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2(월)
 

한일 관계 정상화에 대해서


윤석열 대통령은 “언젠가 해야 하고 누군가 해야 한다면 지금 내가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제3자 변제 방식의 배상 해법은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밝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외교정상회담 발표 이후 더불당에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윤석열 정부를 공격하고 주말이면 거리에 나섭니다. 


더불당에서는 대안도 없이 ‘조공 외교’, ‘내선일체’, ‘친일 본색’. ‘굴욕 외교’라고 맹비난을 합니다. 이재명은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치욕”이라고 말하며,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일본 하수인’, ‘용산 총독’이라는 막말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재명은 ‘조폭 하수인’, ‘범죄 하수인’이 아닙니까? 이재명은 북조선의 행동대원이요, 대변인이 아닙니까? 그리고 중공의 조선 총독이 아닙니까?


국민의힘은 “미래와 국익을 위한 대승적 결단”으로 환영했으며,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 관계에 획기적인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즉각 환영했으며, 유엔 사무총장과 유럽연합(EU)도 적극 환영했습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으나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과거에 얽매인 나라는 퇴보했으나, 과거의 응어리를 풀고 미래로 나가는 나라는 성공했습니다. 결국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 미래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바보 짓입니다.


북조선과 중공과 민주당은 한∙미∙일에 대해서는 똑같이 반대 입장입니다. 더불당은 문정권 5년동안 북조선의 핵과 미사일 고도화를 도운 친북 외교 말고 무엇을 했습니까?


반일팔이나 하는 자들 목적이 무엇일까요? 외교의 ‘외’자나 아는 것일까요? 국익의 ‘ㄱ’자나 아는 것일까요? 양심 팔아 먹은 거짓과 조작과 선동의 달인 좌파들 아닙니까? 


노무현이 하면 애국이고, 윤통이 하면 ‘굴욕’이란 해괴망측한 민주당의 주장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며, 무엇이 국민과 미래를 위한 올바른 방향인지 고민하지 않고 그저 한일관계 정상화를 정쟁으로 키워 국내 정치와 당내 정치 이용 의도가 가득한 것입니다.


북조선과 중공의 대한민국 침략 전락은 갓끈 전략입니다. 갓은 대한민국, 오른쪽 갓끈은 미국, 왼쪽 갓끈은 일본을 상징합니다. 바람이 불 때 양쪽 갓끈이 없으면 갓이 날아 갑니다.


그래서 빨갱이들이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하려는 윤석열 대통령을 열심히 공격하면서 반일을 선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결단은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세계적 주요 사례를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입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지리적으로 인접 국가며 기원전부터 앙숙 관계였습니다. 갈리아족 프랑스와 게르만족 독일은 중세 프랑크 왕국과 합스부르크 왕국간 충돌을 거처 19세기 나폴레옹 전쟁과 보불전쟁(1870~1871)에 이르러 양국의 적대감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20세기 들어 제1∙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양국은 단순한 앙금을 넘어 잠재적 적성국으로 과거사의 분노를 가라 앉히지 못했습니다.


그런 양국관계에 획기적 전환을 마련한 것은 1963년 독일 아데나워 수상과 프랑스 드골 대통령 간 체결한 프랑스∙독일 화해협력조약(일명 엘리제 조약)이었습니다.


프랑스∙독일은 엘리제 조약 체결 이후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으로 양국은 공동 역사 교과서를 활용하며,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와 EU(유럽연합)의 우산 아래 친밀한 이웃이 되었으며, 유럽의 쌍두마차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미국과 독일∙일본의 경우입니다.


미국과 독일∙일본은 제2차 대전 기간(1939~1945년) 중 불구대천 원수지간이었습니다.


미국은 나치 독일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구 소련에게 군수물자 127억톤, 전차 12,000여대, 공군 수송기 22,000여대, 차량 10만여대 등을 제공하였습니다.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폭을 가해 수십만 인명피해와 엄청난 재산피해를 발생시켰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2차 대전 후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 대한 대대적인 경제지원(마샬 플렌)과 일본의 전후복구를 제공하여 오늘날 일본과 독일은 세계 경제 대국 3∙4위를 이루었습니다.


