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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석 연세대 몀예교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
    동아일보의 객원논설위원이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를 소개하겠습니다. 며칠 전 TV에서 뉴스를 들었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한 최고위원이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출발해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거쳐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으로 이어져 왔다. 이재명이 민주당과 국가를 대표할 시대정신을 이끌어 가야 할 단계라고 했다. 그것은 이재명의 주장과 신념을 대변한 선언이다. 국민도 그 뜻을 이해는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현재까지 국정의 중책은 민주당이 맡아 왔고 지금도 절대적 여소야대의 국회이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민주당에 집중돼 있을 정도다. 문제는 민주당 안에서는 그런 선언이 가능할지 모르나, 국민의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은 초창기보다 더 증대하고 있다.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우려와 걱정은 한계선까지 도달한 상태다.국민은 김대중 대통령의 동족 간의 평화통일을 위한 열성과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가 심하므로 경제적 원조를 베풀면 15년쯤 후에는 통일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견해를 믿고 싶었다. 그런데 국민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너무 많은 원조를 했다. 그 결과는 핵무기 개발과 공산정권 굳히기에 도움을 주었다. 지금의 김정은 정권을 키워주는 결과가 되었다.노무현 정권은 어떠했는가? 우리 국민이 이런 상태로는 살 수가 없고 불안하여서 이민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의 무질서와 혼란 상태가 되었다. 국민에게 물어 보라. ‘노무현 정부가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인가?’라고. 그 주역을 담당한 세력인 86세대 운동권의 등단과 확장기였다. 대통령 자신이 자기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같이 불행한 대통령’은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몸소 남겨 주었다.그 뒤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운동권은 물론 문 대통령 스스로가 공은 내세웠으나 과(過)는 인정하지 않았다. 퇴임 후에도 자신의 임기 5년 동안에 쌓아 올린 정치적 업적을 윤석열 정부가 계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은 문 정부와 같이 가지 않는다고 추방한 윤석열을 왜 대통령으로 선출했는가?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권이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이며, 윤 정부가 계승해야 할 과업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묻게 한다. 정치 기반인 경제 분야는 어떠했는가? 이명박 정부를 계승했다면 경제성장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는 어떻게 했으며,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민주국가의 위상을 지켜 왔는가? 북한 동포를 뒤로하고 김일성 정권 세습화에 동조했다면 그것은 실정 중의 실정이다. 김대중 정신에 위배되는 결과가 되었다. 대한민국으로 귀순해 온 동포와 중국에서 우리 품으로 오려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처신은 앞으로도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할 과제다. 친북 정책은 북한 동포를 위한 절대적 의무와 권리이다. 김정은 정권을 위한 종북이 아니다.현재에도 민주당은 국정운영 방향과 방법은 물론 절차까지 관여하는 국회의 주도권을 행사한다. 국가를 위해서보다는 윤 정권을 타도하고 임기 내라도 재집권하겠다는 자세다. ‘그것도 애국심인가? 국민을 위한 정치인의 양심인가?’라고 국민은 묻는다. 누가 보든지 민주당은 국가보다는 정권을 위했고,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의 사당이 되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민주정치는 실종되었고 싸워서 이기면 그것이 정의가 된다는 개인과 집단의 투쟁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창기부터 실정에 앞장서 왔던 임종석 전 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송영길 전 당 대표, 각 분야에 자리 잡고 있던 운동권 출신의 잔여 세력이 이재명 대표를 앞세워 정권 재장악에 동참하려는 기세다. 민주당 안과 주변에 있던 친북좌파까지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선한 공존의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적 방향과 국민의 진실과 정의, 자유와 휴머니즘 정신이 보장, 구현되는 나라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잘못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진실과 정직 없는 ‘내로남불’의 정의관, 인격을 갖추지 못한 개인이나 이기적 집단세력에 정권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위하고 국민을 섬기려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여야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민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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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1
  •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그립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반발로 전문의 파업이 대형 병원 중심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근무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시화되고 의료 공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안타깝기가 이를 데 없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가 문뜩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장기려 박사님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의사였다. 그래서 경성 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의과 대학과 김일성 종합 대학 교수를 지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1950년, 장기려 박사님은 철수하는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 아내와 5남매를 북에 둔 채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하였다. 그리고 부산에서 천막을 치고 복음 병원을 세워 행려병자를 치료했다. 장기려 박사님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하며 하루에 2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럴 뿐만 아니라 1959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간 절제 수술에 성공하는 등, 당시 우리나라 외과 의사 가운데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이 커지고 무료 진료가 불가능해지자 장기려는 1968년 한국 최초의 의료 보험 조합인 청십자 의료 보험 조합을 설립하였다. 청십자병원은 가난한 사람을 정성껏 치료해 줄 뿐만 아니라 치료비를 깎아 준다고 소문이 나 늘 많은 환자가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농부가 장기려 박사에게 하소연했다. “선생님, 제가 당장은 돈이 없지만 나중에 꼭 벌어서 갚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내일 당장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병원에 묶여 있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농부의 말을 들은 장기려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밤에 문을 열어 줄 테니 그때 가세요.” 농부가 깜짝 놀라자 장기려는 웃으면서 말했다. “병원에서는 아마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퇴원을 안 시켜 줄 거예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 도망을 쳐서라도 일을 해야 가족을 돌볼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장기려는 그렇게 말하고 농부에게 돈까지 쥐여 주었다. “얼마 안 되지만 차비나 하세요.” 농부는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는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기 돈으로 수술을 해 주고, 그나마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못하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다가 1995년 12월 추운 겨울날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내 마음이 그러하듯 창밖에는 겨울비가 밤새 주룩주룩 내린다. 오늘따라 ‘바보의사 성산 장기려 박사님’이 그저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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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다큐‘기적의 시작’ 관람 후기
    ‘은종’이라는 동료 시민의 ‘기적의 시작을 보고’라는 관람 후기를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또 다른 다큐극 영화 ‘기적의 시작’을 보고 왔습니다.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을 보신 분이라면 더더욱 꼭 보십시오. ‘건국전쟁’이 큰 그림을 그리는데 치중했다면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 대통령의 디테일한 부분을 세밀히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건국 전쟁은 역사를 잘 모르고 일방적으로 세뇌 당한 분들에게 유익한 영화입니다. 4.19는 이승만이 원인인가? 김구의 정체, 런 승만의 문제, 한강철교 폭파사건 등 이승만 대통령이 오해받고 있는 부분의 팩트를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에 대한 역사를 잘 아는 분들이 보았을 때 거의 다 아는 내용이었고 소수의 부분은 새로운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의 시작은 자료를 수집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섬세합니다. 이승만에 대한 책 몇 권을 섭렵했던 분들도 새로운 내용을 보고 저런 자료를 어떻게 찾았을까 하고 그 수고에 감탄하게 됩니다. 어쩌면 흥행에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 이승만이 한성 감옥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과정이나 서거하기 전 기도한 장면 등을 삽입한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감명을 줍니다. 이승만의 삶은 기도에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기도로 시작한 나라이니 기도를 놓지 말아야 국가가 번영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만약 성도들이 단체관람한다면 ‘기적의 시작’이 더 감명을 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의 증언자들은 이승만과 직접 만난 분들을 등장시켜 훨씬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백선엽 장군,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 그리고 그 며느리의 증언은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사실적이고 감동적인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농지개혁, 6.25 전쟁에 대한 일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경위 등은 훨씬 더 자세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역사의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깜짝 놀란 것은 이승만의 경제에 대한 관심입니다. 벌써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 앞으로 한국은 공업국이 되어야 한다고 예견한 것은 대단한 통찰력이었고, 실제로 6.25 이후에 공업국이 되기 위해 그가 이룬 업적을 세밀한 자료와 더불어 제시한 것은 그동안 몰랐던 내용이었습니다. 다큐 영화가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데, 텔렌트 임동진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이승만을 잘 살려내었습니다. 아마도 무료 출연이었을 것인데, 눈물과 마음으로 연기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정말 사랑하는 대배우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무명의 배우들이 적절하게 사건들을 잘 재현해내어 다큐에 몰입할 수 있도록 톡톡히 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동안 런 승만, 독재자, 친일파 등등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이제는 바로 잡을 때가 되었다. 위대한 거인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에게 이승만을 바로 알릴 때가 되었습니다. 두 영화를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기적의 시작’은 섬세하게 그 안을 들여다 봅니다. 성경으로 비유하면 ‘건국 전쟁’은 마가복음에 비유한다면 ‘기적의 시작’은 요한복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둘 중에 한 영화만 선택하지 마십시오. 두 영화 모두 보시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요, 애국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건국 전쟁은 제법 관람객들이 있었는데, 기적의 시작은 관객면에서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점이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적의 시작’이 훨씬 더 애정이 갑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가슴에 더 와닿는다고 했습니다. 건국 전쟁을 보신 분들은 반드시 기적의 시작도 함께 보십시오. 다른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을 먼저 보셨습니까? ‘건국 전쟁’도 보세요. 두 영화가 결합할 때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총선 전에 두 영화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두 영화가 흥행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사인식이 바뀌도록 열심히 홍보하는 일입니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먼저 극장으로 가십시오. 교회 단체관람을 강력히 추천합니다.”라고 동료 시민 ‘은종’은 말했습니다. 김덕영 감독의 ‘건국 전쟁’이 개봉 27일만에 100만을 돌파하며, 다큐로는 드문 흥행 기록을 세우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그리고 ‘건국 대통령 이념 보급회’의 김효선 사무총장의 ‘이승만의 독립 외교 33년’ 등 다른 기록 영화들도 ‘건국 전쟁’과 거의 동시에 선을 보였습니다. 이장호 감독의 이승만 관련 영화 ‘하우보만의 약속’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상 매체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될 나라”라는 주장을 하며 반공 애국 진영, 특히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비방하고 폄훼하는 반역 세력의 전유물처럼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런 영상 매체가 이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밝히려는 일에 효율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승만이 ‘독재자’ 또는 ‘친일파’로 낙인 찍히며 국민의 뇌리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할 추악한 인물로 악마화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독립운동과 반공 투쟁에서 승리해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되었고, 공산군의 6.25 남침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고 부흥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쉽게 공산화되어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김일성의 지배를 받는 위성국가로 편입되었을 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적인 위인이자 천재였습니다. 그는 이 나라의 국부였고, 애국자요, 선지자요, 예언자요, 세계가 공산당을 열광할 때 “공산당은 망한다”고 외쳤습니다. ‘전시 중립론’이라는 논문을 쓴 국제 정치가였고, 훌륭한 선교사였고, ‘재팬 인사이드 아웃’의 저자인 작가였고, 민족 복음화를 소망한 하나님의 종이었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며, 그는 하나님 중심의 철저한 자유 민주주의 투사였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학력 소유자였습니다. 죠지 워싱톤대 학사였던 클린턴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하바드대 석사였던 오바마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프린스턴대 박사였던 윌슨 대통령과 동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도 이만한 학력 소유자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자유의 등불을 달아준 불세출의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탁월한 외교가였으며, 토지개혁을 단행했고, 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는 ‘반상 철패’를 했으며, 의무 교육을 실시했고, 여성들을 투표에 참여케 했습니다. 의회 정치를 실시 했습니다. 그의 애국정신과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 시대의 등불이었습니다. 전교조에 의해 역사 왜곡이 극에 달한 이 나라는 이승만을 바로 알아야 대한민국이 사는 것입니다.
