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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석 연세대 몀예교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
    동아일보의 객원논설위원이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를 소개하겠습니다. 며칠 전 TV에서 뉴스를 들었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한 최고위원이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출발해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거쳐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으로 이어져 왔다. 이재명이 민주당과 국가를 대표할 시대정신을 이끌어 가야 할 단계라고 했다. 그것은 이재명의 주장과 신념을 대변한 선언이다. 국민도 그 뜻을 이해는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현재까지 국정의 중책은 민주당이 맡아 왔고 지금도 절대적 여소야대의 국회이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민주당에 집중돼 있을 정도다. 문제는 민주당 안에서는 그런 선언이 가능할지 모르나, 국민의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은 초창기보다 더 증대하고 있다.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우려와 걱정은 한계선까지 도달한 상태다.국민은 김대중 대통령의 동족 간의 평화통일을 위한 열성과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가 심하므로 경제적 원조를 베풀면 15년쯤 후에는 통일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견해를 믿고 싶었다. 그런데 국민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너무 많은 원조를 했다. 그 결과는 핵무기 개발과 공산정권 굳히기에 도움을 주었다. 지금의 김정은 정권을 키워주는 결과가 되었다.노무현 정권은 어떠했는가? 우리 국민이 이런 상태로는 살 수가 없고 불안하여서 이민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의 무질서와 혼란 상태가 되었다. 국민에게 물어 보라. ‘노무현 정부가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인가?’라고. 그 주역을 담당한 세력인 86세대 운동권의 등단과 확장기였다. 대통령 자신이 자기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같이 불행한 대통령’은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몸소 남겨 주었다.그 뒤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운동권은 물론 문 대통령 스스로가 공은 내세웠으나 과(過)는 인정하지 않았다. 퇴임 후에도 자신의 임기 5년 동안에 쌓아 올린 정치적 업적을 윤석열 정부가 계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은 문 정부와 같이 가지 않는다고 추방한 윤석열을 왜 대통령으로 선출했는가?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권이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이며, 윤 정부가 계승해야 할 과업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묻게 한다. 정치 기반인 경제 분야는 어떠했는가? 이명박 정부를 계승했다면 경제성장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는 어떻게 했으며,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민주국가의 위상을 지켜 왔는가? 북한 동포를 뒤로하고 김일성 정권 세습화에 동조했다면 그것은 실정 중의 실정이다. 김대중 정신에 위배되는 결과가 되었다. 대한민국으로 귀순해 온 동포와 중국에서 우리 품으로 오려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처신은 앞으로도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할 과제다. 친북 정책은 북한 동포를 위한 절대적 의무와 권리이다. 김정은 정권을 위한 종북이 아니다.현재에도 민주당은 국정운영 방향과 방법은 물론 절차까지 관여하는 국회의 주도권을 행사한다. 국가를 위해서보다는 윤 정권을 타도하고 임기 내라도 재집권하겠다는 자세다. ‘그것도 애국심인가? 국민을 위한 정치인의 양심인가?’라고 국민은 묻는다. 누가 보든지 민주당은 국가보다는 정권을 위했고,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의 사당이 되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민주정치는 실종되었고 싸워서 이기면 그것이 정의가 된다는 개인과 집단의 투쟁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창기부터 실정에 앞장서 왔던 임종석 전 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송영길 전 당 대표, 각 분야에 자리 잡고 있던 운동권 출신의 잔여 세력이 이재명 대표를 앞세워 정권 재장악에 동참하려는 기세다. 민주당 안과 주변에 있던 친북좌파까지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선한 공존의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적 방향과 국민의 진실과 정의, 자유와 휴머니즘 정신이 보장, 구현되는 나라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잘못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진실과 정직 없는 ‘내로남불’의 정의관, 인격을 갖추지 못한 개인이나 이기적 집단세력에 정권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위하고 국민을 섬기려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여야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민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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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1
  •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그립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반발로 전문의 파업이 대형 병원 중심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근무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시화되고 의료 공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안타깝기가 이를 데 없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가 문뜩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장기려 박사님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의사였다. 그래서 경성 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의과 대학과 김일성 종합 대학 교수를 지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1950년, 장기려 박사님은 철수하는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 아내와 5남매를 북에 둔 채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하였다. 그리고 부산에서 천막을 치고 복음 병원을 세워 행려병자를 치료했다. 장기려 박사님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하며 하루에 2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럴 뿐만 아니라 1959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간 절제 수술에 성공하는 등, 당시 우리나라 외과 의사 가운데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이 커지고 무료 진료가 불가능해지자 장기려는 1968년 한국 최초의 의료 보험 조합인 청십자 의료 보험 조합을 설립하였다. 청십자병원은 가난한 사람을 정성껏 치료해 줄 뿐만 아니라 치료비를 깎아 준다고 소문이 나 늘 많은 환자가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농부가 장기려 박사에게 하소연했다. “선생님, 제가 당장은 돈이 없지만 나중에 꼭 벌어서 갚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내일 당장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병원에 묶여 있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농부의 말을 들은 장기려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밤에 문을 열어 줄 테니 그때 가세요.” 농부가 깜짝 놀라자 장기려는 웃으면서 말했다. “병원에서는 아마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퇴원을 안 시켜 줄 거예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 도망을 쳐서라도 일을 해야 가족을 돌볼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장기려는 그렇게 말하고 농부에게 돈까지 쥐여 주었다. “얼마 안 되지만 차비나 하세요.” 농부는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는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기 돈으로 수술을 해 주고, 그나마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못하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다가 1995년 12월 추운 겨울날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내 마음이 그러하듯 창밖에는 겨울비가 밤새 주룩주룩 내린다. 오늘따라 ‘바보의사 성산 장기려 박사님’이 그저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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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다큐‘기적의 시작’ 관람 후기
    ‘은종’이라는 동료 시민의 ‘기적의 시작을 보고’라는 관람 후기를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또 다른 다큐극 영화 ‘기적의 시작’을 보고 왔습니다.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을 보신 분이라면 더더욱 꼭 보십시오. ‘건국전쟁’이 큰 그림을 그리는데 치중했다면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 대통령의 디테일한 부분을 세밀히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건국 전쟁은 역사를 잘 모르고 일방적으로 세뇌 당한 분들에게 유익한 영화입니다. 4.19는 이승만이 원인인가? 김구의 정체, 런 승만의 문제, 한강철교 폭파사건 등 이승만 대통령이 오해받고 있는 부분의 팩트를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에 대한 역사를 잘 아는 분들이 보았을 때 거의 다 아는 내용이었고 소수의 부분은 새로운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의 시작은 자료를 수집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섬세합니다. 이승만에 대한 책 몇 권을 섭렵했던 분들도 새로운 내용을 보고 저런 자료를 어떻게 찾았을까 하고 그 수고에 감탄하게 됩니다. 어쩌면 흥행에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 이승만이 한성 감옥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과정이나 서거하기 전 기도한 장면 등을 삽입한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감명을 줍니다. 이승만의 삶은 기도에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기도로 시작한 나라이니 기도를 놓지 말아야 국가가 번영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만약 성도들이 단체관람한다면 ‘기적의 시작’이 더 감명을 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의 증언자들은 이승만과 직접 만난 분들을 등장시켜 훨씬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백선엽 장군,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 그리고 그 며느리의 증언은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사실적이고 감동적인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농지개혁, 6.25 전쟁에 대한 일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경위 등은 훨씬 더 자세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역사의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깜짝 놀란 것은 이승만의 경제에 대한 관심입니다. 벌써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 앞으로 한국은 공업국이 되어야 한다고 예견한 것은 대단한 통찰력이었고, 실제로 6.25 이후에 공업국이 되기 위해 그가 이룬 업적을 세밀한 자료와 더불어 제시한 것은 그동안 몰랐던 내용이었습니다. 다큐 영화가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데, 텔렌트 임동진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이승만을 잘 살려내었습니다. 아마도 무료 출연이었을 것인데, 눈물과 마음으로 연기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정말 사랑하는 대배우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무명의 배우들이 적절하게 사건들을 잘 재현해내어 다큐에 몰입할 수 있도록 톡톡히 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동안 런 승만, 독재자, 친일파 등등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이제는 바로 잡을 때가 되었다. 위대한 거인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에게 이승만을 바로 알릴 때가 되었습니다. 두 영화를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기적의 시작’은 섬세하게 그 안을 들여다 봅니다. 성경으로 비유하면 ‘건국 전쟁’은 마가복음에 비유한다면 ‘기적의 시작’은 요한복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둘 중에 한 영화만 선택하지 마십시오. 두 영화 모두 보시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요, 애국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건국 전쟁은 제법 관람객들이 있었는데, 기적의 시작은 관객면에서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점이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적의 시작’이 훨씬 더 애정이 갑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가슴에 더 와닿는다고 했습니다. 건국 전쟁을 보신 분들은 반드시 기적의 시작도 함께 보십시오. 다른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을 먼저 보셨습니까? ‘건국 전쟁’도 보세요. 두 영화가 결합할 때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총선 전에 두 영화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두 영화가 흥행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사인식이 바뀌도록 열심히 홍보하는 일입니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먼저 극장으로 가십시오. 교회 단체관람을 강력히 추천합니다.”라고 동료 시민 ‘은종’은 말했습니다. 김덕영 감독의 ‘건국 전쟁’이 개봉 27일만에 100만을 돌파하며, 다큐로는 드문 흥행 기록을 세우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그리고 ‘건국 대통령 이념 보급회’의 김효선 사무총장의 ‘이승만의 독립 외교 33년’ 등 다른 기록 영화들도 ‘건국 전쟁’과 거의 동시에 선을 보였습니다. 이장호 감독의 이승만 관련 영화 ‘하우보만의 약속’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상 매체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될 나라”라는 주장을 하며 반공 애국 진영, 특히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비방하고 폄훼하는 반역 세력의 전유물처럼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런 영상 매체가 이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밝히려는 일에 효율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승만이 ‘독재자’ 또는 ‘친일파’로 낙인 찍히며 국민의 뇌리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할 추악한 인물로 악마화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독립운동과 반공 투쟁에서 승리해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되었고, 공산군의 6.25 남침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고 부흥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쉽게 공산화되어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김일성의 지배를 받는 위성국가로 편입되었을 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적인 위인이자 천재였습니다. 그는 이 나라의 국부였고, 애국자요, 선지자요, 예언자요, 세계가 공산당을 열광할 때 “공산당은 망한다”고 외쳤습니다. ‘전시 중립론’이라는 논문을 쓴 국제 정치가였고, 훌륭한 선교사였고, ‘재팬 인사이드 아웃’의 저자인 작가였고, 민족 복음화를 소망한 하나님의 종이었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며, 그는 하나님 중심의 철저한 자유 민주주의 투사였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학력 소유자였습니다. 죠지 워싱톤대 학사였던 클린턴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하바드대 석사였던 오바마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프린스턴대 박사였던 윌슨 대통령과 동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도 이만한 학력 소유자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자유의 등불을 달아준 불세출의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탁월한 외교가였으며, 토지개혁을 단행했고, 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는 ‘반상 철패’를 했으며, 의무 교육을 실시했고, 여성들을 투표에 참여케 했습니다. 의회 정치를 실시 했습니다. 그의 애국정신과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 시대의 등불이었습니다. 전교조에 의해 역사 왜곡이 극에 달한 이 나라는 이승만을 바로 알아야 대한민국이 사는 것입니다.
