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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석 연세대 몀예교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
    동아일보의 객원논설위원이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를 소개하겠습니다. 며칠 전 TV에서 뉴스를 들었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한 최고위원이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출발해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거쳐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으로 이어져 왔다. 이재명이 민주당과 국가를 대표할 시대정신을 이끌어 가야 할 단계라고 했다. 그것은 이재명의 주장과 신념을 대변한 선언이다. 국민도 그 뜻을 이해는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현재까지 국정의 중책은 민주당이 맡아 왔고 지금도 절대적 여소야대의 국회이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민주당에 집중돼 있을 정도다. 문제는 민주당 안에서는 그런 선언이 가능할지 모르나, 국민의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은 초창기보다 더 증대하고 있다.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우려와 걱정은 한계선까지 도달한 상태다.국민은 김대중 대통령의 동족 간의 평화통일을 위한 열성과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가 심하므로 경제적 원조를 베풀면 15년쯤 후에는 통일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견해를 믿고 싶었다. 그런데 국민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너무 많은 원조를 했다. 그 결과는 핵무기 개발과 공산정권 굳히기에 도움을 주었다. 지금의 김정은 정권을 키워주는 결과가 되었다.노무현 정권은 어떠했는가? 우리 국민이 이런 상태로는 살 수가 없고 불안하여서 이민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의 무질서와 혼란 상태가 되었다. 국민에게 물어 보라. ‘노무현 정부가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인가?’라고. 그 주역을 담당한 세력인 86세대 운동권의 등단과 확장기였다. 대통령 자신이 자기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같이 불행한 대통령’은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몸소 남겨 주었다.그 뒤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운동권은 물론 문 대통령 스스로가 공은 내세웠으나 과(過)는 인정하지 않았다. 퇴임 후에도 자신의 임기 5년 동안에 쌓아 올린 정치적 업적을 윤석열 정부가 계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은 문 정부와 같이 가지 않는다고 추방한 윤석열을 왜 대통령으로 선출했는가?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권이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이며, 윤 정부가 계승해야 할 과업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묻게 한다. 정치 기반인 경제 분야는 어떠했는가? 이명박 정부를 계승했다면 경제성장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는 어떻게 했으며,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민주국가의 위상을 지켜 왔는가? 북한 동포를 뒤로하고 김일성 정권 세습화에 동조했다면 그것은 실정 중의 실정이다. 김대중 정신에 위배되는 결과가 되었다. 대한민국으로 귀순해 온 동포와 중국에서 우리 품으로 오려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처신은 앞으로도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할 과제다. 친북 정책은 북한 동포를 위한 절대적 의무와 권리이다. 김정은 정권을 위한 종북이 아니다.현재에도 민주당은 국정운영 방향과 방법은 물론 절차까지 관여하는 국회의 주도권을 행사한다. 국가를 위해서보다는 윤 정권을 타도하고 임기 내라도 재집권하겠다는 자세다. ‘그것도 애국심인가? 국민을 위한 정치인의 양심인가?’라고 국민은 묻는다. 누가 보든지 민주당은 국가보다는 정권을 위했고,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의 사당이 되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민주정치는 실종되었고 싸워서 이기면 그것이 정의가 된다는 개인과 집단의 투쟁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창기부터 실정에 앞장서 왔던 임종석 전 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송영길 전 당 대표, 각 분야에 자리 잡고 있던 운동권 출신의 잔여 세력이 이재명 대표를 앞세워 정권 재장악에 동참하려는 기세다. 민주당 안과 주변에 있던 친북좌파까지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선한 공존의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적 방향과 국민의 진실과 정의, 자유와 휴머니즘 정신이 보장, 구현되는 나라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잘못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진실과 정직 없는 ‘내로남불’의 정의관, 인격을 갖추지 못한 개인이나 이기적 집단세력에 정권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위하고 국민을 섬기려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여야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민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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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1
  •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그립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반발로 전문의 파업이 대형 병원 중심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근무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시화되고 의료 공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안타깝기가 이를 데 없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가 문뜩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장기려 박사님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의사였다. 그래서 경성 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의과 대학과 김일성 종합 대학 교수를 지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1950년, 장기려 박사님은 철수하는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 아내와 5남매를 북에 둔 채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하였다. 그리고 부산에서 천막을 치고 복음 병원을 세워 행려병자를 치료했다. 장기려 박사님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하며 하루에 2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럴 뿐만 아니라 1959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간 절제 수술에 성공하는 등, 당시 우리나라 외과 의사 가운데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이 커지고 무료 진료가 불가능해지자 장기려는 1968년 한국 최초의 의료 보험 조합인 청십자 의료 보험 조합을 설립하였다. 청십자병원은 가난한 사람을 정성껏 치료해 줄 뿐만 아니라 치료비를 깎아 준다고 소문이 나 늘 많은 환자가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농부가 장기려 박사에게 하소연했다. “선생님, 제가 당장은 돈이 없지만 나중에 꼭 벌어서 갚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내일 당장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병원에 묶여 있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농부의 말을 들은 장기려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밤에 문을 열어 줄 테니 그때 가세요.” 농부가 깜짝 놀라자 장기려는 웃으면서 말했다. “병원에서는 아마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퇴원을 안 시켜 줄 거예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 도망을 쳐서라도 일을 해야 가족을 돌볼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장기려는 그렇게 말하고 농부에게 돈까지 쥐여 주었다. “얼마 안 되지만 차비나 하세요.” 농부는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는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기 돈으로 수술을 해 주고, 그나마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못하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다가 1995년 12월 추운 겨울날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내 마음이 그러하듯 창밖에는 겨울비가 밤새 주룩주룩 내린다. 오늘따라 ‘바보의사 성산 장기려 박사님’이 그저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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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다큐‘기적의 시작’ 관람 후기
    ‘은종’이라는 동료 시민의 ‘기적의 시작을 보고’라는 관람 후기를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또 다른 다큐극 영화 ‘기적의 시작’을 보고 왔습니다.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을 보신 분이라면 더더욱 꼭 보십시오. ‘건국전쟁’이 큰 그림을 그리는데 치중했다면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 대통령의 디테일한 부분을 세밀히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건국 전쟁은 역사를 잘 모르고 일방적으로 세뇌 당한 분들에게 유익한 영화입니다. 4.19는 이승만이 원인인가? 김구의 정체, 런 승만의 문제, 한강철교 폭파사건 등 이승만 대통령이 오해받고 있는 부분의 팩트를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에 대한 역사를 잘 아는 분들이 보았을 때 거의 다 아는 내용이었고 소수의 부분은 새로운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의 시작은 자료를 수집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섬세합니다. 이승만에 대한 책 몇 권을 섭렵했던 분들도 새로운 내용을 보고 저런 자료를 어떻게 찾았을까 하고 그 수고에 감탄하게 됩니다. 어쩌면 흥행에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 이승만이 한성 감옥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과정이나 서거하기 전 기도한 장면 등을 삽입한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감명을 줍니다. 이승만의 삶은 기도에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기도로 시작한 나라이니 기도를 놓지 말아야 국가가 번영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만약 성도들이 단체관람한다면 ‘기적의 시작’이 더 감명을 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의 증언자들은 이승만과 직접 만난 분들을 등장시켜 훨씬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백선엽 장군,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 그리고 그 며느리의 증언은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사실적이고 감동적인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농지개혁, 6.25 전쟁에 대한 일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경위 등은 훨씬 더 자세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역사의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깜짝 놀란 것은 이승만의 경제에 대한 관심입니다. 벌써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 앞으로 한국은 공업국이 되어야 한다고 예견한 것은 대단한 통찰력이었고, 실제로 6.25 이후에 공업국이 되기 위해 그가 이룬 업적을 세밀한 자료와 더불어 제시한 것은 그동안 몰랐던 내용이었습니다. 다큐 영화가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데, 텔렌트 임동진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이승만을 잘 살려내었습니다. 아마도 무료 출연이었을 것인데, 눈물과 마음으로 연기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정말 사랑하는 대배우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무명의 배우들이 적절하게 사건들을 잘 재현해내어 다큐에 몰입할 수 있도록 톡톡히 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동안 런 승만, 독재자, 친일파 등등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이제는 바로 잡을 때가 되었다. 위대한 거인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에게 이승만을 바로 알릴 때가 되었습니다. 두 영화를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기적의 시작’은 섬세하게 그 안을 들여다 봅니다. 성경으로 비유하면 ‘건국 전쟁’은 마가복음에 비유한다면 ‘기적의 시작’은 요한복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둘 중에 한 영화만 선택하지 마십시오. 두 영화 모두 보시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요, 애국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건국 전쟁은 제법 관람객들이 있었는데, 기적의 시작은 관객면에서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점이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적의 시작’이 훨씬 더 애정이 갑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가슴에 더 와닿는다고 했습니다. 건국 전쟁을 보신 분들은 반드시 기적의 시작도 함께 보십시오. 다른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을 먼저 보셨습니까? ‘건국 전쟁’도 보세요. 두 영화가 결합할 때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총선 전에 두 영화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두 영화가 흥행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사인식이 바뀌도록 열심히 홍보하는 일입니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먼저 극장으로 가십시오. 교회 단체관람을 강력히 추천합니다.”라고 동료 시민 ‘은종’은 말했습니다. 김덕영 감독의 ‘건국 전쟁’이 개봉 27일만에 100만을 돌파하며, 다큐로는 드문 흥행 기록을 세우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그리고 ‘건국 대통령 이념 보급회’의 김효선 사무총장의 ‘이승만의 독립 외교 33년’ 등 다른 기록 영화들도 ‘건국 전쟁’과 거의 동시에 선을 보였습니다. 이장호 감독의 이승만 관련 영화 ‘하우보만의 약속’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상 매체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될 나라”라는 주장을 하며 반공 애국 진영, 특히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비방하고 폄훼하는 반역 세력의 전유물처럼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런 영상 매체가 이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밝히려는 일에 효율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승만이 ‘독재자’ 또는 ‘친일파’로 낙인 찍히며 국민의 뇌리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할 추악한 인물로 악마화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독립운동과 반공 투쟁에서 승리해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되었고, 공산군의 6.25 남침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고 부흥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쉽게 공산화되어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김일성의 지배를 받는 위성국가로 편입되었을 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적인 위인이자 천재였습니다. 그는 이 나라의 국부였고, 애국자요, 선지자요, 예언자요, 세계가 공산당을 열광할 때 “공산당은 망한다”고 외쳤습니다. ‘전시 중립론’이라는 논문을 쓴 국제 정치가였고, 훌륭한 선교사였고, ‘재팬 인사이드 아웃’의 저자인 작가였고, 민족 복음화를 소망한 하나님의 종이었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며, 그는 하나님 중심의 철저한 자유 민주주의 투사였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학력 소유자였습니다. 죠지 워싱톤대 학사였던 클린턴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하바드대 석사였던 오바마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프린스턴대 박사였던 윌슨 대통령과 동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도 이만한 학력 소유자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자유의 등불을 달아준 불세출의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탁월한 외교가였으며, 토지개혁을 단행했고, 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는 ‘반상 철패’를 했으며, 의무 교육을 실시했고, 여성들을 투표에 참여케 했습니다. 의회 정치를 실시 했습니다. 그의 애국정신과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 시대의 등불이었습니다. 전교조에 의해 역사 왜곡이 극에 달한 이 나라는 이승만을 바로 알아야 대한민국이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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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석종 칼럼