    • 오피니언
    • 강석종 칼럼
    2024-03-08
  • 이승만 영화 ‘기적의 시작’이 만들어진 배경 이야기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기적입니다.’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영화 '기적의 시작'을 만들고, 전국 개봉을 하기까지 모두 기적의 순간입니다. ■ 영화의 시작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저의 아버지께서 '이승만 대통령 영화를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하셨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하지 않은 제가 그 당시 더 기반이 없었던 시절, 그런 권유를 받으니 너무 막연하고 막막하게 다가 왔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에는 부모님 댁에서 같이 사는 것 외에는 따로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은 받지 말자'고 했고, 또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우리나라 영화계와 아무런 인맥도, 기반도, 심지어 카메라 한 대 조차 없던 아들이 이리저리 일감을 찾아다니는 모습에 안쓰러워 ‘카메라 한 대 얼마 하니? 카메라 한 대 사줄게. 그것 가지고 시작해 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것마저 거절했습니다. 많은 예술인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이 분야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누가 밥값을 내야 하는지 신경이 곤두섰고,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 다섯 정거장 정도는 교통비를 안 쓰고 걸어 다녔습니다. 물론 저의 집안이 그 정도 돈 못 쓸 정도로 여유가 없지는 않았으나, 저는 속으로 '이 나이에 돈벌이도 못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는 것은 사치다'라고 생각하며 가급적 걸어 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 온 저의 영화 인생은 그렇게 밑바닥부터 시작되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비록 독립영화이지만 조금씩 규모를 키워가며 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순회 상영을 다니며, DVD를 찍어 판매하는 수준에서 점차 작품을 작은 영화관에서부터 상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이 하나 둘 씩 영화관에 걸려 작품을 찾는 관객들이 늘었고, 이번엔 멀티플렉스 상영관 전국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을 지내면서 아버지의 권유를 당장 실행해 옮겨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었으나, 덕분에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일하거나 생활했던 분들을 만나 뵈면 꼭 이 대통령에 대해 질문하고 이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백선엽 장군님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뵌 분들은 그 당시에도 꽤 계셨으나, 백 장군님처럼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큰일을 하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던 분은 없었습니다. 백 장군님은 이승만 대통령과의 일화와 본인이 참여했던 전투에 대해 매우 실감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후방 전투 현장을 직접 보여주시며 설명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귀한 증언들은 매번 카메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기록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아 저는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습니다. 요즘과 달리 20년 전에는 6mm 테잎을 썼는데, 당시의 기록이 멀쩡하게 보존된 것도 작은 기적입니다. 한편 해를 거듭하며 시간이 지나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왜곡과 비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니, 멈추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국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어 '22년 12월부터는 아예 작정하고, 그동안 모았던 자료들과 추가 인터뷰를 통해 '기적의 시작'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 국민 대배우의 합류 ■ 제작 과정에서 국민배우 임동진 님도 합류하시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런 대배우분께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에 넣을 재연장면에 출연해 주시라고 요청하는 것은 큰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 배우님께서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셔서, 속으로 많이 놀랐고, 겸손한 모습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임동진 배우님과 같은 영화계 거물이 합류하셨음에도 제작환경은 딱히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제작진은 그 분 이름을 내세워 따로 모금하지 않았고, 제 성격상 여기저기 제작비 모금하러 다니기도 쑥스러워 그러지 못해서 프로듀서 김재동 목사님이 모금해 오신 제작비 내에서 해결했습니다. 그런 형편 속에 많은 분들의 우려와 달리 제작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 아들 이인수 박사의 생전 마지막 고백 기록 ■ 이번 작업에서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로 이 대통령의 쓸쓸한 말년을 제일 가까이 곁에서 지켜보셨던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입니다. '23년 11월 별세하신 이인수 박사님의 인터뷰는 결코 쉽게 성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품을 위해 그분의 증언을 꼭 담고 싶었으나, 그분의 체력에 한계가 많으셨던 때라 인터뷰 약속을 잡고 갔다가도 두 세 번 실패하여 헛걸음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인터뷰가 어렵게 되자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는 포기했습니다. 사모님이신 조혜자 여사께서 마치 곁에서 대신 말씀을 전하시듯 하고, 이인수 박사님은 옆에만 앉아 계십사 하는 게 저의 새로운 바람이자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약속도 없이 임동진 배우님과 이화장을 둘러 보러 갔다가 이인수 박사님 컨디션이 최상인 것을 발견! 당장 카메라를 켜고 마이크를 연결해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장비를 가져간 것도 다행이었고, 그게 이인수 박사님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습니다. 다시 봐도 당시 이 박사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모습이 역력합니다. 이 모든 것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 신앙인 이승만 재조명 ■ 이승만 대통령이 젊은 시절 선교사들이 전해 준 예수님을 한성 감옥에서 복역 하며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영접한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난제 앞에서 하나님께 매달렸고, 우리나라 첫 국회를 기도로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작품에서 비기독교인들을 의식해서인지, 기독교 색채를 빼고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 그런 이승만의 모습은 인간 이승만을 이끄는 원천적인 힘이었기 때문에 저는 제 작품에서 그런 부분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마지막 기도는 임동진 배우님의 뛰어난 연기력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해 줍니다. ■ 전국 극장 개봉 ■ 드디어 ‘24년 2월 22일! 기적의 시작은 전국 개봉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어렵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영화를 한 개 극장에라도 걸기도 어렵고, 극장에 걸었다 해도 관객들을 사로잡기에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 전문 인력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한 두 사람의 몫입니다.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전국 극장 개봉을 위해서 제작사들은 적게는 수 천 만 원, 많게는 수 억 원의 홍보비를 씁니다. 저희는 '기적의 시작' 홍보를 위해 쓸 수 있는 금액이 거의 없었습니다. 금액을 밝히기에 민망해 그럴 수는 없지만, 그 금액조차 제작 과정에서 다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홍보를 위해 쓴 금액은 전단지 인쇄에 30만원 가량, 작품을 소개해 주시는 유튜브 분들께 음료수를 사 드리거나 식사 대접을 한 게 전부입니다. 주말에는 감독인 제가 손수 전단지를 챙겨 광화문이나 시청 같은 곳에 가서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젊은이들 중에는 전단지에 이승만 대통령 얼굴이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접어버리며 불쾌감을 표현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전단지를 나눠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많은 홍보비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원초적인 홍보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SNS 홍보도 했으나 제가 인플루언서가 아니다 보니 효과는 미미했던 것 같습니다. 넉넉잡고 홍보비로 100만 원 정도 썼던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전국 개봉까지 이어진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렵게 잡은 서울 두 개의 극장(필름포럼과 허리우드). 시사회 이후 5개월간 상영을 통해 관객 수 천명이 관람하고, 입소문을 듣고 오는 관객 수가 줄지 않자 멀티플렉스에서 이를 눈여겨보고, 일단 전국 10개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을 준 것 같습니다. 수 많은 난관을 뚫고 드디어 전국에 소개되는 ‘기적의 시작’. 여태까지는 저와 조력자 분들의 힘으로 끌고 왔으나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렇게 극장에 걸게 되었는데 보러 와 주시지 않으면 허무하게 극장에서 내려지게 됩니다. 극장에 와서 봐 주시는 것은 작은 애국입니다. 교회에서 단체관람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CGV에 예매가 열립니다. 예매를 많이 해 주시면 더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여 더 많은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 권순도 올림
    • 주요뉴스
    2024-03-07
  • 이제는 ‘기적의 시작’이다!
    스카이데일리 임명신 기자의 “[기획] 이승만 다큐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길 위에 김대중’ 압도”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권순도 감독이 20년 구상 끝에 작년 10월 내놓은 ‘기적의 시작’은 독립영화 특유의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건국 전쟁’ 흥행 속에 역주행 중입니다. 같은 주제의 두 다큐는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필히 두 편 모두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같은 목표, 다른 매력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1875~1965)을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월 1일 개봉한 김덕영 감독의 작품 ‘건국 전쟁’이 주목받으며 4개월 전 나온 권순도 감독의 작품 ‘기적의 시작’도 역주행에 가속도가 붙었다. 두 작품 다 철저히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된 다큐지만 흐느끼는 관객이 속출할 만큼 뜨거운 반응이다. 두 편의 이승만 다큐가 또 다른 역사 인물 다큐를 압도한 것도 눈길을 끈다. 훨씬 유리한 여건 속에 제작된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작 ‘길 위에 김대중’이 개봉 4주 후 12만 관객을 동원한 반면 ‘건국 전쟁’은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 수 18만 명을 돌파했다. 누적 관객 수 3위, 개봉관 수도 개봉 당초보다 3.3배 늘어난 상태에서 11일 누적 관객 수 24만 명을 넘어섰다. 다큐로선 이례적인 성적이 어디까지 갈지 관심을 모은다. ‘기념관 하나 없는 이승만’이 ‘기념시설 최다의 김대중’을 이겼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편 ‘기적의 시작’은 작년 10월 하순 서울 시내 단 두 곳(종로3가 낙원상가 헐리우드 극장·신촌 필름포럼)에서 개봉된 가운데 주로 각종 애국단체∙교회 등의 상영회를 통해 관람객을 늘려 갔다(현재까지 5000명 정도). ‘건국 전쟁’이 2월 1일 전국 CGV에 걸리고 화제를 부르자‘기적의 시작’ 역시 개봉 약 4개월 만인 22일 CGV 재개봉이 결정됐다. ‘기적의 시작’ ‘건국 전쟁’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졌고, 멸망의 위기를 넘어 훗날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틀을 구축했는지 조목조목 짚는다. 농지개혁, 문맹퇴치(교육개혁), 안보·경제발전을 담보한 한미 동맹, 자원 빈국의 산업화에 절실한 원자력발전의 토대 마련 등 다가올 산업화가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어떻게 준비됐는지를 두 편의 다큐 영화 는서로 다른 톤으로 설명해 준다. 각각의 장점이 있으며 지루하지 않을 반복 학습 효과가 기대된다.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을 다룬 최초의 본격 다큐 영화라는 의미 외에 애국지사로서의 역정과 기독교 신앙의 상관성을 조명한 점도 돋보인다. 창군 및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1920~2020)과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1931~2023) 박사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원로배우 임동진 목사의 이승만 연기 역시 독보적인 부분이다. 두 다큐는 1천 수백 년에 걸친 왕조 시대와 근대 식민지 시대를 겪은 중세적 공동체에서 자유 민주공화국 헌정 질서 마련이 얼마나 천지개벽할 일이었는지를 묵직하게 일깨운다. 공통된 주제지만 두 감독이 친분이 있거나 사전 협의한 것도 아닌데 내용상 겹치지 않는다.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 학습판이므로 둘 다 관람할 가치가 충분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공산화가 신생국들의 대세였던 시절, 이승만은 현대 국가(자유민주공화국)의 본질과 시스템을 이해한 유일한 한반도인으로 볼 만하다. 두 다큐의 시의성도 각별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오늘날, 정통성 논란은 결국 ‘이승만의 나라’ ‘김일성의 나라’ 양자택일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 세계사적 인물 이승만… 우선 다큐부터 ‘건국 전쟁’ 출연자의 한 사람인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전 이승만연구원장)는 연구원이 보관 중인 이승만 1차 자료 100박스에 대해 예산 부족으로 손을 못 대고 있다며 아쉬움을 수차례 토로한 바 있다. 그 자료들은 대부분 40년 망명 생활 중 세계정세를 전하거나 논한 신문·잡지 스크랩과 친필 메모들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세계사적 차원에서 연구돼야 할 인물 이승만’이라는 시각에 힘이 실린다. 이승만의 생애는 드라마틱하고 불가사의한 요소로 충만하다. 영화∙드라마 등 대중 서사 장르를 통해 그려질 날이 와야겠지만 일단 다큐가 절실했다. 관련 사실들이 극단적으로 왜곡되거나 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교과서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교과서 밖에선 악마화∙희화화됐을 뿐이다. 해석의 문제 이전에 팩트 자체가 엉터리인 경우도 많다.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가짜 뉴스·역사∙왜곡의 결정판 명저 ‘슬픈 중국’의 저자이자 ‘건국 전쟁’ 첫머리에 등장한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는 조선일보 칼럼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팩트를 지어 내는 역사가들’에서 “김덕영 감독의 작가 정신과 예술혼이 거짓 뉴스와 허위 정보를 마구 엮어 일방적으로 이승만 악인전(惡人傳)을 집필해 온 역사학계의 고루한 시대착오와 부족 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죽이기’ 최근 사례로 송 교수는 “(역사학자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박태균)”가 TV 교양 프로에서 이승만의 1952년 대선 승리에 대해 기호 1번을 독점해 대다수 문맹 유권자 몰표를 유도한 결과라는 취지로 설명한 점을 들었다. 이어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것과 김 감독이 당시의 선거 포스터를 꼼꼼히 뒤져 이를 입증해 냈음을 짚었다. 이승만은 기호 1번이었던 적이 없다. 이승만에 얽힌 대표적 오해인 6·25전쟁 발발 직후 라디오방송 틀어 놓고 도망갔다는 미확인 소문이 오늘날까지 조롱과 저주 담긴 별명 ‘런Run승만’으로 살아 있다. 김 감독의 ‘건국 전쟁’에서 ‘한강 다리 폭파’ ‘3.15 부정선거’ ‘하와이 도피설’ 등을 바로 잡을 증거들이 제시됐다. 또 한4·19 이후 이승만의 행보야말로 ‘독재자’ 낙인이 왜 부당한지에 대한 결정적 증거다. 자신과 무관한 부통령 선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무일푼의 독재자? 그런 인물이 과연 독재자일 수 있는지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묻고 있다. 한국인이 처음 만난 이승만… ‘건국 전쟁’ 감동 후기 이어져 조지워싱턴대(학사)∙하버드대(석사)∙프린스턴대(박사) 출신의 이승만이 얼마든 취득 가능했을 미국 시민권을 마다한 채 40년간 무국적자의 불편함을 견딘 사실에 김 감독은 주목했다. 아울러 미국 내 이승만의 족적이 그간 어떻게 왜 지워졌는지 현지 교민들 증언으로 전해진다. 1953년 정전협정 1년 후 미국 방문 당시 자유의 투사로 칭송받으며 뉴욕 시가를 대대적으로 퍼레이드한 영상은 ‘건국전쟁’을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이승만이 공산주의에 맞설 냉전 구도의 불가피성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미국 등 서방세계 조야에 열렬히 설명∙설득한 점도 부각된다. 그것이 대한민국 탄생 비밀의 한 측면이다. 공산주의의 본질·실상에 대부분 무지하던 시절이었다. 개봉 초기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만 네이버 영화면에 누락돼 있어 “좌편향 문화계의 이승만 지우기”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관람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육박했다. “덕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어 감사하다” “공산화 저지의 공로만큼은 이승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감상 후기가 가장 많다. 조선일보가 김 감독을 자세히 인터뷰한 것 또한 눈길을 끈다. 여기서 김 감독은“(이승만) 공부를 시작한 뒤 큰 반성을 하게 됐고 그를 비롯한 건국 세대에 대한 죄송함을 영화에 담았다”고 밝혔다. 2012년 유튜브에 유포된 악의적 이승만론(論) ‘백년 전쟁’이 오히려 일부 네티즌이 진실 찾기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것과 흡사한 경우라 할 것이다. 북한은 왜 그렇게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을까… 586세대 김 감독의 각성 김 감독은 1950년대 동유럽 국가들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들을 조명한 다큐‘김일성의 아이들’(2020)로 유명하다. 1만명 가량 동유럽에 분산 위탁돼 자라다 스탈린 사후 격변 속에 집단귀국 당한 후 김일성 유일 체제를 위해 잊혀진 존재들이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북한에 관심을 가지다가 1990년대 중반까지 평양에 ‘이승만 괴뢰도당 타도’구호가 있었음을 알게 됐으며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는지 궁금해졌다. 김 감독이 작품 구상 및 제작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은 이승만을 향한 집요한 폄훼가 “오랜 세월 좌파들의 선동에 의한 부당한 평가”와 “북한의 공작” 탓이 컸다는 사실이다. 김 감독 자신이 북한에 호감 내지 환상을 가진 586세대 일반의 감성과 역사관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그 폐해 또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거짓의 선글라스를 벗으면 평생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았고 애국애족의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했던 한 노인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며 울먹였다. 한 네티즌의 댓글 “대한민국이 버린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위대함은 대한민국 국민만 모른다. 참담한 현실에 부끄럽고 한없이 죄송하다”는 심정과 고스란히 겹친다. ‘건국’ ‘산업화’ 없이 ‘민주화’는 불가능… 그러나 뒤틀린 역사교육 김 감독의 말대로 이승만은 “(파고들수록)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한 한국사의 유일한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 그렉 브레진스키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미래 비전과 안정된 보장 시스템이 존재해야 건국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듯이 “바로 그걸 이승만이 해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결코 일본의 패망으로 당연히 얻어진 게 아니었다. 김 감독은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경제 개발이란 기관차가 달린 것”으로 두 지도자의 시대를 요약한다. 핵심적인 통찰이다. 산업화를 통한 중산층의 성장 없이 이뤄지는 ‘민주’란 ‘인민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중국(중화인민공화국)도 모두‘민주’를 전면에 내세운다.문재인 정부 시절 현행 헌법에서‘자유’를 삭제하고자 시도한 행위의 의미와 그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알아차리게 됐다. ‘독재자’라는 꼬리표가 3대 세습체제 속에 신격화된 북한 권력자들에게 붙는 대신 변명없이 자진 하야한 이승만에게 당연한 듯 붙는 게 온당한지 이제라도 저마다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이승만=살인마’의 관점을 일반화시키면서 제주 4.3의 비극이 대한민국 수립 및 그것을 위한 한반도 유사 이래 최초의 보통 선거(5.10총선) 저지를 위한 남로당의 무장 폭거에서 출발한 것임은 도외시한다. 이것이 지난 30년 우리나라 제도권 안팎의 역사교육 현실이다. 놓칠 수 없는 ‘기적의 시작’ 권 감독의 20년 구상 끝에 태어난 ‘기적의 시작’은 공산주의가 유라시아 대륙을 뒤덮었던 시절 그 끝자락 한반도에서 어떻게 자유 민주공화국이 수립·유지될 수 있었는지, 이승만 덕분에 가능했던 대한민국탄생의 기적과 그것이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토대가 됐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독실한 크리스천의 면모도 조명했으며 원로배우 임동진의 이승만 재연으로 다큐 이상의 감동을 더했다. 백선엽 장군 인터뷰와 ‘기적의 시작’ 개봉 며칠 후 별세한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전 명지대 법정대 학장) 박사의 영상은 진귀한 역사적 자료가 됐다. 본인들의 생전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대통령 하야 후 전주 이씨 문중의 주선으로 이승만 슬하에 30세때 입적한 이 박사와 그 가족은 지난 60여 년간 이승만 죽이기의 실질적 희생자였다. 권 감독에 따르면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 박사가 기적처럼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한 마디 한 마디 온 힘을 다하듯 간신히 해독 가능한 발음으로 건국 대통령의 애국 열정과 말년의 부자(父子)인연을 증언한 모습이‘기적의 시작’에 실려 있다. 특히 망명 생활의 근거지였던 하와이에서 몇 개월 휴식한 이승만 내외가 귀국하려던 당일 한국 정부로부터 하와이 잔류를 종용당한 장면, 이후 우울 속 건강 악화로 현지에서 임종을 맞게 된 과정이 생생하게 회고됐다. ‘건국전쟁’에서 하와이 망명설이라는 거짓 뉴스 유포의 전후 맥락을 짚었다면 ‘기적의 시작’은 당사자들의 내면을 전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현대사 공부? 화제의 이승만 다큐 두 편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에 맞선 체제 정당성 대결의 최전선에 있다. 총선을 약 2개월 앞둔 시점에서 또 하나의 선거전이 될 수 있다. ‘서울의 봄’은 대다수 관객에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허구의 틀을 빌어 사실상 실존 인물과 역사를 거꾸로 해석한 상업영화다. ‘서울의 봄’이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적폐의 나라’라는 인식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반면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절체절명 위기와 우여곡절 속에서 이승만이라는 한 애국자가 지향한 가치를 되새긴다.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자유민주 헌법) 위에 박정희의 산업화(근대화)가 가능했다는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1979년 10.26으로 중단될 뻔한 산업화를 완결짓고 민주화 시대를 예비한 게 전두환의 신군부, 즉 제5공화국이다. 그렇다면 영화 ‘서울의 봄’이 기도한 신군부 악마화는 대한민국 헌정사의 부정 아닌가. 이원석 검찰총장이 몇몇 동료들과 ‘서울의 봄’을 관람한 인증 샷과 소감을 남겼다. 기존 민주화운동 세력의 신군부 서사에 충실한 발언이었다. 건국의 역사를 제쳐둔 채 민주화를 말할 수 있을까.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관람 권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 요인과 ‘73년생 한동훈’ 등 여당 인사들의 관람 필요성이 역설되기도 한다.