    • 오피니언
    • 강석종 칼럼
    2024-03-08
  • 이승만 영화 ‘기적의 시작’이 만들어진 배경 이야기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기적입니다.’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영화 '기적의 시작'을 만들고, 전국 개봉을 하기까지 모두 기적의 순간입니다. ■ 영화의 시작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저의 아버지께서 '이승만 대통령 영화를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하셨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하지 않은 제가 그 당시 더 기반이 없었던 시절, 그런 권유를 받으니 너무 막연하고 막막하게 다가 왔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에는 부모님 댁에서 같이 사는 것 외에는 따로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은 받지 말자'고 했고, 또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우리나라 영화계와 아무런 인맥도, 기반도, 심지어 카메라 한 대 조차 없던 아들이 이리저리 일감을 찾아다니는 모습에 안쓰러워 ‘카메라 한 대 얼마 하니? 카메라 한 대 사줄게. 그것 가지고 시작해 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것마저 거절했습니다. 많은 예술인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이 분야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누가 밥값을 내야 하는지 신경이 곤두섰고,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 다섯 정거장 정도는 교통비를 안 쓰고 걸어 다녔습니다. 물론 저의 집안이 그 정도 돈 못 쓸 정도로 여유가 없지는 않았으나, 저는 속으로 '이 나이에 돈벌이도 못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는 것은 사치다'라고 생각하며 가급적 걸어 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 온 저의 영화 인생은 그렇게 밑바닥부터 시작되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비록 독립영화이지만 조금씩 규모를 키워가며 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순회 상영을 다니며, DVD를 찍어 판매하는 수준에서 점차 작품을 작은 영화관에서부터 상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이 하나 둘 씩 영화관에 걸려 작품을 찾는 관객들이 늘었고, 이번엔 멀티플렉스 상영관 전국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을 지내면서 아버지의 권유를 당장 실행해 옮겨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었으나, 덕분에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일하거나 생활했던 분들을 만나 뵈면 꼭 이 대통령에 대해 질문하고 이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백선엽 장군님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뵌 분들은 그 당시에도 꽤 계셨으나, 백 장군님처럼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큰일을 하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던 분은 없었습니다. 백 장군님은 이승만 대통령과의 일화와 본인이 참여했던 전투에 대해 매우 실감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후방 전투 현장을 직접 보여주시며 설명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귀한 증언들은 매번 카메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기록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아 저는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습니다. 요즘과 달리 20년 전에는 6mm 테잎을 썼는데, 당시의 기록이 멀쩡하게 보존된 것도 작은 기적입니다. 한편 해를 거듭하며 시간이 지나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왜곡과 비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니, 멈추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국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어 '22년 12월부터는 아예 작정하고, 그동안 모았던 자료들과 추가 인터뷰를 통해 '기적의 시작'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 국민 대배우의 합류 ■ 제작 과정에서 국민배우 임동진 님도 합류하시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런 대배우분께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에 넣을 재연장면에 출연해 주시라고 요청하는 것은 큰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 배우님께서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셔서, 속으로 많이 놀랐고, 겸손한 모습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임동진 배우님과 같은 영화계 거물이 합류하셨음에도 제작환경은 딱히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제작진은 그 분 이름을 내세워 따로 모금하지 않았고, 제 성격상 여기저기 제작비 모금하러 다니기도 쑥스러워 그러지 못해서 프로듀서 김재동 목사님이 모금해 오신 제작비 내에서 해결했습니다. 그런 형편 속에 많은 분들의 우려와 달리 제작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 아들 이인수 박사의 생전 마지막 고백 기록 ■ 이번 작업에서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로 이 대통령의 쓸쓸한 말년을 제일 가까이 곁에서 지켜보셨던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입니다. '23년 11월 별세하신 이인수 박사님의 인터뷰는 결코 쉽게 성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품을 위해 그분의 증언을 꼭 담고 싶었으나, 그분의 체력에 한계가 많으셨던 때라 인터뷰 약속을 잡고 갔다가도 두 세 번 실패하여 헛걸음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인터뷰가 어렵게 되자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는 포기했습니다. 사모님이신 조혜자 여사께서 마치 곁에서 대신 말씀을 전하시듯 하고, 이인수 박사님은 옆에만 앉아 계십사 하는 게 저의 새로운 바람이자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약속도 없이 임동진 배우님과 이화장을 둘러 보러 갔다가 이인수 박사님 컨디션이 최상인 것을 발견! 당장 카메라를 켜고 마이크를 연결해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장비를 가져간 것도 다행이었고, 그게 이인수 박사님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습니다. 다시 봐도 당시 이 박사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모습이 역력합니다. 이 모든 것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 신앙인 이승만 재조명 ■ 이승만 대통령이 젊은 시절 선교사들이 전해 준 예수님을 한성 감옥에서 복역 하며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영접한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난제 앞에서 하나님께 매달렸고, 우리나라 첫 국회를 기도로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작품에서 비기독교인들을 의식해서인지, 기독교 색채를 빼고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 그런 이승만의 모습은 인간 이승만을 이끄는 원천적인 힘이었기 때문에 저는 제 작품에서 그런 부분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마지막 기도는 임동진 배우님의 뛰어난 연기력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해 줍니다. ■ 전국 극장 개봉 ■ 드디어 ‘24년 2월 22일! 기적의 시작은 전국 개봉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어렵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영화를 한 개 극장에라도 걸기도 어렵고, 극장에 걸었다 해도 관객들을 사로잡기에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 전문 인력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한 두 사람의 몫입니다.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전국 극장 개봉을 위해서 제작사들은 적게는 수 천 만 원, 많게는 수 억 원의 홍보비를 씁니다. 저희는 '기적의 시작' 홍보를 위해 쓸 수 있는 금액이 거의 없었습니다. 금액을 밝히기에 민망해 그럴 수는 없지만, 그 금액조차 제작 과정에서 다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홍보를 위해 쓴 금액은 전단지 인쇄에 30만원 가량, 작품을 소개해 주시는 유튜브 분들께 음료수를 사 드리거나 식사 대접을 한 게 전부입니다. 주말에는 감독인 제가 손수 전단지를 챙겨 광화문이나 시청 같은 곳에 가서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젊은이들 중에는 전단지에 이승만 대통령 얼굴이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접어버리며 불쾌감을 표현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전단지를 나눠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많은 홍보비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원초적인 홍보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SNS 홍보도 했으나 제가 인플루언서가 아니다 보니 효과는 미미했던 것 같습니다. 넉넉잡고 홍보비로 100만 원 정도 썼던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전국 개봉까지 이어진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렵게 잡은 서울 두 개의 극장(필름포럼과 허리우드). 시사회 이후 5개월간 상영을 통해 관객 수 천명이 관람하고, 입소문을 듣고 오는 관객 수가 줄지 않자 멀티플렉스에서 이를 눈여겨보고, 일단 전국 10개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을 준 것 같습니다. 수 많은 난관을 뚫고 드디어 전국에 소개되는 ‘기적의 시작’. 여태까지는 저와 조력자 분들의 힘으로 끌고 왔으나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렇게 극장에 걸게 되었는데 보러 와 주시지 않으면 허무하게 극장에서 내려지게 됩니다. 극장에 와서 봐 주시는 것은 작은 애국입니다. 교회에서 단체관람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CGV에 예매가 열립니다. 예매를 많이 해 주시면 더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여 더 많은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 권순도 올림
    • 주요뉴스
    2024-03-07
  • 이제는 ‘기적의 시작’이다!
    스카이데일리 임명신 기자의 “[기획] 이승만 다큐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길 위에 김대중’ 압도”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권순도 감독이 20년 구상 끝에 작년 10월 내놓은 ‘기적의 시작’은 독립영화 특유의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건국 전쟁’ 흥행 속에 역주행 중입니다. 같은 주제의 두 다큐는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필히 두 편 모두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같은 목표, 다른 매력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1875~1965)을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월 1일 개봉한 김덕영 감독의 작품 ‘건국 전쟁’이 주목받으며 4개월 전 나온 권순도 감독의 작품 ‘기적의 시작’도 역주행에 가속도가 붙었다. 두 작품 다 철저히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된 다큐지만 흐느끼는 관객이 속출할 만큼 뜨거운 반응이다. 두 편의 이승만 다큐가 또 다른 역사 인물 다큐를 압도한 것도 눈길을 끈다. 훨씬 유리한 여건 속에 제작된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작 ‘길 위에 김대중’이 개봉 4주 후 12만 관객을 동원한 반면 ‘건국 전쟁’은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 수 18만 명을 돌파했다. 누적 관객 수 3위, 개봉관 수도 개봉 당초보다 3.3배 늘어난 상태에서 11일 누적 관객 수 24만 명을 넘어섰다. 다큐로선 이례적인 성적이 어디까지 갈지 관심을 모은다. ‘기념관 하나 없는 이승만’이 ‘기념시설 최다의 김대중’을 이겼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편 ‘기적의 시작’은 작년 10월 하순 서울 시내 단 두 곳(종로3가 낙원상가 헐리우드 극장·신촌 필름포럼)에서 개봉된 가운데 주로 각종 애국단체∙교회 등의 상영회를 통해 관람객을 늘려 갔다(현재까지 5000명 정도). ‘건국 전쟁’이 2월 1일 전국 CGV에 걸리고 화제를 부르자‘기적의 시작’ 역시 개봉 약 4개월 만인 22일 CGV 재개봉이 결정됐다. ‘기적의 시작’ ‘건국 전쟁’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졌고, 멸망의 위기를 넘어 훗날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틀을 구축했는지 조목조목 짚는다. 