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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석 연세대 몀예교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
    동아일보의 객원논설위원이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를 소개하겠습니다. 며칠 전 TV에서 뉴스를 들었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한 최고위원이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출발해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거쳐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으로 이어져 왔다. 이재명이 민주당과 국가를 대표할 시대정신을 이끌어 가야 할 단계라고 했다. 그것은 이재명의 주장과 신념을 대변한 선언이다. 국민도 그 뜻을 이해는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현재까지 국정의 중책은 민주당이 맡아 왔고 지금도 절대적 여소야대의 국회이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민주당에 집중돼 있을 정도다. 문제는 민주당 안에서는 그런 선언이 가능할지 모르나, 국민의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은 초창기보다 더 증대하고 있다.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우려와 걱정은 한계선까지 도달한 상태다.국민은 김대중 대통령의 동족 간의 평화통일을 위한 열성과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가 심하므로 경제적 원조를 베풀면 15년쯤 후에는 통일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견해를 믿고 싶었다. 그런데 국민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너무 많은 원조를 했다. 그 결과는 핵무기 개발과 공산정권 굳히기에 도움을 주었다. 지금의 김정은 정권을 키워주는 결과가 되었다.노무현 정권은 어떠했는가? 우리 국민이 이런 상태로는 살 수가 없고 불안하여서 이민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의 무질서와 혼란 상태가 되었다. 국민에게 물어 보라. ‘노무현 정부가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인가?’라고. 그 주역을 담당한 세력인 86세대 운동권의 등단과 확장기였다. 대통령 자신이 자기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같이 불행한 대통령’은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몸소 남겨 주었다.그 뒤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운동권은 물론 문 대통령 스스로가 공은 내세웠으나 과(過)는 인정하지 않았다. 퇴임 후에도 자신의 임기 5년 동안에 쌓아 올린 정치적 업적을 윤석열 정부가 계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은 문 정부와 같이 가지 않는다고 추방한 윤석열을 왜 대통령으로 선출했는가?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권이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이며, 윤 정부가 계승해야 할 과업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묻게 한다. 정치 기반인 경제 분야는 어떠했는가? 이명박 정부를 계승했다면 경제성장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는 어떻게 했으며,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민주국가의 위상을 지켜 왔는가? 북한 동포를 뒤로하고 김일성 정권 세습화에 동조했다면 그것은 실정 중의 실정이다. 김대중 정신에 위배되는 결과가 되었다. 대한민국으로 귀순해 온 동포와 중국에서 우리 품으로 오려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처신은 앞으로도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할 과제다. 친북 정책은 북한 동포를 위한 절대적 의무와 권리이다. 김정은 정권을 위한 종북이 아니다.현재에도 민주당은 국정운영 방향과 방법은 물론 절차까지 관여하는 국회의 주도권을 행사한다. 국가를 위해서보다는 윤 정권을 타도하고 임기 내라도 재집권하겠다는 자세다. ‘그것도 애국심인가? 국민을 위한 정치인의 양심인가?’라고 국민은 묻는다. 누가 보든지 민주당은 국가보다는 정권을 위했고,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의 사당이 되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민주정치는 실종되었고 싸워서 이기면 그것이 정의가 된다는 개인과 집단의 투쟁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창기부터 실정에 앞장서 왔던 임종석 전 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송영길 전 당 대표, 각 분야에 자리 잡고 있던 운동권 출신의 잔여 세력이 이재명 대표를 앞세워 정권 재장악에 동참하려는 기세다. 민주당 안과 주변에 있던 친북좌파까지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선한 공존의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적 방향과 국민의 진실과 정의, 자유와 휴머니즘 정신이 보장, 구현되는 나라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잘못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진실과 정직 없는 ‘내로남불’의 정의관, 인격을 갖추지 못한 개인이나 이기적 집단세력에 정권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위하고 국민을 섬기려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여야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민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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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1
  •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그립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반발로 전문의 파업이 대형 병원 중심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근무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시화되고 의료 공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안타깝기가 이를 데 없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가 문뜩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장기려 박사님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의사였다. 그래서 경성 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의과 대학과 김일성 종합 대학 교수를 지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1950년, 장기려 박사님은 철수하는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 아내와 5남매를 북에 둔 채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하였다. 그리고 부산에서 천막을 치고 복음 병원을 세워 행려병자를 치료했다. 장기려 박사님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하며 하루에 2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럴 뿐만 아니라 1959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간 절제 수술에 성공하는 등, 당시 우리나라 외과 의사 가운데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이 커지고 무료 진료가 불가능해지자 장기려는 1968년 한국 최초의 의료 보험 조합인 청십자 의료 보험 조합을 설립하였다. 청십자병원은 가난한 사람을 정성껏 치료해 줄 뿐만 아니라 치료비를 깎아 준다고 소문이 나 늘 많은 환자가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농부가 장기려 박사에게 하소연했다. “선생님, 제가 당장은 돈이 없지만 나중에 꼭 벌어서 갚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내일 당장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병원에 묶여 있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농부의 말을 들은 장기려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밤에 문을 열어 줄 테니 그때 가세요.” 농부가 깜짝 놀라자 장기려는 웃으면서 말했다. “병원에서는 아마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퇴원을 안 시켜 줄 거예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 도망을 쳐서라도 일을 해야 가족을 돌볼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장기려는 그렇게 말하고 농부에게 돈까지 쥐여 주었다. “얼마 안 되지만 차비나 하세요.” 농부는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는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기 돈으로 수술을 해 주고, 그나마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못하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다가 1995년 12월 추운 겨울날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내 마음이 그러하듯 창밖에는 겨울비가 밤새 주룩주룩 내린다. 오늘따라 ‘바보의사 성산 장기려 박사님’이 그저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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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다큐‘기적의 시작’ 관람 후기
    ‘은종’이라는 동료 시민의 ‘기적의 시작을 보고’라는 관람 후기를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또 다른 다큐극 영화 ‘기적의 시작’을 보고 왔습니다.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을 보신 분이라면 더더욱 꼭 보십시오. ‘건국전쟁’이 큰 그림을 그리는데 치중했다면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 대통령의 디테일한 부분을 세밀히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건국 전쟁은 역사를 잘 모르고 일방적으로 세뇌 당한 분들에게 유익한 영화입니다. 4.19는 이승만이 원인인가? 김구의 정체, 런 승만의 문제, 한강철교 폭파사건 등 이승만 대통령이 오해받고 있는 부분의 팩트를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에 대한 역사를 잘 아는 분들이 보았을 때 거의 다 아는 내용이었고 소수의 부분은 새로운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의 시작은 자료를 수집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섬세합니다. 이승만에 대한 책 몇 권을 섭렵했던 분들도 새로운 내용을 보고 저런 자료를 어떻게 찾았을까 하고 그 수고에 감탄하게 됩니다. 어쩌면 흥행에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 이승만이 한성 감옥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과정이나 서거하기 전 기도한 장면 등을 삽입한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감명을 줍니다. 이승만의 삶은 기도에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기도로 시작한 나라이니 기도를 놓지 말아야 국가가 번영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만약 성도들이 단체관람한다면 ‘기적의 시작’이 더 감명을 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의 증언자들은 이승만과 직접 만난 분들을 등장시켜 훨씬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백선엽 장군,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 그리고 그 며느리의 증언은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사실적이고 감동적인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농지개혁, 6.25 전쟁에 대한 일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경위 등은 훨씬 더 자세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역사의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깜짝 놀란 것은 이승만의 경제에 대한 관심입니다. 벌써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 앞으로 한국은 공업국이 되어야 한다고 예견한 것은 대단한 통찰력이었고, 실제로 6.25 이후에 공업국이 되기 위해 그가 이룬 업적을 세밀한 자료와 더불어 제시한 것은 그동안 몰랐던 내용이었습니다. 다큐 영화가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데, 텔렌트 임동진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이승만을 잘 살려내었습니다. 아마도 무료 출연이었을 것인데, 눈물과 마음으로 연기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정말 사랑하는 대배우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무명의 배우들이 적절하게 사건들을 잘 재현해내어 다큐에 몰입할 수 있도록 톡톡히 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동안 런 승만, 독재자, 친일파 등등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이제는 바로 잡을 때가 되었다. 위대한 거인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에게 이승만을 바로 알릴 때가 되었습니다. 두 영화를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기적의 시작’은 섬세하게 그 안을 들여다 봅니다. 성경으로 비유하면 ‘건국 전쟁’은 마가복음에 비유한다면 ‘기적의 시작’은 요한복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둘 중에 한 영화만 선택하지 마십시오. 두 영화 모두 보시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요, 애국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건국 전쟁은 제법 관람객들이 있었는데, 기적의 시작은 관객면에서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점이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적의 시작’이 훨씬 더 애정이 갑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가슴에 더 와닿는다고 했습니다. 건국 전쟁을 보신 분들은 반드시 기적의 시작도 함께 보십시오. 다른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을 먼저 보셨습니까? ‘건국 전쟁’도 보세요. 두 영화가 결합할 때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총선 전에 두 영화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두 영화가 흥행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사인식이 바뀌도록 열심히 홍보하는 일입니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먼저 극장으로 가십시오. 교회 단체관람을 강력히 추천합니다.”라고 동료 시민 ‘은종’은 말했습니다. 김덕영 감독의 ‘건국 전쟁’이 개봉 27일만에 100만을 돌파하며, 다큐로는 드문 흥행 기록을 세우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그리고 ‘건국 대통령 이념 보급회’의 김효선 사무총장의 ‘이승만의 독립 외교 33년’ 등 다른 기록 영화들도 ‘건국 전쟁’과 거의 동시에 선을 보였습니다. 이장호 감독의 이승만 관련 영화 ‘하우보만의 약속’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상 매체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될 나라”라는 주장을 하며 반공 애국 진영, 특히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비방하고 폄훼하는 반역 세력의 전유물처럼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런 영상 매체가 이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밝히려는 일에 효율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승만이 ‘독재자’ 또는 ‘친일파’로 낙인 찍히며 국민의 뇌리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할 추악한 인물로 악마화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독립운동과 반공 투쟁에서 승리해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되었고, 공산군의 6.25 남침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고 부흥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쉽게 공산화되어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김일성의 지배를 받는 위성국가로 편입되었을 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적인 위인이자 천재였습니다. 그는 이 나라의 국부였고, 애국자요, 선지자요, 예언자요, 세계가 공산당을 열광할 때 “공산당은 망한다”고 외쳤습니다. ‘전시 중립론’이라는 논문을 쓴 국제 정치가였고, 훌륭한 선교사였고, ‘재팬 인사이드 아웃’의 저자인 작가였고, 민족 복음화를 소망한 하나님의 종이었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며, 그는 하나님 중심의 철저한 자유 민주주의 투사였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학력 소유자였습니다. 죠지 워싱톤대 학사였던 클린턴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하바드대 석사였던 오바마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프린스턴대 박사였던 윌슨 대통령과 동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도 이만한 학력 소유자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자유의 등불을 달아준 불세출의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탁월한 외교가였으며, 토지개혁을 단행했고, 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는 ‘반상 철패’를 했으며, 의무 교육을 실시했고, 여성들을 투표에 참여케 했습니다. 의회 정치를 실시 했습니다. 그의 애국정신과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 시대의 등불이었습니다. 전교조에 의해 역사 왜곡이 극에 달한 이 나라는 이승만을 바로 알아야 대한민국이 사는 것입니다.