    • 주요뉴스
    2024-03-06
  • 3.1 독립운동 정신으로 4.10 총선 승리하자!
    ‘한국 NGO연합’ 및 ‘자유정의시민연합’의 글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3.1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이번 4.10 총선에서 3.1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좌파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자. 4.10 총선은 대한민국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차대한 선거다. 선거라기보다 제2의 6.25와 같은 선거전쟁이다. 4.10 전쟁에 나서는 국민들은 죽을 각오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 나 하나쯤의 자만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경각에 달린 나라를 구해야 한다. 자유대한민국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4.10 총선에서 반드시 자유 우파세력이 국회 다수석이 되어야 하는 것은 진정 역사적 대업이고 사명이다. 문재인의 5년과 더불당이 다수당으로 국회를 농단한 8년 동안 우파들은 충분히 경험했다. 다시는 무도한 반 대한민국 세력이 정부와 국회를 장악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적 합의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만에 하나 아직도 안일하고, 나약한 국가 정체성으로 대한민국 이념과 사상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차제에 분명하고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갖도록 분발해야 할 것이다. 영화 ‘건국전쟁’을 봤다면 자유의 가치를 정말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은 좌파시만단체와 협약을 맺어 그들에게 최소 10석의 비례대표 자리를 주기로 합의한 모양이다. 그들 대부분은 친북, 종북단체 출신들이며, 이념 측면에서 북한과 궤를 같이 하는 세력들이다. 따라서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을 많이 지지하게 되면, 극단적으로 친북, 간첩세력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 대한민국 최악의 시나리오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은 공산화되었다. 당시 미군 철수 후 미군이 남기고 간 많은 최신 무기와 보급품, 병력에서도 월맹군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던 월남이 왜 공산화 되었을까? 당시 월남은 월맹에 비해 정신력에서 이미 패했다. 그리고 정부, 군, 정치판에 월맹의 간첩들이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었다. 그것도 고위직에 자리했다고 하니 월남은 월맹의 손바닥 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떨까? 아마 지금의 대한민국도 그 당시의 월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에도 북한 간첩이 35만이 침투해 있다는 소리가 탈북한 북한 고위인사들을 통해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침묵은 동조와 마찬가지다. 간첩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떠할까? 오늘은 3.1 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그러나 독립운동 기념일행사를 할 정도로 나라의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해서 오늘 우리는 주사파와 친북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한 제2의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여 4.10 총선에서 좌파세력들을 패퇴시킬 것을 천명한다. 여기에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 등 위대한 선배들의 뒤를 이어 좌파세력을 척결하고, 자유우파세력 모두가 한 마음으로 4.10 총선 승리를 위해 진군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2024년 3월 1일 한국NGO연합/자유정의시민연합
    • 주요뉴스
    20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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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총련, 80년대 8년간 한국대학가 2조원 자금투입
    88서울올림픽 개최 3주 전인 1988년 8월 하순 노태우 대통령은 여러 대학의 젊은 교수 1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본의 조총련이 1980년 이래 해마다 평균 2400억 원의 자금을 한국에 보내오고 있습니다. 최근 8년간 약 2조 원의 돈이 들어왔는데…. 이 돈의 대부분은 대학 운동권의 지원 자금으로 쓰이고 있어요.” 서울대 S 교수가 물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이고 있습니까?” “… 여러 갈래로 쓰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것은 우수한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언론계에 침투시킨다는 것입니다. 80년부터 현재까지 약 800명이 신문·방송사에 침투해 있습니다. 매년 평균 100명꼴로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젊은이들이 각 언론사에 침투되고 있는 셈이지요.” “…” “올림픽을 끝낸 뒤 뭔가 조처를 해야 하겠는데…”라며 뒷말은 흐렸습니다. 당시 고려대 한 교수는 “대통령 말을 들으면서 8월 초순 안기부 요원이 연구실로 찾아와 고려대학에서 활동 중인 주사파 학생들의 계보도(系譜圖)를 보여 주던 일이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88 서울올림픽을 하던 1988년엔 국민이 올림픽을 성공시키는 데 한마음이어서 어느 때보다 활기찼고 그러면서도 평화롭고 질서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대학가는 붉게 물들어 반한(反韓) 정서(情緖)가 무르익어 있었습니다. 왜 대학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을까요? 이것 역시 5·18의 산물이라는 것은 놀라움으로 되돌아봐야 할 일입니다. 5·18 사태 직후 김일성 집단은 처녀 젖가슴을 도려내고 임산부의 배를 대검(帶劍)으로 찌르는 등의 사진을 만들어 대한민국을 ‘인민학살’ 정권으로 몰아, 때마침 열리는 IPU(국제의원연맹) 총회에서 한국 국회를 축출하는 공작에 활용했습니다. 당시 한국도 국회 대표단을 구성해 북이 다녀간 나라들을 돌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광주사태란 데모 군중도 무장해 있었던 폭동이었다. △ 전문적으로 훈련된 집단이 주도한 폭동이었지만 군중은 다수가 시민이어서 군은 무력 사용을 절제했고 이 때문에 진압에 위험이 따랐고 군의 희생이 컸다. △ 북이 배포한 사진은 90%가 북에서 연출해 만든 가짜 사진이다. 무장 대치했던 10일간의 소요에서 인명 손실이 1백60여 명 선에 그쳤다는 것은 군이 무력 사용을 최대한, 억제했다는 살아있는 증거다. ‘학살(虐殺)이란 당치 않다. △ 이 사태를 조종 지도한 것으로 보이는 잘 훈련된 북한 공작원에 대한 조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제3진영‘으로도 불리던 나라들도 한국 대표단의 이런 설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이래서 북한의 한국 국회 IPU 축출 공작은 꺾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을 활용한 대남공작을 정부는 놓쳤습니다. 왜 그리 허술했을까요? 1970년대 들어서면서 북의 간첩 작전이 군사기밀 탐지 못잖게 남한 적화 공작으로 주력을 옮기고 있었지만, 한국의 관계기관들은 그 부문엔 어두웠던 것일까요? 우선 4·19를 기점으로 남한의 규범과 질서를 흔드는 혼란 조성과 주사파 양성 등 공산당식 진지전에 주력을 이동한 북의 대남공작을 헤아릴 수 있는 김일성 지령(88년 이전 것) 중, 대학 공작에 연결되는 일부를 추려 보겠습니다. 1972년 8월, 제1회 남북적십자회담 대표들과의 회담에서 “우리 북반부에서는 민간단체는 없지만, 남조선에는 그 이름도 잡다한 민간단체가 수없이 많다. 그 가운데에는 우리 측이 만든 민간단체도 적지 않다. 남조선 당국자들을 반민족적 분열주의 세력, 독재집단으로 몰아붙이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단체를 만들어 남조선 인민 가운데서 통일의 열망을 쌓아 올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1973년 4월, 대남공작원과의 담에서 “남조선에는 고등고시에 합격만 되면 행정부, 사법부에 얼마든지 잠입해 들어갈 수가 있다. 머리가 좋고 확실한 자식들은 데모에 내보내지 말고, 고시 준비를 시키도록 하라. 열 명을 준비시켜서 한 명만 합격 된다 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 된다. 그러니까 각급 지하당 조직들은 대상을 잘 선발해, 가지고 그들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고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1976년 8월 대남공작원들과의 담화에서 “남조선에서 들여온 영화, 비디오를 보니까 거기에도 재능있는 작가 예술인들이 많다. 그런데 그중에서 잘 나간다는 몇몇 작가들을 제외하고 절대다수가 실업자나 다름없는 형편이다. 이들에게 혁명적 세계관을 심어 주기만 한다면 훌륭한 걸작들이 얼마든지 쏟아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지하당 조직원들은 남조선의 작가 예술인들을 더 많이 포섭하여 혁명가로 만들고 그들이 외롭지 않게 똘똘 뭉쳐서 혁명적 필봉을 들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묶어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1988년 8월 대남공작원과의 담화에서 “과거에는 학생들에게 군 입대를 기피 하도록 선동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남조선의 사회환경이 달라졌고 학생들의 의식도 달라졌다. 남조선 군대가 식민지 고용병이고 또 군대의 위상이 떨어졌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오히려 자원입대하도록 적극, 교양해야 한다. 대 국군 공작을 보다 성공적으로 벌여나가기 위해서는 학생운동에서 검열되고 단련된 핵심들을 집단 입대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동료 사병들을 의식화하고 포섭하도록 하여 군대 내에 조직을 부단히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일성 훈령은 1973년 고시 준비생 포섭에서 1988년엔 대학생을 군에 입대케 해 동료 병사를 의식화하는 데 활용하라는 데까지 진전되어 있습니다. 김일성에 충성을 서약한 주사파 학생들이 대학생 대부분의 의식화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사실로 받아들인 김일성의 훈령(訓令)입니다. 김일성의 대한민국의 대학 진단은 착오가 아닙니다. 88년 무렵 남한의 대학은 주사파가 장악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학을 붉게 물들인 그 출발은 5·18의 사진이 큰 몫을 담당했습니다. 북이 제작한 5·18의 사진들 - 군인의 학살이라고 할 끔찍한 사진들은 대입 준비하느라 소설 하나도 읽지 못했던 사회성 제로의 대학 신입생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깡그리 앗아가고 그들 가슴에 몸서리칠 정도의 지독한 미움, 조국과 정치∙경제 지도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심었습니다. 북조선의 정치 선동, 남한 주사파의 선동은 남한을 지옥으로 그립니다. 대한민국을 깨우고 일군 주류세력을 독재, 부패, 억압, 착취, 친일, 친미, 등 거짓과 모략으로 깎아내리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대립과 증오를 키웁니다. …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선동들을 고스란히 사실로 믿게 한 것이 이 사진이고 5·18의 과장이고 날조입니다. 김일성에 충성을 맹세한 주사파가 어린 신입생을 그 무렵 유행하던 MT(멤버쉽 트레이닝)란 이름으로 세뇌하는 것은 이래서 일도 아니게 손쉬웠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런 대학의 실정을 얼마쯤 알고 있었을까요? 되돌아보면 놓친 것들이 너무 많이 쌓여있습니다. 예를 들어 5·18의 진실을 알리는 보도를 통제한 것도 큰 실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사파는 5·18을 맘대로 과장하고 날조해 잔인한 학살로 몰아갔고 학생들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광주사태에만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40년을 억압과 착취로 조작한 역사까지 ….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란이라는 3년의 처절한 전쟁 기간에도 보도를 검열하거나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계엄법에 상관없이 이승만 대통령이 남겨준 이런 전례를 따랐더라면⋯ 라는 것이 그래서 아쉬움이었습니다. 북조선은 가장 실패한 최악의 체제입니다. 그러나 선전 선동에서 남한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지금 전라도 사람들의 하나된 투표는 김정은의 편에 선 선택입니다. 김정은은 남한의 국회, 법원 등 많은 것, 중요한 것들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박근혜 탄핵의 진짜 배후는 김정은이라는 진단도 있습니다. 체제의 우열이 정치공작의 성패에 연결되지 않는 것일까요? 미국 공화당 원로인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미국과 서구의 문명이 중국 공산주의 체제에 의해 압도되고 지배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시진핑 체제가 미국 자유 체제보다 나은 것들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서구 문명을 파괴하는 공산당의 무한전쟁을 막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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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3
  • 최만순의 약선요리,피로를 해복하는 닭백숙
    최만순의 약선요리 동양에서 요리신(料理神)으로 불리는 세 사람이 있다. 양생음식을 하는 사람은 이들을 기억한다. 이윤(伊尹), 팽조(彭祖), 그리고 역아(易牙)다. ′역아′는 제나라 사람이다. 역아는 문헌상으로 제일 처음 약선만찬인 ′팔반오궤연′을 만들었다. 지금도 당시 만들었던 요리와 레스피를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제나라의 ′환공′은 춘추전국시대의 제왕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관포지교의 관중, 포숙아 등 천하의 재상들을 두고 춘추오패를 이루게 된다. 이 제나라의 환공은 한편으로 최고의 미식을 탐하는 자였다. 어느 날 환공이 역아에게 세상의 모든 음식을 먹었지만 인육은 아직 먹지 못했다. 역아는 자기 자식을 삶아 요리로 바치고 재상이 되었다. 하루는 환공이 제일 사랑하는 왕비 위히가 중병에 걸리게 되었다. 어의들이 와서 온갖 약으로 치료를 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이 때 역아가 ′오미계(五味鷄)′를 끓여서 진상했다. 음식을 먹은 왕비는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역아는 불과 물의 조절을 통하여 맛을 만들었다. 그리고 어떤 식재료와 약재를 섞으면 가장 이상적인 맛과 효능을 발휘하는지 알고 있었다. ′오미계(五味鷄)′는 하나의 약과 하나의 식재의 합이다. ′오미자(五味子)′를 암탉1마리의 뱃속에 넣어서 삶으면 된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기록하기를 ″공자는 물을 섞을 때 그 물맛을 아는 자는 역아가 최고″라고 하였다. 그만큼 역아는 맛을 구별하는 미각이 탁월하였다. 그러므로 최고의 요리와 약선인 식료의 기술을 발휘할 수 있었다. 후대 임취현지의 인물지에도 ″공자는 맛에서는 역아를 최고로 숭배하였다″고 기록 하고 있다. 또 맹자도 ″맛의 조화를 만드는 능력은 역아가 최고다″고 말했다. 역아는 또 중국의 황실만찬의 시조다. 그리고 현재의 북경요리인 산동요리의 시조(始祖 맨 처음 시작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문인 신선 ′선(鮮)′자도 만든 사람이다. 산동요리 중에 유명한 어복양육(魚腹羊肉)이 있다. 어복양육은 생선뱃속에 양고기를 넣은 요리다. 이 요리의 특징은 모든 재료가 신선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 사용한 생선인 고기어(魚)자와 양고기의 양(羊)자를 합하여 신선 ′선(鮮)′자가 되었다고 한다. 역아는 선천적으로 어떤 식재료든 보면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역아가 팽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역아는 팽조의 학문을 배웠다고 주장했다. 음식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역아식료책′에 기록되어 있다. ■피로를 회복하는 닭백숙 ▲효능-로를 회복하는 닭백숙습기와 더위로 힘과 의욕이 생기지 않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해진다. 이런 증상을 없애고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재료-암탉1마리, 동충하초3g, 영지5g, 소금, 생강, 대추3개 ▲만드는법 1.약재를 손질하여 준비한다. 2.재료를 전부 넣고 솥에 1시간 삶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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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3
  • '정진석 의원 실형 선고',박병석 판사 법관 윤리규정 논란