농지개혁, 문맹퇴치(교육개혁), 안보·경제발전을 담보한 한미 동맹, 자원 빈국의 산업화에 절실한 원자력발전의 토대 마련 등 다가올 산업화가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어떻게 준비됐는지를 두 편의 다큐 영화 는서로 다른 톤으로 설명해 준다. 각각의 장점이 있으며 지루하지 않을 반복 학습 효과가 기대된다.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을 다룬 최초의 본격 다큐 영화라는 의미 외에 애국지사로서의 역정과 기독교 신앙의 상관성을 조명한 점도 돋보인다. 창군 및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1920~2020)과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1931~2023) 박사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원로배우 임동진 목사의 이승만 연기 역시 독보적인 부분이다. 두 다큐는 1천 수백 년에 걸친 왕조 시대와 근대 식민지 시대를 겪은 중세적 공동체에서 자유 민주공화국 헌정 질서 마련이 얼마나 천지개벽할 일이었는지를 묵직하게 일깨운다. 공통된 주제지만 두 감독이 친분이 있거나 사전 협의한 것도 아닌데 내용상 겹치지 않는다.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 학습판이므로 둘 다 관람할 가치가 충분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공산화가 신생국들의 대세였던 시절, 이승만은 현대 국가(자유민주공화국)의 본질과 시스템을 이해한 유일한 한반도인으로 볼 만하다. 두 다큐의 시의성도 각별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오늘날, 정통성 논란은 결국 ‘이승만의 나라’ ‘김일성의 나라’ 양자택일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 세계사적 인물 이승만… 우선 다큐부터 ‘건국 전쟁’ 출연자의 한 사람인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전 이승만연구원장)는 연구원이 보관 중인 이승만 1차 자료 100박스에 대해 예산 부족으로 손을 못 대고 있다며 아쉬움을 수차례 토로한 바 있다. 그 자료들은 대부분 40년 망명 생활 중 세계정세를 전하거나 논한 신문·잡지 스크랩과 친필 메모들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세계사적 차원에서 연구돼야 할 인물 이승만’이라는 시각에 힘이 실린다. 이승만의 생애는 드라마틱하고 불가사의한 요소로 충만하다. 영화∙드라마 등 대중 서사 장르를 통해 그려질 날이 와야겠지만 일단 다큐가 절실했다. 관련 사실들이 극단적으로 왜곡되거나 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교과서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교과서 밖에선 악마화∙희화화됐을 뿐이다. 해석의 문제 이전에 팩트 자체가 엉터리인 경우도 많다.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가짜 뉴스·역사∙왜곡의 결정판 명저 ‘슬픈 중국’의 저자이자 ‘건국 전쟁’ 첫머리에 등장한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는 조선일보 칼럼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팩트를 지어 내는 역사가들’에서 “김덕영 감독의 작가 정신과 예술혼이 거짓 뉴스와 허위 정보를 마구 엮어 일방적으로 이승만 악인전(惡人傳)을 집필해 온 역사학계의 고루한 시대착오와 부족 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죽이기’ 최근 사례로 송 교수는 “(역사학자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박태균)”가 TV 교양 프로에서 이승만의 1952년 대선 승리에 대해 기호 1번을 독점해 대다수 문맹 유권자 몰표를 유도한 결과라는 취지로 설명한 점을 들었다. 이어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것과 김 감독이 당시의 선거 포스터를 꼼꼼히 뒤져 이를 입증해 냈음을 짚었다. 이승만은 기호 1번이었던 적이 없다. 이승만에 얽힌 대표적 오해인 6·25전쟁 발발 직후 라디오방송 틀어 놓고 도망갔다는 미확인 소문이 오늘날까지 조롱과 저주 담긴 별명 ‘런Run승만’으로 살아 있다. 김 감독의 ‘건국 전쟁’에서 ‘한강 다리 폭파’ ‘3.15 부정선거’ ‘하와이 도피설’ 등을 바로 잡을 증거들이 제시됐다. 또 한4·19 이후 이승만의 행보야말로 ‘독재자’ 낙인이 왜 부당한지에 대한 결정적 증거다. 자신과 무관한 부통령 선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무일푼의 독재자? 그런 인물이 과연 독재자일 수 있는지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묻고 있다. 한국인이 처음 만난 이승만… ‘건국 전쟁’ 감동 후기 이어져 조지워싱턴대(학사)∙하버드대(석사)∙프린스턴대(박사) 출신의 이승만이 얼마든 취득 가능했을 미국 시민권을 마다한 채 40년간 무국적자의 불편함을 견딘 사실에 김 감독은 주목했다. 아울러 미국 내 이승만의 족적이 그간 어떻게 왜 지워졌는지 현지 교민들 증언으로 전해진다. 1953년 정전협정 1년 후 미국 방문 당시 자유의 투사로 칭송받으며 뉴욕 시가를 대대적으로 퍼레이드한 영상은 ‘건국전쟁’을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이승만이 공산주의에 맞설 냉전 구도의 불가피성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미국 등 서방세계 조야에 열렬히 설명∙설득한 점도 부각된다. 그것이 대한민국 탄생 비밀의 한 측면이다. 공산주의의 본질·실상에 대부분 무지하던 시절이었다. 개봉 초기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만 네이버 영화면에 누락돼 있어 “좌편향 문화계의 이승만 지우기”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관람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육박했다. “덕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어 감사하다” “공산화 저지의 공로만큼은 이승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감상 후기가 가장 많다. 조선일보가 김 감독을 자세히 인터뷰한 것 또한 눈길을 끈다. 여기서 김 감독은“(이승만) 공부를 시작한 뒤 큰 반성을 하게 됐고 그를 비롯한 건국 세대에 대한 죄송함을 영화에 담았다”고 밝혔다. 2012년 유튜브에 유포된 악의적 이승만론(論) ‘백년 전쟁’이 오히려 일부 네티즌이 진실 찾기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것과 흡사한 경우라 할 것이다. 북한은 왜 그렇게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을까… 586세대 김 감독의 각성 김 감독은 1950년대 동유럽 국가들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들을 조명한 다큐‘김일성의 아이들’(2020)로 유명하다. 1만명 가량 동유럽에 분산 위탁돼 자라다 스탈린 사후 격변 속에 집단귀국 당한 후 김일성 유일 체제를 위해 잊혀진 존재들이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북한에 관심을 가지다가 1990년대 중반까지 평양에 ‘이승만 괴뢰도당 타도’구호가 있었음을 알게 됐으며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는지 궁금해졌다. 김 감독이 작품 구상 및 제작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은 이승만을 향한 집요한 폄훼가 “오랜 세월 좌파들의 선동에 의한 부당한 평가”와 “북한의 공작” 탓이 컸다는 사실이다. 김 감독 자신이 북한에 호감 내지 환상을 가진 586세대 일반의 감성과 역사관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그 폐해 또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거짓의 선글라스를 벗으면 평생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았고 애국애족의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했던 한 노인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며 울먹였다. 한 네티즌의 댓글 “대한민국이 버린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위대함은 대한민국 국민만 모른다. 참담한 현실에 부끄럽고 한없이 죄송하다”는 심정과 고스란히 겹친다. ‘건국’ ‘산업화’ 없이 ‘민주화’는 불가능… 그러나 뒤틀린 역사교육 김 감독의 말대로 이승만은 “(파고들수록)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한 한국사의 유일한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 그렉 브레진스키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미래 비전과 안정된 보장 시스템이 존재해야 건국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듯이 “바로 그걸 이승만이 해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결코 일본의 패망으로 당연히 얻어진 게 아니었다. 김 감독은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경제 개발이란 기관차가 달린 것”으로 두 지도자의 시대를 요약한다. 핵심적인 통찰이다. 산업화를 통한 중산층의 성장 없이 이뤄지는 ‘민주’란 ‘인민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중국(중화인민공화국)도 모두‘민주’를 전면에 내세운다.문재인 정부 시절 현행 헌법에서‘자유’를 삭제하고자 시도한 행위의 의미와 그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알아차리게 됐다. ‘독재자’라는 꼬리표가 3대 세습체제 속에 신격화된 북한 권력자들에게 붙는 대신 변명없이 자진 하야한 이승만에게 당연한 듯 붙는 게 온당한지 이제라도 저마다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이승만=살인마’의 관점을 일반화시키면서 제주 4.3의 비극이 대한민국 수립 및 그것을 위한 한반도 유사 이래 최초의 보통 선거(5.10총선) 저지를 위한 남로당의 무장 폭거에서 출발한 것임은 도외시한다. 이것이 지난 30년 우리나라 제도권 안팎의 역사교육 현실이다. 놓칠 수 없는 ‘기적의 시작’ 권 감독의 20년 구상 끝에 태어난 ‘기적의 시작’은 공산주의가 유라시아 대륙을 뒤덮었던 시절 그 끝자락 한반도에서 어떻게 자유 민주공화국이 수립·유지될 수 있었는지, 이승만 덕분에 가능했던 대한민국탄생의 기적과 그것이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토대가 됐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독실한 크리스천의 면모도 조명했으며 원로배우 임동진의 이승만 재연으로 다큐 이상의 감동을 더했다. 백선엽 장군 인터뷰와 ‘기적의 시작’ 개봉 며칠 후 별세한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전 명지대 법정대 학장) 박사의 영상은 진귀한 역사적 자료가 됐다. 본인들의 생전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대통령 하야 후 전주 이씨 문중의 주선으로 이승만 슬하에 30세때 입적한 이 박사와 그 가족은 지난 60여 년간 이승만 죽이기의 실질적 희생자였다. 권 감독에 따르면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 박사가 기적처럼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한 마디 한 마디 온 힘을 다하듯 간신히 해독 가능한 발음으로 건국 대통령의 애국 열정과 말년의 부자(父子)인연을 증언한 모습이‘기적의 시작’에 실려 있다. 특히 망명 생활의 근거지였던 하와이에서 몇 개월 휴식한 이승만 내외가 귀국하려던 당일 한국 정부로부터 하와이 잔류를 종용당한 장면, 이후 우울 속 건강 악화로 현지에서 임종을 맞게 된 과정이 생생하게 회고됐다. ‘건국전쟁’에서 하와이 망명설이라는 거짓 뉴스 유포의 전후 맥락을 짚었다면 ‘기적의 시작’은 당사자들의 내면을 전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현대사 공부? 화제의 이승만 다큐 두 편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에 맞선 체제 정당성 대결의 최전선에 있다. 총선을 약 2개월 앞둔 시점에서 또 하나의 선거전이 될 수 있다. ‘서울의 봄’은 대다수 관객에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허구의 틀을 빌어 사실상 실존 인물과 역사를 거꾸로 해석한 상업영화다. ‘서울의 봄’이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적폐의 나라’라는 인식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반면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절체절명 위기와 우여곡절 속에서 이승만이라는 한 애국자가 지향한 가치를 되새긴다.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자유민주 헌법) 위에 박정희의 산업화(근대화)가 가능했다는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1979년 10.26으로 중단될 뻔한 산업화를 완결짓고 민주화 시대를 예비한 게 전두환의 신군부, 즉 제5공화국이다. 그렇다면 영화 ‘서울의 봄’이 기도한 신군부 악마화는 대한민국 헌정사의 부정 아닌가. 이원석 검찰총장이 몇몇 동료들과 ‘서울의 봄’을 관람한 인증 샷과 소감을 남겼다. 기존 민주화운동 세력의 신군부 서사에 충실한 발언이었다. 건국의 역사를 제쳐둔 채 민주화를 말할 수 있을까.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관람 권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 요인과 ‘73년생 한동훈’ 등 여당 인사들의 관람 필요성이 역설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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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6
  • 3.1 독립운동 정신으로 4.10 총선 승리하자!