    2024-03-08
  • 이승만 영화 ‘기적의 시작’이 만들어진 배경 이야기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기적입니다.’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영화 '기적의 시작'을 만들고, 전국 개봉을 하기까지 모두 기적의 순간입니다. ■ 영화의 시작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저의 아버지께서 '이승만 대통령 영화를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하셨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하지 않은 제가 그 당시 더 기반이 없었던 시절, 그런 권유를 받으니 너무 막연하고 막막하게 다가 왔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에는 부모님 댁에서 같이 사는 것 외에는 따로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은 받지 말자'고 했고, 또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우리나라 영화계와 아무런 인맥도, 기반도, 심지어 카메라 한 대 조차 없던 아들이 이리저리 일감을 찾아다니는 모습에 안쓰러워 ‘카메라 한 대 얼마 하니? 카메라 한 대 사줄게. 그것 가지고 시작해 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것마저 거절했습니다. 많은 예술인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이 분야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누가 밥값을 내야 하는지 신경이 곤두섰고,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 다섯 정거장 정도는 교통비를 안 쓰고 걸어 다녔습니다. 물론 저의 집안이 그 정도 돈 못 쓸 정도로 여유가 없지는 않았으나, 저는 속으로 '이 나이에 돈벌이도 못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는 것은 사치다'라고 생각하며 가급적 걸어 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 온 저의 영화 인생은 그렇게 밑바닥부터 시작되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비록 독립영화이지만 조금씩 규모를 키워가며 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순회 상영을 다니며, DVD를 찍어 판매하는 수준에서 점차 작품을 작은 영화관에서부터 상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이 하나 둘 씩 영화관에 걸려 작품을 찾는 관객들이 늘었고, 이번엔 멀티플렉스 상영관 전국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을 지내면서 아버지의 권유를 당장 실행해 옮겨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었으나, 덕분에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일하거나 생활했던 분들을 만나 뵈면 꼭 이 대통령에 대해 질문하고 이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백선엽 장군님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뵌 분들은 그 당시에도 꽤 계셨으나, 백 장군님처럼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큰일을 하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던 분은 없었습니다. 백 장군님은 이승만 대통령과의 일화와 본인이 참여했던 전투에 대해 매우 실감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후방 전투 현장을 직접 보여주시며 설명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귀한 증언들은 매번 카메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기록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아 저는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습니다. 요즘과 달리 20년 전에는 6mm 테잎을 썼는데, 당시의 기록이 멀쩡하게 보존된 것도 작은 기적입니다. 한편 해를 거듭하며 시간이 지나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왜곡과 비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니, 멈추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국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어 '22년 12월부터는 아예 작정하고, 그동안 모았던 자료들과 추가 인터뷰를 통해 '기적의 시작'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 국민 대배우의 합류 ■ 제작 과정에서 국민배우 임동진 님도 합류하시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런 대배우분께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에 넣을 재연장면에 출연해 주시라고 요청하는 것은 큰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 배우님께서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셔서, 속으로 많이 놀랐고, 겸손한 모습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임동진 배우님과 같은 영화계 거물이 합류하셨음에도 제작환경은 딱히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제작진은 그 분 이름을 내세워 따로 모금하지 않았고, 제 성격상 여기저기 제작비 모금하러 다니기도 쑥스러워 그러지 못해서 프로듀서 김재동 목사님이 모금해 오신 제작비 내에서 해결했습니다. 그런 형편 속에 많은 분들의 우려와 달리 제작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 아들 이인수 박사의 생전 마지막 고백 기록 ■ 이번 작업에서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로 이 대통령의 쓸쓸한 말년을 제일 가까이 곁에서 지켜보셨던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입니다. '23년 11월 별세하신 이인수 박사님의 인터뷰는 결코 쉽게 성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품을 위해 그분의 증언을 꼭 담고 싶었으나, 그분의 체력에 한계가 많으셨던 때라 인터뷰 약속을 잡고 갔다가도 두 세 번 실패하여 헛걸음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인터뷰가 어렵게 되자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는 포기했습니다. 사모님이신 조혜자 여사께서 마치 곁에서 대신 말씀을 전하시듯 하고, 이인수 박사님은 옆에만 앉아 계십사 하는 게 저의 새로운 바람이자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약속도 없이 임동진 배우님과 이화장을 둘러 보러 갔다가 이인수 박사님 컨디션이 최상인 것을 발견! 당장 카메라를 켜고 마이크를 연결해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장비를 가져간 것도 다행이었고, 그게 이인수 박사님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습니다. 다시 봐도 당시 이 박사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모습이 역력합니다. 이 모든 것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 신앙인 이승만 재조명 ■ 이승만 대통령이 젊은 시절 선교사들이 전해 준 예수님을 한성 감옥에서 복역 하며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영접한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난제 앞에서 하나님께 매달렸고, 우리나라 첫 국회를 기도로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작품에서 비기독교인들을 의식해서인지, 기독교 색채를 빼고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 그런 이승만의 모습은 인간 이승만을 이끄는 원천적인 힘이었기 때문에 저는 제 작품에서 그런 부분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마지막 기도는 임동진 배우님의 뛰어난 연기력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해 줍니다. ■ 전국 극장 개봉 ■ 드디어 ‘24년 2월 22일! 기적의 시작은 전국 개봉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어렵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영화를 한 개 극장에라도 걸기도 어렵고, 극장에 걸었다 해도 관객들을 사로잡기에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 전문 인력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한 두 사람의 몫입니다.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전국 극장 개봉을 위해서 제작사들은 적게는 수 천 만 원, 많게는 수 억 원의 홍보비를 씁니다. 저희는 '기적의 시작' 홍보를 위해 쓸 수 있는 금액이 거의 없었습니다. 금액을 밝히기에 민망해 그럴 수는 없지만, 그 금액조차 제작 과정에서 다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홍보를 위해 쓴 금액은 전단지 인쇄에 30만원 가량, 작품을 소개해 주시는 유튜브 분들께 음료수를 사 드리거나 식사 대접을 한 게 전부입니다. 주말에는 감독인 제가 손수 전단지를 챙겨 광화문이나 시청 같은 곳에 가서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젊은이들 중에는 전단지에 이승만 대통령 얼굴이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접어버리며 불쾌감을 표현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전단지를 나눠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많은 홍보비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원초적인 홍보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SNS 홍보도 했으나 제가 인플루언서가 아니다 보니 효과는 미미했던 것 같습니다. 넉넉잡고 홍보비로 100만 원 정도 썼던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전국 개봉까지 이어진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렵게 잡은 서울 두 개의 극장(필름포럼과 허리우드). 시사회 이후 5개월간 상영을 통해 관객 수 천명이 관람하고, 입소문을 듣고 오는 관객 수가 줄지 않자 멀티플렉스에서 이를 눈여겨보고, 일단 전국 10개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을 준 것 같습니다. 수 많은 난관을 뚫고 드디어 전국에 소개되는 ‘기적의 시작’. 여태까지는 저와 조력자 분들의 힘으로 끌고 왔으나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렇게 극장에 걸게 되었는데 보러 와 주시지 않으면 허무하게 극장에서 내려지게 됩니다. 극장에 와서 봐 주시는 것은 작은 애국입니다. 교회에서 단체관람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CGV에 예매가 열립니다. 예매를 많이 해 주시면 더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여 더 많은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 권순도 올림
    • 주요뉴스
    2024-03-07
  • 이제는 ‘기적의 시작’이다!
    스카이데일리 임명신 기자의 “[기획] 이승만 다큐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길 위에 김대중’ 압도”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권순도 감독이 20년 구상 끝에 작년 10월 내놓은 ‘기적의 시작’은 독립영화 특유의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건국 전쟁’ 흥행 속에 역주행 중입니다. 같은 주제의 두 다큐는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필히 두 편 모두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같은 목표, 다른 매력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1875~1965)을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월 1일 개봉한 김덕영 감독의 작품 ‘건국 전쟁’이 주목받으며 4개월 전 나온 권순도 감독의 작품 ‘기적의 시작’도 역주행에 가속도가 붙었다. 두 작품 다 철저히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된 다큐지만 흐느끼는 관객이 속출할 만큼 뜨거운 반응이다. 두 편의 이승만 다큐가 또 다른 역사 인물 다큐를 압도한 것도 눈길을 끈다. 훨씬 유리한 여건 속에 제작된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작 ‘길 위에 김대중’이 개봉 4주 후 12만 관객을 동원한 반면 ‘건국 전쟁’은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 수 18만 명을 돌파했다. 누적 관객 수 3위, 개봉관 수도 개봉 당초보다 3.3배 늘어난 상태에서 11일 누적 관객 수 24만 명을 넘어섰다. 다큐로선 이례적인 성적이 어디까지 갈지 관심을 모은다. ‘기념관 하나 없는 이승만’이 ‘기념시설 최다의 김대중’을 이겼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편 ‘기적의 시작’은 작년 10월 하순 서울 시내 단 두 곳(종로3가 낙원상가 헐리우드 극장·신촌 필름포럼)에서 개봉된 가운데 주로 각종 애국단체∙교회 등의 상영회를 통해 관람객을 늘려 갔다(현재까지 5000명 정도). ‘건국 전쟁’이 2월 1일 전국 CGV에 걸리고 화제를 부르자‘기적의 시작’ 역시 개봉 약 4개월 만인 22일 CGV 재개봉이 결정됐다. ‘기적의 시작’ ‘건국 전쟁’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졌고, 멸망의 위기를 넘어 훗날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틀을 구축했는지 조목조목 짚는다. 농지개혁, 문맹퇴치(교육개혁), 안보·경제발전을 담보한 한미 동맹, 자원 빈국의 산업화에 절실한 원자력발전의 토대 마련 등 다가올 산업화가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어떻게 준비됐는지를 두 편의 다큐 영화 는서로 다른 톤으로 설명해 준다. 각각의 장점이 있으며 지루하지 않을 반복 학습 효과가 기대된다.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을 다룬 최초의 본격 다큐 영화라는 의미 외에 애국지사로서의 역정과 기독교 신앙의 상관성을 조명한 점도 돋보인다. 창군 및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1920~2020)과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1931~2023) 박사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원로배우 임동진 목사의 이승만 연기 역시 독보적인 부분이다. 두 다큐는 1천 수백 년에 걸친 왕조 시대와 근대 식민지 시대를 겪은 중세적 공동체에서 자유 민주공화국 헌정 질서 마련이 얼마나 천지개벽할 일이었는지를 묵직하게 일깨운다. 공통된 주제지만 두 감독이 친분이 있거나 사전 협의한 것도 아닌데 내용상 겹치지 않는다.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 학습판이므로 둘 다 관람할 가치가 충분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공산화가 신생국들의 대세였던 시절, 이승만은 현대 국가(자유민주공화국)의 본질과 시스템을 이해한 유일한 한반도인으로 볼 만하다. 두 다큐의 시의성도 각별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오늘날, 정통성 논란은 결국 ‘이승만의 나라’ ‘김일성의 나라’ 양자택일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 세계사적 인물 이승만… 우선 다큐부터 ‘건국 전쟁’ 출연자의 한 사람인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전 이승만연구원장)는 연구원이 보관 중인 이승만 1차 자료 100박스에 대해 예산 부족으로 손을 못 대고 있다며 아쉬움을 수차례 토로한 바 있다. 그 자료들은 대부분 40년 망명 생활 중 세계정세를 전하거나 논한 신문·잡지 스크랩과 친필 메모들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세계사적 차원에서 연구돼야 할 인물 이승만’이라는 시각에 힘이 실린다. 이승만의 생애는 드라마틱하고 불가사의한 요소로 충만하다. 영화∙드라마 등 대중 서사 장르를 통해 그려질 날이 와야겠지만 일단 다큐가 절실했다. 관련 사실들이 극단적으로 왜곡되거나 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교과서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교과서 밖에선 악마화∙희화화됐을 뿐이다. 해석의 문제 이전에 팩트 자체가 엉터리인 경우도 많다.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가짜 뉴스·역사∙왜곡의 결정판 명저 ‘슬픈 중국’의 저자이자 ‘건국 전쟁’ 첫머리에 등장한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는 조선일보 칼럼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팩트를 지어 내는 역사가들’에서 “김덕영 감독의 작가 정신과 예술혼이 거짓 뉴스와 허위 정보를 마구 엮어 일방적으로 이승만 악인전(惡人傳)을 집필해 온 역사학계의 고루한 시대착오와 부족 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죽이기’ 최근 사례로 송 교수는 “(역사학자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박태균)”가 TV 교양 프로에서 이승만의 1952년 대선 승리에 대해 기호 1번을 독점해 대다수 문맹 유권자 몰표를 유도한 결과라는 취지로 설명한 점을 들었다. 