    서울지방법원 형사 5단독 박병곤 판사는 ‘사자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진석 국힘당 의원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의 명예를 훼손했다’ 하여, 검찰이 구형한 벌금 500만원보다 더 높은 징역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습니다. 법정 구속이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피고인을 실형 선고와 함께 재판부가 직권으로 법정에서 구속하는 제도입니다. 이 법정 구속은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혐의조차 재판 과정에서 철저히 부인하거나’, ‘새로운 범죄 사실이 밝혀진 경우에’, ‘법정 태도가 매우 불량한 경우한다’고 합니다. 만약 이 선고가 확정되면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국회법과 공직선거법에서는 국회의원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퇴직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검찰의 구형대로 벌금형에만 처했다면 의원직을 유지하겠지만 징역이 선고되면 의원직을 잃게 됩니다. 정진석 의원이 무슨 잘못으로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았을까요? 정진석 의원은 지난 2017년 9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가 부부싸움 끝에 아내 권양숙 여사는 가출을 했고, 노 전 대통령은 혼자 남아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노무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입니다. 정진석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자 정치보복을 하지 말라며, 노무현 대통령이 죽은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이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게 금품 뇌물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 싸움 끝에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지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 아니라고 페이스북에 올렸던 것입니다. 즉 노무현 대통령이 죽은 것은 이명박 대통령 탓이 아니니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그만 두라는 뜻입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가 사자명예훼손으로 고발했고,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서 정진석 의원을 ‘전 노무현 대통령 사자 명예훼손 혐의, 부인 권양숙 여사에 대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약식 기소했습니다. 실형을 내린 판사는 “정진석 의원의 글 내용은 악의적이거나 매우 경솔한 공격에 해당하고 그 맥락이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당시 노 전 대통령 부부는 공적(公的) 인물이라 보기 어려웠고, 정 의원의 글 내용은 공적 관심사나 정부 정책 결정과 관련된 사항도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력 정치인이면서 구체적 근거 없이 거칠고 단정적인 표현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고, 유족들은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습니다. 정진석 의원에게 실형이 선고되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 2심과 3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정진석 의원이 항소하면 즉시 의원직은 상실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진석 의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박병곤 판사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박병곤 판사의 정체가 하나 하나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는 SNS 본인 소개 글에 “달리는 기차에서 중립적일 수는 없다”고 했으며, 과거 노무현이 만든 열린우리당의 지지자였다고 밝혔습니다. 언론에 의하면 박병곤 판사는 과거 자신의 블로그에 “2001년 매원 중학교를 마치고 영덕 고등학교에 입학, 영통 지역의 좌경화를 선동하고, 2학년 때에는 같은 반 학생들을 레드바이러스에 감염시키라는 지하당의 명을 받아 학급의 ‘선동대장’으로 선출됐다”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당시 수업보다는 주식투자와 테니스에 훨씬 더 몰두하던 담임교사의 퇴진운동에 앞장서고 좌파 언론매체인 ‘진보누리’의 기자로 활동한 뒤 좌파의 영역 확대가 너무나도 절실하다고 판단, 한겨레 ‘왜냐면’에 기고해 좌파의 존재를 알렸다”고 더붙였으며,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인 법조계의 적화를 꾀하라는 지하당의 명령을 받아서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에 침투하여 예비 법조인들의 좌경화를 선동하고 있다”라고 썼던 사실이 밝혀 졌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런 글들이 삭제된 상태입니다. 그는 고3 때인 2003년 10월 한 인터넷 사이트에 “한나라당(현 국힘당)이 (노무현)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고 싶으면 불법 자금으로 국회의원을 해 처 먹은 대다수의 의원들이 먼저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또 모 대학 신문사에서 활동하던 2004년 3월 광화문 촛불 집회에 참석하고 난 뒤 “전∙의경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천대 만대 국회의원 해먹기 위해서 대통령을 탄핵시킨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한나라당 녀석들 때문”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또한 2004년 초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한겨레신문에 기고해 좌파의 존재를 알리고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항력을 행사하는 집단인 ‘법조계의 적화를 꾀하라’는 지하당의 명령을 받아서 00대학교 법과대학에 침투해 예비법조인들의 좌경화를 선동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2004년 2월 17일 블로그 ‘나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민주노동당에서는 나를 ‘영통지역 최연소 당원’이라 부른다”, “예컨대 나는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생’이 되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으며, 월 1만원의 당비를 내는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되는 것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2004년 4월 8일 ‘강성과 논리의 대결’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요즘 선거철이다. 텔레비전을 제대로 들여다 보지 않기 때문에 각 당의 텔레비전 광고를 다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의 텔레비전 광고는 내가 직접 홈페이지를 찾아가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직접 확인해 보았다. 내가 열린우리당의 지지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지난 2002년 보여줬던 감성을 이용한 선거전략을 다시 사용할 지가 궁금했던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지하당이란 비합법적인 당으로서 노출되지 않은 정당이라는 의미로서 일반적으로 북한의 대남 공작 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박병곤이 수원 출신인 점, 그리고 그가 스스로 이석기가 속해있던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노당의 당원이라고 한 점, 이재명이 그를 팔로우 하는 점 등을 두루 살펴볼 때 여기서 지하당이란 이재명의 최측근 정진상 등이 속해있던 경기 동부연합을 의미하며 그들의 지령을 받아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이 가는 것이다. 또한 2004년 2월 다른 블로그 글에서 그는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의 전신)에서는 나를 (수원)영통 지역 최연소 당원이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또한 박병곤은 문통과 유시민 전 노무현 재단 이사장 등의 트위트 계정을 팔로우(follow, 주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특정 이용자를 따라 다닌다는 뜻으로 그 이용자의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볼 수 있게 구독하는 것) 하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박병곤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이란 중형을 이례적으로 선고해 논란이 된 박병곤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판사 재직 때도 ‘친야(親野)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사실이 14일 추가로 드러났습니다. 그동안은 박 판사가 고교∙대학 시절 쓴 비슷한 성향의 글들과 이후 소셜미디어 활동들이 공개돼 있었습니다. 군 법무관으로 재직할 때인 2014년 트위터 활동을 하면서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 비판적인 기사와 글을 찾아 ‘좋아요’를 누르기도 했습니다. 박 판사는 박근혜 정부 때 김명수 대법원장이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진보 성향 판사들에 대한 ‘사법부 블랙 리스트’가 작성됐고, 부당한 재판 개입이 이뤄졌다면서 대국민 사과를 한 다음 날 2018년 1월 25일 ‘분노하라’는 문구와 함께 주먹 쥔 삽화 사진을 페북에 올렸습니다. 박 판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가 불거진 2019년 10월 10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그토록 존경받던 기자의 지위와 권위를 떨어 뜨린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기자 자신”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해당 게시물은 고(故) 리영희 교수가 1971년에 쓴 ‘기자풍토 종횡기’를 박 판사가 요약해 게시한 것입니다. 당시 언론을 비판한 글을 차용하여 ‘누가 먼저 돌로 치랴’, ‘권력 측 발표 그대로 사실화’, ‘약자에게만 강한 건 깡패’ 등의 내용으로 조국 전 법무부장관 부부의 자산관리인으로 알려진 김 모씨가 KBS와 인터뷰를 가진 것에 대해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비판하던 시기에 작성되었습니다. 조 전 장관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 기자들을 비판한 것입니다. 박 판사는 재작년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한 이틀 뒤 2021년 4월 9일 중국 드라마 ‘삼국지’ 장면을 캡쳐한 사진 30장과 함께 “승패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박 판사는 더불당 이재명 대표가 작년 3월 10일 대선에서 패배한 지 6일 뒤 2022년 3월 15일 페이스북에 ‘이틀 정도 소주 한잔하고,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자꾸 두드리면 언젠가 세상은 바뀐다”라며 “더 두드려야 더 빨리 변할 것”이라는 취지로 이재명의 패배에 대한 소감을 남겼습니다. 판사라 해도 SNS에 개인 의견을 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관 윤리강령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는 글을 올리는 건 금지됩니다. 박 판사는 지난 8월 10일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징역 6개월을 선고하며 정치적 편향 논란에 섰습니다. 처벌이 과하다는 지적과 함께 과거 정치 성향 글들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박병곤 판사는 “공개된 판결 외에 나머지 사항에 관해 밝힐 부분이 없다”고 했습니다. 법원 역시 “재판장 본인이 해당 게시글을 이전에 삭제했다”며 “법관의 정치적 성향과 이 사건 판결은 무관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법원 내부에선 중립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게시글을 올렸던 판사라면 정치인 사건은 스스로 피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박병곤 판사는 관사에서 대법원장 김명수의 아들과 ‘오피스 메이트’인데, 같은 방에서 도대체 무슨 모의를 했던 것일까요? 박 판사는 지난 2월 수원지법에서 서울 중앙지법 형사5단독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는 한 달 뒤 지난 3월 판사 임용 이후 쓴 글들을 페이스북에서 삭제했습니다. ‘정진석 사건’ 재판은 지난 3월 2일 첫 기일이 잡혔다가 5월 30일로 연기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이 삭제된 것입니다. 법조인들은 “당시 박 판사는 페이스북 글이 앞으로 자신이 내릴 판결과 관련해 중립성 문제로 이어질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한 법조인은 “박 판사는 스스로 재판을 회피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치 성향을 보여주는 흔적들을 없앤 뒤, 통상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명예훼손 사건에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한 셈”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법조인은 “만약 페이스북 글들이 남아 있었다면 피고인(정진석)이 박 판사에 대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지 않았겠느냐?”고 했습니다. 박 판사는 ‘정진석 사건’ 선고를 한 다음 날인 지난 11일부터 휴가를 갔으며, 15일 오후 3시 30분쯤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습니다. 한 언론에서, 박 판사는 지난 4월 중순 법조인들의 프로필을 관리하는 ‘한국법조인대관’ 운영사 측에 자신의 등재 정보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하자, 서울중앙지법은 “판결 직전에 삭제했다는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궁색한 해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인즉, 박병곤 판사가 이번 사건을 맡은 이후 지난 4월에 자신의 정보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 언론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왜 이 사건을 맡고 난 이후에야 정보 삭제를 요청한 것입니까? 삼척동자도 ‘척’하면 다 알 일을 변명하느라 법원이 참 애를 많이 씁니다. 뒤늦게 4월에 삭제 요청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번에는 법원이 한다는 말이 ‘판결 선고 직전에’ 삭제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했을 뿐, 삭제 요청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였다고 또다시 변명했습니다. 한 관계자는 “판결이 나기도 전에 등재 정보를 모두 삭제해 달라고 한 경우는 사실상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박 판사가 고교∙대학 재학 때부터 판사 임용 후까지 쓴 글들은 현 여권을 비판하고 야권을 옹호하는 내용입니다. 법원 관계자들은 “박병곤 판사의 정치 성향은 친노(親盧)에 가깝고,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을 거론한 ‘정진석 사건’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판사 재임 때 박 판사의 글들이 법관윤리강령 위반이 문제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해당 강령의 7조는 법관이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는 2012년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할 때 자기 절제와 균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품위를 유지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법조인들은 “판사도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이번 사안은 공직자윤리위 권고를 넘어서는 문제”라며 “법관의 정치 성향에 판결이 좌우되는 현상을 차단하는 것이 사법부 과제로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박병곤 판사의 글을 볼 때 그는 철두철미하게 민주당 등 야당을 지지하는 자입니다. 어느 공무원보다 정치적 중립 의무가 강조되는 판사로 임명된 후에도 위와 같이 골수에 사무치는 야당 지지 의사를 표명해온 것입니다. 김명수의 입장에서는 아들을 통해 박병곤이 좌익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며, 그리고 그가 노통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의 재판을 맡는다면 확실하게 정진석 의원에게 보복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그에게 위 사건을 맡겼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박병곤 같은 사상을 가진 자가 대한민국의 법관으로서 버젓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형사재판을 할 수 있게 조장 또는 방치하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 대해 그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현 법원 내에 과연 박병곤 같은 붉은 무리가 몇 명이나 되는지 궁금하며 심히 염려가 됩니다. 9월이 오면 김명수는 퇴직하겠지만 그가 심어놓은 반체제 사상 판사들은 금방 나가지 않을 것이고,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자유 민주주의 신봉자들에게 불리하고 좌빨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현 대통령을 우습게 보는 작태로 해석되어집니다. 김명수가 나간 후 정상적인 사상을 가진 대법원장이 임명되어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체제 부정적 사고방식을 가진 판사들을 모조리 쓸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과거의 판결도 조사하여 제대로 된 판결을 하였는지도 철저히 검증해 보는 절차가 필요하다 할 것이고, 그 결과 편파적 부정 판결이라는 것이 나타나면 철저히 조사하여 대한민국의 체제 보위 차원에서 최대한의 처벌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우리 사회에는 민주, 인권울 위장한 공산 세력들이 많으며 우리는 그들에게 속아서도 굴복해서도 안 된다고 천명하였습니다. 그러자 민주당 대변인은 민주, 인권을 위장한 공산세력들이 누구냐고 반문하였는데, 군대에 입소하면 사단장이 신병에게 ‘사단장이 누구냐?’라고 묻자 신병이 씨익 웃으며 ‘지가 기면서(자기가 그것이면서)’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지가 기면서’로 했다는 그 신병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은 왜일까요? 반체제, 반국가 이력이나 사상을 가진 자는 절대 공직을 맡게 해서는 안됩니다. 채용 전에 반드시 걸러 낼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이 필요하고 채용 후에도 파면 처분을 내려야 합니다. 이 나라는 노무현 뿐 아니라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욕하면 안 되고, 이승만, 박정희, 박근혜 대통령을 욕하면 의인이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하물며 5∙18 광주 폭동을 입에 올리지 못하는 법까지 만든 나라입니다. 오죽하면 영국의 BBC 방송에서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 법관들의 편향된 이념과 주체사상(主體思想)이 한국을 파탄 내고 있다”고 하겠습니까?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한국은 제 살 뜯어 먹는 미친 나라 국민들”이라는 뜻입니다. 법치는 오래 전에 무너졌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무너진 법치를 다시 세워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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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2
  • 6.25남침때,‘中·北 군가 작곡자 정율성’역사공원 광주에 들어선다!
