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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석 연세대 몀예교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
    동아일보의 객원논설위원이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민주정치를 버렸다.’를 소개하겠습니다. 며칠 전 TV에서 뉴스를 들었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한 최고위원이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출발해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거쳐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으로 이어져 왔다. 이재명이 민주당과 국가를 대표할 시대정신을 이끌어 가야 할 단계라고 했다. 그것은 이재명의 주장과 신념을 대변한 선언이다. 국민도 그 뜻을 이해는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현재까지 국정의 중책은 민주당이 맡아 왔고 지금도 절대적 여소야대의 국회이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민주당에 집중돼 있을 정도다. 문제는 민주당 안에서는 그런 선언이 가능할지 모르나, 국민의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은 초창기보다 더 증대하고 있다.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우려와 걱정은 한계선까지 도달한 상태다.국민은 김대중 대통령의 동족 간의 평화통일을 위한 열성과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가 심하므로 경제적 원조를 베풀면 15년쯤 후에는 통일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견해를 믿고 싶었다. 그런데 국민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너무 많은 원조를 했다. 그 결과는 핵무기 개발과 공산정권 굳히기에 도움을 주었다. 지금의 김정은 정권을 키워주는 결과가 되었다.노무현 정권은 어떠했는가? 우리 국민이 이런 상태로는 살 수가 없고 불안하여서 이민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의 무질서와 혼란 상태가 되었다. 국민에게 물어 보라. ‘노무현 정부가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인가?’라고. 그 주역을 담당한 세력인 86세대 운동권의 등단과 확장기였다. 대통령 자신이 자기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같이 불행한 대통령’은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몸소 남겨 주었다.그 뒤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운동권은 물론 문 대통령 스스로가 공은 내세웠으나 과(過)는 인정하지 않았다. 퇴임 후에도 자신의 임기 5년 동안에 쌓아 올린 정치적 업적을 윤석열 정부가 계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은 문 정부와 같이 가지 않는다고 추방한 윤석열을 왜 대통령으로 선출했는가?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권이 남겨 준 업적이 무엇이며, 윤 정부가 계승해야 할 과업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묻게 한다. 정치 기반인 경제 분야는 어떠했는가? 이명박 정부를 계승했다면 경제성장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는 어떻게 했으며,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민주국가의 위상을 지켜 왔는가? 북한 동포를 뒤로하고 김일성 정권 세습화에 동조했다면 그것은 실정 중의 실정이다. 김대중 정신에 위배되는 결과가 되었다. 대한민국으로 귀순해 온 동포와 중국에서 우리 품으로 오려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처신은 앞으로도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할 과제다. 친북 정책은 북한 동포를 위한 절대적 의무와 권리이다. 김정은 정권을 위한 종북이 아니다.현재에도 민주당은 국정운영 방향과 방법은 물론 절차까지 관여하는 국회의 주도권을 행사한다. 국가를 위해서보다는 윤 정권을 타도하고 임기 내라도 재집권하겠다는 자세다. ‘그것도 애국심인가? 국민을 위한 정치인의 양심인가?’라고 국민은 묻는다. 누가 보든지 민주당은 국가보다는 정권을 위했고, 지금은 당 대표인 이재명의 사당이 되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민주정치는 실종되었고 싸워서 이기면 그것이 정의가 된다는 개인과 집단의 투쟁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창기부터 실정에 앞장서 왔던 임종석 전 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송영길 전 당 대표, 각 분야에 자리 잡고 있던 운동권 출신의 잔여 세력이 이재명 대표를 앞세워 정권 재장악에 동참하려는 기세다. 민주당 안과 주변에 있던 친북좌파까지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선한 공존의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적 방향과 국민의 진실과 정의, 자유와 휴머니즘 정신이 보장, 구현되는 나라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잘못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진실과 정직 없는 ‘내로남불’의 정의관, 인격을 갖추지 못한 개인이나 이기적 집단세력에 정권을 위임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위하고 국민을 섬기려는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여야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민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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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1
  •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그립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반발로 전문의 파업이 대형 병원 중심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근무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시화되고 의료 공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안타깝기가 이를 데 없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가 문뜩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장기려 박사님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의사였다. 그래서 경성 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의과 대학과 김일성 종합 대학 교수를 지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1950년, 장기려 박사님은 철수하는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 아내와 5남매를 북에 둔 채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하였다. 그리고 부산에서 천막을 치고 복음 병원을 세워 행려병자를 치료했다. 장기려 박사님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하며 하루에 2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럴 뿐만 아니라 1959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간 절제 수술에 성공하는 등, 당시 우리나라 외과 의사 가운데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이 커지고 무료 진료가 불가능해지자 장기려는 1968년 한국 최초의 의료 보험 조합인 청십자 의료 보험 조합을 설립하였다. 청십자병원은 가난한 사람을 정성껏 치료해 줄 뿐만 아니라 치료비를 깎아 준다고 소문이 나 늘 많은 환자가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농부가 장기려 박사에게 하소연했다. “선생님, 제가 당장은 돈이 없지만 나중에 꼭 벌어서 갚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내일 당장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병원에 묶여 있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농부의 말을 들은 장기려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밤에 문을 열어 줄 테니 그때 가세요.” 농부가 깜짝 놀라자 장기려는 웃으면서 말했다. “병원에서는 아마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퇴원을 안 시켜 줄 거예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 도망을 쳐서라도 일을 해야 가족을 돌볼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장기려는 그렇게 말하고 농부에게 돈까지 쥐여 주었다. “얼마 안 되지만 차비나 하세요.” 농부는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는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기 돈으로 수술을 해 주고, 그나마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못하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다가 1995년 12월 추운 겨울날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내 마음이 그러하듯 창밖에는 겨울비가 밤새 주룩주룩 내린다. 오늘따라 ‘바보의사 성산 장기려 박사님’이 그저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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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다큐‘기적의 시작’ 관람 후기
    ‘은종’이라는 동료 시민의 ‘기적의 시작을 보고’라는 관람 후기를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또 다른 다큐극 영화 ‘기적의 시작’을 보고 왔습니다.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을 보신 분이라면 더더욱 꼭 보십시오. ‘건국전쟁’이 큰 그림을 그리는데 치중했다면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 대통령의 디테일한 부분을 세밀히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건국 전쟁은 역사를 잘 모르고 일방적으로 세뇌 당한 분들에게 유익한 영화입니다. 4.19는 이승만이 원인인가? 김구의 정체, 런 승만의 문제, 한강철교 폭파사건 등 이승만 대통령이 오해받고 있는 부분의 팩트를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에 대한 역사를 잘 아는 분들이 보았을 때 거의 다 아는 내용이었고 소수의 부분은 새로운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의 시작은 자료를 수집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섬세합니다. 이승만에 대한 책 몇 권을 섭렵했던 분들도 새로운 내용을 보고 저런 자료를 어떻게 찾았을까 하고 그 수고에 감탄하게 됩니다. 어쩌면 흥행에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 이승만이 한성 감옥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과정이나 서거하기 전 기도한 장면 등을 삽입한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감명을 줍니다. 이승만의 삶은 기도에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기도로 시작한 나라이니 기도를 놓지 말아야 국가가 번영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만약 성도들이 단체관람한다면 ‘기적의 시작’이 더 감명을 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의 증언자들은 이승만과 직접 만난 분들을 등장시켜 훨씬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백선엽 장군,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 그리고 그 며느리의 증언은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사실적이고 감동적인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농지개혁, 6.25 전쟁에 대한 일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 경위 등은 훨씬 더 자세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역사의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깜짝 놀란 것은 이승만의 경제에 대한 관심입니다. 벌써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 앞으로 한국은 공업국이 되어야 한다고 예견한 것은 대단한 통찰력이었고, 실제로 6.25 이후에 공업국이 되기 위해 그가 이룬 업적을 세밀한 자료와 더불어 제시한 것은 그동안 몰랐던 내용이었습니다. 다큐 영화가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데, 텔렌트 임동진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이승만을 잘 살려내었습니다. 아마도 무료 출연이었을 것인데, 눈물과 마음으로 연기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정말 사랑하는 대배우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무명의 배우들이 적절하게 사건들을 잘 재현해내어 다큐에 몰입할 수 있도록 톡톡히 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동안 런 승만, 독재자, 친일파 등등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이제는 바로 잡을 때가 되었다. 위대한 거인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에게 이승만을 바로 알릴 때가 되었습니다. 두 영화를 꼭 보십시오. ‘건국 전쟁’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기적의 시작’은 섬세하게 그 안을 들여다 봅니다. 성경으로 비유하면 ‘건국 전쟁’은 마가복음에 비유한다면 ‘기적의 시작’은 요한복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둘 중에 한 영화만 선택하지 마십시오. 두 영화 모두 보시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요, 애국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건국 전쟁은 제법 관람객들이 있었는데, 기적의 시작은 관객면에서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점이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적의 시작’이 훨씬 더 애정이 갑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가슴에 더 와닿는다고 했습니다. 건국 전쟁을 보신 분들은 반드시 기적의 시작도 함께 보십시오. 다른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을 먼저 보셨습니까? ‘건국 전쟁’도 보세요. 두 영화가 결합할 때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총선 전에 두 영화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두 영화가 흥행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사인식이 바뀌도록 열심히 홍보하는 일입니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먼저 극장으로 가십시오. 교회 단체관람을 강력히 추천합니다.”라고 동료 시민 ‘은종’은 말했습니다. 김덕영 감독의 ‘건국 전쟁’이 개봉 27일만에 100만을 돌파하며, 다큐로는 드문 흥행 기록을 세우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그리고 ‘건국 대통령 이념 보급회’의 김효선 사무총장의 ‘이승만의 독립 외교 33년’ 등 다른 기록 영화들도 ‘건국 전쟁’과 거의 동시에 선을 보였습니다. 이장호 감독의 이승만 관련 영화 ‘하우보만의 약속’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상 매체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될 나라”라는 주장을 하며 반공 애국 진영, 특히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비방하고 폄훼하는 반역 세력의 전유물처럼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런 영상 매체가 이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밝히려는 일에 효율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승만이 ‘독재자’ 또는 ‘친일파’로 낙인 찍히며 국민의 뇌리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할 추악한 인물로 악마화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독립운동과 반공 투쟁에서 승리해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되었고, 공산군의 6.25 남침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고 부흥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만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쉽게 공산화되어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김일성의 지배를 받는 위성국가로 편입되었을 것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적인 위인이자 천재였습니다. 그는 이 나라의 국부였고, 애국자요, 선지자요, 예언자요, 세계가 공산당을 열광할 때 “공산당은 망한다”고 외쳤습니다. ‘전시 중립론’이라는 논문을 쓴 국제 정치가였고, 훌륭한 선교사였고, ‘재팬 인사이드 아웃’의 저자인 작가였고, 민족 복음화를 소망한 하나님의 종이었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며, 그는 하나님 중심의 철저한 자유 민주주의 투사였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학력 소유자였습니다. 죠지 워싱톤대 학사였던 클린턴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하바드대 석사였던 오바마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과 동문이었으며, 프린스턴대 박사였던 윌슨 대통령과 동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도 이만한 학력 소유자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자유의 등불을 달아준 불세출의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탁월한 외교가였으며, 토지개혁을 단행했고, 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는 ‘반상 철패’를 했으며, 의무 교육을 실시했고, 여성들을 투표에 참여케 했습니다. 의회 정치를 실시 했습니다. 그의 애국정신과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 시대의 등불이었습니다. 전교조에 의해 역사 왜곡이 극에 달한 이 나라는 이승만을 바로 알아야 대한민국이 사는 것입니다.
