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2(월)
 

장군의 마음 5화 /‘다시 부르는 빛의 노래’

 

  올해로 광복절(光復節)이 77주년이 되었다. 나라를 되찾은 것을 왜 빛을 회복했다고 할까? 나라를 잃으면 인간의 자유와 생명체로써의 존엄한 빛을 잃기 때문이다. 오직 나라를 되찾음으로써 생명의 빛을 회복할 수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와 땅을 가로채고, 일본은 아예 침략한 적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우리의 옛 역사가 너무 찬란하여 차마 똑바로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의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는 건 우리도 마찬 가지이다. 이스라엘교육에서 역사과목은 오전으로만 편성되는데 학생들의 정신이 더 또렷할 때를 택한 것이다. 이 시간에는 할아버지 같은 ‘랍비’가 학생들의 골수에 이스라엘의 혼을 각인하듯이 자신의 생명을 다 쏟아 부어 가르친다. 이 장면을 직접 본 어느 서울대학교 교수는 “나는 과연 저렇게 뜨겁게 제자들을 교육하고 있는가!”라는 자성의 글을 썼다. 


  만주에서 발흥한 청나라 12명의 황제의 성씨는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청의 개국시조도 ‘애신각라 누루하치’이고 마지막 황제 역시 ‘애신각라 부의’ 이다. ‘애신각라’란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말자.’ 는 청 황제들의 삶의 목표이자 통치 이념이었다. 고구려와 발해, 여진족의 청나라로 이어지는 만주 땅 일대가 우리 겨레의 옛 땅임을 증명한 사람과 자료는 수없이 많다. 안동 출신 ‘이원태’(◎坮)는 우리 민족의 이동에 따른 강역의 변천을 ‘동이구족(東夷九族)’의 역사로 삼아 학문적으로 정확하게 그렸다. 더불어 환국의 환인, 배달국의 환웅, 옛 조선의 단군 47대의 역사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이원태가 교관으로 재임하였던 ‘신흥무관학교’는 만주 서간도에 우뚝한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1910년, ‘우당 이회영’, ‘성제 이시영’의 여섯 형제들이 지금의 6백억 원에 추산되는 엄청난 가산을 정리하여 설립한다. 1932년 ‘우당 이회영’은 독립작전 수행 중 체포되어 ‘다이렌 수상경찰’에서 고문치사로 순국하시니 향년 65세였다. 형제들은 광복을 보지 못한 채 고문사, 병사, 객사, 아사한다. 다섯째인 ‘이시영’만이 살아남아 대한민국의 초대 부통령에 임명되지만 머지않아 사임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일부 재산의 환급을 제안하나 이시영은 재산을 찾겠다고 독립 운동한 게 아니라며 거절한다. 


 ‘아흔 아홉 칸’으로 유명한 안동 ‘임청각’의 ‘석주 이상용’ 일가도 엄청난 가산을 한 톨 남김없이 정리하여 동참한다. 곧 태어날 손주가 이미 남의 땅이 된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인이 되게 할 수는 없다며 고향을 등지고 엄동설한에 기어이 만주로 향한다. ‘석주’는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대통령)에 선출되기도 하지만 74세로 결국 남의 땅에서 돌아가신다. 천신만고 끝에 독립을 이루고 자기의 땅에 대한민국이 건국하였음에도 석주의 후손들은 집 한 채 없이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들은 다만 3천5백 명의 독립군들 핏줄 속에 민족혼을 심기 위해 일심으로 모든 것을 바쳤다. 거룩한 빛을 광복하려는 그 정신이 ‘신흥무관학교 교가’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의 *영절에 여러 만만 *헌원 자손 업어 기르고/ *동해 섬 중 어린 것을 품에다 품어 젖 먹여준 이가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중략-/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 내어 새나라 세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청년들이라./두 팔 들고 고함쳐서 노래하여라./ 자유의 깃발이 떳다.” 

 

 이 가사는 중국대륙의 주요 거점과 서북, 서남 전체가 한민족의 고토이자 활동무대였음을 상기시킨다. 장차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독립군들이 웅장한 가슴을 북처럼 울리는 노래가 아닌가. 가사 중의 ‘중국을 업어 기르고 일본을 품어 길렀다.’는 대목은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도저히 근접할 수조차 없다. 그 교가를 지은이는 ‘석주 이상용’이다. 이 사실은 ‘석주’의 손자며느리인 ‘허 은’님의 회고록에서 밝혀진다. 1910년의 신흥무관학교 교가는 놀랍게도 고구려인들의 애창곡이었던 ‘고구려인의 노래’와 뜻과 기상이 그 맥을 같이 한다. 

       

 ‘고구려인의 노래’

“오호 어리석은 한나라 어린 애들아 요동은 향하지 마라. 개죽음이 부른다./ 문무의 우리 선조 *한웅이라 불렀느니/ 자손들은 이어져서 영웅호걸 많단다./ 주몽태조 광개토님 위세는 세상에 울려 더할 나위 없었고/ *유유, *일인, 양만춘은 나라 위해 옷 바꿔 스스로 사라졌다./ 세상 문명은 우리가 가장 오래니 오랑캐, 왜구 다 물리치고 평화를 지켰다./ *유철, *양광, *이세민도 보기만 해도 무너져서 망아지처럼 도망갔다./ *영락기공비는 천 척 만 가지 기가 한 색으로 태백은 높단다.“ 


 같은 시대인 1400년 전, 중원대륙의 농민들도 “요동에 가서 억울하게 죽지말자.”는 노래를 불렀다하니 안팎이 꼭 들어맞는다. 

 

 우리의 정신과 강토의 회복을 목숨으로 구했던 선열들의 빛나는 마음이 각자의 가슴에 되살아나길 기원한다. 가족을 향한 ‘효심‘과 나라를 향한 ’충성‘, 나아가 지구사랑을 이루는 무수한 홍익독립군을 양성하자. 

그때 한,중,일 삼국과 인류의 평화가 지구촌 위에 아름답게 펼쳐질 것이다. (끝)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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