이어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것과 김 감독이 당시의 선거 포스터를 꼼꼼히 뒤져 이를 입증해 냈음을 짚었다. 이승만은 기호 1번이었던 적이 없다. 이승만에 얽힌 대표적 오해인 6·25전쟁 발발 직후 라디오방송 틀어 놓고 도망갔다는 미확인 소문이 오늘날까지 조롱과 저주 담긴 별명 ‘런Run승만’으로 살아 있다. 김 감독의 ‘건국 전쟁’에서 ‘한강 다리 폭파’ ‘3.15 부정선거’ ‘하와이 도피설’ 등을 바로 잡을 증거들이 제시됐다. 또 한4·19 이후 이승만의 행보야말로 ‘독재자’ 낙인이 왜 부당한지에 대한 결정적 증거다. 자신과 무관한 부통령 선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무일푼의 독재자? 그런 인물이 과연 독재자일 수 있는지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묻고 있다. 한국인이 처음 만난 이승만… ‘건국 전쟁’ 감동 후기 이어져 조지워싱턴대(학사)∙하버드대(석사)∙프린스턴대(박사) 출신의 이승만이 얼마든 취득 가능했을 미국 시민권을 마다한 채 40년간 무국적자의 불편함을 견딘 사실에 김 감독은 주목했다. 아울러 미국 내 이승만의 족적이 그간 어떻게 왜 지워졌는지 현지 교민들 증언으로 전해진다. 1953년 정전협정 1년 후 미국 방문 당시 자유의 투사로 칭송받으며 뉴욕 시가를 대대적으로 퍼레이드한 영상은 ‘건국전쟁’을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이승만이 공산주의에 맞설 냉전 구도의 불가피성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미국 등 서방세계 조야에 열렬히 설명∙설득한 점도 부각된다. 그것이 대한민국 탄생 비밀의 한 측면이다. 공산주의의 본질·실상에 대부분 무지하던 시절이었다. 개봉 초기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만 네이버 영화면에 누락돼 있어 “좌편향 문화계의 이승만 지우기”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관람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육박했다. “덕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어 감사하다” “공산화 저지의 공로만큼은 이승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감상 후기가 가장 많다. 조선일보가 김 감독을 자세히 인터뷰한 것 또한 눈길을 끈다. 여기서 김 감독은“(이승만) 공부를 시작한 뒤 큰 반성을 하게 됐고 그를 비롯한 건국 세대에 대한 죄송함을 영화에 담았다”고 밝혔다. 2012년 유튜브에 유포된 악의적 이승만론(論) ‘백년 전쟁’이 오히려 일부 네티즌이 진실 찾기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것과 흡사한 경우라 할 것이다. 북한은 왜 그렇게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을까… 586세대 김 감독의 각성 김 감독은 1950년대 동유럽 국가들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들을 조명한 다큐‘김일성의 아이들’(2020)로 유명하다. 1만명 가량 동유럽에 분산 위탁돼 자라다 스탈린 사후 격변 속에 집단귀국 당한 후 김일성 유일 체제를 위해 잊혀진 존재들이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북한에 관심을 가지다가 1990년대 중반까지 평양에 ‘이승만 괴뢰도당 타도’구호가 있었음을 알게 됐으며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는지 궁금해졌다. 김 감독이 작품 구상 및 제작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은 이승만을 향한 집요한 폄훼가 “오랜 세월 좌파들의 선동에 의한 부당한 평가”와 “북한의 공작” 탓이 컸다는 사실이다. 김 감독 자신이 북한에 호감 내지 환상을 가진 586세대 일반의 감성과 역사관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그 폐해 또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거짓의 선글라스를 벗으면 평생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았고 애국애족의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했던 한 노인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며 울먹였다. 한 네티즌의 댓글 “대한민국이 버린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위대함은 대한민국 국민만 모른다. 참담한 현실에 부끄럽고 한없이 죄송하다”는 심정과 고스란히 겹친다. ‘건국’ ‘산업화’ 없이 ‘민주화’는 불가능… 그러나 뒤틀린 역사교육 김 감독의 말대로 이승만은 “(파고들수록)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한 한국사의 유일한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 그렉 브레진스키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미래 비전과 안정된 보장 시스템이 존재해야 건국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듯이 “바로 그걸 이승만이 해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결코 일본의 패망으로 당연히 얻어진 게 아니었다. 김 감독은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경제 개발이란 기관차가 달린 것”으로 두 지도자의 시대를 요약한다. 핵심적인 통찰이다. 산업화를 통한 중산층의 성장 없이 이뤄지는 ‘민주’란 ‘인민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중국(중화인민공화국)도 모두‘민주’를 전면에 내세운다.문재인 정부 시절 현행 헌법에서‘자유’를 삭제하고자 시도한 행위의 의미와 그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알아차리게 됐다. ‘독재자’라는 꼬리표가 3대 세습체제 속에 신격화된 북한 권력자들에게 붙는 대신 변명없이 자진 하야한 이승만에게 당연한 듯 붙는 게 온당한지 이제라도 저마다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이승만=살인마’의 관점을 일반화시키면서 제주 4.3의 비극이 대한민국 수립 및 그것을 위한 한반도 유사 이래 최초의 보통 선거(5.10총선) 저지를 위한 남로당의 무장 폭거에서 출발한 것임은 도외시한다. 이것이 지난 30년 우리나라 제도권 안팎의 역사교육 현실이다. 놓칠 수 없는 ‘기적의 시작’ 권 감독의 20년 구상 끝에 태어난 ‘기적의 시작’은 공산주의가 유라시아 대륙을 뒤덮었던 시절 그 끝자락 한반도에서 어떻게 자유 민주공화국이 수립·유지될 수 있었는지, 이승만 덕분에 가능했던 대한민국탄생의 기적과 그것이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토대가 됐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독실한 크리스천의 면모도 조명했으며 원로배우 임동진의 이승만 재연으로 다큐 이상의 감동을 더했다. 백선엽 장군 인터뷰와 ‘기적의 시작’ 개봉 며칠 후 별세한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전 명지대 법정대 학장) 박사의 영상은 진귀한 역사적 자료가 됐다. 본인들의 생전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대통령 하야 후 전주 이씨 문중의 주선으로 이승만 슬하에 30세때 입적한 이 박사와 그 가족은 지난 60여 년간 이승만 죽이기의 실질적 희생자였다. 권 감독에 따르면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 박사가 기적처럼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한 마디 한 마디 온 힘을 다하듯 간신히 해독 가능한 발음으로 건국 대통령의 애국 열정과 말년의 부자(父子)인연을 증언한 모습이‘기적의 시작’에 실려 있다. 특히 망명 생활의 근거지였던 하와이에서 몇 개월 휴식한 이승만 내외가 귀국하려던 당일 한국 정부로부터 하와이 잔류를 종용당한 장면, 이후 우울 속 건강 악화로 현지에서 임종을 맞게 된 과정이 생생하게 회고됐다. ‘건국전쟁’에서 하와이 망명설이라는 거짓 뉴스 유포의 전후 맥락을 짚었다면 ‘기적의 시작’은 당사자들의 내면을 전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현대사 공부? 화제의 이승만 다큐 두 편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에 맞선 체제 정당성 대결의 최전선에 있다. 총선을 약 2개월 앞둔 시점에서 또 하나의 선거전이 될 수 있다. ‘서울의 봄’은 대다수 관객에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허구의 틀을 빌어 사실상 실존 인물과 역사를 거꾸로 해석한 상업영화다. ‘서울의 봄’이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적폐의 나라’라는 인식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반면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절체절명 위기와 우여곡절 속에서 이승만이라는 한 애국자가 지향한 가치를 되새긴다.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자유민주 헌법) 위에 박정희의 산업화(근대화)가 가능했다는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1979년 10.26으로 중단될 뻔한 산업화를 완결짓고 민주화 시대를 예비한 게 전두환의 신군부, 즉 제5공화국이다. 그렇다면 영화 ‘서울의 봄’이 기도한 신군부 악마화는 대한민국 헌정사의 부정 아닌가. 이원석 검찰총장이 몇몇 동료들과 ‘서울의 봄’을 관람한 인증 샷과 소감을 남겼다. 기존 민주화운동 세력의 신군부 서사에 충실한 발언이었다. 건국의 역사를 제쳐둔 채 민주화를 말할 수 있을까.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관람 권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 요인과 ‘73년생 한동훈’ 등 여당 인사들의 관람 필요성이 역설되기도 한다.
    • 주요뉴스
    2024-03-06
  • 3.1 독립운동 정신으로 4.10 총선 승리하자!
    ‘한국 NGO연합’ 및 ‘자유정의시민연합’의 글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3.1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이번 4.10 총선에서 3.1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좌파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자. 4.10 총선은 대한민국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차대한 선거다. 선거라기보다 제2의 6.25와 같은 선거전쟁이다. 4.10 전쟁에 나서는 국민들은 죽을 각오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 나 하나쯤의 자만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경각에 달린 나라를 구해야 한다. 자유대한민국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4.10 총선에서 반드시 자유 우파세력이 국회 다수석이 되어야 하는 것은 진정 역사적 대업이고 사명이다. 문재인의 5년과 더불당이 다수당으로 국회를 농단한 8년 동안 우파들은 충분히 경험했다. 다시는 무도한 반 대한민국 세력이 정부와 국회를 장악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적 합의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만에 하나 아직도 안일하고, 나약한 국가 정체성으로 대한민국 이념과 사상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차제에 분명하고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갖도록 분발해야 할 것이다. 영화 ‘건국전쟁’을 봤다면 자유의 가치를 정말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은 좌파시만단체와 협약을 맺어 그들에게 최소 10석의 비례대표 자리를 주기로 합의한 모양이다. 그들 대부분은 친북, 종북단체 출신들이며, 이념 측면에서 북한과 궤를 같이 하는 세력들이다. 따라서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을 많이 지지하게 되면, 극단적으로 친북, 간첩세력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 대한민국 최악의 시나리오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은 공산화되었다. 당시 미군 철수 후 미군이 남기고 간 많은 최신 무기와 보급품, 병력에서도 월맹군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던 월남이 왜 공산화 되었을까? 당시 월남은 월맹에 비해 정신력에서 이미 패했다. 그리고 정부, 군, 정치판에 월맹의 간첩들이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었다. 그것도 고위직에 자리했다고 하니 월남은 월맹의 손바닥 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떨까? 아마 지금의 대한민국도 그 당시의 월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에도 북한 간첩이 35만이 침투해 있다는 소리가 탈북한 북한 고위인사들을 통해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침묵은 동조와 마찬가지다. 간첩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떠할까? 오늘은 3.1 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그러나 독립운동 기념일행사를 할 정도로 나라의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해서 오늘 우리는 주사파와 친북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한 제2의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여 4.10 총선에서 좌파세력들을 패퇴시킬 것을 천명한다. 여기에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 등 위대한 선배들의 뒤를 이어 좌파세력을 척결하고, 자유우파세력 모두가 한 마음으로 4.10 총선 승리를 위해 진군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2024년 3월 1일 한국NGO연합/자유정의시민연합
    • 주요뉴스
    20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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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대학생들의 박정희 관’
    장진성 교수의 ‘일본 대학생들의 박정희 관’이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 어제 밤 일본 대학생들과 장시간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한국말을 잘하는 그들 때문에 우리는 서로 교감할 수 있었다. 국제외교정치를 전공하는 그들은 연세대와 고려대 유학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이 해안포를 발사하면 그 소리가 한국에서 보다 더 크게 들리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만큼 안정된 질서와 기나긴 평화에 체질화된 일본인들이어선지 분단 상황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이웃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컸다. 나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놀랍게도 일제히 ‘박정희!’라고 합창했다. 한국 대학생들에게서도 잘 듣지 못한 말을 일본 대학생들에게 듣는 순간, 전율 같은 감동이 솟구쳤다. 그들은 우선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장점을 "청렴함"이라고 했다. 미리 준비하고 서거한 것도 아닌데, 총에 맞아 급사했는데도 자기와 가족을 위한 비자금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에 일본이 3억 달러를 원조했을 때도 필리핀이나 다른 나라 대통령들 같은 경우 그 돈을 횡령하여 혼자만 부자가 된 반면, 박 대통령은 고스란히 국민을 위한 경제개발에 돌렸다는 것이다. 나는 어설픈 상식으로 김일성은 세습 권력을 위한 독재를 했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을 위한 독재를 했다며 분단시대의 두 長期(장기) 체제를 비교했다. 그러자 우리나라에선 ‘개발독재’라는 표현도 일본 대학생들은 ‘개발독선(獨善)’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비록 밀어붙였지만 결국은 옳지 않았느냐?며 오히려 그때 고속도로를 반대했던 이른바 민주투사들이란 사람들이 과연 역사 앞에 진실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전기를 아끼느라 청와대 에어컨을 끄고 파리채를 들었던 사실이며 서거 당시 착용했던 낡은 벨트와 구두, 화장실 변기에 사용했던 벽돌까지 그들은 박 대통령 일화를 참으로 많이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 들었는가 물었더니 박 대통령을 연구하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 '조갑제 닷컴'에서 출판한 박정희 전기를 모두 읽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우리 한국 대학생들 중 13권에 이르는 그 방대한 전기를 끝까지 읽은 학생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하고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박정희 대통령 덕에 살면서도 그 위업을 경시하는 한국의 현대사를 편향된 일방적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솔직한 역사 인식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국은 민주화의 역사만을 정당화한다고 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정작 한강에는 그 상징물이 없는 나라이다. 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그 자리에 세우는 것이 바로 역사 정립이고 후대의 예의가 아니겠냐며 한국은 일본의 과거를 자꾸 문제 삼는데 우선 저들의 현재부터 바로 세우라고 비판했다. 만약 박정희 대통령 같은 인물이 먼 옛날이 아니라 우리 부모 세대에 일본을 구원했다면 자기들은 우리의 가까운 역사로 자부심을 가지겠지만 한국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다며 매우 이상해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있을 당시 한국 대학생들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논쟁했던 이야기를 했다. 