    • 오피니언
    • 강석종 칼럼
    2024-03-08
  • 이승만 영화 ‘기적의 시작’이 만들어진 배경 이야기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기적입니다.’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영화 '기적의 시작'을 만들고, 전국 개봉을 하기까지 모두 기적의 순간입니다. ■ 영화의 시작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저의 아버지께서 '이승만 대통령 영화를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하셨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하지 않은 제가 그 당시 더 기반이 없었던 시절, 그런 권유를 받으니 너무 막연하고 막막하게 다가 왔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에는 부모님 댁에서 같이 사는 것 외에는 따로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은 받지 말자'고 했고, 또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우리나라 영화계와 아무런 인맥도, 기반도, 심지어 카메라 한 대 조차 없던 아들이 이리저리 일감을 찾아다니는 모습에 안쓰러워 ‘카메라 한 대 얼마 하니? 카메라 한 대 사줄게. 그것 가지고 시작해 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것마저 거절했습니다. 많은 예술인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이 분야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돈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누가 밥값을 내야 하는지 신경이 곤두섰고,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 다섯 정거장 정도는 교통비를 안 쓰고 걸어 다녔습니다. 물론 저의 집안이 그 정도 돈 못 쓸 정도로 여유가 없지는 않았으나, 저는 속으로 '이 나이에 돈벌이도 못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는 것은 사치다'라고 생각하며 가급적 걸어 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 온 저의 영화 인생은 그렇게 밑바닥부터 시작되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비록 독립영화이지만 조금씩 규모를 키워가며 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순회 상영을 다니며, DVD를 찍어 판매하는 수준에서 점차 작품을 작은 영화관에서부터 상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이 하나 둘 씩 영화관에 걸려 작품을 찾는 관객들이 늘었고, 이번엔 멀티플렉스 상영관 전국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을 지내면서 아버지의 권유를 당장 실행해 옮겨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었으나, 덕분에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일하거나 생활했던 분들을 만나 뵈면 꼭 이 대통령에 대해 질문하고 이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백선엽 장군님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뵌 분들은 그 당시에도 꽤 계셨으나, 백 장군님처럼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큰일을 하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던 분은 없었습니다. 백 장군님은 이승만 대통령과의 일화와 본인이 참여했던 전투에 대해 매우 실감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후방 전투 현장을 직접 보여주시며 설명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귀한 증언들은 매번 카메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기록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아 저는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습니다. 요즘과 달리 20년 전에는 6mm 테잎을 썼는데, 당시의 기록이 멀쩡하게 보존된 것도 작은 기적입니다. 한편 해를 거듭하며 시간이 지나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왜곡과 비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니, 멈추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국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어 '22년 12월부터는 아예 작정하고, 그동안 모았던 자료들과 추가 인터뷰를 통해 '기적의 시작'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 국민 대배우의 합류 ■ 제작 과정에서 국민배우 임동진 님도 합류하시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런 대배우분께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에 넣을 재연장면에 출연해 주시라고 요청하는 것은 큰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 배우님께서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셔서, 속으로 많이 놀랐고, 겸손한 모습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임동진 배우님과 같은 영화계 거물이 합류하셨음에도 제작환경은 딱히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제작진은 그 분 이름을 내세워 따로 모금하지 않았고, 제 성격상 여기저기 제작비 모금하러 다니기도 쑥스러워 그러지 못해서 프로듀서 김재동 목사님이 모금해 오신 제작비 내에서 해결했습니다. 그런 형편 속에 많은 분들의 우려와 달리 제작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 아들 이인수 박사의 생전 마지막 고백 기록 ■ 이번 작업에서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로 이 대통령의 쓸쓸한 말년을 제일 가까이 곁에서 지켜보셨던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입니다. '23년 11월 별세하신 이인수 박사님의 인터뷰는 결코 쉽게 성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품을 위해 그분의 증언을 꼭 담고 싶었으나, 그분의 체력에 한계가 많으셨던 때라 인터뷰 약속을 잡고 갔다가도 두 세 번 실패하여 헛걸음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인터뷰가 어렵게 되자 이인수 박사님과의 인터뷰는 포기했습니다. 사모님이신 조혜자 여사께서 마치 곁에서 대신 말씀을 전하시듯 하고, 이인수 박사님은 옆에만 앉아 계십사 하는 게 저의 새로운 바람이자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약속도 없이 임동진 배우님과 이화장을 둘러 보러 갔다가 이인수 박사님 컨디션이 최상인 것을 발견! 당장 카메라를 켜고 마이크를 연결해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장비를 가져간 것도 다행이었고, 그게 이인수 박사님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습니다. 다시 봐도 당시 이 박사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모습이 역력합니다. 이 모든 것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 신앙인 이승만 재조명 ■ 이승만 대통령이 젊은 시절 선교사들이 전해 준 예수님을 한성 감옥에서 복역 하며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영접한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난제 앞에서 하나님께 매달렸고, 우리나라 첫 국회를 기도로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작품에서 비기독교인들을 의식해서인지, 기독교 색채를 빼고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 그런 이승만의 모습은 인간 이승만을 이끄는 원천적인 힘이었기 때문에 저는 제 작품에서 그런 부분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마지막 기도는 임동진 배우님의 뛰어난 연기력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해 줍니다. ■ 전국 극장 개봉 ■ 드디어 ‘24년 2월 22일! 기적의 시작은 전국 개봉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어렵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영화를 한 개 극장에라도 걸기도 어렵고, 극장에 걸었다 해도 관객들을 사로잡기에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 전문 인력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한 두 사람의 몫입니다.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전국 극장 개봉을 위해서 제작사들은 적게는 수 천 만 원, 많게는 수 억 원의 홍보비를 씁니다. 저희는 '기적의 시작' 홍보를 위해 쓸 수 있는 금액이 거의 없었습니다. 금액을 밝히기에 민망해 그럴 수는 없지만, 그 금액조차 제작 과정에서 다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홍보를 위해 쓴 금액은 전단지 인쇄에 30만원 가량, 작품을 소개해 주시는 유튜브 분들께 음료수를 사 드리거나 식사 대접을 한 게 전부입니다. 주말에는 감독인 제가 손수 전단지를 챙겨 광화문이나 시청 같은 곳에 가서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젊은이들 중에는 전단지에 이승만 대통령 얼굴이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접어버리며 불쾌감을 표현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전단지를 나눠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많은 홍보비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원초적인 홍보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SNS 홍보도 했으나 제가 인플루언서가 아니다 보니 효과는 미미했던 것 같습니다. 넉넉잡고 홍보비로 100만 원 정도 썼던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전국 개봉까지 이어진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렵게 잡은 서울 두 개의 극장(필름포럼과 허리우드). 시사회 이후 5개월간 상영을 통해 관객 수 천명이 관람하고, 입소문을 듣고 오는 관객 수가 줄지 않자 멀티플렉스에서 이를 눈여겨보고, 일단 전국 10개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을 준 것 같습니다. 수 많은 난관을 뚫고 드디어 전국에 소개되는 ‘기적의 시작’. 여태까지는 저와 조력자 분들의 힘으로 끌고 왔으나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렇게 극장에 걸게 되었는데 보러 와 주시지 않으면 허무하게 극장에서 내려지게 됩니다. 극장에 와서 봐 주시는 것은 작은 애국입니다. 교회에서 단체관람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CGV에 예매가 열립니다. 예매를 많이 해 주시면 더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여 더 많은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 권순도 올림
    • 주요뉴스
    2024-03-07
  • 이제는 ‘기적의 시작’이다!
    스카이데일리 임명신 기자의 “[기획] 이승만 다큐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길 위에 김대중’ 압도”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권순도 감독이 20년 구상 끝에 작년 10월 내놓은 ‘기적의 시작’은 독립영화 특유의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건국 전쟁’ 흥행 속에 역주행 중입니다. 같은 주제의 두 다큐는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필히 두 편 모두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같은 목표, 다른 매력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1875~1965)을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조용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월 1일 개봉한 김덕영 감독의 작품 ‘건국 전쟁’이 주목받으며 4개월 전 나온 권순도 감독의 작품 ‘기적의 시작’도 역주행에 가속도가 붙었다. 두 작품 다 철저히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된 다큐지만 흐느끼는 관객이 속출할 만큼 뜨거운 반응이다. 두 편의 이승만 다큐가 또 다른 역사 인물 다큐를 압도한 것도 눈길을 끈다. 훨씬 유리한 여건 속에 제작된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작 ‘길 위에 김대중’이 개봉 4주 후 12만 관객을 동원한 반면 ‘건국 전쟁’은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 수 18만 명을 돌파했다. 누적 관객 수 3위, 개봉관 수도 개봉 당초보다 3.3배 늘어난 상태에서 11일 누적 관객 수 24만 명을 넘어섰다. 다큐로선 이례적인 성적이 어디까지 갈지 관심을 모은다. ‘기념관 하나 없는 이승만’이 ‘기념시설 최다의 김대중’을 이겼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편 ‘기적의 시작’은 작년 10월 하순 서울 시내 단 두 곳(종로3가 낙원상가 헐리우드 극장·신촌 필름포럼)에서 개봉된 가운데 주로 각종 애국단체∙교회 등의 상영회를 통해 관람객을 늘려 갔다(현재까지 5000명 정도). ‘건국 전쟁’이 2월 1일 전국 CGV에 걸리고 화제를 부르자‘기적의 시작’ 역시 개봉 약 4개월 만인 22일 CGV 재개봉이 결정됐다. ‘기적의 시작’ ‘건국 전쟁’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졌고, 멸망의 위기를 넘어 훗날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틀을 구축했는지 조목조목 짚는다. 농지개혁, 문맹퇴치(교육개혁), 안보·경제발전을 담보한 한미 동맹, 자원 빈국의 산업화에 절실한 원자력발전의 토대 마련 등 다가올 산업화가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어떻게 준비됐는지를 두 편의 다큐 영화 는서로 다른 톤으로 설명해 준다. 각각의 장점이 있으며 지루하지 않을 반복 학습 효과가 기대된다. ‘기적의 시작’은 이승만을 다룬 최초의 본격 다큐 영화라는 의미 외에 애국지사로서의 역정과 기독교 신앙의 상관성을 조명한 점도 돋보인다. 창군 및 구국의 영웅 백선엽 장군(1920~2020)과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1931~2023) 박사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원로배우 임동진 목사의 이승만 연기 역시 독보적인 부분이다. 두 다큐는 1천 수백 년에 걸친 왕조 시대와 근대 식민지 시대를 겪은 중세적 공동체에서 자유 민주공화국 헌정 질서 마련이 얼마나 천지개벽할 일이었는지를 묵직하게 일깨운다. 공통된 주제지만 두 감독이 친분이 있거나 사전 협의한 것도 아닌데 내용상 겹치지 않는다. 상보적이며 상호 심화 학습판이므로 둘 다 관람할 가치가 충분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공산화가 신생국들의 대세였던 시절, 이승만은 현대 국가(자유민주공화국)의 본질과 시스템을 이해한 유일한 한반도인으로 볼 만하다. 두 다큐의 시의성도 각별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오늘날, 정통성 논란은 결국 ‘이승만의 나라’ ‘김일성의 나라’ 양자택일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 세계사적 인물 이승만… 우선 다큐부터 ‘건국 전쟁’ 출연자의 한 사람인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전 이승만연구원장)는 연구원이 보관 중인 이승만 1차 자료 100박스에 대해 예산 부족으로 손을 못 대고 있다며 아쉬움을 수차례 토로한 바 있다. 그 자료들은 대부분 40년 망명 생활 중 세계정세를 전하거나 논한 신문·잡지 스크랩과 친필 메모들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를 넘어‘세계사적 차원에서 연구돼야 할 인물 이승만’이라는 시각에 힘이 실린다. 이승만의 생애는 드라마틱하고 불가사의한 요소로 충만하다. 영화∙드라마 등 대중 서사 장르를 통해 그려질 날이 와야겠지만 일단 다큐가 절실했다. 관련 사실들이 극단적으로 왜곡되거나 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교과서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교과서 밖에선 악마화∙희화화됐을 뿐이다. 해석의 문제 이전에 팩트 자체가 엉터리인 경우도 많다.