    ‘한국 NGO연합’ 및 ‘자유정의시민연합’의 글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3.1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이번 4.10 총선에서 3.1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좌파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자. 4.10 총선은 대한민국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차대한 선거다. 선거라기보다 제2의 6.25와 같은 선거전쟁이다. 4.10 전쟁에 나서는 국민들은 죽을 각오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 나 하나쯤의 자만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경각에 달린 나라를 구해야 한다. 자유대한민국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4.10 총선에서 반드시 자유 우파세력이 국회 다수석이 되어야 하는 것은 진정 역사적 대업이고 사명이다. 문재인의 5년과 더불당이 다수당으로 국회를 농단한 8년 동안 우파들은 충분히 경험했다. 다시는 무도한 반 대한민국 세력이 정부와 국회를 장악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적 합의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만에 하나 아직도 안일하고, 나약한 국가 정체성으로 대한민국 이념과 사상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차제에 분명하고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갖도록 분발해야 할 것이다. 영화 ‘건국전쟁’을 봤다면 자유의 가치를 정말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은 좌파시만단체와 협약을 맺어 그들에게 최소 10석의 비례대표 자리를 주기로 합의한 모양이다. 그들 대부분은 친북, 종북단체 출신들이며, 이념 측면에서 북한과 궤를 같이 하는 세력들이다. 따라서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을 많이 지지하게 되면, 극단적으로 친북, 간첩세력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 대한민국 최악의 시나리오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은 공산화되었다. 당시 미군 철수 후 미군이 남기고 간 많은 최신 무기와 보급품, 병력에서도 월맹군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던 월남이 왜 공산화 되었을까? 당시 월남은 월맹에 비해 정신력에서 이미 패했다. 그리고 정부, 군, 정치판에 월맹의 간첩들이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었다. 그것도 고위직에 자리했다고 하니 월남은 월맹의 손바닥 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떨까? 아마 지금의 대한민국도 그 당시의 월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에도 북한 간첩이 35만이 침투해 있다는 소리가 탈북한 북한 고위인사들을 통해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침묵은 동조와 마찬가지다. 간첩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떠할까? 오늘은 3.1 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그러나 독립운동 기념일행사를 할 정도로 나라의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해서 오늘 우리는 주사파와 친북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한 제2의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여 4.10 총선에서 좌파세력들을 패퇴시킬 것을 천명한다. 여기에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 등 위대한 선배들의 뒤를 이어 좌파세력을 척결하고, 자유우파세력 모두가 한 마음으로 4.10 총선 승리를 위해 진군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2024년 3월 1일 한국NGO연합/자유정의시민연합
    • 주요뉴스
    2024-03-02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차석호 칼럼,"인간과 인공지능의 학습 방법 차이는"
    인간의 학습과 인공지능의 학습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둘은 몇 가지 주요한 방면에서 차이가 있다. 1. 학습 방법: 인간은 경험, 상호작용, 반복,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한다. 인간의 학습은 일반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과정을 거치며, 감성적인 요소와 직관, 창의성을 포함한다. 반면에 인공지능은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다. 주로 대규모 데이터 세트를 분석하여 패턴을 찾고, 이 패턴을 사용하여 예측하거나 결정을 내린다. 인간은 스스로 데이터를 만들지만 인공지능은 스스로 데이터를 만들 수 있다. 2. 전이 학습: 인간은 한 영역에서 배운 지식을 다른 영역에 적용하는 능력이 있다. 예를 들어, 수학적 개념을 배운 후에는 이를 물리학, 공학, 경제학 등 다른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이를 전이 학습이라고 한다. 반면에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은 이러한 전이 학습을 제한적으로만 수행할 수 있다. 대부분의 AI 시스템은 특정 작업에 특화되어 있으며, 한 영역에서 학습한 내용을 다른 영역에 적용하는 능력이 제한적이다. 즉, 인간은 한 영역에서 배운 지식을 다른 영역과 융합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인공지능은 불가능하다. 3. 일반화 능력: 인간은 특정한 케이스를 경험하고 이를 일반화하여 유사한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주로 학습한 데이터에 대해 잘 작동하며, 학습되지 않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일반화 능력이 제한적이다. 괜히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유사한 케이스를 통해 내가 직면한 상황에 적용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그렇게 할 수 없다. 4. 학습 속도와 용량: 인공지능은 초당 수천에서 수백만 건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학습할 수 있으나, 인간의 학습 속도는 훨씬 느리다. 또한, 인공지능은 필요한 한 대량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지만, 인간의 기억 용량은 한정적이다.5. 감성과 창의성: 인간의 학습은 감성적인 요소와 창의성을 포함하며, 이것이 우리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말하는 창의성은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활용해서 새로운 것은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감성적인 요소나 창의성을 고려하지 않고, 순전히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학습하고 결정한다. 인간은 감성에 호소하는 것도 가능하고, 기존에 있던 것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것이 불가능 한다.인간의 학습과 인공지능의 학습방법은 차이가 있다. 이를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의 장단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인간의 장점을 확실히 알고, 이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으로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 주요뉴스
    2023-07-13
  • [뉴스워크]7월12일(수)“문화∙예술계의 약 85%가 ‘가짜’ 5∙18 유공자”
    스카이데일리의 2023년 5월 18일자 1면에 「가짜 판치는 5·18 유공자…‘진실’을 묻다」와 관련,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등록된 4346명 중 상당수가 5·18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문화예술계에도 ‘가짜’로 추정되는 유공자가 160명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스카이데일리는 최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2차 명단을 단독 입수해 가짜 유공자로 추정되는 분야별 인사들을 공개해왔습니다. 분석 결과 일부는 5·18과 상관없는 활동을 했거나 공적 또는 피해 당한 사실조차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에 본지는 문화예술계 인사 중 5·18과 전혀 상관이 없는 가짜 유공자로 추정되는 인사들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차후에는 정치계 가짜 유공자 인사들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다만 2020년과 2021년 대법원에서 공인을 제외한 일반 유공자들에 대한 명단 비공개는 정당하다는 원심을 확정함에 따라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실명이나 소속, 공적·피해 내역 등은 신중하게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5·18 유공자 명단을 분석한 결과 전체 유공자 중 문화예술계 인사는 총179명으로 정치계(310명)와 언론계(181명)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유공자로 등록된 문화예술계 인사 179명 중 19명은 5·18 당시 계엄군에 대항해 시민군으로 활동했거나 계엄군에게 신체적 피해를 본 사람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들 중 2명은 총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10명은 계엄군한테 폭행을 당해 중상 또는 경상을 입은 사람입니다. 이와 함께 5명은 계엄군에 맞서 시민군으로 활동을 했으며 나머지 2명은 5·18 당시 군사법원에 회부돼 재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연극배우인 박○상 씨는 5·18 당시 유인물을 만들어 광주지역 시내 일원에 배포하고 5월21일에는 총을 들고 자체 방위를 섰다가 계엄군에 체포됐습니다. 박○선 씨는 당시 유인물 제조반에서 활동했으며 시민군으로도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유공자로 선정됐습니다. 윤○귀 씨는 1980년 5월 22일 당시 광주지역 고등학교 재학 중 시내 거리를 걷다가 총상을 입었습니다. 소설가 서○석 씨와 화가인 양○모 씨, 서예가인 송○수 씨 등은 계엄군에게 폭행당해 유공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유공자로 등재된 160명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5·18과 연관된 공적이나 피해 사실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 일부는 5·18이 아닌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한 경우로 파악됐습니다. 가짜로 추정되는 이들을 직업별로 보면 소설가나 수필가 등 작가가 32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문화예술 관련 단체 소속인 경우가26명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또 화가·서예가가 23명이었으며, 시인이 21명, 영화감독 등 영화계 인사도 20명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밖에도 가수와 작사·작곡가 12명, 사진작가 11명, 연극배우 및 연출가 10명, 공예·조각가가 5명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널리 알려진 시인 고○태 씨는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978년 6월 강원도 원주시 고속버스 안에서 동료 문인과 함께 ‘박정희 물러가라’는 내용의 개사가를 부른 혐의로 같은 해 9월 경범죄로 구류 10일 처분을 받아 ‘민주화명예’로 5·18유공자가 됐습니다. 시인인 김○환 씨는 광주민주화운동 6년 뒤인 1986년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 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유인물을 낭독해 5·18 유공자가 됐습니다. 유명 영화감독인 여○동 씨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977년 서울지역 대학교 ‘민주구국투쟁 선언문 사건’으로‘민주화명예 유공자’가 됐습니다. 수필가이자 중학교 교사이던 조○자씨는 전교조 활동을 하다 1990년 해직돼 ‘민주화 명예’로 유공자가 됐습니다. ‘민주화 명예’는 5·18과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지만 대한민국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5·18유공자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5·18단체의 한 관계자는 “5·18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거나 피해를 본 사람들만 유공자로 엄선해야 하지만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인사가 다른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5·18 유공자가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물론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도 하지 않고 어처구니없는 이력으로 유공자로 등록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구 씨는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순회 사진전에 사진을 출품한 이력으로 유공자가 됐습니다. 또 최○희 씨는 5·18 관련 영화평론을 했다는 이유로 민주화명예 유공자가 됐습니다. 민주화명예를 통해 5·18유공자로 등록된 인사를 제외하면 나머지 대부분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성명과 소속만 있을 뿐 공적이나 피해 내역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국립 예술단체 이사장·지역문화원장·지역미술가협회 회장·시인이자 국내 일간지 논설위원·지역 문인협회장·공연 및 전시시설 전 사장·예술가 단체회장 등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를 이끌어 온 인사들도 대거 포함돼 있었습니다. 5·18관련 단체들은 이들이 ‘인우보증’ 방식을 통해 유공자로 편입됐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우보증은 기존 5·18 유공자가 보증만 해 주면 누구나 별다른 증거가 없어도 유공자가 될 수 있는 제도로 가짜 5·18 유공자가 넘쳐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와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 핵심 측근이던 김경재 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명예도 있고 그에 대한 보상도 따르다 보니 5·18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적당한 기회만 되면 끼어들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며 “가짜 유공자들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광주의 정신은 절대로 빛이 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전 총재는 또 “윤석열 대통령이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겠다고 했는데 이에 앞서 윤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할 일은 헌법 전문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가짜 유공자 척결을 통해 5·18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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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12
  • [뉴스워크]7월11일(화)“교육계의 약 85%가 ‘가짜’ 5∙18 유공자”
    스카이데일리의 2023년 5월 18일자 1면에 「가짜 판치는 5·18 유공자…‘진실’을 묻다」와 관련,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등록된 4346명 중 상당수가 5·18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교육계 인사 중에서도 ‘가짜’로 추정되는 유공자가 80%가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스카이데일리는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2차 명단을 단독 입수해 가짜 유공자로 추정되는 분야별 인사들을 공개해 왔습니다. 그동안 언론계를 시작으로 가짜 추정 유공자들의 신상을 일부 공개했습니다. 이번에 집계 및 분석한 교육계 인사 또한 5·18과 관련한 공적이나 피해 내역이 전혀 없는 경우가 82.2%나 됐습니다. 스카이데일리가 5·18 유공자 명단을 분석한 결과 전체 유공자 중 교육계 인사는 총 309명이 등재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는 정치계(310명) 다음으로 많은 수치입니다. 첫째로, 공적이나 피해 내역 확인된 교육자 55명에 그쳤습니다. 유공자로 등록된 교육계 인사 중 55명은 실제 공적이나 피해 내역이 일부 확인됐습니다. 이 중에는 5·18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다 교수나 교사직에서 해직(20명)되거나 부상(16명)을 당한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또 군사법원에 회부된 경우도 15명이었으며, 2명은 시민군으로 직접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계엄군에 의해 사망한 교육계 인사도2명이었습니다. 교사이던 김○진 씨는 5·18 당시 광주 가톨릭센터 앞에서 공수부대에 발로 차이고 소총 개머리판으로 전신 구타를 당해 앞니4개가 빠지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조선대 교수였던 김○안 씨는 1980년 5월 3일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는 조선대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같은 달 17일 전남도청 앞에서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횃불 시위를 하다 해직됐습니다. 같은 대학 영문과 교수였던 나○엽 씨도 5·18학원민주화 선언사건 관련 평교수회 결성을 추진하다 해직됐습니다. 전남대교수평의회 회원이던 박○근 씨는 동료 교수들과 함께 시국선언문 발표 후 계엄사에 연행돼 학생 선동 혐의로 해직돼 유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나주에서 교사를 했던 송○교 씨는 1980년 5월 24일 자상(刺傷)을 입어 국군통합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사망해 유공자로 등재됐습니다. 둘째로, 가짜 추정 유공자 중 대학교수가 171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들 55명을 제외한 나머지 254명의 교육계 인사들은5·18과 연관된 공적이나 피해 사실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가짜로 추정되는 이들을 직업별로 보면 전·현직 대학교수가 171명(67.3%)으로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특히 교수 중에는 전·현직 대학총장 15명, 부총장도 3명이나 포함돼 있습니다. 가짜로 추정되는 전·현직 대학총장은 김○천·김○태·김○수·김○영·김○명·박○서·박○철·박○식·박○석·서○홍·이○선·이○기·정○종·조○수·한○상 등이 있습니다. 5·18 가짜 유공자로 추정되는 교수 9명 중 1명꼴로 대학 총장을 역임했다는 의미입니다. 5·18 당시 공적이나 피해 내역이 확인된 대학총장은 광주지역 대학총장을 하다 5·18때 해직된 민○식 씨와 서울지역 사립대 총장을 맡다 군사법원에 회부된 임○호 씨 등 2명에 불과했습니다. 가짜 유공자 추정 교육계 인사 중에는 초·중·고교 교사가 59명으로 대학교수 다음으로 많았습니다. 또 전 교육부 차관을 포함해 교육감과 교육장·장학사 등 교육 관련 공무원이 10명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각종 학술단체 관련 인사가 8명, 학원 운영 등 기타 교육계 인사가 6명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광주지역 대학교수이던 김○윤 씨는 5·18이 일어나기 6년 전인1974년 유신체제와 긴급조치를 반대하기 위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을 결성하고 대학 총책을 맡았다는 이유로5·18 유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대학교수이던 김○수 씨는 1978 년6월 박정희 정권의 비민주적 교육 현실을 비판하고 교육자의 올바른 자세 확립을 다짐하는 내용으로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에 서명하고 발표하다 해직돼 유공자로 등재됐습니다. 남○길 씨는 전북지역 교수로 재직 시 유신체제 반대 성명서를 여러 차례 발표하고 삭발시위 등에 참여했다가 1976년 2월에 해직돼 5·18 유공자가 됐습니다. 현직 대학교수인 박○연 씨는 1988년 10월 대학생 신분으로 대구지검을 점거해 유리창을 부수고 ‘전두환 구속·노태우 퇴진’이라고 적힌 현수막과 태극기를 내걸고 시위를 벌이다 징역 1년의 선고를 받아 5·18 유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처럼 5·18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민주화운동을 벌였음에도 5·18 유공자로 등재되는가 하면 아예 공적이나 피해 사실 자체가 확인되지 않는 인사도 많았습니다. 셋째로, 전교조 해직 교사들 ‘민주화 명예’로 무더기 5·18 유공자에 등록되었습니다. 특히 교육계 인사 명단에선 전교조 활동을 하다 해직돼 5·18유공자가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짜 추정 초·중·고교 교사 59명 중 과반은 전교조 활동을 하다 해직됐으나 유공자 명단에 버젓이 등재돼 있어 자격 논란은 거세질 전망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민주화 명예’란 이름으로 5·18 유공자 명단에 포함됐습니다. ‘민주화 명예’는 5·18과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지만 대한민국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5·18 유공자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광주지역 일선 교사로 근무하던 임○식 씨는 전교조 활동을 하다 1989년 8월 12일 해직됐다는 이유로 5·18 유공자로 등재됐습니다. 서울지역 고등학교 교사이던 박○식 씨는 1989년 6월13일 전교조 학교 분회를 결성하고 전교조 서울지부 결성대회에 참가해 해직됐다는 이유로 5·18 유공자가 됐습니다. 대전지역 여중 교사를 했던 김○희 씨는 1989년 2월 교사협의회 창립대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1989년 5월 전교조 대전지부 회원으로 활동하다 해직돼 5·18 유공자가 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전교조에 가담했다가 해직돼 5·18 유공자에 등재된 인사는 고○수·김○옥·김○대·김○봉·김○규·김○숙·김○란·박○주·이○천·이○호·정○·정○모·조○진·황○진 씨 등입니다. 이와 관련 5‧18 당시 전남도청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 5‧18기동타격대 상임고문은 “교육계에서 전교조 출신들이5·18 역사 교육이나 진상규명에 앞장섰다고 한다면 그것은 교육자로서 당연한 도리”라며 “학생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시키는 것은 교육자로서의 책무인데 이들을 유공자로 만들어준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또“5‧18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5‧18 유공자로 둔갑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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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11
  • [뉴스워크]7월10일(월)“언론계의 75%(135명)가 5∙18 가짜 유공자로 의심된다.”