한국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박정희는 독재자일 뿐이고 왜 독재를 하게 됐는지, 그 결과가 과연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도, 분석하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치 그들의 주장은 논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고의 형식과 틀에 의존한 교과서 같았다. 박정희를 부정하면 마치 민주화 세대인 것처럼 자부하는 그들을 보니 아직도 민주주의를 모르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광우병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웃음으로 비판했다. 이념이나 국민건강 문제에 대한 우려를 떠나 시위자들의 사회적응 심리부터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일본은 어디 가나 ‘스미마셍’으로 통한다. 남에게 불편을 줄 때는 물론, 부를 때도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있다. 그래서 미안하지 않기 위해 거리에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공동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하며 자기 집 앞은 깨끗이 청소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잦은 시위들을 보면 남들에게 불편을 끼쳐서라도 자기들의 뜻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잘못된 국민 정서의 결정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용인되는 사회, 아니 법치에 도전해도 된다는 시민의식이 바로 한국의 대표적인 후진성이라고 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일본의 한류 열풍에 대한 이야기로 즐겁게 술잔을 나누었다. 나는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할 줄 아는 일본 대학생들을 위해 오늘 밥값은 내가 내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더치페이가 ‘민주주의’라며 각자 지갑을 열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감사함을 무엇으로든 표현하고 싶어 2차 노래방 값은 그들 몰래 내가 계산했다. 위의 장진성 교수의 글에서 일본 대학생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장점을 ‘청렴함’이라고 말했으며, 그리고 “박정희를 부정하면 마치 민주화 세대인 것처럼 자부하는 그들을 보니 아직도 민주주의를 모르는 나라”라고 말한 것을 보면, 현재의 우리 국민들의 심성(心性)은 뒤틀려도 한참 뒤틀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뒤틀린 것은 배은망덕(背恩忘德)하고 사대주의(事大主義)에 찌들어서 조상을 배척하고 남의 조상에 매달려 정신적 노예로 추락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국민들의 뒤틀린 심성(心性)의 시작과, 오늘의 현실은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요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조선인들이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러므로 조선 민족의 혼, 조선 민족의 문화를 상실하게 하라.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능과 악행을 들추어내되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모 조상들을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이 기풍이 되게 하라. 그렇게함으로서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갖게 하고,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하라. 그럴 때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동화(同化)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일본은 졌다.그러나 조선이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이 조선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사관을 심어놓았다. 결국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 일본의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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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5
  • 송영길 구속 이어, 그 다음은 누구일까?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300만원 씩 넣은 20개의 봉투를 윤관석 의원에게 주어 의원들에게 돌리게 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송영길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지난번 이재명에 대해서 범죄 혐의는 소명되나 그가 야당 대표이므로 여당과 언론의 견제를 받고 있어 증거인멸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영장을 기각했던 유창훈 판사입니다. 서울지방법원에 영장 전담 판사는 3명이고 그 3명이 매일 돌아가며 영장 심사를 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검찰에서는 그날 그날의 영장 담당 판사가 누가 될 것인가를 사전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유창훈이 당직인 날을 골라 송영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위 전당대회 돈 살포의 하위 책임자인 윤관석과 강래구가 위 유창훈판사에 의해 이미 구속된 바 있어 그 몸통인 송영길에 대하여 영장을 기각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또한 그가 지난 번 이재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후 국민들로부터 정치 판사라는 낙인이 찍혀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강남역에 유창훈을 비난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리고 ‘근조 유창훈’이라는 조화가 법원 앞에 줄지어 세워지는 등으로 그가 엄청난 시련을 맛보았기 때문에 함부로 기각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김명수가 서울지방법원 영장 전담 판사로 심어놓은 좌빨 판사인데 그런 그가 좌파 정치인 송영길에 대한 구속영장에 서명할 때 얼마나 그의 손이 떨렸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민심은 천심이며 역천자(민심을 거스르는 자)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차후에도 이러한 좌빨 판사들이 우리나라를 적화하려는 의도로 빨간물이 물들여진 엉터리 판결을 할 때 과감하게 그 분노를 표출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난 번 유창훈을 비난한 강남역 4거리의 현수막은 민심을 거스르는 좌빨 판사에 대한 분노 표출의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송영길은 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외에도 ‘평화와 먹고 사는 문제 연구소(먹사연)’를 통해 불법 정치 자금 7억 6,300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고, 그 중 여수 상공회의소 회장 박용하로부터 부터 받은 3억여원의 정치자금 중 4000만원은 박용하의 사업인 소각처리 시설 관련 유리한 입법 로비를 해 달라는 댓가로 받은 뇌물수수라는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송영길은 자기의 출판 기념회 석상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에 대하여 자기의 죄를 덮어 주지 않는다 하여 ‘어린 놈, 건방진 놈’ 등의 욕설을 하였고, 자신은 돈 봉투 돌릴 때 파리에 있어 돈 봉투 돌린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또 이것은 당 내 잔치로서 경미한 일이므로 나는 영장을 기각시킬 자신이 있다 라고 호언 장담하기까지 한 바 있습니다. 또한 그가 사건 관계자에게 전화한 것이 증거인멸이라고 하자, ‘전화한 게 무슨 증거인멸이냐?’라고 항변했다 합니다. 그냥 안부 전화만 한 것이라면 증거인멸이 아니겠지만 그가 돈 봉투 살포로 수사받고 있으면서 사건 관계자에게 단순 안부 전화만 했겠습니까? 앞서 본 바와 같이 좌빨 유창훈 판사가 송영길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좌빨 김명수 대법원장이 나가고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한 것도 강력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하겠습니다. 이에 대해 황교안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송영길을 향해 “구속영장을 ‘기각시킬 자신이 있다’며 허풍을 떨었다”면서 “자신의 증거인멸 행태를 방어권이라는 가당치도 않는 말로 둔갑시키며 온 국민을 속였으나, 결국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정당법 위반, 정치자금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 뇌물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내년 총선에서 비례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그의 얘기는 일장춘몽이었을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아니다. 이 역시 방탄막이었을 뿐이다. 앞으로 철저한 수사와 엄벌을 통해 사법 정의가 세워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송영길의 구속으로 돈봉투 받은 민주당 의원 21명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 될 것입니다. 송영길 구속 다음은 이재명, 그 다음은 문재앙, 그 다음은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를 월북으로 몰아 북조선에 의해 사살되고 불태워 죽게 만든 관련자 모두 구속될 것입니다. 최근 이재명의 왼팔이라는 ‘김용’이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송영길이 구속되는 등 사법적 정의가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악의 몸통 이재명이 대한 사법처리만 남았습니다. 불원간 그도 국립호텔에 들어가 국가가 공짜로 주는 음식을 먹을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총선 전에 선고될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 그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허위사실 공표)과 위증 교사입니다. 새 대법원장은 신속하고 공정한 판결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불원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송영길의 고등학교 후배로 경남 지역에서 사업을 한 A씨가 송영길에게 1억원을 후원했습니다. 검찰에서 송 전 대표에 대한 후원 경위와 자금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A씨를 불러 조사했는데, 심리적 압박으로 검찰 조사 직후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송영길의 구속 영장 발부를 앞두고 후원자가 죽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왜 좌파들 돈 거래 뒤에는 죽음이 뛰 따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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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0
  • 1등 차기 대선 주자 한동훈 장관의 총선 사용법?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철의 전조 현상인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시작되었습니다. 내년 4월 총선에 국힘이 패배하면 윤석열 정부의 기능은 상실하여 선장없는 나라가 되어 대혼란이 발생할 것입니다. 이런 혼란을 피하려면 임기 상관없이 결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내년 4월 10일 총선은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로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결국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죄명의 신임투표입니다. 총선이 불과 4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의 사퇴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비상상황에 돌입했습니다. 당은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당 대표와 비대위원장과 선대위원장은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총선 승리를 위한 첫번째 조건은 무엇보다 당원들과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지난 11월 30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총선 차출에 대한 국민여론조사에서 51.4 %가 찬성으로 나왔는데, 한동훈 장관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여권 내 독보적인 1등 차기 대권 주자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한동훈 장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일각에서는 한동훈 장관을 수도권 험지 출마를 거론하고 있으나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 듯 싶습니다. 물론 한동훈 장관은 당선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의석수 하나 보태는데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한 장관의 운신의 폭은 그의 출마 지역구로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선거 승리를 위해 총력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 후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한동훈 장관의 활용도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례대표가 되더라도 초선 의원으로 무시(?)를 당할 것입니다. 지역구에 나가도 위장 전입을 해서라도 중국, 북한의 해커와 프락치들을 총동원해서라도 당선을 방해할 것입니다. 가짜 뉴스에 대해 대처할 시간도 별로 없기에 험한 과정이 예상됩니다. 단지 1석을 더 얻자고 한동훈 장관을 국회로 보내자는 것은 소탐대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동훈 장관의 국회 진출을 반대합니다. 한동훈 장관이 내년 총선에 나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고 해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한동훈 장관은 국민적 인지도와 대야(對野) 공세 능력을 바탕으로 총선에서 막중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대위보다는 선대위원장으로 바람몰이를 하는 게 더 낫습니다. 선대위 때 조자룡처럼 적진을 휘젓고 다녀야 합니다. 히딩크 같은 한동훈 장관을 세워서 모든 기득권을 혁파하고 당을 제대로 혁신하여 내년 총선에 승리하여 국민들에게 희망을 줘야 합니다. 인재들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한동훈 장관은 법무부 장관일 때 빛이 나는 것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장관 자리 내려 놓지 말고, 윤석열 대통령 임기 동안은 법무부 장관 자리를 지키면서 불법 도적떼들을 말끔히 청소해야 합니다. 박쥐 DNA를 가진 철새들은 중직에서 반드시 제외시켜야 합니다. 이제 그만 속기를 바랍니다. 한 번 속을 땐 속이는 놈이 나쁜 놈이지만 두 번 속을 땐 속는 놈이 더 나쁜 놈입니다. 정권 탈취 당하고, 국가 안보 해체 당하고, 경제 무너지고, 교육도 역주행 하고, 표도 도적질 당하고, 사법부 무너져도 정신 차리지 못하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 나야 합니다. 박쥐나 자유민주주의를 대적하는 반역자를 중직에 세우면 자기 주군을 적장에게 넘기는 매국노 노릇을 하게 됩니다. 제발 정신들 차리기 바랍니다. 현재 여당 내에선 원희룡 장관이 차기 비대위원장 후보로 가장 많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정치인으로 당내 현안에 익숙하고, 초대 내각 인사로서 尹대통령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입니다. 한동훈 장관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세우고 “국민의힘에 새바람이 분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기를 바랍니다. ‘새바람이라는 의미는 국민의 힘이 변한다는 말이며, 국민의 힘이 참신해진다는 뜻이며, 국민의힘이 새롭게 탈바꿈한다는 뜻입니다. 좌파가 가장 겁내는 사람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입니다. 대통령과 함께 총선에 이겨서 썩어빠진 좌파 이념을 개몽하여 정의롭고 상식이 통하는 하나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한동훈 같은 인물은 아껴 써야 합니다. 이회창, 최병열, 서청원, 강재섭, 안상수, 홍준표, 황교안, 이준석, 김기현까지 당대표 출신으로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총선 후에는 국무총리가 되어 차기 대권을 노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원희룡 비대위원장, 한동훈 선대위원장이 딱입니다. 단, 부정선거 못 막으면 민주당 200석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윤석열 대통령이라면 한동훈 장관의 출마를 반대할 것입니다. 오히려 법무부 장관으로서 부정선거가 되지 않도록 오히려 총력을 다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용인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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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9