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가짜 뉴스·역사∙왜곡의 결정판 명저 ‘슬픈 중국’의 저자이자 ‘건국 전쟁’ 첫머리에 등장한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는 조선일보 칼럼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팩트를 지어 내는 역사가들’에서 “김덕영 감독의 작가 정신과 예술혼이 거짓 뉴스와 허위 정보를 마구 엮어 일방적으로 이승만 악인전(惡人傳)을 집필해 온 역사학계의 고루한 시대착오와 부족 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죽이기’ 최근 사례로 송 교수는 “(역사학자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박태균)”가 TV 교양 프로에서 이승만의 1952년 대선 승리에 대해 기호 1번을 독점해 대다수 문맹 유권자 몰표를 유도한 결과라는 취지로 설명한 점을 들었다. 이어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것과 김 감독이 당시의 선거 포스터를 꼼꼼히 뒤져 이를 입증해 냈음을 짚었다. 이승만은 기호 1번이었던 적이 없다. 이승만에 얽힌 대표적 오해인 6·25전쟁 발발 직후 라디오방송 틀어 놓고 도망갔다는 미확인 소문이 오늘날까지 조롱과 저주 담긴 별명 ‘런Run승만’으로 살아 있다. 김 감독의 ‘건국 전쟁’에서 ‘한강 다리 폭파’ ‘3.15 부정선거’ ‘하와이 도피설’ 등을 바로 잡을 증거들이 제시됐다. 또 한4·19 이후 이승만의 행보야말로 ‘독재자’ 낙인이 왜 부당한지에 대한 결정적 증거다. 자신과 무관한 부통령 선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무일푼의 독재자? 그런 인물이 과연 독재자일 수 있는지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묻고 있다. 한국인이 처음 만난 이승만… ‘건국 전쟁’ 감동 후기 이어져 조지워싱턴대(학사)∙하버드대(석사)∙프린스턴대(박사) 출신의 이승만이 얼마든 취득 가능했을 미국 시민권을 마다한 채 40년간 무국적자의 불편함을 견딘 사실에 김 감독은 주목했다. 아울러 미국 내 이승만의 족적이 그간 어떻게 왜 지워졌는지 현지 교민들 증언으로 전해진다. 1953년 정전협정 1년 후 미국 방문 당시 자유의 투사로 칭송받으며 뉴욕 시가를 대대적으로 퍼레이드한 영상은 ‘건국전쟁’을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이승만이 공산주의에 맞설 냉전 구도의 불가피성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미국 등 서방세계 조야에 열렬히 설명∙설득한 점도 부각된다. 그것이 대한민국 탄생 비밀의 한 측면이다. 공산주의의 본질·실상에 대부분 무지하던 시절이었다. 개봉 초기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만 네이버 영화면에 누락돼 있어 “좌편향 문화계의 이승만 지우기”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관람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육박했다. “덕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어 감사하다” “공산화 저지의 공로만큼은 이승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감상 후기가 가장 많다. 조선일보가 김 감독을 자세히 인터뷰한 것 또한 눈길을 끈다. 여기서 김 감독은“(이승만) 공부를 시작한 뒤 큰 반성을 하게 됐고 그를 비롯한 건국 세대에 대한 죄송함을 영화에 담았다”고 밝혔다. 2012년 유튜브에 유포된 악의적 이승만론(論) ‘백년 전쟁’이 오히려 일부 네티즌이 진실 찾기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것과 흡사한 경우라 할 것이다. 북한은 왜 그렇게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을까… 586세대 김 감독의 각성 김 감독은 1950년대 동유럽 국가들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들을 조명한 다큐‘김일성의 아이들’(2020)로 유명하다. 1만명 가량 동유럽에 분산 위탁돼 자라다 스탈린 사후 격변 속에 집단귀국 당한 후 김일성 유일 체제를 위해 잊혀진 존재들이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북한에 관심을 가지다가 1990년대 중반까지 평양에 ‘이승만 괴뢰도당 타도’구호가 있었음을 알게 됐으며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이승만 타도에 집착했는지 궁금해졌다. 김 감독이 작품 구상 및 제작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은 이승만을 향한 집요한 폄훼가 “오랜 세월 좌파들의 선동에 의한 부당한 평가”와 “북한의 공작” 탓이 컸다는 사실이다. 김 감독 자신이 북한에 호감 내지 환상을 가진 586세대 일반의 감성과 역사관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그 폐해 또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거짓의 선글라스를 벗으면 평생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았고 애국애족의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했던 한 노인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며 울먹였다. 한 네티즌의 댓글 “대한민국이 버린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위대함은 대한민국 국민만 모른다. 참담한 현실에 부끄럽고 한없이 죄송하다”는 심정과 고스란히 겹친다. ‘건국’ ‘산업화’ 없이 ‘민주화’는 불가능… 그러나 뒤틀린 역사교육 김 감독의 말대로 이승만은 “(파고들수록)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한 한국사의 유일한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 그렉 브레진스키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미래 비전과 안정된 보장 시스템이 존재해야 건국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듯이 “바로 그걸 이승만이 해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결코 일본의 패망으로 당연히 얻어진 게 아니었다. 김 감독은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경제 개발이란 기관차가 달린 것”으로 두 지도자의 시대를 요약한다. 핵심적인 통찰이다. 산업화를 통한 중산층의 성장 없이 이뤄지는 ‘민주’란 ‘인민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중국(중화인민공화국)도 모두‘민주’를 전면에 내세운다.문재인 정부 시절 현행 헌법에서‘자유’를 삭제하고자 시도한 행위의 의미와 그 궁극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알아차리게 됐다. ‘독재자’라는 꼬리표가 3대 세습체제 속에 신격화된 북한 권력자들에게 붙는 대신 변명없이 자진 하야한 이승만에게 당연한 듯 붙는 게 온당한지 이제라도 저마다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이승만=살인마’의 관점을 일반화시키면서 제주 4.3의 비극이 대한민국 수립 및 그것을 위한 한반도 유사 이래 최초의 보통 선거(5.10총선) 저지를 위한 남로당의 무장 폭거에서 출발한 것임은 도외시한다. 이것이 지난 30년 우리나라 제도권 안팎의 역사교육 현실이다. 놓칠 수 없는 ‘기적의 시작’ 권 감독의 20년 구상 끝에 태어난 ‘기적의 시작’은 공산주의가 유라시아 대륙을 뒤덮었던 시절 그 끝자락 한반도에서 어떻게 자유 민주공화국이 수립·유지될 수 있었는지, 이승만 덕분에 가능했던 대한민국탄생의 기적과 그것이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토대가 됐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독실한 크리스천의 면모도 조명했으며 원로배우 임동진의 이승만 재연으로 다큐 이상의 감동을 더했다. 백선엽 장군 인터뷰와 ‘기적의 시작’ 개봉 며칠 후 별세한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전 명지대 법정대 학장) 박사의 영상은 진귀한 역사적 자료가 됐다. 본인들의 생전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대통령 하야 후 전주 이씨 문중의 주선으로 이승만 슬하에 30세때 입적한 이 박사와 그 가족은 지난 60여 년간 이승만 죽이기의 실질적 희생자였다. 권 감독에 따르면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 박사가 기적처럼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한 마디 한 마디 온 힘을 다하듯 간신히 해독 가능한 발음으로 건국 대통령의 애국 열정과 말년의 부자(父子)인연을 증언한 모습이‘기적의 시작’에 실려 있다. 특히 망명 생활의 근거지였던 하와이에서 몇 개월 휴식한 이승만 내외가 귀국하려던 당일 한국 정부로부터 하와이 잔류를 종용당한 장면, 이후 우울 속 건강 악화로 현지에서 임종을 맞게 된 과정이 생생하게 회고됐다. ‘건국전쟁’에서 하와이 망명설이라는 거짓 뉴스 유포의 전후 맥락을 짚었다면 ‘기적의 시작’은 당사자들의 내면을 전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현대사 공부? 화제의 이승만 다큐 두 편은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에 맞선 체제 정당성 대결의 최전선에 있다. 총선을 약 2개월 앞둔 시점에서 또 하나의 선거전이 될 수 있다. ‘서울의 봄’은 대다수 관객에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허구의 틀을 빌어 사실상 실존 인물과 역사를 거꾸로 해석한 상업영화다. ‘서울의 봄’이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적폐의 나라’라는 인식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반면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절체절명 위기와 우여곡절 속에서 이승만이라는 한 애국자가 지향한 가치를 되새긴다. 이승만이 깔아 놓은 레일(자유민주 헌법) 위에 박정희의 산업화(근대화)가 가능했다는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1979년 10.26으로 중단될 뻔한 산업화를 완결짓고 민주화 시대를 예비한 게 전두환의 신군부, 즉 제5공화국이다. 그렇다면 영화 ‘서울의 봄’이 기도한 신군부 악마화는 대한민국 헌정사의 부정 아닌가. 이원석 검찰총장이 몇몇 동료들과 ‘서울의 봄’을 관람한 인증 샷과 소감을 남겼다. 기존 민주화운동 세력의 신군부 서사에 충실한 발언이었다. 건국의 역사를 제쳐둔 채 민주화를 말할 수 있을까. ‘건국 전쟁’ ‘기적의 시작’ 관람 권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 요인과 ‘73년생 한동훈’ 등 여당 인사들의 관람 필요성이 역설되기도 한다.
    • 주요뉴스
    2024-03-06
  • 3.1 독립운동 정신으로 4.10 총선 승리하자!
    ‘한국 NGO연합’ 및 ‘자유정의시민연합’의 글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3.1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이번 4.10 총선에서 3.1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좌파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자. 4.10 총선은 대한민국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차대한 선거다. 선거라기보다 제2의 6.25와 같은 선거전쟁이다. 4.10 전쟁에 나서는 국민들은 죽을 각오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 나 하나쯤의 자만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경각에 달린 나라를 구해야 한다. 자유대한민국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4.10 총선에서 반드시 자유 우파세력이 국회 다수석이 되어야 하는 것은 진정 역사적 대업이고 사명이다. 문재인의 5년과 더불당이 다수당으로 국회를 농단한 8년 동안 우파들은 충분히 경험했다. 다시는 무도한 반 대한민국 세력이 정부와 국회를 장악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적 합의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만에 하나 아직도 안일하고, 나약한 국가 정체성으로 대한민국 이념과 사상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차제에 분명하고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갖도록 분발해야 할 것이다. 영화 ‘건국전쟁’을 봤다면 자유의 가치를 정말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은 좌파시만단체와 협약을 맺어 그들에게 최소 10석의 비례대표 자리를 주기로 합의한 모양이다. 그들 대부분은 친북, 종북단체 출신들이며, 이념 측면에서 북한과 궤를 같이 하는 세력들이다. 따라서 이번 4.10 총선에서 야당을 많이 지지하게 되면, 극단적으로 친북, 간첩세력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 대한민국 최악의 시나리오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은 공산화되었다. 당시 미군 철수 후 미군이 남기고 간 많은 최신 무기와 보급품, 병력에서도 월맹군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던 월남이 왜 공산화 되었을까? 당시 월남은 월맹에 비해 정신력에서 이미 패했다. 그리고 정부, 군, 정치판에 월맹의 간첩들이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었다. 그것도 고위직에 자리했다고 하니 월남은 월맹의 손바닥 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떨까? 아마 지금의 대한민국도 그 당시의 월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에도 북한 간첩이 35만이 침투해 있다는 소리가 탈북한 북한 고위인사들을 통해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침묵은 동조와 마찬가지다. 간첩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떠할까? 오늘은 3.1 독립운동 105주년 기념일이다. 그러나 독립운동 기념일행사를 할 정도로 나라의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해서 오늘 우리는 주사파와 친북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한 제2의 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여 4.10 총선에서 좌파세력들을 패퇴시킬 것을 천명한다. 여기에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 등 위대한 선배들의 뒤를 이어 좌파세력을 척결하고, 자유우파세력 모두가 한 마음으로 4.10 총선 승리를 위해 진군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2024년 3월 1일 한국NGO연합/자유정의시민연합
    • 주요뉴스