    스카이데일리의 2023년 5월 18일자 1면에 「가짜 판치는 5·18 유공자…‘진실’을 묻다」와 관련,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등록된 4346명 중 상당수가 5·18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언론계에도 ‘가짜’로 의심되는 유공자가 약 75%, 135명이나 됩니다. 스카이데일리는 최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2차 명단을 단독 입수해 분석작업을 벌여 왔습니다. 해당 명단에 포함된 인사 중 일부는 5·18이 아닌 노동운동 등 다른 민주화운동을 했거나 공적 또는 피해 사실이 아예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회 정의 구현에 앞장서야 할 언론계에서 유독 가짜로 의심되는 유공자가 많아 이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는 의미로 5·18 유공자로 등록된 전·현직 언론계 인사들부터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2020년과 2021년 대법원에서 주요 정치계 인사 등 공인을 제외한 일반 유공자들에 대한 명단 비공개는 정당하다는 원심을 확정함에 따라 개인을 특정 지을 수 있는 실명이나 소속·나이·공적 내역 등은 신중하게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첫째로, 5·18 당시 신군부 대항 언론인 46명에 불과합니다. 해당 명단과 공적을 분석한 결과, 전체 유공자 중 전․현직 언론인만 총 181명으로 정치인(310명) 다음으로 많았다. 5·18 유공자로 등록된 전·현직 언론인 중 46명은 실제 5·18 당시 신군부에 대항하거나 언론 검열에 반대하다 해직되거나 투옥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들은 언론사 기자로 근무하며 5·18 당시 신군부의 언론검열 반대 운동에 앞장서고 신문 제작 거부 운동 등을 하다 해직되기도 했습니다. 광주지역 방송사 기자를 하던 강○종씨는 1980년 5월 16일 광주 동구 가톨릭센터에서 개최된 자유 언론 수호 결의대회에 참여하고 5·18민주화운동 당시 왜곡된 기사 보도를 거부하고 진실을 보도한 사실로 같은 해 8월 13일 해직됐습니다. 중앙 일간지 기자였던 박○득씨 또한 1980년 5월 언론검열 반대 및 신문 제작 거부 결의대회에 동참하고 5·18민주화운동 및 시국사건에 대한 검열 반대운동에 참여하다 같은 해 7월 해직됐습니다. 하지만 유공자로 등록된 나머지 전·현직 언론인 135명은 5·18과 무관한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을 한 이력이 있는가 하면, 이들 대부분은 아무런 공적이나 피해 사실조차 없었다. 유공자로 등록된 인사 중 전 중앙 일간지 기자 김○현 씨는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채택, 민주화 운동과 인권탄압 등에 대한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유공자로 선정됐습니다. 잡지사 편집장이던 김○도 씨는1987년 2월 7일 명동성당에서 박종철 사망 관련 유인물을 낭독하는 등 집회를 주도해 5·18유공자가 됐습니다. 둘째로, ‘인우보증’이라는 편법 동원으로 유공자 등록되었습니다. 5·18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유공자로 선정된 이들은 대부분 ‘민주화 명예’란 이름을 빌어 유공자로 등록됐다. 가짜 유공자로 의심되는 유공자 중 아예 공적 내역이 없는 경우도 태반입니다. 모 일간지 회장인 한 인사는 유공자 명단에 소속과 성명·생년월일만 기재돼 있을 뿐 공적이나 피해 사실란은 비어 있었습니다. 전직 방송국 PD이던 한 인사는 국가 폭력을 다룬 프로그램을 제작해 프로듀서상을 받은 이유로 유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방송국 아나운서를 지낸 한 인사는 공공기관 대표 등을 역임한 이력은 있지만 5·18과 연관된 이력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가짜 유공자로 의심되는 이들 중 전·현직 신문기자가 74명으로 가장 많았으며,방송계 종사자가 42명, 잡지·출판사에 근무했던 인사가 각각 9명입니다. 나머지 10명은 언론학회나 기자협회·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했던 인사들입니다. 이들을 직급별로 보면 언론사 대표나 발행인이 18명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이들 중에는 국내 경제지 사장·지역 방송국 사장·지역 신문사 대표 등도 포함돼 있습니다. 또 주필이나 논설위원·편집국장 등 언론사 고위 간부가 53명이나 됐으며, 일반 기자나 PD 등이 64명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5·18유공자 명단에서 이들의 공적 내용은 모두 공란으로 비어 있어 ‘인우보증’ 등 편법을 동원해 유공자로 등록됐을 합리적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인우보증’이란 기존 5·18 유공자가 구두로 보증만 해주면 누구나 별다른 증거가 없어도 유공자가 될 수 있는 제도입니다. 5·18민중항쟁구속자회와 5·18민중항쟁부상자회 등 관련 단체는 허위로 등록된 유공자들을 척결해달라는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박남선 5·18기동타격대 상임고문은 “민주당 정권하에서 과거 전두환 정권에 탄압을 받았다며 일부 기자들이 끼리끼리 선정해주다 보니 가짜 유공자 언론인들이 넘쳐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또 “일부 기자나 PD들은 5·18관련 보도 한번 내보냈단 이유로 자신이 유공자라고 등록을 신청한 경우도 많다”며 “이런 식이라면 5·18 당시 실상을 해외에 알렸던 외신기자들도 모두 다 유공자가 돼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셋째로, 유공자 명단 공개, 대법 판결로 오락가락 합니다. 한편 대법원은 5·18 유공자 명단과 관련해 두 가지 상이한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2020년 10월에는 C씨 등 3명이 국가보훈처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5·18민주화 유공자 명단 비공개는 정당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이들은 2018년 4월과 5월 국가보훈처에 5·18 민주 유공자의 이름과 유형별 공적 사유 등을 알려달라며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유공자 명단은 개인에 관한 사항으로 비공개 대상”이라며 이들이 낸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했습니다. 반면 2021년 6월 대법원은 시민단체 자유법치센터의 장달영 변호사가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상고심에서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인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설훈 민주당 의원·민병두 전 민주당 의원 3명에 대해 국가보훈처 등록정보를 공개하라고 확정판결했습니다. 이 전 대표 등이 20대 국회의원으로 공인의 신분이고, 이들이 유공자에 해당하는지와 그 사유가 무엇인지 등에 관한 사항이 이미 사회적 관심 사항으로 공론화돼 있다면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공익에 기여한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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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10
  • [뉴스워크]7월7일(금)“추미애의 아들, ‘휴가 미복귀 의혹’에 대한 재수사를 환영한다!”
    어제(7월 6일) 검찰이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의 아들 ‘군 휴가 미복귀 의혹’에 대해 서울동부지검은 지난 4월 해당 사건의 핵심 증인인 지원 장교 김 모 대위를 불러 사흘간 조사했다고 6일 밝히면서 3년만에 재수사를 했습니다. 앞서 추 전 장관의 아들 서모 씨는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 카투사로 복무하던 2017년 6월 5일부터 27일까지 복귀하지 않고 연속으로 휴가를 사용해 특혜 휴가 의혹이 일어났습니다.김 대위는 서 씨가 복무한 지역대의 지원 장교로 근무했던 인물로, 2017년 6월 당시 추 전 장관 측 보좌관 최모 씨로부터 서 씨의 휴가 연장 관련 문의를 받은 당사자입니다. 아울러 검찰은 해당 의혹을 제기한 당시 당직 사병 현모 씨와 지역대장(중령) 이모 씨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습니다.앞서 동부지검은 지난 2020년 9월 추 장관과 서 씨 등이 군무이탈 및 방조, 비호 의혹 등과 관련해 모두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고 전원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핵심 증인인 김 대위의 진술이 번복돼 일관성과 신빙성이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이에 대검찰청은 지난해 11월 '재기수사 명령'을 내렸고, 이번 재수사는 그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저의 블로그에 3년 전 2020년 12월 5일과 12월 12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정체와 그의 발언을 바로 알고 있습니까?’라는 글을 올렸으며, 그후 카퍼레이드에서도 외친 동영상을 올렸으나 삭제되었는데, 그 글을 소개합니다. 추미애 장관의 아버지는 6•25전쟁의 징집 영장을 피해 고향인 전라도 순창에서 도망 쳐서 대구로 숨어 왔다고 하며, 고향의 어떤 사람은 그가 과거 남로당의 프락치였다고 합니다. 전쟁 후 쌍용그룹 창업주 김성곤이 민의원으로 당선되자 그의 비서로 채용되었습니다. 딸을 낳을 즈음 김성곤이 경영하던 대구 방직공장의 책임자(공장장)로 있었으나, 5•16혁명 때에 군미필자로 단속되어 모든 공직에 나설 수 없어서 세탁소를 했습니다. 왜 네이버나 구글을 검색하면 ‘추미애’라는 이름 외에 왜 부모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까? 왜 모든 미디어에 5선이나 한 장관인 여자의 약력에 부모 이야기는 없습니까? 법무부장관 추미애는 24년 전 정치 초년생 때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말은 허울이었음이 드러 났습니다. 초심을 잃은 것입니까? 아니면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까? 2017년 당시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였던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전화로 아들의 휴가를 연장하라고 외압을 넣은 것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자신의 아들을 평창 동계올림픽 통역병으로 선발하라는 외압을 넣은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법무부장관의 임무와 사명은 법치를 수호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아들의 불공정한 병역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추미애는 법무부장관의 자격이 없습니다. 국회에서 거짓말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후안무치의 변명에 급급한 추미애 장관은 정의실현의 법무부 수장으로 자격이 없습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분노합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엄마들의 가슴을 더이상 멍들게 하지 말고 내려 놓으세요. “아들아! 엄마가 추미애가 아니라서 미안해” 추 장관 아들이 휴가 후 군대에 미복귀했다고 증언한 당직 사병의 신상을 털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몰아 세우는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는 국민을 대표해서 국정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정부 여당의 할 짓이 아닙니다. 당직 사병은 우리들의 아들이다.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지 말라! 또한 검찰이 추미애 장관의 아들을 수사하고 있는데 검찰의 감독기관인 법무부의 장관직을 수행하는 것은 검찰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무너트릴 것입니다. 이미 추미애 장관은 소위 현 정권에 대한 수사를 펼치고 있는 윤석렬 검찰총장의 손발을 묶어두는 인사를 수차례 감행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과연 검찰의 수사 독립성을 신뢰하겠습니까? 전 국민과 싸우려고 하며, 오만하며, 소설 쓰시는 추미애 장관은 더 이상 장관의 자격이 없습니다. 국민들이 묻습니다. 대한민국이 과연 공정한 나라입니까? 더 황당한 것은 추미애 장관의 아들이 휴가 후 군대에 미복귀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조작설과 ‘가짜 뉴스’라는 여당 의원들의 주장입니다.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은 당직 사병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단독범’이 아니라 함께 개입한 공범세력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며 범죄자 취급을 하고 잠수를 탔다는 말도 서슴치 않고 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이며,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위반이며,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됩니다. 추미애 장관의 아들은 귀하고, 본인의 임무에 충실했던 당직 사병은 귀하지 않단 말입니까? 황희 의원은 당직 사병에게 사과하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추 장관의 아들이 미복귀가 아니라 휴가 연장이 인정됐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특혜이며, 미복귀였다면 분명히 탈영이기 때문에 그것이 사건의 본질이지 당직 사병의 증언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본질을 왜곡하고 추 장관 아들이 휴가 후 군대에 미복귀했다고 증언한 당직 사병의 신상을 털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몰아 세우는 것은 국민을 대표해서 국정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국회의원의 할 짓이 아닙니다. 아무리 내 편 감싸기에 급급했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국민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추미애 장관은 그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합니다. 특히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늘 마음 졸이며 기도하는 대한민국의 엄마들과 지금도 군에서 대한민국의 국군으로서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모든 장병들에게 반드시 사죄해야 합니다. 지난 2020년 9월 민주당 원내 대변인 박성준이 ‘추 장관의 아들을 안중근 의사’라고 망언을 하더니, 더불어 시민당 공동대표를 지낸 고려대 최배근 교수는 “추미애 장관을 2020년 이순신 장군”이라는 망언을 했으며, 또한 “이런 추 장관 교체를 입에 담는 이들이 바로 토착왜구 혹은 그들의 협력자”라고 했습니다. 니들이 이순신 장군을 알아! 이순신 장군은 전선을 이탈하며 군기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렸다. 전라 좌수사로 있을 때 왜군 침략 소식에 즉시 병력을 소집해서 해전을 준비했습니다. 그때 군졸 한 명이 도망하자 체포해서 참수했다. 또한 경상 우수사를 지낸 ‘배설’ 장군이 부산포 패전에 대한 트라우마로 일본군과의 싸움을 반대했습니다. 병을 얻어 치료한다고 군막을 떠났으나 약속된 날이 되었어도 돌아오지 않자 이순신 장군은 상부에 보고하여, 경북 선산에 있는 그를 붙잡아 참수했습니다. 