  • 영화 ‘서울의 봄’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좌파들의 선전∙선동 영화가 개봉을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적 문제를 소재로 다룬 좌파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10일만에 관객 수 300만명을 돌파했으며, 14일만에 관중 500만을 돌파하고, 20일만에 700만명을 넘었으며, 1000만 관객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안민석이라는 넘은 “관객 1000만 돌파하면 윤 정권 무너진다”고 악담을 하고 있습니다. 이재명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역사는 순풍에 돛을 단 유람선처럼 오지 않았다. 어느 곳 하나 성한 데 없는 상처 투성이의 모습으로 수많은 주권자의 피를 먹으며 자라났다”고 말했으며, 12.12에 대해 “44년 전 오늘, 독재의 군홧발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짓밟았다. 나라를 지켜야 할 총칼이 국민에게 부여된 권력을 찬탈했다”고 했습니다. 이재명은 “잊지 않겠다. ‘서울의 봄’이 저절로 오지 않았음을 똑똑히 기억하겠다. 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도록, 사적 욕망의 권력 카르텔이 국민의 삶을 위협하지 않도록 비극의 역사를 마음에 새기겠다. 절망적인 후퇴를 반복하는 것 같아도 역사는 늘 전진한다. 결국 민주주의를 쟁취해 낸 국민의 발자취 앞에서, 군사 반란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참된 군인들의 영령 앞에서, 역사의 퇴행을 막아내고 국민의 삶을 지키겠노라 다짐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김용삼 대기자는 “12.12 반란의 주범은 정승화와 장태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전두환 대통령의 살신성인의 12. 12 결단이 없었다면 민주화를 가장한 주사파 세력들에 의해 대한민국은 지금의 남미 꼴이 되었을 것이며, ‘서울의 봄’이 아니라 ‘평양의 봄’이 되었을 것입니다. 공산 적화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중북 주사파 세력의 거짓 선전 선동, 기만 전술에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1000만명 내외의 관객이 몰렸던 한국 영화의 대다수가 대선이나 총선이 치러지는 시즌에 맞춰서 개봉을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알고 계십니까? 젊은이들의 수백만 표를 끌어 가기 위한 선거 전략입니다. 4년 전에도 21대 총선 전에 10. 26을 다룬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영화가 개봉하여 박정희 대통령과 우파 이미지 죽이기를 하였듯이, 올해에도 11월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은 12.12 ‘국난 극복’을 ‘군사 반란’으로 규정 짓고, 군을 혐오 집다능로 만들며, 망자가 된 전두환 대통령을 독재자와 학살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2007년에 개봉된 ‘화려한 휴가’는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5.18에 대하여 다룬 영화로써, 누적 관객수 685만명이었으며, 그해 12월에 있었던 대선을 노렸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승리했다는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2012년 대선을 3개월 앞두고 그해 9월에 개봉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노골적인 노무현 옹호 영화로 이병헌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했으며, 관객수 1200만명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노무현 향수를 자극해 문재앙에게 표를 몰아주기 위한 용도였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어 저들의 꿈이 잠시 무산되었습니다. 다시 젊은이들에게 노무현 신화를 일께워주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 2013년 말에 선보였던 영화 ‘변호인’이었으며, 관객수는 1138만명으로, 좌파 전문 배우 송강호가 나옵니다. 2017년에 개봉된 영화 ‘택시 운전사’는 같은 목적으로, 관객수 1218만명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앙 집권 뒷풀이 굿판이며, 대한민국 적화의 신호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12.12 사태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79년 10월 26일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사건으로 국가 요직과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하여 국가 원수가 살해를 당한 초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하여 수사하는 과정에서 12.12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때 군대 내의 권력 다툼에 대해 만든 것이 ‘서울의 봄’입니다. 이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 과정에서 국군의 중요 보직에 있었던 사람들과 당시 보안 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장군과의 힘 겨루기를 보여 줍니다. 결과적으로 나중에 대통령이 된 전두환 대통령은 악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선하다는 식의 프레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 ‘서울의 봄’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 ‘사)국군명예회복운동본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 평론가들은 1979년 ‘신군부’와 현 ‘신검부’를 억지로 연결 지어 22대 총선에서 보수진영에 악영향을 주려고 작심이라도 한 듯이 픽션이라는 방어막을 치고 실제와 허상과 각색을 넘나들면서 전두환을 전두광 악마로 만들고 군을 쓰레기 집단으로 격하시키고 싶었겠지만, 어찌된 일인지 전두환 대통령의 실제 카리스마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10·26과 12·12의 진실을 아는 우파가 이 영화를 보면 전두환 대통령의 카리스마 리더십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전두환 대통령의 7년 통치 기간을 ‘대한민국의 봄’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12·12 구국 결단이 없었다면 ‘평양의 봄’이 잠시 존재했을 것이다. 좌익들의 주기적인 선동 영화에 역사관이 형성되지 못한 학생들마저 영화의 피해자가 되거나 ‘연예인들이 문화전쟁에 더 이용당하지 않도록 12·12와 5·18의 진실을 압축해서 말하고자 한다. 첫 번째 진실은, 12·12는 군사 반란과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김재규의 패륜적 쿠데타를 진압한 국가 위기 극복의 역사다. 12·12는 패륜범 김재규가 궁정동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弑害)할 때에 정승화 참모총장은 시해 장소인 궁정동에 있었고, 시해범과 같은 차를 타고 육군본부 벙커로 갔으며, 김재규가 시해범임을 알면서도 권한 대행 대통령에게도 보고하지 않았고 비상 국무회의에서 침묵 등 시해 가담 혐의점이 있어서 참고인 조사를 위해 정승화를 연행하는 과정에 일어난 합수부 측과 정승화 총장 수사를 반대하던 군부 세력과의 충돌이었다. 역사는 현상계로 존재하기에 가정이 의미가 없지만, 1979년 12월 12일 만약 정승화가 연행되지 않았더라면 김재규는 복권되어 정승화와 함께 철권 정치와 군정을 시작했을 것이고, 김재규와 정승화는 권력을 위해 패악을 저지른 악인들이었기에 최악의 독재를 했을 것이다. 정승화 총장 연행에 실패하여 김재규의 군사독재가 열렸다면 1980년 서울의 봄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서울의 봄’ 영화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동남아 후진국 군부 정치를 겪고 있을 것이다. 전두환이라는 구국 대통령 덕분에 군을 혐오하고 역사의 진실을 호도하는 ‘서울의 봄’ 영화를 상영해도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진실은, 전두환 구국 대통령을 악마로 만든 것은 5·18 특별법 제정과 12·12, 5·18사건 상고심 선고공판과 역사 뒤집기였다. 김영삼 정권 출범 직후인 1993년, 검찰은 12·12 관련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공소를 기각했지만, 1995년 노태우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던 김영삼 정권은 정치적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12·12의 정당한 법 집행을 위한 합수부 수사는 ‘반란’으로, 5·18의 광주 ‘폭동’은 ‘민주화운동’으로 역사 심판과 규정이 180도로 바뀐다.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라 최악의 역사 뒤집기였다. 1995년 12월 21일, 5·18 특별법은 김대중에게 불법 정치자금 약점이 잡힌 김영삼의 정치 야합과 추악한 거래가 빚은 입법 참사였다. 거짓과 공작 정치가 역사에 개입하여 만든 5·18 특별법은 철저한 반공 국가였던 대한민국을 좌경화시킨 비극의 출발이었고, 지금의 좌우 진영의 극한 대립을 초래한 원죄였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로 열린 12·12, 5·18사건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12·12 사건은 김재규 일당의 패륜적 거사와 쿠데타는 묻히고, 구국 차원의 합수부 조사와 합수부장을 했던 전두환 대통령은 ‘군사 반란’과 ‘군사 반란 수괴’로 몰렸다. 북한의 5·18 모략 전쟁과 김영삼 정권이 5·18 반역의 역사를 민주화 역사로 뒤집은 추악한 정치 전쟁에 전두환 대통령이 희생이 되었다. 역사가는 김영삼 정권의 IMF 경제 위기 초래는 독선과 무능의 결과였고, 12·12와 5·18 역사 왜곡은 무지하고 무도한 대한민국의 정체성 파괴이며, 김영삼의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은 자기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구국의 영웅을 무너뜨린 악행이었고, 정치적 판결로 사법 쿠데타를 자행하여 대한민국이 5·18의 인질이 되도록 만든 국가 정체성 전복 사건으로 정리할 것이다. 세 번째 진실은, 5·18은 북한 악마들의 모략 전쟁이자, 먹고 먹히는 정치 전쟁이다. 5·18은 적화통일의 기회만 엿보던 김일성이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적 혼란을 틈타 특수 공작조를 은밀하게 침투시켜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군인과 경찰 복장으로 위장하여 민간인을 살해하여 소요 군중을 흥분시키고 진압 군경을 무자비하게 살상한 세계 전사에서 볼 수 없었던 북한 악마들의 모략 (謀略) 전쟁이었다. 5·18은 미 국무부가 기밀 해제한 문건에서 ‘김대중 추종자들(Kim Daejung followers)’과 ‘북한 민간 공작대원들(North Korean Agents)’이 개입하여 벌어진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안기부 작성 문서에는 김대중을 "광주 사태의 배후 조종자", "북한 연방제 추종자" 등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북한은 북한을 이용하여 정권을 찬탈하려고 했던 5·18 김대중 추종자들을 인질로 잡고 대한민국을 적화시키려고 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추종자들은 뱀이 뱀 꼬리를 물 듯이 김영삼의 정치자금 약점을 잡았고, 약점이 잡힌 김영삼 정권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덮기 위해 김재규의 패륜 쿠데타를 진압한 12·12를 ‘군사 반란’으로 매도하고, 5·18 국난 극복 계엄군을 학살자로, 폭동을 민주화운동으로 탈바꿈시키면서 계엄군 지휘선상에 없었던 전두환 대통령에게 ‘내란’과 ‘내란 수괴’로 뒤집어 씌우는 악마의 대리 심판을 했다. 우리는 ‘서울의 봄’ 영화를 본 사람들과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상기 3가지 진실을 먼저 읽고 거짓과 허상의 영화를 보길 바란다. ‘서울의 봄’ 영화 감상은 2시간 21분이 걸리지만 12·12와 5·18 진실은 5분이면 바로 깨달을 수 있다. 2007년 5·18을 다룬 ‘화려한 휴가’에서는 집단 사격을 기정사실처럼 다루어 계엄군을 악마처럼 편집했지만 집단 사격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서울의 봄’ 영화가 아무리 군을 혐오집단으로 추락시키고 ‘국난 극복’을 ‘군사 반란’으로 매도해도 대한민국 국군은 국민을 위한 충성심은 변함이 없고, 구국 영웅의 카리스마 흔적은 절대로 지우지 못할 것이다.” 현재 이 영화는 청년들이 가장 많이 보고 있는데, 장태완이 “국가 반역 역도들을 처단하러 가자”는 대사가 나오면 젊은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청년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년에 있는 총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영화 하나로 종북 주사파들은 노태우 이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일거에 반역으로 몰아 버리는 선동 영화입니다. 청년들은 그것도 모르고 영화가 잘 됐다고 난리입니다. 종북 주사파는 소리없이 대중 문화에 침투하여 30~50대까지를 종북 주사파의 좀비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위대한 전직 대통령들을 두고 우리 자녀들은 주사파의 문화 선동과 세뇌, 거짓, 왜곡의 영화와 드라마 중독에 빠져 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영화라는 무기로 젊은이들을 종북 주사파의 홍위병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영화관람 연령’이 “12세 관람가”입니까?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의 광고를 보면 “12세 관람가” 등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보호자 없이도 만 12세 이상이면 관람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잠시 ‘법적 또는 일반적 연령 구분’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어린이’는 ‘6~12세’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는 18세 이하를 ‘미성년자’로 구분하여 보호자 동반 없이 영화관람 불허가 대세입니다. 아울러 20세 이상은 ‘성인’이므로 독자적 행동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청소년(기본법)’은 ‘9~24세’를 말하며, ‘청소년(일반적)’은 ‘13~18세’까지를 말하며, ‘성인’은 ‘20세’ 이상을 말합니다. 위의 기준을 고려하면 영화 “서울의 봄”이 얼마나 파격적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영화는 ‘어린이용 내지 청소년용’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보기 곤란한 폭력적 장면이 하나도 없고 성인들의 드잡이질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추측건대 대립과 투쟁이 다분할 듯싶은데 정말 어린 청소년들이 보기에 적합한 내용들이란 말인가요? 저는 영화를 즐기지 않는 관계로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제목의 의미 그대로 어린아이들까지 관람 가능한 ‘봄바람 같은 애정 영화’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권장할 만한 내용이 결코 아닐 것만 같은데, 어찌하여 ‘12세 관람가’로 허가되었는지 점점 더 의심이 짙어질 뿐입니다. “서울의 봄”은 【화려한 휴가’, ‘택시 운전사’, ‘광해-왕이 된 남자’, ‘변호인’, ‘남산의 부장들’, ‘헌트’】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의 및 허가 당사자로부터 그 떳떳하고 당당한 근거와 이유를 밝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영화들이 정치적, 이념적 도구로 악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내년에 있는 총선에서 보수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장하려는 것입니다. 이미 포항에서 초등학교 학생 단체 관람을 추진했다가 논란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서울의 송례 초등학교가 6학년 학생들에게 단체 관람을 추진했습니다. 중학생들에게 단체 관람을 하는 것도 지나친 것인데, 초등학생들에게 정치 영화를 단체 관람을 시키는 교장은 정신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교장이라는 사람이 초등학생들에게 정치학습을 시키려는 의도인 것 같은데, 아마 전교조 소속일 것 같습니다. 미성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작되고, 왜곡되고, 과장돤 좌파 영화를 강제로 단체 관람시키는 것이 정상입니까? 저걸 12세 이상 관란 가능으로 심의한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지유민주당 대표 고영주 변호사는 “‘사실적 허구’라는 거짓 역사를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에 있는 그대로 사실로 받아 들이는 우리의 청년 세대, 이를 부추기는 좌파 언론들. 12.12 반란 주범은 정승하와 장태완입니다.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은 반란을 진압한 주인공입니다. 이후 출발한 제5공화국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국민이 가장 살기 좋았던 시기였습니다. 이게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의 번영과 안보가 가능했을가요? 전두환 대통령의 공은 묵살하고, 매도만 하는 것이 온당한가?”라고 말합니다. 훗날 대한민국이 몰락했다면 원인은 바로 국가적 재앙인 문화계의 일탈, 즉 영화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것에 맞서는 담대한 문화 전쟁의 선포 없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화 등 문화계의 반(反)대한민국 질주는 멈춰야 합니다. “지원하되 간섭 않겠다”는 잘못된 원칙부터 버려야 합니다. 12.12 사건을 편향된 시각으로 다룬 ‘서울의 봄’은 그 당시에 태어나지 않았던 MZ 세대와 학생들을 겨냥해서 600만 유료 관객을 넘어, 강원도와 충청도 지역에서는 전교조의 주도 아래 무료 상영 중이라고 하는데, 국힘당은 왜 손을 놓고 있습니까?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뭘 하고 있는 것입니까? 김일성 왕조의 대남 적화 전략에 영화계가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면 문체부 장관 자격이 없습니다. 문체부 장관 정신 차리세요. 빨리 대응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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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3
  • 김일성 회고록이 출판되는 대한민국이라니!