    20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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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관계 정상화에 대해서 윤석열 대통령은 “언젠가 해야 하고 누군가 해야 한다면 지금 내가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제3자 변제 방식의 배상 해법은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밝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외교정상회담 발표 이후 더불당에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윤석열 정부를 공격하고 주말이면 거리에 나섭니다. 더불당에서는 대안도 없이 ‘조공 외교’, ‘내선일체’, ‘친일 본색’. ‘굴욕 외교’라고 맹비난을 합니다. 이재명은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치욕”이라고 말하며,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일본 하수인’, ‘용산 총독’이라는 막말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재명은 ‘조폭 하수인’, ‘범죄 하수인’이 아닙니까? 이재명은 북조선의 행동대원이요, 대변인이 아닙니까? 그리고 중공의 조선 총독이 아닙니까? 국민의힘은 “미래와 국익을 위한 대승적 결단”으로 환영했으며,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 관계에 획기적인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즉각 환영했으며, 유엔 사무총장과 유럽연합(EU)도 적극 환영했습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으나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과거에 얽매인 나라는 퇴보했으나, 과거의 응어리를 풀고 미래로 나가는 나라는 성공했습니다. 결국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 미래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바보 짓입니다. 북조선과 중공과 민주당은 한∙미∙일에 대해서는 똑같이 반대 입장입니다. 더불당은 문정권 5년동안 북조선의 핵과 미사일 고도화를 도운 친북 외교 말고 무엇을 했습니까? 반일팔이나 하는 자들 목적이 무엇일까요? 외교의 ‘외’자나 아는 것일까요? 국익의 ‘ㄱ’자나 아는 것일까요? 양심 팔아 먹은 거짓과 조작과 선동의 달인 좌파들 아닙니까? 노무현이 하면 애국이고, 윤통이 하면 ‘굴욕’이란 해괴망측한 민주당의 주장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며, 무엇이 국민과 미래를 위한 올바른 방향인지 고민하지 않고 그저 한일관계 정상화를 정쟁으로 키워 국내 정치와 당내 정치 이용 의도가 가득한 것입니다. 북조선과 중공의 대한민국 침략 전락은 갓끈 전략입니다. 갓은 대한민국, 오른쪽 갓끈은 미국, 왼쪽 갓끈은 일본을 상징합니다. 바람이 불 때 양쪽 갓끈이 없으면 갓이 날아 갑니다. 그래서 빨갱이들이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하려는 윤석열 대통령을 열심히 공격하면서 반일을 선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결단은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세계적 주요 사례를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입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지리적으로 인접 국가며 기원전부터 앙숙 관계였습니다. 갈리아족 프랑스와 게르만족 독일은 중세 프랑크 왕국과 합스부르크 왕국간 충돌을 거처 19세기 나폴레옹 전쟁과 보불전쟁(1870~1871)에 이르러 양국의 적대감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20세기 들어 제1∙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양국은 단순한 앙금을 넘어 잠재적 적성국으로 과거사의 분노를 가라 앉히지 못했습니다. 그런 양국관계에 획기적 전환을 마련한 것은 1963년 독일 아데나워 수상과 프랑스 드골 대통령 간 체결한 프랑스∙독일 화해협력조약(일명 엘리제 조약)이었습니다. 프랑스∙독일은 엘리제 조약 체결 이후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으로 양국은 공동 역사 교과서를 활용하며,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와 EU(유럽연합)의 우산 아래 친밀한 이웃이 되었으며, 유럽의 쌍두마차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미국과 독일∙일본의 경우입니다. 미국과 독일∙일본은 제2차 대전 기간(1939~1945년) 중 불구대천 원수지간이었습니다. 미국은 나치 독일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구 소련에게 군수물자 127억톤, 전차 12,000여대, 공군 수송기 22,000여대, 차량 10만여대 등을 제공하였습니다.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폭을 가해 수십만 인명피해와 엄청난 재산피해를 발생시켰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2차 대전 후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 대한 대대적인 경제지원(마샬 플렌)과 일본의 전후복구를 제공하여 오늘날 일본과 독일은 세계 경제 대국 3∙4위를 이루었습니다. 심지어 미국은 독일과 NATO 안보 회원국이며, 일본과는 미∙일 안보조약(19 51년)에 이어 미∙일 신안보조약(1960년)을 체결하였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독일과 함께 NATO 회원국으로 러시아 위협에 대비하며, 일본과는 미일 동맹으로 북∙중∙러 삼각위협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예컨데 미국은 국익을 최우선한 나머지 과거 적국을 우방∙동맹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미국과 베트남의 경우입니다. 베트남은 1000년 이상 중국의 식민통치를 받았으며, 그 이후 원나라∙명나라∙청나라의 끊임없는 침략 그리고 프랑스 및 일본 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베트남은 1955년부터 1964년까지는 내전 양상을 보이다가 1965년부터 1973년까지는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 싸웠습니다.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미국은 무려 630만여톤(2차 대전시 300만여톤) 포탄을 쏟아 부어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베트남은 과거 미국과 전쟁시 군사 지원한 중국을 멀리하고 친미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공산 독재국가인 베트남도 국익을 최우선하여 과거보다는 미래를 택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경우를 살펴 보십시다. 어느 나라든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한 아픈 과거사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릅니다. 비극적 과거사의 강도로 따져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가 베트남입니다. 그 베트남과 한국 사이에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학살 의혹’이라는 과거사 문제가 20년 전 어느 국내 언론 매체에 의해 불거졌으며, 공교롭게도 6∙25전쟁 당시 발생한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 의혹이 국내적으로 떠들썩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문제의 조기 진화를 위해 ‘공동조사 후 사과와 보상을 할 용의가 있다’는 매우 전향적인 입장을 베트남에 전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베트남 정부는 “과거사에 대한 어떠한 논의에도 반대하며, 과거를 덮고 미래를 위해 협력하자”는 단호한 입장을 전해 왔습니다. 그 이듬해 한∙베트남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트남 정부는 회담에서 과거사 문제를 일절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은 정상회담 때 덕담 차원에서 베트남 전쟁 참전에 대한 사과의 뜻을 표명했습니다. 그러자 베트남 외교부는 강한 불쾌감을 전달해 왔습니다. 베트남은 한국과 친구가 되려고 하는데, 한국 정부는 왜 그리도 과거에 연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漢) 나라에 정복돼 1000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1945년 이후에만도 프랑스, 일본, 미국, 중국과의 전쟁으로 인구의 10%인 800만 국민을 잃은 베트남의 의연한 태도는 숙연하다 못해 두려움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국부 호찌민의 실용주의 정신을 계승한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들은 국익을 위해 과거 총부리를 겨눴던 미국과 한국에 대해 화해하고 협력해 왔습니다.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 발전을 추구한 베트남은 미국과 한국의 기업을 적극 유치하고 교역을 확대해 왔습니다.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외국인 투자 국가이고 3위 수출국입니다. 세상에는 역사적으로 앙숙인 나라가 많습니다. 왕정 시대부터 수많은 전쟁을 했던 수백년 숙적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가 대표적입니다. 지구상엔 식민통치를 받은 나라도 수없이 많습니다. 당시에는 국력을 길러 타국을 침략하고 영토를 빼앗거나 식민지화 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 당연한 권리로 간주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그 어느 국제법도 침략행위나 식민통치를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동원해 이웃 나라를 정복하는 것도 합법이었고, 총칼 들이대고 서명한 합병조약이나 영토 할양조약 등도 모두 합법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대다수의 나라가 유럽의 식민지였습니다. 아시아에서 완전한 독립국이라고는 일본과 태국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유럽과 미주대륙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대다수 국가는 2차대전 이후 비로소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민통치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고 이로 인해 현재와 미래를 위한 협력까지 포기하는 나라가 한국 외에 는 전혀 없습니다. 독일은 사과를 많이 했으나 일본은 사과에 인색하다는 말도 공허합니다. 독일의 사과는 전쟁 기간에 발생한 유대인과 외국인 대량학살에 대한 것이었고, 침략행위에 대한 사과에는 지극히 인색했습니다. 독일의 유럽 침공은 로마제국이나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과 마찬가지로 당시로써는 국가의 정당한 주권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를 정복하고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수천만명의 현지인이 희생됐으나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등 어느 나라도 사과하지 않았고, 피해국들도 대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은 국제협정과 정부 간 합의로 일단락된 사과와 배상에 더해 한국이 추가로 제기한 요구사항들을 둘러싸고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그에 따른 한국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폐기로 우리 국가 안보의 중추인 한∙미 동맹과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까지 심각한 위기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끝없는 사과와 배상 요구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정녕 우리 국가 안보나 현재와 미래의 경제적 번영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까? 이제 몇 개월 뒤 한일합병 110년, 해방 75년입니다. 비록 늦었지만 우리도 이젠 그만 과거사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윈스턴 처칠이 “역사를 잊은 국가에 미래는 없다”고 했을 때, 그것은 과거사의 ‘원한’에 매달리라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영광스러운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면서, 부끄러운 역사에서는 ‘교훈’을 얻어 다시는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을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를 설파한 것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은 나치주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과 싸웠습니다. 이처럼 과거에는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적이였으나, 지금은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독일과 일본은 나치도 아니고 군국도 아닌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논리로 과거에는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적이였으나, 현재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대한민국과 일본은 동맹국이 되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한국∙일본과 인접한 러시아∙중공∙북조선은 공산주의 독재자들이통치하는 전체주의 국가들로 핵무기를 보유하였으며, 우크라이나 침공, 대만 침공 위협, 제2의 6∙25남침 위협 같은 위험으로 한국과 일본은 제2의 우크라이나 가능성이 큽니다. 즉 러시아∙중공∙북조선 침공으로부터 한국과 일본은 위험한 안보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은 ‘한미일’ 3각 동맹을 정립해야만 러시아∙중공∙북조선 3국의 침략으로부터 한국과 일본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한일 관계 정상화는 생존의 문제이며, 중공과 미국의 패권 전쟁 때문에 더욱 어려워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한일 관계 정상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대일 외교가 굴욕적이라고 트집 잡으면서 한미일 공조 방해하는 민주당과 좌파 시민단체는 6∙25전쟁 일으킨 북조선에는 왜 배상 청구를 안 하는 겁니까? 6∙25남침으로 민간인 피해자 백만명(북한군에 의한 학살, 부상, 납치 등), 우리나라 군 전사자만 14만명입니다. 북조선과 손잡고 남침한 중공에는 왜 찍소리도 못하는 것입니까? 북조선에 함박도를 넘긴 문재인에 대해선 왜 아무런 비판도 없는 것입니까? 문재인을 비롯해 중공에 새해 인사 올린 좌파 인사들은 할 말 있습니까? 1964년 12월 서독의 수도 본, 에르하르트 총리와 박정희 대통령이 중요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역사적 순간입니다.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일으켜 세운 경제개발계획이 여기서 탄생합니다. 에르하르트 총리가 “한국을 가보니 산이 많던데 이런 지형에선 산업 발전이 힘들다. 그러니 고속도로를 놓아라. 나는 나치를 혐오한다. 하지만 히틀러가 놓은 아우토반(고속도로)에겐 달릴 때마다 마음속으로 경례를 한다. 고속도로에 자동차를 달리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제철소가 필요하다. 연료를 얻자면 정유화학공업을 육성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박 대통령 표정이 바뀌더니 “그럴 수는 없다!”는 말하자 에르하르트 총리는 “일본과 화해하라”고 다독이며 “우리가 프랑스와 몇 번 싸웠는지 아십니까? 열여섯 번입니다. 그래도 전후에 양국은 손을 잡았습니다. 각하, 지도자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가야 합니다.”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패전국 독일의 부활에 프랑스의 지원이 컸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그 반년 후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었는데, 그때 박정희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서는 원수와도 손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일각에서는 이 결단을 두고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파’라며 상식을 벗어난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청구권자금으로 1970년 포항종합제철소가 착공됐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으며, 포항제철이 생산한 ‘산업의 쌀’이라고 부르는 철강제품으로 5년 후엔 현대자동차의 포니가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합니다. 이런 것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부릅니다. 거기엔 늘 극렬한 반대가 있었고, 소신이 있고 확신에 찬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 힘은 우리 국민, 우리 문화의 저력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블랙핑크와 BTS,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같은 K-콘텐츠의 지구촌 정복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물론 동북아시아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 때 배를 띄워야 합니다. 구국의 결단으로 총대를 메고 앞장서는 윤 대통령은 밤잠을 설치며 엄청난 중압감을 극복하면서 현명한 국민들의 지지를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두 명 중 한 명만 지혜롭고 현명하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용기백배하여 무너진 대한민국의 국격을 가장 빨리,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원상복귀 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임기 내에 확실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보란듯이 성공한 대통령으로서 그 열매를 보여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하늘이 내려주신 총명함으로 이러한 내일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대로 실현될 것입니다.