심지어 미국은 독일과 NATO 안보 회원국이며, 일본과는 미∙일 안보조약(19 51년)에 이어 미∙일 신안보조약(1960년)을 체결하였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독일과 함께 NATO 회원국으로 러시아 위협에 대비하며, 일본과는 미일 동맹으로 북∙중∙러 삼각위협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예컨데 미국은 국익을 최우선한 나머지 과거 적국을 우방∙동맹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미국과 베트남의 경우입니다.


베트남은 1000년 이상 중국의 식민통치를 받았으며, 그 이후 원나라∙명나라∙청나라의 끊임없는 침략 그리고 프랑스 및 일본 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베트남은 1955년부터 1964년까지는 내전 양상을 보이다가 1965년부터 1973년까지는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 싸웠습니다.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미국은 무려 630만여톤(2차 대전시 300만여톤) 포탄을 쏟아 부어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베트남은 과거 미국과 전쟁시 군사 지원한 중국을 멀리하고 친미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공산 독재국가인 베트남도 국익을 최우선하여 과거보다는 미래를 택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경우를 살펴 보십시다.


어느 나라든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한 아픈 과거사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릅니다. 비극적 과거사의 강도로 따져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가 베트남입니다.


그 베트남과 한국 사이에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학살 의혹’이라는 과거사 문제가 20년 전 어느 국내 언론 매체에 의해 불거졌으며, 공교롭게도 6∙25전쟁 당시 발생한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 의혹이 국내적으로 떠들썩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문제의 조기 진화를 위해 ‘공동조사 후 사과와 보상을 할 용의가 있다’는 매우 전향적인 입장을 베트남에 전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베트남 정부는 “과거사에 대한 어떠한 논의에도 반대하며, 과거를 덮고 미래를 위해 협력하자”는 단호한 입장을 전해 왔습니다.


그 이듬해 한∙베트남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트남 정부는 회담에서 과거사 문제를 일절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은 정상회담 때 덕담 차원에서 베트남 전쟁 참전에 대한 사과의 뜻을 표명했습니다.


그러자 베트남 외교부는 강한 불쾌감을 전달해 왔습니다. 베트남은 한국과 친구가 되려고 하는데, 한국 정부는 왜 그리도 과거에 연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漢) 나라에 정복돼 1000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1945년 이후에만도 프랑스, 일본, 미국, 중국과의 전쟁으로 인구의 10%인 800만 국민을 잃은 베트남의 의연한 태도는 숙연하다 못해 두려움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국부 호찌민의 실용주의 정신을 계승한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들은 국익을 위해 과거 총부리를 겨눴던 미국과 한국에 대해 화해하고 협력해 왔습니다.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 발전을 추구한 베트남은 미국과 한국의 기업을 적극 유치하고 교역을 확대해 왔습니다.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외국인 투자 국가이고 3위 수출국입니다.


세상에는 역사적으로 앙숙인 나라가 많습니다. 왕정 시대부터 수많은 전쟁을 했던 수백년 숙적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가 대표적입니다.


지구상엔 식민통치를 받은 나라도 수없이 많습니다. 당시에는 국력을 길러 타국을 침략하고 영토를 빼앗거나 식민지화 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 당연한 권리로 간주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그 어느 국제법도 침략행위나 식민통치를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동원해 이웃 나라를 정복하는 것도 합법이었고, 총칼 들이대고 서명한 합병조약이나 영토 할양조약 등도 모두 합법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대다수의 나라가 유럽의 식민지였습니다.


아시아에서 완전한 독립국이라고는 일본과 태국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유럽과 미주대륙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대다수 국가는 2차대전 이후 비로소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민통치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고 이로 인해 현재와 미래를 위한 협력까지 포기하는 나라가 한국 외에 는 전혀 없습니다.

독일은 사과를 많이 했으나 일본은 사과에 인색하다는 말도 공허합니다. 독일의 사과는 전쟁 기간에 발생한 유대인과 외국인 대량학살에 대한 것이었고, 침략행위에 대한 사과에는 지극히 인색했습니다.


독일의 유럽 침공은 로마제국이나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과 마찬가지로 당시로써는 국가의 정당한 주권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를 정복하고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수천만명의 현지인이 희생됐으나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등 어느 나라도 사과하지 않았고, 피해국들도 대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은 국제협정과 정부 간 합의로 일단락된 사과와 배상에 더해 한국이 추가로 제기한 요구사항들을 둘러싸고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그에 따른 한국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폐기로 우리 국가 안보의 중추인 한∙미 동맹과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까지 심각한 위기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끝없는 사과와 배상 요구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정녕 우리 국가 안보나 현재와 미래의 경제적 번영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까?