    지난 2021년 논란이 됐던 김일성 자서전인 「세기와 더불어」라는 항일 회고록을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판매금지 가처분을 낸 사건에 대해서 사법부에서 "기각 처리"를 했습니다. 다시 말해 판매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전두환 대통령이 쓴 「전두환 회고록」은 오래 전에 '5·18역사 왜곡'이라는 구실로 판매 금지, 금서 조치해 놓고 김일성 회고록은 시판하다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김일성 항일 투쟁 역사 날조판 찬양·선전물을 어찌할꼬! 이러다가 김일성 동상까지 세워지지 않을까요? 사안에 따라서 엇갈리는 표현의 자유, 여기가 대한민국 맞습니까? 이번에 전범 김일성 미화를 합법화 판결을 한 판사는 두 사람 모두 전남 보성 및 장흥의 전라도 출신입니다. 이들의 이름(재판장 박병태, 인진섭, 권경선)을 기억합시다. 김일성의 회고록 출판에 대한 전 총신대 총장이요, 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회고록이란 우리가 살아온 내용을 글로 남기는 것이다. 회고록은 자서전이라고도 한다. 회고록은 주로 대통령을 지냈거나, 성공한 기업인들이 많이 출판했다. 그런데 어떤 회고록은 그 내용 때문에 후일 송사에 시달리기도 했다. 또 어떤 회고록은 대박을 쳐서 엄청난 돈을 벌기도 하였다. 미국의 어느 대통령의 회고록은 약 400만불의 떼돈을 받았다고 한다. 나이 늙으면 누구나 자기가 걸어 온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그런데 회고록이란 것이 자기가 직접 쓰는 것은 흔치 않다. 정치인, 경제인 등 유명인사들은 녹음이나 구술, 인터뷰한 것을 회고록 전문작가들이 그럴싸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대부분이라 한다. 나같은 사람은 미련하게도 벌써 15년 전에 회고록 「은총의 포로」란 제목으로 책을 내었다. 종이에다 펜으로 긁적인 것이 500여 페이지나 되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이제는 수정증보판을 내어야 할 판이다. 회고록이란 당대의 역사적 기록으로 소중한 것은 맞지만, 매우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데다 미화하거나 자랑일 때도 있다. 그래도 그런 것은 비하인드 스토리로서 역사 연구에 참고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란 책 전집 8권이 출판되어서 벌써 100질이 팔렸다고 한다. 김일성은 6·25한국 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다. 김일성은 가짜다. 김일성은 공산주의 나라를 건설한 자다. 그런데 그가 항일 운동을 했던 김일성의 이름을 도용했던 것이다. 이 방면에 정통한 기자들의 말을 빌리면, 그의 회고록은 철저하게 김일성 왕조를 만들어 3대에 걸쳐서 인민을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만든 거짓된 기록이다. 이른바 종북주의 거짓 기록물이 대한민국 땅에서 인쇄되어 교보문고에서 팔고 있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북한 공산당이 선전선동에 능한 것은 다 알지만 「김일성 전집, 세기와 더불어」란 회고록이 겁없이 서울 한복판에 출판되고 팔리는 것은 결국 중북 정부와 짜고 하는 것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자유 우파 쪽에서는 김일성 회고록 출판의 이적성을 지적하고, 판매 중단을 하고 법적으로 대응했다. 그래서 판매는 중단되었다고는 하나, 벌써 한국의 중요 대학과 연구소 그리고 관심자들이 다 구입해 버린 후였다. 지난 4년동안 대통령과 정부 관리들, 국회와 법조, 언론들이 좌클릭한 것은 세상이 다 알지만, 이번 일도 이 정부와 지도자들의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하기는 전에도 김일성 회고록이 출판되어 법적으로 이적출판으로 지목되었는데, 정권 말기에 다시 이 짓거리를 했고, 당국에 고발조치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중북행위가 당국에 고발되어 봤자 소용없다. 검찰은 소송도 안하고 차일피일 서류를 깔아 뭉개면 그만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울산 시장 선거의 청와대 공작사건이다. 일년동안 덮어 두었다. 그런데 더욱 한심한 것은 야당 '국민의 힘' 중진의원 H 모 국회의원이 김일성 회고록의 출판을 적극 찬성하고 나섰다. 그 분은 북한에 대한 정통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맞고, 그 방면의 책도 쓴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야당 국회의원이 자기의 진보적 색깔을 나타내려고 김일성의 회고록 출판을 찬양하고 나서다니 여당도, 야당도 결국은 믿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는 어느 시대인데 김일성 회고록쯤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나, 결과적으로는 오늘의 종북 분위기에 불을 지른 꼴이 되었다. 그의 주장을 보면, 공산주의와 대화하면 평화의 화해 모드를 만드는데 야당도 함께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야당에서는 왜 그자의 말에 문제 제기가 없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한국교회의 원로목사님들의 발언도 우리의 비위를 건드리고 있다. 우선 한국에서 존경받는 K목사님은 "불교의 템플스테이가 참으로 훌륭하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불교의 템플스테이는 정부의 막대한 자금지원을 받아 외국 관광객을 유치해서 실효를 거두었다고 한다. 심지어 어느 신학교에는 졸업 전에 타종교의 체험 차원에서 템플 스테이를 체험해야 한다고 한단다. 참으로 괴기한 세상이 되었다. 기도원에 가야 할 사람이 사찰에 가서 참선도 하고, 스님의 설법도 듣는 것을 공식 프로그램에 넣다니 한국교회의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템플 스테이를 예찬하는 목사님은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분인데 참으로 안타깝다. 결국은 모든 종교는 똑같다는 종교다원주의(Religous pluralism) 사상이 입력된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한분의 한국교회에서 존경받는 원로 목사님은 철저히 공산주의 사상에 의식화된 종북주의자 이인영을 높이고, 그를 가르쳐서 기독교 사회주의를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또한 평양을 자주 들락거리던 목사들이 할 말을 못하고 허튼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김일성 우상운동에 동조자가 생기고 있으니 참으로 한국교회의 앞날이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흡사 오늘 여당 이름과 꼭 닮았다. 아마도 그 당의 이름도 김일성 종북사상에서 나왔으리라 짐작한다. 종북 정치권도 문제지만 거짓의 아이콘, 김일성을 닮지 못해서 애타하는 오늘의 한국교회 원로들, 눈 막고, 귀 막고, 입 닫고, 자유니 평화니 하면서 종북 세력에 아첨하는 원로들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큰 걱정이다. 도서출판 민족사랑방이 김일성을 저자로 해 지난 2021년 4월 1일 출간한 '세기와 더불어'(8권 세트)는 과거 북한 조선노동당 출판사가 펴낸 원전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 왜곡 및 법 위반 등 논란이 일어 났으나,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가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출간 이후 논란이 이어지자 결국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대법원이 이적표현물로 판단한 책을 산 독자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고객 보호 차원에서 신규 주문을 받지 않기로 했다"며 "정치적인 이슈나 판단과 무관하게 고객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책은 출판사와 서점 간 직거래 방식이 아니라 800여 개의 국내 출판사가 조합원으로 가입한 출판인단체 한국출판협동조합을 통해서만 온·오프라인 서점에 유통되었으며, 현재까지 전체 주문량은 100여 부로 알려졌습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김일성 회고록은 상당 부분 허구인데 미사여구를 동원했다고 해서 우상화 논리에 속아 넘어갈 국민은 없다"며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통제해야 한다는 건 국민을 유아 취급하는 것이다. 국민을 믿고 표현의 자유를 보다 적극적으로 보장하자"고 말했습니다. 광주지방법원은 2018년 5월 14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재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에 대해 허위사실 삭제 없이는 출판과 배포를 할 수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이를 어기면 1회당 500만 원을 내야 했습니다.지난 2017년 말 4개 5·18 단체들이 낸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입니다.회고록 가처분 결정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지난해 8월에도 법원은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 허위사실을 적어 5·18 관련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5·18 단체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법원은 회고록에 기재된 내용 중 33가지가 허위사실로 인정된다며 해당 내용을 삭제하지 않으면 출판·배포를 할 수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이후 문제가 된 부분을 검게 가린 뒤 회고록을 재출간했습니다. 그러자 5·18 단체들이 또 다른 40개 구절이 허위사실이라며 재차 가처분 신청을 냈고 그에 대한 판단이 이번에 나온 것입니다. 법원은 40개 구절 가운데 36개를 허위사실로 봤습니다. 잇따른 법원 결정에 전 전 대통령 측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회고록을 집필한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어제(17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체주의 국가도 아니고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을 출판 못 하게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주장하면서 “5·18단체가 국민의 기본권인 출판의 자유를 해치는 이런 식의 조치를 계속하는 것은 5·18 단체들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지난해 가처분 신청 때도 '출판의 자유 침해'를 거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30년의 침묵을 깨고 결국 출간되었습니다.
    • 주요뉴스
    2023-12-11
  • 시원하다 못해 뼛속까지 시린 김동길 교수의 애국 발언입니다.
    시원하다 못해 뼛속까지 시린 김동길 교수의 애국 발언입니다. 정말로 모든 것이 다 대통령에게 책임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무리한 요구일 것입니다.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나는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도 물어 봐야 할 것입니다. 제35대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의 “Ask not what your country,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라는 말이 기억납니다. "아~ 5·16 신의 은총이 이 땅에 내린 날" 위대한 박정희의 등장에 최대 피해자라고 자처하는 60년 전통 야당의 명백을 이어 오고 있다는 좌파들은 사실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 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박정희가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자! 싸우면서 건설하자"고 당시 국민들과 피와 땀을 흘릴 때, 당시 야당 정치인, 좌파들은 박정희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 발목 잡기에 혈안이었으니까! 아무 것도 한 일도 없이 그들도 뒤로는 역시 부자가 되었지 않는가? 박정희가 공업 정책을 세우면, 농업정책이 우선이라고 거품을 물었고, 고속도로를 닦는 현장에 당시 김대중은 땅바닥에 드러 누워 발광을 한 것은 당시 신문 보도, 사진으로도 남아 있지 않는가? 그때의 야당 정치인들과 오늘 박정희의 딸 박근혜 정부의 3년여 동안 반대와 발목잡기에 혈안인 야당과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독자들 중에 누가 한번 대답 좀 해보시라! 위대한 박정희는 당시 오늘과 같은 반대를 제2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유신을 일으켜 기여코 한강의 기적을 창출케 했다. 정말로 위대하고 또 위대했다. 이런 말은 글이나 쓰고, 말이나 해서 먹고 사는 이 나라 언론인, 평론가, 정치인들은 공개적으로 못하는 말이다. 우리 같은 쫄장부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지! 혹자는 박정희를, 공과를 따져 가면서 평을 한다! 혹자는 박정희가 준 민주 질서를 파괴한 독재자라고 악평을 한다. 정말 구상유취 같은 소리들을 하고 있다. 박정희는 우리 민족 5천년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박정희가 민주 질서를 파괴한 독재자라고? 인간의 탈을 쓰고 살아 가는 사람이라면 비록 입은 삐뚤어 졌어도 말만은 바로 하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먹는 것을 해결해 주고, 오늘 세계에서 10번째로 잘 살게 해주고, 세계 5대 첨단공업국, 6대 무역 강국,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워준 위대한 박정희를 욕하는 자들은 인면수심의 동물 같은 자들이다. 위대한 박정희는 모든 것을 혼자 질머지고 저승세계로 갔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인간들! 너희들은 얼마나 잘 났고, 얼마나 완벽한 인간이길래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찾냐? 도대체 너희들의 민주주의는 뭐냐? 너희들 좌파 정권 10년동안 무얼 했냐? "군사 쿠테타가 필요한 사태" 현직 대학교수가 자신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반세기전 했던 군사 쿠테타가 다시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자유당 이래로 관행화된 언론, 대학, 야당들의 무책임이 극에 달해 군사 쿠테타를 불러 왔다."고 밝혔다. 이어 "50년전 군사 쿠테타가 필요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반세기전 정치부패와 민생파탄에 빠진 조국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군사 쿠테타를 선택했고, 이후 조국 근대화의 위업을 달성했던 자랑스런 국군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고 말했다. "조국을 구할 애국 군인들이 다시 한번 나설 때"라고 말했다. "비상계엄과 국회 해산이냐 아니면 처참한 종말이냐 오직 둘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은 쿠테타를 한번 경험해 봤기 때문에 쿠테타의 가능성도 열어 두고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1992년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저서로는 「국가경영 : 국가개조의 리더십」, 「한국 정치와 현대 정치학」 등이 있다. "첨언하는 말" 이런 생각을 하봉규 교수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주고 받는 것을 들었다. 종북 세력이 이렇게 난동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국민의 뜻에 따라서 국민의 자유의사 선거에 의해서 당선된 대통령을 사퇴하라는 세력은 전부 잡아서 지옥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도 좋고, 언론도 좋지만 헌법을 부정하고 국법 질서를 부정하는 종북 세력은 이 나라에는 필요없는 인종들이다. 자기 개인의 출세욕, 무리들의 출세욕 때문에 국가를 망치는 세력들은 지옥으로 보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자유가 좋고, 언론의 자유도 좋다. 그것이 무제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고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국가의 안녕 질서와 국민의 권익을 위해서 국권을 훼손하는 무리들을 척결할 때가 왔다. 이것을 그냥 두면 개미 구멍으로 방천이 무너지듯 국가가 위험해진다. 설마 하지 마라. 설마가 사람 잡는다. 나라가 상처를 받으면 우리 민족이 100년 ~ 200년이 걸려도 회복하기 힘든다. 세계의 역사를 보라.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 만에 나라를 찾았는가? 국정원은 더 강해져야 한다. 이스라엘에는 유명한 정보기관 '모사드'가 있다. 이 모사드가 있기 때문에 아랍제국의 협박고 압력 속에서 건장히 살아 간다. 이스라엘 국민은 모사드가 있어서 나라를 지키고 국민이 행복하게 살아 간다. 조국을 위해서 궐기하자. 이 혼란한 나라를 구해야 한다. 군사 쿠테타가 오기 전에 우리나라를 재건하고 구해야 한다. 종북세력 제거하고 조국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하는 것도 애국자다. 장성택처럼 육신의 벌집을 만들고 재가 되어 날아 가고 싶은 사람은 종북을 하라. 차라리 종북의 본거지로 가라. 잠에서 깨어라. 기지개를 켜라. 내일이면 늦다. 오늘부터 하자! 국민들이여! 조국을 구하고 민족을 구하자.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좌파들이 대통령을 헐뜯으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며 매도하려 발버둥 치는 것을 보니, 혈육의 정까지도 냉정하게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청렴결백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이 나라에 진정한 지도자는 누구였던가? "보릿 고개 굶주림은 박정희 대통령때 없어 졌고, '간첩 잡자'는 말은 김대중, 노무현때 없어 졌다."