    • 주요뉴스
    2023-03-21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합동 교단의 충격적인 "종전선언∙평화협정” 캠페인
    장로교의 충격적 “종전선언∙평화협정” 캠페인 최근 기독교계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이슈는 예장 통합과 합동 교단의 종전 협상 캠페인입니다. 예장 통합(총회장 이순창 목사)과 예장 합동(총회장 권순웅 목사)이 임원연석회의를 마치자마자 양 교단이 소용돌이에 빠졌습니다. 앞서 예장통합과 예장 합동은 16일 여수 애양원에서 임원연석회의를 열어 3개항을 발표했습니다. 이 중 3개항에서는 양 교단이 복음 위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만들어 가는 일에도 함께 힘써 나가기를 소망”하며, “휴전 70주년을 맞는 올해가 한반도의 완전 비핵화,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 아래서 복음적 평화통일의 원년이 될 수 있도록 성도들의 기도와 의지를 결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양 교단은 지난 해 1차 연석회의 때 결정한 공동선언문에 따라 6월 25일 남침 발발일부터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까지를 ‘샬롬-평화통일 특별기도주간’으로 준비해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위원장 이동아 목사)가 서명지를 첨부하여 3월 초에 각 노회에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각 노회는 교회별로 pck 한반도 종전캠페인 서명지에 서명를 받아 7월 27일까지 총회로 보내 달라고 했는데, 이 공문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동 위원회는 각 노회장에게 발송한 공문에서 “본 교단 총회는 지난해 11월 17일 정전협정 70주년을 준비하여 예장 통합∙합동 ‘남북 평화통일 비전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다”며 “이에 그 후속 작업으로 ‘한반도 정전평화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하고 전국 노회로 공문을 발송했다(3월 2일)”면서 예장 합동을 끌여 들였습니다. 이로인해 SNS상에서는 예장 합동이 통합이 전개하는 ‘한반도 정전평화 캠페인’에 동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소동이 일어 났습니다. 잘 알다시피 통일 운동에 있어 진보측은 정전협정-평화협정, 그리고 미군 철수라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고, 앞서 남북한 선교통일위원회가 보낸 내용에도 평화 협정 관련 부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양 총회의 ‘한반도 평화선언’은 “한국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합니다”라고 하는 문장은 삼척동자가 보아도 직전의 문재인 정부나 북조선처럼 종전 협상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북한의 로동신문 2015년 11월 26일 ‘평화협정체결은 조선 전쟁을 종식시키는 최선의 방도’라고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기 위하여서는 조선과 미국이 하루빨리 종전의 정전협정을 폐지하고 새로운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영구적인 평화를 마련하여야 한다.”고 하여 평화협정을 주장했습니다. 2018년 8월 3일 로동신문도 ‘남조선 단체들 종전선언 채택과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라는 제목으로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체결로 가는 첫 단계이지만 과거에 사로잡혀 아무런 진전도 이룩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주장했습니다. 문재인도 2021년 독일 베를린에서 “북핵 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체결을 추진하겠습니다”라고 하여 북한의 입장을 중시했습니다. 문재인은 202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에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종전 선언’을 거듭 제안했습니다. 문재인은 2021년 9월 22일(한국시각) 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며, “남북한과 주변국들이 함께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켜 동북아시아의 번영에 기여하는 ‘한반도 모델’을 만들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종전선언만 먼저 할 경우 정전관리 체계인 유엔사가 무력화되기 쉽고, 국내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나 병력감축 여론에 작용할 수 있다”고 하여 종전선언 채택과 평화협정 체계를 반대한 바 있습니다. 예장통합 이순창 총회장은 소동이 일어나자 발 빠르게 3월 17일자로 “이 캠페인이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노회와 교회에 혼란과 우려를 야기한 것에 대하여 총회장으로서 사과를 표명합니다. 이에 전국 노회로 발송한 공문을 철회하고 캠페인을 중단합니다”라고 했으며, 이와 관련해 예장 합동 총회와 권순웅 총회장에 미안해 하며 사과를 했습니다. 또한 예장 합동 권순웅 총회장도 예장 통합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의 ‘한반도 정전평화 캠페인 참여 요청’ 공문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고, 16일에 합동과 통합이 합의한 문서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며 선을 긋고 나섰습니다. 특히 권순웅 총회장은 “나는 통일 문제에 있어 철저히 보수”라면서 예장 합동과 통합 임원연석회의에서 ‘종전 협정’이라는 말은 나온 적도 없고, 합의 문서 내용에도 ‘6∙25 남침’이라는 문구가 정확히 들어 있으며, 이는 확실한 ‘보수의 용어’라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다르고, 비슷하게 보이지만 다른 것이 통합입니다. 양 교단이 ‘복음적 평화 통일’을 말하지만 신학만큼이나 그 해석이 다르다. 왜냐하면 예장 통합의 통일 논의가 기본적으로 WCC와의 논의와 협의 과정에서 진행되어져 왔기 때문이다. 또한 양 교단이 ‘샬롬-평화통일특별기도주간’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샬롬’에 대한 해석 또한 전혀 다릅니다. 분명 교단 교류와 연합 사업은 필요하겠지만 교단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지 말고 항상 다시 살펴 보고 주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한반도 종전협정은 북조선이 주장하는 것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그대로 받아 드려서 추진하려고 했습니다. 여기에 더불당과 정의당이 합세하여 찬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보수 정권에서 강력 반발하여 추진하지 못했습니다. 문재인이 유엔에 가서도 종전협정에 관한 내용으로 연설을 한 것으로 아는데, 이는 일방적으로 북조선 김정은의 대변인 역할을 한 것이라고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종전협정이 체결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합니다. 종전협정이 체결되면 그 다음 미군 철수를 주장할 것입니다. 북조선은 대량 살상무기인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아무런 대책없이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반도 종전협정은 먼저 북조선이 핵무장을 포기하고 이미 만들어 놓은 핵무기도 조속히 폐기해야 하며 한반도 비핵화에 나서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종전협정 운운해야 합니다. 이 시점에 누구 좋으라고 종전협정을 주장하는 것입니까? 총회(총회장 이순창 목사)는 이번 파동에 대해 잘 살피지 못한 책임으로 총회장은 사과를 표명하고, 북조선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는 남북한선교통일위원장과 관련자들을 문책하고 사임하게 시켜야 합니다. 북조선 김정은 세력과 대한민국의 종북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한반도에서 미군 철수를 주장하기 위한 작전입니다. 만약에 미군이 한반도에서 물러 가면 북조선은 핵무기와 대량 살상 무기를 통해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을 공산화 하려는 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가 북조선이 주장하는 한반도 종전평화선언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주장한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여 논란의 중심에 서 있을 뿐만아니라, 현 정부와도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성명서에는 “제재와 압박이 아닌 대화와 협력으로 갈등을 해결하자”고 제안하고 있는데, 북조선이 원하는 내용이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이 행사는 좌파 단체들 내지는 종북 단체들이 진행하는 캠페인의 연장선에 있는 것입니다. 참담한 일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합동)가 종전 선언∙평화 협정 결의에 나선 것은 문재인 정권의 압력에 밀려 나온 것도 아니요, 김정은이 달라져서 나온 호응도 아닙니다. 북조선과 대한민국 내 주사파는 종전 선언∙평화 협정을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 미군 철수와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폭정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데, 한국 교회는 이런 자발적 결의를 했습니다. 총회는(총회장 이순창 목사) 근간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에서 추진하는 ‘한반도종전협정 캠페인 추진 서명’에 대해 전면 취소한다는 공문을 2023년 3월 17일자로 각 노회에 하달했습니다. 그러나 총회장은 이번 문제에 대해 세밀하게 잘 살피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 표명했지만 이러한 혼란을 가져온 관련 책임자들을 문책해야 할 것입니다. 금번 예장통합과 합동은 종전평화∙평화협정의 내용이 담긴 담화문 발표로 ‘미군철수와 한미동맹 파괴’라는 오해를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종전을 정전으로 바꾸고, 남침과 복음통일이라는 단어를 추가함으로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향하는 합동측의 분명한 입장을 밝혀 줌으로써 결국에는 통합측이 모든 캠페인을 취소 통보를 하게 되었습니다. 통합∙합동∙대신 등 7개 언론단체로 구성된 기독언론협회는 예장통합 ‘한반도 종전협상’ 캠페인 철회에 대해서 “예장통합 이순창 총회장이 논란이 되자 바로 ‘한반도 종전평화 캠페인에 대한 사과표명 및 철회통지’에 대해 환영하며 통합 및 합동 교단 이외에 다른 교단들 역시 북한이 한쪽으로는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다른 면으로는 앵무새처럼 주장하는 평화협상∙종전협정∙주한미군 철수라는 주장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 장로교의 양대축인 통합과 합동이 정신줄을 놓은 모양입니다. 일찍부터 좌경 혼합주의인 WCC(세계교회협의회)와 NCC(한국교회협의회)에 가입하더니 급기야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며 결의하고 서명을 독려했습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말만 듣기 좋지 속은 북조선과 대한민국내 종북 주사파 빨갱이들이 오매불망 바라는 숙원사업입니다. 이것이 실현되면 유엔사가 해체되고, 주한미군이 나가게 되며, 국가보안법도 없어지고, 북조선을 적이라고도 못하고 그냥 북조선의 밥이 되는 기본코스입니다. 거짓 평화와 속임수로 대한민국을 무장 해제시켜 북조선에 갖다 바치는 직방 코스인 것입니다. 북조선의 잔인한 폭력성과 인민의 비참한 노예 생활 그리고 굶어 죽는 현실과,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는 끔찍한 현실을 외면한 채 이따위 짓을 하는 교단이야말로 심판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통합 측이 합동 측까지 끌어 드려 이 짓을 할려고 한 모양인데, 공산혁명의 최대 장애물인 기독교를 제거하고 무력화시키는 북조선의 적화전략에 그대로 먹혀 가는 꼴입니다. 이것들이 체결되면 그날로 대한민국은 이 지구상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북조선은 일찍부터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 한신대학) 교단 같은 데를 해방구로 만들려고 문익환∙한상렬 등을 불러들여 생쇼하게 만드는 등의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 교단은 <민중신학>이니 뭐니 하는 헛소리로 북조선의 하부구조 비슷한 처지가 되어 버렸고, 그 뒤를 따라 통합교단이 이 수순을 밟고 있는 셈입니다. 반공의 최후 보루인 기독교회가 오물 쓰레기에 불과한 마르크스 공산 주체교에 먹혀 가는 드라마입니다. 심지어 합동 교단 같은 곳에서 간첩 목사가 나오고 있는 판국이니, 기장을 비롯한 NCC 계통의 속을 파 보면 그야말로 가관일 것입니다. 이미 인터넷에는 괴담 수준의 스토리가 돌고 있습니다. 통합 측에는 아직도 우파 보수 목사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번 총회가 못된 짓 하는 것을 반드시 물리쳐야 하며, 침묵하고 방치할 경우 통합교단의 몰락은 기장의 전철을 밟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주체교 우상에 굴복한 죗값을 크게 치를 날이 분명히 올 것입니다. 특히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대북관계 모션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영훈∙소강석 목사의 대북 인식과 행보는 만인이 지켜보고 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것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붉은 물 안 든 통합측 목사님들께서는 총회 이름으로 벌이는 이 흉악한 행위 끊게 해야 합니다. 바알에게 굴복하지 않은 엘리야와 7천명의 투쟁 정신으로 싸워야 마땅합니다.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막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자유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진리 사수를 위해서는 기도와 아울러 현장의 목소리가 중요합니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해당 국가의 정치 체제와 법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사회 가치의 뿌리는 그 국가의 종교에 기인합니다. 성경에 뿌리를 둔 근면∙정직∙금욕과 절제의 문화가 활성화되는 국가와 사회는 회복되고 부흥∙발전하는 국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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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0
  • 4인 4색의 당 대표, 누가 가장 적임자일까?
