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서울에서 말뚝을 박으면 그 반대편으로 나오는 곳이 바로 ‘아르헨티나 공화국’으로써 줄여서 ‘아르헨티나(Argentina)’라고 합니다. ‘아르헨티나’라는 나라 이름은 라틴어로 ‘은(銀)’을 의미하는 ‘아르겐툼(Argentum)’에서 유래했습니다


남아메리카대륙 남부에 자리 잡고 있는 연방 공화국이며, 수도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입니다. 동쪽의 대서양과 서쪽의 안데스 산맥 사이에 2,766,890km2의 면적을 차지하여 남아메리카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넓으며,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나라입니다. 세계 3대 폭포 중에 하나인 거대한 이과수 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대자연을 대표하는 비경입니다.


아르헨티나의 동쪽은 브라질과 우루과이, 서∙남쪽으로는 안데스 산맥을 경계로 칠레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파라과이, 특히 볼리비아와 접하는 안데스 산맥 일대는 과거에는 잉카 제국의 영향에 속해 있었습니다.


1880년과 1929년 사이 아르헨티나는 경제 성장을 계속하였으며, 세계 3대 곡창지대인 팜파스가 국토 중앙을 차지하고 있으며, 20세기 초만 해도 경제 선진국으로써 세계 5대 부국이었습니다. 1913년에 지하철이 개통되었으며, 우리나라보다 61년전입니다. 


1930년 군부 쿠데타 이후 50년 이상 군부 독재 하에서 계속 쇠약하다가 1980년대 초 민주주의로 전환을 했지만 아직도 경제적 퇴보와 혼란은 계속되었습니다.


1960년대 재무장관 하나는 ‘경제위기 해결책으로 무엇을 생각하냐?’는 질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도록 하죠’라고 대답한 적도 있습니다.


1960년대는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의 후유증으로 아르헨티나 경제가 개판이던 시절인지라 저런 농담도 먹히는 시대였습니다. 참고로 그때 경제위기의 여파로 결국 군부쿠데타가 일어나 1983년 라울 알폰신 집권 전까지 20년간 군사 독재가 실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군부 독재자들은 자기들 배 채우기에 바빠 경제 상황은 더 나빠져서, 나중에는 아르헨티나가 못사는 빨갱이 나라라며 우습게 보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로부터 “자신이 아르헨티나를 통치하면 저 꼴은 안 냈다”며 비아냥 당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만화 영화 ⌜엄마 찾아 삼만리⌟를 잘 아시죠? 주인공 이탈리아 소년이 아르헨티나에 가정부로 간 엄마를 찾아 나선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부터 이민을 갔는데, 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잘 살았습니다. 페론 전 대통령은 가난한 이민 노동자를 위해서도 무료로 연립주택을 나누어 줄 정도였습니다. 6살짜리 어린아이에게도 주치의가 배당될 정도였으며, 국적과 체류 신분을 떠나 모두에게 대학까지 무상교육입니다.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로 유명하지만 공짜로 견딜 수 있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국가 부도(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를 여러 번 겪었으며, 결국 2020년 8월에 9번째의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로 연명하고 있는 세계의 골칫덩이 나라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역사는 디폴트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816년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 디폴트 선언만 8차례를 기록했습니다. 첫 번째 채무불이행 선언은 1827년이었습니다. 독립 후 막대한 나라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 런던 금융가에서 국채를 발행했는데 1825년 영국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자 디폴트를 선언한 것입니다. 아르헨티나가 빌린 돈을 갚고 다시 국제 금융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30년 뒤였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디폴트는 그 이후 1890년, 1951년, 1956년, 1982년, 1989년, 2001년 그리고 2014년까지 이어졌습니다.아르헨티나는 19세기만 해도 농업 부국 가운데 한 곳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선진국이었습니다. 팜파스 대평원을 활용해 목축과 농업으로 부를 일군 덕분이었지만 1946년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그때까지 쌓아 올린 국부는 순식간에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의 재분배를 표방하며 기간 산업을 국유화하고, 복지 등을 강화한 페론주의를 내세우면서 경제 사정은 갈수록 꼬였습니다.


올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36년만에 우승을 했는데, 메시가 오랜 월드컵 무관의 설움을 떨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에 전 세계 축구팬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월드컵 우승이 파탄 난 아르헨티나 경제를 되살리지는 못하겠지만, 상처 입은 아르헨티나 국민의 자존심과 희망을 되살리는 데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군사독재가 종식되고 3년 뒤인 1986년 거둔 월드컵 우승이 아르헨티나 민주주의 정착에 도움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최근 아르헨티나를 짓누르고 있는 경제적 고통은 만성적 재정 적자에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면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한마디로 파탄 상태입니다. 물가 상승률이 세 자릿수에 육박하면서 화폐는 휴지 조각이 됐고, 국민 40%가 빈곤층으로 전락했습니다. 지하자원이 넘쳐나고, 소고기와 콩을 수출하는 나라이지만 국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휴지통을 뒤지고 다니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도 좌파 정부가 재정 적자를 메꾸려고 돈을 마구 찍어낸 결과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중앙은행이 기준 금리를 75%까지 올리고 정부가 생필품 가격을 통제하고, 소고기 수출을 금지하며, 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하고, 매달 최저임금을 인상하며, 복수 환율제 등 무리한 정책을 남발하고 있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22일(현지 시간) 집권 페로니스트(대중영합주의자) 연합의 후보로 나선 세르히오 마사 경제장관이 비선거에서 3위에 그치며 체면을 구겼으나, 아르헨티나의 대선 본선에서 나선 마사가 예상 밖의 1위를 차지한 것은 현지에서도 이변으로 평가됩니다. 마사가 예상을 깨고 1위에 오른 것은 선거 막판 ‘돈 풀기’ 등 포퓰리즘 정책을 했기 때문입니다. 

‘꼬레헨티나’라는 말은 꼬레아와 아르헨티나를 합친 단어입니다. 우리나라도 사회주의를 하게 되면 결국 포퓰리즘 정책으로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가 된다는 뜻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들 중에서 한번도 사회주의를 해보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실험적으로 ‘사회주의’를 해볼 수도 있겠지만 수많은 나라들이 이미 사회주의를 한 이후로 더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주의를 한 나라 치고 그 전보다 더 잘 살게 된 나라가 있습니까? 없죠? 사회주의를 한 이후로 국민들이 더 행복한 나라가 있습니까? 없죠? 그러니 사회주의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하자’는 사람들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먼저 자신의 재산을 이웃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일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가진 것은 사회주의를 하지 않으면서 나라 돈은 ‘사회주의 하자’고 포퓰리즘으로 막 퍼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강석종 뉴스워크 칼럼니스트 기자 newswalk@naver.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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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레헨티나’라는 말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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