    • 오피니언
    • 강석종 칼럼
    2024-03-08
  • 이승만 영화 ‘기적의 시작’이 만들어진 배경 이야기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기적입니다.’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영화 '기적의 시작'을 만들고, 전국 개봉을 하기까지 모두 기적의 순간입니다. ■ 영화의 시작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저의 아버지께서 '이승만 대통령 영화를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하셨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하지 않은 제가 그 당시 더 기반이 없었던 시절, 그런 권유를 받으니 너무 막연하고 막막하게 다가 왔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에는 부모님 댁에서 같이 사는 것 외에는 따로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은 받지 말자'고 했고, 또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우리나라 영화계와 아무런 인맥도, 기반도, 심지어 카메라 한 대 조차 없던 아들이 이리저리 일감을 찾아다니는 모습에 안쓰러워 ‘카메라 한 대 얼마 하니? 카메라 한 대 사줄게. 그것 가지고 시작해 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것마저 거절했습니다. 많은 예술인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이 분야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누가 밥값을 내야 하는지 신경이 곤두섰고,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 다섯 정거장 정도는 교통비를 안 쓰고 걸어 다녔습니다. 물론 저의 집안이 그 정도 돈 못 쓸 정도로 여유가 없지는 않았으나, 저는 속으로 '이 나이에 돈벌이도 못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는 것은 사치다'라고 생각하며 가급적 걸어 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 온 저의 영화 인생은 그렇게 밑바닥부터 시작되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비록 독립영화이지만 조금씩 규모를 키워가며 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순회 상영을 다니며, DVD를 찍어 판매하는 수준에서 점차 작품을 작은 영화관에서부터 상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이 하나 둘 씩 영화관에 걸려 작품을 찾는 관객들이 늘었고, 이번엔 멀티플렉스 상영관 전국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을 지내면서 아버지의 권유를 당장 실행해 옮겨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었으나, 덕분에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일하거나 생활했던 분들을 만나 뵈면 꼭 이 대통령에 대해 질문하고 이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백선엽 장군님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뵌 분들은 그 당시에도 꽤 계셨으나, 백 장군님처럼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큰일을 하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던 분은 없었습니다. 백 장군님은 이승만 대통령과의 일화와 본인이 참여했던 전투에 대해 매우 실감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후방 전투 현장을 직접 보여주시며 설명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귀한 증언들은 매번 카메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기록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아 저는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습니다. 요즘과 달리 20년 전에는 6mm 테잎을 썼는데, 당시의 기록이 멀쩡하게 보존된 것도 작은 기적입니다. 한편 해를 거듭하며 시간이 지나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왜곡과 비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니, 멈추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국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어 '22년 12월부터는 아예 작정하고, 그동안 모았던 자료들과 추가 인터뷰를 통해 '기적의 시작'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 국민 대배우의 합류 ■ 제작 과정에서 국민배우 임동진 님도 합류하시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런 대배우분께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에 넣을 재연장면에 출연해 주시라고 요청하는 것은 큰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 배우님께서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셔서, 속으로 많이 놀랐고, 겸손한 모습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임동진 배우님과 같은 영화계 거물이 합류하셨음에도 제작환경은 딱히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제작진은 그 분 이름을 내세워 따로 모금하지 않았고, 제 성격상 여기저기 제작비 모금하러 다니기도 쑥스러워 그러지 못해서 프로듀서 김재동 목사님이 모금해 오신 제작비 내에서 해결했습니다. 그런 형편 속에 많은 분들의 우려와 달리 제작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 아들 이인수 박사의 생전 마지막 고백 기록 ■ 이번 작업에서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로 이 대통령의 쓸쓸한 말년을 제일 가까이 곁에서 지켜보셨던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입니다. '23년 11월 별세하신 이인수 박사님의 인터뷰는 결코 쉽게 성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품을 위해 그분의 증언을 꼭 담고 싶었으나, 그분의 체력에 한계가 많으셨던 때라 인터뷰 약속을 잡고 갔다가도 두 세 번 실패하여 헛걸음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인터뷰가 어렵게 되자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는 포기했습니다. 사모님이신 조혜자 여사께서 마치 곁에서 대신 말씀을 전하시듯 하고, 이인수 박사님은 옆에만 앉아 계십사 하는 게 저의 새로운 바람이자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약속도 없이 임동진 배우님과 이화장을 둘러 보러 갔다가 이인수 박사님 컨디션이 최상인 것을 발견! 당장 카메라를 켜고 마이크를 연결해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장비를 가져간 것도 다행이었고, 그게 이인수 박사님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습니다. 다시 봐도 당시 이 박사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모습이 역력합니다. 이 모든 것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 신앙인 이승만 재조명 ■ 이승만 대통령이 젊은 시절 선교사들이 전해 준 예수님을 한성 감옥에서 복역 하며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영접한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난제 앞에서 하나님께 매달렸고, 우리나라 첫 국회를 기도로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작품에서 비기독교인들을 의식해서인지, 기독교 색채를 빼고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 그런 이승만의 모습은 인간 이승만을 이끄는 원천적인 힘이었기 때문에 저는 제 작품에서 그런 부분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마지막 기도는 임동진 배우님의 뛰어난 연기력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해 줍니다. ■ 전국 극장 개봉 ■ 드디어 ‘24년 2월 22일! 기적의 시작은 전국 개봉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어렵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영화를 한 개 극장에라도 걸기도 어렵고, 극장에 걸었다 해도 관객들을 사로잡기에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 전문 인력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한 두 사람의 몫입니다.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전국 극장 개봉을 위해서 제작사들은 적게는 수 천 만 원, 많게는 수 억 원의 홍보비를 씁니다. 저희는 '기적의 시작' 홍보를 위해 쓸 수 있는 금액이 거의 없었습니다. 금액을 밝히기에 민망해 그럴 수는 없지만, 그 금액조차 제작 과정에서 다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홍보를 위해 쓴 금액은 전단지 인쇄에 30만원 가량, 작품을 소개해 주시는 유튜브 분들께 음료수를 사 드리거나 식사 대접을 한 게 전부입니다. 주말에는 감독인 제가 손수 전단지를 챙겨 광화문이나 시청 같은 곳에 가서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젊은이들 중에는 전단지에 이승만 대통령 얼굴이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접어버리며 불쾌감을 표현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전단지를 나눠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많은 홍보비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원초적인 홍보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SNS 홍보도 했으나 제가 인플루언서가 아니다 보니 효과는 미미했던 것 같습니다. 넉넉잡고 홍보비로 100만 원 정도 썼던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전국 개봉까지 이어진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렵게 잡은 서울 두 개의 극장(필름포럼과 허리우드). 시사회 이후 5개월간 상영을 통해 관객 수 천명이 관람하고, 입소문을 듣고 오는 관객 수가 줄지 않자 멀티플렉스에서 이를 눈여겨보고, 일단 전국 10개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을 준 것 같습니다. 수 많은 난관을 뚫고 드디어 전국에 소개되는 ‘기적의 시작’. 여태까지는 저와 조력자 분들의 힘으로 끌고 왔으나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렇게 극장에 걸게 되었는데 보러 와 주시지 않으면 허무하게 극장에서 내려지게 됩니다. 극장에 와서 봐 주시는 것은 작은 애국입니다. 교회에서 단체관람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CGV에 예매가 열립니다. 예매를 많이 해 주시면 더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여 더 많은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 권순도 올림
    • 주요뉴스
    2024-03-07
  • 이제는 ‘기적의 시작’이다!
    스카이데일리 임명신 기자의 “[기획] 이승만 다큐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길 위에 김대중’ 압도”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권순도 감독이 20년 구상 끝에 작년 10월 내놓은 ‘기적의 시작’은 독립영화 특유의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건국 전쟁’ 흥행 속에 역주행 중입니다. 같은 주제의 두 다큐는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필히 두 편 모두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같은 목표, 다른 매력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1875~1965)을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월 1일 개봉한 김덕영 감독의 작품 ‘건국 전쟁’이 주목받으며 4개월 전 나온 권순도 감독의 작품 ‘기적의 시작’도 역주행에 가속도가 붙었다. 두 작품 다 철저히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된 다큐지만 흐느끼는 관객이 속출할 만큼 뜨거운 반응이다. 두 편의 이승만 다큐가 또 다른 역사 인물 다큐를 압도한 것도 눈길을 끈다. 훨씬 유리한 여건 속에 제작된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작 ‘길 위에 김대중’이 개봉 4주 후 12만 관객을 동원한 반면 ‘건국 전쟁’은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 수 18만 명을 돌파했다. 누적 관객 수 3위, 개봉관 수도 개봉 당초보다 3.3배 늘어난 상태에서 11일 누적 관객 수 24만 명을 넘어섰다. 다큐로선 이례적인 성적이 어디까지 갈지 관심을 모은다. ‘기념관 하나 없는 이승만’이 ‘기념시설 최다의 김대중’을 이겼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편 ‘기적의 시작’은 작년 10월 하순 서울 시내 단 두 곳(종로3가 낙원상가 헐리우드 극장·신촌 필름포럼)에서 개봉된 가운데 주로 각종 애국단체∙교회 등의 상영회를 통해 관람객을 늘려 갔다(현재까지 5000명 정도). ‘건국 전쟁’이 2월 1일 전국 CGV에 걸리고 화제를 부르자‘기적의 시작’ 역시 개봉 약 4개월 만인 22일 CGV 재개봉이 결정됐다. ‘기적의 시작’ ‘건국 전쟁’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졌고, 멸망의 위기를 넘어 훗날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틀을 구축했는지 조목조목 짚는다. 농지개혁, 문맹퇴치(교육개혁), 안보·경제발전을 담보한 한미 동맹, 자원 빈국의 산업화에 절실한 원자력발전의 토대 마련 등 다가올 산업화가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어떻게 준비됐는지를 두 편의 다큐 영화 는서로 다른 톤으로 설명해 준다. 각각의 장점이 있으며 지루하지 않을 반복 학습 효과가 기대된다.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을 다룬 최초의 본격 다큐 영화라는 의미 외에 애국지사로서의 역정과 기독교 신앙의 상관성을 조명한 점도 돋보인다. 창군 및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1920~2020)과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1931~2023) 박사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원로배우 임동진 목사의 이승만 연기 역시 독보적인 부분이다. 두 다큐는 1천 수백 년에 걸친 왕조 시대와 근대 식민지 시대를 겪은 중세적 공동체에서 자유 민주공화국 헌정 질서 마련이 얼마나 천지개벽할 일이었는지를 묵직하게 일깨운다. 공통된 주제지만 두 감독이 친분이 있거나 사전 협의한 것도 아닌데 내용상 겹치지 않는다.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 학습판이므로 둘 다 관람할 가치가 충분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공산화가 신생국들의 대세였던 시절, 이승만은 현대 국가(자유민주공화국)의 본질과 시스템을 이해한 유일한 한반도인으로 볼 만하다. 두 다큐의 시의성도 각별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오늘날, 정통성 논란은 결국 ‘이승만의 나라’ ‘김일성의 나라’ 양자택일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 세계사적 인물 이승만… 우선 다큐부터 ‘건국 전쟁’ 출연자의 한 사람인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전 이승만연구원장)는 연구원이 보관 중인 이승만 1차 자료 100박스에 대해 예산 부족으로 손을 못 대고 있다며 아쉬움을 수차례 토로한 바 있다. 