    문재앙은 2017년 12월 방중 당시 베이징대 강연에서 “한국에는 중국의 영웅을 기리는 기념비와 사당들이 있다”며 정율성을 언급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앞서 2014년 7월 방한 기간 중 서울대 강연에서 정율성을 ‘한중 우호의 상징’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지난 광복절 직전 “정율성 역사공원이 연말 완공된다”는 KBS 보도가 나왔습니다.정율성은 어떤 사람일까요? 정율성(郑律成)은 일제 시대 조선에서 출생한 후 삼일 운동 이후 항일독립운동에 참가했으나, 중국 공산당과 북조선 노동당에 입당하고, 해방 후에는 북한,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취득해 활동한 공산주의 음악인, 작곡가입니다. 본명은 정부은(鄭富恩)입니다. 1914년 7월 7일에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현 양림동 79번지)에서 한학자 정해업(鄭海業)과 지방 명문가의 딸인 최영온(崔英溫) 사이의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정율성의 호적 이름은 ‘부은’이었으나 ‘구모(龜模)’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부친 정해업은 한학을 배운 지식인으로 전라도 관찰부 공방 서기직, 대한협회 광주지회 회원, 광주 지역 신간회 간사, 광주 수피아여고 교직에 있었던 기록이 있으며, 모든 자녀를 항일 투쟁을 위해 중국으로 보낼만큼 민족정신이 투철했습니다. 정율성은 큰 외삼촌인 최흥종 목사의 집에서 축음기를 통해 음악을 듣고 피아노를 치며 놀았고, 그가 활동하던 광주YMCA, 양림 교회, 양림동 선교사촌을 통해 서양음악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정율성의 작은 외삼촌은 최영욱박사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과 캐나다에서 수학한 후 광주 제중원 원장을 지냈으며, 미군정 하에서 초대 전라남도 지사를 지냈습니다. 최영욱 박사의 아내이자 한국 YWCA 설립자 중 한 명인 김필례(金弼禮)는 수피아 여학교 교사로 일하며 교회를 빌려 때때로 음악회를 여는 등 정율성은 외가의 영향으로 음악에 친숙한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정율성은 1917년 화순군 능주로 이주하여 1922년에 능주 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이듬해 광주로 다시 이주하였다. 그는 1928년 광주 숭일 소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1929년 3월신흥학교에 입학하였고, 합창단에 들어가 ‘내 고향’, ‘쪼각달’, ‘고기잡이’, ‘까투리 타령’ 등의 노래를 지도하였습니다. 1933년에 정율성의 셋째 형 정의은이 중국 난징에 있는 조선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에서 2기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광주에 방문하자, 그는 전주 신흥학교를 중퇴하고 누나 정봉은과 함께 목포에서 평안환(平安丸)을 타고 부산과 일본 나가사키를 경유하여 5월 13일 상하이 푸동 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정율성은 조선혁명 간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던 중 의열단에 가입했습니다. 그는 의열단이 부여한 비밀 업무로 난징(南京)의 고루(鼓樓) 전화국에서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했으며, 신분 은폐를 겸하여 상하이를 오가며 소련 레닌그라드 음악원 출신 여교수 크리노와(Krenowa)에게 성악, 작곡, 피아노, 바이올린 등을 배웠습니다. 정율성이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시기는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며, 이 시기에 어릴 적 이름인 ‘부은(富恩)’ 대신에 ‘선율(旋律)로써 성공(成功)하겠다’는 의미에서 ‘율성(律成)’으로 개명했습니다. 1936년 5월에 중국의 좌파 청년들이 참여하던 ‘오월문예사(五月文藝社)’ 창립 대회에서 정율성은 추취도(鄒趣濤)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한 그의 처녀작 《오월의 노래》(五月之歌)를 만돌린을 연주하며 직접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는 1937년 10월 옌안(延安)으로 이주하여 중국 공산당의 루쉰 예술학원(魯迅藝術學院), 중국인민 항일 군사 정치대학(中国人民抗日军事政治大学) 등에서 학습을 나갔습니다. 정율성은 1939년 1월에 중국 공산당의 당원이 되어 공산주의 혁명 문예 공작에 참여하였으며, 《팔로군행진곡》을 포함하여 8곡으로 구성된 ‘팔로군 대합창(八路軍大合唱)’을 작곡하였습니다. ‘팔로군행진곡’은 당시 팔로군에서 널리 애창되었으며, 훗날 ‘중국인민해방군 군가’가 되었습니다. 정율성은 옌안에서 중국 공산당에 소속되어 활동하며, 앞서 1937년에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정설송(丁雪松)을 만나 1941년 팔로군이 주둔하던 동굴에서 결혼하였습니다. 정설송은 중국 공산당당원으로 중공 외사판공실 비서장 등을 거쳐 덩샤오핑 정권에서는 1979년과 1982년 네덜란드와 덴마크 주재 대사를 맡기도 했습니다. 정율성은 1942년에는 옌안을 떠나 조선 혁명군정학교에서 음악장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그는 ‘유격전가’, ‘처녀 두었녀성’, ‘조선 의용군 행진곡’, ‘연안송’ 등 공산주의 혁명 색깔이 짙은 노래를 작곡하였습니다. 정율성은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팔일오 광복으로 해방을 이룩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쪽으로 귀국해 조선인민군 구락부 부장, 조선인민군 협주단 단장, 조선음악대학 작곡부 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북조선 노동당 당원으로 입당하였으며, 《조선인민군 행진곡》, 《조선해방 행진곡》, 《두만강》, 《동해 어부》등을 작곡하였습니다. 1950년에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취득한 정율성은 한국 전쟁이 벌어진 뒤에는 침략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부탁으로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 저우언라이가 중공의 중국 인민지원군 일원으로 그를 그해 12월 한국 전쟁의 전장으로 직접 파견해서 혁명 활동을 하게 하였습니다. 한국 전쟁에서 대한민국 국군이 북녘의 국토를 끝내 수복하지 못한 뒤로 정율성은 중화인민공화국에 남아서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정권의 공산주의 혁명 음악 분야에서 계속 활동하였습니다. 1976년 12월 7일에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에서 고혈압 등으로 사망하였으며, 중국 공산당이 안배한 바바오산의 혁명 투사 공동묘지에 시신이 묻혀 있습니다. 이런 그를 기리기 위해 광주시의 역사공원 조성 계획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상황이다. 지난 14일 광주시의 발표에 따르면, 동구 불로동 일대의 878㎡에 48억원을 투입하여 ‘정율성 역사공원’을 연말까지 조성할 예정입니다. 이 공원은 정율성의 삶과 음악 세계를 기리는 광장, 정자, 교양 및 관리 시설 등으로 구성됩니다. 시는 이미 2020년 3월에 공원 지정을 시작한 뒤, 동년 5월에 공원 조성계획을 마무리하였으며, 소유권 이전과 같은 토지 보상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온라인에서는 격한 비판 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누리꾼들은 “6·25전쟁 때 중공군에 참전한 인물을 왜 기리는 건가?”, “이 결정이 정당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광주시의 결정은 어디까지 타당한가?”, “과거 친일파의 행동은 왜 묵인되는가?” 등의 의견을 제시하며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6∙25때 중공군으로 참전한 역적을 기념하는 공원 조성이 말이 됩니까? 전남 광주시는 역적 도시입니까? 이러니 수많은 국민들이 전라도를 손가락질 하며, 욕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라도여! 전라도여! 그러니 ‘전라인민공화국’이라고 하죠! 대한민국을 건국한 전라도여!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자유대한민국이 정상화되려면 전라도와 더불당 및 반국가세력이 참회해야 합니다. 종북을 민주화로 위장하고, 반국가를 ‘우리민족끼리’라는 민족으로 포장하며, 가짜 위장 평화로 선동하는 집단을 척결해야만 자유와 정의와 지성과 국가경쟁력 회복이 가능합니다. 김대중의 노벨평화상과 20개의 기념관이 바로 나라를 망치는 괴물입니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을 학습하고 토론하고 존경해야만 도덕성도 미래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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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2
  • [뉴스워크]8월18일(금)“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 그는 누구인가?”
    조길호 씨의 ‘김은경은 누구인가?’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그녀는 1965년생 전주 출신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전주에서 물리 교사였는데 박정희 대통령 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곤혹을 치렀다고 합니다. 그녀는 아마도 어려서부터 이를 보며 반골 기질의 DNA를 물려받아 성인이 된 이후 그녀의 표현대로 우파 정부에 대한 ‘분노와 치욕에 치를 떨며’ 좌파의 길을 걸어온 것 같습니다. 2004년에 한국외대의 어떤 학과에 입학했다가 2006년에 법학과에 다시 입학했다니 삼수를 한 셈입니다. 여학생의 법학과 입학률이 평균 10% 정도였던 당시로서는 아버지의 억울함이 자극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같은 학번의 어떤 변호사는 말을 합니다. 법학과에서 같은 전주 출신의 선배를 만나 연애했고(이후 결혼), 재학 중 학생운동권에 가담하면서 한 살 차이의 1964년생 양정철 법학과 선배를 만나 동지로서 두터운 인연을 맺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시아버지는 고향 전주에서 경찰관 출신이였는데, 소방재료 사업으로 특허가 8개나 되어 사업가로서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의 재력으로 아들 부부가 (아이는 시부모에게 맡기고) 독일로 유학하였으나 남편은 중간에 돌아오고 며느리만 대학(University of Mannheim)에 남아 상법 중 보험법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유학에서 중도에 돌아온 남편은 기러기 아빠가 되어 아버지 사업을 도우며 아내의 유학을 재정적으로 뒷바라지 했다고 합니다. 귀국해서 대학 강사 생활을 하다가 2006년에 모교의 법학전문대학원 전임교수가 되었습니다. 유학에서 돌아온 후 첫째아들에 이어 10년만에 둘째 아들도 낳았는데 그 아이가 네 살 때 아버지는 자살한 것입니다. 그때가 2006년인데 그녀가 모교 교수가 된 해이기도 합니다. 김은경은 교수가 된 이후 2015년부터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서 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에 문재인이 새천년민주당 대표 시절에 민주당의 핵심 참모였던 양정철이 외부 인재 리스트 작성자였는데, 과거 인연으로 김은경을 민주당 당무감사위원으로 추천한 것으로 사람들은 합리적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교수로서 9년만에 정부나 정치계에도 첫 발을 들여놓은 셈입니다. 물론 위원에 불과하니까 교수가 본업이지만. 이후 그녀는 대통령이 된 문재인과 양정철의 빽으로 2018년에 차관급인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대통령이 감사원장에게 추천했으나 당시의 최재형 감사원장은 그녀의 민주당 당무감사위원 경력이 정치색채 배제에 흠결이 된다며 반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재인은 2019년에 금융감독원 산하 제재심의위원에 이어 2020년에 3년 임기의 금융감독원 여성 최초 부원장에 앉혔는데 연봉은 감사원 감사위원보다 두 배나 높은 3억원이니 전화위복이 된 셈입니다. 전용 관용차에 기사까지 제공되는 금방석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2021년에 감독원장이 바뀌게 되었을 때 부원장도 바뀌는 관례에 따라 다른 두 명의 부원장은 사표를 냈으나 김은경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읍소하여 그 자리를 유지했고, 2022년에 정권이 바뀌어 원장, 2명의 부원장들도 모두 사직했는데도 사직서를 안 내고 그 자리를 끝까지 버티고 임기 3년을 채웠으니 전무후무한 케이스였습니다. 임기를 다 채우고 나서 “임기의 마지막 1년은 윤석열 치하에서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엄청 치욕스러웠다”고 실토했습니다. 그 3년은 군 복무 기간도 아니고 돌아갈 직장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휴직했던 교수직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받아놓은 꿀단지는 다 빨고 가겠다는 거였습니다. 금융감독원장 연봉이 3억 6천만원이고 부원장은 3억짜리 꿀단지이니 매월 2,500만원이 그 치욕을 보상해줬을 것 같습니다. 이런 김은경의 인내심을 국민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금감원 부원장 재직시에 시어머니는 2021년에 요양원에서 사망하고, 다음 해엔 전주에 오래 전 낙향한 시아버지가 자살했는데, 두 번 다 자기 이름으로만 부고장을 신문에 내고 각 금융기관과 지인들에게도 알렸나 봅니다. 코로나 기간이여서 장례식에 찾아가는 것도 금지된 세상이어서(미국에 산다는 막내 시누이도 참석이 불가했던 상황) 대부분의 부의금은 계좌번호로 이체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장례식에 와서 자기에게 들어온 나머지 부의금을 싹 빼가서 아연실색했다는 시누이의 증언입니다. 우리 금융기관의 정서에 밝은 어떤 전문가는 부원장 정도는 喪 당했을 때 조의금이 5~6억씩은 들어왔을 것이라 예상하니 두 번의 喪에 10~12억은 챙겼을 것입니다. 김영란법 위반일 거라고 일부에선 조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지금 그녀의 민주당 혁신위원장 자리는 친명계에서 밀어서 차지했는데 친문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이재명과 어떤 밀약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지금의 위기를 버티는 것도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1번 자리를 노리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비례대표 자리 1, 3, 5, 7... 홀수번호는 여성 몫이니까. 중간에 불명예 제대하면 그 자린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파동이 워낙 커서 그 자리는 물 건너 간 것 같습니다. 시누이의 폭로에 큰아들이 대응하니 시누이가 다시 김은경 보고 직접 답하라고 한다. 그 아들의 반박문에서 아버지는 자살 직전에도 엄마 무릎을 베고 있었고 자기는 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드렸다는데 이 반박이 거짓임을 그의 고모부가 밝혔습니다. 그의 아들과 김은경의 큰아들은 자살 당시에 14살 동갑이었는데, 빈소에서 자기 아들이 왜 돌아가셨냐고 물으니 “엄마랑 싸우다가 뛰어 내렸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빈소에서도 그의 아들은 슬퍼하지도 않고 핸드폰으로 게임만 해서 이상하게 생각했었다는 자기 아들의 과거 회상을 털어놓았습니다. 당시에 핸드폰 게임이라야 벽돌 깨기 등 단순한 것이었겠지만 미국의 시누이가 이에 대하여 밝힌 4살짜리의 아빠 자살 증언은 14살 큰아들의 말을 착각한 것 같다고 고모부가 첨언합니다. 그 고모부도 이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 처남의 자살에 대하여 부담 없이 말한 것 같습니다. 미국 시누이는 미주 한국일보 고정 컬럼 니스트라는데, 컬럼을 읽어보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하여 지독한 극혐의 극좌파여서 올케와 사상만큼은 같기에 미워도 지금까지 올케의 승승장구 출세를 지켜만 보아왔는데 자기 친정 부모를 18년간 모셨다는 말에 이건 너무 파렴치하다 싶어 사상을 떠나서 폭로해 버렸습니다. 정치에 가정사를 끌어들여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김은경은 스스로 거짓으로 가정사를 끌어들이는 바람에 시누이의 폭로로 그의 인간성과 거짓말이 온 국민에게 드러났으니 이슈를 자초한 것입니다. 거대 야당의 개혁 책임자이니 수신제가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냥 보통사람이라면 국민들은 관심도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의 김은경 파동도 좌파들의 특징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그 하나는 거짓말을 양심의 가책도 없이 천연덕스럽게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겉으로는 정의와 공정을 앞세우면서 뒤로는 이권이나 돈을 엄청 밝힌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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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8
  • [뉴스워크]8월17일(목)“아! 살(殺) 날린 게 잘못 갔나” “아들도 데려 가지”
    작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이 취임식에 전국에서 4만여명이 참석했습니다. 그때 단상 아래 회색 정장을 입은 한 노신사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였습니다. 통상 대통령의 가족은 VIP로 분류돼 취임식 단상에 앉는 것이 관례였지만, 91세였던 윤기중 교수는 일반석을 택했다고 합니다. 당시 취임식에 참석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오랜 지인 A씨는 “윤 교수님이 일반석으로 걸어 오고 계셔서 깜짝 놀랐다. 급히 인사를 드리러 간 모습을 함께 간 친구가 찍어 줬다. 윤 교수님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어서 간직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박주선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장도 당시 상황에 대해 “윤 교수님을 단상에 모시려 했지만 ‘다른 귀한 분을 모시라’며 한사코 사양했다”며 “윤 대통령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해 일반석을 내드렸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오랜 지인들은 이같은 윤 교수에 대해 “항상 일관됐던 평소의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대학 시절 윤석열 대통령의 집을 자주 찾았다는 한 법조계 인사는 “집을 찾을 때면 작은 4인용 식탁에서 식사하던 윤 교수님이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윤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사법고시 9수를 하던 시절에도 답답함을 내색하거나, 별다른 재촉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기본서에 충실하라’며 원리를 파고드는 공부를 주문했습니다. 윤 교수는 올해 초까지도 연세대 명예교수실로 출근해 돋보기로 책을 읽으며 연구를 이어 갔다고 합니다. 여권 관계자는 “어떤 사안이든 원리부터 파고드는 윤석열 대통령의 습관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윤 교수는 아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엔 수차례 공직자의 태도에 대한 당부를 전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오랜 지인인 한 기업인은 “윤 대통령이 검사가 된 이후부터 윤 교수님은 ‘절대 부정한 돈을 받으면 안 된다’, ‘밥을 얻어 먹고 다니지 말라’는 말을 달고 사셨다”며 “윤 대통령이 총각 시절엔 빈 지갑을 슬쩍 보시고 돈을 넣어 주신 적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인들은 “윤 교수님과 윤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애틋했고 서로를 아낀 부자지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에 대통령의 아버지가 VIP석에 앉지 않고 일반석에 앉은 것은 끼리끼리 다 해 먹는 좌파 정권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들의 대통령 취임식을 일반석에서 꼿꼿이 바라보는 감동적인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식을 마친 뒤 곧바로 최근 건강이 악화되어 치료를 받아 왔던 부친이 입원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달려 가서, 부친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윤기중 교수가 아들 윤석열에게 한 마지막 유언이 “잘 자라줘서 고맙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마지막 숨을 내쉬며 아들에게 주는 이 말 이상 더 좋은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눈을 감을 때 자식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입니다. 그런 윤기중 교수가 윤석열 대통령이 도착한 지 20분 뒤에 향년 92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 하였습니다. 빈소는 고인이 재직한 연세대의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고, 장례는 3일간 가족장으로 치러집니다. 윤 대통령은 이날(15일) 저녁부터 빈소를 지켰습니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윤 교수는 홍주목-덕산현 파평 윤씨 소정공파 34대손으로 31년생 올해 92세입니다. 