이처럼 이순신 장군은 군대를 무단이탈한 군인에 대한 처벌이 추상 같고 엄격했습니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몹시 거친 언사와 더불어 초유의 수사지휘권, 감찰권, 인사권을 행사했습니다. 급기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집행정지를 명령했으며, 징계청구를 했습니다. 공수처를 출범시키고 윤석열을 직무에서 배제하면 형사사법 정의가 바로 서는 것입니까? 이것이 검찰 개혁에 부합하는 것입니까?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배제를 할려면 그에 걸맞은 이유와 근거, 정당성과 명분이 있어야 할텐데 직무배제 사유는 어디에도 그런 문구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과연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배제 및 징계 청구를 할 만한 일입니까? 지금이 이럴 때입니까?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까? 집권 세력인 정치인 출신 장관이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검찰총장을 내칠 수 있다는 뼈아픈 선례가 대한민국 역사에 남았습니다. 추 장관이 행한 정치적 폭거를 분명히 기억하고 역사 앞에 고발할 것입니다. 재앙의 문, 문재앙은 추 장관이 발표하기 전에 이미 관련 보고를 받았으나 아무런 언급은 없었다고 합니다. 검찰총장의 권력 부정•비리 수사를 법무부장관이 직권 남용•월권•무법으로 가로막는 것이 정녕 대통령의 뜻이냐? 법무부장관의 무법 전횡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밝하시기 바랍니다. 추미애는 법무부장관 완장을 차고 아들에게 엄마 찬스를 사용했습니다. 추미애는 아들의 황제복무, 법치 파괴 • 군기 문란, 정치적 폭거를 행했습니다. 추미애는 군대마저 공정과 정의를 무너뜨렸습니다. 추미애의 검찰총장을 직무 배제한 직권 남용을 사법 심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 망언을 한 최배근 고려대 명예교수와 더불당 황희 의원과 대변인 박성준은 사죄하시고 더불당도 군 복무 중인 대한민국의 엄마들과 모든 장병들에게 사죄하시고 더불어민주당을 해체하시기 바랍니다. 전 법무부장관 추미애의 아들 ‘휴가 미복귀 의혹’에 대한 재수사를 환영합니다. 더 이상 아빠 찬스나 엄마 찬스 등 가족이나 친지 등의 부정한 행동들이 없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요뉴스
    2023-07-07
  • 강석종 칼럼,"전 외교부장관 강경화의 시아버지 ‘이기을 교수’의 독립 유공자를 취소하라!"
    지난 7월 2일 국가보훈부가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 운영 규정'을 대폭 개정해 친북 논란 등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고 가짜 독립유공자에게 주어졌던 서훈을 박탈하고 동시에 그간 공적을 인정 받지 못하고 소외됐던 이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새판짜기' 작업에 착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첫째는, 독립유공자 심사 운영의 변경입니다. 보훈부는 친일 행적 등이 있으면서도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2019년부터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조사 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애초 2019년 7월까지 초기 서훈자 1,500여 명에 대한 1차 조사를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전수조사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면서 일정이 크게 지연됐습니다. 독립 유공자의 희생과 공헌을 온전하게 존중하도록 관련 운영 규정을 포함한 심사기준을 대폭 변경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보훈부는 예비심사 격인 제1공적심사위원회와 제2공적심사위원회가 2심 체제로 심사하여 운영해 왔는데, 운영 규정 개정에 따라 심층 논의가 필요한 사안만 확대하여 다루는 특별분과위를 신설해 쟁점 안건을 기존 2심제에서 사실상 3심제로 가면서 예비심사 단계의 과중한 업무량도 덜어낼 예정입니다. 여기에는 역사 전공자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법률 등 다양한 전문가 위원들도 위촉하여 보다 더 명확한 근거를 토대로 유공자를 선정하게 됩니다.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이들 가운데 친북 논란 등 사회적 갈등을 일으킨 부분에 대해 기준을 명확히 하기로 했습니다. 친일 관련 논란도 함께 고려될 전망입니다. 박 장관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서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한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건국 훈∙포장을 주는 것”이라며 “항일 운동 했다고 무조건 OK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설이 아니라 북한 김일성 정권 만드는데 또는 공산주의 혁명에 혈안이었거나 기여한 사람을 독립 유공자로 받아 드릴 대한민국 국민이 누가 있겠냐? 이는 진보 보수에 따라 좌우될 것이 아니라 자유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고 강조했습니다. 둘째로, 어떤 사람이 공적 재검토 대상일까요? 보훈부 관계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재검증 대상인지는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공적 재검토 대상에는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부친 故 손용우(1923∼1999년)씨가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손씨는 과거 보훈 심사에서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한 이력으로 인해 6차례 탈락했습니다. 하지만 2018년 변경된 심사 기준을 적용받아 7번째 신청 만에 독립유공자로 선정됐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회주의 운동을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지거나 규정이 모호해졌다”며 “독립운동이 오늘날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것이었는지, 공산주의 국가 건립을 위한 것이었는지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보훈부 관계자는 “독립 유공자에게 주어지는 서훈은 건국훈장인데 정반대로 대한민국 건국과 대한민국의 기초를 닦는 일을 방해한 이에게 이 훈장이 주어진 것이 옳은 일인지 따져보겠다는 취지”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허위 논란’이 제기된 유공자도 들여다 봅니다. 1970년대 이전에는 보훈처가 아닌 문교부와 총무처 등에서 중복 포상이나 부실한 심사로 ‘부적격자’가 서훈을 받은 사례가 많았습니다. 故 김원웅 전 광복회장의 부모 김근수(1912~1992)씨, 전월순(1923 ~ 2009)씨의 공적도 재검토됩니다. 두 사람의 공적 조서에 나온 출신지, 활동 시기 등이 달라 과거 허술한 행정을 악용한 '가짜 광복군'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김 전 회장의 부친 김근수 씨는 1963년 대통령 포창을 받은 데 이어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습니다. 모친인 전 씨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적조서에 나온 출신지, 이름, 활동 시기 등이 달라 공훈 기록이 허위일 수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습니다. 문재앙 정부때 2021년 1월 국가보훈처(현 보훈부)는 이들을 조사한다고 했다가 “착오였다. 서훈 자격에 문제가 없다”고 번복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정권 때 어느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억울하고 분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일제시대때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상해 임시정부까지 재산을 털어서 독립운동을 했는데, 독립운동을 했다는 증거는 있지만 해방전 3년 행적이 명확하지가 않아서 친일이라고 하더랍니다. 폐렴으로 피를 토해서 상해에서 빨리 데려가라고 기별이 와서 데려온 지 4년 만에 사망을 했답니다. 그래서 친일자 명단 및 모든 서류를 준비하여 친일이 아니라는 입증과 함께 그 당시 4년 동안 폐렴으로 고생하다 사망한 증거를 접수해도 서훈을 주지 안고 손혜원 아버지에게 서훈을 주더랍니다. 그 당시 상해에서 독립운동가들과 찍은 사진과 돈을 몰래 배달했던 사람 등이 증거와 증인으로 있는데, 그분은 서훈을 못 받고 공산당 청년 당원이었던 손혜원 아버지가 받았답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진짜 독립운동가는 서훈을 못 받고 독립운동한 증거도 뭣도 없는 김원웅의 아버지는 셀프 유공자 지정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유공자 서훈 박탈로 될 일은 아니죠. 광복회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한 직권남용은 아닌지를 검토해야 합니다. 보훈부는 “대국민 공개검증 절차에 국민 참여를 보장할 것”이라며 “중복·허위 공적 등 공적 이상자에 대해 서훈 취소 절차를 조속히 진행해 가짜 독립 유공자 논란을 종식할 계획”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공개검증 결과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관련 법에 따라 공적 심사위 및 국무회의 심의 및 의결을 거쳐 서훈이 취소됩니다. 셋째로, 그동안 공적을 인정받지 못한 대상자는 누가 있을까요? 보훈부는 “공과(功過)가 함께 있는 독립 운동가에 대해서도 정책 연구와 토론회 등을 거쳐 재평가 방안이 있는지 찾아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독립운동의 공이 뚜렷함에도 친일 논란으로 심사에서 여러 차례 보류된 인물들도 재검토됩니다.그 중에서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 장관이자 좌익 계열 독립운동가였던 죽산 조봉암(1898∼1959)과, 구한말 문신이자 임시정부 고문을 지낸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1846 ∼1922)과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1864 ~ 1921)에 대해 서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봉암 선생의 유족들은 그를 독립 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며 보훈부에 세 차례 요청했지만, 보훈처는 친일 흔적이 있다는 이유로 유족의 요청을 반려해 왔습니다.김가진 선생의 장례는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장으로 치러졌으나 100년이 지나도록 유해는 돌아오지 못했고 서훈도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최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역사적인 인물에게 그림자가 있더라도 빛이 훨씬 크면 후손들이 존중하고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누구든지 예외 없이 접근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아울러 보훈부는 선교사·의사·교사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한 외국인과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돼 옥중 순국한 이들에 대한 심사 기준을 새롭게 마련할 방침입니다. 독립운동 자금 지원 활동에 기여한 이들도 독립유공자로 포상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습니다.박민식 장관은 “그동안 논란이 된 독립유공자 포상의 적절성 및 부실 심사 등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독립유공자의 공적이 온전하게 평가받고 서훈의 영예성이 담보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 외교부장관 강경화의 시아버지 ‘이기을 교수’의 독립 유공자를 취소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2020년 7월 1일 친중 친북 문정권의 행보는 구국 영웅들을 홀대하면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시아버지 이기을 교수가 독립 유공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그 어디에서도 말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시아버지 이기을 교수는 이미 일본군 학병 이력으로 독립유공자 심사에서 탈락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 학병으로 독립군들을 토벌한 자를 문재앙 정부에서 독립 유공자가 된 것은 특혜가 아닙니까? 이것이 공정입니까? 이것이 정의입니까? 이것이 나라입니까? 이것이 저들이 말한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였습니까? 이기을 교수의 국가 유공자 등록을 취소하며, 전 국가보훈처장 박삼득은 조사하시기 바랍니다. 독립유공자가 되면 어떤 혜택이 있을까요? 독립유공자가 되면 그 유족은 매월 74만원의 보훈 급여를 받고, 임대주택을 우선적으로 공급 받고, 국립 묘지에 안장되는 혜택을 받습니다. 독립 유공자와 국가 유공자는 어떻게 다를까요? 독립유공자(獨立有功者)는 일본제국의 조선보호국화-일제강점기에 민족의 국권 수복을 위하여 여러 민족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며,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라고 합니다. 국가유공자(國家有功者)는 대한민국의 제도상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으로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서 그 적용 대상자로서 규정한 자를 말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유공자를 상이군경, 전몰군경과는 별개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시일이 걸리더라도 이번에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단 한 명이라도 가짜와 친북 유공자를 둔 채로는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없습니다. 가짜 독립유공자를 가려내는 것이 역사·바로잡기라면 이른바 ‘민주유공자’ 면면과 그들의 공적 확인은 현대사의 재평가·재정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공적 확인도 안 되는 판에 민주당의 4·19와 5·18민주화운동 외의 민주화운동과 관련 민주유공자 예우 법안이 발의된 것은 우려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노동, 반(反)외세, 종북 통일 운동 등으로 정부 보상을 받은 829명을 국가유공자로 대접하자는 게 법안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적 기록에 대한 보훈부의 열람 요구조차 ‘개인 정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명단도, 공적도 깜깜이인 채로 유공자 대우는 말이 안 됩니다. 가짜 독립유공자 가려내기 못지않게 민주유공자에 대한 바른 대처도 중요합니다. 정부가 가짜 논란 및 친북 이력이 있는 독립유공자 공적을 재검증하기로 하는 것은 ‘허위 조작자’와 ‘북조선 정권 수립 적극 기여자’를 가려 내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나라가 제대로 돌아 가는 듯 합니다. 5∙18 가짜 유공자들도 빠른 시일 내에 솎아 내어서 재정비하면 좋겠습니다.