그 자료들은 대부분 40년 망명 생활 중 세계정세를 전하거나 논한 신문·잡지 스크랩과 친필 메모들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세계사적 차원에서 연구돼야 할 인물 이승만’이라는 시각에 힘이 실린다. 이승만의 생애는 드라마틱하고 불가사의한 요소로 충만하다. 영화∙드라마 등 대중 서사 장르를 통해 그려질 날이 와야겠지만 일단 다큐가 절실했다. 관련 사실들이 극단적으로 왜곡되거나 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교과서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교과서 밖에선 악마화∙희화화됐을 뿐이다. 해석의 문제 이전에 팩트 자체가 엉터리인 경우도 많다.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가짜 뉴스·역사∙왜곡의 결정판 명저 ‘슬픈 중국’의 저자이자 ‘건국 전쟁’ 첫머리에 등장한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는 조선일보 칼럼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팩트를 지어 내는 역사가들’에서 “김덕영 감독의 작가 정신과 예술혼이 거짓 뉴스와 허위 정보를 마구 엮어 일방적으로 이승만 악인전(惡人傳)을 집필해 온 역사학계의 고루한 시대착오와 부족 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죽이기’ 최근 사례로 송 교수는 “(역사학자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박태균)”가 TV 교양 프로에서 이승만의 1952년 대선 승리에 대해 기호 1번을 독점해 대다수 문맹 유권자 몰표를 유도한 결과라는 취지로 설명한 점을 들었다. 이어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것과 김 감독이 당시의 선거 포스터를 꼼꼼히 뒤져 이를 입증해 냈음을 짚었다. 이승만은 기호 1번이었던 적이 없다. 이승만에 얽힌 대표적 오해인 6·25전쟁 발발 직후 라디오방송 틀어 놓고 도망갔다는 미확인 소문이 오늘날까지 조롱과 저주 담긴 별명 ‘런Run승만’으로 살아 있다. 김 감독의 ‘건국 전쟁’에서 ‘한강 다리 폭파’ ‘3.15 부정선거’ ‘하와이 도피설’ 등을 바로 잡을 증거들이 제시됐다. 또 한4·19 이후 이승만의 행보야말로 ‘독재자’ 낙인이 왜 부당한지에 대한 결정적 증거다. 자신과 무관한 부통령 선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무일푼의 독재자? 그런 인물이 과연 독재자일 수 있는지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묻고 있다. 한국인이 처음 만난 이승만… ‘건국 전쟁’ 감동 후기 이어져 조지워싱턴대(학사)∙하버드대(석사)∙프린스턴대(박사) 출신의 이승만이 얼마든 취득 가능했을 미국 시민권을 마다한 채 40년간 무국적자의 불편함을 견딘 사실에 김 감독은 주목했다. 아울러 미국 내 이승만의 족적이 그간 어떻게 왜 지워졌는지 현지 교민들 증언으로 전해진다. 1953년 정전협정 1년 후 미국 방문 당시 자유의 투사로 칭송받으며 뉴욕 시가를 대대적으로 퍼레이드한 영상은 ‘건국전쟁’을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이승만이 공산주의에 맞설 냉전 구도의 불가피성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미국 등 서방세계 조야에 열렬히 설명∙설득한 점도 부각된다. 그것이 대한민국 탄생 비밀의 한 측면이다. 공산주의의 본질·실상에 대부분 무지하던 시절이었다. 개봉 초기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만 네이버 영화면에 누락돼 있어 “좌편향 문화계의 이승만 지우기”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관람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육박했다. “덕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어 감사하다” “공산화 저지의 공로만큼은 이승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감상 후기가 가장 많다. 조선일보가 김 감독을 자세히 인터뷰한 것 또한 눈길을 끈다. 여기서 김 감독은“(이승만) 공부를 시작한 뒤 큰 반성을 하게 됐고 그를 비롯한 건국 세대에 대한 죄송함을 영화에 담았다”고 밝혔다. 2012년 유튜브에 유포된 악의적 이승만론(論) ‘백년 전쟁’이 오히려 일부 네티즌이 진실 찾기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것과 흡사한 경우라 할 것이다. 북한은 왜 그렇게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을까… 586세대 김 감독의 각성 김 감독은 1950년대 동유럽 국가들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들을 조명한 다큐‘김일성의 아이들’(2020)로 유명하다. 1만명 가량 동유럽에 분산 위탁돼 자라다 스탈린 사후 격변 속에 집단귀국 당한 후 김일성 유일 체제를 위해 잊혀진 존재들이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북한에 관심을 가지다가 1990년대 중반까지 평양에 ‘이승만 괴뢰도당 타도’구호가 있었음을 알게 됐으며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는지 궁금해졌다. 김 감독이 작품 구상 및 제작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은 이승만을 향한 집요한 폄훼가 “오랜 세월 좌파들의 선동에 의한 부당한 평가”와 “북한의 공작” 탓이 컸다는 사실이다. 김 감독 자신이 북한에 호감 내지 환상을 가진 586세대 일반의 감성과 역사관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그 폐해 또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거짓의 선글라스를 벗으면 평생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았고 애국애족의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했던 한 노인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며 울먹였다. 한 네티즌의 댓글 “대한민국이 버린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위대함은 대한민국 국민만 모른다. 참담한 현실에 부끄럽고 한없이 죄송하다”는 심정과 고스란히 겹친다. ‘건국’ ‘산업화’ 없이 ‘민주화’는 불가능… 그러나 뒤틀린 역사교육 김 감독의 말대로 이승만은 “(파고들수록)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한 한국사의 유일한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 그렉 브레진스키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미래 비전과 안정된 보장 시스템이 존재해야 건국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듯이 “바로 그걸 이승만이 해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결코 일본의 패망으로 당연히 얻어진 게 아니었다. 김 감독은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경제 개발이란 기관차가 달린 것”으로 두 지도자의 시대를 요약한다. 핵심적인 통찰이다. 산업화를 통한 중산층의 성장 없이 이뤄지는 ‘민주’란 ‘인민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중국(중화인민공화국)도 모두‘민주’를 전면에 내세운다.문재인 정부 시절 현행 헌법에서‘자유’를 삭제하고자 시도한 행위의 의미와 그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알아차리게 됐다. ‘독재자’라는 꼬리표가 3대 세습체제 속에 신격화된 북한 권력자들에게 붙는 대신 변명없이 자진 하야한 이승만에게 당연한 듯 붙는 게 온당한지 이제라도 저마다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이승만=살인마’의 관점을 일반화시키면서 제주 4.3의 비극이 대한민국 수립 및 그것을 위한 한반도 유사 이래 최초의 보통 선거(5.10총선) 저지를 위한 남로당의 무장 폭거에서 출발한 것임은 도외시한다. 이것이 지난 30년 우리나라 제도권 안팎의 역사교육 현실이다. 놓칠 수 없는 ‘기적의 시작’ 권 감독의 20년 구상 끝에 태어난 ‘기적의 시작’은 공산주의가 유라시아 대륙을 뒤덮었던 시절 그 끝자락 한반도에서 어떻게 자유 민주공화국이 수립·유지될 수 있었는지, 이승만 덕분에 가능했던 대한민국탄생의 기적과 그것이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토대가 됐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독실한 크리스천의 면모도 조명했으며 원로배우 임동진의 이승만 재연으로 다큐 이상의 감동을 더했다. 백선엽 장군 인터뷰와 ‘기적의 시작’ 개봉 며칠 후 별세한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전 명지대 법정대 학장) 박사의 영상은 진귀한 역사적 자료가 됐다. 본인들의 생전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대통령 하야 후 전주 이씨 문중의 주선으로 이승만 슬하에 30세때 입적한 이 박사와 그 가족은 지난 60여 년간 이승만 죽이기의 실질적 희생자였다. 권 감독에 따르면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 박사가 기적처럼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한 마디 한 마디 온 힘을 다하듯 간신히 해독 가능한 발음으로 건국 대통령의 애국 열정과 말년의 부자(父子)인연을 증언한 모습이‘기적의 시작’에 실려 있다. 특히 망명 생활의 근거지였던 하와이에서 몇 개월 휴식한 이승만 내외가 귀국하려던 당일 한국 정부로부터 하와이 잔류를 종용당한 장면, 이후 우울 속 건강 악화로 현지에서 임종을 맞게 된 과정이 생생하게 회고됐다. ‘건국전쟁’에서 하와이 망명설이라는 거짓 뉴스 유포의 전후 맥락을 짚었다면 ‘기적의 시작’은 당사자들의 내면을 전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현대사 공부? 화제의 이승만 다큐 두 편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에 맞선 체제 정당성 대결의 최전선에 있다. 총선을 약 2개월 앞둔 시점에서 또 하나의 선거전이 될 수 있다. ‘서울의 봄’은 대다수 관객에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허구의 틀을 빌어 사실상 실존 인물과 역사를 거꾸로 해석한 상업영화다. ‘서울의 봄’이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적폐의 나라’라는 인식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반면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절체절명 위기와 우여곡절 속에서 이승만이라는 한 애국자가 지향한 가치를 되새긴다.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자유민주 헌법) 위에 박정희의 산업화(근대화)가 가능했다는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1979년 10.26으로 중단될 뻔한 산업화를 완결짓고 민주화 시대를 예비한 게 전두환의 신군부, 즉 제5공화국이다. 그렇다면 영화 ‘서울의 봄’이 기도한 신군부 악마화는 대한민국 헌정사의 부정 아닌가. 이원석 검찰총장이 몇몇 동료들과 ‘서울의 봄’을 관람한 인증 샷과 소감을 남겼다. 기존 민주화운동 세력의 신군부 서사에 충실한 발언이었다. 건국의 역사를 제쳐둔 채 민주화를 말할 수 있을까.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관람 권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 요인과 ‘73년생 한동훈’ 등 여당 인사들의 관람 필요성이 역설되기도 한다.
    • 주요뉴스
    2024-03-06
  • 3.1 독립운동 정신으로 4.10 총선 승리하자!
    ‘한국 NGO연합’ 및 ‘자유정의시민연합’의 글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3.1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이번 4.10 총선에서 3.1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좌파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자. 4.10 총선은 대한민국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차대한 선거다. 선거라기보다 제2의 6.25와 같은 선거전쟁이다. 4.10 전쟁에 나서는 국민들은 죽을 각오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 나 하나쯤의 자만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경각에 달린 나라를 구해야 한다. 자유대한민국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4.10 총선에서 반드시 자유 우파세력이 국회 다수석이 되어야 하는 것은 진정 역사적 대업이고 사명이다. 문재인의 5년과 더불당이 다수당으로 국회를 농단한 8년 동안 우파들은 충분히 경험했다. 다시는 무도한 반 대한민국 세력이 정부와 국회를 장악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적 합의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만에 하나 아직도 안일하고, 나약한 국가 정체성으로 대한민국 이념과 사상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차제에 분명하고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갖도록 분발해야 할 것이다. 영화 ‘건국전쟁’을 봤다면 자유의 가치를 정말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은 좌파시만단체와 협약을 맺어 그들에게 최소 10석의 비례대표 자리를 주기로 합의한 모양이다. 그들 대부분은 친북, 종북단체 출신들이며, 이념 측면에서 북한과 궤를 같이 하는 세력들이다. 따라서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을 많이 지지하게 되면, 극단적으로 친북, 간첩세력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 대한민국 최악의 시나리오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은 공산화되었다. 당시 미군 철수 후 미군이 남기고 간 많은 최신 무기와 보급품, 병력에서도 월맹군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던 월남이 왜 공산화 되었을까? 당시 월남은 월맹에 비해 정신력에서 이미 패했다. 그리고 정부, 군, 정치판에 월맹의 간첩들이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었다. 그것도 고위직에 자리했다고 하니 월남은 월맹의 손바닥 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떨까? 아마 지금의 대한민국도 그 당시의 월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에도 북한 간첩이 35만이 침투해 있다는 소리가 탈북한 북한 고위인사들을 통해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침묵은 동조와 마찬가지다. 간첩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떠할까? 오늘은 3.1 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그러나 독립운동 기념일행사를 할 정도로 나라의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해서 오늘 우리는 주사파와 친북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한 제2의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여 4.10 총선에서 좌파세력들을 패퇴시킬 것을 천명한다. 여기에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 등 위대한 선배들의 뒤를 이어 좌파세력을 척결하고, 자유우파세력 모두가 한 마음으로 4.10 총선 승리를 위해 진군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2024년 3월 1일 한국NGO연합/자유정의시민연합
    • 주요뉴스
    20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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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 밖에서 보는 박정희 대통령의 평가는?