공주 농고를 졸업하고 1956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마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학위(1958년) 받았습니다. 이후 한양대 경제학과에서 강의하다가 한일 수교 직후인 1967년 일본 문무성 국비 장학생 1호로 선발돼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1968년 귀국 후 연세대 상경대 교수로 부임해 1997년까지 강단에 섰습니다.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창립 멤버로, 1960 ~ 1990년대 미국경제학회(AEA)와 일본 계량-경제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김 수석은 “윤 대통령은 국정 공백이 없도록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조화와 조문을 사양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애도를 표해 준 국민 여러분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고 했습니다. 고인은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교수로 재직해 온만큼 고인과 가까웠던 학계 인사 등 최소한의 조문만 이뤄질 것 같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고인이 오랜 기간 평생을 교단에 머무셨기 때문에 제자들과 하계 지인들의 최소한으로 조문이 이뤄질 것 같다”며 “그 외에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 부친상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고인은 윤봉길 의사의 집안으로 오직 나라만 걱정하신 올곧은 분이셨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올곧은 마음이 있어 나라를 바로 잡아 놓을 것입니다. 극성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부친 윤기중(92) 연세대 명예교수 별세에도 독설을 쏟아냈습니다. 이 가운데는 중앙 일간지 칼럼니스트도 있었습니다. 윤 대통령 부친이 별세한 당일인 지난 15일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겸 평론가 위근우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아 살 날린 게 잘못 갔나”라고 적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죽길 원했는데, 윤 대통령 부친이 별세했다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통상 ‘살을 날린다’는 의미는 무속이나 주술의 행위로 상대에게 죽이기 위한 ‘살(殺)’의 저주를 보낸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위 씨의 캡처본이 SNS상에 돌면서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오진영 작가는 해당 캡처본을 공유하면서 “한때는 글 잘 쓰는 칼럼니스트라고 생각했고, 일부러 이름 검색해 글을 찾아 읽기도 했는데. 이렇게 살고 있구나”라며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나. 대체 이 사람들은 왜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대통령의 부친상을 조롱하면 정의로운 민주 투사 인증인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일부 네티즌은 해당 글에 “인간이길 포기하는 말” “창피한 줄 아시라” “사람이 되어라” 등의 댓글을 달며 항의했지만 위 씨는 16일 오전 10시 30분 현재까지 해당 글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위근우 씨는 경향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과거 MBC TV 비평 옴부즈맨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도 윤 대통령 부친 별세를 조롱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습니다.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은 윤 대통령 부친이 광복절인 15일에 별세했다며 “기쁜 광복절” “축배를 들자” “친일파가 광복절에 죽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외에도 “왜 혼자 가셨어요?” “아들도 동행해야지” “나라 말아 먹을 아들을 생산한 자” “빠른 시일 내에 아들 부부 데리고 가라” “저런 인간에게 별세라는 말이 아깝다” 등 패륜적인 막말을 쏟아냈습니다. 클리앙 등 친야권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조롱 글이 쏟아졌습니다. 윤 대통령 부친이 92세에 별세한 것에 대해서는 “참 오래도 살았다. 친일 부역자들은 참 오래 산다. 남들 피 빨아먹어서 그런 거겠죠”라고 했습니다. 이외에도 “광복절에 아주 좋은 소식이다” “윤 부친 사망은 매우 유감이다. 우리가 바란 건 아드님 사망” “순장해야 한다” “아들 감옥 가는 거 꼭 봤어야 하는데 아쉽다” “그래도 덕분에 (윤 대통령이) 며칠 일 안 할 테니 그건 다행” 등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일부 네티즌은 “밉지만 사람 목숨 가지고 그런 농담은 좀 그렇다”며 자제를 촉구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최근 정진석 의원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썼던 故 노무현 대통령 부부싸움 글을 두고 서울중앙지법이 정진석 의원에게 사자명예훼손죄로 실형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해당 판사의 양형기준에 따른다면, 고인을 혐오한 이들은 죄질이 매우 나빠 구속해야 할 사안입니다.더불당 지지자들은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부터 무속을 믿는 사람으로 프레이밍 해왔습니다. 특히, 용산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해 풍수학자의 자문을 무속이라며 조롱하기도 했었습니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자신들이 무속과 더불어 사는 이들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故 윤기중 명예교수는 지난 5월 연세대 명예교수의 날에 참석해 행사가 끝난 후 서승환 연세대 총장을 조용히 불러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연세대 발전을 위해 귀하게 쓰라”며 기부금을 전달했습니다. 기부금을 전달받은 서 총장은 “윤 교수님 살림살이로는 적지 않은 돈을 주셨다”며 “감사한 마음으로 좋은 곳에 쓰이도록 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 17일 발인을 치른 뒤 한-미-일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으로 출국합니다. 좋은 결과를 가지고 귀국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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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7
  • [뉴스워크]8월16일(수)나도 묻고 싶다...“도대체 너희들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나?”
    올해 8월 15일은 제78주년 대한민국 광복절입니다. 광복절은 ‘빛 광(光)’, ‘돌아올 복(復)’, ‘마디 절(節)’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합니다. 즉 빛이 돌아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한민족에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환(桓)(천광명), 단(檀)(지광명), 한(韓)(인광명) 사상과 천지인(天地人) 사상과 연관되어 있는 표현입니다. 하늘(우주)과 땅과 인간이 모두 같은 원리와 이치 속에 움직인다는 사상입니다. 이러한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를 우리는 일제 식민지로부터 독립된 날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만큼 광복절은 한민족에게 굉장히 중요한 날입니다. 어제(15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제78주년 8∙15 광복절 경축식이 열렸습니다. 여기에는 애국지사, 독립유공자와 유족, 국가 주요 인사, 정당∙종단대표와 주한외교단, 각계 대표, 시민 등 약 2천명이 참석했습니다. 경축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라고 했으며,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 전체주의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음은 윤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전문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750만 재외동포 여러분! 오늘은 제77주년 광복절입니다.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 그리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은 3.1 독립선언과 상해 임시정부 헌장, 그리고 매헌 윤봉길 선생의 독립 정신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비롯하여 모든 국민이 함께 힘써온 독립운동은 1945년 바로 오늘, 광복의 결실을 이뤄냈습니다.그러나 독립운동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이후 공산 세력에 맞서 자유국가를 건국하는 과정, 자유민주주의의 토대인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과정을 통해 계속되어왔고 현재도 진행 중인 것입니다.과거에는 약소국이 강대국에 의해 억압되고 박탈된 국민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주권 국가를 세우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었습니다. 앞으로의 시대적 사명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 국가들이 연대하여 자유와 인권에 대한 위협에 함께 대항하고 세계시민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을 이뤄내는 것입니다.자유를 찾기 위해 시작된 독립운동은 진정한 자유의 기초가 되는 경제적 토대와 제도적 민주주의의 구축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하여 세계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대하는 것으로 계승되고 발전되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광복절인 오늘 우리는 과거에서 미래를 관통하는 독립운동의 세계사적 의미를 다시 새겨야 합니다.역사적 시기마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그 성격과 시대적 사명을 달리하며 진행되어온 역동적인 과정입니다.자유를 찾고, 자유를 지키고 자유를 확대하고, 또 세계시민과 연대하여 자유에 대한 새로운 위협과 싸우며 세계 평화와 번영을 이뤄나가는 것입니다. 조국의 미래가 보이지 않던 캄캄한 일제 강점기에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며 국내외에서 무장 투쟁을 전개하신 분들, 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면서 무장 독립운동가를 길러내신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고 벅차오릅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할 민족 역량을 키워내기 위해 국내외에서 교육과 문화 사업에 매진하신 분들, 공산 침략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신 분들, 진정한 자유의 경제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신 산업의 역군과 지도자들, 제도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희생과 헌신을 해오신 분들이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독립운동가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모든 분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분들에 대한 존경과 예우를 다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일 뿐 아니라 미래 번영의 출발입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과거 우리의 자유를 되찾고 지키기 위해서 정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대상이었던 일본은 이제,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입니다. 한일관계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한일관계의 포괄적 미래상을 제시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여 한일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키겠습니다.양국 정부와 국민이 서로 존중하면서 경제, 안보, 사회, 문화에 걸친 폭넓은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해야 합니다.우리의 독립운동 정신인 자유는 평화를 만들어내고 평화는 자유를 지켜줍니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는 세계 평화의 중요한 전제이고 우리와 세계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대하는 기초가 됩니다.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전 세계의 지속 가능한 평화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저는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제안합니다.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국제 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프로젝트,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지원 프로그램,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지원, 국제투자 및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겠습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국제 신인도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 재정이 튼튼해야 합니다. 저는 공적 부문의 긴축과 구조조정을 통해 재정을 최대한 건전하게 운용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확보된 재정 여력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는데 쓰겠습니다. 경제적 문화적 기초를 서민과 사회적 약자에게 보장하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연대의 핵심입니다. 어려운 분들의 생계 안정을 위해 기초 생활 보장을 강화하고 갑작스러운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 대해서도 정부 지원을 강화하겠습니다.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이 불편하지 않도록 돌봄서비스를 대폭 보강하고 보호 시설에서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더욱 세심하게 챙길 것입니다.국민들의 주거 불안이 없도록 수요 공급을 왜곡시키는 각종 규제를 합리화하여 주택 시장을 안정시키겠습니다. 아울러 사회적 약자를 위한 주거 복지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최근 초유의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는 국민들께 큰 피해와 고통을 안겼습니다. 재난은 늘 서민과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피해와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더 세심하고 철저하게 챙기겠습니다. 국민들의 신속한 일상 회복을 위해 피해 지원과 복구에 최선을 다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할 것입니다. 수해, 코로나 재확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는 충분한 금융 지원을 통해 대출금 상환의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약과 혁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도약은 혁신에서 나오고 혁신은 자유에서 나옵니다. 민간 부문이 도약 성장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혁신하겠습니다. 우리 기업이 해외로 떠나지 않고, 국내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과감하게 제도를 혁신해 나갈 것입니다.과학 기술의 혁신은 우리를 더 빠른 도약과 성장으로 이끌 것입니다. 산업의 고도화와 기술 발전을 추종하는데 그치지 않고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기후변화, 팬데믹의 위기 역시 첨단과학 기술의 접목으로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위대한 국민 여러분! 우리는 험난하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누구도 우리의 미래를 믿지 않았던 순간에도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눈부신 번영을 이뤄냈습니다. 자유를 되찾고, 자유를 지키고 자유를 확대하는 과정속에서 더욱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우리의 독립운동은 끊임없는 자유 추구의 과정으로서 현재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에 자유와 번영을 가져다준 우리의 헌법 질서는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위대한 독립 정신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함께 연대하여 세계 평화와 번영에 책임 있게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분들의 뜻을 이어가고 지키는 것입니다.저는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우리에게 부여된 세계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에 대하여 친북 내지 종북 좌파들이 즉각 반발에 나섰습니다. 더불당 수석대변인 권칠승은 “어느 시대를 살고 있으며, 도대체 무엇을 보고 듣는 것입니까? 극우 유튜버 채널에 심취해 유신 독재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의심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정의당에서는 “국민을 반으로 가르고 대결을 획책한 경축사로, 민족 통합이라는 광복절의 의미가 퇴색했다”고 말했습니다. 제3지대 신당을 창당 중인 금태섭 전 의원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경축사를 겨냥해 “광복절의 편 가르기”라고 말했습니다. 금태섭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 때는 광복회장이 나서서 친일파 타령을 하면서 편 가르기를 하더니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이 직접 ‘공산 전체주의’, ‘반국가세력’ 운운하면서 적대감을 키운다”며 “양쪽이 모두 이렇게 퇴행적으로 수구적 인지”라고 비난했습니다. 여권 내 비주류의 한 축인 유승민 전 의원도 “대통령은 광복절에 단 한마디도 역사를 말하지 않았다”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유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광복절 경축사’라는 제목이 없었다면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이 맞는지 도통 모를 연설이었다”며 “대통령의 가슴 속에 우리 역사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라며 따져 물었습니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70여명의 운동권 주사파 국회의원들이 민주당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이 윤 대통령 발언에 반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민주당내에서는 국회의원 1명당 9명의 비서가 있으므로 주사파의원의 보좌관관 비서들까지 합하면 민주당 내에는 수백명의 운동권 주사파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정당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받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정의당도 “초록은 동색”이라고 민주당과 같은 패거리입니다. 그리고 민주당에서 나온 금태섭도 가끔 바른 말을 하지만 근본은 좌파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힘 유승민과 하태경(NL계열 운동권 주사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묻고 싶다! “도대체 너희들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나?” 자유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공산 전체주의를 찬양하고 맹종하는 대한민국의 반국가세력을 완전히 척결해야 합니다. 이들을 척결하는 방법은 오직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반국가세력에 대해서는 미국처럼 형량을 수십년으로 하고, 반정부 활동으로 처벌을 받은 사람들은 국회의원과 지방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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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6
  • [뉴스워크]8월14일(월)“우리가 만든 민주화 쓰레기, 우리가 치운다.”