    • 주요뉴스
    2023-07-07
  • [뉴스워크]7월5일(수)“한국자유총연맹 윤석열대통령 발언, ‘반국가 세력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지난 6월 28일, 1954년 6∙25전쟁 직후 결성된 320만 회원을 가진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에서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허위 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또 돈과 출세 때문에 이들과 한편이 되어 반국가적 작태를 일삼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습니다.이를 위해 우리는 올바른 역사관, 책임 있는 국가관 그리고 명확한 안보관을 가져야 합니다.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핵 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습니다. 북한이 다시 침략해 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으며,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된 가짜평화 주장이었습니다. ⋯ 자유 대한민국의 국가안보가 치명적으로 흔들린 상황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자유총연맹 창립행사에 참석한 것은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이후 24년만이며, 김대중은 당시 레드 콤플렉스 때문에 참석한 것입니다. 그 뒤로 대통령들은 관변단체 성격의 자유총연맹 행사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앙 등을 겨냥해 ‘반국가 세력’, ‘허황된 가짜 평화 주장’이라고 직격했습니다. 강경 보수 진영에서 문재앙을 공격하던 용어가 현직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총연맹 창립 행사에 참석해 “반국가 세력”이라는 발언을 한 것은 분명한 정치적 의도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29일 문재앙의 청와대 출신 더불당 소속 국회의원 21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반국가 세력’ 발언을 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본인 생각이라면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며 반발했습니다. 지난 29일 홍준표 대구시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 기조를 거론하면서 '반국가 세력' 발언에 대해 “우리는 안보를 무장해제 해버리는 동안 북한은 강화했으니 국가 안보를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대통령이) 하신 말씀을 꼬투리 잡으면 안된다. 자신들이 반성을 해야 한다”며 비판을 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중국을 찾아가 중국이 요구하는 3불 정책을 내고, 군사주권을 포기했으면 그게 반국가 세력이 아니냐? 국가안보가 최우선인데 국가안보에 위해를 끼쳤다고 하면 그건 반국가 세력이 맞다. 문재인 정부 5년동안 남북 군사합의로 얼마나 많은 무장해제를 했느냐? 전방 GP를 파괴하고, 매설된 지뢰를 다 제거해주고, 경기도 곳곳에 도로 놔서 대전차 내려오면 막는 장애물을 다 제거해주고, 그것이 반국가 행동한 것 아니냐?”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대통령실도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총연맹 행사에서 발언한 ‘반국가 세력’에 대해 더불당이 ‘극우’라고 공격하자 “윤 대통령 발언 중 무엇이 사실과 다른지, 자신들은 어떤 세력들인지 먼저 설명해 보라”며 반박했습니다. 유엔사가 종전선언을 통해 해체되면 북조선이 남침했을 때 유엔의 자동 개입이 무산되고, 오히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나 러시아가 북조선을 지원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비핵화 종전선언 주장은 우리의 안보 레버리지를 엄청나게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반국가세력 언급에 좌파들이 난리법석입니다. 이것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밀리면 죽는다는 각오로 총체적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만큼 좌파들의 폐부를 찌르는 발언이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밀리면 안됩니다. 조금이라도 양보하거나 사과하는 틈을 보이면 대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민통합이란 좌파나 간첩과 같은 반국가 세력들과 통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을 향해 ‘반국가 세력’이라고 직격한 것은 문재앙을 이대로 두면 ‘국민의 절반 대통령’도 아닌 ‘30-40% 대통령’으로 계속 남게 되는 것이며, 현재의 국정 운영이나 내년 총선이 순조롭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문재앙과의 정면 대결 및 심판, 다시 말해 사법적으로 손보겠다는 신호탄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반국가 세력은 어떤 자들일까요? 첫째는, 친중, 종북 주사파, 문죄인 정권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남북한 6.25 종전선언을 하자면서 마치 노래 부르듯 미국과 유엔 등에 가서 주장한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종전선언을 하지 않아서 남북한 군사적 대결 국면이 있다는 오해를 유발할 기만적 행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전선언하면 마치 금방이라도 평화가 찿아 올 것처럼 얘기하는 그들이었습니다. 남북한 평화가 종전선언이란 종이 한 장에 이뤄지고 성사될 일입니까? 국가의 안보와 평화는 전쟁을 억제하는 군사적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지, 종전선언 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직설적으로 문재앙은 간첩이었고, 문정권이 해왔던 모든 통치 행위는 반국가적 통치 행위였다는 것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나가야 합니다. 앞으로도 반국가 세력들에게는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줄 필요가 있습니다. 문재앙과 그 일당들이 한 행동들이 북조선이나 중공이었다면 이는 간첩이나 반역자로 총살형에 처해졌을 것입니다. 둘째는, 민노총 세력입니다. 노조 간부들이 주동이 된 창원 간첩단 세력에서 보듯 노조 활동을 빙자하여 북조선와 교신하고 만남을 통하여, 북조선의 대남투쟁 전략을 지령받은 악질 간첩 세력입니다. 윤석열 정부를 전복시키고 친중, 종북 정권을 세우고자 하는 북조선의 전략에 포섭된 민노총 간부의 조직적인 간첩 활동입니다. 사태가 이러하니 그들도 완전한 반국가세력입니다. 문재앙 주사파 정권의 5년간 국가기관과 사회에 주사파 공산세력이 너무나 퍼져있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전교조와 좌파성향의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도 반국가 세력입니다. 그들은 건전한 사회의 풍속을 해치고 4대강 개발 성과를 부인하며 탈원전에 편승하여 나라의 발전과 성장을 저해한 세력입니다. 최근에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원자력협회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광우병 사태처럼 거짓 소문과 가짜뉴스를 남발하는 반국가 세력입니다. 우리나라의 환경단체는 괴담 제조기입니다. 괴담을 지령한 곳이 부조선 통전부입니다. 시민단체와 민노총 등이 북조선의 지령을 받아 그대로 퍼뜨리고 있습니다. 괴담에 동조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들을 경찰은 조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괴담을 퍼뜨리는 시민단체의 지원을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넷째는, 합법적인 국민의 선택에 의한 윤석열 정부를 부인하는 자들이 반정부세력이고 반 자유 민주세력들입니다. 윤석열 정부를 부정하고 특히 북조선 김정은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 세력이 바로 반국가 세력임이 틀림없습니다. 주로 좌파성향이 짙은 토착 세력으로서 자유 민주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불만 세력들입니다. 윤석열 정권의 탄핵과 퇴진과 전복을 주장한다면 이론의 여지없이 반국가 세력이 틀림없습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파괴시키려고 하고, 그들의 사상이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사상이라면 반국가세력으로 처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문정권과 민주당 그리고 민노총, 전교조 등 그 추종세력들은 모두 반국가세력으로 판단, 구체적이고 후속적인 조치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이라고 한 것은, 도둑을 ‘밤손님’이라고 하듯이, 또는 양상군자(梁上君子)로 칭하는 것과 같은 예(禮)의 표현입니다. 반국가 세력들을 예로써 받들거나 상대할 무리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나라와 민족에 대한 반역자들입니다. 불효불충불인부덕(不孝不忠不仁不德)한 자들을 어찌 예로써 대하는 것입니까? 이들이 그동안 진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대한민국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북조선과 중공에 머리를 조아리며, 대한민국을 노예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살아 왔습니다. 이들은 반국가 세력이 아니라 ‘간첩’들이며, ‘빨갱이’들입니다. 이들이 지금 더불당과 진보당 안에 모여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북조선 그리고 중국의 경우에 이런 정도의 반국가적 행위를 한 경우에는 대부분이 사형입니다. 우리나라도 반국가 세력들과 이들의 행위에 대하여 엄정한 잣대로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기를 흔드는 반국가 세력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강력한 응징을 촉구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5년이 짧습니다. 국가와 민족의 바른 정기(情氣)를 세워 나라를 발전시키고 세계만방에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드러내어 후손들에게 자긍심을 물려줘야 합니다. 자유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확고한 안보관과 국가관으로 G2 국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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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05
  • 최만순의 약선요리,"기억력을 좋아지게 하는 떡"
    기억력을 좋아지게 하는 떡 언제나 소비자는 봉이다. 아스파탐을 발암물질로 분류한다고 한다. 설탕 대용재로 승인 한지 50년 만이다. 모든 인공식품 첨가제의 한계다. 소서(小暑)시절은 예부터 장마철이다. 습도가 높고 비가 자주 내린다. 또 잠시 뜨는 태양에도 날씨가 무덥다. 사람들은 무심코 눈앞의 편안함만을 추구한다. 열을 피하고 시원한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체내의 왕성한 양기를 밖으로 보내는 것을 방해를 한다. 뿐만 아니라 체내의 양기 특히 비장과 위장의 양기를 약하게 한다. 그래서 예부터 선조들은 음식에 있어서 내부의 양기를 양생하는데 주의하였다. 특히 양생에서 진음과 원양이라는 것이 크게 중요하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이해하기가 무척 힘든 개념이다. 진음과 원양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생명의 힘이다. 바꾸어 말하면 신경과 호르몬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모든 생리적 조절이 유지된다. 그리고 적당한 신진대사가 이루어지게 하는 무형적 힘을 원신이라 한다. 이것을 두 측면으로 갈라서 원양과 진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형체가 있는 음양은 서로 대립된다. 어느 한쪽이 성하면 다른 한쪽이 쇠한다. 어느 한쪽이 생성되면 다른 한쪽은 없어진다. 그렇지만 형체가 없는 음양인 진음과 원양은 다르다. 오로지 생명을 위해서 서로 타협하고 조화를 이룬다. 이를테면 몸에 열이 지나칠 때는 찬 것을 요구한다. 음식물도 열을 내리게 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인체 생리상의 필요에 의해서다. 원양이 발열을 시키고 한편으로는 원음으로 그 열이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기 때문이다. 몸에 열이 부족할 때는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들숨이 강하고 날숨이 약한 것은 모두 원양의 작용이다. 이 시절은 초목이 번성하는 때다. 사람도 어린이, 청소년기는 적극적으로 성장하고 발육한다. 모두 원양의 작용이다. 장마철 습하고 더운 열기로 갑자기 머리가 둔해지며 기억력이 감퇴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예방하기 위해서는 찹쌀떡이 좋다. ■기억력을 좋아지게 하는 떡 ▲효능-더위로 약해지는 소화기관을 보양하여 신장에 원양의 진기를 튼튼하게 만들어 기억력감퇴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재료-호두25g, 구기자20g, 찹쌀 250g, 꿀50g, 콩가루50g, 소금5g. ▲만드는법 1.찹쌀을 씻어 30분 불린 후 채에 받쳐 물기를 뺀다. 2.1을 소금을 넣고 버무려 솥에 1시간 찐 후 방망이로 으깨어서 준비한다. 3.호두와 구기자를 끓는 물에 데쳐 물기를 빼서 준비한다. 4.으깬 찹쌀을 콩고물을 무치면서 호두와 구기자로 소를 넣는다. 5.꿀과 물을 2:1로 살짝 끓여서 소스를 준비한다. 6.접시에 꿀 소스를 넣고 찹쌀떡을 넣어서 완성한다. 7.여름타는 사람은 소스에 소금을 첨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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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05