    1900년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9달러였고, 1910년에 11달러, 1920년에 20달러, 1930년에 99달러, 1940년초 110달러가 되는 등 아주 저조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끈 산업화는 수천년 이어져온 한국사회를 뿌리부터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좌파 진영에서 박 전 대통령은 '무자비한 독재자'이며, 독립군을 때려잡은 일본 육사 출신의 친일파입니다. 사실 광복후 분단될 당시 경제적인 여건에서는 북한이 더 유리한 조건에 있었습니다. 압록강에 건설된 동양 최대 수력 발전소인 수풍댐이 있었고, 일제가 함경남도 일대에 건설한 세계적인 규모의 화학생산기지가 있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도 북조선이 남한보다 높았습니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은 1961년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은 북조선보다 낮은 82달러였으나, 북조선은 한국보다 50% 이상 더 높은 124달러였습니다. 이런 사정이 1973년까지 지속되다가 1974년에 북조선의 1인당 국민소득이 521달러, 한국이 588달러로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반세기만에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는 부유한 국가가 되었고, 2012년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5위, 무역 규모 1조675억 달러로 세계 8위, 외환보유액 3,450억 달러로 세계 7위권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또 LCD패널·TV·조선·휴대폰은 세계 1위, 반도체는 세계 2위, 자동차는 5위의 생산국이 된 것입니다. 2018년에는 3만 3,434달러였습니다. 2018년 기준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142만 8,000원으로 한국(3678만7000원)의 3.9%에 불과하며, 한국의 1978년대 수준으로, 캄보디아나 인도, 몽골보다 한참 뒤쳐지는 수준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박정희 대통령을 향하여 "탁월했던 세계 3대 지도자 중 한 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학자이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강대국의 흥망」 의 저자인 영국 태생의 역사학자 폴 마이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박정희는 세계 최빈 국가를 불과 20년 만에 세계 정상급 국가로 만든 인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외국인들은 세계 최빈국을 경제 강국으로 끌어올린 영웅을 영웅으로 대접하지 못하는 한국을, 그리고 한국에 박정희 기념관이나 동상 등 국가기념물이 없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기간 5년동안 23차례에 걸쳐 49개국을 순방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다 해외여행 기록을 갖고 있는데, 봉하 마을을 방문한 호주 국립대 김형아 교수에게 "외국을 돌아 다녀 보니 외국 지도자들이 온통 박정희 얘기뿐이더라"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민주화는 산업화가 끝난 후에야 가능하다. 이런 인물을 독재자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박정희는 누가 뭐래도 세계가 본받고 싶어하는 모델"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공산권 지도자인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박정희 관련 책은 다 가져 와라. 그는 나의 모델"이라고 했습니다. 주중 대사를 지낸 황병태 경산대 총장은 우리나라보다 중국에서 훨씬 더 인기가 있는 인물입니다. 중국의 장쩌민 전 주석은 당시 황병태 주중 대사에게 새마을 운동과 한국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등 한국의 발전 모델을 전수해 줄 것을 특별히 요청했고, 각 성장과 인민 대표들에게도 황 대사의 특별 교육을 받도록 지시했습니다. 중국 개방을 이끌었던 덩샤오핑은 평소 "박정희는 나의 멘토"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랜드(RAND) 연구소는 "덩의 개혁은 박정희 모델을 모방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중국의 후진타오는 "나는 새마을 운동을 많이 연구했다. 상당 수의 중국 국민들이 박정희를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최영하 우즈베키스탄 대사는 "우즈벡의 카리모프 대통령이 한국의 경제개발 모델을 중시하고 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기를 많이 읽으며, 박정희식 발전 모델을 참고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전 몽골 총리 잔라빈 차츠랄트는 "박정희 리더쉽과 개발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캄보디아 경제 발전을 위해 여러 사례를 연구했는데, 한국이 캄보디아와 가장 유사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 모델을 많이 따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마하타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박 장군은 매우 강한 지도자였으며, 대기업을 일으켜 국부를 증진시킨 강한 지도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과 경쟁의식을 갖고 있었던 싱가포르 리콴유 수상에게 미국의 공공정책과 국제 관계를 주로 연구하는 허드슨 연구소 소장 허만 칸이 말하기를 "당신이야말로 한국의 박정희를 만나야 할 것 같다. 내가 보니 대단한 사람이다. 만나면 서로 의기 투합할 것"이라고 권했습니다. 한국의 놀라운 고도성장을 높게 평가했던 싱가포르의 리콴유 수상은 "어떤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관심과 정력을 언론과 여론조사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데 소요합니다. 또 다른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정력을 오직 일하는데만 집중시키고 평가는 역사의 심판에 맡깁니다. 만약 대통령이 눈앞의 현실에만 집착하는 분이셨더라면 오늘 우리가 보는 이런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 연구소장 카터 에커트 교수(역사학자)는 "그는 자신에게 엄격했으며, 검약하고, 정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역사학)는 "부패하지 않은 박정희, 진정으로 국력을 키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평소 한국 군사정권에 비판적 입장을 취해온 미 하바드대 에즈라 보걸 교수(사회학)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은 없다. 그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국가에 일신을 바친 리더"라고 평가했습니다. 전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박사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지기란 사실상 어려웠다. 러시아가 이 두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다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자유를 좀 누르더라도 경제를 회생시켜야 한다고 봤던 당시 박 대통령의 생각이 옳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미 랜드(RAND) 연구소의 윌리엄 H. 오버홀트(William H. Overholt) 박사는 「중국의 부상」(Rise of China, 1989)이란 책에서 후진국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할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를 들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201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토머스 사전트는 한국 경제 발전에 대해 "한국의 역사와 경제는 기적 그 자체"라고 했습니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역사에 기록된 것 가운데 6·25전쟁후 40년동안 한국이 이룩한 경제 성장에 필적할만한 것은 없다"고 극찬했습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박정희가 없었다면 공산주의의 마지노선이 무너졌다"고 말했습니다. 기 소르망 파리 정치대 교수는 "한국의 경제 발전사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까지 평가했습니다. 북조선의 김정일이정주영 회장과의 대화 중에 "예전의 유신에 대해서 말들이 많지만 박정희는 새마을 운동을 통해서 경제를 성장시키지 않았는가? 서울을 보라! 서울은 도쿄보다도 나은 민족의 자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등소평이 모택동의 행적을 평가한 말이 '공칠과삼'입니다. 등소평은 '공이 일곱 가지이고, 과오가 세 가지'인 모택동을 중국 근현대사의 최고 지도자로 받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인생만사에 공과 과, 득과 실, 미와 추의 상반된 면이 공존한다는 진리를 일컫는 것입니다. 중국은 이런 '공칠과삼' 인식으로 안정된 통치체제를 만들었고, 사회와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공칠과삼' 정도가 아니라, '공팔과이' 혹은 '공구과일'로 평가 받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왜 한국과 북조선 간에 이런 엄청난 경제력 차이가 났을까요? 한국과 북조선 간에 엄청난 경제력 차이가 나는 연유에 대해서 체제 차이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보통 주류 경제사학자들은 국가간 경제력 차이는 지리적 위치나 자연환경에 따른 문화, 사회규범, 가치와 노동 윤리 등에 기인한다고 믿고 있는데, 한국과 북조선은 분단 당시 민족, 언어, 문화, 지리적 여건 등 모든 면에서 동일했습니다. 다른 점은 단 하나 남쪽의 한국은 사유재산이 보장되는 시장 경제 체제를 유지했고, 북조선은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경제 행위가 시장이 아닌 국가에 의해 수행되는 철저한 공산주의 체제를 선택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남한에서 시장경제체제를 유지 발전시킨 데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쉽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사유재산 확보, 기회 균등 제공, 사기업 체제 등을 마련하면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그런 기본 위에 박정희 정부가 사유재산권을 더욱 보장하고, 경쟁을 도입하며, 시장경제체제를 강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 국민들은 열심히 일했고, 저축하며 자본을 축적했으며,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기업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투철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했습니다. 척박한 자동차 산업과 조선업에 도전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현대의 정주영, 국수 생산에서 시작해 오늘날 세계 제일의 전자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과 같은 기업가들이 한국 경제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습니다. 반면 북조선은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해 무상으로 배분하는 토지 개혁을 단행하고, 생산시설을 국유화하여 생산시설마다 생산 목표치를 할당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실시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승만 정부 시기에 농지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상 몰수 유상분배 방식으로 북조선과는 달랐습니다. 토지의 유상 몰수 무상 분배는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유상 몰수와 유상 분배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재산권을 존중하지만, 무상 몰수와 무상 분배는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국이 북조선보다 훨씬 살기 좋은 나라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실은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넘어오는 탈북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 수는 약 3만 5천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몸으로 직접 선택하는 것만큼 분명하고 극적인 지표는 없습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다른 편에 속하는 사람이면 아무리 공이 커도 과만 보는 당파성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박정희"라고 지적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끈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을 되새겨 볼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 5천년 역사에 가장 위대한 두 지도자,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이것이 자랑스런 역사입니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무식하든지 빨갱이입니다.
    • 주요뉴스
    2023-11-03
  • 프레임의 법칙을 아십니까?
    미국 알래스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젊은 아내는 아이를 낳다가 출혈이 심해 세상을 떠났으나 다행히 아이는 목숨을 건졌습니다. 홀로 남은 남자는 아이를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아이를 돌봐 줄 유모를 구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유모 대신 훈련이 잘된 듬직한 개를 구해 아이를 돌보게 했습니다. 개는 생각보다 똑똑했습니다. 남자는 안심하고 아이를 둔 채로 외출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남자는 여느 때처럼 개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시 집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사정이 생겨 그날 늦게야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남자는 허겁지겁 집으로 들어서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주인의 목소리를 들은 개가 꼬리를 흔들며 밖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개의 온몸이 피범벅이었습니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남자는 재빨리 방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방바닥과 벽이 온통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남자는 극도로 흥분했습니다. '내가 없는 사이에 개가 아들을 물어 죽였구나!' 이렇게 생각한 남자는 즉시 총을 꺼내 개를 쏴 죽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방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화들짝 놀란 남자가 방으로 들어가 보니 침대 구석에 쪼그려 앉은 아이가 울먹이며 자신을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남자는 밖으로 뛰쳐 나와 죽은 개를 살펴 보았습니다. 개의 다리에 맹수에게 물린 이빨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곧 이어 남자는 뒤뜰에서 개한테 물려 죽은 늑대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오, 맙소사!' 남자는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늑대와 혈투를 벌인, 충직한 개를 자기 손으로 쏴 죽이고 만 것입니다. 프레임의 법칙이란?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틀을 갖고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법칙입니다. 한 선생님이 매일 지각을 하는 학생에게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 지각을 하는 것을 보고 그 학생이 괘씸해서 회초리를 든 손에 힘이 들어 갔습니다. 회초리를 든 다음 날 아침, 그 선생님은 차를 타고 학교에 가다가 늘 지각하는 그 학생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한 눈에 봐도 병색이 짙은 아버지가 앉은 휠체어를 밀고 요양 시설로 들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 선생님은 가슴이 서늘해 졌습니다. 지각은 곧 불성실이라는 생각에 이유도 묻지 않고, 무조건 회초리를 든 자신이 부끄러웠고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라고는 아버지와 단 둘 뿐이라서 아버지를 지켜 드려야 하는 입장에 있는 지각한 학생, 게다가 요양 시설은 문을 여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학생은 요양원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아버지를 모셔다 드리고,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뛰어서 학교에 왔을 텐데, 그래도 매일 지각을 할 수밖에 없었을텐데, 그 날 역시 지각을 한 학생은 선생님 앞으로 와서 말없이 종아리를 걷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회초리를 학생의 손에 쥐어 주고 자신의 종아리를 걷었습니다. 그리고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라는 말과 함께 그 학생을 따뜻하게 끌어 안았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울었습니다.
