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프랑스 요리에 '그르늬이'라는 '삶은 개구리 요리'가 있습니다. 이 요리는 손님의 식탁 위에 버너와 냄비를 가져다 놓고, 손님이 직접 보는 앞에서, 개구리를 산 채로 냄비에 넣고 조리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물이 너무 뜨거우면, 개구리가 펄쩍 튀어나오기 때문에, 처음에는 개구리가 가장 좋아하는 약 15도의 미지근한 온도의 물을 부어 둡니다.

그러면 개구리는 기분이 좋아 가만히 있게 됩니다. 그리고는 서서히 올라가는 물의 온도 때문에 그 기분에 사로잡혀 자기가 삶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채 결국 45도에 이르게 되면 요리로 변하게 됩니다.

변화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개구리는 자기에게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삶은 개구리 증후군(The boiled frog syndrome)'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개구리는 어리석은 동물이라고요? 천만에요. 사람 또한 개구리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널리 인용되는 얘기이지만 '삶은 개구리 증후군'처럼,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바로 이런 한심한 처지가 아닐까요?

어느 온도에 이르면, 위험을 느끼고 튀어 나와야 하는데, 물이 조금씩 더워지기 때문에 결행의 시기를 놓친다는 것입니다.

사전에 교육계와 언론 기관을 장악하고 사법기관에 침투해 반대세력을 마비시켜 놓은 상태에서 이들은 극렬 행동대원들을 앞세워 자칭 촛불 혁명이란 정변을 일으킨 뒤 대통령을 탄핵해 감옥에 집어 넣었습니다.

'꼴통 좌파'들은 기상천외한 사건을 조작하고 민심을 선동해 이에 놀아난 탄핵은 대중들이 진실을 알지 못하고 거짓으로 오도된 여론과 선전선동의 결과입니다.

이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적페청산을 내세워 전 정권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며 100년 집권을 공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위 보수 지도자들은 냄비 속 개구리 행태를 그대로 연출했습니다.

정당한 재판도 없이, 즉 죄명도 모르면서 탄핵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관했으며, 재판에서 '설마 대통령이 실형을 받으랴?'하고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결국 교도소에 갇히는 것을 지켜 보기만 했습니다.

또 그 재판이라는 것을 성사시킨 테블릿 PC가 증거로 쓸 수 없는 허위란 사실이 법정에서 밝혀졌음에도 '지나간 일이니까' 하고 묵묵히 쳐다만 봤습니다.

그 뒤로도 냄비에서 뛰쳐 나와야 했던 사건은 계속 일어 났습니다.

드루킹 사건과 리얼미터 여론조사, 노회찬 자살 사건, 패스트트랙 파문, 야당 의원들의 발언을 멋대로 각색한 '5·18 망언 소동' 등등

어느 것 하나도 그냥 넘어 갈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어처구니 없다고 한탄할 수밖에 없는 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웃지 못할 희극들, 북한에 식량을 원조하겠다고 오지랖 넓게 나섰다가 거절당한 망신 등 이루 다 열거하기도 힘듭니다.

이제는 '이런 일들은 그저 정부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분위기입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구두로 합의했다며, 국회의 검토조차 없었던 평화조약을 믿고, 북한을 마치 가족처럼 챙기는데도 이 자들은 계속해서 간첩선을 내려 보내고, 미사일을 발사해 가며, 우리를 떠보고 있습니다. 

이 판국에 우리 정부는 "적대의식이 없어 괜찮다"는 흰소리나 하고, 아니면 '주시 중'이라며 '무대응'으로 일관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이를 수용합니다. '삶은 개구리 증후군'에 걸란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걱정이 없어서 이만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를 요리하는 물이 따뜻한 목욕물이라도 된다는 듯이, 편안하게 잠자다 죽어가는 개구리의 모습과 별로 다름이 없어 보입니다.

이제는 더 물러 설 곳이 없습니다. 나라를 떠 받치던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리며, 사상 최악의 성장률과 실업률을 잇달아 경신하는 가운데 '한일 경제전쟁'까지 터져 앞이 안 보입니다.

철천지 원수로 알던 북한에는 일방 통행료를 열어 주고, 일본은 '적대국'으로, 미국은 '불신국'으로 만들어 최후의 우방조차 스스로 내팽개치고 말았습니다.

동네공원에서 밤 산책을 하는데, 청년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대학 초년생이나 재수생으로 보이는 남자 3명이었습니다. 욕설도 튀어 나왔습니다.

"너 평생 집 살 수 있어?"

"아니 … 씨팔! 반지하 월세도 자신이 없어"

"월급 다 모아도 아파트 못 산데"

"난 걱정 안해, 여기 공원에 텐트 치고 살면 되지 뭐"

"하하하하"

웃는 게 아니라 절규였습니다. 젊은이들이 '내 집 꿈'조차 포기한 상태인데, LH 투기 사태는 그들을 더 서글프게 하고 있습니다.

라임 옵티머스 사건이라도 파헤친다면 4년 내내 불평등, 불공정, 불의가 판쳐온 세상이 180도 달라지고 땅 투기도 사라질 수 있으련만

하지만 LH 사태도 남 탓으로 돌리는 전정부에서는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은 뻔합니다. 경제를 해치는 부패와 불공정은 계속되고, 젊은이들의 시름은 더 깊어질 것입니다.

정신 차려야 한다는 외침이 도처에서 쏟아집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것이 정신 차리는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심지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다며, 국민을 싸잡아 '개돼지'라고 욱박지르는 지식인들도 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치지 않으면서 어찌 행동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있단 말입니까?

강석종 뉴스워크 칼럼니스트 기자 newswalk@naver.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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