이제 몇 개월 뒤 한일합병 110년, 해방 75년입니다. 비록 늦었지만 우리도 이젠 그만 과거사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윈스턴 처칠이 “역사를 잊은 국가에 미래는 없다”고 했을 때, 그것은 과거사의 ‘원한’에 매달리라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영광스러운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면서, 부끄러운 역사에서는 ‘교훈’을 얻어 다시는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을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를 설파한 것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은 나치주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과 싸웠습니다. 이처럼 과거에는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적이였으나, 지금은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독일과 일본은 나치도 아니고 군국도 아닌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논리로 과거에는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적이였으나, 현재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대한민국과 일본은 동맹국이 되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한국∙일본과 인접한 러시아∙중공∙북조선은 공산주의 독재자들이통치하는 전체주의 국가들로 핵무기를 보유하였으며, 우크라이나 침공, 대만 침공 위협, 제2의 6∙25남침 위협 같은 위험으로 한국과 일본은 제2의 우크라이나 가능성이 큽니다.


즉 러시아∙중공∙북조선 침공으로부터 한국과 일본은 위험한 안보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은 ‘한미일’ 3각 동맹을 정립해야만 러시아∙중공∙북조선 3국의 침략으로부터 한국과 일본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한일 관계 정상화는 생존의 문제이며, 중공과 미국의 패권 전쟁 때문에 더욱 어려워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한일 관계 정상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대일 외교가 굴욕적이라고 트집 잡으면서 한미일 공조 방해하는 민주당과 좌파 시민단체는 6∙25전쟁 일으킨 북조선에는 왜 배상 청구를 안 하는 겁니까? 


6∙25남침으로 민간인 피해자 백만명(북한군에 의한 학살, 부상, 납치 등), 우리나라 군 전사자만 14만명입니다. 북조선과 손잡고 남침한 중공에는 왜 찍소리도 못하는 것입니까? 


북조선에 함박도를 넘긴 문재인에 대해선 왜 아무런 비판도 없는 것입니까? 문재인을 비롯해 중공에 새해 인사 올린 좌파 인사들은 할 말 있습니까?


1964년 12월 서독의 수도 본, 에르하르트 총리와 박정희 대통령이 중요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역사적 순간입니다.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일으켜 세운 경제개발계획이 여기서 탄생합니다.


에르하르트 총리가 “한국을 가보니 산이 많던데 이런 지형에선 산업 발전이 힘들다. 그러니 고속도로를 놓아라. 나는 나치를 혐오한다. 하지만 히틀러가 놓은 아우토반(고속도로)에겐 달릴 때마다 마음속으로 경례를 한다. 고속도로에 자동차를 달리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제철소가 필요하다. 연료를 얻자면 정유화학공업을 육성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박 대통령 표정이 바뀌더니 “그럴 수는 없다!”는 말하자 에르하르트 총리는 “일본과 화해하라”고 다독이며 “우리가 프랑스와 몇 번 싸웠는지 아십니까? 열여섯 번입니다. 그래도 전후에 양국은 손을 잡았습니다. 각하, 지도자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가야 합니다.”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패전국 독일의 부활에 프랑스의 지원이 컸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그 반년 후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었는데, 그때 박정희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서는 원수와도 손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일각에서는 이 결단을 두고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파’라며 상식을 벗어난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청구권자금으로 1970년 포항종합제철소가 착공됐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으며, 포항제철이 생산한 ‘산업의 쌀’이라고 부르는 철강제품으로 5년 후엔 현대자동차의 포니가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합니다. 

이런 것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부릅니다. 거기엔 늘 극렬한 반대가 있었고, 소신이 있고 확신에 찬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 힘은 우리 국민, 우리 문화의 저력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블랙핑크와 BTS,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같은 K-콘텐츠의 지구촌 정복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물론 동북아시아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 때 배를 띄워야 합니다. 구국의 결단으로 총대를 메고 앞장서는 윤 대통령은 밤잠을 설치며 엄청난 중압감을 극복하면서 현명한 국민들의 지지를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두 명 중 한 명만 지혜롭고 현명하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용기백배하여 무너진 대한민국의 국격을 가장 빨리,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원상복귀 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임기 내에 확실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보란듯이 성공한 대통령으로서 그 열매를 보여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하늘이 내려주신 총명함으로 이러한 내일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대로 실현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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