    • 주요뉴스
    2023-10-31
  • ‘꼬레주엘라’가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꼬레주엘라’라는 말은 꼬레아와 베네주엘라를 합친 단어입니다. 베네주엘라(스페인어:Venezuela)의 정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수도는 카라카스이며, 남아메리카에 있으며,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입니다. 전국적인 무료 의료 보장 제도를 갖추고 있으며, 몇몇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스페인어로 '작은 베네치아'라는 뜻으로 에스파냐어로 베네주엘라가 되었습니다. 동쪽으로는 가이아나, 서쪽으로는 콜롬비아, 남쪽으로는 브라질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대서양과 카리브해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석유가 가장 많아 매장된 나라입니다. 매장량 1위답게 휘발유 가격이 ℓ당 0.01원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을 자랑하지만 현실은 (2020년 6월 EBS 방송 기준) 대부분의 주유소가 문을 닫아서 기름이 있는 주유소가 0.1%에 불과합니다. 노후화된 정유시설로 인해 정작 주유소에 공급할 기름조차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8년 제5공화국 운동을 이끌며 반미성향이 강한 강성 좌파 우고 차베스가 당선되었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 유가가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으면서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빈민층들에게 무상교육, 무상의료, 저가 주택을 베푸는 서민-복지와 평등정책 등 각종 혜택과 시장개입을 통해 빈민률을 많이 줄이자 하층민의 지지를 굳건히 하여, 선거마다 연승했습니다. 차베스가 죽은 뒤에는 버스 기사 출신 니콜라스 마두로가 그의 후계자로서 정책을 계승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여유 많을테니 일단 쓰고 보자’는 식으로 펑펑 남발하여 근시안적이고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식의 서민복지 정책을 무작정 확대했습니다. 결국 집권 초반 시기인 2015-16년부터 본격적인 국가몰락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결국 부채를 갚지 못하고 2017년에 디폴트를 선언했습니다. 정부가 사실상 마비된 상태에 이르자, 치안 공백과 행정 공백을 틈타 갱단들이 대거 세력을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공무원과 경찰들이 월급을 받지 못하자 갱단에 붙어 그들에게 협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갱단들은 재판 없이 즉결 총살하는 등의 무단 통치로 배신자에 대해서는 잔혹한 보복을 일삼고 있습니다. NYT 등 외신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베네수엘라의 정부는 사실상 마비 상태이며, 지역별로 군대 수준으로 중무장한 거대 갱단 집단들이 실질적으로 베네수엘라를 분할 통치하고 있습니다. 지난 5년간 전 세계에서 치안이 최악인 나라로써 치안 막장 국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국민 10명 중 1명이, 매일 4,800명씩 베네수엘라를 탈출하고 있으며, 2016년 이후 560만명이 떠났습니다. 전체 인구(3280만명)의 약 16%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2017년 11월 16일 디폴트 상태를 선언하였으며, 2018년 초인플레이션으로 137만%, 2019년 연말에는 1000만%를 치솟았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0년 상승률을 1000만%로 예측했습니다. 은행에서 하루 찾을 수 있는 돈은 40만 볼리바르인데, 고작 버스표 두 장 살 돈입니다. 100만 볼리바르의 가치는 약 0.53달러로, 우리 돈으로 600원입니다. 우유가 든 커피 한잔을 마시려면 약 420만 볼리바르를 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지난 1년간 커피 한 잔 값의 상승률은 18만%에 육박합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로 말하면 1000원 하던 커피 한 잔이 하루 아침에 1억8000만원 한다는 뜻입니다. 베네수엘라 국민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탓에 식료품을 살 수 없다는 점입니다. 브라질산 쌀 1kg 가격은 22만 볼리바르입니다. 베네수엘라의 월 최저임금인 39만 볼리바르(1달러 정도)로는 쌀 2kg도 구매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쌀을 살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상점들은 대부분 텅텅 비어 있어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갓난아기에게 먹일 우유도 부족하며, 점심 한 끼를 먹으려면 300만 볼리바르를 내야 합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큰 화폐단위인 10만 볼리바르의 가치는 미국 달러로 30센트밖에 안 됩니다. 말 그대로 하이퍼(hyper·超)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식민지배에서 베네수엘라를 해방시킨 국부(國父) 시몬 볼리바르(1783~1830)의 얼굴이 들어간 볼리바르화는 이미 휴지 조각이 되어 사실상 쓸모없는 화폐가 되었는데,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베네수엘라인도 등장했습니다. 거리에 돈이 낙엽처럼 딩굴고 있어도 아무도 주워 가지 않으며, 쓰레기통에 돈이 수북하게 버려져 있지만 가져 가지 않고 음식물을 뒤지고 있습니다. 마두로 대통령은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해온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유가가 높을 때 원유 판매로 벌어들인 오일 머니를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저가주택 공급, 휘발유와 생필품 무료제공 등 포퓰리즘 정책에 쏟아부었습니다. 이 때문에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외환 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2013년 3월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14년간 장기집권을 한 차베스 전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은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했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 제조업 기반이 사라졌으며, 만성적인 생필품 부족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치약, 비누, 기저귀, 식용유 같은 생필품을 상점에서 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차베스 전 대통령의 후계자인 마두로 대통령은 경제난에도 포퓰리즘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1950년대 1인당 국민소득 세계 4위를 기록하며 대표적인 남미 부국으로 떠올랐지만 우고 차베스(Hugo Chavez) 전 대통령과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 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한순간에 남미 빈국으로 전락했습니다. 영국 언론 텔레그래프, 더선에서도 좌파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 야기한 경제 파탄으로 베네수엘라를 탈출해 스페인에서 매춘업에 종사하는 20세 전후 베네수엘라 여성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회 최약층에 속하는 어린 소녀들의 경우 다른 나라로 탈출할 경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워 '매춘'을 선택합니다. 취약계층 소년∙소녀들에게 매춘은 생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살인적인 물가에 식량을 구하지 못한 어린 소년∙ 소녀가 값싼 식재료를 받는 조건으로 성매매에 응하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하겠다’는 폭력 단체의 말에 넘어가 강제로 매춘에 동원되기도 합니다. 베네수엘라는 미녀가 많은 나라로 유명합니다. 각종 세계미인대회 입상자 가운데 30%가 베네수엘라 출신입니다. 가장 많은 우승자를 배출하며 ‘미녀 국가’로 불렸던 베네수엘라의 여성들이 최근 전 세계인을 상대로 한 성매매 주범으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제난으로 전체 가구의 80%가 음식이 부족하고, 여성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단돈 7달러에 몸을 팔고, 이웃 나라인 콜롬비아로 가서 성매매를 하는 창녀가 되었습니다. 폭스뉴스에서는 14살 정도의 어린 소녀들이 콜롬비아 북부 도시 쿠타타에서 성매매에 응할 때마다 7달러(한화 기준 약 8,484원)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베네수엘라와 인접한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공공기관 ‘여성-양성평등 전망대’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보고타의 성매매 여성 중 외국인이 35.7%인데, 그 중에서 베네수엘라 여성이 무려 99.8%라고 합니다. 성매매 외국인 여성 모두 베네수엘라 출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콜롬비아 쿠쿠차에서 성매매를 하는 한 여성은 지난 2019년 2월 11일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받은 한 달 월급으로 겨우 밀가루 한 봉지를 살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콜롬비아 칼라마르에 있는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다른 여성은 AFP에 “생계 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춘을 선택했다”며 “2016년까지 신문사에서 일했지만, 신문을 찍어낼 종이가 없어서 회사가 망했다”고 털어놨습니다. 22세의 여성 루시아는 마라카이에서 간호학과를 다니던 여대생이었지만 베네수엘라가 경제 파탄 상태에 빠지자 스페인 남부 말라가 지역 유명 관광지 '태양의 해변(코스타 델 솔)'에서 영국인∙독일인 관광객을 상대해 몸을 팔아서 번 돈을 고향인 가족에게 생활비로 보냅니다. 루시아는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내가 보낸 돈으로 가족들이 최소한의 먹을거리와 비상용 약품을 산다”고 했습니다. 더선은 “스페인의 베네수엘라 매춘 여성 중에는 고국에서 의사, 교사 등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던 경우도 제법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페루 경찰은 지난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베네수엘라 여성들을 성매매에 이용한 인신매매 조직을 검거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9년 베네수엘라 국적의 여성이 성매매를 하다 발각돼 강제 출국 조치되었습니다. 어쩌다 이 여성은 지구 반대편인 대한민국에서 성매매하다 내쫓기는 신세가 되었을까요? 빈민촌에 살다 차베스 재임 시절 정부가 나눠준 아파트로 이사했다는 식당 종업원 예시드 메를야노(50) 씨는 “지금 겪는 고통은 ‘’차비스타로 살며 누렸던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며 “죽기 전에 베네수엘라에서 사회주의가 사라지길 바랄 뿐”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우고 차베스 전임 대통령 시절부터 좌파 정책을 지지해 온 골수 차베스 지지세력인 '차비스타(Chavista)'들도 사회주의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꼬레주엘라’라는 말은 우리나라도 사회주의를 하게 되면 결국 포퓰리즘 정책으로 ‘베네주엘라’ 같은 꼴이 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이런 나라에 살기를 원하십니까? 이런 나라에 한번 살아 보실래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들 중에서 한번도 사회주의를 해보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실험적으로 ‘사회주의’를 해볼 수도 있겠지만 수많은 나라들이 이미 사회주의를 한 이후로 더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주의를 한 나라 치고 그 전보다 더 잘 살게 된 나라가 있습니까? 없죠? 사회주의를 한 이후로 국민들이 더 행복한 나라가 있습니까? 없죠? 그러니 사회주의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하자’는 사람들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먼저 자신의 재산을 이웃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일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가진 것은 사회주의를 하지 않으면서 나라 돈은 ‘사회주의 하자’고 포퓰리즘으로 막 퍼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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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6
  • ‘꼬레헨티나’라는 말을 아십니까?