    KBS2 TV에서 주말마다 방송되는 ‘진짜가 나타났다’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진짜’를 둘러싼 미혼모와 비혼남의 가짜 계약 로맨스를 다룬 이야기로 임신-출산-육아를 통해 ‘애벤져스’로 거듭나는 이들 가족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담은 휴머니즘 가족 드라마입니다. 과연 ‘진짜’가 누구일까요? 그런데 민주화 운동권의 ‘진짜’가 나타났습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 핵심이었던 인사들이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끼치는 해악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반(反)대한민국 세력을 바로 잡겠다”며 광복절에 발기인 대회를 통해 ‘민주화 운동 동지회’를 결성합니다. 이들은 “젊은 시절 벌였던 잔치판을 설거지해 다음 세대가 새 잔치를 벌일 수 있도록 하자. 우리가 만든 쓰레기는 우리가 치우자”며 반미∙반일 프레임에 갇혀 북한에만 관대한 운동권의 편협한 인식을 바로잡고 정당 정치 정상화를 위해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고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을 지낸 주대환 씨,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으로 미 문화원 점거 사건을 주도한 함운경 씨,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맡고 광우병 시위를 주도한 민경우 씨 등이 참여합니다. 발기인 중 한 명인 주대환 조봉암기념사업회 부회장은 7일 “운동권 중 가장 사고를 많이 친 이들이 설거지를 하는 게 맞다”며 “조국∙윤미향으로 운동권 출신들이 분열됐는데, 뜻이 맞는 이들을 다시 모으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1985년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으로 미국 문화원을 점거한 함운경 씨와 이적(利敵) 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맡았던 민경우 씨 등이 주축입니다. 민주노총 등 좌파 단체 출신 인사들도 발기인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발기인 대회는 87년 6월 항쟁이 시작됐던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립니다. 특히 이날 발기인 대회에는 30대인 박은식(의사)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도 참석합니다. 박 대표는 “호남 출신으로 자라면서,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진 대한민국 역사를 악(惡)으로 규정하는 데 익숙했다”며 “그러나 우리가 이룬 성취가 결코 간단치 않음을 깨닫게 됐고, 우리 역사를 긍정하는 목소리가 지금보다는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20대 대학생들도 참석해 운동권 출신 인사들과 대화를 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동지회는 운동권 출신들의 ‘대한민국은 해방 후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는 역사관을 설거지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반미∙반일 프레임을 고수하면서 북한의 권력 세습에는 관대한 것도 이런 역사 인식 때문이란 게 이들의 지적입니다.주 부회장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끼치는 해악을 두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발기인 제안서에서 “지난 정권의 무능과 일탈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민주화 운동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자를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고 했습니다. 이어 “가짜 뉴스와 괴담이 난무하는 극단의 대결 이면에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이른바 ‘운동권 정치’가 내재되어 있는 건 아닌가”라고 했습니다. 특히 민 대표는 2008년 광우병 괴담 사태 당시 ‘한미 FTA 범국민운동본부’ 정책팀장을 맡아 시위대 측의 최일선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것으로 유명합니다.‘운동권’은 군사 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민주화 이후 대부분은 생업으로 돌아갔지만, 일부 학생 운동권 간부들은 이 경력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진출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영향력을 키우더니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 전반을 장악할 정도로 권력을 극대화했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30년 권력이었습니다. 이제는 ‘운동권 귀족’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들이 장기 권력화하면서 자신들이 내세웠던 민주주의, 인권, 정의와 반대로 갔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 출범하는 동지회는 이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겠다는 것입니다. 문재앙 정권 5년간 민주주의 파괴 행태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출발부터 드루킹을 동원한 대규모 여론 조작으로 시작했습니다. 선거법을 강제로 바꾸는, 민주 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폭거도 저질렀습니다. 위장 탈당, 회기 쪼개기 등 반민주적 작전을 예사로 사용해 입법 폭주를 했습니다. 문재앙의 30년 친구를 울산시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 비서실 8개 조직이 나서서 야당 후보를 억지 수사했습니다.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였다고 청년들을 압수수색하고 주거침입으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5·18에 대해 정부 발표와 다른 주장을 하면 감옥에 보내는 법도 만들었습니다.민주∙인권 무시는 국내에서만이 아니었습니다.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공동 제안을 4년 연속 외면하고, 귀순을 희망한 북한 어민들은 포승줄에 묶어 강제 북송했습니다. 김여정 말 한마디에 국제사회가 모두 반대한 ‘대북전단금지법’을 밀어 붙였습니다. 도덕성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조국∙윤미향 사태로 공정과 정의를 파탄 냈습니다. 운동권 출신 시장·도지사들이 성범죄로 물러났습니다. 억대 연봉을 받는 공공기관에 낙하산으로 무더기 취업하고, 탈원전을 틈타 태양광 사업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각종 시민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수조원대 국민 세금을 타갔습니다. 운동권이 장기 권력이 되면서 이제는 서로 밀어주면서 국민 세금을 빼먹는 ‘운동권 생태계’가 만들어졌습니다. 민주당은 그 생태계를 확대하는 ‘사회적 경제기본법’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민주화는 운동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수많은 일반 시민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그 평범한 시민들은 열심히 일해 기업 일으키고 세금 내며 나라와 사회에 기여했습니다. 그동안 운동권은 반민주, 반인권을 일삼는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이 됐습니다. 이 낡은 집단의 시대는 끝나야 합니다. 뉴데일리는 민 대표와 만남에서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바라보나?’라는 질문에 “문재인 정부는 1980년대 운동권 정신 중 하나인 급진주의 망상을 실제로 실현하려고 했다. 대표적으로 남북관계, 탈원전, 부동산정책, 역사문제 등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1980년대 운동권들이 하던 생각을 그대로 시행했다. 특히 문재인 정권은 말도 안 되는 대북정책을 시행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가정이 민간인인 내가 보기에도 말이 안 됐는데, 그런 가정하에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문 정부는 운동권의 낭만을 가진 채 대북정책을 밀어 붙였다고 본다”고 대답했습니다. “‘민주화운동동지회’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지금 뿔뿔이 흩어져 있다. 그리고 저신이 과거에 했던 활동에 대해 정직한 평가를 내리지 못하는 상태다. 이들을 조직하고 각종 조직적 활동을 통해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선도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 나아가 운동건 정치인들의 물리적 퇴장을 추진할 것이다. 과거 운동권 정치인과 운동권 들을 통해 부당한 축재를 했던 인사들을 모두 규명할 것이다. 내년에 치러질 총선이 그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화 운동 출신들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은 독일 광부, 간호사, 월남 파병 군인,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힘들게 외화를 벌은 국민들입니다. 그들이 있어 대한민국의 발전이 있었던 것입니다. 과거 운동권이 외친 민주화는‘민주화’라는 탈을 쓴 파쇼 ‘공산화’ 운동이라는 것이 그 본질이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들을 깨끗히 청소해야 합니다. 주사파와 간첩들을 색출하여 제거해야 합니다. 빨갱이는 러시아로! 중공몽은 중공으로! 종북 주사파는 어버이 품으로! 보내서 종북좌파를 역사의 무대에서 제거해 주시길 바랍니다. 국민의힘에 기웃거리지 말고, 민주당에 들어가 주사파화 된 민주당을 온전한 정당으로 회복시키시길 바랍니다. 제2의 하태경이 되지 말고, 김문수 경사노 위원장이나 뱅모 박성현처럼 제대로 전향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용기를 높이 평가합니다. 대한민국을 올바르게 세우기 위한 활동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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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4
  • [뉴스워크]8월11일(금)“새만금 ‘돈버리기’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
    1989년에 발표된 새만금 사업은 총 4만900ha(409 km2)의 땅을 새롭게 조성하는 단군 이래 최대 간척사업으로, 면적만 따지면 우리 국민 한 사람에게 약 3평(9.9m2)씩 나누어 줄 수 있는 크기입니다. 1991년 첫 삽을 떴을 때는 순조로웠으나 그 후 1995년부터 10년간 환경단체의 소송으로 사업이 멈추었으며, 현재까지 매립을 완료한 면적은 48%에 불과합니다. 또한 정치가 개입되면서 전북의 시스템 부재 상황을 여실히 드러내었습니다. 김제시가 ‘새만금 신항’을 ‘김제 신항’이라고 주장했듯이, 잼버리를 개최한 지역은 ‘부안군’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새만금 잼버리가 아니라 ‘부안 잼버리’입니다. 잼버리 대회가 개최되기 전까지만 해도 부안군은 의기양양하게 ‘부안 잼버리’라고 6년동안 선전했습니다. 새만금보다 5개월 늦게 시작한 중국의 푸둥(浦東) 지구 계획은 현재 마천루가 즐비한 금융 허브로 키워내 ‘동양의 맨하튼’으로 부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사실 새만금 잼버리는 문재앙이 취임 후 첫 수석비서관급 회의에서 직접 챙길만큼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행사입니다. 취임 첫 해, 새만금 잼버리를 유치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잼버리 지원 특별법까지 통과시켰습니다. 새만금 잼버리 유치 이전인 2016년 타당성 조사에서 배수 문제와 폭염 문제가 이미 지적되었습니다. 당시 전북도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무를 심겠다고 했으나 이후 아무런 조치 없이 현재의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잼버리의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역대 장관들이 2017년부터 지난 해까지 6년간 공식 일정으로 현장을 찾아 간 것은 평균 2번 뿐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민주당 책임입니다. 서울 민주당은 원래부터 새만금을 표몰이용으로 여기고 있었고, 전북 민주당은 지금까지 뭐 했을까요? 그런데 이제 와서 책임이 없다고 할 태세입니다. 그러면 누구 책임입니까? 잼버리 집행위원장인 김관영 전북지사가 6일 공개 사과를 했습니다. 전라북도가 망친 것을 현 정부가 수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토목 전문가는 “야영지 조성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행정력으로 SOC 관리는 제대로 할 수 있겠냐?”며 “국민들의 성토가 엄청나다. 지자체가 자진 반납할 건 해야 새만금 사업이 살아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로, 추가 예산 집행입니다. 12일간의 1회성 사업인 잼버리를 명목으로 새만금에 투입된 국민의 혈세가 2조 6천억원입니다. 부대 사업까지 포함하면 그 금액은 20조에 이릅니다. 잼버리 유치 이후 2018년 12월에 착공된 새만금 고속도로는 잼버리 개최 직전 2023년 개통되었는데, 여기에 4,239억원의 세금이 투입됐습니다. 그 후 추가로 1조 1,293억원이 추가 투입돼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지역도로 건설사업이 대기 중입니다. 전라북도는 더 나아가 군산공항을 대체할 새만금 국제공항을 2028년까지 완성한다는 목표로 추진중입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이 8077억원입니다. 새만금 간척지 뻘구덩이 땅을 사람이 다닐만한 곳으로 조성하기 위한 토목공사에도 2천억원이 투입됐습니다. 그 외에 잼버리 추진 추가 예산 1,000억원까지 모두 2조 6천억원이 들었습니다. 예산 낭비를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예타까지 면제한 파렴치함이 더욱 경악스럽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7월 8일 ㅁ민선 8기 시도지사와 만찬 간담회에서 김관영 전북지사가 잼버리 예산 60억 추가 요청에 “이건 중요한 거니까 바로 지급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에게 “한 푼도 깍지 말고60억원을 다 도와 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까지 속여서 잼버리 국제 행사를 저들만의 돈 잔치로 이용했습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들입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운영비만 하더라도 8년 전 일본이 했을 때보다 2배 이상 썼다”며 “문제가 있다면 수사까지도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 르몽드는 “새만금 잼버리 이상하다. 그 많은 돈 어디 갔냐?”라고 충격적인 보도를 했습니다. 이런 뒤숭숭한 시국에 부안군의회 기초의원 전원이 오는 30일부터 3박 4일간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날 예정입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크루즈 출장 방침입니다. 국가적 망조를 자초한 세금 방만 ‘돈 버리기 대회’로 만든 장본인들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둘째로, 태풍 전 철수입니다. 전북연맹 스카우트 900단 대장은 영내에서 발생한 성범죄에 대해 조직위가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조기 퇴영을 결정했습니다. 900단은 전북 연맹 스카우트에 소속된 단위 조직으로, 이 단체에서 잼버리에 입소한 인원은 청소년 72명을 비롯해 80명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북경찰청은 “성적 목적의 침입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고, 여성가족부 장관 역시 “경미한 수준으로 보고 받았다”고 밝혔으며, 국제보이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도 “태국 지도자가 동서남북을 굽분 못한 탓의 단순 실수”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상식적으로 100명이 당시 상황을 목격했을 정도로 인파가 북적이고 공개된 장소에서 성범죄 행위를 범할 일국의 보이스카우트 지도자가 존재할 수 있는가?”라고 했습니다. 잼버리 대회에 참석한 전북연맹 제900단에서 지역 지리도 생소한 외국 단원을 성추행범으로 몰아 국제행사를 파괴하려고 했습니다. 성추행도 아닌 것을 잼버리 조기 퇴소했습니다. 이것은 전북도민과 대한민국 국민, 그리고 전 세계인의 뒤통수를 치는 최악의 국민 배신이요, 정치적 배후가 의심됩니다.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은 전북연맹 스카우트 제900단을 향해 “마치 울고 싶어 뺨 맞기를 기다렸던 사람처럼 태국 지도자의 단순 실수를 성범죄로 침소봉대해서 조기 퇴영의 구실로 삼았다”며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뺨을 때려주지 않자 스스로 뺨을 때리고 대성통곡하는 황당함 그 자체”라고 했습니다.