    4인 4색의 당 대표, 누가 가장 적임자일까? 지금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국민의힘 당 대표를 뽑는 전당 대회가 코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차기 총선을 대비하여 절대로 분열하지 말고 더욱 뭉쳐야 하는데, 곧 다가올 국민의힘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거를 보면서 착잡함을 넘어 절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지도자의 언행 자체가 정치 행위이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합니다. 심지어 정치학에서 정치인의 특징이자 본질이 타인의 언행을 통제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되어야 하는지, 당 대표 후보 4인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김기현 후보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그는 “총선때 통합형 선대 위원장 세우겠다”고 말했습니다. “내년 총선에서 안철수 의원,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전 대표에게 역할을 줄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필요하면 선거대책위원장, 지역 선대위원장을 맡기고, 실질적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당이 가진 보수의 가치를 존중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야 한다”며, “민주당 인사 중에서도 필요한 사람을 영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유승민과 이준석을 선대위원장 역할을 맡긴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이 사람은 당 대표가 되면 안됩니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겠습니까? 할 말을 잃고 기가 찰 뿐입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파들이 다시 당을 점령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돈과 권력이 아무리 좋아도 아닌 건 아닙니다. 그 다음 안철수 후보입니다. 문재앙은 평창 동계올림픽 행사에서 수많은 외국 대표들 앞에서 간첩의 대부 신영복을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신영복은 한국의 안토니오 그람시로 부릅니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건한 인물로 오랜 옥중기간동안 사회주의 서적을 집필한 인물입니다. 신영복은 서울대와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있으면서 간첩활동을 하여 오랜기간동안 옥중생활을 하였고 ‘감옥에서의 사색’을 집필했습니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는 이런 신영복을 존경한다고 했으며, 시골 서당 샌님이 10년 넘게 정치판에서 남긴 족적이 무엇이었습니까? 또한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냐?”며 무개념의 청개구리 짓만 했으면서 보수 집권당의 당 대표가 되겠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세 번째, 천하람 후보에 대해 살펴 보십시다. 천하람 후보는 한 달전만 해도 이름조차 몰랐습니다. 그러나 최근 그의 언행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염려가 됩니다. 그는 “신영복을 존경하는 것이 종북주의자냐?”라고 반문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을 폄하하고, 김대중을 큰 정치인으로 본다고 했으며, 제주 4∙3사건에 대해 주사파들의 역사관을 앵무새처럼 지껄이면서 당 대표가 되겠다고 합니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지난 2월 13일 전당대회 첫 합동연설회에서 “제주 4∙3사건이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일어났다”라고 밝히자 천하람 대표는 “터무니없는 막말을 한다든가 세부적 사안 등 후속 조치 챙기기에서는 부족하다. 제가 당 대표가 되면 막말하는 문화와 진영 논리를 과감하게 떨치고, 더 나아가선 세부적 후속 조차를 챙기기에서는 부족하다. 제가 당 대표가 되면 막말하는 문화와 진영 논리를 과감하게 떨치고, 더 나아가서는 세부적 후속 조치를 챙기겠다”고 했습니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제주 4∙3 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말했는데, 천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도 막말이라고 생각하는가? 또한 천 후보는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 중에 누가 더 좋으냐?”라는 질문에 김 전 대통령을 선택하며, ‘큰 정치인’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천 후보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저희 당의 뿌리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독재 시대의 대통령은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제가 평가할 만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그런 면에서 저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물론 제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도 많이 있지만 큰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두 분 중에 고르라면 김대중 대통령께 한 표를 더 드리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죄없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장본인들은 야당이 아니라 당시의 같은 당인 새누리당의 반역 무리였습니다. 천하에 몹쓸 유승민이가 주역이었고, 그 후손들이 지금도 설칩니다. 이준석과 대표하겠다는 천하람입니다. 다 같은 족속들입니다. 나이가 어려서 참신한 줄 알았더니 이재명과 같은 부류입니다. 마지막으로 황교안 후보는 어떻습니까? 그는 4∙15총선 후와 3∙9대선 전후 붖정선거 방지를 위해 ‘부방대(부정선거 방지대)’를 결성하여 불철주야 헌신적인 노력으로 0.73%라는 박빙의 승리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고, 차고 넘치는 증인과 증거로써 재소했으나 문재앙의 사람 김명수에 의해 기각 처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런 활동의 영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2024년 총선에 대비하여 부정선거 방지를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국민의힘 당내의 어느 누구도 부정선거에 대한 대책은커녕 관심이나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으며 현재도 같은 상황입니다.) 또한 그는 28년간 공안 검사로서 간첩 잡는 일과 선거사범에 대한 전문가였으며,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당 대표 등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분야를 두루 거친 풍부한 경륜을 가졌습니다. 특히 법무부장관 재직시 주사파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것으로도 국가 정체성을 중시하는 인물로 증명될 뿐만 아니라 그는 ‘국가보안법’ 등 11권의 법서를 저술한 바 있어 ‘마스터 국보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현 시대가 필요로 하는 당 대표입니다. 단지 그는 당 대표 시절 공천건에 대해 당의 분위기에 미약했던 과오가 있으나 당시의 뼈아픈 경험을 전화위복으로 삼을 것으로 확신 할 수 있습니다. 간첩(주사파 포함) 소탕과 부정선거를 방지하는 일은 국가의 존립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여당 대표 자격의 첫째 조건은 경륜 뿐만 아니라 ‘국가 정체성’ 수호에 있으므로 황교안만이 여당의 대표로서 가장 합당한 후보요, 적임자로 확신합니다. 몇몇 후보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배신자 또는 김무성파로서 더불당과 야합 정치와 당을 분열시킬 수 있는 자들입니다. 안철수와 천하람은 처음부터 관심 밖 후보였으며, 김기현 후보와 황교안 후보 두 사람은 부족하지만, 어차피 정치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의 선택이므로 그나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기현 후보는 관리형 당 대표로서 윤석열 대통령을 도와 당 개혁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준석, 유승민에 대한 호의적인 발언과 내각제 선호 발언을 했다는 말에 마음이 멀어졌으며, 결정적인 판단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동조했다는 것과 5∙18 유공자를 인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황교안 후보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황교안 후보 역시 결점이 있지만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국민의힘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의 막을 내리고 새로운 대표를 선출하게 됩니다. 먼저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는 이번 선거가 왜 치루게 되었는지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살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준석 전 대표와 그 주변에 의한 파멸적 당내 분란 행위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제 막 집권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막말도 서슴치 않고 무차별적으로 쏟아냈습니다.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민주당들보다 더 악랄하고 집요했습니다. 국민의힘 책임당원들도 그러한 불상사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의힘 당 대표지지 후보를 아직도 망설이십니까? 긴 말이 필요합니까? 간단한 셈법을 모르시나요? 이번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서 누구를 지지하든 국민의힘 책임당원 여러분의 자유의사입니다. 국민의힘 당은 집권 여당 보수 우파 당인 것은 다 알고 계실테니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정체성이 확실한 자유 우파의 후보가 누구입니까? 오일팔 정신, 의원 내각제 개헌을 통해 헌법 전문에 넣어야 한다는 자는 누구였습니까?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으며, 투기현으로 불리우는 자가 누구입니까? “요즘 간첩이 어디 있나. 그런 것 없습니다”라고 말한,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불법 탄핵을 촉구하고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던 후보는 누구였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을 부정하고 김대중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요즘 말로 갑툭튀 듣보잡 후보는 누구입니까? 이런 자들을 지지하는 명분이 무엇인지, ‘부정선거’라는 민주주의 파괴, 국가 체제 부정과 같은 중대한 문제를 외면하는 자들을 지지하면 안될 것입니다. 내년 총선의 안정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황교안 체제가 가장 무난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후보들은 정체성 자체도 모호하고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특히 당내 반역세력 이준석 무리들을 대하는 태도는 한심할 정도입니다. 너무나 큰 대한민국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직시하고 신중하게 당 대표를 선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번의 보수 여당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한 책무가 있으므로 모든 유권자들은 당장의 인기나 여론에 대한 관심보다 심사숙고하여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정신 차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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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06
  • 수능 앞두고 일교차 극복을 위한, 면역력 증강엔 인삼차를....
    최만순의 약선요리 수능이 올해는 11월 17일에 있으니 얼마 남지 않았다. 24절기 중 한로(寒露)시절이다. 일교차가 큰 날씨로 인하여 면역력이 떨어지기 쉽다. 수험생들의 컨디션 조절이 중요한 시점이다. 한로는 태양 황경이 195도에 이르렀으며 외부의 기온은 더 낮아져서 이슬이 점점 늘어난다. 기후는 중추절. 가을의 두 번 째달 음력 9월이 지나며 시원한 날씨에서 점차 한랭한 날씨로 변한다. 특히 아침과 저녁에는 그 변화가 더 뚜렷해지며 쌀쌀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지금과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24절기 날은 휴일 이었다. 추분이후 날씨는 점점 서늘해 져서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 그러다 한로가 되면 이슬이 맺히는 양이 점점 많아지고 기온이 낮아져서 이슬이 응고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게 된다. 차가운 이슬, 한랭한 이슬 이라는 뜻으로 한로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됐다. 기온이 차가워지면서 단풍이 무르익기 시작한다. 북쪽부터 전국을 서서히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흐린 날은 적고 햇빛이 충족하다. 일 년 중 일조량이 가장 큰 절기다. 높고 청량한 가을 하늘은 바로 이때를 말한다. 이때가 집중력이 가장 흐트러지기 쉽다. 자연의 일상에서 천지가 변화하는 모습을 표현을 한 것이 24절기다. 이것을 5일씩 다시 세분화 한 것이 후(候)며 일 년은 72후(候)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국유황화(菊有黃華)시절이라 한다. 국유황화(菊有黃華)의 국은 국화꽃을 뜻한다. 이 시기에는 이미 국화가 활짝 피어서 만발했다는 말이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이 자연의 현상이다. 산만해지는 이유다. 꿈을 성취하는데 중요한 것이 집중력이다. 집중력은 정신(精神)이다. 정신은 인체의 정(精), 기(氣), 신(神)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육체와 마음과 정신의 생체에너지를 안정시켜야 한다.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탁기를 배출하는 것이다. 기력이 좋아지면 감정 조절이 용이해진다. 그렇다고 폭식하면 헛배만 부르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 좋은 것은 수시로 마실 수 있는 인삼차(人蔘茶)다. 인삼은 예부터 인체 에너지를 공급하는 최고의 재료다. 인삼은 인체의 원기를 보양하고 부족한 음의 진액을 만들어 정신과 마음을 안정시킨다. 사람의 몸은 약 60~70조의 세포로 되어있다고 한다. 세포가 모여 조직이 되고 조직이 모여 장기와 기관이 된다. 이것이 모여 인체를 형성한다. 매순간 병들고 노화한 세포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포가 태어난다. 사람이 변하는 원인이 된다. ■수험생을 위한 차(茶) ▲효능-치심기부족(治心氣不足)한다. 지나친 스트레스로 무기력해지고 가슴이 답답하며 갈증과 불면증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재료-말린 인삼3g, 산조인15g, 복령9g, 진피3g, 꿀 약간 ▲만드는 법 인삼을 약재와 함께 1시간 약한 불에 끓여서 수시로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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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07
  • 마음을 안정시키는 닭죽(鷄粥),가을철 한 낮더위에 좋아
    최만순의 약선요리 K-브랜드가 들썩인다. K팝, K드라마, K푸드 등 한류(韓流)가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현대의 음식문화 콘텐츠는 다양하다. 그렇지만 모두 과거에서 나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창조적이고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퓨전이라고 치자. 그러나 자세히 살펴본다면 과거의 음식을 되살려 재구성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5천년의 역사가 녹아있는 ′약선′이 있다. 모두가 건강한 K푸드의 새로운 음식문화의 콘텐츠로 되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약선은 우리가 새것만 찾고 가만히 옛것으로 두기에는 너무나 아깝다고 하겠다. 우리 것을 되살리는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구호처럼 말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 없다면 K푸드의 세계화는 한낮 공허한 구호에 머문다고 생각한다. 우리보다 역사가 훨씬 짧은 미국을 비교해보자. 햄버거를 세계음식문화의 하나로 만들었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무한한 자원이 있다고 하겠다. 땅에서 기르는 모든 가축들은 추분시절(秋分時節)을 전후하여 가장 맛있다. 그러므로 추석 명절에는 닭. 특히 황계(黃鷄)를 빼놓을 수 없었다. 봄에 깬 병아리가 이때가 되면 가장 맛있게 된다. 예전에는 명절에 존경하는 어른에게 ′선사(膳賜 음식선물)′하는데 닭을 많이 썼다. 그리고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손쉬운 닭을 잡아 대접을 하였다. 또 사위가 오면 장모가 씨암탉을 잡아 대접하는 것이 그 예이다. 추석에는 햅쌀로 만든 신도주와 황계는 좋은 술과 안주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닭고기는 단점도 있다. 열감기에 걸렸거나 담과 습기가 많거나 비만, 고혈압, 혈지방, 담석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잘 발효된 차와 같이 요리하면 좋은 점만 취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닭다리를 요리하여 먹을 때에는 함께 먹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자라, 겨자, 잉어나 붕어, 살구, 새우, 깨, 국화 등이다. 특히 닭다리는 깨나 국화와 같이 먹을 때에는 식중독을 일으킬 수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럼 ′약선′이란 무엇인가. 보통 약이 되는 음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약초 같은 생약을 사용하는 것이 꼭 약선은 아니다. 약선이란 주변에 있는 모든 식재를 활용한다. 계절과 절기에 맞추고 개인의 증상에 따라 알맞게 배합을 하여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닭죽(鷄粥) ▲효능-생진지갈(生津止渴)한다-가을철 한 낮의 더위에 쉬 허약해지는 소화기관과 폐의 좋은 진액을 만들어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고 갈증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재료-산양삼1개, 쌀100g, 닭다리1개, 90%발효된 오룡차3g, 소금, 후추 ▲만드는법 솥에 불린 쌀과 닭다리, 오룡차를 넣고 죽이 70%정도 익으면 산양삼을 넣어 끓여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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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02
  • "조선 왕실 여름철 보양식, 민어탕(民魚湯)".