    서울에서 말뚝을 박으면 그 반대편으로 나오는 곳이 바로 ‘아르헨티나 공화국’으로써 줄여서 ‘아르헨티나(Argentina)’라고 합니다. ‘아르헨티나’라는 나라 이름은 라틴어로 ‘은(銀)’을 의미하는 ‘아르겐툼(Argentum)’에서 유래했습니다 남아메리카대륙 남부에 자리 잡고 있는 연방 공화국이며, 수도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입니다. 동쪽의 대서양과 서쪽의 안데스 산맥 사이에 2,766,890km2의 면적을 차지하여 남아메리카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넓으며,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나라입니다. 세계 3대 폭포 중에 하나인 거대한 이과수 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대자연을 대표하는 비경입니다. 아르헨티나의 동쪽은 브라질과 우루과이, 서∙남쪽으로는 안데스 산맥을 경계로 칠레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파라과이, 특히 볼리비아와 접하는 안데스 산맥 일대는 과거에는 잉카 제국의 영향에 속해 있었습니다. 1880년과 1929년 사이 아르헨티나는 경제 성장을 계속하였으며, 세계 3대 곡창지대인 팜파스가 국토 중앙을 차지하고 있으며, 20세기 초만 해도 경제 선진국으로써 세계 5대 부국이었습니다. 1913년에 지하철이 개통되었으며, 우리나라보다 61년전입니다. 1930년 군부 쿠데타 이후 50년 이상 군부 독재 하에서 계속 쇠약하다가 1980년대 초 민주주의로 전환을 했지만 아직도 경제적 퇴보와 혼란은 계속되었습니다. 1960년대 재무장관 하나는 ‘경제위기 해결책으로 무엇을 생각하냐?’는 질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도록 하죠’라고 대답한 적도 있습니다. 1960년대는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의 후유증으로 아르헨티나 경제가 개판이던 시절인지라 저런 농담도 먹히는 시대였습니다. 참고로 그때 경제위기의 여파로 결국 군부쿠데타가 일어나 1983년 라울 알폰신 집권 전까지 20년간 군사 독재가 실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군부 독재자들은 자기들 배 채우기에 바빠 경제 상황은 더 나빠져서, 나중에는 아르헨티나가 못사는 빨갱이 나라라며 우습게 보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로부터 “자신이 아르헨티나를 통치하면 저 꼴은 안 냈다”며 비아냥 당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만화 영화 ⌜엄마 찾아 삼만리⌟를 잘 아시죠? 주인공 이탈리아 소년이 아르헨티나에 가정부로 간 엄마를 찾아 나선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부터 이민을 갔는데, 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잘 살았습니다. 페론 전 대통령은 가난한 이민 노동자를 위해서도 무료로 연립주택을 나누어 줄 정도였습니다. 6살짜리 어린아이에게도 주치의가 배당될 정도였으며, 국적과 체류 신분을 떠나 모두에게 대학까지 무상교육입니다.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로 유명하지만 공짜로 견딜 수 있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국가 부도(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를 여러 번 겪었으며, 결국 2020년 8월에 9번째의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로 연명하고 있는 세계의 골칫덩이 나라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역사는 디폴트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816년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 디폴트 선언만 8차례를 기록했습니다. 첫 번째 채무불이행 선언은 1827년이었습니다. 독립 후 막대한 나라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 런던 금융가에서 국채를 발행했는데 1825년 영국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자 디폴트를 선언한 것입니다. 아르헨티나가 빌린 돈을 갚고 다시 국제 금융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30년 뒤였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디폴트는 그 이후 1890년, 1951년, 1956년, 1982년, 1989년, 2001년 그리고 2014년까지 이어졌습니다.아르헨티나는 19세기만 해도 농업 부국 가운데 한 곳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선진국이었습니다. 팜파스 대평원을 활용해 목축과 농업으로 부를 일군 덕분이었지만 1946년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그때까지 쌓아 올린 국부는 순식간에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의 재분배를 표방하며 기간 산업을 국유화하고, 복지 등을 강화한 페론주의를 내세우면서 경제 사정은 갈수록 꼬였습니다. 올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36년만에 우승을 했는데, 메시가 오랜 월드컵 무관의 설움을 떨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에 전 세계 축구팬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월드컵 우승이 파탄 난 아르헨티나 경제를 되살리지는 못하겠지만, 상처 입은 아르헨티나 국민의 자존심과 희망을 되살리는 데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군사독재가 종식되고 3년 뒤인 1986년 거둔 월드컵 우승이 아르헨티나 민주주의 정착에 도움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최근 아르헨티나를 짓누르고 있는 경제적 고통은 만성적 재정 적자에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면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한마디로 파탄 상태입니다. 물가 상승률이 세 자릿수에 육박하면서 화폐는 휴지 조각이 됐고, 국민 40%가 빈곤층으로 전락했습니다. 지하자원이 넘쳐나고, 소고기와 콩을 수출하는 나라이지만 국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휴지통을 뒤지고 다니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도 좌파 정부가 재정 적자를 메꾸려고 돈을 마구 찍어낸 결과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중앙은행이 기준 금리를 75%까지 올리고 정부가 생필품 가격을 통제하고, 소고기 수출을 금지하며, 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하고, 매달 최저임금을 인상하며, 복수 환율제 등 무리한 정책을 남발하고 있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22일(현지 시간) 집권 페로니스트(대중영합주의자) 연합의 후보로 나선 세르히오 마사 경제장관이 비선거에서 3위에 그치며 체면을 구겼으나, 아르헨티나의 대선 본선에서 나선 마사가 예상 밖의 1위를 차지한 것은 현지에서도 이변으로 평가됩니다. 마사가 예상을 깨고 1위에 오른 것은 선거 막판 ‘돈 풀기’ 등 포퓰리즘 정책을 했기 때문입니다. ‘꼬레헨티나’라는 말은 꼬레아와 아르헨티나를 합친 단어입니다. 우리나라도 사회주의를 하게 되면 결국 포퓰리즘 정책으로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가 된다는 뜻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들 중에서 한번도 사회주의를 해보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실험적으로 ‘사회주의’를 해볼 수도 있겠지만 수많은 나라들이 이미 사회주의를 한 이후로 더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주의를 한 나라 치고 그 전보다 더 잘 살게 된 나라가 있습니까? 없죠? 사회주의를 한 이후로 국민들이 더 행복한 나라가 있습니까? 없죠? 그러니 사회주의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하자’는 사람들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먼저 자신의 재산을 이웃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일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가진 것은 사회주의를 하지 않으면서 나라 돈은 ‘사회주의 하자’고 포퓰리즘으로 막 퍼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 주요뉴스
    2023-10-25
  • ‘멕시코리아’라는 말은 들어 보셨습니까?
    정식 명칭은 ‘멕시코 합중국’이지만 일반적으로 ‘멕시코’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멕시코로 부르지만 북조선에서는 스페인어 원어에 가깝게 ‘메히꼬’로 읽습니다. 멕시코는 북아메리카 남부에 있는 나라이며, 수도는 멕시코시티이며, 2016년 인구는 약 1억 2863만 2천 명으로 세계 10위입니다. '멕시코(México)'라는 이름은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왔는데, 아즈텍 문명 때 붙은 이름으로 ‘멕시틀리 신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전쟁의 신 멕시틀리의 이름은 metztli(달)와 xictli(배꼽)에서 온 말로 ‘달의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북쪽으로는 미국, 서쪽으로는 태평양, 남쪽으로는 과테말라와 벨리즈, 동쪽으로 카리브해와 접하고 있습니다. 멕시코는 미국 바로 밑에 있는데, 문화적으로는 라틴아메리카이지만 지리적으로 미국, 캐나다 등과 함께 ‘북아메리카’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야, 톨테카, 아즈텍의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계 5대 산유국입니다. 풍부한 관광자원과 천연 자원을 가진 나라이지만, 미국과의 전쟁으로 국토의 절반을 빼앗기거나 할양하였습니다. 미국이 1845년 텍사스를 합병하자, 1846년에는 텍사스를 둘러싸고 미국과 멕시코간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멕시코는 멕시코시티를 점령당하고, 1848년에 패배하면서 텍사스를 매각하고 뉴멕시코주∙캘리포니아주 등의 땅을 미국에게 팔았습니다. 결국 멕시코는 리오브라보 강 이북의 영토(이른바 멕시코 할양지)를 상실했습니다. 영토 상실 과정에서 미국과의 갈등은 깊어졌습니다. 혁명과 내전으로 경제가 악화되자 먼로 독트린을 선언하며 아메리카와 유럽의 상호 불간섭을 선언했던 미국이 내전에 돌입한 틈을 노리고 프랑스군은 돌연 멕시코 영토를 침공하여 멕시코 시티를 점령해 버렸습니다. 1865년 남북전쟁을 끝마친 미국이 먼로 독트린을 재차 천명하며 프랑스에 강력히 항의하였고, 멕시코에 무기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도움을 얻은 멕시코군은 1866년에 프랑스 원정군을 멕시코에서 퇴각시키는데 성공하여 주권회복에 성공은 했으나 이후 두고두고 미국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멕시코는 아즈텍 문명과 마야 문명 등 다양한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어서,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습니다. 물가가 저렴하여 배낭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에서 강도를 만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므로 단단히 각오해야 하며, 마약∙카르텔과 같은 불안정한 치안으로 혼자 다니기가 불안한 나라입니다. 멕시코는 신흥공업국으로 분류된 국가로, 풍부한 노동 인력과 석유 등의 지하자원, 미국과의 근접성을 바탕으로 60~70년대를 기하여 상당한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생활이 부유하지는 않습니다. 2018년 7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재건운동을 창당한 멕시코 정치의 좌파를 대표하는 인물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당선이 확정되어1929년 대통령 선거 이후 89년 만에 좌파정권으로 교체되었습니다. 멕시코의 ‘UNAM’ 대학은 등록금이 원화로 단돈 500원입니다. 멕시코는 태생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보통선거로 대통령을 뽑은 이래, 자본주의나 시장 경제를 단 한 번도 지향한 적이 없는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모든 게 계획 경제와 분배 우선 정책으로 무장한 강성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멕시코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니토 후아레스는 강성 민족주의자요, 사회주의자입니다. ‘멕시코리아’라는 말은 멕시코와 코리아를 합친 단어입니다. 우리나라도 사회주의를 하게 되면 결국 멕시코 같이 가난한 나라가 된다는 뜻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들 중에서 한번도 사회주의를 해보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실험적으로 ‘사회주의’를 해볼 수도 있겠지만 수많은 나라들이 이미 사회주의를 한 이후로 더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주의를 한 나라 치고 그 전보다 더 잘 살게 된 나라가 있습니까? 없죠? 사회주의를 한 이후로 국민들이 더 행복한 나라가 있습니까? 없죠? 그러니 사회주의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하자’는 사람들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먼저 자신의 재산을 이웃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일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 주요뉴스
    2023-10-23
  • 사회주의를 하면 국가가 패망합니다.
    지난 역사가 증거하기를, 공산주의 국가는 예외없이 모두 가난해졌지만 기독교 정신으로 세운 나라는 모두 부강해졌습니다. 과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산주의 전 단계인 사회주의로 체제가 바뀐 나라들을 한번 살펴 보세요. 그 나라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2차대전 이후 사회주의를 채택하였다가 실패한 대표적인 나라가 인도입니다. 인도의 초대 수상 네루는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지만 국가 경영의 체제를 사회주의로 채택하여 인도를 가난한 후진국가가 되게 하였습니다. 필리핀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였습니다. 마르코스 정권의 독재와 부패, 과도한 빈부격차로 인해 경제적으로 몰락했습니다. 2000년대 아로요 행정부부터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는데, 북쪽은 월맹 또는 ‘베트콩’이라 불렀고, 남쪽은 월남, 또는 ‘베트남’이라고 불렀습니다. 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1973년 거짓 평화 협정인 ‘파리협정’을 맺고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하자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의 탱크 부대가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을 점령하였으며, 50일도 버티지 못한 채 6월 15일 남베트남이 북베트남 공산 월맹에 무조건 항복했습니다. 그리고 1976년 7월 2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였습니다. 베트남의 군인 수는 100만이었고, 베트콩의 군인수는 10만이었습니다. 베트남이 10배가 더 많았습니다. 세계 4위의 막강한 공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토도 2배나 더 넓었습니다. 훨씬 풍성한 경제력을 믿고 베트콩과 비교가 안되는데, 우리가 패배할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안보 불감증에 빠져 안일하다가 50일도 버티지 못한 채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그후 20년 동안 베트남은 국경을 폐쇄하고, 공산화를 위하여 인간 개조 수용소를 만들었습니다. 군인, 경찰, 공무원, 교사, 언론인, 재산가, 종교인, 사회지도층 인사, 정치인은 물론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벌이며 월남 패망에 앞장섰던 1등 공신인 ‘짠후탄’ 신부를 포함하여 교수, 학생, 통일 운동가들까지 체포되어 수용소로 보내졌고, 수백만명을 숙청했습니다. 이렇게 무자비한 처형을 하자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살겠다고 바다로 도망가다 11만명이 빠져 죽었으며, 국외로 탈출한 보트 피플 106만명, 육상 탈출이 50만명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캄보디아나 라오스, 미얀마 등 인접국 호수에는 탈출한 베트남인들이 만든 수상 마을이 수없이 많습니다. 월맹 베트콩에 의해 인구 2천만의 절반인 1천만명이 처형되었습니다. 이런 학살로 경제는 완전히 무너져서 “어쩔 수 없이” 1995년 이후 개방 경제를 택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숙청했는지 베트남에는 노인이 없고, 평균 연령이 27세라고 합니다. 통일된 지 45년이 지난 오늘도 월남의 풍요로운 생활은 어디 가고, 가난하고 비참하여 우리나라에 제일 많이 오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만약 공산화 되면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김정일이 생전에 말하기를 “한반도 적화 통일 달성시 (남한의) 1천만명은 이민 갈 것이고, 2천망명은 숙청될 것이며, 남은 2천만명과 북조선 2천만명으로 공산국가를 건설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트남에 가면, 호치민에 사는 시민들 가운데 옛날 자유 월남 사람은 없고 거의 북부 월맹 사람들뿐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만약 적화통일이 된다면, 우리나라 유사 이래 없었던 대살육이 자행될 것입니다.