  • 강석종 칼럼,“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5대 오해와 진실”
    이승만은 조선 왕조 태조 이성계의 18대손이자 태종의 장남이며,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의 다섯째 아들 장평정 이흔의 15대손이었습니다. 양녕대군이 동생인 세종에게 왕의 자리를 넘겨 주지 않았다면, 이승만은 그 당시 고종(1852 ~ 1919년)의 위치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73년 전인 1948년 8월 15일, 제헌 헌법(7월 17일)과 함께 출항을 시작한 대한민국호의 첫번째 선장은 바로 우남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그는 애국심과 민주주의 정신을 가진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며, 그의 삶에 잘못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민국의 탄생에 앞장섰고, 일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을 원수로 여기는 북조선의 공산 집단과 이들을 추종하는 대한민국의 친북 좌파, 종북 주사파 추종자들은 이승만은 독재자였고, 부정선거로 당선되었으며, 남한만 단독으로 정부를 수립해서 분단의 원흉이라고 주장하며, 사실을 왜곡시키고 그의 업적을 폄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5대 왜곡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이승만은 친일파다’라는 말이 사실일까? 왜곡일까? 이승만은 30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907년에 조지워싱턴 대학(George Washington University)에서 학사를 취득하고, 하버드대학(Harvard University)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1910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미국 유학 5년만에 이룬 쾌거였습니다. ⓵이승만은 수십년동안 미국의 정치인, 외교관, 언론인, 군인들에게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출판했는데, 일본의 속내를 폭로한 것입니다. 그 책의 제목은 〈JAPAN INSIDE OUT〉 이었으며, 내용의 핵심은 “일본이 조선반도를 집어 삼켰으니, 그 다음은 만주를 먹고, 중국을 침략하고, 여러 나라를 침략한 다음에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쳐들어 올 것이다. 미국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할 것이다. 일본의 팽창을 막고, 일본을 다시 일본 본토로 돌아 가게 하려면 조선을 독립 시켜라!”는 것이었습니다. ⓶6∙25 전쟁 당시에 일본이 참전한다고 하자 “일본이 개입하면 공산당을 향한 총구가 일본으로 향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⓷1965년 7월 21일 밤 10시 30분, 이승만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나자 이승만의 유해를 실은 비행기가 대한민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하와이를 벗어나자 “이 비행기는 고인의 뜻을 기려 직선 항로 대신 웨이크 아일랜드를 경유하는 우회 항로로 비행할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들의 이해를 바랍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왜 가까운 거리를 놔두고 먼 곳을 돌아서 가려고 했던 것일까?이 사실은 1965년 7월 21일 하와이에서 발간된 스타 블리튼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그 이유는 영혼이 빠져나간 그의 마지막 육신조차도 일본을 거치지 않겠다는 “죽어도 일본 땅 위로는 날지 않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마지막 정신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을 보내는 미국의 예우였습니다. 평생 군국주의 일본과 맞서 싸웠던 이승만 대통령이었습니다. 그 싸움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는 마지막 숨이 다한 순간까지도 일본의 하늘을 날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죽어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한 영혼이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강한 반일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 하라는 미국의 압력에 지속적으로 저항했습니다. 프랑스는 4년동안 나치 점령을 받았는데, 프랑스의 영웅 드골도 1945년 구성한 임시정부에 ‘나치 괴뢰정권’이라는 평가를 받은 비시 정부 가담자들을 포함시켰습니다. 그 이유가 나치 협력자들을 전부 축출할 경우 나라를 운영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미군정에서 ‘친일 인사’들을 많이 기용했으며, 오히려 북조선이 거의 다 친일 인사들로 채웠으며,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 중심으로 구성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이런 사람이 과연 친일파입니까? 둘째로, ‘이승만은 미국의 꼭두각시다’는 말이 사실일까? 왜곡일까? ⓵해방 후 미군정은 이승만과 김구 때문에 소련과의 정책 협조가 방해받는다고 생각하여 이 두 명을 퇴출시키고 김규식, 여운형 같은 중도적 인물을 키우려고 했습니다. ⓶존 하지는 이승만을 축출하려고도 했습니다. 당시 수도 경찰청장이었던 장택상의 증언에 의하면, 존 하지가 자신을 찾아와 김규식을 대통령으로 세우고 이승만을 정계에서 물러나게 하면 안 되겠냐고 요구했으나 자신이 사표를 내밀자 화를 내며 방을 나갔다고 합니다. ⓷1952년 8월 2일 진해 앞바다에서 배에서 낚시를 하던 이승만에게 미 CIA가 11발의 총을 쏜 사건까지 있었습니다. ⓸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 사건으로 한미관계에 갈등이 지속되자 1953년 5월에는 미국은 필요할 시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에버-레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이승만은 미국이 원하는대로 순순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 이승만은 눈엣가시였고 그를 제거하고 대체할 인물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향해 미국의 국가 이익을 추종하면서 조국은 내팽개쳤다는 이른바 ‘미국의 꼭두각시’ 주장은 북조선과 중공 당국이 만든 문서 외에는 없으며, 오히려 이승만 대통령은 한반도 통일 등 목적을 위해 미국의 입안자(manipulate)들을 휘둘렀습니다. 6∙25전쟁 당시 미국 정책 입안자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비타협성’을 이유로 제거하려고도 했습니다. 무슨 앞잡이가 말도 잘 안 듣고 오히려 미국을 협박까지 합니까? 미국 앞잡이를 왜 미국이 죽이려 합니까? 과연 이런 사람이 미국의 꼭두각시입니까? 셋째로, ‘이승만은 6∙25전쟁때 국민을 버리고 도망 갔다’는 말이 사실일까? 왜곡일까? 북조선의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내려 와서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습니다. 그 기세대로 계속 진격을 했다면 3일만에 조치원을, 5일만에 대전을 점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조선 인민군은 3일동안 진격을 멈추고 서울에 있었습니다. 한강 철도가 끊겼다고는 하지만 나룻배도 몇 군데 다닐 수 있었는데 왜 북조선의 인민군이 계속 남하를 하지 않고 서울에서 3일을 머물렀을까요?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나라를 빼앗으려면 대통령, 국회의원들과 내각을 체포해야지 합법적으로 명목상 나라를 빼앗게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동의에 따라 나라의 모든 국정이 움직이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북조선의 김일성은 서울을 점령하고 국회의원과 내각을 모두 체포하라는 명령을 합니다. 후일 귀순한 북한 장성의 증언에 따르면 헝가리, 체코식으로 국회의원들을 붙잡아 강제로 국회를 열게 하여 명목상 합법적으로 남한을 북한의 통치하에 두려고 계획을 하고 남침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들은 미리 사전 정보대로 국회의원 집과 사무실을 기습 체포 작전에 돌입했는데 2명밖에 체포를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 줄 알고 있습니까? 국회의원과 내각을 체포할 거라고 예상을 했던 이승만 대통령께서 미리 국회의원과 내각을 피난 및 피신을 시켰던 것입니다. 서울 점령 당시에 나라를 통째로 빼앗길 위기를 면하고 다시 재정비하여 승리를 거둔 천재적인 정치인이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당시 미국 측은 ‘일본으로 대피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절대 안된다. 죽어도 한반도에서 죽겠다”고 했는데, 이것을 ‘도망’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서울에 남아 있었다면 생포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조셉 굴던(Joseph C.Go ulden)이 쓴 ‘한국전 비사(祕史; Korea: The Untold Story of the War)’에 의하면, 6·25 전쟁시 남한 전체가 점령당할 낙동강의 위기에 처했을 때 미국은 극비리에 한국인 60만을 남태평양에 있는 미국령 ‘사모아 제도’ 섬으로 이주시킬 계획도 세웠습니다. 옛날 전쟁을 보면, 임금이나 군대의 대장을 사로 잡거나 죽이면 전쟁이 끝났습니다. 전쟁이 터졌을 때 지휘부를 후방으로 옮기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오히려 피난이 너무 늦었습니다. 이것이 이승만 대통령이 6∙25전쟁때 국민을 버리고 도망 간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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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30
  • 차석호 칼럼,"ChatGPT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완벽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실수를 하고 이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실수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인 ‘인공지능’ 또한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것은 기본적으로 기계다. 기계도 사람이 만든 것이라 완벽하지는 않다. 자동차나 컴퓨터 같은 기계에서 오류가 나오는 것도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기계뿐만 아니라 기계를 움직이게 하는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라도 오류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 말은 인공지능 또한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되는 ChatGPT도 인간이 만든 것이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처럼 대화하는 인공지능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인공지능에 넣을 수는 없다. 특히 지금의 컴퓨터 시스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의 컴퓨터 시스템이 나온 것은 1952년이다. 이때는 폰 노이만이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라고 부르는 ‘에드박’이 나온 시기다. ‘에드박’은 최초로 2진법 체계를 사용한 컴퓨터고, 프로그램을 메모리에 저장하고 순차적으로 실행하는 방법은 지금의 컴퓨터와 동일하다. 그래서 ‘에드박’ 이후의 모든 컴퓨터를 ‘폰 노이만 컴퓨터’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 컴퓨터는 1952년 이후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초창기 운영체제는 CUI(Character User Interface)였다. CUI는 명령어를 직접 입력해서 실행하는 방식이다. Windows 95 이후로 GUI(Graphical User Interface)가 대세가 되었다. GUI는 아이콘을 클릭하면 실행되는 방식이다. 이것만 크게 변했을 뿐 구동하는 방식은 변한 것이 없다. 게다가 ‘에드박’ 이후의 컴퓨터는 할 줄 아는 것이 ‘연산’밖에 없다. 여기서 ‘연산’은 덧셈/뺄셈/곱셈/나눗셈을 하는 산술연산과 yes/no를 판단하는 논리연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폰 노이만 컴퓨터’에서 구동되는 인공지능은 한계가 있다. 논리연산으로는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ChatGPT를 통해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이나 ‘가장 좋아하는 패스트푸드점은 뭐냐?’는 제대로 된 답을 못한다. 물론 ChatGPT는 생각, 의견, 취향은 말할 수 없다.‘한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하는 답이 아니다. 인간은 개인마다 생각과 취향이 다르기에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는데, 인공지능은 100개의 기계가 있으면 동일한 답이 나온다. 생각, 의견, 취향을 묻는 질문에서 보듯 생각을 해야 되는 질문에 답을 못하는 것은 결국 지금의 인공지능이 ‘폰 노이만’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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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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