    최만순의 약선요리 조선 왕실의 여름철 보양식 중에 으뜸으로 친 것은 민어탕이었다. 지금은 흔한 음식이지만 예전에는 귀했다. 임금이나 양반들만 맛 볼 수 있는 귀한 고기였다. 민어는 매년 6~8월이면 산란을 위해 서해로 올라온다. 이때가 살이 기름져 맛있고 영양가도 제일 높은 시기다. 그래서 민어가 잡히면 여름이 왔음을 안다. 민어는 추석 전까지 잡히지만 7~8월 것을 최고로 친다. 일제 강점기에 서해의 임자도는 매년 여름 민어 파시가 열렸다고 한다. 특히 민어의 부레는 최고급의 아교로 친다. 이런 민어는 성질은 평하고 맛은 달고 독이 없다. 신장을 보양을 하고 종기와 붓기를 없애며 인체의 수액의 흐름을 좋게 한다. 보통 탕, 찜, 어만두 등으로 많이 먹었다. 요즘 민어는 회가 대세다. * 우린 약과 질병을 어떻게 생각할까? * 양생에선 약도 ′독(毒)′이고 병도 ′독(毒)′이다. 한국인은 약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먹는다. 옛말에 독약으로 병을 공격한다고 했다. 질병이란 이렇다. 인체의 원기가 억눌려 막힌 것을 말한다. 이럴 때에만 의사의 처방을 받아 독약으로 병을 공격해야 한다. 그리고 병독이 70%정도 사라지면 바로 멈추어야 한다. 내 몸의 원기로 나머지는 자연치유를 해야 한다. 그래야 독이 사라지면서 원기가 왕성해진다. 이처럼 약은 고대부터 무섭다고 하였다. 오죽했으면 하늘과 땅 사이에 정상에서 벗어난 것은 모두 독이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체의 병독은 어떻게 발생을 할까? 예나 지금이나 밖에서 입으로 들어오는 것은 음식이 제일 많다. 잘못된 음식이 체내에 머물러 체하면 독이 된다. 여러 가지 질병의 증상은 모두 독 때문에 발생한다. 이 독이 어디에 있냐에 따라서 그 질병 이름이 정해진다. 예부터 선조들은 더위로 허약해진 기운을 극복하는 재료 중에 민어를 쳤다. 양생에는 민어나 오리고기에 동과를 넣어서 끓이는 탕이 있다. 여름시절 최고의 묘약이며 보약이라고 극찬을 하였다. 오리1마리나 민어1.5kg, 동과300g, 죽순100g을 솥에 넣고 푹 삶는다. 그리고 아침저녁 한 공기씩 5일 동안 먹는다. 이렇게 하면 더위를 극복하고 양기를 길러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하였다. ■스트레스를 예방하는 민어탕(民魚湯) ▲효능-안신진정(安神鎭定)한다-여름철 허약해진 신장의 양기를 북돋우고 보양하여 기억력을 증진시키고 스트레스를 예방하여 건강한 가을을 맞이하는데 도움이 된다. ▲재료-장뇌삼1개, 민어300g, 노루궁뎅이버섯50g, 청홍초 각1개, 마늘10g, 후추, 약선간장 ▲만드는법 1.삼은 뇌두를 제거하고 노루궁뎅이버섯은 흔들어 씻어서 준비한다. 2.민어는 비닐을 칼등으로 깨끗이 벗겨내고 잘라 준비한다. 3.솥에 민어와 버섯, 양념을 모두 넣고 끓여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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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7
  • 국민의 힘은 아수라장이다!
    국민의힘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나? 신개념 국가경영포럼 회장 황영석 이준석 하나를 원칙대로 처리하지 못해 쩔쩔매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70%물갈이 깜이다. 말하자면 국민의힘 뺏지들은 무능력한 국회의원, 문제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소신발언이 없는 국회의원, 대안없이 양비론으로 일관하는 국회의원 등으로 아직도 국민의힘은 아수라장이다. 먼저 이준석과 관련하여 사단체가 아닌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해결해야 할 방식은 당리당략이나 정치적 계파나 사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첫째 만약 당대표가 이준석이 아닌 그 누구도 당 대표와 관련된 성 관련 추문이나, 그와 관련된 사실적인 증거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둘째로 국민의힘이 추진하려는 방향과는 다른 법원의 가처분 등 판단이 나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시작은 당 대표로부터 시작했으나 계속하여 할 일 많은 집권여당을 어렵게 할 때는 어떻게 해냐 하나?라는 세 가지에 충실하면 해결된다. 또 한 가지는 이준석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고 일을 처리했으나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에 이준석의 가처분 인용 등으로 예견하지 못한 사태가 나타나면 어떻게 처리하나? 첫째에 해당하는 사람이 정당의 고위직일수록 스스로 사임하는 것이 당연하나 사임하지 않으면 무거운 징계로 마무리해야 한다. 둘째로 당의 집행부가 정당의 뜻을 합법적으로 모아 집행하였으나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면 지적된 부분을 보완하여 신속하게 집권여당이 갈 길을 가야한다. 정당은 당헌과 당규에 의거하여 각 직책의 당직자들이 위임받은 것을 성실히 수행하면 될 것이기에 법원의 판단을 수용하여 당헌과 당규를 수정, 보완 등 개정할 부분이 있으면 개정해서 전당대회 등의 날짜와 방법을 확정, 발표하여 하루빨리 당을 정상화해야 한다. 셋째 사건 자체가 당 대표 자신의 문제로 시작했으나,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는 이유나 기타의 이유로 정부를 뒷받침해야 할 여당의 대표가 자중하지 않고 오히려 옳든 그러든 계속하여 문제를 제기한다면 당연히 출당 등 강력히 징계해야 한다. 또 지금처럼 예민한 시국에 시행착오를 일으킨 권성동 원내대표도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체리따봉을 노출하여 윤석열 대통령까지 어렵게 만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에는 민생문제, 경제문제, 국방, 교육, 국제외교 등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도 당내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가장 우선적이나 문제해결의 핵심은 제기하지 않은체 “윤핵관”이나 이준석을 양비론으로 일관하는 이들을 보면 참 대책이 없어 보인다. 이와 같은 흐름은 큰 의미에서 국민의힘이 시스템이 부족하고 무사안일적인 국회의원 공천에 관한 당헌과 당규가 잘못되어 있기에 굳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힐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당내 정적을 의식해서 정확한 해법을 제시할 이유가 없고, 얼렁뚱당 하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이다. 만약 예를 들어 정당발전과 정치발전을 위해서 국민의힘의 경우 매 공천 때마다 30%물갈이는 기본으로 하고 제1야당인 더민주당에 비해 정당지지도가 떨어지면 50%의 물갈이를 원칙으로 하되, 여의도연구원의 기능을 강화하여 첫째 의정활동, 입법활동, 홍보활동, 지역구활동 등에 대해 불문의 외부전문가들이 이를 확인하여 평가하고, 둘째 전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로 평가하고, 셋째 지역구 주민들로부터 여론조사로 평가받는 공천시스템이라면 어영부영 소신이 없는 소극적인 국회의원,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무능력한 국회의원, 이준석 처리 등 의사결정에 올바른 발언하나 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탈락시킬 수 있었다면 벌써 해결됐을 일이다. 알고 보면 지금의 당내문제도 차기 뱄지 확보를 위해 공천권의 확보라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이해관계가 엄존하기에 정치발전을 저해하기에 당헌개정의 요건인 전당대회 재적 대의원 3분의 1이상의 요구는 복잡할 수 있으나 상임전국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개정발의를 해야 한다. 국민의힘 당헌개정은 전당대회 재적대의원 또는 전국위원회 재적대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며 만약 전국위원회가 당헌개정을 의결한 경우에는 다음 전당대회의 추인을 받아야 한다. 마치 한 마리 올챙이가 우물을 흐려도 정리하지 못하는 국민의힘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나? 국민의힘은 비록 법원의 판단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지라도 3권 분립의 의미를 되살려 판결을 수용해서 당헌당규의 개정을 통해 보완하고, 나이가 젊다고 용인될 수 없는 정치무대에서 일국의 당 대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과 분탕질에 대해서는 단호한 추가처벌로서 일벌백계해야 하며, 당내 분란은 물론이고 좌파들의 유튜브 등을 통한 조직적인 공격을 받은 권성동 원내대표도 아쉽기는 하더라도 집권여당의 도덕적 명분을 세우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국회의원·광역자치단체장 후보자 공천에 대해 5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준석 대표가 지난 지방선거에 도입했던 PPAT(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 적용 대상을 지방의회 의원 후보자 등에서 국회의원·광역자치단체장 후보자 등으로 넓히는 방안을 2호 혁신안으로 발표했는데, 그렇다면 현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더욱 피폐(疲弊)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천에 관한 원칙이 희미한 국민의힘 당헌당규를 개정해서 연기자형 국회의원들은 공천에서 탈락시키고 정치신인들을 수혈하고 평가하는 정상적인 정당으로 변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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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7
  • 장군의 마음 제5화 /‘다시 부르는 빛의 노래’
    장군의 마음 5화 /‘다시 부르는 빛의 노래’ 올해로 광복절(光復節)이 77주년이 되었다. 나라를 되찾은 것을 왜 빛을 회복했다고 할까? 나라를 잃으면 인간의 자유와 생명체로써의 존엄한 빛을 잃기 때문이다. 오직 나라를 되찾음으로써 생명의 빛을 회복할 수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와 땅을 가로채고, 일본은 아예 침략한 적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우리의 옛 역사가 너무 찬란하여 차마 똑바로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의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는 건 우리도 마찬 가지이다. 이스라엘교육에서 역사과목은 오전으로만 편성되는데 학생들의 정신이 더 또렷할 때를 택한 것이다. 이 시간에는 할아버지 같은 ‘랍비’가 학생들의 골수에 이스라엘의 혼을 각인하듯이 자신의 생명을 다 쏟아 부어 가르친다. 이 장면을 직접 본 어느 서울대학교 교수는 “나는 과연 저렇게 뜨겁게 제자들을 교육하고 있는가!”라는 자성의 글을 썼다. 만주에서 발흥한 청나라 12명의 황제의 성씨는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청의 개국시조도 ‘애신각라 누루하치’이고 마지막 황제 역시 ‘애신각라 부의’ 이다. ‘애신각라’란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말자.’ 는 청 황제들의 삶의 목표이자 통치 이념이었다. 고구려와 발해, 여진족의 청나라로 이어지는 만주 땅 일대가 우리 겨레의 옛 땅임을 증명한 사람과 자료는 수없이 많다. 안동 출신 ‘이원태’(◎坮)는 우리 민족의 이동에 따른 강역의 변천을 ‘동이구족(東夷九族)’의 역사로 삼아 학문적으로 정확하게 그렸다. 더불어 환국의 환인, 배달국의 환웅, 옛 조선의 단군 47대의 역사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이원태가 교관으로 재임하였던 ‘신흥무관학교’는 만주 서간도에 우뚝한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1910년, ‘우당 이회영’, ‘성제 이시영’의 여섯 형제들이 지금의 6백억 원에 추산되는 엄청난 가산을 정리하여 설립한다. 1932년 ‘우당 이회영’은 독립작전 수행 중 체포되어 ‘다이렌 수상경찰’에서 고문치사로 순국하시니 향년 65세였다. 형제들은 광복을 보지 못한 채 고문사, 병사, 객사, 아사한다. 다섯째인 ‘이시영’만이 살아남아 대한민국의 초대 부통령에 임명되지만 머지않아 사임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일부 재산의 환급을 제안하나 이시영은 재산을 찾겠다고 독립 운동한 게 아니라며 거절한다. ‘아흔 아홉 칸’으로 유명한 안동 ‘임청각’의 ‘석주 이상용’ 일가도 엄청난 가산을 한 톨 남김없이 정리하여 동참한다. 곧 태어날 손주가 이미 남의 땅이 된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인이 되게 할 수는 없다며 고향을 등지고 엄동설한에 기어이 만주로 향한다. ‘석주’는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대통령)에 선출되기도 하지만 74세로 결국 남의 땅에서 돌아가신다. 천신만고 끝에 독립을 이루고 자기의 땅에 대한민국이 건국하였음에도 석주의 후손들은 집 한 채 없이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들은 다만 3천5백 명의 독립군들 핏줄 속에 민족혼을 심기 위해 일심으로 모든 것을 바쳤다. 