그는 “누구의 사주로 그런 반(反)대한민국 결정을 했는지 정치적 배후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며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여라도 야권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략에서 이번 전북연맹의 석연치 않은 조기 퇴영 결정에 개입했다면, 결단코 국민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태풍 카눈 북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으로 “새만금 잼버리 끝났다”고 선언하자 참가 대원들이 환호했으며, 세계스카우트연맹은 새만금을 떠나 서울 수도권으로 옮겼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충격적 결단에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새만금 잼버리장에서와 또 태풍 카눈으로 인한 수도권으로의 이동과정에 1000대의 버스와 그 많은 숙소를 단시간 내에 준비한 것은 대단한 저력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새만금 잼버리 개최 장소를 확인해 보니 장화를 신고도 물이 발목까지 찼습니다. 철수하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그야말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치명적이 될 뻔했습니다. 거짓 선동과 가짜 뉴스 제조에 힘을 쏟고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고, 이젠 ‘아동 활동가’라며 마치 북조선처럼 어린이들을 자신들의 정치 도구로 삼으려 세뇌시키기 까지 하는 더불당만 아니면 대한민국의 발전은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K- 팝 공연입니다. 오늘(11일) 오후 5시 30분부터 6시까지 잼버리 폐영식을 한 뒤 마지막 일정으로 펼쳐지는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가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서울 상암에서 열립니다. K-팝 콘서트는 지난 1일부터 12일까지 치러지는 새만금 세계잼버리의 마지막 일정입니다. K-팝 콘서트에는 최정상 아이돌 그룹 ‘아이브’와 뉴진스, NCT 드림, 있지(ITZY), 마마무, 더보이즈, 셔누&형원, 프로미스나인, 제로베이스원, 강다니엘, 권은비, 조유리, 피원하모니, 카드, 더뉴식스, ATBO, 싸이커스, 홀리뱅, 리베란테 등 총 19개 팀이 출연합니다. 세계 158개국 4만5천여명의 젊은이들이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경험과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돌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뙤약볕 아래 간척지에서 그늘막이 되어 줄 나무조차 자라지 못하는 염분끼 가득한, 척박한 갯벌과 진흙탕 같은 땅 위에 천막을 치고 국제행사를 준비했던 문재앙 정부와 전북 지자체 행사 담당 관련자들의 허술하고 하접하고 조잡스럽고 무성의한 준비로 실망감과 허망함과 절망감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새만금 땡볕, 태풍과 홍수 그리고 한국의 문화를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게 되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잼버리가 압도적인 K-팝의 매력으로 마무리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계 인구 1억 4천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대한 막을 올립니다. 세계의 빗발치는 비난 속에서 환호로 바꾼 윤석열 정부의 탁월한 통치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호시탐탐 사고를 유발 시키려는 불순세력들에 각별한 대책을 세워 세계속의 ‘위대한 대한민국’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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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2
  • [뉴스워크]8월10일(목)모방 범죄로 인한...‘칼부림 예고 글’에 불안한 국민들
    지난달 7월 21일 오후 2시 7분 지하철 2호선 신림역 4번 출구에서 80여m 떨어진 상가 골목 초입에서 조선(33세)은 20대 남성을 흉기로 10여 차례 찔러 살해한 뒤 골목 안쪽에서 30대 남성 3명에게 잇따라 흉기를 휘두른 뒤 달아났다가 첫 범행 6분 만인 오후 2시 13분 인근 스포츠센터 앞 계단에 앉아 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습니다. 피해자는 모두 조선과 일면식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조선은 경찰에서 “오래전부터 살인 욕구가 있었다” “범행 전 살해 방법과 급소, 사람 죽이는 칼 종류 등을 검색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지난달 초에는 ‘홍콩 묻지마 살인’ ‘정신병원 강제입원’ 등을 검색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서울경찰청은 지난 26일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범행의 잔인성과 피해의 중대성이 인정된다며 조선의 이름과 나이·얼굴을 공개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뒤 13일 만에 또다시 경기도 성남 서현역 인근에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시민 왕래가 많은 곳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무차별적 범행이라는 점에서 모방 범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신림동 사건 이후 ‘살인 예고’ 글이 온라인상에 잇따라 오르는 등 유사한 범죄 발생 가능성이 커지더니 결국 현실화한 것입니다. 지난 8월 3일 오후 6시쯤 최(22) 씨는 경기도 분당구 지하철 수인 분당선 서현역 인근에서 자동차로 AK플라자 건물로 돌진하면서 5명을 치었고, 안으로 들어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흉기를 휘두른 ‘묻지 마 칼부림’ 사건이 발생해 경상 2명, 중상 12명, 모두 14명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교통사고 피해자 5명 중 4명은 중상을 입었으며, 20대 여성은 닥터 헬기를 이용해 수원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로 옮겨졌습니다. 차에 치였던 이모(64) 씨는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결국 숨졌습니다. 최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린 사람은 9명이었는데, 특정 연령·성별은 겨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20대부터 70대까지 여성 5명, 남성 4명이 옆구리, 배, 팔꿈치 등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최씨는 배달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경찰 조사에서 평소 불안 증세를 호소했습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서현역 ‘묻지 마 흉기 난동’에 대해 “사실상 테러 행위로, 가능한 처벌 규정을 최대한 적용하겠다”고 했으며, “이러한 범죄에 대해 전국 시·도경찰청장을 비롯한 구성원 전체가 심각한 인식을 가지고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범인이 자신의 차량으로 행인 5명을 친 사건 현장은 AK플라자에서 나와 버스를 타러 가는 통로라서 평소 유동 인구가 상당히 많은 곳입니다. 이날 사건 소식을 접한 지역 주민들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다”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렵다”고 했습니다. AK플라자에 10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한 직원은 “사고 직후 광장 쪽을 보니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가고 있었다”며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사람들을 마구 찔러대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은 “수년간 일한 일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 너무 무섭고 앞으로 어떻게 일하나 걱정이 된다”고 했습니다.서현역 인근에 살고 있는 이모(70)씨는 “칼부림이 났던 백화점에서 친구들과 만나고 있었다”며 “집에 돌아와 씻고 돌아서자마자 끔찍한 사고가 터졌다고 해서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사고 현장에 와보니 바닥 여기저기에 핏자국이 있어서 너무 소름이 끼쳤다”고 했습니다.퇴근길 직장인들도 사고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습니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송모(39) 씨는 “퇴근 시간에 칼부림이 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김모(26) 씨는 “서현동에 사는 주민들 대부분이 마을버스를 타고 퇴근하는데, 그곳에서 칼부림이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른 지역 주민들도 이날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서울에 사는 정모(49) 씨는 “딸이 분당 서현역 근처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는데 사건 소식을 듣고 바로 전화를 했더니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다”면서 “서울에서 신림동 칼부림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더 무서운 범죄가 발생한 것을 보니 온몸이 떨릴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3일 오후 6시 50분쯤 광주 서부경찰서는 광주 서구 한 아파트단지 주변 술집·거리에서 흉기 든 채 위협적 언행을 한 혐의(특수협박)로 A(52) 씨를 붙잡아 조사한 결과 평소 자주 찾는 술집에서 술에 취해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했다’며 격분하여 흉기를 든 채 ‘죽어버리겠다고 소란을 피웠고, 이를 만류하는 업주를 향해 흉기를 들이대자 놀란 업주는 급히 가게를 빠져나와 밖으로 나오자 A씨는 흉기를 들고 뒤따라 다녔습니다. 업주는 A씨를 따돌리자마자 다시 술집으로 돌아와 문을 잠가 큰 화를 면했습니다. 경찰은 A씨가 과거에도 술만 마시면 업주에게 온갖 행패로 괴롭혔던 점을 파악하고, 여죄를 수사하고 있으며,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는 대로 구속영장 신청 여부도 검토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8월 4일 오전 10시 3분에 대전 대덕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 남자가 학교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교무실에 찾아와 해당 교사를 찾았고, 수업 중이라는 말을 듣고 교실 밖에서 약 1시간을 기다리다 수업을 마치고 화장실로 가려던 교사에게 흉기로 얼굴과 가스, 팔 등을 찌르고 달아났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소방대는 의식이 없는 교사를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경찰은 흉기를 휘두르고 도주한 용의자를 추적 중입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B씨가 “내가 잘못했다”는 말을 했다는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면식범의 소행인 것으로 보고 추적에 나선 결과 사건 발생 2시간여 만인 낮 12시 20분쯤 A씨 주거지 인근인 대전 중구 태평동의 한 노상에서 A씨를 검거하고 소지하고 있던 흉기를 압수했습니다.경찰은 A씨가 피해자와 다른 학교에서 사제지간이었다는 진술을 토대로 구체적인 범행 배경 등을 조사한 뒤 살인 미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입니다. 지난 8월 4일 오전 10시 39분 112에 “고터(고속버스터미널)에 칼든 남성이 돌아 다니다”라는 내용으로 신고가 접수되어 출동한 경찰에 의해 20대 남성을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이 남성은 식칼 두 개를 갖고 있는 상태였으며,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지난 4일 오후 9시 38분경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의 한 도로에서 흉기를 들고 길거리를 배회하던 40대 남성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위협하여 특수공무집회방해 혐의로 붙잡혔습니다. A씨의 범행으로 다친 사람은 나오지 않았으나 체포 당시 횡설수설하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하여 정신 병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정신 감정 등을 통해 구체적인 사항을 확인할 예정입니다. 전국적으로 ‘칼부림 예고 글’이 잇따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4일 밤 ‘이대역 칼부림’을 예고하는 글이 온라인에 올라왔습니다. 이화여대 측은 경찰에 경비 강화를 요청하고 재학생들에게 이 같은 내용을 알리는 안전 주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대 학생처는 이날 오후 4시 15분쯤 재학생들에게 발송한 문자를 통해 “온라인에 오늘 밤 11시 이대역 흉기 난동 예고 글이 게재됐다”면서 안전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습니다.이어 “학교는 이를 인지하고 서대문경찰서에 협조를 요청해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가급적 이대역 인근 방문을 자제하고 당분간 다중이용 장소 및 시설 이용을 자제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학교의 이 같은 조치는 이날 오전 온라인에서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하겠다며 이대역 칼부림을 예고한 글이 올라온 데 따른 것입니다. 앞서 이날 오전 10시 15분쯤 온라인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오늘 밤 11시에 이대역에서 칼부림 예정이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해당 글 게시자는 “다 죽여버릴 거니까 기대하라”며 “특히 젊은 여자면 얼씬도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해당 글은 삭제된 상태입니다.이화여대 학생들은 재학생 커뮤니티에서 학교로부터 받은 안전 문자를 공유하면서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습니다.한 재학생은 “다들 문자를 받았냐? 진짜 언제 죽을지 모른다 조심하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학생도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친구들 조심하라”고 전했습니다.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해당 예고 글을 인지하고 있고 전반적으로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살인 예고’ 협박 글이 온라인에서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 테러 예고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되자 경찰은 즉각 용의자 추적에 나섰습니다.4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 10분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한석원 갤러리에는 “내일 5시 윤석열 집 앞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작성자는 해당 게시글에서 “정부 입시정책 때문에 수능을 포기했다”며 “경찰력 총동원되는 동안 내가 지옥을 보여주마”라고 적었습니다.경찰은 인터넷 주소(IP) 등을 분석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으며, 아울러 실제 테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대통령 관저 주변 경비를 강화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현재 해당 게시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노린 ‘묻지마’ 범행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모방 범죄가 연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도 치안이 안전하다고만 말할 수 없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 말에 ‘뽄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슷한 모방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그 범행으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으로 자기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강한 자극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꾸라지가 날뛸 때는 소금 한 주먹이 약입니다. 모방 범죄는 가중처벌해야 합니다. 대형 쇼핑몰(백화점 및 재래시장 등) 주변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안전 요원을 배치해야 합니다. 그래야 민심이 안정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난 8월 4일 중국이 2014년 이후 9년 만에 한국인 남성 A씨에 대해 마약사범으로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사법당국도 이런 유형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법원의 신고가 나오면 중국처럼 사형제를 시행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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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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