    • 주요뉴스
    2023-10-20
  • 현대판 우화 '종달새와 고양이'를 알고 있습니까?
    종달새 한 마리가 숲길을 따라 움직이는 작은 물체를 발견하고는 호기심으로 다가 갔습니다. 그건 고양이가 끌고 가는 작은 수레였습니다. 그 수레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습니다. "신선하고 맛있는 벌레 팝니다." 종달새는 호기심과 입맛이 당겨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벌레 한 마리에 얼마에요?" 고양이는 종달새 깃털 하나를 뽑아 주면 맛있는 벌레 세 마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종달새는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깃털을 하나 뽑아 주고 벌레 세 마리를 받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종달새는 깃털 하나쯤 뽑았다고 해서 날아 다니는데는 아무 지장도 없었습니다. 한참을 날다 또 벌레가 생각 났습니다.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벌레를 잡을 필요도 없고, 깃털 몇 개면 맛있는 벌레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게 너무나 편하고 좋았습니다. 이번에는 깃털 두 개를 뽑아 주고 벌레 여섯 마리를 받아 먹었습니다. 이러기를 수십 차례, 그런데 어느 순간 하늘을 나는 게 버거워 잠시 풀밭에 쉬고 있는데, 아까 그 고양이가 갑자기 덮쳤습니다. 평소 같으면 도망치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듬성듬성한 날개로는 재빨리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후회해도 때는 늦었습니다. 종달새는 벌레 몇 마리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상대를 무능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공짜 심리'에 맛 들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얻고 싶다면 당신을 잃지 마세요 욕심에 눈이 멀면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땀을 흘려 얻은 댓가가 진정 소중한 것입니다. *한번 속으면 속이는 사람이 나쁘고 두번째 속으면 속는 사람이 나쁘고 세번째 속으면 두 놈이 공범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모르는 사이 슬그머니 사회주의화의 공범이 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닌지 한번쯤 뒤돌아 보았으면 합니다.
    • 주요뉴스
    2023-10-18
  • 하나님을 적으로 삼고, 사탄을 숭배하는 공산주의가 그렇게도 좋습니까?
    공산주의(Communism)는 플라톤(Platon)의 "공화국"이라는 철학을 토대로 칼 막스의 공산주의 지령(The Communist)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혼을 부정하는 유물주의 사상에 근거하였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무신론입니다. 또 공산주의자들은 종교, 특히 기독교를 공산 혁명에 가장 큰 장애물로 보며, 종교를 말살 시키려 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을 노예로 만드는 아편"이라고 말했고, 레닌은 "현대의 종교, 특히 기독교는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전제한 뒤 "교회는 노동자, 농민, 무산대중의 원수이기 때문에 교회부터 파괴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형교회부터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소련의 후르시초프는 서기장이 된 다음 "3년 안에 크리스챤들을 다 없앤 후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을 전국 TV에 보여준 후 처치하여 크리스챤들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교회를 다 파괴시키고, 기독교인들은 시베리아로 끌고 갔고, 그보다도 더 무서운 동북쪽 마가단(하바로브스크에서 북쪽으로 1000km)으로 보내 죽게 했습니다. 1910년부터 1960년대까지 일어난 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였으며, 죽여도 가장 잔인하게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겨울에는 얼어붙은 모스크바 강가에 구멍을 파고, 벌겨벗겨서 산채로 마구 밟아 집어 넣었고, 여름에는 배 스크류에 사람들을 묶어서 찢어 죽였습니다. 모든 교회의 종탑들과 십자가를 꺾어 버렸고, 교회들을 불 지르거나, 부수거나 혹은 오락 장소나 극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공산화 과정에서 2700만명의 기독교인들을 죽였습니다. 결국 러시아(구, 소련)는 40년만에 인류의 3분의 1을 적화(공산화) 시켰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다시 없는 동족간의 대참살극은 그 어느 집단보다도 교회는 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북조선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였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북조선의 정치범 수용소에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들은 하루 12시간 이상의 중노동과 살아남기 어려울 정도의 음식 공급, 전염병, 고문, 구타 등 짐승같은 취급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에는 국민의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현재 북조선의 실정이기도 합니다. 북조선의 조선말 백과사전에는 선교사가 "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의 길잡이이자 하수인"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가 20대 시절에 [하나님의 지하운동]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라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의 자서전 같은 신앙 간증이며, 옥중 투옥기인데, 감명 깊게 읽었고, 또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공산주의 치하에서 기독교인들이 받고 있는 억압에 대해서 이토록 상세하게 기술된 책은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 억압의 강도나 핍박의 세기가 강해서 놀랐다기보다는, 공산주의가 굉장히 치밀하고 영리하게 사람들을 파멸로 이끄는 체제라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은 루마니아가 공산 통치 아래 있을 때 박해받던 지하교회에서 전도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재판도 없이 14년간이나 감옥에 갇혀 있었으며, 온갖 고문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3년 간은 빛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독방에서 지냈으며, 일반 감옥으로 옮겨져 5년을 더 갇혀 있었으며, 여전히 고문은 계속 되었습니다. 8년 수감생활후 석방되어 출옥하자 즉시 지하 선교를 시작했으며, 2년 후 1959년 다시 채포되어 2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1964년 대사면때 석방되었으나 다시 지하 선교를 계속했으며, 세번째 투옥될 위험에 처하자 노르웨이의 그리스도인들이 공산당국과 협상을 통해 몸값 일만 달러를 내고 풀려 났습니다. 1966년 5월 워싱턴의 미국 상원 국내안정보장 소위원회에서 증언했으며, 상의를 벗고 고문으로 전신에 생긴 열여덟군데의 깊은 상처를 보여 주었습니다. 1966년 9월 루마니아 공산 정부가 그를 암살하기로 결정했다는 경고를 받았으나, 죽음의 위협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이 쓴 [MARX and SATAN(막시즘과 사탄)]이라는 책에서, '공산주의'라는 것이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본질은 영적인 문제라는 것이며, 공산주의의 본질은 악마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 174페이지에 보면, WCC가 아프리카의 공산 게릴라들에게 수년동안 돈을 지원했다고 하는데, 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입니까? 또 이 책에 보면, 마르크스가 쾌락에 막대한 돈을 탕진했고, 사탄 숭배에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르크스는 '절망자의 시'에서 말하기를 "나는 위에서 다스리는 그 존재에게 직접 복수하고 싶다"라고 했으며, 마르크스의 동료 미하일 바쿠닌은 말하기를 "이 혁명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사탄을 일깨워주고 가장 불순한 열정을 불러 일으켜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사명은 교화가 아니라 파괴이다"라고 했습니다. 마르크스와 바쿠닌의 동료인 프루동 역시 사탄을 숭배했다고 말했습니다. 프루동이 말하기를 "사탄이여 오소서! 하나님은 어리석고 비겁합니다. 위선자이고, 거짓말쟁이입니다. 압제이며, 빈곤입니다. 하나님은 악합니다"라고 했습니다. 1871년 프랑스 파리의 혁명정부 '코뮌'의 지지자들은 "우리의 적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증오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의 [MARX and SATAN(막시즘과 사탄)]이라는 책은 레닌과 스탈린 등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의 사탄 숭배의 증거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공산주의 자체가 사탄주의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와 싸우는 방법도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인류에게 아편이다"라고 말한 공산주의는 하나님과 대치되는 사상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진화론과 유물론과 무신론의 뿌리를 가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는 타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곳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고, 신앙의 자유가 없는 곳에는 교회가 없습니다. 교회가 없는 곳에는 기독교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교회도 없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신앙도 없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기독교도 없습니다. 문재앙이 말하는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나라"라는 것이 북조선과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인 공산주의 체제를 뜻하며, 생지옥의 북조선 김일성 주체 사상의 변종 공산국가를 뜻하는 것이며, 그 전 단계로 사회주의 국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영국의 수상 처칠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는데, 6.25라는 한국전쟁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까?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부르는 손양원 목사님을 비롯하여 수많은 기독 성도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무참하게 죽임을 당한, 순교한 사실을 벌써 잊었습니까? 지금에와서 공산주의를 지지하고 따르는 것은 그들의 순교를 개죽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 주요뉴스
    2023-10-16
  •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도 선거 부정일까?