    • 주요뉴스
    2023-12-07
  • 나는 ‘44번 버스’를 타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산의 44번 버스는 일신여객에서 해운대에서 당감동까지 운행합니다. 1982년 개통된 이후 2023년 현재까지 41년동안 노선변경없이 운행 중입니다. ‘버스 44’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2001년에 제작된 홍콩의 영화로 데이얀 엉 감독의 단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부산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어 알려졌다가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 칸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중국의 한 시골길을 버스가 달리고 있습니다. 길가에서 차를 기다리던 청년이 손을 흔들어 버스를 세웠습니다. 2시간이나 기다렸다는 말에 젊은 여자 운전수는 싹싹하고 친절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뒤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승객을 가장한 2인조 강도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두 강도는 승객들의 금품을 모두 빼앗고 아무 것도 내놓으려 하지 않는 승객들을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운전사를 흝어 보고는 강제로 끌어 내렸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모른 척 하고 있었는데, 청년 혼자 강도들을 막아 보려 했지만 두 사람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2인조 강도를 말리다가 심하게 얻어 맞았습니다. 급기야 양아치들이 버스를 세우고, 여성 기사를 숲으로 끌고 가서 성폭행을 했습니다. 한참 후 돌아 온 여성기사는 아까 양아치를 제지했던 청년에게 다짜고짜 “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청년은 황당해 하면서 “나는 아까 도와 주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니까, 기사가 소리를 지르면서 “당신이 내릴 때까지 출발 안 한다.”고 단호히 말합니다. 청년이 안 내리고 버티고 있으니까 승객들이 그를 강제로 끌어 내리고 그의 짐도 던져 버렸습니다. 그후 버스가 출발했는데, 기사는 커브 길에서 속도를 가속해서 그대로 낭떠러지로 추락하였습니다. 강제로 하차 당한 청년은 아픈 몸을 이끌고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사고 현장을 목격하였습니다.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이 말하기를 ‘버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승객이 모두 사망한 사고’라고 합니다. 청년이 멀리 낭떠러지를 바라보니 조금 전에 자신이 타고 왔던 그 44번 버스였습니다. 그 여성 운전기사는 오직 살만한 가치가 있었던, 유일하게 양아치들의 소행을 제지했던 그 청년을 일부러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 모른 척 외면했던 승객들을 모두 죽음(지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여자 운전사는 자신의 치욕과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던 승객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던져 복수하는 모습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회의 불의나 부정을 보고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입을 다물고 몸을 사리는 현실에 대하여 ‘공멸’이라는 가르침을 주고자 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독일의 히틀러의 광기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 목사는 “만일 어떤 미친 운전자가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 위로 차를 몰아 질주한다면 목사로서 내 임무는 희생자들의 장례나 치러 주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자동차에 올라 타서 그 미친 운전자로부터 핸들을 빼앗아야 할 것이다”라고 한 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즉 절대로 뽑아서는 안 되는 사람을 뽑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연하면 “만일 국민의 아픔에 같이 하지 않고 그저 마치 자기 일만을 하는 듯, 운전 이외에 손님이나 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방관자 내지는 일어나는 끔찍한 범죄를 그저 있던 일인 것처럼 두고 본는 운전사가 있다면 나는 그 운전자의 핸들을 빼앗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우리는 바라 보고 바로 택하여 운전대를 맡겨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소천한 연세대의 김동길 명예교수는 “이제 살 날이 많이 남지 안아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조국 대한민국 하나뿐이다. 대한민국이 없으면 나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누구라도 대한민국을 비방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그가 누구이건 한결같이 증오한다. 그가 노조원이건, 교사이건, 교수이건 그대로 둘 수 없다. 또 경상도 사람이건, 전라도 사람이건 대한민국을 헐뜯는 자는 내 원수이고, 대한민국 안에 살려 둬서는 안되는 인간이라고 믿는다. 국민의 70% 이상이 같은 생각이라고 믿는다. 나는 우리들의 승리를 확신한다. 나도 44번 버스의 방조자는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나 몰라라’ 방조했던 승객들이 청년을 버스 밖으로 쫓아낼 때는 모두 적극적이었습니다. 최근에 이유도 없이 여성에게 어깨로 밀친 뒤 시비를 걸어 폭행한 ‘서울역 묻지마’ 폭행 사건이 생각납니다. 피해자 지인의 말에 따르면 사고 당시 길가에 대기하던 택시 기사들이 많았고, 도와달라고 소리쳤으나 담배를 피우며 구경만 했다고 합니다. 나도 44번의 버스 승객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는 44번 버스 안의 방조자는 아닐까요? 나와 여러분들은 44번 버스에서 쫓겨난 승객이 될 수 있습니까? 자유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침묵의 방조자는 되지 말아야 합니다.
    • 주요뉴스
    2023-12-01
  • 지식인의 양심이 세상을 바꾼다.
    뉴욕에서 최응표 님께서 암울한 조국에 부치는 재미동포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연방제 트럭으로 국민을 치어 죽이는 미치광이 운전자를 끌어 낼 한국판 본 회퍼, 에밀 졸라는 어디 있습니까? 지식인의 양심이 세상을 바꿉니다. 한 노인이 목용탕에서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탕 안에 사람이 많으냐?"고, 노인은 "한 명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목용탕 안으로 들어 간 그 사람은 탕 안에 사람들이 꽉 차 있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와 노인에게 화를 냈습니다.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돼지 새끼는 많던데 사람은 없더군" 이 노인은 바로 고대 그리스의 견우학파를 대표하는 디오게네스(Diogenes)였습니다. '정직한 사람'을 찾기 위해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닌 디오게네스. 그는 무엇보다도 자유를 사랑했고, 힘있는 사람들에게 진실 말하기(정의)를 꺼러하지 않았으며,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지식인 최고의 덕목을 몸으로 실천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인간의 정신이 망가져 가는데 분노한 시대의 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문명을 거부하고 길거리 나무통에서 살며 ‘무소유'를 실천했던 철학자였습니다. 그런 숭고한 정신의 소유자 디오게네스가 만약 대한민국이라는 '목용탕'을 들여다 본다면 과연 무어라고 할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분명 이런 말을 하며 침을 뱉을 것입니다. "동물의 썩은 사체까지 게걸스레 뜯어 먹는 붉은 하이에나떼만 우글 댈 뿐, 사람은 없더군" 완장 부대의 사냥개들에게 물어 뜯겨 제 몸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게 된 대한민국, 디오게네스의 눈에는 당연히 그렇게 비쳤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여러분이 무엇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거짓말 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세상'을 살고 있는지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처해 있는 암울한 현실을 사람 본연의 입장에서 성찰해 보자는 뜻에서 정직과 진실과 정의를 사랑한 디오게네스에 얽힌 일화 한 토막을 적어 보았습니다. 1898년 1월 31일, 프랑스의 문호 에밀 졸라(Emile Zola)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치욕으로 기록된 드레퓌스 은폐 날조 사건을 고발할 당시 "진실이 진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늪지대를 지나야 하는가"라며 썩어빠진 프랑스 사회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에밀 졸라가 그처럼 비통하게 세상을 한탄하던 것 이상으로 참담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양심이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비돼 있는 '소시오패스(sociopath = 일종의 정신장애로 자기 이득을 위해선 살인이나 범죄를 범하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언제나 기만적이고 '선동적형 인간'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드레퓌스 사건이 주는 역사적 교훈의 가치가 더 돋보이는지 모릅니다. 드레퓌스(Dreyfus) 사건이란 19세기 말, 보불전쟁(1870-1871) 패배의 충격으로 프랑스 전체가 멘붕 상태에 빠지고, 여론은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국면전환이 절실해진 프랑스 정부는 패배 원인이 국가 배신(반역) 행위에 있다는 거짓으로 국민을 속이고, 국가 권력을 동원해 공작을 꾸미는 과정에서 유대인인 드레퓌스 포병 대위를 스파이로 조작해 희생시킨 것입니다. 약 1년 후 진범이 밝혀졌지만 프랑스군은 그를 오히려 해외로 전출시켰고, 군법회의는 진범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거짓으로 덮으려던 프랑스 정부는 '진실의 힘' 앞에 무릎을 끓었습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1899년 9월 드레퓌스를 특별 사면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식인의 양심'이 세상을 바꾼다는 값진 교훈을 남긴 고귀한 역사적 사례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문재앙 정부때 권력의 사냥개로 전략한 한국의 재판부와 검찰과 권력기관(전체가 아닌)이 진범을 해외로 도주시키고 무죄를 선언한 프랑스 '군법회의'를 벤치마킹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교훈과 함께 제아무리 거대한 국가권력이라도 양심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는 산 교훈을 얻게 됩니다. 백여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생생하게 현실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지식인의 양심'이 세상을 바꾼다는 진리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겐 그 어느 때보다도 지식인의 역할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우리는 지식인이란 '성향이 보수이든, 진보이든'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고 존경해 왔습니다. 우리가 에밀 졸라를 지식인의 상징적 인물로 보는 이유도 바로 사회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분별력(교양)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고발한다'에서 인간 본연의 양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에밀 졸라의 진면목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한다면 어느 교양인의 말대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옳은 목소리를 내며, 세상과 거짓없이 소통하고, 순수하게 살아가는 사람, 기본에 충실하고 자신이 가진 학문과 지식을 사회에서 일을 통해 실현하는 사람이 지식인'이라고 믿기 때문에 우리의 어려움을 '지식인 사회'에 호소해 왔습니다. 지식의 상품화 내지 출세의 도구화, 또는 전통적 자식인 사회의 붕괴와 그에 따른 지식인의 양심의 마비 현상, 그리고 지식인의 비굴성(소심)과 자기 편의주의에 빠져 있는 지식인 사회의 타락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무기력한 사회에 활력을 불어 넣고, 죽어가는 국민정신을 깨울 수 있는 힘, 악의 세력과 싸울 힘도 지식인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는 방법론은 사실의 존재를 그대로 파악하는데서 찾아진다"고 한 류성룡의 말처럼, 이제는 대놓고 '연방제'로 가겠다며 국가시스템을 뿌리채 뒤집어 놓으면서도 큰소리치는 촛불 완장부대의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는 것과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국민 스스로가 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거짓말과 괴담을 듣는 귀는 무한대로 진화한 반면, 진실과 양심의 소리를 듣는 귀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퇴화한 상태에서 붉은 선전선동을 아무 생각없이 사실로 받아 들이는데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거기다가 지나친 민주주의와 지나친 자유, 그리고 분에 넘치는 풍요에 젖어 사리분별을 못하고, 그저 잘 살고 즐겁게 살자는 생물학적 충동에 빠져 살아가는 국민이 촛불 완장 부대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1950년 12월 13일, 미 해병 제1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장군은 흥남 철수 작전이 시작하기 직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해병대원들의 임시묘지(흥남)를 찾았습니다. 무덤 앞에 선 스미스 장군은 "너희들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다. 이 민족은 피를 흘려서라도 구원해야 할 가치 있는 민족이다"라는 말을 하며 전사한 부하들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스미스 장군은 항공으로 철수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어겨가며 한국인 피난민을 살리기 위해 부상병들만 항공으로 후송하고, 일반 장병들은 피난민을 보호하며 피난민과 같이 육로로 철수했습니다. 스미스 장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자유를 찾아 나선 피난민을 지옥의 땅에 그대로 내버려 두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스미스 장군은 우리의 어떤 면을 보고 피를 흘려서라도 구원해야 할 가치있는 민족이라고 했을까요? 그렇게 외국 군대가 피를 흘려서라도 구원해야 할 가치있는 민족으로 비쳐졌던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추락했는지 뼈를 깎는 자기성찰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스미스 장군이 다시 살아 돌아와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고도 똑같은 말을 할 건인가? 사뭇 궁금해 집니다. 미치광이 히틀러가 트럭으로 사람을 마구 치어 죽이던 나치 독일에는 신학자이면서 시대의 양심이었던 지식인 디트리히 본 회퍼가 있었고, 국가 권력이 꾸민 날조된 드레퓌스 사건으로 진실이 죽어가던 프랑스에는 '지식인의 양심' 에밀 졸라가 있었습니다. 지금 연방제라는 트럭을 타고 거리를 질주하며 국민을 마구 치어 죽이는 이 미치광이 운전자를 운전대에서 끌어낼 한국한 본 회퍼, 에밀 졸라는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불문률을 깨고, 쇠파이프와 회칼로 상대 영역(나와바리)을 접수(강탈)하는 저질스럽고 흉포한 조폭들보다도 더 간악한 수단과 방법으로 입법, 사법, 언론, 문화, 종교, 교육 현장과 국가 권력기관을 접수해 가는 촛불 혁명세력의 광포하고 악마적인 행동들을 지켜봐 왔습니다. 문재앙 정부때 청와대 안방에는 주사파식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를 설치해 놓고 나라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요리하고 있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흉악한 강도 프로크루스테스가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눕힌 다음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침대 길이에 맞게 잘라내고, 키가 작으면 침대 길이에 맞도로 억지로 늘려서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침대에는 길이를 조정하는 비밀장치가 있어서 그 누구도 침대 길이에 맞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흉악한 프로크루스테스의 악행도 테세우스라는 영웅에 의해 끝이 납니다.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를 잡아 같은 침대에 눕히고 똑같은 방법으로 머리와 다리를 잘라 처치해 버렸습니다. 촛불혁명 세력은 바로 이런 침대를 청와대 안방에 설치해 놓고 대한민국이라는 이 거목을 그 침대에 맞게 뿌리부터 잘라내고 있습니다. 헌법은 물론 어떤 법, 어떤 관행, 어떤 원칙도 이 침대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거기 설치된 비밀장치로 마음대로 요리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 현주소입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악행을 끝장낸 영웅 테세우스처럼, 한국판 테세우스(본 회퍼와 에밀 졸라)의 출현이 절실한 때입니다. 지식인의 몫은 거짓으로 왜곡된 진실을 바로 잡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지식의 양심'이 세상을 바꾼다는 평범한 이 진리가 죽어가는 국민의 영혼을 깨우고, 우리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힐 때, 한국판 테세우스, 본 회퍼, 에밀 졸라는 우리 곁을 찾아 올 것입니다. 한국판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의 악행은 반드시 국민의 손으로 처치해야 합니다. 물론 그 뒷받침은 지식인의 몫이 되겠지요. '지식인의 양심'이 세상을 바꾼다'는 만고의 진리입니다.
