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광복절 기념행사는 보수와 진보 혹은 우파와 좌파간에 극심한 시각차를 드러냈고,
해방 후 첫 번째로 8.15 따로 경축식이 진행됐고, 그 평가도 극대극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첫째 8.15 통일 독트린 발표, 둘째 윤석열 대통령의 통일로 가는 완전한 광복 실현, 셋째 8.15 경축사 키워드가 자유 50회, 통일 36회, 북한 32회, 국민 25회, 대한민국 18회, 국제사회와 통일대한민국과 북한주민과 인권은 10회, 자유통일은 9회로 사용할 정도로 자유 혹은 통일 혹은 자유통일에 대한 언급이 95회일 정도로 과거의 어떤 정부보다 자유통일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언급했고 일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민주노총는 뼈속까지 친일이라며 비판했으,며, 자유통일평화연대는 한반도에 전쟁을 현실화하는 광복절 경축사라는 비난을 했으나 이것은 이념전쟁 중인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남북대화를 위한 실무차원의 대화협의체 설치를 제안하고, 통일에 대한 비전과 구체적 방안을 발표하면서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라며 통일추진 전략도 함께 제시했다.
사진출처 : mbc, 윤석열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문제는 광복절의 기념행사에 가장 앞장서야 할 광복회의 이종찬 회장이 독립기념관장 인사와 관련하여 1948년을 건국절로 하자는 것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이며, 이는 엄청난 매국행위라며 광복절 행사에 불참하자 해방이후 처음으로 좌우가 갈라진 광복절 행사를 하게되었다.
이종찬 회장은 용산이 광복절 행사 참석을 회유했으나 거절했다며, 오히려 한국의 반역자들과 일본의 우익이 내통한 위기감이 든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우익을 반역자로서 일본과 내통했다는 문제제기를 했고, 이는 내정된 독립기념관장의 역사관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했다.
이종찬 회장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친일 뉴라이트”로서 일본식민지배를 정당화했다는 것과 자신이 독립기년관장으로 추천한 백범 김구 선생의 장손자 김진 외 1인 탈락되자 이런 일들이 이종찬 회장의 광복회와 야권의 친일몰이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정부 주도의 제79회 광복절 행사에 광복회와 야당은 불참하며 각각 광복절 행사를 따로 하는 분열과 비난이 있었다.
그러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이를 부인하며 이종찬 회장 등에게 공개적인 토론을 제한했다.
김형석 관장은 “끝내야 할 역사전쟁”이라는 책 내용과 상반되는 주장이라며, 자신은 친일도 아니며,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무시하고, 1948년을 건국절로 제정하고 한다는 주장에 대해
전혀 잘못된 주장이라며,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건국되지만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1919년 3.1 운동으로부터 시작해서 1948년 건국의 완성될 때 가지 29년간의 기간을 건국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임시정부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나 건국절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김구 선생에 대한 폄훼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런 사실이 없으며 정치선전으로 표했다.
그런데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비판하면서 8.15 광복절 행사에도 불참한 이종찬은 누구인가?
출처 : ohmy TV. 이종찬 광복회장 경축사
그는 중국 상해에서 태어났고, 독립운동가 이회영과 이시영은 그의 조부이며, 집안은 대부분이 좌파 공산주의자였고, 1960년 육사에 입학했고,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에 참여하여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 보수인사로서 국회의원 4선을 했고, 1997년 좌파 김대중과 손을 잡고 초대 국정원장을 맡았고, 대한민국 북파 정보원들에 대한 정보를 북한에 주어 휴민트 3,000여명을 몰살케 한 의심을 받고 있던 자가 광복회 회장이 된 자체가 크나 큰 문제였다.
이렇게 우파와 좌파를 넘나들며 권력의 단맛만 본 것도 문제이나 그가 김대중 정부의 국정원장시시절 휴민트 약 3,000여명에 대한 정보가 북한으로 넘어가 그들이 북한 당국에게 몰살당했고, 휴민트를 몰살시켰다는 자가 우파-좌파-우파를 간첩처럼 넘나들며 윤석열 정부에서 광복회 회장을 맡아 또다시 내란과 마찬가지로 광복절 행사마저도 분열시켰으니 이자는 자진사퇴 혹은 강퇴시키고 북한에 파견되었던 사망한 휴민트에 대한 재조사로 책임을 지워야 한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경축사에 대해 통일정책의 변화에 대해서는 지지하나, 국민의 뜻을 거르는 인사는 결정적 흠결이라며 전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은근히 저지시켰다.
이종찬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밝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그 날에 필요한 인사가 아니라 그가 해야 할 일은 광복회의 회장이 아니라 집단살해자 휴민트에 대한 책임이다.
통상 국가의 3대 구성요소인 영토, 국민, 주권이라는 원칙과 대한민국 헌법을 보더라도 건국일을 1919년 상해임시정부로 보는 것보다는 1948년 8월 15일이 더 합법적, 합리적 논리이다.