    전 국민의 초유의 관심사였던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는 끝나고 더불당의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먼저,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를 왜 하게 되었을까요? 국힘당의 김태우 후보는 문재앙 정부때 검사 주사(6급)로 근무하던 중,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특별감찰반에 파견되어 감찰반원으로 근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18년 12월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비위를 폭로했습니다. 국가인권위에서 공익제보자로 선정했는데, 이후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기소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김태우가 폭로한 35건 중 대표적 의혹인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에게 징역 2년 실형,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되며 사실로 밝혀 졌습니다. 또한 조국 전 민정수석에 의한 감찰 무마 의혹과 관련된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2022년 3월 31일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 1월 11일, 대검찰청 징계위원회에서 공무상 비밀유지 위반 등을 이유로 해임 처분되었으며, 2021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에 입당했습니다. 2022년 3월 29일,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되었으나, 2022년 6월 1일 제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서울 강서구청장에 당선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강서구에서 12년만에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2023년 5월 18일 대법원에서 김태우 구청장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대하여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원심을 그대로 확정하면서 민선 8기 기초자치단체장 중 첫 번째로 구청장직을 상실했습니다. 일 잘 하고 있는 김태우를 결국 김명수 대법원에서 어거지로 기밀누설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서 당선 무효가 되었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8∙15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 나게 되어서 피선거권을 회복하게 되어 다시 구청장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그동안 강서구의 성향은 민주당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면적이 두 번째로 넓은 곳이 강서구이며, 인구도 두 번째로 많은 곳으로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텃밭 지역입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에서 이기지 못한 지역이었습니다.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는 처음부터 이기기 힘든 지역이었습니다. 강서구에는 3개 구(갑∙을∙병)의 국회의원이 있는데, 모두가 민주당 의원들입니다. 그만큼 민주당의 조직적인 텃밭이라는 것입니다. 김태우가 잘못해서 진 것도 아니고, 국민의힘이 잘못해서 진 것도 아닙니다. 더더욱 대통령이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질 수밖에 없는 곳에서 졌으니 너무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라고 했습니다. 선거에서 지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전라도에서 국민의힘이 이기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민주당의 텃밭에 나가서 졌으니, 이기면 좋고, 지면 본전인 곳입니다. 그러나 득표율 차이가 2018년 선거의 26%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이것은 이번 선거로 좌파들의 뻔뻔함이 다시 돌아온 것이 확인되었을 뿐이며, 중도층은 돌아 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개혁의 방향을 잘 잡았다는 증거입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이겼다면 민심이 변했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이전보다 적은 득표율로 졌기 때문에 민심의 변화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국민의힘 최고지도부는 패배를 확대 해석할 필요성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도 선거 부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투표소 공고도 하지 않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 “강서구 선관위에 투표소 공고가 어디 있냐?”고 물었습니다. “선관위 사무실 앞에 했다”고 답을 합니다. 다시 “거기에 공고하면 누가 보냐?”고 물었습니다. “안 볼 것 같다”고 답을 합니다. “왜 인터넷에 투표소 설치 공고문을 게시 안 하냐?”고 물으니 답을 하지 못합니다. 투표소 위치와 투표함 숫자를 알리고 싶지 않는 선거범죄 선관위의 악의적인 수법이 유령 투표소와 투표함 개수 조작입니다. 1개 구에 100개가 넘는 투표소가 있습니다. 그러니 투표함의 진위 여부를 일반인들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가짜 투표함 1개를 더 가져와서 쏟아서 합쳐버리면 알 길이 없습니다. 공직선거법의 투표소 설치 공고 조항이 있으나 유명무실입니다. 인터넷에 공고할 의무 없습니다. “전에도 게시 안 했다” “중앙선관위가 지시를 안 했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다. 공명선거가 아니라 조작선거위원회입니다. 10월 11일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선거 전날 선관위가 공직선거를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국정원의 보안 점검 결과 발표를 통해 밝혀 졌습니다. “투개표 시스템이 해킹에 취약하다”고 발표했는데,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나 사전 투표하지 말라고 했지만, “사전선거에서 37,100표가 조작되었다”고 공병호 박사는 분석했습니다. 사전 선거에서 미리 40% 가까이 차이나게 만들었습니다. 중앙선관위 발표 득표수를 분석해본 결과 당일 투표에서는 김태우가 48.2% 대 47.4%로 승리했는데, 사전투표에서는 30.6% 대 65.7%로 따블스코어로 패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전투표율 22.6%(실제 15.1% + 가공의수 7.5%) 대 당일 투표율 26.1%로 모집단을 비교해 볼 때, 당일 투표 비율이 사전투표율보다 3.5%가 많은 모집단에서 승리했는데도 그보다 적은 사전투표 모집단에서 따블 스코어로 진 것으로 나와 통계학상 있을수 없는 도저히 이해 납득이 안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공병호 TV에서 이번 선거에서도 사전투표에서 득표수 조작이 있었고, 조작 수법도 더 진화된 사전 투표자수 부풀리기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국민들이 당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산 조작으로 결정합니다. 내년 총선 투표 하나마나입니다. 사전투표 없애고, 수개표만이 국민들의 투표가 권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전산 조작 아주 쉽습니다. 윤석열 대통령하에서 벌써 세 번의 부정 개표가 버젓이 자행되었습니다. 선거 부정 안 하면 죽으니 목숨 걸고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나서야 합니다. 개표율 50.55%, 무효 534표는 이해할 수 있는데, 기권수 71,220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누가 기권표 찍으러 투표장으로 가는 얼간이가 있을까요? 아예 안 가는 거지?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중앙선관위는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 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장 부정선거 수사를 지시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경기도지사 선거때 사전투표 부정 개표로 막판에 역전된 김은혜 후보가 너무 빨리 승복하는 바람에 부정선거를 밝힐 기회를 날려 버린 우를 범했습니다. 이번 강서구 보궐선거도 사전투표 부정선거 같은데, 김태우 후보가 바로 승복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사전 투표의 개표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수사를 요청하여 전산 서버를 압수수색해야 합니다. 이것이 김 후보가 살고 나라가 사는 길입니다.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어제(11일) 국회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고 “현재와 같은 관리시스템으로 선거를 치른다면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불신받을 수밖에 없다”며 “선관위의 시스템 개선이 신뢰를 갖추지 못한다면 기존 선거제도의 변화가 검토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유 수석대변인은 브리핑 직후 기자들과 만나 “사전투표 시스템은 완전히 중복해서 누구든지 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이미 드러났다”며 “그렇다면 사전투표 시스템을 없애야 하고, 그런 식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전면적인 수개표 필요성도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도 유 수석대변인은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면서 “지금의 시스템으로 개표한 결과를 우리가 어떻게 믿느냐, 어떤 형태로든 조작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시스템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답했습니다. 같은 당 박수영 여의도연구원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부터 수 개표를 해야 좌파든 우파든 국민들이 결과에 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으며, 또한 “투표는 물론 개표결과까지 해킹으로 변경할 수 있다 하니 작은 일이 아니”라며 “앞으로의 투표에 개선이 없을 경우 과거처럼 수개표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선거관리 시스템의 핵심인 투∙개표 시스템마저 해킹에 무방비로 방치했다니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번 점검은 선관위 전체 시스템 중 극히 일부에 한하여만 실시됐다고 하는데, 차제에 전체 시스템 일체에 대한 점검에도 착수해 제2, 제3의 부실선거, 조작선거 논란을 차단해야 할 것이라며, 또다시 구렁이 담 넘듯 어물쩍 넘어가려 해서는 결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정도로 허술했다는 것은 ‘4∙15 선거는 불법∙부정선거였다’는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 근간이 무너져내린 사건으로 단순한 형사 범죄 수준의 사건이 아니라 ‘국기 문란’ 사건으로 관련자들 모두 사형에 처할 중범죄입니다. 부정선거 온상 사전투표 제도와 전자개표는 꼭 폐지해야 하고, 대만(臺灣)처럼 당일 투표만 하되 투표 마감 후 투표소에서 즉석 수(手)개표 하면 개표소로 이동하여 전자개표하는 것보다 시간 절약 더 빠른 시간내 공정하게 개표가 완료됩니다. 2020년 4.15총선 투표 마감 후 오후 6시 조금 지나 TV 방송으로 출구조사 결과 더불어민주당 170~180석 압승 예상을 발표할 때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러야 할 더불당 이해찬 대표와 이낙연 등 당 간부 모두가 오히려 침묵하고 애써 표정 관리하던 (뭔가 숨기는 게)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사전투표는 출구조사도 하지 않는데 출구조사 발표 의석수가 개표결과와 거의 같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것이고 전자개표 조작의 낌새가 느껴졌고, 개표결과 선관위 통계 전국적인 합산 득표율은 더불당 33.4%, 미래통합당 33.8%인데 더불당이 압승했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게 바로 사전투표 득표수 전산 조작했다는 공병호 박사 신간 서적 <도둑놈들 全 5권> 내용이 맞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가짜 개표기에 의하여 철저하게 농락 당하고 있었습니다. 검찰은 4.15총선 부정을 철저히 수사해야 합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 주요뉴스
    2023-10-12
  • '민주평화론'을 알고 있습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대한민국의 4대 기둥 중의 하나인 정치적 자유민주주의는 우리나라에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입니다. ‘민주평화론’이란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국제정치이론으로 대한민국의 평화를 향한 방향과 좌표를 명확하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이웃 국가이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멕시코와 캐나다는 미국으로부터 어떠한 군사적 위협을 느끼지 않지만, 중국과 북한과 인접한 한국, 일본, 대만 등과 과거 소련과 인접한 유럽 국가들은 하나같이 커다란 군사적 위협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차이점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인접한 국가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 동안 적게는 900회, 많게는 1300회에 이르는 크고 작은 외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에서 70년동안 단 한번도 외침을 받지 않은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1953년 7월 27일 6•25 한국전쟁 정전이 조인된 이후부터 지금까지입니다. 이 평화는 당시 국민소득이 1인당 67달러에 불과했던 세계 최빈국 한국이, 당시 최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과 국가 대 국가로 대등하게 맺은 ‘고래와 새우의 동맹’이라고 하는 한미동맹 덕분입니다. 한미동맹 이후로 우리나라는 역사상 처음으로 70년 동안이나 전쟁없는 평화 속에 전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산업화의 기적을 일으키며,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올라 설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오늘의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일으켜 놓은 대(大)반석이 바로 한미동맹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 반만년 역사 속에서 최고의 전략과 정책을 꼽는다면 주저할 필요도 없이 한미동맹입니다. 이 한미동맹은 끊임없는 외침과 전쟁의 비극 속에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처음으로 ‘전쟁없는 평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한미동맹이 결성된 1953년 10월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 이전 세대가 겪은 일제 식민 지배와 1•2차 세계 대전과 6•25전쟁 등 비극적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고 ‘전쟁 없는 평화’라는 축복 속에 살면서 그 속에서 자유의 가치를 발전시켜 오늘의 번영과 안정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강력한 전쟁 억지력을 발휘해 온 한미동맹은 무력 적화통일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북조선의 침략 야욕을 좌절시켰고, 동족상잔의 비극이 재발하는 것을 막아 주었습니다. 어찌 보면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2200만 북한 동포들도 살려준 것입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도 튼튼한 한미동맹의 뒷받침으로 계속해서 평화의 축복 속에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대한민국을 이끌고 갈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또다시 전쟁의 비극을 겪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남북 통일이 된다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라는 강대국에 둘러 싸여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은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한미동맹을 흔드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기둥을 흔드는 것입니다. 한미동맹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은 순식간에 북조선의 핵 공포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며, 120여년 만에 다시 주변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의 투전판으로 변할 것이며, 외국의 투자가 순식간에 빠져 나가 경제는 삽시간에 블랙홀 상황이 될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어떠한 경우에도 놓을 수 없으며, 끊을 수 없으며, 포기하거나 버릴 수 없는 대한민국의 핵심 이익이자 강력한 기둥입니다. 1953년에 맺은 한미동맹은 6•25 한국전쟁을 극복하고 자유를 지켜낸 이승만 대통령의 최고의 안보 전략이며,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군사동맹이며, 지금까지도 유일한 동맹조약이며,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위대한 군사동맹이며, 단군 이래 우리 민족이 취한 최고의 국가 전략입니다. 북조선은 주장하기를 ‘미군이 남한을 강점해 민족통일을 막고,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수탈한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가적 성공과 성장은 미국의 안보 지원과 경제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든든한 군사 안보와 경제 번영의 토대가 된 한미동맹이 지난 문재앙 정부 때에 67년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한미동맹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의 위기 신호입니다. 한미동맹을 맺은 이후로 대한민국에는 전쟁이 없었고, 주변국들로부터 단 한 차례도 외침을 받지 않는 긴 평화의 시대를 누려 왔으며, 경제도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보릿고개 굶주림은 박정희 대통령때 없어 졌고, ‘간첩 잡자’라는 말은 김대중, 노무현 때 없어 졌습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은 북조선보다 못 살았습니다. 6•25전쟁때 북조선은 탱크를 앞세워 쳐들어 왔지만, 한국군은 소총과 삽자루를 들고 대항했습니다. 전교조와 주사파들에 의해 세뇌되고, 선동된 사람들이 주한미군 철수를 외칩니다. 재앙의 문은 자신의 임기 중에 전시작전지휘권을 가져 오겠다고 합니다. 종전 선언을 하자고 합니다. 전 세계의 미군기지들 중에서 가장 많은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독일과 일본입니다. 독일이 자주국방 능력이 없어서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습니까? 일본이 무엇 때문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겠습니까? 일본과 독일이 바보라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일본과 독일이 미국을 붙들고 있는 분명한 이유는 그것이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자신들의 살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미군 철수를 외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미군이 철수하면 자주국방은 당신들이 지킬 수 있습니까? 당신 자식들은 지킬 수 있습니까? 당신들의 후손들까지 내려가기 전에,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에 1910년 조선이 세계 지도에서 사라졌던 것처럼,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대신 북조선에 합류된 북남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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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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