거룩한 빛을 광복하려는 그 정신이 ‘신흥무관학교 교가’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의 *영절에 여러 만만 *헌원 자손 업어 기르고/ *동해 섬 중 어린 것을 품에다 품어 젖 먹여준 이가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중략-/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 내어 새나라 세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청년들이라./두 팔 들고 고함쳐서 노래하여라./ 자유의 깃발이 떳다.” 이 가사는 중국대륙의 주요 거점과 서북, 서남 전체가 한민족의 고토이자 활동무대였음을 상기시킨다. 장차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독립군들이 웅장한 가슴을 북처럼 울리는 노래가 아닌가. 가사 중의 ‘중국을 업어 기르고 일본을 품어 길렀다.’는 대목은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도저히 근접할 수조차 없다. 그 교가를 지은이는 ‘석주 이상용’이다. 이 사실은 ‘석주’의 손자며느리인 ‘허 은’님의 회고록에서 밝혀진다. 1910년의 신흥무관학교 교가는 놀랍게도 고구려인들의 애창곡이었던 ‘고구려인의 노래’와 뜻과 기상이 그 맥을 같이 한다. ‘고구려인의 노래’ “오호 어리석은 한나라 어린 애들아 요동은 향하지 마라. 개죽음이 부른다./ 문무의 우리 선조 *한웅이라 불렀느니/ 자손들은 이어져서 영웅호걸 많단다./ 주몽태조 광개토님 위세는 세상에 울려 더할 나위 없었고/ *유유, *일인, 양만춘은 나라 위해 옷 바꿔 스스로 사라졌다./ 세상 문명은 우리가 가장 오래니 오랑캐, 왜구 다 물리치고 평화를 지켰다./ *유철, *양광, *이세민도 보기만 해도 무너져서 망아지처럼 도망갔다./ *영락기공비는 천 척 만 가지 기가 한 색으로 태백은 높단다.“ 같은 시대인 1400년 전, 중원대륙의 농민들도 “요동에 가서 억울하게 죽지말자.”는 노래를 불렀다하니 안팎이 꼭 들어맞는다. 우리의 정신과 강토의 회복을 목숨으로 구했던 선열들의 빛나는 마음이 각자의 가슴에 되살아나길 기원한다. 가족을 향한 ‘효심‘과 나라를 향한 ’충성‘, 나아가 지구사랑을 이루는 무수한 홍익독립군을 양성하자. 그때 한,중,일 삼국과 인류의 평화가 지구촌 위에 아름답게 펼쳐질 것이다. (끝)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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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4
  • 장군의 마음 4화 / "또 다른 의병 항왜 ‘사야가(沙也可)와 준사(俊沙)’ "
    장군의 마음 4화 제목 : "또 다른 의병 항왜 ‘사야가(沙也可)와 준사(俊沙)" 430년 전, 일본이 조선을 침공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잔인한 폭력에 노출 된 조선은 당시 국민의 반이 죽거나 다쳤다. 대대적인 그 후유증은 조선의 명줄을 끝끝내 쥐고 흔들었다. 어쩔 수없이 국가적 전쟁에 휘말린 각국의 장졸들 또한 생각이 없을 리 만무하다. 자신들이 전형적인 약탈전쟁의 비극에 강제로 동원된 존재임을 자각을 하는 무리도 있었다. 일본의 내전 중 ‘히데요시’에게 잔혹하게 정복되는 과정에서 가문전체가 몰살된 경우도 있었다. 꼭두각시 같은 처지에 빠진 용병 이란 지괴감에 빠진 왜군들도 있었다. 이처럼 왜군 중에 조선군에게 투항한 왜군을 ‘항왜’(降倭)라고 하였다. 반대로 조선에서 일본군으로 투항하여 앞잡이가 된 자들은 ‘순왜’(順倭)라고 하였다. ‘항왜’들은 ‘예의지국 조선’의 높은 문화를 존중하여 나름 잘못된 침략이라는 판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개인으로 또는 부대 전체가 투항하기도 하여 항왜의 수가 1만2천명에 이르렀다. 돌격장, 중간계급, 병사들도 있어 탁월한 능력과 충성심으로 많은 전공을 세운다. 병자호란까지 ‘나의 나라-조선’을 위해 출전도 하며 이 땅에 대를 이어 뿌리 내린다. 그중에 안골포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항복하고 귀순한 ‘항왜’로 준사(俊沙)가 있다. 영화 ‘한산’에서는 물론 감독의 설정에 따른 것이지만 ‘전체를 꿰뚫는 핵심’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키워드 있다. 그것은 바로 ‘의(義)의 가치’에 대한 ‘이순신 장군’과 포로가 된 ‘준사’의 문답이다. 준사가 이순신 장군과 독대하는 장면에서 준사는 “내가 사천에서 당신을 쏘았다.”고 고백한다. 준사는 죄고의 지휘관인 장수(이순신)가 위험을 무릅쓰고 최 일선에서 전투에 임하는 것을 적선인 맞은편의 왜선에서 선명하게 보고 있었다. 부하(나대용)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는 장군의 모습에서 ‘의리’를 보았기에 비록 적이지만 큰 감동을 받는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부하들을 사지로 내모는 왜장과 비교 되는 장면에서 준사는 큰 각성을 얻는다. 그리고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 간절하게 묻사오니 부디 답하여 주십시오.”라고 질문을 한다. 이순신 장군은 '의(義)와 불의(不義)의 전쟁'이라고 답한다. 약탈을 위한 ‘나라와 나라의 전쟁’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구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의미이다. 장군의 답에 준사는 진심으로 감화되어 항왜가 되고 끝까지 조선군을 돕는다. 영화 ‘한산’에서 준사의 활약은 그 비중이 아주 크다. ‘와키자카’의 조선인 애첩의 비녀와 자신의 목걸이가 같은 무늬임을 발견하고 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확인한다. ‘와키자카’의 애첩은 군관 ‘임준영’에게 정보를 주고 있었다. 발각이 되자 그 비녀를 뽑아 ‘와키자카’의 가슴을 찌른다. 준사는 혀를 물고 자결 하려던 그녀를 탈출시키고 서신을 자신의 목걸이를 신표로 이순신 장군에게 전한다. 일본군이 전주성이 아니라 전라 좌수영을 직격하려고 웅치로 향한다는 일급 군사기밀이었다. 그의 신물인 목걸이와 ‘와키자카’의 조선인 애첩의 비녀와 거북선 용머리 밑의 충파용 기둥은 똑같은 ‘귀면상’의 모습이다. 무서운 도깨비 같기도 한데 바로 ‘배달국 제14대 천황’인 ‘치우천황’이다. ‘전쟁의 신’인 치우천황이 철제투구를 쓴 ‘동두철액(銅頭鐵額)’의 모습이다. 이 형상은 실로 4천 7백여 년 만인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붉은 악마’의 엠블럼이 되어 대한민국에 부활한다. 영화 ‘명량’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 선실에 치우천황이 그려져 있다. ‘김한민 감독’이 진정 하고 싶은 우리 역사에 대한 뜨거운 속마음이다. 그의 삼부작인 ‘노량’, ‘한산’, ‘명량’의 숨어 있는 진짜 주제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준사는 곧바로 웅치 전투에 합류해 의병들과 함께 왜군에 맞서 싸운다. 영화 종반부 의병부대장 ‘황박’이 전사하고 준사도 죽을 위기에 몰리지만 ‘황진’의 구원군이 등장해 준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준사는 '의(義)' 자가 적힌 의병 깃발을 들고 돌격한다. 단군왕조 이전부터 전해내려 오던 ‘366사(事)’를 을파소 선생이 고구려의 동량을 가리치기 위해 다시 엮은 ‘참전계경’이 있다. 그 중 ‘의(義)’를 가르치는 대목이 있다. “믿음이란 하느님의 섭리에 꼭 들어맞는 것이요, 사람의 일을 반드시 이루어 주는 것으로 의(義), 약(約), 충(忠), 열(列), 순(循)이 있다. 그중 ‘의’가 가장 먼저라는 지혜의 가르침이다. 제 22사 의(義.) ‘의’란 정제되지 아니한 순수한 믿음에 부응하여 일어나는 기운이며 그 믿음을 실천하는 기운이다. 의기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용기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요 용단을 내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굳센 의지로 마음의 관문을 걸어 잠그므로 뇌성벽력이라도 그 의로운 기운을 깨지 못한다. 그 의기로 용기를 일으켜 세우면 금강석과도 같이 굳세고 강하며, 그 의기로 용단을 내려 움직이면 물꼬 터진 강물과도 같이 굳센 힘이 있다.(義 粗信而孚應之氣也 其爲氣也 感發而起勇 勇定而立事 牢鎖心關 霹靂 莫破 堅剛乎金石 決瀉乎江河) 준사는 1597년 명량해전에 다시 등장하니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에 동승하여 함께 악전고투에 임한다. 이순신은 안위, 김응함 등에게 적선들을 공격하도록 하고 송여종과 정응두 등은 협력해 일본의 배를 공격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 준사는 바다에 빠진 왜군 중에서 적장을 발견한다. 준사가 적장 “마다시”의 얼굴을 보고 확인하자 이순신은 그 시신을 참수해 목을 높이 걸어 일본군의 사기를 꺾는다. 결국 일본 수군함선 330여 척이 이순신이 이끄는 13척의 조선수군에 대패하고 다시 남해로 도주한다. 이후로는 완전히 서진을 포기한다. 이 명분 없는 살육의 전쟁에서 조선군으로 합류하고자한 일본의 무장이 또 있었다. 22살의 일본군 ‘사야가(沙也可)' 선봉장은 조선 땅에 상륙한 지 1주일 만인 4월 20일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朴晋)‘과 ’김응서(金應瑞)‘에게 은밀히 편지를 보낸다. “임진년 4월 일본국 우선봉장 사야가(沙也可)는 삼가 목욕재계하고 머리 숙여 조선국 절도사 합하에게 글을 올리나이다. 지금 제가 귀화하려 함은 지혜가 모자라서도 아니요, 힘이 모자라서도 아니며,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무기가 날카롭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저의 병사와 무기의 튼튼함은 백만의 군사를 당할 수 있고 계획의 치밀함은 천 길의 성곽을 무너뜨릴 만합니다. 아직 한 번의 싸움도 없었고 승부가 없었으니 어찌 강약에 못 이겨서 화(和)를 청하는 것이겠습니까. 다만, 저의 소원은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후략)” 그들의 갈고 닦은 전투실력과 담대함은 조선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철학과 가치관이 뚜렷한 ‘항왜(降倭)’는 또 다른 ‘의병’이 되었다. 투항한 ‘사야가’ 장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의병, 관군과 협력하여 벌인 78회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다. 사야가의 호는 ‘모하당(慕夏堂)’이다. 모하당 문집에는 그가 이순신 장군에게 보내는 답신도 적혀 있다. "하문하옵신 조총과 화포, 화약 만드는 법은 전번에 조정에서 내린 공문에 따라 벌써 각 진에 가르치는 중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총과 화약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기어코 적병(왜군)을 전멸하기를 밤낮으로 축원하옵니다." ‘사야가(沙也可)는 훗날의 ‘모하당 김충선’(慕夏堂 金忠善 1571~1642)이다. 선조가 성을 하사하니 ‘김충선(金忠善)’은 모래(沙)에서 나온 금(金)이라는 뜻으로 ‘사성 김씨’의 시조로 본관은 김해 김 씨이다. 종전 후 그는 진주목사 장춘점의 딸과 결혼한다.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괄의 난에 공을 세워 ‘삼란 공신’이 되었음에도 나라가 주는 녹을 일체 받지 않는다. ‘신하로서 당연히 한 일에 무슨 대가가 필요하냐?“는 올곧은 마음이다. 조정은 여진족을 막기 위해 내방소를 설치하고 그에게 북방 경비를 맡기니 10년간 빈틈없이 지켜낸다. 그 후, 병자호란이 일어나 북쪽 땅이 짓밟혔다는 소식을 듣자 66세의 나이에 의병을 모아 급히 남한산성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도중에 조정에서 항복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예의의 나라 군신으로서 어찌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겠는가, 춘추의 대의도 끝났구나."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경상도 달성군 우록에 터를 잡아 후학을 가르치며 살다가 72세로 세상을 떠난다. 우록동 삼정산에 부인과 나란히 묻히고 지증추 부사, 병조판서에 추증된다. 뺨 붉은 22세의 젊은 청년 왜장 ‘사야가’는 ‘김충선’ 장군이 되어 조선 땅에 뼈를 묻고 후손들이 번창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함께 투항하여 활동한 사여모(沙汝某) 김성인(金誠仁)의 후손들도 청도에 살고 있다. 그들이 흠모한 것은 ‘힘으로 빼앗음’이 아니라 ‘의로움의 공유’로써 바로 국조 단군께서 전해주신 “홍익인간 정신‘이었다. (끝) 원암 장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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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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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왜 국민의힘은 당 내분과 내홍을 수습하기 위한 비대위체제는 제1차적 책임이 이준석 당 대표에게 있지만, 이것을 명확히 정리하지 못하여 당을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을 하게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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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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