통령을 그리워하라”


서울 시민들은 물론이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조차 한강의 경관에 찬탄을 금치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정비를 잘 했습니다.


아름다운 한강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게 누구의 작품인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밝힙니다. 이 사업은 전두환 대통령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경부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 드러누워 훼방 놓고도, 완공되고 나자 맘껏 질주했던 김대중, 김영삼 등 다 열거하기도 힘듭니다. 정말 무지몽매한 참 웃기는 자들이었습니다.


1981년 2월 2일 전두환은 레이건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 각하, 저는 두 가지 목적으로 각하를 만나러 왔습니다. 하나는 각하의 당선을 축하하는 것이고, 둘째는 각하를 도와 드리려는 것입니다.”


한국 대통령이 손을 벌리지 않고 도와주겠다? 동행한 각료들까지도 의아해 했습니다.


“각하, 캘리포니아, 연간 GNP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800억 달러입니다. 한국의 GNP는 600억 달러입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국가가 이렇게 작아?

모두가 놀랐습니다.


“한국은 그 6%를 덜어내어 국방비로 쓰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경제가 어렵습니다. 한국이 무너지면 자유 진영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일본의 GNP는 1조 1,600억, 한국의 20배입니다. 그런데도 국방비는 GNP의 0.009%만 쓰고 있습니다. 안보의 무임승차입니다. 미국의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돈을 주십시오. 그러면 그 돈으로 미국에서 전투기와 탱크를 사겠습니다.”


안보 차관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그는 40억 달러를 얻어냈습니다. 그중 10억 달러(1.3조)를 털어 냄새 진동하는 시궁창 물을 정화 시켜 오늘의 아름다운 한강 앙상블을 조각했습니다.


‘한강을 보면 전두환을 그리워하라.’ 


그는 42%의 물가를 2.3%로 낮췄습니다. 천재적 발상과 종교적 신념이었습니다. 개미 허리 중산층을 맹꽁이 배처럼 불렸습니다. 중소기업 육성은 그의 종교였습니다. 기술자들을 합숙시켜 가면서 한국은 불가능하다는 전자식 교환기를 개발하여 통신 일등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레이건 보다 10년 앞서 IT, 반도체, 컴퓨터 산업을 진두지휘했습니다.


1981년 국무총리 이하 모든 재무 관료, 경제인 등이 무모하다고 반대하며 일본으로 거의 결정되어 불가능한 88 서울 올림픽 대회 유치권을 따냈습니다.


많은 세계인들이 어디 있는지 조차 모르는 나라 ‘코리아’가 올림픽 사상 처음, 동서가 다 참가하는 완전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기업을 국제 시장으로 내몰아 체질을 강화시켰습니다. TV 시장, 핸드폰 시장, 반도체 시장을 우리가 장악한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야간 통행 금지도 없앴고, 교복과 두발도 자유화, 심지어는 자유를 억압한다며 연좌제도 없앴습니다.


누구도 찬성하지 않은 저돌적 혁명, 창의를 꽃 피게 하는 자유의 토양을 열었습니다.


원전 연료를 국산화하고, 한국형 원자로를 개발한 것은 무용담의 대상입니다.


주부들을 위해서는 코끼리 밥솥을 능가하는 밥솥을 만들었고, 그가 개발 시킨 손톱깎이는 당시 세계 시장의 50%를 점령했습니다.


예술의 전당, 국립 미술관, 국립 중앙 도서관 등 현존하는 문화 공간 모두가 

그의 작품입니다.


전두환은 엘리트들과 토의를 하면서 토의가 뽑아낸 지혜로 국가를 지휘했습니다. 


미국 육사 교과서로 공부한 최초의 엘리트인 그는 독서와 학습과 사색의 화신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있었기에 그는 특출했습니다.


전두환이 쌓아 놨던 우리나라 역사적 과업과 삶의 수준이 그 후부터는 축소 봉쇄돼 왔습니다.


그러나 몽매한 사람들 반대로 서거 후 대한민국 어디에도 분향소 하나 없었고, 

국립 묘지 안장은커녕 유골함을 이순자 여사가 집에 모시고 있다네요. 

참으로 기가 찹니다.

 

강석종 뉴스워크 칼럼니스트 기자 newswalk@naver.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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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강의 모습을 지금처럼 바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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