    • 주요뉴스
    2023-11-30
  • 프랑스의 '그르늬이'라는 요리를 알고 있습니까?
    프랑스 요리에 '그르늬이'라는 '삶은 개구리 요리'가 있습니다. 이 요리는 손님의 식탁 위에 버너와 냄비를 가져다 놓고, 손님이 직접 보는 앞에서, 개구리를 산 채로 냄비에 넣고 조리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물이 너무 뜨거우면, 개구리가 펄쩍 튀어나오기 때문에, 처음에는 개구리가 가장 좋아하는 약 15도의 미지근한 온도의 물을 부어 둡니다. 그러면 개구리는 기분이 좋아 가만히 있게 됩니다. 그리고는 서서히 올라가는 물의 온도 때문에 그 기분에 사로잡혀 자기가 삶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채 결국 45도에 이르게 되면 요리로 변하게 됩니다. 변화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개구리는 자기에게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삶은 개구리 증후군(The boiled frog syndrome)'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개구리는 어리석은 동물이라고요? 천만에요. 사람 또한 개구리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널리 인용되는 얘기이지만 '삶은 개구리 증후군'처럼,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바로 이런 한심한 처지가 아닐까요? 어느 온도에 이르면, 위험을 느끼고 튀어 나와야 하는데, 물이 조금씩 더워지기 때문에 결행의 시기를 놓친다는 것입니다. 사전에 교육계와 언론 기관을 장악하고 사법기관에 침투해 반대세력을 마비시켜 놓은 상태에서 이들은 극렬 행동대원들을 앞세워 자칭 촛불 혁명이란 정변을 일으킨 뒤 대통령을 탄핵해 감옥에 집어 넣었습니다. '꼴통 좌파'들은 기상천외한 사건을 조작하고 민심을 선동해 이에 놀아난 탄핵은 대중들이 진실을 알지 못하고 거짓으로 오도된 여론과 선전선동의 결과입니다. 이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적페청산을 내세워 전 정권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며 100년 집권을 공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위 보수 지도자들은 냄비 속 개구리 행태를 그대로 연출했습니다. 정당한 재판도 없이, 즉 죄명도 모르면서 탄핵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관했으며, 재판에서 '설마 대통령이 실형을 받으랴?'하고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결국 교도소에 갇히는 것을 지켜 보기만 했습니다. 또 그 재판이라는 것을 성사시킨 테블릿 PC가 증거로 쓸 수 없는 허위란 사실이 법정에서 밝혀졌음에도 '지나간 일이니까' 하고 묵묵히 쳐다만 봤습니다. 그 뒤로도 냄비에서 뛰쳐 나와야 했던 사건은 계속 일어 났습니다. 드루킹 사건과 리얼미터 여론조사, 노회찬 자살 사건, 패스트트랙 파문, 야당 의원들의 발언을 멋대로 각색한 '5·18 망언 소동' 등등 어느 것 하나도 그냥 넘어 갈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어처구니 없다고 한탄할 수밖에 없는 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웃지 못할 희극들, 북한에 식량을 원조하겠다고 오지랖 넓게 나섰다가 거절당한 망신 등 이루 다 열거하기도 힘듭니다. 이제는 '이런 일들은 그저 정부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분위기입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구두로 합의했다며, 국회의 검토조차 없었던 평화조약을 믿고, 북한을 마치 가족처럼 챙기는데도 이 자들은 계속해서 간첩선을 내려 보내고, 미사일을 발사해 가며, 우리를 떠보고 있습니다. 이 판국에 우리 정부는 "적대의식이 없어 괜찮다"는 흰소리나 하고, 아니면 '주시 중'이라며 '무대응'으로 일관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이를 수용합니다. '삶은 개구리 증후군'에 걸란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걱정이 없어서 이만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를 요리하는 물이 따뜻한 목욕물이라도 된다는 듯이, 편안하게 잠자다 죽어가는 개구리의 모습과 별로 다름이 없어 보입니다. 이제는 더 물러 설 곳이 없습니다. 나라를 떠 받치던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리며, 사상 최악의 성장률과 실업률을 잇달아 경신하는 가운데 '한일 경제전쟁'까지 터져 앞이 안 보입니다. 철천지 원수로 알던 북한에는 일방 통행료를 열어 주고, 일본은 '적대국'으로, 미국은 '불신국'으로 만들어 최후의 우방조차 스스로 내팽개치고 말았습니다. 동네공원에서 밤 산책을 하는데, 청년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대학 초년생이나 재수생으로 보이는 남자 3명이었습니다. 욕설도 튀어 나왔습니다. "너 평생 집 살 수 있어?" "아니 … 씨팔! 반지하 월세도 자신이 없어" "월급 다 모아도 아파트 못 산데" "난 걱정 안해, 여기 공원에 텐트 치고 살면 되지 뭐" "하하하하" 웃는 게 아니라 절규였습니다. 젊은이들이 '내 집 꿈'조차 포기한 상태인데, LH 투기 사태는 그들을 더 서글프게 하고 있습니다. 라임 옵티머스 사건이라도 파헤친다면 4년 내내 불평등, 불공정, 불의가 판쳐온 세상이 180도 달라지고 땅 투기도 사라질 수 있으련만 하지만 LH 사태도 남 탓으로 돌리는 전정부에서는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은 뻔합니다. 경제를 해치는 부패와 불공정은 계속되고, 젊은이들의 시름은 더 깊어질 것입니다. 정신 차려야 한다는 외침이 도처에서 쏟아집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것이 정신 차리는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심지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다며, 국민을 싸잡아 '개돼지'라고 욱박지르는 지식인들도 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치지 않으면서 어찌 행동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있단 말입니까?
    • 주요뉴스
    2023-11-29
  • 월남전 한 어부가 공산주의 학정을 자신의 피로서 남긴 “남해혈서”
    1975년 4월 30일 정오. 월맹 공산군 제2군단의 탱크 부대가 사이공 시내로 진격, 월남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있는 독립궁을 점령했습니다. 이로서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월맹을 압도한다고 자랑하던 월남은 월맹군에 의해 허무하게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46년전 월남 패망의 비극이 일어났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월남은 미국군과 우리의 맹호 · 청룡 부대 용사들이 파견돼 많은 희생을 치렀던 나라입니다. 공산화를 막기 위해 동맹군은 그토록 피를 흘렸으나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공산화 이후 인간 개조 수용소에서 그들 국민은 6백만명이 희생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패망할 당시 월남의 국방력은 정규군 60만, 공군력 세계 4위의 군사 대국이었고, 전 국토의 90%를 사이공 정부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와 시민단체의 끝없는 평화 및 반전 운동, 정권 핵심에 침투한 월맹의 프락치 등 내부 분열로 힘없이 무너졌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이 혈서를 띄울 것인가?"(남해혈서) 월남의 한 어부가 가족과 같이 공산주의의 학정을 피해서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표류하였으며, 남중국해의 어느 무인도에서 죽은 아들의 시체를 뜯어 먹다가 처절하게 죽어 갔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의 학정을 자신의 피로써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른바 '남해 혈서'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지쳤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그러나 원통하다. 바다, 하늘 뿐 나는 누구에게 이 혈서를 띄울 것인가? 나의 가족은 모두 공산군의 학정에 쓰러졌다. 혈육은 외아들뿐, 13명의 월남 동포와 목선에 몸을 실었다. 나의 외아들은 무인도에 도착 13일째 되는 날 고통 속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 아들의 시체를 뜯어 먹으며 목숨을 이어온 동료도 모두 죽었다. (중략) 황량한 바다. 이제 두렵지 않은 죽음이 다가온다. 아! 하느님! 마지막 내 살점을 파내는 피의 절규를 들어 주소서! 하늘 아래 이렇게 죽어 갈 수 있는지 … 하느님! 말하여 주소서!》 오늘날 북한 3대 세습의 폭정을 피해서 탈북한 사람들이 유투브 등으로 공산주의의 학정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17년간 꽃제비 생활을 하다가 탈북한 청년은 음식을 훔치다 얻어 맞아 뇌진탕을 일으키면서까지 살기 위해 훔친 음식을 입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처절하게 목숨을 부지하였고, 마침내 지옥을 벗어 났습니다. 그들의 증언은 차마 눈물없이 듣기 어렵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살아서 가는 지옥은 북조선이었고, 죽어서만 가는 줄 알았던 천국이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하였습니다. 월남 패망을 보고 희열을 느낀 문재인 문재인은 자서전에서 월남이 패망했을 때 공산주의의 승리를 보고 희열을 느꼈다고 썼습니다. 아마도 그는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사라지고 인민민주주의 체제가 들어 설 때 월남 패망 때보다 더 큰 희열을 느낄 것입니다. 문재인은 2017년 개헌안에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고자 하였습니다. 주사파는 자유라는 말을 태생적으로 싫어 합니다. 자유민주주의는 부르조아 민주주의라는 그들의 생각입니다. 그들은 대기업을 노동자를 착취하는 계층이라고 보는 주사파식 계급투쟁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로 체제를 바꾸기 위한 공정이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탈원전하여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원천 차단하고 공수처를 만들어 수사권력을 장악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마지막 단계로 고려연방제 국가가 틴생하는 날, '남조선의 인민'은 2000만명이 개조 캠프에서 죽어갈 것이고, 동해와 남해 바다를 떠도는 보트피플은 1000만명이 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나라의 국민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끼나와 부근의 무인도에서 죽은 이의 시체를 뜯으며 연명하다가 또 다른 '남해 혈서'를 쓰며 죽어갈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습니까?
    • 주요뉴스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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